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목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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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목부인 임씨
지위
후비
전임자 동양원부인
후임자 천안부원부인
이름
시호 숙목부인
신상정보
출생지 충청북도 진천
사망지 충청북도 진천
왕조 고려
가문 진주
부친 임명필
모친 ?
배우자 태조
자녀 원녕태자
종교 불교

숙목부인 임씨(肅穆夫人 林氏, 생몰년 미상)은 고려(高麗)의 초대 국왕(國王) 태조(太祖)의 제10비이다.

생애[편집]

진주(지금의 충청북도 진천군[1]) 출신이며, 성씨는 전해지지 않는다. 대광을 지낸 명필의 딸인데, 명필 역시 성씨가 전하지 않는다[2]. 한편 태조 즉위 직후 있었던 인사이동에서 임명필(林明弼)이 순군부령에 임명되는데, 일부에서는 고려 초기 진주 출신은 대부분 임씨였던 점, 또 고려 초기에는 같은 이름의 한자표기가 여러가지로 나타날 수도 있다는 점을 근거로 임명필을 숙목부인의 아버지 명필과 동일인으로 보기도 한다. 이렇게 될 경우 숙목부인은 진천 임씨 출신이 된다[1].

특히 충북대학교(忠北大學校) 교수(敎授) 신호철은 1997년 발표한 연구 논문 〈고려의 건국과 진주 임씨의 역할〉에서 숙목부인을 진주 임씨라고 주장하였으며, 그 혼인 시기에 대해서는 왕건이 궁예의 휘하에 있으면서 진주 지역을 정벌하러 갔을 때, 즉 고려 건국 전으로 추측하였다[3].

고려사》 등에 그녀의 자세한 생애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으며, 생몰년이나 능지에 대한 기록도 없다. 숙목부인(肅穆夫人)이다[2].

태조와의 사이에서 아들 원녕태자를 낳았다. 원녕태자는 진주낭군(鎭州郞君)으로도 불리며, 976년(경종 원년)에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왕선에게 귀족 억제 정책에 대한 복수 정책의 일환으로 살해당했다[4]. 원녕태자는 아들 효당태자(孝當太子)를 낳았다[5].

가족 관계[편집]

  • 아버지 : 대광 임명필(大匡 林名必)
  • 어머니 : ?
    • 남편 : 제1대 태조(太祖, 877~943 재위: 918~943)

출처[편집]

  1. “한국학중앙연구원 -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 〈숙목부인〉항목”. 2016년 3월 14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2년 6월 11일에 확인함. 
  2. 《고려사》권88〈열전〉권1
  3. 진천 임씨 종친회 - 고려의 건국과 진주 임씨의 역할
  4. 네이버 책 - 《이야기 고려왕조사》
  5. 《고려사》권90〈열전〉권3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