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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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黃敎安
Hwang Kyo-ahn December 2016.jpg
대한민국제44대 국무총리
임기 2015년 6월 18일~2017년 5월 11일
대통령 박근혜
전임: 이완구(제43대)
후임: 이낙연(제45대)

신상정보
국적 대한민국
출생일 1957년 5월 14일(1957-05-14) (62세)
출생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계동
본관 창원[1]
학력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법학 석사
경력 창원지방검찰청 검사장
대구고등검찰청 검사장
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
제63대 법무부 장관
정당 자유한국당
배우자 최지영
자녀 1남 1녀
종교 개신교(침례회)[2]

황교안(黃敎安, 1957년 5월 14일 (1957년 음력 4월 15일)[3] - )은 대한민국의 법조인이다. 제63대 법무부 장관과 제44대 국무총리를 역임하였으며, 이후 자유한국당에 입당하여 대표에 선출되었다.

생애[편집]

1957년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계동에서 아버지 황대복과 어머니 전칠례 사이에서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4][5][6][7] 그의 부모는 황해도 연백군해주시가 고향이나[8] 6.25전쟁을 피해 강화군 교동면으로 이주하였다가 서울로 이사했다.[9] 이후 그의 부친은 고물상 등을 하였다. 황교안은 봉래초등학교광성중학교를 졸업하고 경기고등학교에 진학하여 학도호국단 연대장(학생대표)을 했다. 재수 끝에 1977년 서울대학교 입학시험에 떨어져 후기인 성균관대학교 법학과에 들어갔다. 만성담마진이라는 가려움증을 유발하는 피부병으로 1980년 7월 제2국민역 판정을 받아 병역이 면제되고 1981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가 되었다.[4]

검사[편집]

1981년에 제23회 사법시험에서 합격하여, 사법연수원 제13기에 들어가 1983년 2월 수료하였다. 1982년 12월 춘천지방검찰청 검사시보가 되어 1983년 3월까지 시보 생활을 하다 1983년에 청주지방검찰청 검사로 정식 발령된 이후 1987년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1990년 대검찰청 검찰연구관을 거쳐 1992년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1994년 법무연수원 교관, 1995년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장, 1997년 사법연수원 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1999년 서울지방검찰청 북부지청 형사제5부 부장검사, 2000년 대검찰청 공안제1과장, 2002년 서울지방검찰청 공안제2부 부장검사, 2003년 부산지방검찰청 동부지청 차장검사, 2004년 서울고등검찰청에서 검사로 재직하였으며 2005년부터 2006년까지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제2 차장검사로 재직하면서 삼성 X파일 사건국정원·안기부 도청사건의 수사를 지휘하였다.

서울지검 공안2부에 재직하던 1990년 2월 7일 "한통련ㆍ유럽민협 등 해외단체와 범민족대회 관련한 자료를 팩스를 통해 주고 받았다"는 이유로 전민련 국제협력국장 김현장을 국가보안법의 국가기밀누설ㆍ회합통신ㆍ금품수수죄 등을 적용하여 구속하여 징역10년 자격정지10년을 구형하여 징역 7년 자격정지7년을 선고받게 하였으며 서울지검 공안1부에 재직하던 1992년 12월 23일에는 ‘남한조선노동당 사건’과 관련해 황인욱에게「1992년도 국방예산안 개요」를 넘겨진 이유로 김대중 대표 비서 이근희, 민주당 김대중 전 대표 국방위원회 담당 업무보조원 이근희(26)를 구속기소하여 징역10년 자격정지10년을 구형하여 징역3년 자격정지3년을 선고받게 하고 1999년에는 파업유도 사건으로 인하여 특별검사팀에 파견되어 수사를 하기도 했다. 서울지검 공안2부 부장검사에 있을 때인 2002년 한총련 대학생들이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점거하여 농성을 하였는데 이때 38명의 주동자들을 전원 구속수사하였다. 이렇게 공안통으로 활약했던 황교안은 이후 공안 수사의 교과서로 불리게 된 《국가보안법 해설》을 저술해 '미스터 국가보안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10]

제17대 대통령 선출을 위한 선거 운동이 한창이던 2007년 10월 21일 자신의 블로그에 <하느님 편에서 보기>라는 제목의 글에서.[11] "요즘 한나라당에서는 경선후보들 사이에 검증공방이 한창이고, 그 과정에서 소위 네거티브 전술도 종종 등장하여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며 "유력한 경선후보 중의 한 분은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선 경쟁은 몹시 추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직까지는 세상 사람들이 크리스천이 왜 그런 모습을 보이느냐고 질책하지 않고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라고 하면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자인 이명박을 비판했다.[11]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 임수경 밀입북 사건’ 등의 공안 수사에서 활약했던 황교안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 자리에 물망에 오르기도 했으나 탈락하여 2006년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장, 2007년 서울고등검찰청 검사,황교안의 검사장 탈락, 밉보였나 무능했나 한겨레신문 2015년 05월 29일자</ref> 2008년 3월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을 거쳐 2009년 1월 창원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 부임했고, 2009년 8월 대구고등검찰청 검사장, 2011년 1월 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으로 부임했다가 2011년 8월 2일 검찰에서 퇴직하여.[12] 2011년 9월 19일부터 2013년 1월까지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변호사로 활동했다.

대구고등검찰청 검사장으로 부임한 이후 일선 청에서 충분한 진술 기회를 갖지 못한 항고 사건 당사자들에 대해 고등검찰청에서 조사 또는 면담을 실시해 사건 처리에 반영하는 항고사건 당사자 조사·면담제와 지검·지청을 방문한 사건 당사자들을 상대로 적법성, 인권보호, 진술만족도, 신속성, 친절도 등 5개 항목에 대한 전화 모니터링을 실시하는 리턴 콜(return call) 제도와 같은 특색있는 민원인들과의 소통제도를 도입해 사건 당사자들은 물론 국정감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와 동시에 고소·항고사건처리의 질적 향상을 위해 원처분청(지검 또는 지청)·고소사건 수사의 충실성을 평가하는 항고사건 평정제도와 불기소 및 항고기각 이유에 대한 당사자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항고기각사유 기재 내실화 방안도 새롭게 도입, 실시하였다. 임정혁 차장검사는 "고검장 부임 이후 전국에서 처음으로 특색있게 추진하고 있는 제도로 반응이 무척 좋으며, 국정감사에서도 호평을 받았다"고 말했다.[13] 그리고 사회지도층이 골프를 지양하고 솔선수범하는 건전한 문화를 만드는 데는 테니스 모임이 최고라는 평소 생각에 따라 대구광역시경상북도 민관의 화합과 친선 도모를 위한 방법으로 테니스 경력 20년으로 상당한 실력을 가진 황교안이 주도하여 대구지방검찰청에서 테니스 모임을 이끌던 조순철 사무관이 총무를 맡아 평소 테니스를 즐겨 하던 지역의 각계 인사 20여 명으로 모임을 꾸려 2009년 9월 테니스 모임인 목야회를 출범하여 매주 목요일 밤마다 테니스를 했다.[14]

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으로 있던 2011년 5월11일 부산 호산나교회 특별 강연에서 김대중 정부를 지칭하며 "이런 분이 대통령이 딱 되고 나니까 서울지검 공안부에 있던 검사들, 전부 좌천됐다"고 하면서 당시 대법원 소속 사법연수원 교수로 있던 자신은 인사상 불이익을 받지 않아 "하나님께 환란으로부터 도피를 허락해주신 것에 감사드렸다"고 밝혔다.[15]

삼성 X파일 사건 수사와 안기부, 국정원 수사, 강정구 수사[편집]

