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병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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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병덕(權秉悳, 1868년 4월 25일 ~ 1944년 9월 15일)은 한국의 독립운동가이다. 아호는 우운(又雲)이며, 천도교 도호(道號)는 청암(淸菴), 정암(貞菴)이다.

충청북도 청원군 미원면 종암리(현 청주시)에서 부친 권문연(權文永)과 모친 신문화(申文嬅)의 아들로 출생했다, 미원.낭성.가덕면은 조선시대 1504년 갑자사화 이후 세서를 해 온 고령 신 씨 집성촌이며, 권병덕 선생의 외가인 미원면 용곡리는 고려시대로부터 조선시대말엽에 이르기까지 명문 귀족으로서 고령 신 씨 문중 좌장의 명맥을 이어온 신장록(申將綠)의 집에서 외척형인 신철모(申徹模).신혜모(申惠模)와 이름난 유학자 유도관(柳道貫)으로부터 유년기 한문을 수학을 하였으며, 유달리 총명했던 권병덕은 이미 10대에 동학에 입교하였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 때는 외척 신혜모(申惠模).신원록(申元綠).신명록(申命綠)등 보은의 동학 교도들을 이끌고 참가했다가 패퇴했다.

1912년 천도교 내부에 갈등이 일어나 이용구, 김연국시천교가 창설되었을 때 여기에 합류하여 시천교 종무장을 지냈다. 그러나 다시 천도교로 돌아와 손병희의 권유를 받고 1919년 3·1 운동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으로 참가했으며, 체포되어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아 복역했다.

사후[편집]

저서[편집]

  • 역사에 관심이 많아 《조선총사(朝鮮總史)》, 《이조전란사(李朝戰亂史)》 등을 저술했다.

같이 보기[편집]

참고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