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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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출생 1961년 1월 4일(1961-01-04) (55세)
대한민국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수동
거주지 대한민국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혜화동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본관 해주
학력 고려대학교 대학원 법학 박사
직업 변호사
정치인
소속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변호사)
현직 고려대학교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석좌교수
전직 서울특별시장
국회의원
정당 새누리당
종교 천주교 (세례명 : 스테파노)
배우자 송현옥
자녀 슬하 2녀
친척 1남 1녀 중 장남
웹사이트 페이스북 페이지

오세훈(吳世勳, 1961년 1월 4일 ~ )은 대한민국변호사이자 정치인으로 민선 4·5기 제33·34대 서울특별시장을 역임했다.

2000년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발탁해 16대 총선에서 서울 강남을에 출마하여 정계에 입문했다. 제16대 국회의원 임기 말에는 5·6공 용퇴론을 주장하며 한나라당의 인적 쇄신을 요구하였다.[1] 정치개혁특위 간사를 맡아 깨끗하고 투명한 선거를 목적으로 한 이른바 ‘오세훈 선거법’으로 불리는 3개 정치관계법 개정을 주도했다.[2] 2006년 서울시장에 당선되어 2011년까지 서울특별시장을 연임하며 창의시정과 디자인 서울을 주요 정책으로 하였고, 청렴도 향상, 강남북 균형발전, 서울형 복지정책, 대기환경 개선, 장기전세주택 시프트 건립 등에 주력하였으며, 다산 콜 센터를 도입하였다. 2011년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선별적 복지를 주장하며 서울시 무상 급식 정책에서 주민 투표를 제안하고 패배할 경우 시장직에서 사퇴하겠다고 밝혔으며, 투표율이 미달되자 시장직을 사퇴하였다. 20대 총선에서 서울특별시 종로구를 지역구로 삼아 출마하였으나 더불어민주당정세균이 당선되면서 낙선하였다.[3]

생애[편집]

생애 초반[편집]

학창 시절[편집]

오세훈은 1961년 1월 4일서울 성수동에서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4] 오세훈은 이 당시를 "산꼭대기 동네에 살면서 호롱불 켜고 우물물 길러 다니면서 학원도 못 다닐 정도로 어려운 집안 형편이었으며, 숙제는 해가 지기 전에 미리 끝내고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라고 회고했다.[5] 오세훈은 조선 인조 때 청백리에 녹선된 영의정 추탄(楸灘) 오윤겸(吳允謙)의 후손으로 해주 오씨 추탄공파는 경기도 용인시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가문이다.[6] 오세훈의 선대는 중국 송나라에서 고려에 귀화하여 황해도 해주에서 세계를 이어오다가 경기도로 이주하여 경기도 용인에서 10대째 살아온 집안이며,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회억리에 조부모와 조상의 선산을 두고 있다.[7]

고교 3학년 무렵인 1978년에 배우자인 송현옥의 오빠인 송상호와 짝이 되었다. 송상호는 오세훈보다는 한 학년 위였지만 몸이 좋지 않아 한 해 학교를 쉰 뒤 3학년으로 복학했다. 오세훈은 수술 후유증으로 학교를 자주 빠지던 송상호의 숙제를 위해 그 집을 자주 찾았고 여기서 그는 송상호의 여동생인 송현옥과 만났다. 그 뒤 송현옥과 같은 대학에서 만나 대학 커플로 이어지고 후에 결혼하게 된다. 1979년에 고교 졸업 후 고려대학교 영문학과에 지원했으나 낙방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에 입학하였으며, 이듬해 고려대학교 법대로 편입하였다.[8]

사법시험 합격과 군 복무, 대학원 생활[편집]

1980년대 초반 사법시험 준비에 매진한 끝에 1984년 제26회 사법시험에 합격한다. 그 뒤 사법연수원에 17기로 입소하여 수료하고 육군에 입대했다. 고시 합격생 장교 임용에 따라 그는 육군 소위로 임관되었다. 당시 오세훈은 법무장교로 지원했으나 합격성적이 낮아 법무관이 못되어 보안사령부(현 국군기무사령부) 정보처(2처)에 전속되어 정훈장교로 복무하였다.

예편 이후 고려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하여 상법을 전공하여 1990년 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변호사를 개업했고, 동 대학의 박사과정에 진학하여 1999년 법학 박사 학위를 받는다.

변호사, 교육자 시절[편집]

변호사 개업 후에 1991년 부평 모 아파트에서 동과 동 사이의 거리가 너무 좁아 대낮에도 형광등을 켜야 할 정도로 심각하여 주민들은 일조권이 침해받고 있다며 집단 소송에 나선다. 오세훈 변호사를 법률대리인으로 선임하여 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해, 건설사로부터 13억원의 손해배상을 받았다. 또한 구로구의 재건축현장도 비슷한 문제가 제기되어, 법원에서 공사중지처분을 이끌어낸다. 이는 헌법 조문상으로만 존재했던 환경권이 실질적 권리로 인정받은 대한민국 최초의 사건이였고, 오세훈 변호사는 국내에서 몇 안되는 환경변호사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최열 대표와 환경운동연합의 창립멤버로 참여했고, 1992년 2월 환경운동연합 시민상담실 실장이 되었다.당시 30대의 젊은 변호사가 대기업을 상대로 승소한 이 사건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이라 매체에서 보도되었는데 이로 인해 각종 TV와 뉴스 등에서 인터뷰 요청이 끊이지 않았다. MBC뉴스 아나운서였던 손석희(현 JTBC보도부문 사장)과 인터뷰 도중 한 PD가 오세훈 변호사에게 방송출연을 권유하였는데 이 프로그램이 '오변호사 배변호사'였다.

