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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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왕후
明懿王后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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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숙종의 왕비 | |
재위 | 1099년 3월 2일 ~ 1105년 10월 2일 (음력) |
전임 | 사숙왕후 이씨 |
후임 | 경화왕후 이씨 |
고려의 왕태후 | |
재위 | 1105년 10월 29일 ~ 1112년 7월 14일 (음력) |
전임 | 사숙태후 이씨 |
후임 | 공예태후 임씨 |
이름 | |
시호 | 유가광혜명의왕후 (柔嘉光惠明懿王后) |
존호 | 명의왕태후(明懿王太后) 명의황태후(明懿皇太后) |
작호 | 연덕궁주(延德宮主) · 명복궁주(明福宮主) |
신상정보 | |
출생일 | 미상 |
사망일 | 1112년 7월 14일 (음력) |
사망지 | 고려 신박사 |
부친 | 유홍 |
모친 | 낙랑국대부인 김씨 |
배우자 | 숙종 |
자녀 | 7남 4녀 |
능묘 | 숭릉(崇陵) |
명의왕후 류씨(明懿王后 柳氏, ? ~ 1112년 8월 8일(음력 7월 14일))는 고려의 제15대 왕 숙종의 왕비이다.
인물
[편집]아버지는 문하시중을 지낸 유홍이며 어머니는 중추사 병부상서 김원황의 딸 김씨이다[1]. 본관은 정주이며, 태조의 신혜왕후, 정덕왕후 이후 처음으로 배출된 정주(지금의 경기도 개풍군[2]) 출신의 왕비이다.
유씨는 숙종이 계림공으로 있을 때 혼인하였다. 남편이 왕위에 오른 후에는 명복궁주(明福宮主)에 책봉되었다가 후에 연덕궁주(延德宮主)로 고쳤으며, 1099년(숙종 4년) 3월에 정식으로 왕비에 책봉되었다. 숙종 사망 후에는 아들 예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왕태후에 올랐다. 이때 그녀가 사는 곳을 천화전, 그녀의 부를 숭명부라고 하였으며, 그녀의 생일을 지원절이라 칭하면서 특별히 기렸다.
유씨는 1112년(예종 7년) 음력 7월 14일에 궁 밖으로 행차를 나갔다가 갑자기 병이 위독해져 신박사에서 사망했다. 사망 후 그 시호를 명의왕태후(明懿王太后)라고 하고, 숭릉(崇陵)에 장사지냈다. 그녀가 죽은 이듬해에는 요나라에서 사신을 보내와 그녀를 치제하였다. 훗날 여러차례에 걸쳐 시호가 가상되어 유가광혜명의왕후(柔嘉光惠明懿王后)라 하였다.
그녀는 숙종과의 사이에서 예종을 비롯한 7남 4녀를 낳았다.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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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편집]
부군[편집]
자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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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편집]- 《고려사》〈열전〉
출처
[편집]- ↑ 《최계방 묘지명》 妣金氏封樂浪郡大夫人中樞使兵部尙書元晃之女 明懿大后母之姉也 어머니 낙랑군대부인 김씨는 중추사 병부상서 원황의 딸이며 명의태후의 어머니의 언니이다
- ↑ 한국학중앙연구원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정주〉
- ↑ 1091년 혹은 1092년생
- ↑ 1094년 혹은 1095년생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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