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 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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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임씨 (扶安 林氏)
관향전라북도 부안군
시조임계미 (林季美)
중시조임숙 (林淑)
집성촌세종특별자치시
주요 인물임난수, 임목, 임정, 숙빈 임씨, 임원배, 임충, 임하룡, 임백천, 임호
인구(2015년)76,154명

부안 임씨(扶安林氏)는 전라북도 부안군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역사[편집]

부안 임씨 시조 임계미(林季美)는 고려 현종 대에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하고 평원부원군(平原府院君)에 봉해졌고, 후에 보안백(保安伯)에 봉해졌다.

임계미의 9대손 임숙(林淑)은 고려시대 순성보절좌리공신(純誠輔絶佐理功臣)와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에 올랐고 보안백(保安伯)에 봉해졌고 부안 임씨의 중시조(1세조)로 세계를 이어왔다.

본관[편집]

부안(扶安)은 전라북도 부안군 일원이다. 마한의 지반국(支半國)이 있던 지역으로 백제 때에는 개화현(皆火縣) 또는 계발현(戒發縣)이라 불렸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부령현(扶寧縣)으로 이름을 바꾸어 고부군(古阜郡 : 정읍시 고부면 일대)의 영현을 삼았다. 1018년(고려 현종 9)에 감무가 파견되면서 독립하였고, 보안현(保安縣) 감무도 겸하게 하였다. 이후 조선 초까지 부령현과 여러 차례 합병과 분리를 반복해 오다가 1416년(태종 16)에 보안(保安)과 부령현(扶寧縣)을 부안현(扶安縣)으로 병합하였다. 1417년에 흥덕진을 옮겨 병마사 겸 판현사를 두었으며, 1423년(세종 5)에 첨절제사로 고쳤다가 현감을 파견하였다. 1896년 전라북도 부안군이 되었다.

인물[편집]

  • 임난수(林蘭秀, 1342년 ~ 1407년) : 고려 후기 무신. 본관은 부안(扶安)이며, 전라북도 부안군(扶安郡) 출신이다. 조부는 정당문학(政堂文學) 임춘(林椿)이고, 부친은 순성보절좌리공신(純誠輔節佐理功臣)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수사공(守司空) 상주국(上柱國) 보안백 임숙(林淑)이며, 모친은 진한국대부인(辰韓國大夫人) 유씨(劉氏)이다. 처부는 용성부원군(龍城府院君) 최유(崔濡)이다. 관직은 흥복도감록사(興福都監錄事)에 임명됨에 이어 낭장(郞將)‧호군(護軍)‧우윤(右尹) 등을 거쳐서 가선대부(嘉善大夫) 공조전서(工曺典書)에 이르렀다. 1374년(공민왕 23)에 최영(崔瑩) 장군을 따라 탐라(耽羅)를 정벌할 때 큰 공을 세웠다. 조선이 건국된 후에는 충청도 공주목(公州牧) 삼기촌(三歧村)으로 내려가 은거하였으며, 여러 차례 출사를 사양하였다. 1419년(세종 1)에 절의를 기려서 사당에 ‘임씨가묘(林氏家廟)’의 편액을 내렸으며, 나성(羅城)의 한 구역을 사패지로 내려주었다. 슬하에 4남을 두었는데, 첫째 아들인 임모(林摹)는 수사(水使)를 지냈고, 둘째 아들인 임목(林穆)은 양양도호부사(襄陽都護府使)를 지냈으며, 셋째 아들인 임서(林敍)는 충의교위좌군사직(忠毅校尉左軍司直)을 지냈고, 넷째 아들인 임흥(林興)은 위의장군(威毅將軍)을 지냈다.
  • 임목(林穆, 1371년 ~ 1448년) : 조선 전기 문신. 본관은 부안(扶安). 고려 명관 임숙(任淑)의 후손이다. 부친은 고려 때 공조전서(工曹典書)를 지낸 임난수(林蘭秀)이다. 세종(世宗) 때 충신(忠臣)의 표창을 받고 나성리(羅成里) 강산(江山)에 있는 토지를 하사받았다. 임목(林穆)은 생원시와 진사시에 합격하여 여러 군의 수령을 역임하고 양양도호부사(壤陽都護府使)에 이르렀다. 벼슬을 그만두고 나성리의 장원으로 돌아가 부친 임난수 장군의 가묘(家廟)와 정각(亭閣)을 짓고 ‘독락정’이라고 편액하였다. 임난수는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자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不事二君]고 하면서 벼슬을 버리고 세속에서 벗어나 금강 월봉(月峰) 아래에 은거하여 16년을 지내다가 세상을 떠났다. 독락정은 1437년(세종 19)에 그의 둘째 아들인 임목이 부친이 원정(園亭)을 지어 독락(獨樂)하시다 돌아가시자 아버지의 절의를 지킨 뜻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이 정자는 금강팔경(錦江八景) 중의 하나로 일컬어질 만큼 주변 경관이 뛰어나다. 장군의 제일(祭日) 음력 6월 20일과 모친의 제일인 음력 12월 20일에 제사(祭祀)를 지내면서 거기서 여유롭게 즐기며 생을 마감하였다.
  • 임정(林頲, 1554년 ~ ?) :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직경(直卿)이고, 호는 용곡(龍谷)이다. 본관은 부안(扶安)이고, 충청남도 공주(公州) 출신이다.부친은 충순위(忠順衛)를 지낸 임대명(林大鳴)이다. 1582년(선조 15)에 진사가 되었으며, 1591년(선조 24)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이 시정(寺正)에 이르고 품계는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이르렀다. 한성부우윤(漢城府右尹)과 옹진현령(甕津縣令)‧부안현감(扶安縣監) 등을 역임하였다. 1602년(선조 35)에 부안현감에서 파직되고, 1604년(선조 37)에 진산군수(珍山郡守)가 되었다. 청백리(淸白吏)라는 평가가 있었고, 어버이를 지극히 모시고 학문을 열심히 하여 다른 선비들이 모두 공경하였다. 공주의 충현서원(忠賢書院)과 연기(燕岐)의 봉암서원(鳳巖書院)에서 원장(院長)으로 추대되었고, 죽은 뒤 임금에게 알려져 표창되었고, 가선대부(嘉善大夫)가 되었다. 아들은 임상형(林尙馨)‧임상험(林尙馦)‧임상암(林尙馣)‧임상의(林尙䭲)이다.
  • 임원배(林原培, 1806년 ~ ?)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부안(扶安). 자는 원문(元文). 증조부는 임세재(林世梓), 조부는 임유상(林有相)이고, 부친은 임정열(林鼎烈), 생부는 임기열(林箕烈)이다. 외조부는 변진원(邊鎭遠)이다. 1827년(순조 27) 유학(幼學)으로서 정해정시문과(丁亥庭試文科)에 장원 급제하였다.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예조좌랑(禮曹佐郞) 등을 역임하였다.

항렬자[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