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2011년 11월 광화문

광화문(光化門)은 경복궁의 남쪽에 있는 정문이다. ‘임금 의 큰 덕(德)이 온 나라를 비춘다’는 의미이다.[1] 1395년에 세워졌으며, 2층 누각인 광화문 앞의 양쪽에는 한 쌍의 해치 조각상이 자리잡고 있다. 광화문의 석축부에는 세 개의 홍례문이 있다. 가운데 문은 임금이 다니는 문이고, 나머지 좌우의 문은 신하들이 다니던 문이었다. 광화문의 천장에는 주작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광화문은 한국 전쟁으로 두 차례 소실되었으며, 월대와 해태 등을 제외한 일부 복원공사가 완료되어 2010년 8월 15일에 공개되었다.[2]

역사[편집]

광화문과 해치 (1900년경)
2015년에 촬영한 광화문 (Gwanghwamun Gate in 2015)

조선시대[편집]

1395년 조선 태조 때 창건되어 정도전에 의해 '사정문' (四正門)으로 명명되었다. 당시 '오문' (午門)이라 불리기도 했다. 1425년 조선 세종 때에 들어 집현전의 학사들이 지금의 '광화문' (光化門)으로 이름을 바꾸었다.[3]

임진왜란 당시에는 경복궁과 함께 방화로 소실되었으나, 조선 후기에 흥선대원군(헌의대원왕 이하응)이 경복궁을 다시 중건하면서 재건되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 전쟁[편집]

1910년 한일 병합 이후 조선총독부가 경복궁 일대에 조선총독부 청사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그 위치상 청사 앞을 가린다는 이유를 들어 광화문을 철거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3] 그러나 조선은 물론 일본의 지식인들까지 철거 결정에 반발하였다. 특히 야나기 무네요시는 1922년 일본 잡지 <개조> (改造)에 '사라져가려고 하는 어느 조선 건축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광화문의 운명을 기리는 글을 게재하였고, 일본에서 발표된 이후 《동아일보》에 한국어 번역본이 실리면서 조선총독부의 정책에 대한 반대 여론이 들끓게 되었다. 이에 조선총독부는 광화문 철거 계획을 철회하고 총독부 청사가 완공된 이듬해인 1927년 광화문을 건춘문 (경복궁의 동문) 쪽으로 이전 설치하였다.[3] 광화문은 1945년 해방 이후에도 이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출처 필요]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면서 폭격을 맞아 광화문의 목조 부분이 불에 타 없어지고 석축만 남게 되었다.[4] 이후 석축은 그대로 두고 현판은 새로 제작, 상부는 철근 콘크리트를 사용하여 1968년 12월 11일에 중건하였다. 하지만 광화문의 자리를 경복궁의 본래 축이 아닌 총독부 청사의 축에 맞춰 재건축하였고[5], 건축 전부터 겉모양만 복원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여론이 일기도 했다.[6] 더구나 높이도 원래 높이보다 좀 더 높게 지어졌으며, 현판 역시 한자 현판이 아닌 당대 한글 전용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여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한글로 쓴 현판을 사용하였다.[3]

전후 복원[편집]

1995년문민정부에서는 2003년부터 광화문을 부분 철거하고 2009년까지 본래의 위치에서 석축 위의 목조 건물로 복원할 것을 발표하였다.[7] 2006년부터는 문화재청 주도의 경복궁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기존의 광화문을 고종 중건기 모습으로 복원하기 위해 철거 · 해체하였다.[8] 광화문 복원 사업은 2010년 10월에 완료될 예정이었으나[9] G20 서울 정상회의의 개최로 인해 앞당겨져 8월 15일 광복절에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

광화문 편액(扁額)은 조선 후기 경복궁 중건 시 훈련대장(訓鍊大將)으로 영건도감 제조(營建都監 提調)를 겸하여 서사관(書寫官)으로 광화문 편액을 쓴 임태영 장군의 서체를 원형 복원한 것이다.

영상[편집]

교통[편집]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윤희철 (2016년 11월 19일). “[윤희철의 건축스케치]경복궁의 가을”. 《경향신문》. 2016년 11월 19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 권영전 (2010년 8월 15일). '원모습 복원' 광화문 현판 모습 드러내”. 《연합뉴스》 (서울). 2016년 10월 19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3. 전국역사지도사모임 (2016년 12월). 《표석을 따라 경성을 거닐다》. 유씨북스. 220-223쪽. 
  4. 광화문 복원(光化門 復元), 《동아일보》, 1966.2.17.
  5. 광화문(光化門) 복원, 《경향신문》, 1968.12.11.
  6. 광화문 복원(光化門 復元)에 이론(異論), 《경향신문》, 1968.3.20.
  7. 광화문(光化門)도 제모습 찾는다, 《경향신문》, 1995.2.28.
  8. 경복궁 창건 당시 광화문 터 보존한다, 세계일보, 2007년 12월 24일
  9. 경복궁 광화문 복원 상량식…내년 10월 복원 완료, 뉴시스, 2009년 11월 26일

좌표: 북위 37° 34′ 33.76″ 동경 126° 58′ 37.27″ / 북위 37.5760444° 동경 126.9770194° / 37.5760444; 126.97701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