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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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공(徐恭, ? ~ 1171년 8월 22일)은 고려의 문신이다. 본관은 이천(利川)이며, 서희(徐熙)의 현손(玄孫)이다.

생애[편집]

1145년(인종 23) 3월 합문통사사인(閤門通事舍人)으로서 금(金)나라 동경(東京)에 사신으로 다녀왔다.[1] 고려 의종 때 음서로 경령전판관(景靈殿判官)이 되었다.

1163년(의종 18)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를 거쳐 1164년 병부상서(兵部尙書)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가 되었다.[2]

1165년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를 거쳐 판삼사사(判三司事)에 올랐다.[3]

왕을 호종해 서경(西都)에 갔을 때, 왕이 개경과 서경의 문관·무관 관료들에게 활을 쏘게 했다. 날이 어두워지자 큰 촛불을 과녁 위에 꽂고 쏘게 하였는데, 서경 사람들은 많이 맞혔으나 개경에서 따라온 신하들 중에는 맞히는 사람이 없었다. 왕의 기분이 자못 좋지 않은 터에 서공이 첫 번째 화살로 촛불을 맞히고 두 번째 화살로 과녁을 맞히자, 왕은 크게 기뻐하며 비단을 하사하였다. 담력과 책략이 뛰어나고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하여, 여섯 번이나 양계병마사(兩界兵馬使)로 부임하니 사졸(士卒)들이 잘 따랐다.

여러 관직을 거쳐 평장사(平章事)에 이르렀다. 재상이 되자 더욱 겸손하였고, 문사(文士)들의 오만함을 싫어했으며, 무인들을 예우하였다. 1170년(의종 24) 정중부(鄭仲夫)의 난 때 중방(重房)에서 순검군(巡檢軍) 22명으로 하여금 그 집을 호위케 하여 화를 모면하였다.[4]

1171년(명종 원년) 7월 19일에 죽었다.[5]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