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말말갈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속말말갈(粟末靺鞨)은 말갈의 한 부족이다. 반농반수렵(半農半狩獵)을 주로 한 것으로 보인다.

물길이 차지한 옛 부여 지역의 송화강 일대에 거주하는 물길 7종 하나인 속말말갈은 숙신계에 일부 예계가 혼합 되어있었고, 자주 고구려를 약탈하다가 581년~600년에, 고구려와의 싸움에서 패배하여, 복속되었다. 이때 속말말갈 궐계부(厥稽部)의 만돌[1]과 그의 동생 돌지계는 홀사래부(忽賜來部)·굴돌시부(窟突始部)·열계몽부(悦稽蒙部)·월우부(越羽部)·보호뢰부(步護賴部)·파해부(破奚部)·보보괄리부(步步括利部) 등 8부의 정예병 수천여 명을 이끌고, 부여성 서북으로부터 부락을 거느리고 관새를 향하여 수나라에 내부하였다. 조양에서 출토된 토우 2점의 족속을 속말말갈로 추정하기도 한다.

668년, 신라당나라 군대가 고구려를 멸망시키자, 이에 고구려의 신민이었던 속말말갈도 당나라의 영주(營州)로 이주당했다. 696년 영주에서 이진충(李盡忠)이 당나라에 반기를 들자 속말말갈 추장이자 고구려의 유장이었던 걸걸중상[2]걸사비우가 지도하는 말갈인들과 함께 고구려 유민들을 이끌고 영주를 탈출했고, 걸걸중상이 병사하자, 아들 대조영이 추장직을 세습하여 고구려 유민과 말갈인을 이끌고 읍루동모산을 차지하여, 진국을 건국하였고, 국호를 발해로 바꾸었다.[3]

속말말갈 지도자[편집]

같이 보기[편집]

  • 북사》,《신당서》등에 따르면, 말갈의 추장을 대막부만돌이라고 하는데, 《책부원귀》에서 돌지계의 형으로 언급되는 만돌과 동일한 것으로 보이고, 일부 학자들은 만주와 어원이 동일하다고 추측하고 있다.
  • 일각에서는《통지》에서 당 고종 시기의 장수인 사리아박(舍利阿搏)의 예를 들며 걸걸중상은 사리부(舍利部)의 추장족(酋長族) 사리씨(舍利氏)가 대(大)씨의 본래 성씨라고 한 것을 근거로 삼아 걸걸중상을 속말말갈 사리부의 추장으로 보고있다.
  • 신당서》에는 발해 대씨를 고구려에 부속되있던 속말말갈인으로 설명하고 있고, 《구당서》에는 발해말갈대조영이 고구려의 별종이라고 기록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