당시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존재하던 '변호사'라는 직업은 대체로 친근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184cm의 큰 키와 준수한 외모의 젊은 변호사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배금자 변호사와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였다. 더구나 일반 예능 프로그램이 아닌, 공익 법률TV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차분한 언변으로 알기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여 시청자들에게 좋은 호응을 이끌어내었다. 이 프로그램으로 인해 오세훈 변호사는 유능하고 젊은 변호사라는 이미지와 더불어, 부드럽고 편안한 이미지의 방송 진행자라는 이미지를 겸하게 되었다. 방송 내용을 수필로 엮은 저서 '가끔은 변호사도 울고 싶다'는 TV프로그램의 인기와 더불어, 서점 종합 베스트셀러에 진입하기도 하였다.

이에 가세하여, 남성 정장브랜드 '로가디스'에서는, TV광고 첫 모델을 오세훈 변호사를 사용하게 되었다. 당시 탑 모델이나 배우가 아닌 일반인을 정장 모델로 사용한 로가디스의 도박은, 오세훈 변호사가 광고에서 전달한 '편안하고 품격있는 멋'을 통하여 남성들에게 어필하여, 성공적으로 첫 TV광고를 마치게 되었다. 그 이후 1996년에는 당시 동아일보에서 조사한 결혼하고 싶은 남성(상) 순위에서 배우 이병헌을 제치기도 하는 모습을 보였다.

1996년 5월에는 시사저널 지 편집자문위원에 위촉된 뒤, 10월에는 SBS 다큐멘터리 그것이 알고 싶다의 진행자로 발탁되었다.[9] 그리하여 1996년부터 1997년 9월, 다시 문성근씨가 그것이 알고싶다 진행자로 복귀하기 전까지[10] 1년간 sbs 다큐멘터리 그것이 알고싶다의 진행자를 맡게 됐다. 이 기간 중 이권단체들로부터 회유와 협박을 받았지만 굴복하지 않고 방송을 진행해 나갔다. 그는 이 프로그램 외에도 '갑론을박 동서남북' 오늘과 내일' 등과같은 TV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방송계 커리어를 쌓아나갔다.

1995년 대한변호사협회 환경문제연구위원회 의원을 역임했고, 1996년부터 2000년까지 환경운동연합 법률위원회 위원장 겸 상임집행위원을 지냈다. 또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환경위원으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1997년 9월부터 1998년 2월까지 숙명여대 법학과에서 민사소송법의 겸임 교수로 일했고, 1998년 1월부터 1998년 12월까지는 미국 예일 대학교에서 Law School Visiting Scholar로 있었다.

1999년 이장호, 김기수와 함께 합동법률사무소를 개업했으며 1999년 3월 다시 숙명여자대학교 법학과 민사소송법 겸임교수로 위촉되었다. 그리고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매맞는 여성의 쉼터)에서 공익변호사로서 무료법률상담을 하기도 하였으며, 2000년부터 환경운동연합 법률위원장 겸 상임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정치 활동[편집]

정계 입문 초기[편집]

2000년 4월 당시 한나라당 소속으로 제16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서울 강남구 공천을 받아 16대 국회의원이 되었으며, 2003년 한나라당 원내부총무 등을 역임했다.

2000년 환경운동연합 법률위원회 위원장 겸 상임집행위원 등을 지냈다. 2002년 제일국제법률사무소 및 김장리 법률사무소에서 변호사로 근무했고 2004년 법무법인 지성에서 대표변호사를 역임했다.

이후 한나라당 당내 소장파 의원 모임인 '미래를 위한 청년연대'(미래연대)에 가담하여 활동하다가 2001년 6월 미래연대의 공동대표로 선출되어 2002년 9월까지 대표로 있었다.

2003년 2월 환경재단 136포럼 운영위원에 위촉되었고, 그해 7월 한나라당 청년위원회 위원장에 위촉되고, 바로 한나라당 최고위원, 운영위원회 상임운영위원을 겸임하였다.

2003년 제 20회 코리아 베스트드레서 정치인부문을 수상하였다

16대 국회의원 시절[편집]

2003년 바로 국회 환경 노동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2003년 9월 4일 오세훈은 한나라당 의원 연찬회에서 다른 소장파들과 함께 "민주화 세대에게 한나라당은 5·6공 잔존세력에 불과하다"며 "5·6공 이미지를 가진 선배들을 향해 용퇴해달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11] 여기에 원로 인사들은 반발했고, 김용갑 등 소수만이 그의 주장에 일부 동조하였다.

