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시드니
Sydney
시드니의 여러 명소들. 왼쪽 위부터 아래로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시드니 하버 브리지, 시드니의 중심 업무 지구인 시드니 도메인, 본다이비치, 달링 하버 해안가의 광장, 루나 파크 시드니의 입구 모습, 커널에서 바라본 보터니만, 시드니 제1정부청사의 모습.
시드니의 여러 명소들. 왼쪽 위부터 아래로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시드니 하버 브리지, 시드니의 중심 업무 지구시드니 도메인, 본다이비치, 달링 하버 해안가의 광장, 루나 파크 시드니의 입구 모습, 커널에서 바라본 보터니만, 시드니 제1정부청사의 모습.
City of Sydney Flag.svg Sydney COA.gif
시기 휘장
시드니 도시권의 지도.
시드니 도시권의 지도.
시드니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남위 33° 31′ 56″ 동경 151° 12′ 40″ / 남위 33.53222° 동경 151.21111°  / -33.53222; 151.21111
행정
나라 오스트레일리아 오스트레일리아
지역 뉴사우스웨일스주 컴벌랜드군[1]
역사
설립 1788년 1월 26일
인구
인구 5,231,147명 (2021[2]년)
인구밀도 433/km2[2]
지리
면적 12,367.7[3]
해발 31 m
기타
시간대 AEST (UTC+10, 서머타임 적용시 UTC+11)

시드니(Sydney, Listeni/ˈsɪdni/ SID-nee, 문화어: 씨드니)는 오스트레일리아뉴사우스웨일스주주도이자 오스트레일리아와 오세아니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이다.[4] 오스트레일리아의 동해안에 있는 시드니는 시드니항을 중심으로 서쪽으로는 블루마운틴스, 북쪽으로는 헉스베리시, 남쪽으로는 로열 국립공원, 서남쪽으로는 매카서까지 총 70 km 길이로 뻗어 있다.[5] 시드니는 총 658개 교외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33개 지방 자치 단체를 포함하고 있다. 시드니에 사는 주민을 흔히 "시드니사이더즈"(Sydneysiders)라고 부른다.[6] 2021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대 시드니에 거주하는 인구는 5,231,150명이며[2] 뉴사우스웨일스주 인구의 약 66%를 차지한다.[7] 시드니의 별명으로는 "에메랄드 시티"(Emerald City)나 "하버 시티"(Harbour City)가 있다.[8]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은 약 3만년 전부터 대시드니 지역에 살고 있었으며, 시드니 곳곳에서 원주민의 암각화와 문화 유적지를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시드니에 살았던 전통 부족으로는 다룽족, 다라왈족, 에오라족 등이 있다.[9]

1770년 제임스 쿡첫 태평양 항해에서 오스트레일리아 동해안의 해도를 그려가며 보터니만에 상륙했다. 1788년에는 아서 필립이 지휘하는 죄수들로 구성된 제1선단이 시드니 지역을 영국의 유배 식민지로 만들며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최초의 유럽인 정착지가 만들어졌다.[10] 제2차 세계 대전 이후로는 시드니엔 대규모로 이주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2021년 기준 인구의 40% 이상이 해외 출신이다. 외국인 유입국의 대부분이 중국 본토, 인도, 잉글랜드, 베트남, 필리핀 출신이다.[11]

시드니는 세계에서 물가가 제일 높은 도시 중 하나로 꼽히지만,[12]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에서도 10위 안에 들기도 한다.[13][14][15] 세계화와 세계 도시 네트워크(GaWC)가 분류한 전 세계와 그 지역의 영향력 정도에서도 알파급 세계도시로 분류되었다.[16][17] 세계 11위의 경제력을 가진[18] 시드니는 금융업, 제조업, 관광업이 강한 선진적인 시장 경제를 가지고 있다.[19][20] 1850년 세워진 시드니 대학교는 오스트레일리아 최초의 대학이자 세계 최고 대학 중 하나이다.[21]