서울중앙지검 2차장이던 김은성이 2005년 7월 국가정보원 도청 자료를 통해 폭로된 이른바 ‘삼성 X파일 사건’ 특별수사팀의 지휘를 맡았다. '삼성 X파일 사건'은 1997년 이학수 전 삼성 부회장과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이 검찰 간부들에게 '떡값'을 줄 계획에 대해 논의하는 내용 등을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가 불법 도청한 사건으로, 안기부 도청 조직 '미림' 팀장이 면직 후 X파일을 외부로 유출해 2005년 7월 언론을 통해 세상에 공개됐다. 횡령과 뇌물공여 혐의를 받던 이건희 삼성 회장을 서면조사만 하고 수사를 마무리하는 등 삼성 쪽 인사 모두를 불기소 처분했다. 반면 X파일 내용을 보도한 이상호 <문화방송>(MBC) 기자와 녹취록 전문을 실은 김연광 <월간조선> 편집장, ‘떡값 검사’의 실명을 공개한 노회찬 의원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함으로써 '삼성 X파일 사건'을 '불법 도청 사건'으로 몰고 가는 식으로 '재벌 봐주기'를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16] 2005년 국정원·안기부 도청사건 수사를 지휘했고, 같은 해 국가보안법과 사상의 자유 사이의 논란이 컸던 강정구 교수 사건 때 구속수사를 추진했다. 당시 천정배 법무부장관이 지휘권을 발동해 불구속 기소처리해, 그는 천정배와 갈등하였다.[17] 결국 김종빈 검찰총장이 물러나기도 했다.[17]

그 뒤 2006년 검사장급 인사에서 낙마해 당시 노무현 정부가 공안분야를 홀대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을 낳기도 했다.[17]

변호사[편집]

검사에서 퇴임한 후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2011년 10월 3일 법무법인 태평양의 고문변호사가 되었다.[18] 검사에서 물러난 이후 2011년 9월부터 1년5개월간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근무하며 15억9000여 만원을 받았으며 2014년 10월에는 3억 97만원을 받았다.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국가보안법 해설서를 펴냈다.[17]

2011년 12월 14일에는 방송통신심위위원회 산하 선거방송심의위원회 위원에 위촉되고[19], 같은 날 선거방송심의위 위원장에 선출되었다.[20] 이 무렵 그는 서울지방경찰청에 수감중인 대북사업가인 장기수 이 모씨의 변호사에 선임되어, 그의 변호도 맡기도 했다.[21] 2012년 CBS 방송 자문위원에 위촉되었다.

법무부 장관[편집]

2013년 1월 박근혜 정부에서 법무부장관 후보로 내정되었고,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3월 청문회를 통과하여 제63대 법무부 법무부 장관이 되었다. 법무부 장관으로 2014년 신고한 재산내역은 모두 25억8925만원이었으며 법무부 장관으로 재직 중에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김기춘과 함께 이석기 내란 선동 사건 수사와 이석기 의원 등이 RO 사건으로 구속된 직후인 2014년 9월 법무부에 위헌 정당·단체 관련 대책 TF를 만들고 일선 검찰청에 묵혀둔 각종 수사 자료를 TF로 총집결시켜 정밀 분석한 끝에 2014년 11월 헌법재판소에 청구한 통합진보당 해산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서 공안정국을 이끌며 중장년층의 보수층 사이에서는 "황교안 대권후보감"이라며 지지를 받았으며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이 내려진 뒤 사석에서 "민주노동당이 2000년 창당했을 때 언젠가 위헌 정당 심판이 있을 줄 알고 내 나름대로 준비를 해왔다"고 밝혔다.[22] 법무 행정에 있어서는 법의 문턱을 낮추기 위한 일환으로 무변촌 지역 주민들을 위해 마을변호사 제도를 신설하였고, 이후 제도를 보완하여 전체 무변촌 1,412곳에 마을변호사 1,455명을 배치하였다.[23]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편집]

2013년 9월 4일 정부를 대표하여 국회에서 이석기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 요청 이유를 설명한 황교안 장관은 이 사건 범행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정면도전이자 위협이라 하였다.[24] 이석기에 대한 체포동의안은 재석의원 289명 가운데 찬성 258명, 반대 14명, 기권 11명, 무효 6명 등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되었고, 수원지방법원에서는 같은 달 5일 이석기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하였으며 검찰은 같은 달 26일 이석기 등을 내란음모 등 혐의로 기소한 후 2014년 2월 3일 결심 공판에서 징역 20년을 구형하였다.[25] 2014년 2월 17일 수원지법은 내란음모, 선동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여 이석기에 대하여 징역 12년과 자격정지 10년을 선고하였다.[26] 이에 검찰과 피고인측은 모두 항소를 하였고 2014년 8월 11일 서울고법 재판부는 내란선동에 대하여는 유죄를 인정하였으나 내란음모는 무죄로 판단하고 이석기에 대하여 징역 9년에 자격정지 7년을 선고하였다.[27] 역시 양측이 모두 상고하여 이 사건은 전원합의체에 회부되었는데, 2015년 1월 22일 대법원은 내란선동은 인정되나 내란음모는 인정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다수 의견에 따라 상고를 기각하였고, 이석기에 대해 징역 9년을 선고한 원심은 확정되었다.[28]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사건[편집]

이석기 사건과 맞물려 본격적으로 진행된 통합진보당에 대한 ‘위헌(違憲)정당해산심판’ 청구에서도 황교안 장관은 정부대리인으로서 직접 변론기일에 출석하여 “통합진보당의 최고 이념인 진보적 민주주의와 강령의 구체적 내용은 현 정권을 타도하고 북한과 연방제 통일을 이루겠다는 것으로 북한식 공산주의를 실현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29] 황교안 장관은 2014년 11월 25일에 있었던 최종변론에도 직접 출석하여 "통진당의 강령은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한 북한의 대남혁명전략을 그럴듯하게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며 "이들이 실제로 추구하고 있는 진보적 민주주의 역시 용공 정부 수립과 연방제 통일을 통한 '북한식 공산주의'를 실현하는것"이라며 정당해산을 거듭 촉구했다.[30][31] 그리고 헌법재판소는 2014년 12월 19일 재판관 9명 중 8명 인용 의견으로 통진당 해산결정을 하였다.[32]

국무총리[편집]

법무장관 재직 중이던 2015년 6월 13일 국무총리 후보자로 내정되어 청문회를 통과한 후 제44대 국무총리가 되었다.[33]

총리로 내정된 것과 관련하여 청와대는 "2015년 5월 21일 오전 10시 국무총리 내정자를 발표하겠다"고 했으나 10시 5분 전, 돌연 '총리 발표'를 연기했다.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이 청와대 춘추관으로 급하게 뛰어와 "보도를 늦춰달라"고 하는 과정에서 기자들 사이에 '후보자 교체, 무기한 연기'라는 소문이 돌았다. 다시 10시 5분경, 민경욱 대변인이 춘추관을 방문하여 "10시 15분에 발표가 있을 예정"이라고 한 후, '황교안 법무부장관의 국무총리 후보자 내정'을 발표하였다. 이런 해프닝에 대하여, '새누리당이 공안 총리 에 대한 야당 반대를 우려하여 박근혜 대통령에게 재고하라'고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라며 당-청 갈등이 원인이라는 논란이 일었다.[34]

대통령 권한대행[편집]

2017년 2월 첫 순방국으로 대한민국을 방문한 미 국방장관 제임스 매티스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2016년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가 가결되어 2017년 5월 9일까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5월 10일까지 대한민국의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다.

