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여진족을 세 분파로 구분하였는데, 훨운국(呼倫, 忽溫, 만주어:Hūlun Gurun)을 해서여진, 건주위지휘사와 건주좌위지휘사 그리고 건주우위지휘사가 관할하는 세력을 건주여진(만주어:Giyanju Jušen), 여진족들이 장백산부와 동해여진이라 일컫던 모련위 등을 야인여진(野人女眞, 만주어:Udige Niyalma Jušen)으로 구분했다.
여진족은 발해의 농업기술, 도기 제조업 및 기타 여러 수공업 기술을 차용하였고, 이와 같은 영향은 동일한 형태의 도구나 무장도구들을 통해 확인된다고 한다. 그들은 샤먼 의식을 행하였으며 샤먼의 신통력에 널리 이용되었던 태양신을 상징하는 하늘 신을 믿었다.[1]
초기 여진 문자는 1120년완안아골타(完顔阿骨打, 만주어:Wanggiya Agūda)의 명에 따라 완안희윤(完顔希尹)에 의하여 발명되었다. 여진 문자는 금나라가 멸망하자 급속히 사라졌다.
여진 사회와 언어 그리고 문화 한민족의 고구려에 많은 영향을 받았었다. 여진족은 정치적 지도자에게 "한"(汗, 만주어:Han)[2]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였으며 이는 왕이든 부족장이든 가리지 않고 사용되었다. 금나라는 각종 관직에 버기러(勃極烈, Begile)라는 칭호를 붙였다.
명나라 시대 동안 여진족은 고대적인 씨족(姓: 哈拉, 만주어:Hala)의 소규모 씨족(氏: 穆昆, 만주어:Mukūn, 哈拉穆昆, 만주어:Hala Mukūn)적인 사회 단위에서 생활했다. 여진족 씨족의 일원들은 동일 조상에 대한 인식을 공유했으며 단일한 장(만주어:Mukūnda, 만주어:Halada)의 통치를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