이에 대해 홍준표 등 당내 중진은 "당내 민주화를 위해 상향식 공천이 필요하다며 당헌당규를 고치자고 해놓고 6개월도 안돼 이를 무시한 채 물갈이론을 내세운다면 동조할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며 반발했다.[12] 9월 5일 오세훈은 지구당 위원장직에서 사퇴하겠다고 발표하며 당내 소장파 의원들과 함께 지도부를 압박했다. 이들은 오픈 프라이머리를 전제로 한 상향식 공천과 공천심사위에 외부인사를 다수 참여시킬 것을 주장했다.[13]2003년 10월에는 안풍 사건으로 인해 논란이 일자 "당에 유입된 100억원의 추징 이야기가 나오기 전에 천안연수원과 중앙당을 매각해 스스로 갚자"고 주장하기도 했다.[14] 5,6공 용퇴론을 주장하며 자신도 함께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던 오세훈은 2004년 1월 6일 "정치개혁과 한나라당의 공천혁명에 밑거름"이 되려한다며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다.[15]

2004년 3월 9일 의원총회에서 한나라당민주당과 함께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소추를 발의하였다. 오세훈은 소장파 의원들과 함께 이에 반대하여 서명하지 않았으나, 3월 12일 본회의에서의 표결에 참가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은 가결되었으나 2명의 반대표가 있었고, 일부에서는 오세훈을 가장 유력한 반대표로 뽑기도 하였다.[16] 하지만 오세훈은 후에 서울시장 경선 과정에서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던 것에 대해 지금도 나의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한다"라며 탄핵 소추안에 찬성했음을 밝혔다.[17]

변호사 복귀 뒤[편집]

오세훈은 총선 불출마 선언 후 2500만원의 의정활동 잔여금 중 1500만원은 환경재단에, 1000만원은 서울문화재단에 기부했고, 신문광고 수익금 3000만원을 장애 아동과 북한 어린이들을 위해 사회복지법인 대한사회복지회에 기탁했다.[18] 일부에서 기부활동이 서울 시장 출마를 위한 것 아니냐는 의혹에 3월 10일자 연론에서 오세훈은 "서울시장에 출마한다는 이야기는 엉터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부문화 확산에 기여하는 활동은 계속 할겁니다"라며 대응했다.[18]

또한 평소 운동광이자 '만능 스포츠맨' 이라는 별명을 가진 오세훈 시장은, 2004년 설악국제트라이애슬론(철인 3종) 대회에 참가하였다. 수영 1.5Km, 사이클40Km, 마라톤 10Km를 완주하는 이 경기에서 3시간 25분 14초에 완주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2005년 통영 국제트라이애슬론 대회에서, 당시 배우 송일국씨와, 영화 '말아톤'의 실제 주인공인 배형진 군과 팀을 이루어 출전하였다.

서울 시장 출마와 당내 경선[편집]

서울시장 출마에 대해 부인하던 오세훈은 2005년 6월 여론조사 결과 서울 시장 선호후보 1위로 선정되고,[19] 이에 대해 "목석같이 아무 생각이 없다고 하면 사람도 아니고 거짓말이지"라며 "정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의 사회참여"라고 언급해 서울 시장으로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또 8월 31일 라디오 인터뷰에서는 "내가 그 자리에 가면 과연 잘하는 시장, 잘하는 행정가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20] 선거 와중인 그해 8월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자문위원회의 위원으로 위촉되었다.

11월 2일 오세훈은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출마하지 않는 쪽으로 기울었다"며 "불출마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고 말했으나,[21] 4월 5일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이 서울 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한 뒤, 한나라당 소장파들이 적극적으로 오세훈의 영입을 주장했다. 이에 당 중진과 지도부는 오세훈에게 "백의종군"식의 경선 참여를 요구했다.[22] 결국 4월 9일 오세훈은 경선 참여를 선언하였고, 4월 12일 박진은 '오세훈 바람'에 밀려 눈물과 함께 중도 포기를 선언하였다.[23] 또한 청호나이스 정수기에서 오세훈 전 의원의 깨끗한 정치를 향한 모습과 결부시켜 그가 출연하는 TV광고, 그리고 카탈로그 등을 사용하는 광고모델 계약을 맺은 바가 있다.홍준표는 '정수기 광고'는 엄연한 불법"이라고 경선의 경쟁자인 오세훈을 공격하였고, 일부에서는 오풍(오세훈 바람)에 맞서 맹형규홍준표의 단일화를 주장했다.[24] 하지만 선관위에서 해당 사건을 '문제없음'으로 결론을 내렸고, 이에 따라 오세훈 전 의원은 청호나이스로부터 받은 광고모델료 1억원을 전액 반환하였다.

경선을 6일 앞둔 4월 18일, 오세훈이 2년간 당원 신분은 유지하고 있으면서 당비를 내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이로 인해 피선거권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이에 대해 오세훈은 "국회의원 시절에 자동납부가 되고 있었기 때문에 국회의원을 그만두고 본업인 변호사로 돌아와 착각"했다며 양해를 구했다.

2006년 4월 25일 오세훈은 여론조사에서 65.05%의 지지율을 얻으며 총 41%의 득표로 한나라당의 서울 시장 후보가 됐다.

첫 번째 서울시장 도전[편집]

열린우리당강금실한나라당의 오세훈이 맞붙은 서울 시장 선거에 대해 초반부터 많은 언론들은 이미지 싸움이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예측했다.[25] 또 중장년과 여성층은 오세훈을, 청년층은 강금실을 선호한다는 분석도 있었다.[25] 하지만 5월 2일 강금실열린우리당 서울시장 후보로 당선된 직후 나온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세훈은 지지율 면에서 20%p이상 강금실을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26] 심지어 20대 연령대에서도 강금실은 오세훈에게 추월당한 상태였다.[26]

오세훈은 강금실의 임대아파트 16만호 건설에 대해 (11평형은) "방으로 치더라도 어떤 때는 대각선으로 누워서 자야 할 정도로 좁다"라고 발언해 열린우리당으로부터 "서민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비난을 듣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에서는 "주택난 해소를 위한다면 오피스텔이 아닌 4인 가족 기준에 맞는 적정한 규모의 아파트가 필요한 것아니냐는 게 오 후보의 문제제기"라고 반박했다.[27] 또 오세훈이 변호사 시절 찍었던 정수기 CF가 선거일 90일 전부터 본인이 등장하는 동영상, 사진 광고를 금지한 선거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고소되기도 했다.[28]

5월 21일 지충호는 신촌 현대백화점 앞에서 오세훈 후보의 유세를 돕던 박근혜 대표를 문구용 칼로 피습했다.[29] 이 영향으로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40%를 상회하게 되었고 오세훈과 강금실의 격차는 더 크게 벌어지게 되었고,[30] 서울시장에 당선되었다.

