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이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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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이족/허저족(赫哲族)
인구 약 18,000명
거점 러시아 러시아
중국 중국 헤이룽장 성
언어 나나이어, 표준 중국어
종교 티베트불교, 샤머니즘
관련민족 우데게족, 니브흐족, 만주족, 아이누족, 울치족, 윌타족

나나이족(那乃族, 러시아어: Нанайцы, 영어: Nanai) 또는 허저족(중국어: 赫哲族, 만주어: Heje Fiyaha)은 퉁구스계의 민족으로, 주로 러시아아무르 강에서 1만 명이 거주하고, 중국에도 수천 명이 살고 있다. 중국의 허저족을 허전(Hezhen)이라고 부르며, 중국의 소수민족에 속한다. 나나이족 또는 허저족들은 자신을 "用日貝(用日贝)"-'요이바이'-라고도 부른다.

  • 중국 나나이족들은 만주 지역에 살며, 관광업에 종사하기도 한다.
  • 러시아 나나이족들은 아무르 강가, 하바롭스크콤소몰스크나아무레에 일부가 살고 있다. 2002년 조사에 따르면 러시아 나나이족들은 1만2,160명이 거주한다.
  • 나나이족들은 샤머니즘을 숭상하여 여러 신들을 숭상하는데 생업과 관련된 신들 중에서 아이를 보호하는 아이 보호신을 숭배하기도 한다.[1]

역사[편집]

허저족의 기원에 관해서는 연구자들 대다수가 이들이 숙신, 읍루, 물길, 흑수말갈, 여진 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있다. 역사적으로나 민족학적으로 볼 때 허저족의 조상과 만주족의 조상은 동일한 공동체에 속하며 주변 민족과 빈번하게동화와 분화가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2]

누르가치는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13벌의 투구와 갑옷으로써 기병(起兵)을 했고, 수년간의 노력 끝에 부조의 원수 도륜성주 니칸 와이란(尼堪外蘭, Nikan Wailan)의 세력을 제거하였을 뿐만 아니라, 혼하부(渾河部, Hunehe Aiman)·동악부(東鄂部, Donggo Aiman)·소극소호부(蘇克素滸部, Suksuhu Aiman)·철진부(哲陳部, Jecen Ainman)·완안부(完顔部, Wanggiya Aiman)·주사리부(朱舍里部, Jušeri Aiman)·눌은부(訥殷部, Neyen Aiman)를 정복하여 건주여진을 통일하였다.[3] 이후에 누르가치는 숭덕제압록강, 두만강 서쪽 지역, 송화강 중하류, 우수리강 동쪽 및 흑룡강 중하류 유역의 여진 각 부를 정복하기 위한 전쟁을 연이어 펼쳤다. 허저족 지역에 대한 정복 전쟁은 17번이나 이루어졌는데, 이는 오히려 허저족의 응집력을 강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허저인들은 만주족과의 대립을 통하여 더 이상 만주족을 동족으로 간주하지 읺게 되었다. 이는 허저족 형성이 중요한 전환점이다.

만주족은 이들을 사견부(使犬部, Indahūn Takūrara Golo, 使犬國, Indahūn Takūrara Gurun)이라 칭하기도 했다.[4] 《태종문황제실록》권21에 따르면, 이를 기점으로 만주족 통치자들도 허저인들에게 "너희 선조는 본래 우리나라 사람인 것이 서책에 참으로 분명하게 드러나 있는데, 너희들은 아직 그것을 알지 못하니 이로 인해 서슴없이 스스로 외인으로 여기는구나"라고 하였으며, 《길림통사》에는 "흑근(黑斤) 사람의 성정은 사납고 간사하여, 일을 믿고 맡길 수 없다."라며 두 민족 간의 경계는 더욱 뚜렷해졌다.[5]

