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촌족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Chuonnasuan, the last shaman of the Oroqen, in July 1994 (Photo by Richard Noll).jpg

오로촌족(만주어: ᠣᡵᠣᠨᠴᠣᠨ Oroncon, 몽골어: ᠣᠷᠴᠣᠨ Orčon, 러시아어: Орочоны, 중국어 간체자: 鄂伦春族, 정체자: 鄂倫春族, 병음: Èlúnchūn zú)은 중국 56개의 민족 중 인구가 가장 적은 민족 중의 하나로 내몽골자치구 후룬베이얼시흑룡강성의 흥안령 일대에 거주하고 있다. 원래 이들은 흥안령 산맥을 중심으로 수렵 생활을 하던 종족이었다. 2010년 기준 인구는 8,659명이다.

역사[편집]

오로촌족은 문자가 없기 때문에 자족의 역사를 기록할 수 없었다. 다른 종족의 문헌 중 오로촌족에 관한 기록은 비교적 늦게 나타날 뿐 아니라 아주 적기 때문에 오로촌족의 원류에 대해서는 현재 통일된 학설이 없다.

혹자는 생활습속에 근거하여 오로촌족의 의식주, 혼례와 상례, 생산 등 여러 습속이 발실위(鉢室韋)와 매우 유사한 점을 들어 발실위인의 후예라 볼 수 있다고 한다. 혹자는 초기 언어를 근거로 오로촌어와 고대 숙신인의 언어가 유사하기 때문에 마땅히 숙신의 후예로 보아야 한다고 한다. 실위는 본래 광범위한 여러 종족에 대한 칭호로 대부분의 실위는 동호계통에 속하고 언어는 몽골어족에 속한다. 그러나 《당회요》에서 "실위어는 말갈어와 통한다"라고 하였으며, 《당서》 실위전에서는 "실위는 말갈어를 사용한다"라고 하였다. 말갈은 숙신계통으로 여진족의 조상이며 언어는 퉁구스어족에 속한다. 따라서 실위어는 몽골과 퉁구스 두 개의 언어를 포괄한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오로촌족의 기원은 여진설과 실위설이 통합되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1] 그러나 《수서》 실위전을 일부 글의 순서를 조정하고 내용을 삭제하거나 몇몇 조목을 고쳐쓴 《통전》은 "술 빚기와 음식 풍속이 말갈과 같다"라는 구절을, "술 빚기, 음식과 언어가 말갈과 같다"라고 고쳤다. 《당회요》부터 《신당서》에 이르기까지의 후대의 사서들은 이 기록을 답습했고 이러한 기록은 일종의 오기로서 실위가 숙신족이나 퉁구스족 계통에 속한다는 견해는 충분한 증거가 없다는 지적이 있다.[2]

내몽골자치구 오로촌 자치기 경내 기정부 소재디인 아리하진에서 서북으로 9km 떨어진 곳이 남북 길이가 92m, 동서 넓이가 27.8m, 높이가 20여 미처인 천연 동굴이 있는데 오로촌인은 이 동굴을 가셴동이라고 한다. 1980년 7월 30일 후룬베이얼맹 문물참 미원핑 등은 이 동굴의 서쪽 벽에서 석각된 문자를 발견했는데, 북위 태평진군 4년(443년) 태무황제 탁발도가 대신 이창을 파견하여 조상을 제사할 때 새긴 축문임을 확인하였다. 넓은 동굴과 측문의 내용이 고대 역사 문헌인 《위서》의 기록과 기본적으로 부합하는 것으로 보아 이 동굴이 선비족의 고대 석실터임이 증명됐다.[3] 그러나 현재의 오로촌족이나 어웡키족이 그와 연관을 갖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오로촌족, 다우르족, 어웡키족 사람들은 가셴동 석굴을 자신들의 조상이 거주한 곳으로 간주하기를 원한다. 오로촌족 출신 연구자들의 경우 역사 시기 수차례에 걸쳐 일어났을 종족의 이동을 고려하지 않고 현재의 거주지역에서 자신들의 종족적 계보를 파악하고자 하는 성향이 강하다. 이러한 인식은 일반 오로촌인들에게서도 나타나는 데 그들은 가셴동석굴이 자신들의 조상의 기원지라고 말하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렇지 않다고 말하면 매우 낙심하는 표정들을 지었다.[4]