대통령 탄핵으로 인하여 보궐선거가 예정된 가운데 보수층에서 유력 대권주자로 거론되었으나, 2017년 3월 15일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였다.[35]

2017년 5월 10일에 있었던 대통령 보궐선거에서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어 취임한 직후에 사표를 제출하였고, 2017년 5월 11일 문재인 대통령이 황교안 국무총리의 사표를 수리함에 따라 당분간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국무총리 권한대행을 맡았다.[36]

국무총리 퇴임 이후[편집]

퇴임 이후 간증 집회에 여러 차례 참석했던 황교안은 2017년 10월 22일 경기 남양주시 별내동 창대교회(조용연 목사)에서 간증 집회 강사로 초청받아 '그리스도인 된 은혜'(고후 6:1-10)라는 제목으로 가난한 집안에서 자란 아이가, 예수를 믿은 뒤 성공한 삶을 살게 된 과정을 간증한 황교안은 "은혜를 계속 받으려면, 하나님 자녀답게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37] 2018년 8월, 자신의 수필집인 <황교안의 답>을 출판했다. 부제는 '황교안, 청년을 만나다'이다.[38] 9월에는 서울 양재동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에서 출판기념회를 열었고, 이 자리에는 자유한국당 의원들과 박근혜 정부 당시 관료들 여러 명이 참석하였다. 황 전 총리는 박근혜 정부에 대해 "개혁지향정부라고 말할 수 있다"며 "민생 지향과 경제 살리기에 역점을 두었고 실제로 적지 않은 성과를 이뤄냈다"고 말했다. 또한 "지난 정부의 모든 노력이 소위 ‘적폐 청산’이라는 미명하에 쓸려가고 있어 매우 안타깝다"고도 말하였다.[39]

정계 진출[편집]

2019년 1월 15일 자유한국당에 입당하였다. 입당 기자회견에서 황교안은 박근혜 정부에 대해서는 "지난 정부에서 마지막 총리를 지낸 사람으로서 국가적 시련으로 국민들이 심려를 갖게 한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잘못된 부분과 잘한 부분을 그대로 평가해야지, 모든 것을 국정농단이라고 재단하는 것은 옳은 평가는 아니다"라고 의견을 밝혔다.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는 "나라 상황이 총체적 난국"이라며 "국민적 합의 없이 밀어붙이는 성급한 정책들이 경제도, 안보도, 사회도 모두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하였다.[40]

2019년 2월 27일에 있었던 자유한국당 제3차 전당대회에서 종합 득표율 50.1%을 기록하며 당 대표에 당선되어 자유한국당 입당을 선택한지 43일만에 자유한국당의 제2대 당 대표로 선출되었다.[41] 이후 열린 보궐선거에서 검찰 후배인 정점식을 영입하여 당선시켰으나 보수가 분열된 상황에서 보수통합을 두고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어려움에 쳐하였다.

이언주 무소속 의원, 박인숙 한국당 의원, 김숙향 서울 동작갑 당협위원장 등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임명 철회와 사과를 요구하며 삭발을 하자 황교안은 삭발 릴레이에 동참하여 청와대 앞에서 생중계를 하면서 삭발을 하였으며 야당 대표의 삭발에 대해[42] 청와대에서 "대화로 해결하자"며 만류하기도 했으나 결국 삭발을 하였다.

총리 시절부터 종교 편향 논란을 야기하며 불교계와는 관계가 좋지 않았던[43] 황교안은 2019년 부처님 오신 날 법요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조계종을 찾았으나 합장과 관불 의식 등 불교 의식을 거부한 것에 대해 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로부터 "공당의 대표직에서 물러나 자연인으로 돌아가라"는 비판을 받는 등 논란이 있었으며[44] 기독교 대한민국을 표방하는 전광훈 목사가 이끄는 한기총의 문재인 퇴진 철야 국민대회에 나경원 원내대표와 함께 참석하여 전광훈이 "황교안 대통령으로 만들자"고 나서자 집회 후반부에 무대에 올라 "싸움이 시작됐다. 그러나 이기기로 돼 있는 싸움이 시작된 거다 반드시 똘똘 뭉쳐서 문재인 정권을 이겨내자"고 연설하고 새벽까지 밤샘 기도에 함께 했다.[45]

2019년 10월 21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 황교안 대표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계엄령 선포를 검토하는 과정에 관여했다"는 정황이 담긴 문건이 공개되자 다음날 의원총회를 마친 직후 "계엄령의 계자도 못 들었다. 저에게는 보고된 바 전혀 없었다"며 "지금 그 이야기는 거짓이다. 그냥 넘어갈 수 없다. 고소나 고발을 통해서 사법조치가 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46]

종교[편집]

야간 신학대학을 다니며 교회 전도사를 지내기도 한 독실한 침례교 소속 개신교 신자다. 법조계 기독교모임인 '애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47]

  • 어릴 때부터 목동 성일침례교회의 성도다.[2] 황교안은 1996년부터 매년 이 교회에서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전칠례 장학금'을 지급해왔다. 전칠례는 1995년에 작고한 어머니의 이름으로, 어려운 학생들을 도와야 한다던 어머니의 뜻을 잇기 위해 장학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 아가페는 민영 교도소 설립을 추진해온 개신교 단체로, 2010년 12월 경기도 여주시(당시 여주군)에 민영 교도소인 '소망교도소'를 개소했으며, 황교안은 2001년 12월부터 2013년 2월까지 아가페의 이사를 맡은 바 있다. 교도소 건립을 위해 본인 명의로 30만원을 헌금했고, 법무법인 로고스는 1,783만 9,000원을 기부한 것으로 아가페소식지에 기재돼 있다.
교도소 안에는 참으로 많은 사람,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수용되어 있다. 이들은 모두 복음의 회복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 교도소 재소자들의 재입소율은 30%가 넘는다. 그런데 브라질의 휴마이타 기독교교도소, 미국 텍사스주 교도소의 기독교교정프로그램(IFI)을 거친 재소자의 재입소율은 5% 미만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재소자들을 기독교 정신으로 교화해야만 확실한 갱생이 가능하다는 것을 실증으로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주님의 복음에는 새롭게 하는 능력이 있다. 엄청난 재범율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복음뿐이다. 이제는 이 땅의 모든 크리스천들이 전국 45개 교도소에 수용되어 있는 60,000여 명의 갇힌 자들을 생각해야 할 때이며 그들을 주님께 인도해야 한다.[48][49]

평가[편집]

검찰 재직 당시 그는 대표적인 '공안통'으로 검찰 내 신망이 높았다.[50]

법무부 장관 재임 시절 추진한 '마을변호사' 제도는 시행 초기에는 실효성이 적다는 비판을 받았으나 시행 자체에 대하여는 지역 주민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51]

2018년 10월 리얼미터에서 범진보와 범보수로 나눠 진영별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를 한 결과, 황교안은 범보수 선호도 1위를 기록했다. 응답자 전체에서는 황교안 전 총리 13.9%, 유승민 전 바른미래당 대표 13.5%를 기록했고,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 무당층 응답자에서는 황교안 전 총리가 28.5%, 유승민 전 대표가 10.7%를 기록했다.[52]

논란과 의혹[편집]

징집 면제 의혹[편집]

