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송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채송년(蔡松年, ? ~ 1251년)은 고려 중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평강(平康), 자는 천로(天老), 시호는 경평(景平)이다. 추밀원승선(樞密院承宣), 어사대부(御史大夫), 참지정사(叅知政事),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를 역임했다.

생애[편집]

태묘서령(太廟署令)을 지낸 평강 채씨(平康蔡氏) 채영(蔡泳)의 아들이다.[1] 어머니는 경상도 안찰사(慶尙道 按察使) 지자심(池資深)의 딸이다.

어전행수(御殿行首)를 지내다가 낭장(郞將)에 임명된 후 한참이나 관함을 바꾸지 않았다. 최충헌(崔忠獻)이 그 까닭을 물어도 대답하지 않자, 곁의 사람이, “그의 아버지가 아직 참직(叅職)[2]이 되지 못했는데, 만약 관함을 바꾸고 조정의 벼슬길로 나갈 경우 아버지가 멀리서 보고 자기 자식인 줄 모르고 말에서 내려 피해 달아날까 걱정하기 때문입니다.”고 일러 주었다. 최충헌이 옳은 일이라 여기고서 곧 그의 부친에게 참직을 주었다.

채송년은 이 일로 최충헌의 인정을 받아 추밀원승선(樞密院承宣), 어사대부(御史大夫), 참지정사(叅知政事)로 계속 승진했으며, 고종 38년(1251)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를 끝으로 죽었다. 그는 자태가 단아 수려하였고, 성품이 온화해 처음부터 끝까지 부귀를 누릴 수 있었다. 시호는 경평(景平)이다.[3]

묘는 강원도 평강군 유진면에 있다.

가족[편집]

채송년의 두 아들 채정(蔡楨)과 채화(蔡華)가 각각 평장사를 역임하고 손자 채인평(蔡仁平)·채인규(蔡仁揆)·채모(蔡謨)가 각각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첨의중찬(僉議中贊)·부밀직사사(副知密直司事)를 지내면서 세족으로 성장하였다. 채인규의 아들 채우(蔡禑)와 채모의 아들 채종린(蔡宗璘)·채종서(蔡宗瑞)도 각각 삼사사(三司使)·우승지(右承旨)·판사(判事)를 지내면서 가세를 이어 갔으며, 채영의 고손자인 채홍철(蔡洪哲)—채하중(蔡河中)·채하로(蔡河老) 부자도 찬성사(贊成事)·정승(政丞)·판종부시사(判宗簿寺事)를 각각 역임하는 등 가세가 더욱 번창하였다.

  • 부 : 채영(蔡泳)
  • 모 : 경상도 안찰사(慶尙道 按察使) 지자심(池資深)의 딸
    • 아들 : 채정(蔡楨)
    • 아들 : 채화(蔡華)
      • 손자 : 채인평(蔡仁平)
      • 손자 : 채인규(蔡仁揆)
      • 손자 : 채모(蔡謨)

각주[편집]

  1. 김광철, 『고려후기세족층연구』, 동아대출판부, 1991, 72~73쪽
  2. 고려시대 정3품에서 종6품에 이르는 직책으로, 국왕이 주관하는 조회에 참석할 수 있는 벼슬이다.
  3. 『고려사』 권102, 열전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