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공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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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공검
薛公儉
출생1224년
고려 전라도 순창군
사망1302년
성별남성
국적고려
본관순창(淳昌)
별칭자 상검(常儉)
호 경재(敬齋)
시호 문량(文良)
경력찬성사(贊成事)
첨의중찬(中贊)
직업문관
부모설신(薛愼)
국대부인(國大夫人) 조씨(趙氏)
배우자여흥 민씨(驪興閔氏) 민인균(閔仁鈞)의 딸
자녀설지충(薛之冲)

설공검(薛公儉, 1224년 ~ 1302년 )은 고려의 문신이다. 본관은 순창(淳昌). 추밀원부사(樞密院副事) 설신(薛愼)의 아들이다. 벼슬은 중찬(中贊)에 이르렀다. 충렬왕의 묘정(廟廷)에 배향(配享)되었으며, 시호는 문량(文良)이다.

생애[편집]

처음에는 교동감무(喬桐監務)가 되었다가 도병마녹사(都兵馬錄事)로 보임되었다. 고려 고종(高宗) 말에 과거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예부낭중(禮部郎中)이 되었다. 1271년(원종 12)에 군기감(軍器監)으로 세자 심(諶 : 충렬왕)을 호종해 원나라에 갔다 온 공으로 거듭 승진해 우부승선(右副承宣)이 되었다. 그 뒤 좌승지(左承旨)가 되었고, 1278년(충렬왕 4)에는 밀직부사(密直副使)로 필도지(必闍赤)가 되었으며 감찰대부를 거쳐 지첨의부사(知僉議府事)가 되었다가 곧이어 참리(叅理)로 승진하였다. 나이가 들어 사직을 청원하자 찬성사(贊成事)로 치사(致仕)했으나, 다시 중찬(中贊)으로 올라 벼슬을 마쳤다. 79살에 죽자 시호를 문량(文良)이라고 하였다.

성품이 청렴하고 정직했으며 남에게 공손히 대했고 늘 검소하게 생활했다. 조정의 관리 중 6품 이상 가는 사람에게 부모상(喪)이 나면 평소 모르는 사이라도 반드시 소복을 하고 찾아가 조문했다. 또 누가 찾아오면 귀천을 가리지 않고 급히 나가서 맞이하였다. 병으로 누워 있을 때 채홍철(蔡洪哲)이 가서 살펴보았는데, 베 이불에 왕골자리를 깔고 간소히 지내는 것이 마치 절간의 중과 같았다. 그가 나와서 “우리 같은 자들은 공과 비교하면 이른 바 땅벌레와 황학(黃鶴)이 다른 것과 같다.”고 탄복했다. 체협공신(禘祫功臣)으로 충렬왕의 묘정에 배향되었고, 아들 설지충(薛之冲)은 찬성사를 지냈다.[1]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