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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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상(金益相, 1895년 ~ 1943년 6월 6일)은 한국의 독립운동가이다.

생애[편집]

평양숭실학교를 졸업한 후, 기독교계 학교에서 교직에 종사하다가 서울에 올라와 광성연초공사에서 일하던 중 1920년 펑톈(奉天)지점으로 전근갔으나 독립운동에 뜻을 두고 철혈단(鐵血團, 의열단)에 가담하였다.

단장 김원봉으로부터 일본기관의 파괴, 요인 암살이 곧 조국독립의 첩경이라는 설명을 듣고, 조선총독부를 폭파하고 총독 사이토 마코토를 암살할 것을 결심하였다. 폭탄과 권총을 휴대하고 서울에 잠입, 1921년 9월 12일 건물수리공을 가장하여 조선총독부 청사에 들어가 비서실에 폭탄을 던진 후 다시 베이징으로 망명하였다. 그러나 암살은 실패하였다.

이듬해인 1922년 3월 28일 중국 시찰차 들어오는 일본 육군대장 다나카 기이치(田中義一)를 암살하고자 상하이 세관부두에서 오성륜·이종암(李鍾岩) 등과 함께 권총으로 사격하고 폭탄을 던졌으나 실패하여 체포되었다(오성륜은 4월 1일 탈옥함). 일본 나가사키로 호송되어 공소원(控訴院)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고 이후 20년 징역으로 다시 감형되어 1943년 출소, 귀국하였으나 또 다시 궐석재판에서 사형을 언도받음으로 또 체포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사후[편집]

같이 보기[편집]

영화[편집]

  • 2016: 영화 밀정에서 마지막 장면중 조선총독부를 폭파하려는 학생으로 나왔다.

참고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