황교안은 1977년부터 1979년까지 3차례 징병검사를 연기하다가 1980년 징병 검사 때 ‘만성 담마진’(두드러기 질환)이란 피부병으로 징집 면제 처분을 받았다.[53] 황교안은 징병검사에서 면제판정을 받은 이듬해인 81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점 때문에 잇단 징병검사 연기와 면제 판정 사이의 연관성을 의심받는 상황에서, 황교안이 두드러기 질환 판정을 받기도 전에 징집을 면제 판정을 받은 것이 밝혀져 논란이 되었다. 즉 황교안은 1980년 7월 10일 병원으로부터 두드러기 질환 판정을 받았는데 이미 7월 4일 병무청으로부터 징집 면제 판정을 받은 것이다. 김광진 의원실은 인사청문회 전 "병무청과 병원측에서도 질병에 대한 정밀검사 등을 모두 받은 후 징집면제 판정을 받은 것이 순서인데 황교안은 반대로 병징집제 판정을 받아놓고서 정밀검사를 진행하는 것은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비정상적인 상황이라고 하였다."고 주장하였다.[54] 그리고 군 면제 판정을 받을 정도의 질병을 갖고 사법시험에 합격했다는 점도 의문이라는 지적도 받았는데, 황교안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고시공부를 하는데) 지장을 주는 그런 질환은 아니다"고 해명했다.[55] 당시 군의관이었던 손광식은 "7월 4일 날 정밀검사 보낼 때는 ‘이상’을 찍고, 이 두 칸은 비워 둔 채 정밀검사로 갑니다. 갔다가 정밀검사가 7월 10일 날 결과가 나오면 그다음에 여기 비워 둔, 7월 4일 자에 비워 둔 두 칸에 그 판정을 기록합니다."라고 증언하여 7월 4일 병무청 병징집면제 판정을 받은 것처럼 기재되어 있는 이유에 대하여 설명하였고, "징병검사할 때 일반 신체검사 환자가 거의 대부분이고 이 후보자처럼 면제받는 사람은 극소수라서 그런지 그런 오해를 받도록 이렇게 일반 신체검사용으로 한 라인에다가 좍 써 놨기 때문에 그런 오해가 나옵니다."라고 증언하여 위와 같은 의혹 제기는 오해에 불과하다고 증언하였다.[56]

황교안 총리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병무청 직원인 김용학은 " 당시에는, 84년 이전 당시에는 관련 규정이 없었기 때문에 최초 검사 일자를 면제 일자로 할지 또는 최종적으로 병역 처분한 날짜를 면제 일자로 할지에 대한 규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84년 9월 22일 날 시행령이 개정돼서 ‘군병원으로부터 신체검사를 받은 사람에 대해서는 신체검사를 받은 때에 병역 처분한다’라고 시행령이 바뀌어졌습니다."고 증언하였다.[57] 만성 담마진 판정 전에 징집 면제를 처분을 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병역 비리 의혹이 더욱 짙어지고 있다.[58]

가정폭력 원인 발언[편집]

2004년, 당시 부산지검 동부지청 차장검사이던 황교안은 기독교 신자인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가정폭력의 원인'에 대하여“사실 부산 여자들이 드센 이유도 있다. 반면 남자들은 말싸움이 안되니까 손이 먼저 올라가는 것이고…”라고 했다.[59] 황교안은 총리 인사청문회에서 "그런 오해의 소지가 있는 발언을 한 점에 대해서는 대단히 잘못됐다고 생각을 하고, 그러나 사실은 그 말의 취지를 그 당시의 이야기의 앞뒤를 다 보면 가정폭력의 원인이 술에 있다, 술을 마시고 가정폭력이 일어난다 이 얘기를 했는데 거기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덧붙으면서 이런 불필요한 말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런 불필요한 말을 한 부분에 대해서는 잘못되었음을 말씀드립니다."라며 이해를 구했다.[60]

역사관[편집]

현대사나 정치 현실에 대한 황 후보자의 '인식'도 논란이 됐다. 황교안은 2009년에 쓴 집회시위법 해설서에서 4·19 혁명을 ‘혼란’으로, 5·16 군사쿠데타를 ‘혁명’으로 표현한 바 있다. 2009년 용산참사를 두고는 농성자들의 불법·폭력성이 원인이었다고 서술하기도 했다.[61]

전관 예우 및 전화 변론[편집]

황교안은 16개월 동안 총 119건의 사건을 담당하여 월 평균 6건으로 일반 변호사보다 3배 이상 많이 수임을 한 것이 확인되었고 일반 변호사들도 꺼리는 고소 대리 사건을 수임한 기록도 나와 전관예우 의혹도 제기되었다.[62] 황교안은 2011년 9월부터 법무법인 태평양의 고문변호사로 활동하며, 2013년 1월까지 16개월 동안 월평균 1억원으로 세전을 기준으로 16억원의 급여를 받았다. 과거 황교안이 16개월 동안 재판을 수임한 건수는 단 2건이였고, 2건의 재판은 부동산업자가 투자자들을 속여 땅을 사기분양한 사건이었다는 의혹도 제기된 바가 있었으나[63],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119건을 담당한 사실이 확인되어 위와 같은 의혹 제기는 사실과 다른 것이라는 점이 확인되었다[64]. 황교안은 2013년 2월28일 법무부 장관 후보자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제가 그 많은 급여를 받은 점에 대해서는 거듭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주변 분들이 다 납득할 수 있는 그런 봉사활동과 기여활동을 하겠습니다."고 약속했다. 2015년 6월 9일 인사청문회 둘째 날에 황교안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원을 익명으로 기부한 사실을 공개하며, "장애인단체나 또 해외봉사단체나 이런 데 제가 기부했던 부분들이 있습니다. 있지만 그런 것들을 얘기하고 싶지 않고 아까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도 사실은 제가 그때 익명으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공동회에도 ‘내가 했다는 걸 외부에 알리지 마라’ 그래서 지금까지 안 알렸던 겁니다. 지금은 자꾸 그런 얘기가 나오니까 할 수 없이 제가 신고하고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라고 공개 경위를 설명하였다.[65]

또한, 변호사법 등에 따라 사건을 수임한 변호사는 소속 지방변호사회를 거쳐 검찰이나 법원에 선임계를 제출해야 하지만 황교안은 선임계를 제출하지 않고 수임한 사건이 19건이라는 것이 밝혀짐으로써, 소위 '전화변론(전관 변호사들이 고액의 수임료 수수, 소득 신고 누락에 따른 탈세 등을 위해 사용하는 변칙적인 사건 수임)'을 통해 수사나 재판에 개입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66] 황교안은 2015년 6월 8일 인사청문회에서 "선임계는 변론이라고 하는 게 있습니다. 수사에 나가서 방어를 하거나 또는 법정에 나가서 관여를 하거나 그런 변론이 있을 때 내는 게 선임계입니다. 제가 변론에까지 나가지 않은 단계였"다며 변호사법은 변론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선임계를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므로 변론활동을 하지 않은 이상 변호사법에 위반된 것이 아니라고 답변하였다.[67]

