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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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부터 2007년 사이 국내총생산 그래프. 반세기만에 대한민국은 국내총생산 1조 달러를 기록하였다.
한강의 야경

한강의 기적(漢江의 奇蹟)은 대한민국에서 한국 전쟁 이후부터 아시아 금융 위기 시기까지 나타난 반세기에 이르는 급격한 경제 성장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용어이다. 1965 년 한국은 일본과한일 기본 조약을 맺은 것으로,무상 금 3 억 달러 /유상 금 2 억 달러 /민간 차관 3 억 달러 이상(당시의 한국의 국가 예산은 3 억 5 천만 달러 정도)의일본에서의 자금 제공 및 차관을 얻을 수있게되었다.대한민국은 경제적으로 빠르게 성장하여 아시아의 네 마리 용 중 하나로 꼽히게 되었다.

한강의 기적은 원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수십 년 동안에 걸친 서독의 경제적 발전을 이르는 말인 라인강의 기적에서 유래한 말이다.

개요[편집]

1960년 1인당 국내 총생산은 소련을 흉내내 계획경제를 추진하고 있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대한민국을 웃돌고 있었는데, 이는 소련의 무상 지원 13억 루블 등, 동유럽 공산권 국가들 및 중화인민공화국의 막대한 지원 덕분이었다.[1] 한편, 장면 내각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웠으나 쿠데타로 실각하였다는 평가 때문에 일각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이 아니어도 한강의 기적은 충분히 이루어낼 수 있었다고 말하지만,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같은 국가내에서 반대의견이 많았던 사업들과 당시로써는 획기적인 조선소와 포항제철 사업 등과 같은 중화학 공업 육성을 추진한 것은 박정희 대통령이 맞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박정희 정부는 그 이후 강력한 국가 중심의 산업 육성을 실시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노동자들의 권익이 훼손되었지만,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성공적 추진과 새마을 운동으로 인한 농가소득 10배 증가는 현대 한국 사회의 자본의 근간을 이루게 되었다. 한국은 수출 주도의 경제발전 계획을 세워 초창기 경공업 중심 위주의 발전, 후에는 중화학 공업 중심 위주의 발전을 추진했다. 박정희 정부의 대표적인 경제개발 정책으로는 경부고속도로 건설, 구미 산업단지 조성, 새마을 운동을 통한 농가 소득 증대, 주민등록증 발급, 포항제철소 건립, 현대조선(현재, 현대중공업)의 추진, 세종시 수도 이전 계획, 월남전 파병을 통한 군무기 현대화 및 외화 소득 증대, 서울지하철 1호선 건설 등 현대 한국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수 많은 요인들이 있다.

1980년, 대한민국 경제는 일시적으로 마이너스 성장으로 변했으나 1981년 이후 급회복해, 1988년의 서울 올림픽을 거쳐, 1997년의 아시아 통화 위기로 경제가 붕괴 직전이 되어 IMF 개입되기에 이를 때까지 높은 경제 성장을 계속했다.

주석[편집]

  1. 백준기, 《한국전쟁사의 새로운 접근》,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편, 2001년, p707~714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