공약[편집]

2006년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자의 공약은 강북 개발과 대기질 개선 사업에 초점을 맞춘 공약을 내걸었다. 세운상가와 동대문 운동장 철거, 강북 중심의 뉴타운 50곳 건설, 영어 체험마을 설치 등을 통해 강북의 환경을 개선하고, 대기질 개선을 위해 경유버스를 천연가스 버스로 교체하고 오래된 화물차를 폐기 유도한다는 정책을 내세웠다.[31]

두 번째 서울시장 도전[편집]

2010년에 치루어진 민선 5기 지방선거에서 오세훈 시장은 재선에 도전했다. '재선시장 프리미엄'이라는 이점을 안고 한나라당 당내경선에서 나경원, 김충환 등의 경쟁자를 물리쳤고,[32] 본 선거전에서도 언론들이 여론조사 기관들에 의뢰해 실시한 복수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한명숙 후보에 비해 우위에 설 것으로 예측되었다.[33] 하지만 6월 2일에 치루어진 지방선거에서는 개표 내내 한명숙 후보에게 뒤지는 열세를 보이다가, 막판 강남 3구의 개표가 시작되면서 간신히 역전하여 민선 5기 제 34대 서울특별시장으로 재선되었다.[34][35]

개표 과정[편집]

개표 초반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가 잠시 앞서 나가는 듯 했으나, 개표가 본격화됨에 따라서 민주당 한명숙 후보가 선두를 차지한 후 개표 후반까지 계속 이러한 추세를 유지했다. 개표 중반에 오세훈 후보가 한명숙 후보를 1%포인트 차이도 안 나게 잠시 추격하기도 했으나, 결국 역전은 성공하지 못한 상태로 새벽까지 한명숙 후보의 우세로 개표는 계속 진행되는 가운데 오 후보 캠프에서는 역전이 어려울 것 같다는 추측이 나돌았고, 이에 따라 당초 오 후보측에 진을 쳤던 취재진들도 한 후보 측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36]

그러나 개표 후반 강남지역 선거구들의 개표가 뒤늦게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자 이 지역에서 한 후보에 비해 20% 가량 높은 지지를 얻으면서, 결국 한명숙 후보를 0.6%포인트 차이로 막판에 간신히 역전할 수 있게 된다.[37]

이러한 까닭에,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주요 일간지들과 KBS, MBC, SBS의 공중파 방송 등에서는 "강남 3구 표밭에서의 몰표 덕분에 오세훈 후보의 당선이 가능했다" 혹은 "강남3구가 오세훈을 살렸다"는 분석과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38][39] 이에 대해 오 시장은 강남권 득표율이 지난 지방선거 때보다 감소했다는 점, 민주당 구청장 후보가 당선된 중구 등 5개 구에서 오 시장이 한 후보에 비해 0.3 ∼ 8.2%포인트 높은 득표를 기록했다는 점, 25개 전 지역에서 40대 이상 연령층으로부터 고른 득표를 얻었다는 점을 들며 세간의 평가에 대해서 반박했다.[40]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68%인 17곳에서 한명숙 후보는 오세훈 후보를 제쳤고, 32%인 8곳에서는 오세훈 후보가 한명숙 후보를 제쳤다.[39] 구체적으로, 오세훈 후보가 앞선 선거구에서의 우세를 보면 강남구(+59,206, +25.68%), 서초구(+43,820, +23.66%), 송파구(+23,814, +8.19%), 강동구(+11,097, +5.33%), 용산구(+8,579, +8.24%), 양천구(+1,078, +0.51%), 영등포구(+1,017, +0.57%), 중구(+238, +0.39%) 등이었다.

서울 시장 2기[편집]

2010년에 있었던 지방선거에서 오세훈은 한명숙에 가까스로 승리하였지만 시의원은 79석을 얻은 민주당에 비해 한나라당은 27석을 얻는데 그쳐 여소야대 구도를 이루었다. 이에 따라 오세훈의 시정 운영은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41] 2기 임기가 시작된 이후 민주당 소속 40명의 서울시의원들에게 설문을 한 결과 50%가 '오세훈 시장은 잘한 것이 없다'는 답변을 하였으며, 시정 운영중에 가장 먼저 바꾸어야 할 문제로 '서울광장 운영 방식'을 꼽았으며 실제로 서울시의회는 이 부분을 가장 먼저 변경했다.[42] 오세훈은 전국의 지자체장중에서 의회 출석률 전국 꼴찌를 기록했다. 전국 지자체장 평균 출석률 84.84%보다 3배 가량 낮은 29.72%를 기록했다. 조례안 처리율도 46.46%로 광역지자체 평균 89.43%보다도 2배가량 낮았다. 이에 대해 오세훈이 무상급식 반대에 몰두해 다른 시정을 등한시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43] 서울시는 소외 계층을 대상으로하는 매우 제한적 무상 급식을 시행중에 있으나, 주로 야당이 다수인 서울시의회 및 교육감은 전면 무상급식을 주장하였다. 서울시는 8%에 불과한 무상급식 대상을 30%로 확대하도록 하겠다는 주장을 폈으며, 최대 하위 50%까지는 무상급식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44]

