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암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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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암(李嵒, 1297년 ~ 1364년)은 고려 말의 문신이다. 본관은 고성(固城), 호는 행촌(杏村),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원래 이름은 군해(君侅), 자는 익지(翼之)이며 후에 이름을 암(嵒), 자를 고운(古雲)으로 고쳤다. 판밀직사사 감찰대부(判密直司事監察大夫)인 존비(尊庇)의 손자이며, 철원군(鐵原君) 우(瑀)의 아들이다. 도촌(桃村) 이교(李嶠)가 그의 동생이다. 이들의 가문은 왕실과 혼인할 수 있는 누대공신재상지종(累代功臣宰相之種) 문벌가였으며, 조선 개창에도 많은 공헌을 하였다. 이후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원(李原)을 비롯하여 조선초기와 조선중기에 이르기까지 많은 문관과 무관을 배출하면서 조선의 명족이 되었다.

이암은 고려 말기 최고의 명필로 알려져 있으며, 당시 그의 글씨는 조맹부의 송설체에 견줄만하다고 했고 일부 평론가들은 그의 유려하고 힘있는 글씨가 조맹부를 능가한다고 평가한다. 근래에 일제 강점기 반출 문화제 환수 등 사회적 관심에 따라 그의 글씨에 대한 연구와 평가가 활발해지고 있다. 이암은 서예가로서뿐만 아니라 시와 그림에도 뛰어났다.

생애[편집]

  • 17세 충숙왕 즉위년(1313년)에 과거에 급제
  • 44세 성균대사성(成均大司成)에 임명
  • 57세 공민왕 2년(1353년)에 청평산에 입산
  • 62세 공민왕 7년(1358년) 수시중(守侍中)에 임명
  • 63세 공민왕 8년(1359년), 병마도원수로 임명되어 홍건적에 대응
  • 68세 병으로 사망 (1364년)

가족관계[편집]

  • 증조모 : 남포 백씨((藍浦 白氏)) 예부낭중(禮部郞中) 증(贈) 우복야(右僕射) 백경선(白景瑄)의 딸
  • 조부의 외숙: 백문절(白文節, ? ~ 1282년) 국학대사성(國學大司成) 보문각학사(寶文閣學士)
  • 조부 : 이존비(李尊庇, 1233년 ∼ 1287년)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
    • 부 : 이우(李瑀)
      • 아들 : 이강(李岡, 1333년 ~ 1380년) 밀직부사
        • 손자 : 이원(李原, 1368년 ~ 1429년)

저서 및 유물[편집]

  • 환단고기》 〈단군세기〉: 진위여부가 필요한 논서이다.
  • 원(元)의 농서(農書)인 《농상집요(農桑輯要)》를 고려에 소개
  • 청평사 문수원 사시장경비 (文殊寺施藏經碑) - 31세(1327년) 때 쓴 비문

같이 보기[편집]

참고문헌 및 링크[편집]

  • 이암 묘지명(鉄城府院君李文貞公墓誌銘) - 현존하지 않으나, 이색의 《목은문고》에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