허저라는 족명은 《성조인황제실록》의 강희 2년 3월 임진조에 즉, 1663년 기록에서 최초로 보이기 시작한다. 이는 아마도 허저는 사견부 사람의 일부가 사용하던 자칭이었거나 사견부 인근의 다른 부족이 사견부를 지칭하는 명칭이었는데, 이를 만주족이 사견부 전체를 아우르는 명칭으로 확대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우수리강흑룡강 하류에 거주하는 허저인의 자칭은 나나이(Nanai)이고, 현재 흑룡강성 부금시 일대에 거주한 허저족의 자칭은 나바이(Nabai)였으며, 흑룡강성 동강시 일대에 거주한 허저족 자칭은 나니오(Nanio)였다. 이는 모두 땅의 사람이란 뜻이다. 만주어와 마찬가지로 나나이어에서도 '나(Na)'는 땅을 뜻한다.[6]

1674년, 청 제국은 훠르하부(虎爾哈部, Hūrha Aiman)의 허저인을 영고탑으로 이주시켜 40개의 신만주좌령에 편입하였고, 1714년, 삼성협령어문이 설치되면서 삼성(Ilan Hala) 지역의 허저인 장정 1,530명이 신만주좌령에 편입하였다. 강희 ~ 옹정 연간에 기에 편입된 허저인은 거의 60개 좌령에 이른다. 그 중 31개 1만여 명은 성경으로 이주시키고, 나머지는 길림에 남았는데 달을 합치면 2만 먕에 이른다.[7] 그리고 비기인 허저족을 씨족(Hala)와 마을(Gašan)로 호적에 기록하는 편호정책을 시행하였는데, 청 제국 조정에서는 각각 성장과 향장이라는 지방 기충 관원을 뽑아 호를 나누고 관할하였다. 이러한 정책은 허저족의 사회조직, 씨족조직의 기초 위에 기층 행정 단위를 더한 것이었다. 또한 청 제국은 동북 변경의 허저족을 효과적으로 관할하기 위해 편호에 포함된 허저인에게 매년 한 집당 춤질이 우수한 담비 가죽 한 장을 공납으로 바치게 하는 공초 정책을 시행하면서 공물을 바치는 허저인들에게 답례 성격의재물을 하사하는 상오림 정책을 시행했다.[8]

언어[편집]

허전어(또는 나나이어)는 알타이어족만주퉁구스어군에 속해 있다. 소비에트 연방시절에는 나나이어가 키릴 문자로 쓰였다. 하바롭스크에는 나나이어를 가르치는 학교가 13곳 있다.

대중 문화[편집]

  • 1975년 소련 영화 《데르수 우잘라》(구로자와 아키라 감독)는 원시생활을 하는 나나이족 사냥꾼과 러시아 병사의 우정을 다루고 있다.
  • 슈퍼주니어 전 멤버였던 한경은 나나이족 출신이다.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1. 한중관계연구소(2017) , 「아무르강의 어렵민, 허저족」, 『청아출판사』 9장(『어렵민의 일생』), 232~233쪽
  2. 한중관계연구소(2017) , 「아무르강의 어렵민, 허저족」, 『청아출판사』 2장(『허저족의 기원과 역사』), 51쪽
  3. 閹崇年, 《努爾哈赤傳》, 북경출판사. 291~295쪽
  4. 이훈(2018), 《만주족 이야기》, 너머북스, 398쪽
  5. 한중관계연구소(2017) , 「아무르강의 어렵민, 허저족」, 『청아출판사』 2장(『허저족의 기원과 역사』), 55~56쪽
  6. 이훈(2018), 《만주족 이야기》, 너머북스, 400~403쪽
  7. 한중관계연구소(2017) , 「아무르강의 어렵민, 허저족」, 『청아출판사』 1장(『허저족 개관』), 28~29쪽
  8. 한중관계연구소(2017) , 「아무르강의 어렵민, 허저족」, 『청아출판사』 2장(『허저족의 기원과 역사』), 61~6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