그러나 2011년 1월 6일, 서울시의회는 서울시와 한나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장 직권으로 오전 0시30분에 본회의가 열려 민주당 단독으로 처리되었다. 서울시는 서울시의회 민주당 의원들이 단독으로 처리시킨 무상급식조례안에 대해 공포를 거부함과 동시에 법원에 무효소송을 내기로 했고,[45] 서울시의회는 오세훈의 공포 거부에 따라 익일 시의회 의장 직권으로 공포했다.[46] 이에 대해 서울시는 무상급식 조례안에 대해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47]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자 오세훈은 무상급식과 관련한 시민들의 의사를 직접 묻기 위해 주민투표를 서울시의회에 제안하였다. 민주당은 전체 무상급식에 들어가는 비용이 1년에 695억원인데, 주민투표를 위해 182억을 낭비하는건 무리수라고 주장하였다.[48] 그러나 오세훈과 서울시는 유권자의 판단비용일 뿐이며 오히려 전면무상급식에는 최소 4000억이 들고 복지정책은 한번 시행하면 중단할 수 없는 불가역성 등을 고려하면 비용이 더 늘어난다고 주장했다. 대중영합주의 정치를 넘어서야 진정한 민주주의가 성장할 수 있다며 주민투표의 추진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반박했다.[49] 오세훈은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사흘앞두고 실패할 경우 사퇴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투표가 향후 대한민국내 복지정책의 흐름을 결정짓는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생각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오 시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아무리 험난해도 이번 주민투표를 통해 대한민국 복지 방향을 정립하지 않으면 우리 서울의 미래가, 대한민국의 미래가 이대로 주저앉아 버릴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50] 오세훈은 그러나 2010년 지방선거 전후에 "임기를 꽉 채우겠다"고 반복해서 강조한 것에 대해서는 어떠한 해명도 없이 번복·사퇴했다.[51] 민주당은 "우롱하는 수준을 넘어선 위협과 협박을 통한 정치 사기극이고, 서울 시민에 대한 테러"라고 비판했고 자유선진당과 민주노동당 등도 비판을 제기했다. 한나라당은 당혹감을 드러내며 "시장직 신임 투표가 아닌 정책 투표에 시장의 거취를 연계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한나라당 일부에서 "오세훈을 제명시켜야 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52]

수해[편집]

2011년 7월 서울에 폭우가 내려 큰 피해를 입혔는데 오세훈의 디자인 서울이 원인으로 제기됐다. 빗물을 지하로 보내는 빗물받이가 1m는 돼야 하는데 대부분 40㎝이다. 게다가 이마저도 관리가 안 돼 오물이 끼어 악취가 나며 디자인에 신경을 쓰다 보니 구멍이 좁아져서 피해를 불렀다는 주장이다.[53] 또한 서울시는 보도블록과 간판에 디자인을 도입한다며 디자인거리와 르네상스거리에 2133억 원을 투입했다. 그러나 30곳의 디자인거리 중 26곳은 물 빠짐 기능이 거의 없는 화강판석을 사용한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54] 수해 방지 예산도 오세훈의 취임 이래 매년 줄더니 1/10 규모가 됐다는 주장이 나오자 서울시는 올해 수해방지 예산이 3436억으로 2007년에 비해 두 배 늘었다고 주장했다. 서울시는 민선 1기부터 5기가 시작된 올해까지 풍수해 관련 예산을 분석한 결과, 특별회계를 포함한 예산 규모가 매년 지속적으로 증가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수방관련 예산이 일반회계와 특별회계·재난관리기금으로 이뤄져 있는데 이를 다 합친 규모가 아니라 일반회계만 보고 오해했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이에 대해 "이전까지 수해방지 예산 항목에 없었던 하수도 특별회계를 이번에 끼워넣었다. 게다가 서울시가 수해방지 예산에 집어넣은 재난관리기금 항목에 보면 수해방지와 무관한 제설자재구입·복구비 등 약 900억원이 포함돼 있어 수해예산관련 부분들은 수방예산으로 보기는 힘들다"고 반박했다.[55][56]

무상급식 주민투표[편집]

오세훈 서울시장과 한나라당은 저소득층 30%에게 선별적으로 무상급식을 시행하겠다고 의견을 제시했나, 민주당은 초등학교 저학년을 시작으로 중학생까지 전면 무상급식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며 갈등을 빚었다.[57] 2011년 8월 24일 오세훈이 추진해오던 주민투표에서 최종투표율 25.7%로 투표함을 개봉할 수 있는 투표율 33.3%를 달성하지 못해, 투표함이 폐기됨과 동시에 개표 득표율 33.3%에 미치지 못하였다. 오세훈의 하위 50% 지원 정책은 사실상 폐기되고 곽노현과 서울시교육청이 추진하는 전면 무상급식이 시행되었으며 오세훈은 약속대로 8월 26일 사퇴했다.

