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수말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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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수말갈(黑水靺鞨)은 말갈족의 한 부족이다.

흑수말갈은 지금의 헤이룽장 성(黑龍江省) 지방에 거주하였다. 안차골부(安車骨部)의 동북에 있으며 현재의 동강(同江)에서 백력(伯力)까지의 흑룡강(黒龍江) 유역이다.

그들의 활동 지역은 지금의 솽야산(雙鴨山市), 자무쓰(佳木斯市), 허강 시(鹤崗市), 이춘(伊春市) 및 러시아 연해주하바롭스크 지방이며, 비킨(Бикин), 뱌젬스키 군(Вяземский), 라조 군(имени Лазо), 하바롭스크(Хабаровск) 등을 포함한다.

725년 당나라 안동도호부의 설태(薛泰)는 흑수말갈에 흑수주도독부를 설치한 뒤 그 수령을 도독으로 하고, 각 부 부족장을 자사(刺史)로 하였다. 후에 발해가 강성하게 되자 일부가 이에 복속하였다.

흑수말갈은 발해의 멸망 이후 거란족에 의해 여진족(女眞)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생여진(生女眞)과 숙여진(熟女眞)으로 분리되었다.


  • 말갈(흑수말갈)이란?

○동이열전 말갈 말갈은 고구려의 북쪽에 있다. 읍락마다 추장이 따로 있어 하나로 통괄이 되지 않는다. 모두 7종이 있는데, 그 첫째는 속말부(粟末靺)로서 고구려와 인접하여 정예의 병사가 수천 명으로 용감한 병사가 많아 늘 고구려를 침입하였다. 둘째는 백돌부로서 속말부의 북쪽에 있으며, 정예의 병사가 7천이다. 셋째는 안거골부로서 백돌부의 동북쪽에 있다. 넷째는 불열부로서 백돌부의 동쪽에 있다. 다섯째는 호실부로서 불열부의 동쪽에 있다. 여섯째는 흑수부로서 안거골부의 서북쪽에 있다. 일곱째는 백산부로서 속말부의 동남쪽에 있다. 이들은 모두 정예의 병사가 3천에 불과한데, 흑수부가 가장 굳세다. 불열부로부터 동쪽 지역은 화살을 모두 돌촉으로 사용하니 이곳이 바로 숙신씨의 땅이다 - <수서>권81, 동이열전 말갈

○동이읍루에 관한 기록 읍루는 부여에서 동북쪽으로 천 여리 밖에 있는데, 큰 바다에 닿아 있으며, 남쪽은 북옥저와 접하였고, 북쪽은 그 끝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그 지역은 산이 많고 험준하다. 사람들의 생기새는 부여 사람과 흡사하지만, 언어는 부여나 [고]구려와 같지 않다(부여와 비슷하고 언어는 각기 다르다). - <삼국지> 위서30 동이 읍루 / <후한서> 권85 동이읍루

○동이물길에 관한 기록 물길국은 고구려의 북쪽에 있으니, 옛 숙신국의 지역이다. 읍락마다 각각 우두머리가 있으며 하나로 통일되어 있지는 않다. 그들은 굳세고 흉폭하여 동이 중에서 가장 강하며, 언어도 그들 만이 다르다. 두막루 등의 나라를 항상 깔보며 여러 나라도 이들을 두렵게 여긴다. - <위서> 권100, 동이 물길 / <북사> 권94, 물길

○발해 건국자에 관한 두 기록(구/신당서) 발해말갈(渤海靺鞨)의 대조영(大祚榮)은 본래 고구려의 별종[高麗別種]이다. - <구당서> 권199하 북적, 발해말갈 발해는 본래 속말말갈로서 고구려에 부속된 자이니(발해본속말말갈부고려자대씨(渤海本粟末靺鞨附高麗者姓大氏), 성은 대씨大氏이다) - <신당서> 권219, 북적北狄, 발해전

○삼국사기의 말갈 온조왕 2년(B.C. 17) 정월에 왕이 군신들에게 말했다. "말갈이 우리의 북부국경과 인접하여 있는데, 그 사람들은 용맹스러우면서도 거짓말을 잘 한다." - <삼국사기> 권23 백제본기

(B.C. 37년) 시조 동명성왕은 성이 고씨이고 이름은 주몽이다. 그 땅이 말갈 부락에 잇닿아 있어 침입하여 훔쳐 피해를 입을까 두려워하여 마침내 그들을 물리치니, 말갈이 두려워 복종하고 감히 침범하지 못하였다. - <삼국사기> 권13 고구려본기 시조 동명성왕조

○고구려 이타인 묘지명의 36부 말갈 사례 그 때에 공(이타인)은 "책주(책성주) 도독 겸 총 병마관 12주 고구려통 37부말갈"을 제수받았다.

○말갈로 불리었던 고구려인(안시성 주민) (고구려 보장왕 4年:645) 당왕이 안시성에 진군하여 치니, 북부 욕살 고연수(高延壽)와 남부 욕살 고혜진(高惠眞)이 아군과 말갈병 15만을 거느리고 안시를 구하려 하였다. [중략] 연수와 혜진은 그 무리 3만 6천 8백명을 거느려 항복을 청하고 군문(軍門)에 들어와 엎드려 절하며 명을 청하였다. 당왕이 욕살 이하 관장(官長) 3천 5백명을 가려서 [당의] 내지로 옮기고 나머지는 모두 놓아 평야으로 돌아가게 하고, 말갈 사람 3천 3백명은 거두어서 모두 구덩이에 묻어 죽였다. - <삼국사기> 권21, 고구려본기9 상

○구당서의 고구려와 말갈 연수[高延壽]와 혜진[高惠眞]이 15만 6천 8배명을 거느리고 항복을 청해 오자, 태종은 우마출입구[轅門]로 인도하여 들였다. 연수 등은 무릎으로 기어 앞에 나아가 절을 하고 명을 청하였다. 태종은 욕살 이하 추장 3천 5백명을 가려내어 군직을 주어서 내지로 옮겼다. 말갈사람 3천 3백명은 모두 구덩이에 파묻고, 나머지 무리들은 평야로 돌려 보냈다. - <구당서> 권 199상, 동이열전, 고려

⊙말갈(흑수말갈)이란?

1) 흑수말갈을 가르키는 종족명(보통 같다고 칭하지만 말갈과 흑수말갈은 별개라는 이론도 있음)

2) 왕조 변방의 불특정의 반독립적 세력을 지칭

3) 남만주 지역의 주민을 넓게 통칭한 종족명

4) 발해국을 낮추어 부르는 왕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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