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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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광화문

광화문(光化門)은 경복궁의 남쪽에 있는 정문이다. ‘의 큰 덕(德)이 온 나라를 비춘다’는 의미이다.[1] 1395년에 세워졌으며, 2층 누각인 광화문 앞의 양쪽에는 한 쌍의 해치 조각상이 자리잡고 있다. 광화문의 석축부에는 세 개의 홍예문이 있다. 가운데 문은 이 다니는 문이고, 나머지 좌우의 문은 신하들이 다니던 문이었다. 광화문의 천장에는 주작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광화문은 전쟁으로 두 차례 소실되었으며, 월대와 해태 등을 제외한 일부 복원공사가 완료되어 2010년 8월 15일에 공개되었다.[2]

역사[편집]

광화문과 해치 (1900년경)
2015년에 촬영한 광화문 (Gwanghwamun Gate in 2015)

임진왜란경복궁과 함께 방화로 소실되었으나, 조선 후기에 흥선대원군(헌의대원왕 이하응)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재건되었다.

광화문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으면서 그 위치가 옮겨졌고, 한국 전쟁때 목조부분이 불에 타 없어졌다[3]. 이후 1968년에 석축은 그대로 두고 현판은 새로 만들고 상부는 철근 콘크리트를 사용하여 자리는 경복궁의 본래축이 아닌 총독부건물의 축에 맞춰 재건축하였으나[4], 건축 전부터 겉모양만 복원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지적이 있었다.[5]

1995년문민정부에서는 2003년부터 광화문을 철거하고 2009년까지 본래의 위치에서 석축 위의 목조 건물로 복원할 것을 발표하였다.[6]

2006년문화재청 주도의 경복궁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기존의 광화문을 고종 중건기 모습으로 복원하기 위해 철거 · 해체하였다.[7] 광화문 복원 사업은 2010년 10월에 완료될 예정이었으나[8] G20 서울 정상회의의 개최로 인해 앞당겨져 8월 15일 광복절에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

광화문 편액(扁額)은 조선 후기 경복궁 중건 시 훈련대장(訓鍊大將)으로 영건도감 제조(營建都監 提調)를 겸하여 서사관(書寫官)으로 광화문 편액을 쓴 임태영 장군의 서체를 원형 복원한 것이다.

영상[편집]

찾아가는 길[편집]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윤희철 (2016년 11월 19일). “[윤희철의 건축스케치]경복궁의 가을”. 《경향신문》. 2016년 11월 19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 권영전 (2010년 8월 15일). '원모습 복원' 광화문 현판 모습 드러내”. 《연합뉴스》 (서울). 2016년 10월 19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3. 광화문 복원(光化門 復元), 《동아일보》, 1966.2.17.
  4. 광화문(光化門) 복원, 《경향신문》, 1968.12.11.
  5. 광화문 복원(光化門 復元)에 이론(異論), 《경향신문》, 1968.3.20.
  6. 광화문(光化門)도 제모습 찾는다, 《경향신문》, 1995.2.28.
  7. 경복궁 창건 당시 광화문 터 보존한다, 세계일보, 2007년 12월 24일
  8. 경복궁 광화문 복원 상량식…내년 10월 복원 완료, 뉴시스, 2009년 11월 26일

좌표: 북위 37° 34′ 33.76″ 동경 126° 58′ 37.27″ / 북위 37.5760444° 동경 126.9770194° / 37.5760444; 126.97701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