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 고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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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고왕 대조영(渤海 高王 大祚榮, ? ~719년 6월 재위: 698년~719년 6월)은 남북국 시대(南北國時代)는 발해(渤海)의 초대 으로, 걸걸중상(乞乞仲象)의 아들이다.

고왕(高王)과 발해(渤海)에 관해 중국 측 기록인 《구당서》(舊唐書)에서는 발해(渤海) 말갈의 대조영(大祚榮)은 고(구)려의 별종으로[1] 서술하고 있다. 《신당서》(新唐書)에서는 고려(高麗)에 내부한 속말 말갈족(粟末 靺鞨族)이라고 서술되어 있다.[2]

한국 측 기록인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인용된 《신라고기》(新羅古記), 《제왕운기》(帝王韻紀)에서는 대조영(大祚榮)을 고구려(高句麗) 장수라고 기록하였다.

생애[편집]

고구려 무장[편집]

당시 고구려(高句麗)는 연개소문(淵蓋蘇文)이 사망한 직후 그의 세 아들인 연남생(淵男生)과 연남건(淵男建), 연남산(淵男産)의 권력 다툼을 벌였다. 결국 권력 다툼에서 밀려난 연남생(淵男生)은 당나라(唐羅羅)에 망명했다.

당나라(唐羅羅)는 667년 연남생(淵男生)을 앞세워 고구려(高句麗)를 침공하였다. 최고 권력자였던 연남생(淵男生)의 합류로 고구려(高句麗)는 크게 무너져 당나라(唐羅羅)는 파죽지세로 평양성(平壤城)은 으로 진격했다. 결국 668년 평양성(平壤城)이 함락되고 고구려(高句麗)는 멸망하였다.

고구려 부흥 운동과 발해 건국[편집]

고구려(高句麗)가 멸망한 후 옛 고구려(高句麗) 영토에는 당나라(唐羅羅)가 통제하는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가 세워지고, 남아있던 고구려(高句麗) 세력 또한 671년 안시성(安市城) 함락을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당나라(唐羅羅)는 고구려(高句麗) 유민 분산 정책에 따라 유민을 여러 지역으로 끌고 갔는데, 이때 걸걸중상(乞乞仲象) 대조영(大祚榮) 부자도 고구려(高句麗) 유력층으로 분류되어 영주(榮州)로 끌려가게 되었다.)

한편, 696년 영주(榮州)에서는 당나라(唐羅羅)의 지나친 억압 정책에 대한 거란족(契丹族)의 반란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생겨난 혼란을 틈타 고구려(高句麗) 유민의 지도자 걸걸중상(乞乞仲象)과 말갈의 족장 걸사비우(乞四比羽)는 영주(唐羅)에서의 이탈을 감행했고, 측천무후(側天武后)의 회유책에도 불구하고 동쪽으로 이동, 당의 장수 이해고(李偕固)가 이끄는 당나라(唐羅羅)의 추격군과 전투를 벌였다.

이 때 걸사비우(乞四比羽)와 걸걸중상(乞乞仲象)이 죽고, 대조영(大祚榮)은 남은 고구려(高句麗) 유민과 속말말갈(粟末靺鞨)을 이끌게 되었다. 대조영(大祚榮)은 698년 천문령 전투(天門嶺戰鬪)에서 당나라(唐羅羅)의 추격군을 격파해 승리하고 동모산(東牟山) 지린 성(地隣成) 돈화(敦化) 부근)에서 발해(渤海)를 건국하였다. 당의 북진 정책을 위협하던 돌궐(突厥)과 손을 잡아 대당 견제세력을 구축했다.[3]

치세[편집]

국제 관계[편집]

대조영(大祚榮)은 705년에 당(唐)과 화친하였고, 713년, 당나라(唐羅羅)는 고왕(高王)을 좌효위대장군 발해군왕(座孝位大將君 渤海 君王) 홀한주도독부도독(忽汗州都督府都督)으로 명목상 책봉하였다. 719년, 고왕(高王)이 붕어한 뒤 그의 아들 무왕(武王)가 왕위를 이었다. 당나라는 발해(渤海)를 고립시키고자 하였으나, 오히려 고왕(高王)은 돌궐(突厥)과 동맹 관계를 형성하며 고립 관계에서 벗어나고자 하였다. 이는 발해(渤海)의 세력이 건국 초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해졌음을 의미한다.

700년에는 발해(渤海)가 신라(新羅)에 사신을 파견하기도 했다. 신라(新羅)와의 관계는 나쁘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친밀한 것도 아니었다. 신라(新羅)의 유학자 최치원(崔致遠)은 "발해(渤海)의 왕인 고왕(高王)이 신라(新羅)와 수교를 맺고 싶어 사람을 보냈는데, 효소왕(孝昭王)이 이를 기특하게 여겨 고왕(高王)에게 대아찬(大阿飡)이라는 관작을 하사하였다"라는 기록을 사불허북국거상장, 《동사강목》(東史綱目)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신라(新羅)와 발해(渤海)는 당시 몇 차례 교류가 있었으나 친선적인 관계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이는 첫째로 양국이 그 무렵에는 국경을 접하고 있지 않아 직접적인 접촉이 없었다. 신라(新羅)와 발해(渤海)가 본격적으로 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은 8세기 초반에 발해(渤海)가 본격적으로 고구려(高句麗)의 후예임을 자처하고 양국이 함흥(咸興) 일대에서 직접 국경을 접하면서부터이다.[4]

가계[편집]

  • 아버지 : 걸걸중상(乞乞仲象, ? ~698)
  • 아들 : 무왕(武王, ? ~737, 재위:719~737)
  • 아들 : 대문예(大門藝)
  • 아들 : 대창발가(大昌勃價)

관련 작품[편집]

드라마[편집]

기타[편집]

대한민국 해군충무공이순신급 구축함의 제3번함의 이름은 '대조영함(ROKS DDH 977)'이다.

경산시 남천면 송백2리 발해 마을에서는 매년 춘분에 발해 고왕 대조영의 제사가 행해진다.

참고[편집]

함께 보기[편집]

각주[편집]

  1. 구당서》(舊唐書),「渤海靺鞨大祚榮者 本高麗別種也」
  2. 신당서》(新唐書),「渤海,本粟末靺鞨附高麗者。姓大氏」
  3. 서병국 (2005년 1월 25일). 《발해제국사 (서해역사책방 11)》. 서해문집. 416쪽. ISBN 89-7483-242-9. 
  4. 《통일신라의 북방진출 연구》(2001), 조이옥

외부 링크[편집]

전대
아버지 걸걸중상
제1대 발해 국왕
698년 - 719년
후대
장남 발해 무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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