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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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족
만주어: ᠮᠠᠨᠵᡠ
인구 약 1,068만 명
거점 중화인민공화국 중화인민공화국
홍콩 홍콩
마카오 마카오
중화민국 중화민국
미국 미국
캐나다 캐나다
일본 일본
러시아 러시아
언어 만주어, 중국어
종교 샤머니즘, 불교, 조상 및 하늘숭배
관련민족 허저족, 시버족, 퉁구스 민족
건륭제의 만주족 시위 (1760)
중국 베이징의 자금성에 있는 건청문(乾淸門) 현판. 왼쪽에는 한자, 오른쪽에는 만주문자로 적혀 있다.

만주족(滿洲族, 만주어: ᠮᠠᠨᠵᡠ Manju Mukūn) 또는 만족(중국어 간체자: 满族, 정체자: 滿族, 병음: Mǎnzú)은 만주(중국 동북부; 랴오닝 성, 지린 성, 헤이룽장 성), 연해주에서 발상한 퉁구스계 민족으로 중국 내 55개 소수민족 중 하나이다. 여진족의 후신으로,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를 계승하여 새로운 금나라를 건국하였고, 원나라의 전국옥새를 얻은 뒤 계승의 의미로 청 제국을 건국하였다. 본래 만주의 한자는 ‘滿珠’, ‘滿洲’ 등이 있으머, 만주어의 민족명 Manju의 차음이다. 만주족은 대대로 동북지역에 살았으나 여러 가지 역사적인 원인으로 지금은 거의 전국 각지에 분포되어 있다. 2000년, 중국에 1,068만 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주요 분포 지역은 동북 3성으로 7,185,461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그중 랴오닝 성이 4,952,859명으로 가장 많다.[1]

과거에는 만주어를 일상어로 사용하고 있었지만, 청 제국 시대에 진행된 만주어의 한화(漢化)로 인해 현재는 만주어의 사용 인구는 오히려 감소하여 극소수에 불과하고, 거의 대부분 중국어를 사용한다.

현재 신장 웨이우얼 자치구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인 시버족은 건륭제 시대에 중국 원정군으로 참가하여 정착한 만주족의 후예이지만, 스스로 만주족과는 다른 별개의 민족으로 간주한다.

역사[편집]

후금의 두번째 군주인 천총한이 1635년 음력 10월 13일, 조서를 내려 오랫동안 자신들을 지칭해온 용어였고, 누르가치가 통치하던 시기에도 건주여진을 가르키거나 해서여진까지 포함하는 여친의 총칭으로 빈번하게 된 용어인 주션(諸申, 만주어: ᠵᡠᡧᡝᠨ Jušen)이라는 족명을 자신들과 상관없는 시버족의 챠오 머르건(超墨爾根, 만주어: Coo Mergen)의 후예를 이르는 망령된 족명이라 왜곡하여 금지하고, 족명을 만주(滿洲, ᡠ Manju)로 개칭했다. 이후 유권점 만주문자로 기록된 사료들에서 여진을 주션 대신 뉘즈(만주어: ᠨ Nioi Jy)로 기재했다.

원문
天聰九年十月庚寅諭曰 「我國原有滿洲、哈達、烏喇、葉赫、輝發等名。向者無知之人,往往稱爲諸申。夫諸申之號乃席北超墨爾根之裔,實與我國無涉。我國建號滿洲,統緖綿遠,相傳奕世。自今以後,一切人等,止稱我國滿洲原名,不得仍前妄稱。」

— 청태종문황제실록

해석
천총(天聰) 9년(1635년) 10월 경인일에 유지(諭旨)하여 말하기를, "우리나라는 원래 만주와 합달 및 오라와 엽혁 및 휘발 등의 이름이 있었다. 이전에는 무지한 자들이, 왕왕 제신(諸申)이라 칭하였다. 대저 제신(諸申)의 호는 곧 석북(席北)의 초묵이근(超墨爾根)의 자손이니, 실로 우리나라와 더불어 관계가 없다. 우리나라는 만주(滿洲)라는 국호를 만들어, 한 갈래로 이어온 계통의 이어져 내려온 시간이 오래되었고, 혁세(奕世)에 대대로 서로 전하였다. 이제부터 이후, 일체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원래 명칭인 만주라 칭해야 할 것이며, 거듭 전의 망칭을 얻지 못하게 할지어다."