황교안이 인사청문회를 위해 국회에 제출한 자료 중 변호사 시절 사건 수임내용 관련 자료 중 19건이 화이트칠을 해서 제출한 것을 두고 고의적인 인사청문회 방해 행위라는 논란과 함께 '전화변론' 의혹을 받았다.[68] 위 19건은 법조윤리협의회이 법무법인 태평양에 재직중이던 황교안으로부터 담당사건 자료로 신고된 자료 중 19건을 신고 대상이 아닌 자문 사건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국회에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는데, 이홍훈 법조윤리협회회 이사증은 2015년 6월 10일 인사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이게 왜 이렇게 됐는가는 과거에, 전에도 국회 인사청문회에 제출할 때 자료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원칙적으로 89조의9제2항1호의 규정상은 관련 시행령, 변호사법 시행령이라든지 또 변협회에서 수임사건 제출규정 여러 가지를 고려하고 변호사법 3조라든지 여러 가지 규정을 관련해서 봤을 때 이 수임사건을 뭐로 볼 것이냐에 대해서 지금 말씀하신 대로 자문도 포함된다고 하는 그런 논의도 있었지만 법의 규정상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 왜냐하면 비밀유지 의무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넓게 해석했다 자칫 잘못해서 이것이 아니다 할 때는 법조윤리위원 전체가, 위원이라든지 직원이라든지 비밀유지 의무가 있어서 형사 처벌 대상이 되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엄격하게 해석해야 하고 또 이 입법 취지를 저희가, 2013년도에 법을 개정할 때 충분히, 입법을 할 때 과정을 저희가 회의록을 조사해 보고 그 뒤에 우리 법조윤리협의회에서도 ‘이 법은 좀 문제다’ 작년에 세미나에서도 이 부분을 지적했던 부분입니다. 그래서 이미 종전 인사청문회 때 이 법이 저희 법조윤리협의회에서는 정리가 됐기 때문에 이 경우는 수임 사건에 한하자…… 그리고 지금 자문 사건에 대해서는 저희 윤리협의회에 신고하는 변호사가 거의 없는 상황인데 이 사건에 대해서 자문하고 수임사건하고를 같이 해서, 그렇다면 법의 해석에 따라서 수임사건만 국회에 자료 제출해 주는 것이 맞다 해 가지고 그것을 사후에, 지난번에 지금 말씀하신 대로 그날 일요일이 돼 가지고 다 비상임들이라 서면으로 결의를 할 때도 그것에 대한 내용은 충분히 설명을 해 드렸습니다, 수임사건의 범위에 대해서. 그래서 다른 위원들도 대다수가 다 동의를 했고 그래서 국회에 그런 의견을 보냈던 겁니다."라고 증언하였다[69].

과도한 의전[편집]

권한대행시절 대통령의 범죄와 탄핵이라는 불행한 사건으로 권한대행에 임명되었는데 본인의 취임을 기념하는 기념시계등을 만들어 배포하여 논란이 되고 있다.[70]

법무부장관 인사청문회 위증 논란[편집]

2013년 2월 열린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황교안은 "(내가 수임한 사건은) 선임계를 다 제출했다"고 하며 '101건'의 사건수임 내역을 공개하였다. 그러나 2015년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법조윤리협의회는 황교안이 선임계를 제출하지 않고 수임한 사건까지 포함하여 '119건'의 사건수임 내역을 제출함으로써 위증이 논란이 되었다.[71] 황교안은 이에 대해 2015년 6월 8일 인사청문회에서

"제가 설명하려고 했던 부분은 아까 다른 위원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법인에서 수임한 사건, 선임한 사건, 선임계를 낸 사건, 담당한 사건, 이런 얘기들을 막 섞어서 얘기를 하면서 위원님과 제 사이에 질의와 답변이 오가면서 혼선이 있었습니다. 그 부분을 정리하자면 제가 담당한 사건은 119건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는 송무사건이 있고 자문사건이 있습니다. 송무사건 중에서 변론을 한 사건들에 관해서는 빠짐없이 선임계를 냈다, 이것이 제가 말씀드린 전제의 취지였습니다.", "위원님께서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용어가 많이 혼선을 빚으면서 설명들이 복잡해진 측면이 있습니다. 지난 청문회에서 ‘101건에 대해서 선임계가 다 제출이 되어 있느냐’ 이런 질문이 있었고 제가 답변한 내용은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이런 내용으로 정정해서 말씀을 드린 것이 있습니다. 맨 처음에 ‘그렇습니다’라고 말을 했는데 ‘그렇습니다’라는 말이 좀 부정확한 표현이어서 제가 그때 분명하게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는 제가 수임자료를 보관하고 있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정확하게 몇 건을 담당하였는지에 대해서 답변을 드릴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담당 변호사로 선임된 사건들은 선임계를 다 낸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취지의 말씀을 드린 것이었는데, 그래서 제가 그 기억을 토대로 해서 답변을 드린다는 점을 말씀을 드렸던 것이었습니다. 당시에 그 선임계 제출에 대해서 말씀드린 취지는 거듭 말씀드리지만 제가 담당한 모든 사건에서 선임계가 제출되었다는 것이 아니고 변론을 한 경우에는 모두 제출되었다 이런 말씀을 거듭 드린 것입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그것이 막 여러 용어들이 혼선되면서 부정확하게 그렇게 표현이 된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제가 법조윤리협의회에 제출한 119건 이것은 전부 송무사건과 제가 맡았던 순수 자문사건 이런 것을 다 포함한 그런 총수입니다. 뭘 숨기고 가리고 할 것이 없이 제가 담당했던 사건을 다 제출한 것입니다. 그중에 송무사건의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변호인선임서가 제출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직접 변론 활동을 하는 단계까지 진행되지 않은 경우에는 변론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변호인선임서가 제출되지 않게 되는 수도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 관해서 혼선이 좀 있었는데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라고 설명하였다.

2013년 2월 28일 장관청문회 당시 황교안은 "후보자가 보관하고 있던 업무자료나 기억 등을 토대로 검토하여 본바 법무법인 재직기간 중에 팀 소속 변호사를 총괄 지휘하면서 변론계획 수립, 법리 검토, 의견서 작성 제출 등으로 담당한 사건 내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형사사건 54건, 민사, 상사, 가사, 행정사건 47건, 합계 101건, 그 외에도 수시로 법률자문 업무를 수행하였습니다."라는 서면 답변 자료를 제출하였는데, 당시 국회회의록에 의하면 기억에 의존하여 자료를 제출하는 것이라는 단서를 전제로 답변서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된다[72].

법무부장관 임명 축하금 1억1714만 원 논란[편집]

황교안이 2013년 2월13일 법무부장관에 지명된 후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사직한 2013년 2월 18일까지 5일간 지급받은 상여금 96,627,000원과 급여 6,433,928원을 받았는데 이 돈의 성격이 논란이 되었다.[73] 정의당 박원석 의원은 "법무법인 태평양이 장관 취임 '축하금'을 줬거나, 일종의 '보험료'를 낸 것으로 뼛속까지 전관예우를 받은것으로 보인다"라고 지적했다.[74] 황교안은 총리 인사청문회 당시 서면 답변 자료를 통해 "2월 13일 날 지명을 하셨고 2월 18일까지 기존 업무 정리, 인수인계 등의 일을 했다"고 답변하였고, 인사청문회 첫날인 2015년 6월 8일 "한 달 18일을 근무를 했고 일을 했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에 있었던 성과급이 지급된 겁니다. 그 이전의 지급 내역과 비교해 보시면 위원들께서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라며 성과급 및 급여 지급 과정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해명하였다.[75]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무마[편집]

2013년,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를 진행중이던 채동욱 검찰총장과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2012년 대선 당시 댓글 등을 통해 정치에 관여했다고 판단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려 했으나, 황교안이 “증거가 충분치 않다”며 보류했다. 당시 수사팀장이던 윤석열 부장검사가 직속상관인 조영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에게 항명하는 사태가 전개됐다. 황교안은 윤석열 부장검사와 박형철 검사에게 징계를 내린 후 각각 대구고검과 대전고검으로 좌천시켰다. 그리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는 걸 끝까지 반대했다.[76] 그러나 2015년 2월 서울고등법원은 황교안의 판단과는 달리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대선 개입을 유죄로 인정해 징역 3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한편 2013년 9월,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이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를 지휘하던 중 ‘혼외자’ 의혹이 불거지자 황교안 장관은 채동욱 총장 감찰을 지시했는데, 이는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 감찰을 지시한 첫 사례다.[77]

