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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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필(徐弼, 901년 ~ 965년)은 고려 초의 명신으로 서신일이 나이 팔순이라는 매우 늦은 나이에 본 아들이다.

태조 때에 출사하였고, 광종 때에는 내의령에 이르렀는데 검소하여 광종이 모든 재상들에게 하사한 금술잔을 유일하게 받지 않았다. 또한 광종이 쌍기 이래 귀화해 온 중국인들을 우대하여 대신들과 호족들의 집을 빼앗아 중국인들에게 하사하였다. 서필이 직언을 하여 이를 비판하자 광종은 이를 승낙하여 다시 신료들의 집을 강제로 뺏지 않았다.

965년 예순 다섯의 나이로 졸하자 삼중대광 태사 내사령(三重大匡太師內史令)에 추증되었고 훗날 광종의 묘정(廟庭)에 배향(配享)되었다.

그의 둘째 아들이 바로 고려-거란 전쟁에서 활약하여 강동 6주를 되찾은 서희(徐熙)이다.

가계[편집]

서필이 등장한 작품[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