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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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야 하라(여진어: Wo-on gia-an.png Wo-on (g)ia-an, 만주어: ᠸᠠᠩᡤᡳᠶ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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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nggiya Hala, 중국어 정체자: 完顔氏, 병음: Wányán Shì 완안씨[*])는 왕가씨(王家氏), 왕얀 하라(만주어: ᠸᠠᠩᡤᡳᠶᠠ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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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nggiyan Hala)라고도 한다.[1] 여진족의 씨족 중 하나로 시버족만주족의 성씨이다.

요나라를 멸망시키고 여진 제국 금을 건국한 완안아골타

요나라 말기에 복간수 완안부는 아무르 강의 배수지역인 하얼빈 시 아청 구일대에 거점을 두고 살았다. 그들은 요나라의 지배를 받지 않던 생여진의 일부였다. 1115년 완안 아골타가 본거지에 있는 안출호수(按出虎水, (여진어: Anʧu-bira, 만주어: Alcuka Bira)를 따라 국호를 금(金, 여진어: Antʃun, 만주어: Aisin)이라고 지어 여진 제국을 창건하였다.

몽골이 화북(華北)까지 남하하여 중도(中都)가 위협에 빠지자 1215년, 금 선종은 배상금 지불 및 금 위소왕의 딸 기국공주(그림 속의 왼쪽 바로 앞 인물)와의 결혼을 제안하며 항복의 뜻을 밝혔고 칭기즈 칸은 이를 받아들이고 막북(漠北)으로 돌아갔다. 《사집(史集)》

1234년, 금나라몽골족에게 멸망당하자, 여진족은 다양한 운명에 맞닥뜨렸다. 수많은 여진족은 금대 만주 지역에 머물렀고, 계속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생활했다. 또 일부 여진족은 중국 북부로 이주한 상태였는데, 이 중에서 일부는 한족 동화되어, 몽골족으로부터 한족 취급을 받았다. 일부 사람들은 중국에 머물든 만주로 돌아갔든 간에 여전히 몽골족에게 여진족으로 인식되었다. 그 결과 만주 지역의 여진족은 금 황실문화와 제도로부터 소외되었고, 몽골족이 세운 원나라로부터 가벼운 정치적 영향력을 받으며 이전의 만주 지역 관습에 따라 생활했다.[2]

여진의 주요 부족의 인구 이동이 일단락된 것은 16세기 초중반이었다. 이 시기에 여진은 건주여진, 해서여진, 야인여진으로 구분되었다. 건주여진은 압록강(만주어: ᠶᠠᠯ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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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lu Ula의 북쪽으로 혼하(渾河, 만주어: ᡭᠣᠨᠡᡭᠠ
ᠪᡞᠷᠠ
Hunehe Bira) 상류부터 동가강(佟佳江, 만주어: ᡨᡠᠩᡤᡳᠶ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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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nggiya Ula)에 걸쳐 거주했는데, 왕야 부족은 후너허(渾河, 만주어: ᡭᠣᠨᠡᡭᠠ Hunehe)·동오(董鄂, 만주어: ᡩᠣᠩᡤᠣ Donggo)·숙수후(蘇克素滸, 만주어: ᠰᡠᡴ᠋ᠰᡠᡥᡠ Suksuhu)·저천(哲陳, 만주어: ᠵᡝᠴᡝ Jecen)·주셔리(朱舍里, 만주어: ᠵᡠᡧᡝᡵᡳ Jušeri)·너옌(訥殷, 만주어: ᠨᡝᠶᡝᠠ Neyen)과 함께 건주여진을 구성했다.[3]

계보[편집]

금덕제(金德帝 完顏烏魯) :금시조 함보(金始祖 函普)의 장남 : 완안오로

  • 금안제(金安帝 完顏跋海) :완안 발해
    • 금 헌조(金獻祖 完顏綏可) 완안 수가
      • 금소조(金昭祖 完顏石魯) 완안 석로

각주[편집]

  1. 태조무황제실록(太祖武皇帝實錄), 時有王家部內一酋,名孫扎七光滾,謁太祖曰:「吾曾被瓮哥落處人所擒,乞貝勒助一旅之師,為我雪仇。」
  2. Crossley, Pemela Kyle. 《만주족의 역사》. 돌베게. 59쪽. ISBN 9788971995310. 
  3. 이훈. 《만주족 이야기》. 너머북스. 21쪽. ISBN 9788994606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