문헌 기록을 보면 《몽고비사》에서는 외흥안령에 거주하는 종족을 ‘숲속의 백성'(林中百姓)이라고 하였다. 《대명일통지》에서는 "북산(北山)에 야인(野人)이 있는데 사슴을 타고 다닌다"라고 하였는데 대략 오로촌인과 어웡키 등 순록을 이용하는 동족을 지칭한다. 《동삼성정략(東三省政略)》에는 "오로촌은 실제로 소론(索倫, 만주어: ᠰᠣᠯᠣᠨ Solon)의 한 부족으로 그 종족은 모두 흥안령 산중에 흩어져 있으며 수렵을 위주로 하는데 원대은 숲속의 백성이라 칭했으며 청초에는 수중인(樹中人) 또는 사록부(使鹿部)라고 불렸다."라는 기록이 있다. 청 제국 사료에는 오로촌, 어웡키, 다우르를 소론부(索倫部)[5], 사록부(使鹿部), 타생부(打牲部)로 통칭한 기록이 있다.[6]

문화[편집]

사회조직[편집]

오로촌족의 씨족은 오로촌어로 무쿤이라 하는데 무쿤이 생산되기 위해서는 먼저 성이 있어야 한다. 성은 오로촌어로 하라라고 한다. 오로촌인의 하라는 모두 의미를 담고 있다. 일부 하라는 작은 성씨가 파생됐는데 '어떠어떠한 첸(淺)이라 하였다. 예를 들어 커르터이르는 후대에 나단첸(那旦淺), 콩가이다첸(空改達淺), 처처이르(車車依爾淺) 등의 성씨가 파생됐다. 바이이르는 후대에 부러기이르첸(布勳吉依爾淺), 조룬첸(昭倫淺), 오룬첸(放倫淺), 차라방커첸(查拉邦克淺), 우용나첸(烏永那淺) 등이 파생됐다. 이들 작은 성씨는 기본적으로 그에 대한 해석과 기원 전설이 있다.[7] 작은 성씨의 첸이 독립적인 무쿤으로 성립하게 되면 작은 성씨는 본 씨족의 진정한 성씨가 된다.[8]

무쿤은 같은 성씨의 사람으로 무쿤의 성원 범위는 명확하다. 같은 남성 조상의 후대로 9대 이내라고도 하고 10대 이내라고도 하는데 혈연 단체 조직으로 모든 성원은 선대에 대해 효도할 의무가 있다. 모든 무쿤은 자신들의 공동묘지가 있는데 이를 '무안'이라고 한다. 씨족 성원이 죽은 후에 서열에 따라 무안 안에 매장한다. 만악 죽은 이가 있는 곳이 무안과 거리가 아주 멀면 잠시 사망지에 매장했다가 후에 반드시 뼈를 추려 무안에 매장해야 했다.

씨족장은 오로촌어로 무쿤다라고 한다. 무쿤다는 무쿤 성원의 선거로 정해지는데 그는 번드시 항렬이 높고 명망이 있어 일을 처리하는 데 공정하고 수렵 경험이 풍부해야 한다. 그는 씨족 중 어떠한 특권도 향유하지 않으며 다른 성원과 마찬가지로 노동에 참여하고 평균적으로 분배를 받는다. 무쿤다는 씨족의 명예와 이익에 손해가 되는 행위를 한 것이 발견되지 않으면 일반적으로 10년에 한 번 교체된다.[9]

무쿤이 오로촌족의 가장 기본적인 사회세포는 아니다. 무쿤은 여러 개의 우리린으로 조성되어 있다. 우리린은 오로촌어로 '후대', '자손'이라는 뜻이다. 즉, 가족 공동체를 말한다. 같은 조부의 후예로 사촌 형제를 포함하는 3~4대 사람으로 구성되며 자급자족하는 독립적인 경제단위이다. 그들은 함께 생산하고 소비하고 생산자원을 공유하며 가족을 이끄는 리더가 있어 통일적으로 관리된다.

우리린의 가장을 오로촌어로 타탄다라고 하는데 '타탄'은 '하나의 모닥불의 수령이라는 뜻이고[10] '다'는 '수령'이라고 한다. 타탄다라는 칭호는 가장의 형상을 잘 나타내는 단어로 우리린의 모든 성원은 함께 이동하고 하나의 모닥불을 둘러싸고 휴식을 취한다. 타탄다는 우리린에서 항렬이 가장 높은 사람이 담당한다. 항렬이 가장 높은 사람이 수렵 기술이 부족하고 무능하여 타탄다를 담당할 수 없을 때에는 동생이 대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직권은 같은 항렬의 사람에게 양보할 수는 있으나 절대로 항렬을 넘어설 수는 없다.

