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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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권씨 (安東 權氏)
관향경상북도 안동시
시조권행(權幸)
집성촌경상북도 안동시
경상북도 청송군
경상북도 예천군
경상북도 경주시
경상북도 봉화군
경상북도 영주시
주요 인물권수평, 권단, 권렴, 수비 권씨, 권한공, 권중화, 권근, 권우, 권담, 권제, 권규, 권총, 권람, 현덕왕후, 권절, 권경유, 권균, 권철, 권덕여, 권율, 권징, 권종, 권준, 권협, 권시, 권대운, 권해, 권상하, 권상유, 권일신, 권중현, 권일, 권이혁, 권영길, 권경석, 권선택, 권영세, 권영진
인구(2015년)696,317명
비고안동권씨 중앙종친회

안동 권씨(安東 權氏)는 경상북도 안동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역사[편집]

안동 권씨(安東 權氏) 시조인 권행(權幸)은 930년(고려 태조 13년) 고창군(高昌郡)에서 김선평(金宣平), 장길(張吉)과 함께 후백제군을 격파하고 고려 개국에 공을 세워 대상(大相)으로 임명되었다.[1] 《고려사》에는 흔행(昕幸)으로 기록되어 있다.[2] 하지만 족보에서는 본성이 신라 종성인 김(金)이었으나, 고려 태조는 그의 전공을 치하하며 "정세를 밝게 판단하고 권도를 잘 취하였다[能炳幾達權]"라며 권(權)씨 성을 사성하였다고 한다. 시조 권행의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성곡리 천등산 능골에 있다. 권행(權幸), 김선평(金宣平), 장정필(張貞弼) 세 사람은 고려 창업의 공으로 삼한벽상아부공신(三韓壁上亞父功臣) 삼중대광태사(三重大匡太師)를 제수받았으며 983년(성종 2) 이 세 명을 기리기 위해 현재의 안동시 북문동에 삼태사묘(三太師廟)가 세워졌다.

9세손 권중시(權仲時)의 아들 권수평(權守平)이 고려 고종 때 추밀원부사를 역임하였다.[3] 권수평의 증손인 권부(權溥)가 영가부원군(永嘉府院君)에 봉해졌고, 그의 아들 5형제도 모두 군(君)에 봉해졌다.

본관[편집]

경상북도 중북부에 위치한 지명이다. 본래 고창녕국(古昌寧國)이었다. 신라의 고타야군(古陀耶郡)이 되었다가 757년(경덕왕 16)에 고창군(古昌郡)으로 고쳐졌다. 930년(고려 태조 13년) 권행(權幸)이 고려 태조를 도운 공으로 안동부(安東府)로 승격되었다. 980년(경종 5년) 영가군(永嘉郡)으로 개칭되었다. 1197년(명종 27) 안동도호부로 승격되었고, 1204년(신종 7) 안동대도호부로 승격되었다. 1308년(충렬왕 34) 복주목(福州牧)으로 개편되었다가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의 침입으로 피난 온 공민왕을 섬긴 공으로 다시 안동대도호부가 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의 토성(土姓)으로 권(權)·(金)·강(姜)·조(曺)·(張)·(高)·이(李) 7성이 기록되어 있다. 1896년 경상북도 안동군으로 개편되었고, 1963년 안동시로 승격되었다.

예천 권씨[편집]

예천 권씨(醴泉權氏)는 안동대도호부 예천군의 토성(土姓)인 흔(盺)씨였으며, 호장(戶長)을 세습하였다. 《고려사(高麗史)》에 929년(태조 12년) 원윤(元尹) 흔평(昕平),[4] 930년(태조 13년) 흔행(昕幸), 936년(태조 19년) 흔악(昕岳) 등의 기록이 보이는데, 1198년(고려 신종 원년)에 신종(神宗)이 명종(明宗)의 구휘(舊諱)를 피하여 흔씨(昕氏)에게 권(權)으로 성(姓)을 고쳐 주었다고 한다.[5]

분파[편집]

  • 검교공파(檢校公派) : 고려 검교대장군을 지낸 권척을 파조로 한다.
  • 광석공파(廣石公派) : 권대의를 파조로 한다.
  • 군기감공파(軍器監公派) : 군기감을 지낸 권사발을 파조로 한다.
  • 동정공파(同正公派) : 고려 호장동정을 지낸 권체달을 파조로 한다.
  • 별장공파(別將公派) : 고려 별장을 지낸 권영정을 파조로 한다.
  • 복야공파(僕射公派) : 고려 상서좌복야 상장군을 지낸 권수홍을 파조로 한다.
  • 부정공파(副正公派) : 고려 식록부정을 지낸 권통의를 파조로 한다.
  • 부호장공파(副戶長公派) : 고려 때 부호장을 지낸 권시중을 파조로 한다.
  • 수중공파(守中公派)(종파) : 권수중을 파조로 한다.
  • 시중공파(侍中公派) : 고려 시중을 지낸 권인가를 파조로 한다. 원래는 강릉 권씨였다.
  • 좌윤공파(佐尹公派) : 고려 호장좌윤을 지낸 권지정을 파조로 한다.
  • 중윤공파(中允公派) : 고려 호장중윤을 지낸 권숙원을 파조로 한다.
  • 호장공파(戶長公派) : 고려 호장을 지낸 권추를 파조로 한다.
  • 추밀공파(樞密公派) : 추밀원부사 권수평을 파조로 한다.
  • 급사중공파(給事中公派) : 권형윤을 파조로 한다.

