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위종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이위종
李瑋鍾
Владимир Сергеевич Ли
Hague Secret Emissary Affair.jpg
프랑스 주재 대한제국 공사관 예하 서기관
임기 1902년 7월 18일 ~ 1902년 9월 3일
군주 대한제국 고종 이형 대한제국 군주
대통령 에밀 루베 프랑스 대통령
독일 제국 주재 대한제국 공사관 예하 참서관
임기 1902년 9월 3일 ~ 1902년 9월 6일
군주 대한제국 고종 이형 대한제국 군주
주석 니콜라이 2세 러시아 군주
러시아 제국 주재 대한제국 공사관 예하 3등 참서관
임기 1902년 9월 6일 ~ 1905년 9월 6일
군주 대한제국 고종 이형 대한제국 군주
주석 니콜라이 2세 러시아 군주
신상정보
출생일 1884년
출생지 조선 한성부
사망일 ?
사망지 ?
거주지 대한제국 한성부
독일 제국 베를린
러시아 제국 상트 페테르부르크
소련 모스크바
경력 대한제국 외교관 출신
정당 무소속
부모 이범진(부)
형제 이기종(형)
배우자 옐리자베타 노옐케(Elizabeta Noelke)[1]
자녀 3녀
친인척 이경하(조부)
이범윤(7촌 숙부)
서훈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복장 추서
군사 경력
군복무 러시아 제국 러시아 제국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러시아 SFSR
복무기간 1911-1924
소속 러시아 제국 육군
붉은 군대
참전 제1차 세계 대전
러시아 내전
이르쿠츠크 사건

이위종(한국 한자李瑋鍾, 1884년 ~ ?)은 대한제국외교관이다. 러시아 제국 주재 대한제국 공사관 예하 3등 참서관 등을 지냈다.

주요 이력[편집]

그는 러시아 제국으로 귀화한 후에는 블라디미르 세르게예비치 리(러시아어: Владимир Сергеевич Ли)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조선왕조 제4대 임금인 세종대왕의 다섯째 아들인 광평대군의 후손(광평대군파)이며 러시아 제국 주재 대한제국 공사였던 이범진의 아들이고 무위대장을 지낸 조선 말기의 군인인 이경하의 손자이다. 경술국치후 아버지 이범진이 자살하자 장교의 길을 선택했다.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였으며, 1917년에 전사했다고 알려졌으나, 2000년대에 발견된 이위종 본인의 자서전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적어도 1924년까지는 생존해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 자서전을 통해 본래 1887년에 태어난 것으로 알려진 이위종의 실제 출생년도가 1884년인 것도 함께 밝혀졌다.

생애[편집]

네덜란드 헤이그[편집]

1902년 7월 18일 대한제국의 외교관으로 등용되어 훗날 1907년 고종의 밀령을 받고 이준·이상설과 함께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서 맹렬하게 활약했다. 이위종은 주 프랑스공사관 서기생을 시작으로 주 독일공사관 참서관(부임하지 못했음), 주 러시아공사관 3등 참서관을 역임했으며 그는 영어.프랑스어.러시아어 등 외국어에 능통했다. 이위종은 프랑스에서 공사관 서기생으로 주재할 때 유럽의 명문 사관학교인 프랑스 생 시르 육군사관학교에서 2년간 수학한 뒤 정규 졸업했다.[2] 그러나 일본 대표의 방해로 회의 참석을 거부당하였으나, 기자협회의 도움으로 한국의 억울한 입장과 일본의 야만적인 침략 행위를 규탄하는 연설을 막힘없는 프랑스어로써 하였다. 이때 일본은 이들 3의사에 대한 궐석 재판을 열고 이상설에게는 사형을, 이위종과 (이미 질병으로 죽은) 이준에게는 종신형을 선고하여 체포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더 이상 고국으로 돌아올 수 없게 된 이위종은 이준헤이그 공동묘지에 가매장한 후, 이상설과 함께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에게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기 위해 도미했다. 그 후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해 최재형, 이범윤, 안중근 등과 함께 동의회를 조직하여 국내진공과 같은 항일투쟁을 하였다.

러시아[편집]

그 후 다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가서 계속 항일 투쟁을 하였다.

1911년 1월 13일, 부친인 이범진이 망국의 슬픔을 못이겨 자살하자 이위종은 그 해 러시아 제국 소속 블라디미르 육군사관학교에 입교, 이후 러시아 장교로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였다. 1916년동부유럽전선에 발령받은 후, 1917년에 아내인 엘리자베타에게 전사통지서가 배달되었지만, 이는 나중에 잘못된 통지서로 밝혀졌다.[3] 그러나 2000년대에 발견되어 러시아 정부에 의해 공개된 이위종의 자서전에서는 그가 1924년까지는 생존해 있었던 것이 확인되었다. 그가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전사했다고 알려진 이유는 1917년동부 유럽 전선에 배치된 후, 그의 행적이 묘연해졌기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1917년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이 체결되어 러시아 제국이 서부 영토의 대부분에 해당되는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등의 영토를 모두 상실하자, 이위종은 1917년모스크바로 갔고 러시아 혁명 직후에 러시아 내전이 발발하자 블라디미르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 당에 가입하면서 가족들과의 연락을 모두 끊었기 때문이다. 1917년에 러시아 내전이 벌어지자 볼셰비키의 일원으로 이른바 붉은 군대라고 불리던 볼셰비키 군에 가담해 싸웠다. 적백내전이 종결된 후인 1924년에는 크라스노야르스크치타 등지에서 소련 공산당의 간부로 활동하였다. 이때 이위종은 1917년부터 1924년까지의 자신의 행적이 담긴 자서전을 일종의 보고서로서 소련 공산당에 제출하였고, 이후의 행적은 알 수 없다.

수상 내역[편집]

1962년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복장이 수여되었다.

가족 관계[편집]

아버지는 대한제국의 외교관 이범진이다. 이위종은 1906년에 러시아 귀족의 딸 엘리자베타와 결혼했다. 이위종의 후손들은 러시아 모스크바에 살고 있으며 이위종의 둘째 딸 니나의 슬하에 아들 바실리비치(작고)와 딸 류드밀라 예피모바가 있다. 류드밀라 예피모바에겐 타치아나와 율리아 피스쿨로바 두 딸이 있으며 이들은 각기 아들을 두고 있어 이위종의 후손은 모두 다섯명이 현재(2020 8.) 생존해 있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일명(一名)은 옐리자베타 놀켄, 독일계 러시아인 출신.
  2. 103년 전 만국평화회의 닫힌 문 앞 울분 토하던 한국… 그 현장 잊어도 되나, 조선일보
  3. 홍성균 (1991년 12월 23일). “헤이그密使 李瑋鐘의 『마지막 삶』 확인 - 蘇 장교로 1차 大戰서 戰死”. 경향신문. 2010년 3월 24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