타탄다는 주로 우리린 내의 생산 분배, 생활 관리, 제사와 혼인을 주관하며 내부의 갈등을 처리하고 대와 교류와 무쿤다가 무쿤을 관리하는 데 협조한다. 타탄다의 아내는 일반적으로 우리린 전체를 관리하는 안주인으로 채집과 일체의 가사와 관련된 일들을 관리한다. 그녀는 다른 여자들을 지도하고 지배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11]

생산력이 계속적으로 발전함에 따라 우리린내에 일부일처제로 형성된 ‘주’ (柱)[12]는 소규모 가정으로, 중층의 혈연관계에 의한 속박을 원하지 않게 됐으며 점점 우리린에서 이탈하여 독립 생산, 독립 소비의 개체 경제단위가 됐다. 말, 총 등의 생산 재료와 생산용품은 각 가정의 사유재산이 되었으며 무쿤 혹은 우리린의 공동 소유가 아니게 되었다.[13]

개별적인 독립가정이 등장한 이후 우리린은 비록 생산과 소비를 함께 하는 대가정은 아니지만 여전히 농후한 혈연관계를 유지하였으며 많은 구속과 제약을 받았다. 혈연관계의 제약을 진정으로 벗어나기 위해 개인가정은 원래의 우리린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옮겨 가 다른 우리린에 가입하기도 했다. 따라서 우리린은 원래의 혈연관계의 유대를 중심으로 한 가족공동체에서 지연관계의 유대를 중심으로 한 지역 공동체로 변하였으며 원래의 '후대', '자손'이라는 의미는 '함께 거주하는 사람' 혹은 '그 사람들'이라는 의미가 되었다. 이것에 바로 오로촌족 최초의 촌락이다.

타탄다도 원래의 가족 수령에서 수렵생산의 조직자 또는 지도자로 변하게 됐다. 타탄다는 주로 수렵생산 중 수렵지의 구분, 수렵지의 지정, 노동의 안배, 수렵물의 분배 등을 책임지게 되었다. 따라서 항렬과 나이와 크게 상관없게 되었으며 풍푸한 수렵 경험과 높은 수렵기술, 강한 조직 능력, 사심 없는 공정한 처리 능력이 요구되었다. 이 시기부터 타탄다는 선거를 통해 선출하게 됐다. 청 제국 정부는 오로촌인이 거주하는 하류지역에 5개의 로를 설치하고 그 아래 8개의 좌(佐)를 두었는데 각 로에 협령공서(協頜公署)를 설치하고 행정사무를 통솔하게 하였다. 각 좌는 2개의 씨족을 포괄하며 좌령 한 사람을 두고 좌의 가장 높은 행정장관으로 그 아래 효기교(驍騎校, 만주어: ᡶᡠᠨᡩᡝ
ᠪᠣᡧᠣᡴᡡ
Funde Bošokū) 1인, 영최(領催, 만주어: ᠪᠣᡧᠣᡴᡡ Bošokū) 3인을 설치하였는데 이러한 행정장관은 모두 정부에서 오로촌족을 임명하여 담당하게 하였다.

이와 같이 씨족 내에 무쿤다와 좌령이 병존하는 상황이 발생해 행정상 무쿤다는 좌령의 지도를 받아야 하나 좌령이 만억 습관법을 어기면 무쿤다의 징벌을 받아아 했다. 무쿤다는 군중이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기에 그들은 정부로 부터 좌령 중 가장 최고의 사람으로 정해졌다. 이러한 무쿤다는 단순한 씨족 수령에서 많은 행정관원이 해야 할 직권이 첨가됐다.

개인가정이 대량으로 유동하여 씨족 성원이 다른 좌로 분산됨에 따라 무쿤다가 씨족을 관리하는 데 어려움이 발생했고 일부 씨족을 거주지에 따라 좌령이 통일적으로 관리하는 방법을 취하였다. 이로부터 원래의 최고의 권력을 가졌던 씨족다화와 무쿤다가 가지고 있던 사법적인 권리와 집행권은 좌령이 가져가게 됐으며 오직 무쿤다만 보관할 수 있는 신성한 족보는 각 좌의 호적관리부가 대신하게 돼 무쿤 조직과 지도는 역사적 사명을 다하였고 오로촌사에서 영원히 도태됐다.[14]

언어[편집]

오로촌족은 자신들의 언어가 있으나 문자가 없다. 오로촌어는 알타이 제어만-퉁구스어 퉁구스어지에 속한다. 이 지계에 속하는 언어로는 어웡키어, 나나이어, 시버어, 만주어 등이 있다. 역사와 환경적인 원인으로 인하여 언어의 사용 범위가 점점 더 좁아져 이 중 일부는 소멸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오로촌어는 과구 계속하여 반폐쇄적인 상태에 있었고 오로촌족은 하산하여 정착한 후에도 집단적으로 거주하였으며 언어 보존 정책의 시행으로 비교적 잘 보존되고 있다.