인물[편집]

  • 권수평(權守平, ? ~ 1250년) : 대정(隊正)을 지내며 가난하게 살았는데 낭중(郞中) 복장한(卜章漢) 억울하게 유배되자 그의 토지를 경작하며 살다가 복장한이 석방되어 돌아오자 토지와 함께 조부(租簿)를 돌려주었다. 관직이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에 이르렀다.
  • 권위(權韙) : 권수평의 아들. 최씨무신정권의 사부로서 추앙받으며 판태복시사(判太僕寺事),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역임했다.
  • 권단(權㫜, 1228년 ~ 1311년) : 권위의 아들. 과거에 급제하여 지첨의부사(知僉議府事), 찬성사(贊成事)로 치사하였다.
  • 권부(權溥, 1262년 ~ 1346년) : 권단의 아들. 1279년(고려 충렬왕 5년) 문과에 급제하고, 충선왕 때 영도첨의사사(領都僉議司事)가 되었으며 영가부원군(永嘉府院君)에 봉해졌다.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 권한공(權漢功, ? ~ 1349년) : 첨의평리(僉議評理) 권책(權頙)의 아들. 충렬왕 때 과거에 급제하여 도첨의정승(都僉議政丞)에 이르렀고, 예천부원군(醴泉府院君)에 봉해졌다. 시호는 문탄(文坦)이다.
  • 권근(權近, 1352년 ~ 1409년) : 고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였다. 조선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에 녹훈되었으며, 1401년(태종 1년) 좌명공신(佐命功臣) 4등으로 길창군(吉昌君)에 봉군되고 찬성사(贊成事)에 올랐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 권진(權軫, 1357년 ~ 1435년) : 1377년(고려 우왕 3년) 문과에 급제하여 형조·호조·이조 판서 등을 역임하고, 1431년(조선 세종 13년) 우의정에 올랐다. 시호는 문경(文景).
  • 권제(權踶, 1387년 ~ 1445년) : 권근의 아들. 1414년(조선 태종 14년) 문과에 장원 급제하고, 세종 때 대제학을 역임했으며, 우찬성에 이르렀다. 시호는 문경(文景)이다.
  • 권람(權擥, 1416년 ~ 1465년) : 권제의 아들. 세조 즉위를 도와 좌익공신(佐翼功臣) 1등에 책록되었고, 1462년 좌의정에 이르렀으며,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으로 진봉되었다. 시호는 익평(翼平)이다. 세조묘에 배향되었다.
  • 권벌(權橃, 1478년 ~ 1548년) : 1507년(중종 2년)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판서·한성부판윤·예조판서·좌참찬 등을 역임하고, 1545년(인종 1년) 우찬성이 되었다. 명종이 즉위 후 위사공신(衛社功臣)에 책록되고, 길원군(吉原君)에 봉해졌으나, 삭훈되고 파면되었다.
  • 권율(權慄, 1537년 ~ 1599년) : 권부의 9세손. 1582년(선조 15) 문과에 급제하고, 임진왜란 때 도원수(都元帥) 등을 역임하며 전공을 세웠다. 시호는 충장(忠莊)이다.
  • 권협(權悏, 1553년 ~ 1618년) : 1577년(선조 10) 알성문과에 급제하고, 1607년 예조판서를 거쳐 1609년 정헌대부에 이르렀으나, 광해군 때 탄핵을 받아 관직을 버렸다.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 권대재(權大載, 1620년 ~ 1689년) : 권협의 손자. 1653년 별시문과에 급제하고, 1658년(효종 9) 문과중시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청남(淸南)으로 활동하며,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정권을 잡자 호조판서가 되었다.

항렬자[편집]

  • 31세 ~ 40세 : 항렬자가 이름의 가운데에 옴
  • 41세 ~ 50세 : 항렬자가 이름의 끝에 옴
  • 51세 ~ 60세 : 항렬자가 이름의 가운데에 옴

왕실과의 인척 관계[편집]

고려[편집]

조선[편집]

집성촌[편집]

인구[편집]

  • 2000년 629,291명
  • 2015년 696,317명

각주[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