기무사 반란계획 책임논란[편집]

황교안이 대통령 권한대행이던 시절 기무사에서 불법 계엄령을 준비했던게 다량의 문서로 확인되면서 당시 정부수장인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한 책임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더불어 계엄령 계획문서에는 대통령 권한대행의 서명란도 확인되어 황교안도 이 반란에 참여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전관 예우 수익 기부[편집]

황교안은 국무총리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본인과 아내, 최근 결혼한 딸 한명(아들 재산은 공개 거부)의 재산으로 모두 22억9835만원을 신고했다. 2013년 법무부 장관 후보자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전관예우로 번 돈을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던 황교안은 2013년에 낸 법정기부금 1억110만여원, 지정기부금 1568만여원을 기부하였고 2014년에는 법정기부금 305만여원과 지정기부금 1036만여원을 기부했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 황 후보자가 전관예우로 수익의 ‘십일조’에도 못미치는 액수인 1억3000여만원 정도만 기부한 것을 두고 '찔끔 기부'라는 비판을 받으며 기부약속을 지킨것인지 안 지킨것인지 논란이 일었다.[78]

재산 신고 누락[편집]

황교안의 아내 최지영의 금융자산이 최근 6년간 6억 원 이상 늘어난 것으로 확인되면서 재산신고 누락 의혹이 제기됐다. 황교안이 창원지검장으로 재직하던 2009년 최 모 씨의 금융자산은 2,325만 원이었지만 2014년 12월 31일 기준 금융자산은 6억 5153만 원으로 신고되었다. 황교안의 인사청문회를 돕고 있는 국무총리실은 “대학에서 일하는 후보자 아내의 급여와 저축 등으로 금융자산이 증가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최지영의 소득은 6년간 연평균 5,000여만원이고 최씨 소유의 경기도 용인 아파트 전세보증금은 6년 동안 1억 8900만 원 올랐을 뿐이라, 불투명한 소득이 있었거나 황교안이 이전에 소득 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79]

현역 부장검사 2명, 황교안 인사청문회 지원 논란[편집]

법무부가 황교안 총리후보자 청문회 지원을 위해 정수봉 부산지검 동부지청 형사1부장과 권순정 의정부지검 형사5부장 등 현역 부장검사 두 명을 포함한 지원팀을 꾸려 국무총리실 청문회 지원단에 파견하기로 해 논란이 일었다.[80]

특검 파견[편집]

조폐공사 파업 유도 특검 당시 특검보를 했던 김형태 변호사는 "진형구가 '조폐공사 사장을 시켜 파업을 유도했다'는 사실을 본인이 떠들었고, 이를 뒷받침 되는 증거인 공문서가 많아서 충분히 기소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수사 대상 검사들이 쳐들어와 '자료를 내놓으라'고 하는 과정에서 강원일 특검이 이를 막아주지 않아 나는 사실상 쫓겨난 셈이다. 내가 사퇴하자 검찰 출신 중심 특검은 공안부장의 파업 유도 자백은 취중 거짓말이고 공문서도 허위라고 이상한 결론을 내버렸다. 그 과정에 황교안 특검 파견 검사가 있었다."고 말했다.[81]

경남FC 경기장내 선거유세 논란[편집]

황교안 대표가 창원성산 보궐선거기간에 경남FC 홈경기장 안에서 선거운동을 해 경기장 내 선거운동을 금지한 축구협회와 프로축구연맹 규정을 어겨 논란이 되고 있다. 황교안 대표는 강기윤 후보와 함께 경기장 밖에서 시민들과 인사를 나눈 후 경기장 안에까지 들어갔으며 당시 황교안대표는 한국당 당명이 적힌 붉은 점퍼를, 강기윤 후보는 당명과 당 선거기호인 2번, 자신의 이름이 적힌 붉은 점퍼를 입고 있었다. 이 같은 행동은 경기장 내 정치적 행위를 금지한 축구협회와 프로축구연맹 지침에 어긋난다.규정에 따르면 선거 입후보자는 개별적으로 티켓을 산 후 경기장으로 입장할 수 있다. 그러나 경기장 안에선 정당명, 기호, 번호 등이 노출된 의상을 입을 수 없다. 또 정당명, 후보명, 기호, 번호 등이 적힌 피켓, 어깨띠, 현수막 노출과 명함, 광고지 배포도 할 수 없다.이를 어기면 홈팀에 10점 이상의 승점 감점, 무관중 홈경기, 2천만원 이상 제재금 등의 벌칙이 따른다.[82] 다른 정당들도 같은날 선거운동을 위하여 경남FC 경기장을 찾았으나 경기장 밖에서 유세를 하는것으로 그쳤다. 경남FC측은 “경기 당일 경호업체가 황 대표 측에 정당명, 기호명, 후보자명이 표기된 상의는 입장불가로 공지를 했다. 일부 유세원들은 검표원이 ‘입장권 없이 못 들어간다’고 얘기했지만 이를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들어가면서 상의도 벗지 않았다”면서 “‘경기장 내에서 선거유세를 하면 안 된다’, ‘규정에 위반된 행동이다’ 등 만류했지만 강 후보 측은 이를 무시한 채 선거운동을 계속 진행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83] 경남FC 측은 강 후보 측에 도의적 책임과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강조했다. 경남 FC는 황교안 대표를 비롯한 자유한국당의 경기장내 유세로 상벌위원회에 회부되어 제재금 2000만원의 징계를 받았다.[84] 자유한국당측에 대납을 요청하였지만[85] 황교안 대표는 선거법에 걸릴 수 있다면서 2000만원을 낼 의사가 없다는것을 밝혔다.[86]

아들의 특혜 논란[편집]

황교안 아들은 서울고와 연세대 법대를 졸업했다. 학점 4.3 만점에 3.29, 토익은 925점, 컴퓨터 관련 여러 자격증 등을 소유했다.[87]

황교안 아들은 KT 입사과정에서 "1차 실무면접"에서 다수의 면접관으로부터 'C' 를 받았다. 최종 관문인 임원면접에서 면접관 4명 모두로부터 'A' 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87]

황교안 아들은 마케팅 직군으로 입사한 지 10개월만에 법무실로 배치됐다.[87] 보통 신입사원의 경우 최소 2년 정도 지나야 본인의 희망부서와 회사 상황 등을 고려해 인사이동이 이뤄진다.

황교안 아들이 법무실로 이동할 때 '윤리경영실장'이 "정성복" 전 검사였으며, 법무실장은 황교안이 검사시절 함께 일한 후배였다. '정성복'은 황교안이 검사 시절 성남지청장 후임으로 왔던 인물이다.[87]

2019년 6월 19일 숙명여대를 찾아 ‘스펙’이 없이도 기업이 원하는 특정 역량을 갖추면 대기업에 취업할 수 있다며 KT에 취업한 자신의 아들을 사례를 들었다.[87] 이 때 아들의 학점과 영어성적을 낮춰서 이야기했다는 것이 알려져서 논란이 됐다.