학력[편집]

명예학위

  • 2008년 카자흐스탄 경제대학교 명예경제학 박사
  • 2009년 몽골국립대학교 명예법학박사

경력[편집]

  • 1984년 : 사법시험 제 26회(사법연수원 제 17기)
  • 1986년 : 보안사령부(현 육군기무사령부) 정훈장교 복무
  • 1992년 : 환경운동연합 시민상담실 실장
  • 1994년 : MBC 생방송 오변호사 배변호사 -진행
  • 1995년 : 대한변호사협회 환경문제연구위원
  • 1996년 ~ 2000년 1월 : 환경운동연합 법률위원장 겸 상임집행위원
  • 1996년 ~ 2000년 5월 : 시사저널 편집자문위원
  • 1996년 10월 14일 ~ 1997년 9월 29일 : 그것이 알고 싶다 - 진행자


  • 1997년 9월 ~ 1998년 2월 : 숙명여자대학교 법과대학 겸임교수
  • 1998년 1월 ~ 1998년 12월 : 미국 예일(Yale)대학교 Law school 교환교수(Visiting scholar)
  • 1999년 02월 21일 ∼1999년 10월 10일 : SBS 갑론을박 동서남북 - 진행자
  • 1999년 3월 ~ 2000년 2월 :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 무료법률상담변호사
  • 1999년 3월 ~ 2000년 2월 : 숙명여자대학교 법과대학 겸임교수
  • 1999년 : SBS 시사토론 '오늘과내일' 사회자


  • 2000년 : 한나라당 4.13총선 선거대책위원회 부대변인
  • 2000년 2얼 ~ 2004년 5월 : 환경운동연합 법률위원장 겸 상임집행위원
  • 2000년 5월 ~ 2004년 5월 : 제16대 국회의원(환경노동위원회)
  • 2001년 6월 ~ 2002년 9월 : 한나라당 미래를 위한 청년연대 공동대표
  • 2002년 : 제일국제법률사무소, 김장리 법률사무소 변호사
  • 2003년 : 한나라당 원내부총무
  • 2003년 1월 ~ 2004년 1월 : 한나라당 최고위원
  • 2003년 7월 ~ 2004년 2월 : 한나라당 청년위원회 위원장
  • 2003년 7월 ~ 2004년 1월 : 한나라당 상임운영위원회 위원
  • 2004년 1월 ~ 2004년 3월 : 국회 정치개혁 특별위원회 한나라당 간사
  • 한나라당 법률자문단 및 인권위원회(환경소위 위원장)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환경위원


  • 2004년 : 법무법인 '지성' 대표변호사
  • 2005년 8월 ~ 2006년 5월 :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자문위원회 변호사
  • 환경운동연합 지도위원 및 국정정책자문위원


  • 2006년 7월 ~ 2010년 6월 : 제33대 서울특별시 시장
  • 2007년 7월 ~ 2011년 8월 : WK리그 서울시청 아마조네스 구단주
  • 2008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장관회의 명예준비위원장
  • 2010년 7월 ~ 2011년 8월 : 제34대 서울특별시 시장
  • 2010년 세계도시 전자정부 협의체(WeGO) 초대의장
  • 2011년 3월 : 제8회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대회 공동위원장


  • 2012년 5월 ~ 2012년 10월 :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KCL) 공공정책대학원 연구원
  • 2012년 10월 ~ 2013년 2월 : 중국 상하이 푸단대학교(Fudan University) 중급어학과정 수료
  • 2013년 2월 ~ 현재 :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변호사
  • 2013년 4월 ~ 2013년 12월 : 한양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
  • 2013년 12월 ~ 2014년 6월 : 한국국제협력단(KOICA) 중장기자문단(페루 리마시청 파견)
  • 2014년 7월 ~ 2015년 1월 : 한국국제협력단(KOICA) 중장기자문단(르완다 키갈리시청 파견)
  • 2015년 4월 : 4.29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서울 관악구(을) 새누리당 오신환 후보 공동 선대위원장
  • 2015년 4월 ~ 2016년 1월 : 고려대학교 기술경영대학원(MOT) 석좌교수
  • 2015년 4월 ~ 2016년 1월 : 고려대학교 기술경영대학원(MOT) 미래사이테크포럼 대표

역대 선거 결과[편집]

선거명 직책명 대수 정당 득표율 득표수 결과 당락
제16대 총선 국회의원(서울 강남구 을) 16대 한나라당 59.0% 64,516표 1위 강남구 국회의원 당선
제4회 지방 선거 서울특별시장 34대 (민선 4기) 한나라당 61.1% 2,409,760표 1위 서울특별시장 당선
제5회 지방 선거 서울특별시장 35대 (민선 5기) 한나라당 47.1% 2,086,127표 1위 서울특별시장 당선
제20대 총선 국회의원(서울 종로구) 20대 새누리당 39.7% 33,490표 2위 낙선

출연작[편집]

방송[편집]

영화[편집]

CF, 광고[편집]

  • 삼성물산 로가디스
  • 생명보험협회
  • 청호나이스 아이스콤보

가족 관계[편집]

상훈[편집]