현재 만-퉁구스어 중 가장 완전한 모습으로 사용되고 있는 언어인 오로촌어는 현재 오로촌족 거주지에 거주하는 오로촌족 대부분이 오로촌어로 교류가 가능하다. 과거에 소수지역에서는 20세가량의 청넌들은 들을 수 있으나 말을 하지 못하고, 10세가량의 아이들은 말을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듣지도 못하는 상황에 1990년가 초부터 지방정부는 사라져 가는 오로촌어를 구조하기 위해 적극적인 정책을 실시하여 오로촌족 스스로 오로촌어를 학습하고 사용하는 사회 분위기를 형성하게 됐다.[15]

분포[편집]

오로촌족의 분포는 대략 17세기 중엽을 중심으로 전후 두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청 제국 정부의 초기 문헌 기록에 근거하면 오로촌족은 17세기 중엽 전에는 주로 바이칼호 동부, 흑룡강의 북부, 사할린섬 일대에 분포하였다. 그중 실카 강, 제야강, 뇨만강, 암군강 유역과 사할린 섬은 모두 오로촌족이 유렵생활을 하며 거주하던 곳이다. 그러나 비교적 집중적으로 거주한 곳은 제야강과 뇨만강 일대이다.

문헌 기록에 의하면 "암군강, 뇨만강 내지 제야강은 흑룡강과 환강(擐江) 좌우에서 합류하는데 거주민은 모두 오론촌(俄樂春, 만주어: ᠣᡵᠣᠨᠴᠣᠨ Oroncon), 키러르(奇勒爾, 만주어: ᡴᡳᠯᡝᡵ Kiler), 비랄(畢喇爾, 만주어: ᠪᡳᡵᠠᠯ Biral)에 속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서쪽의 실카강에서 동쪽의 녈위이하(涅威爾河)의 흑룡강 북쪽 일대는 주로 오로촌인의 활동 지역이며, 호마이하(呼瑪爾河)에 이르러 제야강과 뇨만강에 이르는 곳은 비랄인의 활동 지역이다.

비랄인의 족칭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제야강 지류인 비랄하 유역에 거주하여 얻은 이름이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뇨만강을 부례야하라고도 하는데, '부례야'는 오로촌어로 강이라는 뜻인 비라가 변한 것으로 비랄인은 부례야라는 말이서 기원하였다는 것이다. 암군하는 키러르인이 활동했던 지역이다. 사료에 "키러르는 키렁(奇楞, 만주어: ᡴᡳᠯᡝᠩ Kileng)이라고도 하며 닝구타 동북으로 2천 리에 있다...우수리강 입구부터 혼동강 남쪽에 이르며 동으로는 바닷가이 이른다."라는 기록이 있다. 흑룡강 하류에서 사할린 섬에 이르는 곳은 만혼(滿琿) 사람의 활동 지역이다. 사할린 섬의 아당길산(阿當吉山)은 섬의 약간 남쪽에 있는데 산의 남쪽은 오로촌족의 거주지이다. 17세기 중엽 제정러시아가 흑룡강 유역의 광활한 지역을 침략하기 시작하자 오로촌인은 다른 종족과 마찬가지로 생활에 있어 심각한 불편을 겪게 됐고, 일부는 흑룡강 남쪽으로 이동하였다. 러시아에서는 현지에 남은 오로촌족과 어웡키족을 통칭하여 에벤키(러시아어: Эвенки)라 하였다.