2019년 6월 24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낮은 점수를 높였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 반대(여서 문제가 없다)”라고 해명했다.[87]

삼성 금전 수수 의혹[편집]

2013년 10월 17일 열린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새정치민주연합 박범계 의원은 황교안의 이름이 2002년 삼성 떡값 명단에 들어있으며 떡값 액수는 500만 원이라고 하였다. 김용철 변호사(전 삼성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가 2007년 삼성 비자금 폭로에 앞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앞에서 작성한 자술서에 의하면 2002년 당시 황교안이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장이 되면서 삼성의 관리를 받았다는 이야기였다. 황교안은 "떡값 명단의 발원지는 모두 김용철 변호사인데 그분의 말에 대해서는 2007년 특검에서 다 조사를 했고, 특검에서는 '혐의 없다'라고 발표를 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2013년 11월 13일 열린 김진태 검찰총장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신경민 의원이 '삼성 특검' 수사 자료를 공개했는데, 황교안이 2002년부터 2003년까지 1년에 2, 3회, 각 500만 원, 많게는 2000만 원까지 떡값을 수수한 것으로 나타나 있는 일명 '삼성 떡값 리스트' 문건이었다. 황교안은 '삼성 떡값' 연루 의혹을 극구 부인하였다.[88]

학력[편집]

경력[편집]

2017년 4월 방한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환담하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 1981년 : 제23회 사법시험 합격
  • 제13기 사법연수원
  • 1983.08~ 1986.04 : 청주지방검찰청 검사
  • 1986.04 ~ 1987.06 : 대전지방검찰청 홍성지청 검사
  • 1987.06 ~ 1990.02 : 서울지방검찰청 공안1부 검사
  • 1990.02 ~ 1992.08 : 대검찰청 연구관
  • 1992.08 ~ 1994.09 :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 1994.09 ~ 1995.09 : 법무연수원 교관
  • 1995.09 ~ 1997.02 :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 청장
  • 1997.02 ~ 1999.06 : 사법연수원 교수
  • 1999.06 ~ 2000.02 : 서울지방검찰청 북부지청 형사5부 부장검사
  • 2000.02 ~ 2000.07 : 대검찰청 공안3과장
  • 2000.07 ~ 2001.06 : 대검찰청 공안1과장
  • 2001.06 ~ 2002.02 : 서울지방검찰청 컴퓨터수사부 부장검사
  • 2002.02 ~ 2003.03 : 서울지방검찰청 공안2부 부장검사
  • 2003.03 ~ 2004.05 : 부산지방검찰청 동부지청 차장검사
  • 2004.06 ~ 2005.04 : 서울고등검찰청 검사
  • 2005.04 ~ 2006.02 :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제2차장검사
  • 2006.02 ~ 2007.03 :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 지청장
  • 2007.03 ~ 2008.03 : 법무부 정책기획단장
  • 2008.03 ~ 2009.01 : 법무연수원 기획부장
  • 2009.01 ~ 2009.08 : 창원지방검찰청 검사장
  • 2009.08 ~ 2011.01 : 대구고등검찰청 검사장
  • 2011.01 ~ 2011.08 : 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
  • 2011.09 ~ 2013.02 : 법무법인 태평양 형사부문 고문 변호사
  • 2011.12 ~ 2012.05 : 선거방송심의위원회 위원장
  • 2012.07 ~ 2013.03 : CBS 자문위원
  • 2013.03 ~ 2015.06 : 제63대 법무부 장관
  • 2015.06 ~ 2017.05 : 제44대 대한민국 국무총리
  • 2015.06 ~ 2017.05 : 광복7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정부위원장
  • 2015.11 : 김영삼 전 대통령 국가장 장의위원장
  • 2016.12 ~ 2017.05 : 대한민국 대통령 권한대행
  • 2019.02 ~ : 자유한국당 당대표

저서[편집]

  • 《황교안의 답》, (여운 2018년), ISBN 9791187453215
  • 《교회와 법이야기》, (요단출판사, 2012년), ISBN 9788935014262
  • 《국가보안법》, (박영사, 2011년), ISBN 9788964547199
  • 《집회 시위법 해설》, (박영사, 2009년), ISBN 9788971899434
  • 《법률용어사전 2009》, (청림출판, 2009년), ISBN 9788935203666
  • 《국가보안법 해설》, (집영출판사, 1998년), ISBN 8987320073
  • 《종교활동과 분쟁의 법률지식》, (청림출판, 1998년), ISBN 9788935203369
  • 《검사님 이럴땐 어떻게 해야 되나요》, (만나, 1994년), ISBN 8975960153

수상[편집]

  • 성균관대학교 총동문회가 2018년 자랑스러운 성균관인으로 선정했지만 재학생과 졸업생 중심으로 수상 반대 서명운동이 전개되자 시상식이 예정된 1월 11일 시상식에 불참했다.

각주[편집]