시드니는 2000년 하계 올림픽과 같은 주요 국제 스포츠 행사를 개최했다. 또한 시드니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15개 도시 중 하나로[22] 매년 수백만명의 관광객이 시드니의 랜드마크를 관광하러 방문한다.[23] 시드니는 1백만 헥타르가 넘는 넓이의 자연 보호 구역과 공원을 가지고 있으며,[24] 시드니 항구로열 국립공원같은 독특한 자연경관도 가지고 있다. 시드니의 주요 관광 명소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와 그 옆의 시드니 하버 브리지가 있다. 시드니 철도망의 중심지로 시드니 센트럴 역도 있으며, 시드니의 주요 여객공항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공항 중 하나이기도 한 킹스포드 스미스 시드니 공항이 있다.[25]

어원[편집]

1788년 뉴사우스웨일스의 초대 총독인 아서 필립이 최초의 영국인 정착지가 세워진 작은 만을 당시 내무장관이자 초대 시드니 남작이었던 토마스 타운셴드의 남작명을 따와 시드니 코브라고 이름붙였다.[26] 원주민들은 이 해안가를 '와라네'(Warrane)라고 불렀다.[27] 필립은 정착지 이름을 알비온으로 짓는 안을 고려했지만 '알비온'이라는 이름을 실제 공식적으로 쓴 적은 없었다.[26] 1790년 필립과 다른 관료들은 공식적으로 이 마을을 '시드니'라고 불렀다.[28] 1842년 시드니 마을은 시드니 도시로 바뀌었다.[29]

사우스 헤드의 포트잭슨 남쪽 해안에서 달링 하버까지 영토가 뻗어 있던 카디갈족은 영국인 정착지가 처음 세워졌던 땅의 전통 통치자로 자신의 영토를 '가디'(Gadi)라고 불렀다. 시드니 지역에 살던 원주민 씨족들은 자신의 영역, 혹은 영역 내 특정 장소, 식량, 토템 등에 접미사 '-갈'(-gal)을 붙여 나타냈다. 현대의 시드니 도시권 내엔 28개의 알려진 원주민 씨족의 전통 영역이 포함되어 있다.[30]

역사[편집]

첫 거주민[편집]

오늘날 시드니라고 알려진 지역에 처음으로 거주한 사람들은 오스트레일리아 북부와 동남아시아에서 이주한 원주민인 애버리지니이다.[31] 시드니 서부의 자갈 퇴적물에서 발견된 조각돌 파편을 통해 기원전 45,000년 전에서 기원전 50,000년 전 사이부터 인간이 거주하기 시작한 흔적이 보이기 시작했으며[32]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을 통해 약 30,000년 전부터 시드니 지역에서 인간이 활동했다는 증거를 찾아냈다.[33] 영국인이 상륙하기 직전까지 오늘날 시드니 대도시권 지역에는 약 4천명에서 8천명의 원주민이 거주했다고 추정하고 있다.[34][9]

원주민들은 사냥, 낚시, 식물과 어패류 채집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연안 씨족의 식단은 해산물 비율이 높았던 반면 내륙 씨족의 식단은 숲속 동식물 비율이 더 높았다. 원주민들은 돌, 나무, 식물성 재료, 뼈, 껍데기 등으로 만든 독특한 장비와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이들만의 독특한 신체 장식, 머리 스타일, 노래와 춤도 가지고 있었다. 원주민 집단은 조상신, 토템, 초자연적인 존재를 중심으로 한 신앙 체계이 바탕이 된 신앙의식적인 생활도 했다. 서로 다른 씨족과 언어군의 사람들이 입회식과 기타 의식에 참여하기 위해 서로 모였다. 이런 모임 활동으로 무역, 씨족간 결혼, 씨족 동맹 등이 만들어졌다.[35]

초기 영국 정착민은 '유어라'(Eora)라는 단어가 원주민 용어로 '사람들' 혹은 '이곳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뜻이었다고 기록했다.[36][9] 시드니 지역의 씨족들은 전통적으로 각 씨족마다 영토를 가지고 있었으며, 영토 간 경계도 있었다. 하지만 각 씨족들이 어느 집단이나 국가에 속했는지, 언어와 방언, 입회의식 등은 어느 정도로 서로 차이가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고 논쟁이 진행중이다. 시드니 지역의 주요 씨족으로는 해안가의 유어라족, 패러매타에서 블루마운틴즈까지 이르는 내륙 지역을 점령한 다루그족, 보타니만 남쪽의 다라왈족 등이 있다.[9] 시드니와 그 인근 지역에서는 다르기눙어와 군둥구라어를 사용했다.[37]