숭덕제가 밝힌 개칭의 이유는 의도적으로 왜곡된 것이고, 그 외에 다른 이유를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진짜 이유를 추정의 영역에서 찾아야한다. 일반적으로 주션이라는 용어의 이미가 변했기 때문에 이 명칭을 계속 족명으로 사용하기 어려웠다는 주장인데, 본래 주션은 사회의 상류 계층인 '이르건(Irgen)'과 노예인 '아하(Aha)'의 중간에 있는 일반 인민을 가르키는 용어이기도 했고, 누르가치의 정복전쟁이 지속됨에 따라 포로가 된 수많은 일반 백성인 '주션'이 노예화되면서 주션이라는 의미가 담기게 되었으며, 따라서 만주로 족명을 개칭했다고 한다.

하지만, 숭덕제여진족, 몽골족, 한족이 공존하는 새로운 국가 모델을 필요로 하면서, 동시에 통일 전 다양하게 존재했전 여진을 융합시켜야 하는 이중의 고민을 맞게된 상황을 고려하면, 숭덕제는 주션이라는 명칭을 폐기함으로써 그 이름에 묻어있는 과거의 상쟁의 기억, 특히 건주여진해서여진의 상쟁의 기억을 일소하고, 만주만을 사용함으로써 여진을 새로운 이름 이래 하나로 통합하고자 하는 의도였다는 학설도있고[2], 일찍이 말갈 시대부터 관직 또는 족장의 칭호로서의 요소가 있었던 만주에서 유래한 이만주의 이름은 건주연맹의 적법한 족장으로서 그의 지위를 보여주는 작위였는데, 누르가치의 조상들이 1400년대에 이만주로부터 권력을 빼앗은 후에, 명나라가 만주라는 작위를 전체 민족을 지칭하는 것으로 오인했고 이후에, 숭덕제의 정책에 의해 법제화 되었는지도 모른다는 학설도 있으며, 말갈 시대부터 족장을 가르키는 고대의 용어와 약간의 어원적 연관성이 있었던 만주를 국가 내의 지배민족 규정을 위해 차용했다는 학설도 있다.[3]

만주국[편집]

1931년에 일제만주국 괴뢰 정부를 수립하고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선통제(아이신기오로 푸이)를 황위에 앉힌다. 이때 이미 만주에서 한족의 인구가 만주족의 인구를 압도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만주족들 사이에서도 이 계획은 민족적 반향을 얻지 못했다. 만주국은 제2차 세계 대전의 종전과 함께 사라졌으며 만주국의 강역은 잠시 중화민국에게 넘어갔다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에 속하게 되었다.

언어[편집]

주로 퉁구스어족에 속하는 만주어를 사용하였다. 하지만 현대에는 만주어를 구사할 줄 아는 인구는 수천 명으로 극히 적고[4], 모국어로 사용하는 인구는 더욱 적어 약 10명에 불과하다.[5]

더 보기[편집]

각주[편집]

  1. (http://www.chinabang.co.kr/minzu/man.htm 중국의 어제와 오늘)
  2. 이훈(2018), 《만주족 이야기》, 너머북스, 149~157쪽
  3. Pemela Kyle Crossly, 《만주족의 역사》, 돌베게, 339~340쪽
  4. China News (originally Beijing Morning Post): Manchu Classes in Remin University (Simplified Chinese)
  5. “UNESCO Atlas of the World's Languages in Danger”. 2015년 10월 27일. 

참고 자료[편집]

  • 이성호 (1985년). 《古代 滿洲族의 硏究》. 淸州大學校. 
  • 김재선 (1998년). “韓民族과 滿洲族의 淵源 연구(The study of the origin of Han people and Manju people)”. 《大眞論叢》. Vol.6. 
  • 徐大錫 (1992년). “한국 신화와 만주족 신화의 비교 연구”. 《古典文學硏究》. Vol.7. 
  • 임계순(任桂淳) (2000년). “청사 - 만주족이 통치한 중국(淸史- 滿洲族이 통치한 中國)”. 《中國史硏究》. Vol.11 (No.1).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