흑룡강 남쪽으로 이동한 오로촌인은 대소흥안령 일대에서 유렵하였는데 다섯 개의 지역으로 나뉘며 서로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후마하 유역과 그 부근 지역의 오로촌인은 쿠마르첸(庫瑪爾千)이라 하며, 슌비라하(遜畢拉河) 쿠르빈하(庫爾濱河), 우윤하(烏雲河), 자인하 유역 내지 그 부근이 오로촌인은 비랄첸(畢拉爾千)이라 한다. 아리하(阿里河) 유역과 그 부근으로 이동한 오로촌인은 아리첸이라 하고, 도부쿠르하(多布庫爾河) 유역과 그 부근으로 이동한 오로촌인은 도부쿠르첸이라 한다. 투하(托河) 유역과 그 부근으로 이동한 오로촌인은 투첸이라 한다. 청 제국 정부는 이들이 활동한 지역을 근거러 다섯개의 로(路)로 구분하였다. 후에 아리로와 도부쿠르로를 하나로 합쳐 아리부쿠르로라 하였다.

현재 오로촌족은 주로 내몽골자치구 후룬베이얼시오로촌 자치기자란툰시, 흑룡강성 대흥안령 지역의 타허현, 후마현, 헤이허시의 후이구, 쉰커현, 이춘시자인현 등지에 거주하고 있다.[16]

외부 링크[편집]

각주[편집]

  1. 한여우평; 우야즈; 관샤오윈. 《최후의 수렵민 어룬춘족》. 중국 동북지역 민족문화연구. 동북아역사재단. 30쪽. ISBN 9788936810979. 
  2. 장지우허. 《몽골인 그들은 어디서 왔나?》. 소나무. 35~36, 80쪽. ISBN 9788971395561. 
  3. 한여우평; 우야즈; 관샤오윈. 《최후의 수렵민 어룬춘족》. 중국 동북지역 민족문화연구. 동북아역사재단. 31쪽. ISBN 9788936810979. 
  4. 이강원, 《중국 변강에서 민족과 공간의 사회적 구성 : 어룬춘족 사회의 다민족화와 정체성의 정치》, 서울大學校 社會科學大學 地理學科, 2000,
  5. 牛素嫻(2006), 清初的「索倫」諸部 색륜(索倫)은 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솔론어를 사용하는 어웡키족의 한 갈래로 어웡키족, 다우르족, 오로촌족의 총칭이기도 했다.
  6. 한여우평; 우야즈; 관샤오윈. 《최후의 수렵민 어룬춘족》. 중국 동북지역 민족문화연구. 동북아역사재단. 33쪽. ISBN 9788936810979. 
  7. 한여우평; 우야즈; 관샤오윈. 《최후의 수렵민 어룬춘족》. 중국 동북지역 민족문화연구. 동북아역사재단. 45~47쪽. ISBN 9788936810979. 
  8. 한여우평; 우야즈; 관샤오윈. 《최후의 수렵민 어룬춘족》. 중국 동북지역 민족문화연구. 동북아역사재단. 49쪽. ISBN 9788936810979. 
  9. 한여우평; 우야즈; 관샤오윈. 《최후의 수렵민 어룬춘족》. 중국 동북지역 민족문화연구. 동북아역사재단. 50~52쪽. ISBN 9788936810979. 
  10. 만주어로 타탄(만주어: ᡨᠠᡨᠠᠨᡩᠠ Tatan)은 야외의 작은 집을 의미하는데 오로촌어 타탄은 여기에 해당하는 것 같다.
  11. 한여우평; 우야즈; 관샤오윈. 《최후의 수렵민 어룬춘족》. 중국 동북지역 민족문화연구. 동북아역사재단. 56~57쪽. ISBN 9788936810979. 
  12. 이강원, 《중국 변강에서 민족과 공간의 사회적 구성 : 어룬춘족 사회의 다민족화와 정체성의 정치》, 서울大學校 社會科學大學 地理學科
  13. 한여우평; 우야즈; 관샤오윈. 《최후의 수렵민 어룬춘족》. 중국 동북지역 민족문화연구. 동북아역사재단. 57쪽. ISBN 9788936810979. 
  14. 한여우평; 우야즈; 관샤오윈. 《최후의 수렵민 어룬춘족》. 중국 동북지역 민족문화연구. 동북아역사재단. 61~63쪽. ISBN 9788936810979. 
  15. 한여우평; 우야즈; 관샤오윈. 《최후의 수렵민 어룬춘족》. 중국 동북지역 민족문화연구. 동북아역사재단. 22쪽. ISBN 9788936810979. 
  16. 한여우평; 우야즈; 관샤오윈. 《최후의 수렵민 어룬춘족》. 중국 동북지역 민족문화연구. 동북아역사재단. 15~18쪽. ISBN 97889368109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