  • 2000년 시민단체선정 국정감사 우수의원
  • 2001년 시민단체선정 국정감사 우수의원
  • 2002년 시민단체선정 국정감사 우수의원
  • 2003년 시민단체선정 국정감사 우수의원
  • 2003년 제 20회 코리아 베스트드레서 정치인부문
  • 2007년 올해의 브랜드 대상 CEO특별상
  • 2008년 국제존타클럽(Zonta International Club) 존타의 친구 상
  • 2008년 제1회 대한민국을 이끄는 21세기 경영리더 대상 창조경영 부문
  • 2008년 UN 공공행정상 우수상 (사이버정책토론방)
  • 2009 서울 석세스 어워드 2009 정치부문 광역단체장상
  • 2009년 UN 공공행정상 우수상 (천만상상 오아시스)
  • 2009년 UN 공공행정상 대상 (아리수 실시간 수질공개 서비스)
  • 2009년 7월 행정안전부 시도공무원교육기관 창의심화과정 최우수상
  • 2010년 UN-HABITAT 특별상 (장기임대전세주택 Shift 등)
  • 2010년 UN 공공행정상 우수상 (희망플러스 통장)
  • 2010년 UN 공공행정상 대상 (여성이 행복한 서울 프로젝트)
  • 2015년 11월 KBC 목민자치대상 광역단체장상
  • 2015년 대한민국가족지킴이 대한민국 실천대상 국위선양부문

저서[편집]

  • 가끔은 변호사도 울고싶다, (서울 : 명진출판, 1995), ISBN 978-89-7677-030-1
  • 미국 민사재판의 허와 실, (서울 : 박영사, 2000), ISBN 978-89-10-50707-9
  • 우리는 실패에서 희망을 본다, (서울 : 민음사, 2005), ISBN 978-89-8273-930-9
  • 시프트(SHIFT): 생각의 프레임을 전환하라, (서울 : 리더스북, 2009), ISBN 978-89-01-09783-1
  • 서울은 불가능이 없는 도시다: 서울시장 오세훈이 보내는 블로그 레터 (서울 : 21세기북스, 2010), ISBN 978-89-509-2285-6
  • 오후의 서울 산책, (서울 : 미디어월, 2011)
  • 오세훈, 길을 떠나 다시 배우다: 르완다 키갈리 일기, (서울 : 알에이치코리아, 2015.4)
  • 오세훈, 길을 떠나 다시 배우다: 페루 리마 일기, (서울 : 알에이치코리아, 2015.4)

각주[편집]

