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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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죽군(陰竹郡)은 경기도 이천시 남부 지역의 옛 행정 구역으로, 지금의 장호원읍, 설성면, 율면에 해당된다.

유래[편집]

삼한시대의 노람국(怒藍國)을 삼국시대의 노음죽현(奴音竹縣)에 비정되는데 이는 노람이 노음과 비슷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옛 음죽군의 중심인 장호원은 본래 장해원(長海院)이라는 역원(驛院)에서 유래되는데 일제시대에 갑자기 장호원(長湖院)으로 바뀌었고 이 경위가 석연치 않다고 한다. 장호원읍을 흐르는 청미천(淸渼川)은 원래 천민천(天民川)인데 대동여지도의 작성과정에서 천미천(天尾川)으로 오기(誤記)가 되었고 나중에 지금의 청미천이 된 것이라고 한다.[1] 장호원 읍과 설성면의 경계를 이루는 설성산에는 설성(雪城)이라는 성이 있는데 신라시대에 눈이 띄를 이루며 내려 쌓인 흔적을 따라 성을 축조했기 때문에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역사[편집]

  • 삼한시대에 마한의 노람국이었다. 서기 9년 온조왕 27년에 마한이 백제에 병합되자 백제의 지배체제하에서 소국체제가 계속되었다.
  • 서기 475년 고구려의 대대적인 남침으로 한성백제가 패망하자 고구려군에 점령당해 노음죽현(奴音竹縣)이 되었다.
  • 5세기 말에 신라영토가 되었다. 757년 경덕왕 16년에 전국의 행정체제및 행정단위의 명칭을 개혁하면서 음죽현(陰竹縣)으로 개명하고

개산군(介山郡)의 영현이 되었다. 이후 음죽이라는 이름은 별 변동없이 이어졌다.

-음죽현의 치소는 지금의 장호원읍 선읍리에 있었다. 선읍리를 중심으로 현내면이 되었다.

음죽군 산하에 현내면, 동면, 남면, 북면, 서면, 상율면, 하율면의 7면이 있었다.

  • 1910년 북면과 서면이 각각 원북면과 근북면으로 개칭되었다.
  • 일제강점기인 1914년에 일제에 의한 행정폐합으로 이천군에 합병되었다. 이 과정에 일부 마을이 음성군에 분할 편입되었다.

-군청이 있던 현내면(縣內面)과 동면(東面), 남면(南面)이 합병되어 청미면(淸渼面)이 되었다. 청미면 산하에 평촌리와 석교촌이 장호원리로 합병되었다. 이곳이 나중에 장호원읍의 모태가 되었다.

-근북면(近北面)과 원북면(遠北面)이 합병되어 설성면(雪城面)이 되었다.

-상율면(上栗面)과 하율면(下栗面)이 합병되어 율면(栗面)이 되었다.

  • 1915년 청미면 관내 31개 리동을 13개리로 개편하면서 대서리 지역 일부가 설성면에 편입되었다.
  • 1941년 10월 1일 청미면이 장호원읍으로 승격되었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