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 왕씨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Picto infobox prétendant à un trône.png
정비 왕씨
지위
이름
시호 정비 (靜妃)
신상정보
국적 고려
출생일 미상
사망일 1345년
능묘 미상
왕조 고려
부친 서원후 왕영
배우자 충선왕
자녀 없음

정비 왕씨(靜妃 王氏, ? ~ 1345년)는 고려의 제26대 충선왕의 제 3비로, 본관은 개성(開城)이다.

생애[편집]

가계[편집]

증조부는 양양공(襄陽公) 왕서(王恕)이시며, 조부는 시안공(始安公) 왕인(王絪)이며, 부친은 서원후(西原侯) 왕영(王瑛)이고, 외조부는 미상이다.

충렬왕의 제2비인 정신부주(정화궁주)는 고모이며, 훗날 심양왕에 오른 왕고는 5촌 조카이다[1].

또 시아버지이면서 고모부이기도 한 충렬왕은 10촌 종형제, 남편 충선왕은 그녀의 11촌 조카뻘이 된다[2].

세자비 책봉[편집]

1287년(충렬왕 13년)에 원래 그녀는 원나라에 바쳐질 공녀로 뽑혀 입조할 예정이었다.

당시 제국대장공주와 함께 온천에 가 있던 세자(훗날의 충선왕)이 안색이 좋지 않아 공주가 그 이유를 묻자, 충선왕은 "내가 서원후의 딸과 혼인하려 했는데, 지금 공녀로 선발되어 있는 까닭으로 기쁘지 아니합니다."라고 이야기하였다. 그리하여 공주는 사람을 시켜 왕씨의 공녀 선발을 중지시키고 집으로 되돌려보냈다[3].

1289년(충렬왕 15년) 음력 2월 2일 충선왕이 관례를 행하던 날 세자비로 책봉되었다[4].

당시 원나라의 간섭 하에 있던 고려의 처지때문에 고모 정신부주가 충렬왕과 제일 먼저 혼인하고도 제국대장공주 때문에 제2비로 밀려났듯이, 정비 역시 충선왕과 제일 먼저 혼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몽고 출신의 계국대장공주의비에 이어 제3비로 물러나야 했다. 또 당시 원 세조는 고려의 왕과 원나라 공주의 결혼을 관례로 정착시키려는 의도[5]에서 충선왕과 정비의 혼인을 근친혼이라며 비난했다.

책봉 이후[편집]

1308년(충선왕 복위년) 충선왕은 자신의 복위교서에서 동성끼리는 혼인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왕실과 혼인할 수 있는 15개의 가문을 선정하였다[6].

사망과 후손[편집]

1345년(충목왕 원년)에 사망하였고, 사후 정비(靜妃)에 추증되었다[7]. 능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는 것이 없으며, 자녀는 없었다.

가족 관계[편집]

  • 아버지 : 서원후 왕영(西原侯 王瑛, ?~1291)
  • 시아버지 : 제25대 충렬왕(忠烈王, 1236~1308, 재위:1274~1298, 1298~1308)
  • 시어머니 : 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 1259~1297)
    • 남편 : 제26대 충선왕(忠宣王, 1275~1325, 재위:1298, 1308~1313)

대중문화[편집]

출처 및 각주[편집]

  1. 정비의 고종사촌인 강양공의 아들이다.
  2. 정비 ← 서원후 ← 시안공 ← 양양공 ← 신종 ← 인종 → 명종 → 강종 → 고종 → 원종 → 충렬왕 → 충선왕
  3. 《고려사》권89〈열전〉권2 - 충렬왕 후비 제국대장공주
  4. 《고려사》권30〈열전〉권30 - 충렬왕 15년 2월
  5. 박영규 (2000년 3월 25일). 《한권으로 읽는 고려왕조실록》. 들녘. 434 ~ 435쪽. ISBN 89-7527-154-4. 
  6. “한국학중앙연구원 -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 〈정비〉항목”. 2016년 4월 4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2년 6월 11일에 확인함. 
  7. 《고려사》권89〈열전〉권2 - 충선왕 후비 정비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