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수말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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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수말갈(黑水靺鞨)은 말갈족의 한 부족이다. 이들의 거주지는 흑룡강 주변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흑수말갈 유적은 대단히 많이 조사되었다. 대표적인 유적으로 러시아 원동(遠東) 지구인 흑룡강 중하류 지역에 있는 나이펠트(乃伊費尒德) 고분군, 수빈(綏繽) 동인유적(同仁遺蹟), 몽북(夢北) 단결묘장(団結墓葬)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나이펠트 고분군은 1960년부터 1961년에 걸쳐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는데, 토광수혈봉토묘가 모두 40기였다. 이 유적은 6세기 말에서 7세기 초에 조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측에서 조사한 대표적인 흑수말갈 관련 유적인 동인유적은 흑룡강성 수빈현에 있는데 1972년에 발굴했다. 이 문화는 두 개의 분기로 나뉘어진다. 동인 1기는 남북조에서 당초, 동인 2기는 오대에서 요에 이르는 시기에 해당한다. 유물로는 도기, 칼, 낫, 자귀, 화살촉 등의 철기가 있다. 그러나 석기가 더 많고 철기는 보편적이지 않다. 거주지는 반지하식이다. 문은 동으로 향해 있고, 화덕은 중간부에서 약간 서쪽으로 치우친 곳에 있었다.

몽북 단결묘장은 1982년 8월에 가목사시(佳木斯市) 문물관리참에서 조사를 진행했다. 무덤 가운데 3기를 시굴해서 도기와 철기 등 표본 20여 개를 획득하였다. 그리고 다음 해인 1983년 가을에 흑룡강성 문물고고공작대에서 이 묘지를 정식 발굴했다. 10기의 무덤을 발굴, 조사했는데 모두 장방형 수혈토갱묘였다.

남아 있는 인골을 관찰한 결과 1인장도 있고, 2인장도 있으며, 1차장인 무덤과 2차장이 이루어진 무덤이 있었다. 또 반수 정도의 무덤에는 목탄 흔적이 남아 있었는데, 이는 화장으로 인한 결과물인 것으로 보고 있다. 확인된 무덤 가운데 반 정도에서는 묘실의 한 면 혹은 다리 부분에 있는 생토대 위에 대형 토기가 놓여 있었다. 이 유적에서는 도기, 철기 등 백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 가운데 토기는 모두 손으로 빚어 만든 것으로 태토는 모래가 섞인 진흙이었으며, 황갈색 혹은 회갈색을 띠고 있었다.

이 유적의 문화 특징을 보여 주는 가장 대표적인 토기는 반구세경심복대관(盤口細頸深腹大罐)이다. 이는 1973년 흑룡강성 수빈 동인유지 하층에서 발굴, 출토된 것과 그 풍격이 거의 일치한다. 이런 점에서 동인유적 하층과 몽북 단결묘장은 같은 고고 문화에 속하는 것으로, 전자는 취락 유적이고 후자는 고분 유적임을 알 수 있다. 유적 연대는 지금으로부터 약 1500년 전으로, 즉 남북조와 수·당 사이에 해당한다. 이와 같은 성격의 유적은 러시아 경내 흑룡강 중하류 연안에서 많이 발견된다.[1]

흑수말갈로 소급되는 나이펠트 그룹은 7세기 말에는 제야–부레야 저지대에 출연했던 흔적이 발견된다.[2] 러시아의 학자 O.V.디야꼬바는 서기 8세기 경 발해국의 형성 및 이웃 지역에 대한 발해의 정복정책과 관련하여 흑수말갈-나이펠드 그룹 주민들이 서아무르 지역으로 이주를 하게 된 것이라 해석하였다.[3] 서아무르 유역의 흑수말갈은 제야 강과 부레야 강 사이의 저지대를 장악하였고 이곳에 노보페드로브카 무덤유적, 샤프카 무덤유적, 우스치-탈라칸 계절유적, 자비친스키 무덤유적, 세르게옙스키 무덤유적, 쿠프리야노보 무덤유적, 샤프카 산 주거유적 등의 유적을 남겼다.[4]

신당서》 흑수말갈전에는 당 태종고구려를 공격할 때, 그 북부가 반기를 들고 고구려와 합세하였으며[5] 고혜진 등이 무리를 이끌고 안시성을 도울 때, 매번 싸움마다, 말갈을 항상 앞에 두었다.[6] 당 태종이 안시(성)을 깨뜨리고, 고혜진을 사로잡고는, 말갈 병사 3천여명을 모두, 묻어서 죽였다고 한다.[7][8] 이후 당군이 평양성을 함락하자, 백산부의 대부분은 당나라로 들어갔고, 백돌부, 안거골부 등도 모두 분산되어 점차 그 세력이 미약하여져 뒤에는 활동이 알려지지 않았으며, 유민들은 뿔뿔이 발해로 들어갔다. 오직 흑수부만이 완강하여 땅을 16부락으로 나누고 남부와 북부로 일컬었으니, 이는 그 위치가 가장 북쪽이기 때문이었다.[9]

