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비 권씨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Picto infobox prétendant à un trône.png
수비 권씨
지위
이름
시호 수비 (壽妃)
신상정보
출생일 미상
출생지 고려
사망일 1340년 4월 29일/음력 4월 3일
사망지 고려
능묘 미상
왕조 고려 왕조
부친 권렴
배우자 충숙왕
자녀 없음

수비 권씨(壽妃 權氏, ? ~ 1340년 4월 29일/음력 4월 3일)은 고려의 제27대 충숙왕의 후궁이다.

생애[편집]

가계[편집]

복주(福州,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출신이다. 할아버지는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에 봉해진 권준(權準)[1], 아버지는 좌상시(左常侍)를 지낸 권렴(權廉[2])이며, 본관안동이다.[3] 권렴은 딸이 충숙왕의 비로 책봉되자 현복군(玄福君)에 봉해지고, 나중에는 벼슬이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까지 이르렀다.[4] 충혜왕의 제3비 화비 홍씨(和妃 洪氏)는 고종 사촌이다.[5]

후궁 생활[편집]

권씨는 원래 밀직상의로 있던 전신(全信)의 아들의 아내였다. 하지만 권형은 전씨 집안이 불초(不肖: 못났다)하다는 이유로 권씨를 이혼시키려 하였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권형1335년(충숙왕 복위 4년) 충숙왕의 내지를 받아내어 딸을 이혼시키고 왕의 후궁으로 보냈다.[6] 이에 권씨는 같은 해 9월 3일(음력 8월 15일) 비(妃)로 책봉되어 수비(壽妃)가 되었다.[7]

남편 충숙왕이 사망한 후인 1339년(충혜왕 복위년) 6월 19일(음력 5월 12일), 권씨는 자신의 아들뻘인 충혜왕에게 강간을 당했다. 당시 충혜왕은 서모인 권씨나 경화공주(慶華公主) 뿐만 아니라, 얼굴이 예쁘면 혼인 여부나 신분 등에 상관 없이 닥치는대로 사람을 시켜 빼앗아 강간하는 등 행동에 절제가 전혀 없었다.[8]

사망과 후손[편집]

1340년(충혜왕 복위 원년) 음력 4월 3일 사망했다.[9] 무덤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는 것이 없다. 남편 충숙왕과의 사이에서 자녀는 없었다. 그녀의 아버지 권렴도 같은 해 사망했는데, 당시 권렴의 나이가 불과 39세[4] 였던 것으로 볼 때, 그녀는 꽤 어린 나이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가족 관계[편집]

출처 및 각주[편집]

  1. 한국학중앙연구원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권준〉항목
  2. 원래 권형<權衡>이었으나 후에 권렴으로 개명하였다. 《고려사》권107〈열전〉권20 참고
  3. 한국학중앙연구원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수비권씨〉항목
  4. 네이버 백과사전 〈권렴〉항목[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5. 화비는 권준의 외손녀, 수비는 권준의 친손녀이다. 《동국통감》권44 고려기 1342년 참고
  6. 《고려사》권89〈열전〉권2
  7. 乙丑 納前左常侍 權衡女, 冊爲壽妃. 《고려사》권35〈세가〉권35
  8. “《고려사절요》권25 1339년”. 2014년 1월 16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8년 10월 30일에 확인함. 
  9. 夏四月 乙酉 壽妃卒. 《고려사》권36〈세가〉권36
  10. 子鏞·鉉·鎬·鈞·鑄. 《고려사》권107〈열전〉권20 - 권렴
  11. 한국학중앙연구원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권용〉항목
  12. 한국학중앙연구원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권주〉항목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