  1. “황교안”. 《조선일보》. 
  2. 황교안, 서울 목동 성일교회에서 17년간 장학금 기여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6933484.  |제목=이(가) 없거나 비었음 (도움말) 《국민일보》 2013년 2월 15일 정현수 기자
  3. 링크
  4. 홍영식 (2017년 2월 12일). “보수층서 불지피는 '황교안 대망론'…황의 권력 의지에 달렸다”. 한국경제신문. 
  5. 김준영 (2019년 2월 27일). “피난민 고물상 아들에서 보수진영 리더로 부상한 황교안”. 중앙일보. 
  6. 김태완 (2019년 2월 19일). “황교안 前 총리의 새로운 도전은 성공할 것인가”. 월간조선. 
  7. 본관은 창원이고 공희공파다.
  8. “황교안 법무부장관 국무총리 내정”. 이북도민연합신문. 2015년 6월 9일. 
  9. 윤여군 (2017년 3월 10일). “[사람과사람들] 대통령 후보와 강화사람···조봉암, 안상수, 황교안”. 강화뉴스. 
  10. “별명은 '미스터 국가보안법'…황교안 후보자는 누구?”. 2015년 5월 26일. 
  11. 황교안,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때 “이명박 추한 모습” 미디어오늘 2015.05.28.
  12. 차동민 서울고검장, 조근호 법무연수원장 검사 생활 마감 노컷뉴스 2011년 08월 02일자
  13. 대구고검, 공정사회 이끈다
  14. [1]
  15. 황교안"김대중·노무현" vs 문창극"일본지배"..교회 강연은 공직자 무덤?
  16. 황교안 누구?…‘삼성 X파일’ 때 삼성쪽 인사 모두 불기소《한겨레》2015년 5월 21일 김원철·정환봉 기자
  17. 새 정부 법무장관에 황교안, 국방부장관에 김병관
  18. 연말부터 형사사건 수요 급증 겨냥 서울경제 2011-10-03
  19. 19대 총선 앞두고 선거방송심의위 구성
  20. 19대 총선 방송심의위 구성 문화일보 2011년 12월 15일자
  21. 종북 틈타 간첩사건 언론들 받아쓰기 광풍 미디어오늘 2012.06.07
  22. 황교안 법무장관에 열광하는 보수·중장년층
  23. 헌법가치 수호와 법질서 확립의 첨병에 선 황교안 장관《아시아투데이》2015년 1월 7일
  24. 이석기 체포동의안 통과 - 황교안 “이석기는 지하혁명조직 총책” … 野도 체포동의 당론 찬성《한국경제》2013년 9월 5일
  25. '압수수색부터 1심 판결까지《YTN》2014년 2월 3일
  26. 이석기 내란 음모 혐의 인정돼…징역 12년《한겨레》2014년 2월 17일 이정애 기자
  27. RO 내란음모 항소심 재판부, 이석기 의원 징역 9년 선고…'내란 선동' 인정, '내란음모' 무죄《조선일보》2014년 8월 11일 이정원 기자
  28. [이석기 확정 판결] 130명 회합 목적은 폭동… RO, 의심은 들지만 내란음모는 無罪《조선일보》2015년 1월 23일 양은경 기자
  29. '통진당 해산심판 첫 변론“대한민국 파괴"vs"민주주의 후퇴“ 장관 - 당 대표 맞붙다《동아일보》2014년 1월 29일 최예나 기자
  30. 황교안 “작은 개미굴이 둑 전체 무너뜨린다《중앙일보》2014년 11월 26일 박민제·이유정 기자
  31. 통진당 해산심판 최종변론 - 황교안 법무부장관《중앙일보》2014년 11월 26일 심서현 기자
  32. 통진당, 북한식 공산주의 추종”…‘헌정 초유’ 해산 선고. 헌재, 8대1로…소속 5명 모두 의원직 박탈《문화일보》2014년 12월 19일 김병채·김동하 기자
  33. 새 총리 후보자 황교안은…朴정부 초대 내각 멤버, 외유내강형 ‘공안통’ Archived 2015년 5월 27일 - 웨이백 머신《국민일보》2015년 5월 21일 김현섭 기자
  34. <공지→연기→재공지> 황교안 총리 후보자 지명 둘러싼 ‘미스터리’《일요서울》2015년 5월 26일 박형남 기자
  35. “황교안 권한대행, 불출마 결정한 3가지 이유”. 
  36. 강병철 (2017년 5월 11일). “文 대통령, 황교안 총리·박승춘 보훈처장 사표 수리”. 《연합뉴스》. 
  37. "요셉 같은 총리" 황교안 간증 집회
  38. “황교안에게 ‘참된 보수’란···수필집 ‘황교안의 답’ 출간”. 2018년 8월 21일. 
  39. “황교안 ‘보수 지지 1위’라는 질문에 “많은 의견 듣고 있다””. 2018년 9월 7일. 
  40. “황교안 "지난 정부 모든 공무원 적폐몰이…나라상황 총체적난국". 연합뉴스. 2019년 1월 15일. 
  41. 최형규 (2019년 2월 28일). “황교안, '압도적 지지'로 당대표 선출…"한국당은 원팀". 《MBN》. 
  42. [2]
  43. [3]
  44. 조계종 “황교안 대표, 내 신앙 우선이면 공당 대표 내려놓으라"
  45. 광화문집회서 밤샌 황교안 "똘똘 뭉쳐서 文정권 이겨내자"
  46. 황교안 "계엄령 문건? '계'자도 못 들었다…오늘 고소·고발"
  47. 법무부 장관 내정자 황교안, 불법도청 수사 지휘… 검찰내 대표적 공안통 Archived 2015년 5월 22일 - 웨이백 머신 《서울신문》 2013년 2월 13일
  48. 황교안 "재소자는 기독교로 교화해야 확실한 갱생" 《프레시안》 2013년 2월 15일 선명수 기자
  49. 황교안 "기독교정신으로 확실한 갱생 가능" 《불교닷컴》 2013년 2월 15일
  50. 검찰총장 동기들 속속 대형로펌行 매일경제 2011.10.09
  51. 마을변호사, 취지는 좋은데 상담실적은 ‘글쎄’《연합뉴스》2013년 8월 27일 손상원 기자
  52. “리얼미터 "이낙연·황교안, 범 진보·보수진영 대선주자 선호도 1위". 《중앙일보》. 2018년 10월 5일. 
  53. 황교안, ‘두드러기’ 병역면제…공안통 ‘Mr 국보법 《고발뉴스》 2013년 2월 14일
  54. 새정치 김광진 “황교안 두드러기 판정 받기도 전에 이미 병역면제 결정 받아” 《경향신문》 2015년 6월 5일
  55. 황교안, 3차례 징병검사 연기 후에 '두드러기'로 병역면제 쟁점 《한국일보》 2013년 2월 15일
  56. http://likms.assembly.go.kr/record/mhs-10-050.do
  57. http://likms.assembly.go.kr/record/mhs-10-050.do
  58. 황교안, '만성 담마진' 판정 전에 병역 면제 《오마이뉴스》 2015년 6월 4일
  59. "부산 여자가 드세서".. 황교안, 이번엔 '여성 비하' 논란《오마이뉴스》2015년 5월 26일 강민수 기자
  60. http://likms.assembly.go.kr/record/mhs-10-050.do
  61. 황교안, ‘대선 댓글’ 원세훈 영장 청구 막고…채동욱 솎아내고…《한겨레》2015년 5월 21일 노현웅·이승준 기자
  62. 황교안 과거 수임 실적 봤더니…'일반 변호사의 3배'《JTBC》2015년 6월 4일 공다훈 기자
  63. 황교안 후보자, 한달에 3억원을 어떻게 벌었을까? 《민중의소리》 2013년 2월 17일 정웅재 기자
  64. http://www.sisafoc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4025
  65. http://likms.assembly.go.kr/record/mhs-60-010.do#none
  66. 전화변론, 황교안 발목 잡을까 《오마이뉴스》 2015년 6월 3일 구영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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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 "황교안 과거 수임내역 19건 삭제" 청문회 뇌관 부상《JTBC》2015년 6월 1일 안의근 기자
  69. http://likms.assembly.go.kr/record/mhs-60-010.do#none
  70. “황교안 권한대행 기념시계 논란 “혹시 대통령 놀이? 명패· 의전· 시계까지””. 
  71. "선임계 다 제출"... 2년 전 황교안의 '위증 의혹' 《오마이뉴스》 2015년 6월 2일 구영식 기자
  72. http://likms.assembly.go.kr/record/mhs-60-010.do#none
  73. 박원석 "황교안, 법무장관 지명 후 태평양서 축하금 1억원 받아" 《뉴시스》 2015년 6월 1일 김용갑 기자
  74. 장관 지명 후 추가로 받은 1억원은 '축하금'? 《오마이뉴스》 2015년 6월 1일 구영식 기자
  75. http://likms.assembly.go.kr/record/mhs-60-010.do#none
  76. 황교안 후보자, 검사·법무장관 시절 맡은 주요사건《세계일보》2015년 5월 24일 김태훈 기자
  77. 황교안, ‘대선 댓글’ 원세훈 영장 청구 막고…채동욱 솎아내고…《한겨레》2015년 5월 21일 노현웅·이승준 기자
  78. ‘수임료 16억’ 황교안 1억만 기부…시늉만 낸 ‘찔끔 기부’《한겨레》2015년 5월 27일 김성환 기자
  79. 黃 부인 금융자산 6년새 6억원↑…野 “재테크의 달인… 해명하라”《서울신문》2015년 5월 28일 임일영 기자
  80. 현역 부장검사 2명, 황교안 인사청문회 지원 논란《뷰스앤뉴스》2015년 5월 24일 최병성 기자
  81. [4]
  82. 이슬기 (2019년 3월 31일). “황교안, 축구경기장 안 선거유세…경남FC 벌칙 위기(종합)”. 2019년 4월 7일에 확인함. 
  83. "규정? 그런 게 어딨어" 경남FC 제재에도 막무가내 황교안 대표와 자유한국당”. 20190401154526. 2019년 4월 7일에 확인함. 
  84. 입력: 2019.04.02 17:59:00 (2019년 4월 2일). '황교안 경기장 유세' 경남FC에 제재금 2000만원 징계”. 2019년 4월 7일에 확인함. 
  85. 이준범. '2천만 원' 벌 받은 경남FC…"한국당이 내라". 2019년 4월 7일에 확인함. 
  86. “황교안 뼈아픈 ‘창원 자책골’… 경남FC 벌금 대납 질문에 한 말”. 2019년 4월 4일. 2019년 4월 7일에 확인함. 
  87. “황교안 아들, KT 임원면접 '올A'…10개월만에 법무실行”. 2019년 6월 24일. 2019년 6월 29일에 확인함. 
  88. 황교안, 삼성 앞에만 서면 왜 작아지는가 《오마이뉴스》 2015년 6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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