이렇게 고구려 세력권에 있던 말갈제부가 분산·해체되는 가운데 끝까지 세력을 유지하던 흑수말갈은 고구려 멸망과 안동도호부의 관할영역 축소라는 공백을 틈타 속말수 일대로 남진하였고, 동북지역의 요충지인 신성에 있던 안동도호부는 자체적으로 토벌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이다조[주 1]가 출정하여 흑수말갈을 격퇴하였다.[10][11]

흑수말갈은 한때 발해에 귀속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독립을 추구하였다. 발해와 흑수말갈의 관계는 발해의 발전시기에 따라 서로 다른 양상을 보이기는 하지만 발해 건국 초기에는 우호적인 관계였다가 후에는 발해에 귀속되었으며,[12] 발해 말기 혼란한 상황 속에서 일부가 지금의 함경도 지역까지 남하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886년에 적국인(狄國人)[주 2] 이들 중 보로국(寶露國)[주 3]과 흑수국(黑水國)[주 4] 이 신라와 화친을 맺을 것을 요청했으며,[13] 921년에는 고자라(高子羅) 및 아어한(阿於閒)은 그 무리를 이끌고 고려에 귀화했다.[14]

11세기에도 1017년 흑수말갈(黑水靺鞨)의 아리불(阿離弗) 등 6인이 고려에 내투하자, 강남(江南)의 주현(州縣)에 나누어 살게 하였고,[15]1064년에는 흑수말갈(黑水靺鞨)의 포기(抛棄) 등 8인이 내투하였다.[16] 여진족은 흑수말갈 사이에서 출연했고,[17] 거란의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여진 부락들이 발해인과 연합하여 거란을 위협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었다. 거란의 군주는 여진을 약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처음에 야율아보기는 여진이 우환거리가 될까 염려해서 그들 중 강종대성(强宗大姓) 수천 호를 요양의 남쪽으로 이주시켜 요 호적에 올린 자들을 합소관(合蘇館)이라고 했는데 이들이 이른바 숙여진이다. 또한 송화강 이북 및 홀한강 유역에서 동부 해안까지 많은 여진 부락이 분포하고 있었다. 거란이 발해를 멸망시킨 후 동북 변경의 여진 부락이 잇달아 귀부해왔으나 그들을 호적에 편입시키지 않고 송화강 부근에 성보를 창건하면서 기미의 방법으로 그들을 통치했다. 이들은 생여진이라 불렀다.[18]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김현숙 (2005). 《고구려의 영역지배방식 연구》. 모시는사람들. 438~479쪽. ISBN 9788990699305. 
  2. 홍형우, 《서(西) 아무르 지역 말갈(靺鞨) 토기의 특성과 그 전개 : -최근 발굴 유적을 중심으로》, 한국상고사학회
  3. 정석배, 《아무르ㆍ연해주 지역의 말갈 - 연구현황과 과제》, 고구려발해학회
  4. 므일니꼬바 L.N., 네스쩨로프 S.P. / 정석배 옮김, 「西아무르 유역의 말갈 뜨로이쯔끼 그룹 토기와 민족문화사」, 『고구려발해연구』 32집, 고구려발해학회, 2008, 249쪽, 257쪽.
  5. 帝伐高麗,其北部反,與高麗合
  6. 高惠真等率衆援安市,每戰,靺鞨常居前
  7. 帝破安市,執惠真,收靺鞨兵三千餘,悉坑之)
  8. 《新唐書》 권 219 列傳第一百四十四 北狄/黑水靺鞨, 6178쪽
  9. 《新唐書》 권 219, 列傳 144, 北狄 黑水靺鞨.
  10. 《新唐書》 권110, 列傳35, 李多祚, 至多祚 驍勇善射 以軍功累遷右鷹揚大將軍 討黑水 靺鞨 誘其渠長 置酒高會 因醉斬之 擊破其衆 室韋及孫萬榮之叛 多祚與諸將進討 以 勞改右羽林大將軍 遂領北門衛兵
  11. 김종복, 《高句麗 멸망 전후의 靺鞨 동향》, 북방사논총 5호
  12. 동북아역사재단 (2007). 《발해의 역사와 문화》. 동북아역사재단. 171~172쪽. ISBN 9788961870177. 
  13. 《三國史記》 新羅本紀第11 憲康王 12年 봄, 北鎭奏 狄國人入鎭 以片木掛樹而歸. 遂取以獻 其木書十五字云 寶露國與黑水國 人 共向新羅國和通.
  14. 한성주, 《고려시대 東女眞·東眞兵의 강원지역 침입에 대하여 -‘東女眞 海賊’의 침입을 중심으로-》, 인문과학연구 30
  15. 고려사》 卷 4 世家 卷第 4 顯宗 8年 8월, 甲午 黑水靺鞨阿離弗等六人來投, 分處江南州縣.
  16. 《고려사》 卷 8 世家 卷第 8 文宗 18年 12월, 契丹高奴等三人, 黑水包棄等八人來投.
  17. Crossley, Pemela Kyle. 《만주족의 역사》. 돌베게. 53~54쪽. ISBN 9788971995310. 
  18. 나영남. 《요·금시대 이민족 지배와 발해인》. 외대 역사문화 연구총서. 신서원. 104~105쪽. ISBN 9788979405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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