도강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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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강김씨 (道康金氏)
관향 고려시대 도강, 현재 전라남도 강진
시조 김희조(金希祖)
중시조 김원경(金原卿), 김을경(金乙卿), 김일(金鎰), 김을상(金乙祥)
집성촌 전라남도 강진군
전라남도 영광군
전라남도 진도군
전라북도 정읍시
주요 인물 김회련, 김응정, 김약묵, 김후진, 김급, 김개남, 김택술, 김원기, 김생기, 김영진
인구(2015년) 31,496명

도강 김씨(道康 金氏)는 고려때 도강(道康), 현재의 강진(康津)을 관향(貫鄕)으로 삼는 한국의 성씨다.

역사[편집]

시조(始祖) 김희조(金希祖), 휘(諱) 공(恭) 1124生~1199卒, 호는 강성(康城), 시호는 문효(文孝)는 원조 김알지(金閼智)의 34대손이며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7대손으로 고려 19대 왕인 명종(明宗)에 병부상서(兵部尙書),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역임 하였으며 병부상서 재임시 장군 경대승과 함께 정권을 자행한 정중부를 제거하고 종묘사직(宗廟社稷)을 구호한 공훈으로 도성부원군(道城府院君)과 도강백(道康伯)에 봉작되고 식읍지(食邑地)로 도강현(道康縣) 현재 강진을 하사 받았다. 이후 후손들이 도강(道康)을 관향(貫鄕)으로 삼아 동본(同本) 4파(4派)로 분파되어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

분파[편집]

  • 태인 동정공파(泰仁 同正公派) : 파조 사온서직장(司醞署直長) '김원경'(金原卿), 도강김씨 7세(동정공파 1세).
  • 강진 시직공파(康津 侍直公派) : 파조 사재감정(司宰監正) '김을경'(金乙卿), 도강김씨 7세(시직공파 1세).
  • 강진 전공조사공파(康津 典工曹事公派) : 파조 전공조사(典工曹事) '김일'(金鎰), 도강김씨 10세(시직공파 4세, 전공조사공파 1세).
  • 인천 병사공파(仁川 兵使公派) : 파조 팔도병사(八道兵使) '김을상'(金乙祥), 도강김씨 7세(병사공파 1세).

본관[편집]

도강(道康)은 전라남도 강진군(康津郡) 일원의 옛 지명이다. 백제시대에 도무군(道武郡)과 동음현(冬音縣)이 설치되고, 757년(경덕왕 16)에 도무군을 양무군(陽武郡)으로, 동음현은 탐진현(耽津縣)으로 개칭하였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도강현(道康縣)으로 이름을 바꾸고 광주(光州)에 예속시켰다가 1018년(현종 9)에 영암군에 속하게 했다. 탐진현도 처음 영암군에 속했다가 후일 장흥부에 속하게 되었다. 1417년(태종 17)에 도강현과 탐진현을 강진현(康津縣)으로 병합하고, 병마도절제사영(兵馬都節制使營)을 도강의 옛 치소로 옮겼다. 1895년(고종 32) 지방관제 개정으로 전라남도 강진군이 되고 나주부(羅州府)가 관할하게 되었다. 1936년 강진면이 강진읍(康津邑)으로 승격되었다.

인물[편집]

  • 김회련(懷鍊) : 호는 충민(忠敏), 조선(朝鮮) 개국원종일등공신(開國原從一等功臣)으로 이조판서(吏曹判書), 공주목사, 해주목사, 검교한성부윤(檢校漢城府左尹) 홍문ㆍ예문 양관 대제학을 역임하였다. (도강김씨 9세, 동정공파 3세)
  • 김남우(南佑) : 연산군(燕山君)때 한성부윤(漢城府尹)을 지냈다. (도강김씨 15세, 전공조사공파 6세)
  • 김서형(瑞衡) : 강계부사(江界府使)을 지냈으며, 1467년 이시애의 난을 토평하는데 공을 세워 적개원종공신(敵愾原從功臣)에 녹훈(錄勳) 되었다. (병사공파 6세)
  • 김약묵(若默) : 명종 때 청백리에 오르고, 한산군수 재임시 선정으로 표창을 받고, 양주목사를 역임하였으며, 학행이 있어 정읍 무성서원(井邑 武城書院)에 배향되었다. (도강김씨 14세, 동정공파 8세, 판관공파)
  • 김응정(應鼎) : 조선 중기의 문인, 임진·정유 왜란 때에는 의병을 모집하고 토지와 노비를 모두 팔아 군량미를 비축하여 고경명(高敬命)과 조헌(趙憲)을 크게 도왔고, 1567년 명종이 별세했다는 소식을 듣고 시조 서산일락가(西山日落歌)를 지었다.(도강김씨 15세, 시직공파9세)
  • 김후진(後進) : 조선 중기의 학자, 이항(李恒)의 문인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이귀(李貴)가 장성(長城)에서 의병을 모집하자 군량(軍糧) 보급하고 이에 참여하였다. 정읍시 남천사(藍川祠)와 장성군 북이면 모현리에 있는 오산창의사(鰲山倡義祠)에 봉향되었다.
  • 김도언(道彦) : 조선 후기의 문신. 1728년(영조 4) 의금부도사로 이인좌의 난을 토평하는데 공을 세워 분무일등공신(奮武一等功臣)에 녹훈(錄勳) 되었고 음죽현감을 지냈다.
  • 김개남(開南) : 동학농민운동 선봉장.
  • 김영상(永相) : 우국지사 1910년 한일합방이 되자 독립을 역설하다 일경에 체포되어 군산 감옥에서 9일 단식 끝에 숨졌다.

과거 급제자[편집]

조선 문과[편집]

김광우(金光遇), 김광윤(金光潤), 김도언(金道彦), 김도원(金道元), 김만형(金萬衡), 김명형(金命衡), 김순형(金舜衡), 김약묵(金若默), 김우정(金友正), 김천정(金天挺), 김헌구(金憲球), 김홍제(金弘濟)

무과[편집]

김경신(金慶臣), 김경회(金慶會), 김길(金佶), 김영원(金永元), 김영인(金永仁), 김유석(金有錫), 김응길(金應吉), 김장악(金長岳), 김재량(金載亮), 김정삼(金鼎三), 김지백(金知白), 김진설(金震卨).

생원[편집]

김광철(金光喆), 김구정(金九鼎), 김대형(金大衡), 김도언(金道彦), 김두해(金斗海), 김면성(金勉成), 김상열(金商說), 김약허(金若虛), 김약회(金若晦), 김우정(金友正), 김우형(金宇衡), 김응도(金膺道), 김재희(金在羲), 김정삼(金鼎三), 김치응(金致膺), 김형후(金炯厚), 김희윤(金希尹)

진사[편집]

김관(金灌), 김기(金墍), 김복억(金福億), 김순형(金舜衡), 김약허(金若虛), 김약현(金若玄), 김원(金元), 김정삼(金鼎三), 김택(金澤), 김한철(金漢哲), 김환규(金煥圭)

집성촌[편집]

인구[편집]

  • 1985년 5,208가구 21,981명
  • 2000년 6,639가구 21,274명
  • 2015년 31,496명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