  1. “오세훈 "5·6共세력 떠나라". 한국일보. 2003년 9월 3일. 
  2. “오세훈 서울시장- ‘시프트’ 건설 강력 추진 100대1 인기”. 문화일보. 2010년 6월 3일. 
  3. “오세훈 '당원 30% 경선룰' 받고도 박진에 승리”. 프리미엄조선. 2016년 3월 16일. 
  4. 권대열 (2006년 5월 11일). “5·31 최대관심 서울시장 후보 얘기 오세훈”. 조선일보. 2010년 6월 3일에 확인함. 
  5. 오세훈(2009), 『시프트(SHIFT): 생각의 프레임을 전환하라』, 서울 : 리더스북
  6. 이연자 (2010년 2월 17일). “[SPECIAL REPORT 설의 품격 01] 명문 종가의 설엔 특별한 것이 있다”. 주간동아. 
  7. “오세훈 서울시장 조부모 ‘수목장’ 이천 선산, 특전사 이전 부지 포함”. 서울신문. 2009년 3월 27일. 
  8. “강금실-오세훈 후보 스토리”. 코리안위클리. 2006년 5월 18일. 2010년 4월 23일에 확인함. 
  9. [1]
  10. [2]
  11. 안수찬 (2003년 9월 4일). “(한나라당)“선배님들 아름답게 물러나시죠”. 한겨레신문. 2009년 6월 8일에 확인함. 
  12. 박민혁 (2003년 9월 5일). ““소장파, 물갈이 주장 자격 있나”…野 '용퇴론' 역풍 확산”. 동아일보. 2010년 6월 3일에 확인함. 
  13. 정연욱 (2003년 9월 19일). “(한나라당)한나라 소장파 당 쇄신 거듭 압박”. 동아일보. 2010년 6월 3일에 확인함. 
  14. 안수찬 (2003년 9월 9일). “(추석 앞둔 민주-한나라 '집안싸움' 가열)'5, 6共 논쟁'. 한겨레신문. 2010년 6월 3일에 확인함. 
  15. 반병희 (2004년 1월 6일). “오세훈의원 “총선 불출마…정계 떠날것””. 동아일보. 2010년 6월 3일에 확인함. 
  16. 정유진 (2004년 3월 15일). ““탄핵반대 소신2표를 찾아라””. 경향신문. 2010년 6월 3일에 확인함. 
  17. 모규엽 (2006년 4월 12일). “오세훈 “탄핵 찬성 지금도 판단 옳다고 생각한다””. 국민일보. 2010년 6월 3일에 확인함. 
  18. 박응식 (2005년 3월 11일). “노블리스 오블리제, 그리고 진정한 자유”. 머니투데이. 2010년 6월 3일에 확인함. 
  19. 이승우 (2005년 6월 14일). “서울시장 선호후보 1위에 陳정통-오세훈”. 연합뉴스. 2010년 6월 3일에 확인함. 
  20. 이종호 (2005년 8월 31일). “오세훈 "연정의 정지작업 생략된 느낌". 오마이뉴스. 2010년 6월 3일에 확인함. 
  21. 문수인 (2005년 11월 3일). “오세훈 서울시장 안나갈듯”. 매일경제. 2010년 6월 3일에 확인함. 
  22. 홍영식 (2006년 4월 6일). "이제와서 경선하라니…" 망설이는 오세훈”. 한국경제. 2010년 6월 3일에 확인함. 
  23. 허범구 (2006년 4월 12일). '중도포기' 눈물 흘린 박진”. 세계일보. 2010년 6월 3일에 확인함. 
  24. 이충재 (2006년 4월 13일). “맹형규 ´어떻게 해야 오풍(吳風)을 막지(?)´”. 데일리안. 2010년 6월 3일에 확인함. 
  25. 임석규 (2006년 4월 27일). “오세훈VS강금실, 서울시장 선거 가상대결 ‘4대 변수’는?”. 한겨레신문. 2010년 6월 3일에 확인함. 
  26. 송봉석 (2006년 5월 3일). “오세훈 57% 강금실30%...27% 격차”. 경향신문. 2010년 6월 3일에 확인함. 
  27. 이지은 (2006년 5월 12일). “오세훈 “11평은 너무 좁아 대각선으로 자야””. 한겨레신문. 2010년 6월 3일에 확인함. 
  28. 이순혁 (2006년 5월 16일). “오세훈 후보 ‘정수기 광고’ 수사 착수”. 한겨레신문. 2010년 6월 3일에 확인함. 
  29. 조현철 (2006년 5월 21일). “(박근혜 대표 피습) 단상 오르는 순간 기다린 듯…”. 경향신문. 2010년 6월 3일에 확인함. 
  30. 서울·경기, 피습 이후 1·2위 격차 더 벌어
  31. 조기원 (2006년 6월 5일).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자 공약실행 준비 착수”. 한겨레신문. 2010년 6월 3일에 확인함. 
  32. 강주모 (2010년 5월 3일). “이변은 없었다. 오세훈, 韓 서울시장 후보 확정”. 투데이코리아. 2010년 6월 3일에 확인함. 
  33. 김성환 (2010년 6월 3일). “(선택 6·2) 승패 바뀌고… 격차 줄고… 여론조사 뒤집혔다”. 한국일보. 2010년 6월 3일에 확인함. 
  34. 김승섭 (2010년 6월 3일). “강남 3구 몰표…오세훈 서울시장 재선”. 아시아투데이. 2010년 6월 3일에 확인함. 
  35. 심재현 (2010년 6월 3일). '서울시장 재선 성공' 오세훈 날개 달다”. 머니투데이. 2010년 6월 3일에 확인함. 
  36. 김우영 (2010년 6월 3일). “오세훈 '너무나 먼길 돌아' 시장으로 돌아왔다”. 헤럴드경제. 2010년 6월 3일에 확인함. 
  37. 김봉규 (2010년 6월 3일). “서울의 잠 못드는 밤…4차례 '뒤집기' 롤러코스터”. 프레시안. 2010년 6월 3일에 확인함. 
  38. 김경민 (2010년 6월 3일). “오세훈 서울시장 선거 강남 표밭이 살렸다”. 마이데일리. 2010년 6월 3일에 확인함. 
  39. 홍성규 (2010년 6월 4일). “39만여표 vs 27만여표… “강남3구 몰표가 막판 원군” 오세훈 0.6%P차 신승 안팎”. 서울신문. 2010년 6월 4일에 확인함. 
  40. “오세훈 "전지역 고른 득표..非강남시장". 연합뉴스. 2010년 6월 6일. 2010년 6월 6일에 확인함. 
  41. 이동애 (2010년 6월 3일). '여소야대' 서울시‥단체장-지방의회 엇갈려”. MBC. 2010년 6월 4일에 확인함. 
  42. 오세훈시장 잘한 것 하나도 없다” 50% 경향신문 2010년 7월 9일
  43. 오세훈 전국 광역단체장 중 시의회 출석률 꼴찌 뉴시스 2010년 7월
  44. 추경 편성’ 카드 꺼낸 오세훈 서울시장 “무상급식 마지노선 50%… 물러설 수 없어” 쿠키뉴스 2011년 1월 16일
  45. 서울시 무상급식조례 공포 거부...소송 전망 YTN
  46. 서울시의회, 무상급식조례 의장직권 공포 쿠키뉴스 2011년 1월 7일
  47. 서울시,무상급식 조례 대법원 제소 파이넨셜뉴스 2011년 1월 18일
  48. 695억 막으려고 182억 써버린다?... 오세훈의 ‘무리수’ 헤럴드경제 2011년 1월 11일
  49. [3] 헤럴드경제 2011년 7월 13일
  50. 오세훈, 주민투표에 왜 시장직 걸었나
  51. 오세훈 서울시장측 "시장 임기 충실하겠다는 방침 변함 없어 아시아경제 2011년 8월
  52. 시장직 건 오세훈‥여 "당혹" 야 "정치놀음 mbc 2011년 8월
  53. 29.5㎜ 비에도 '물바다'되는 도로… 빗물받이가 문제였다 조선일보 2011년 8월
  54. 콘크리트 서울’ 물 빠질 곳이 없다 경향신문 2011년 8월
  55. 작년엔 1492억이라더니 올핸 3436억으로 급증서울시 수해방지 예산 뻥튀기? 한겨레 2011년 8월
  56. 특별회계·기금 포함하면 수해방지 예산 오히려 늘어
  57. ‘친환경 무상급식’ 해결기미 가물가물 2010.10.22 아시아투데이

같이 보기[편집]

바깥 고리[편집]

전 임
이명박
제34·35대 서울특별시장(민선)
2006년 7월 1일 ~ 2011년 8월 26일
후 임
박원순
권영규(권한대행)
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 (1948-2014).svg 전 임
서상목(강남구 갑)
홍사덕(강남구 을)
제16대 국회의원(서울 강남구 을)
2000년 5월 30일 ~ 2004년 5월 29일
한나라당
(강남구 갑)최병렬
후 임
이종구(강남구 갑)
공성진(강남구 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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