초기 영국 정착민이 기록한 시드니 지역의 원주민 씨족 목록
씨족명 지역명 위치
베디아갈(Bediagal) (미상) 패러매타 서북부로 추정
비라비라갈(Birrabirragal) 비라비라(Birrabirra) 소우 및 피그스 암초 인근 로우시드니항
불바이노라(Boolbainora) 불바인마타(Boolbainmatta) 패러매타 지역
보로게갈(Borogegal) 부라기(Booragy) 브레들리헤즈와 인근 지역으로 추정
보로메데갈(Boromedegal) (미상) 패러매타
부루베론갈(Buruberongal) (미상) 패러매타 서북부
다라무라갈(Darramurragal) (미상) 터라머라 지역
가디갈(Gadigal) 카디/가디(Cadi/Gadi) 포트잭슨 남쪽 시드니헤즈부터 달링 하버 사이 구간
가브로갈(Gahbrogal) (미상) 리버풀캐브러매타 지역
가마라갈(Gamaragal) 카메라이(Cammeray) 포트잭슨 북쪽 해안
가메이갈(Gameygal) 카메이(Kamay) 보터니만
가네메갈(Gannemegal) 와르물(Warmul) 패러매타 지역
가리갈(Garigal) (미상) 브로큰만 지역
가야마이갈(Gayamaygal) 가이에미(Kayeemy) 맨리 코브
그웨아갈(Gweagal) 그웨아(Gwea) 보타니만 남쪽 해안
왈루메데갈(Wallumedegal) 왈루메데(Wallumede) 시드니코브 반대쪽 포트잭슨 북쪽 해안
완갈(Wangal) 완(Wann) 달링 하버부터 로즈힐까지 포트잭슨 남해안 지역
도마라갈(Domaragal), 두가갈(Doogagal), 간날갈(Gannalgal), 고메리갈(Gomerigal), 구니오웰갈(Gooneeowlgal), 구룽구레갈(Goorunggurregal), 고루알갈(Gorualgal), 무루레디알(Murrooredial), 노롱게라갈(Noronggerragal), 오량수라(Oryangsoora), 완데안데갈(Wandeandegal)은 시드니 지역의 씨족이나 정확한 영역을 특정할 수 없다.
참조: 이름과 영토명은 당대 영국인이 기록한 것으로 시드니 지역의 동시대 원주민 집단이 사용하던 명칭과 완전히 일치한 것은 아니다.[37][38][39]

유럽인과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첫 조우는 1770년 4월 29일로 당시 제임스 쿡 선장이 보터니만(카마이[40])에 상륙해 그웨아갈 씨족을 만났다.[41] 그웨아갈 전사 두 명이 상륙한 유럽인에 대항해 싸웠고 둘 중 한명이 총에 맞아 부상을 입었다.[42][43] 쿡 선장과 선원들은 일주일간 보터니만에 머물면서 물, 목재, 사료, 식물 표본을 수집하고 주변 지역을 탐험했다. 쿡은 원주민과 관계를 맺으러 시도했지만 실패했다.[44]

유배 마을 (1788-1840년)[편집]

〈오스트레일리아 발견〉(The Founding of Australia), 1788년 1월 26일, 아서 필립 R.N. 선장이 시드니 코브에서. 알제논 탈메이지의 그림.

18세기 대부분 영국은 본토의 죄수들을 미국 식민지로 보냈으나 미국의 독립으로 1783년 북아메리카 식민지를 상실하며 보터니만에 유배 식민지를 세우자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또한 식민화 지지자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세울 새 기지의 전략적 중요성과 함께 해군에 필요한 목재와 아마섬유를 보급받을 수 있는 중요한 지역이라고 지적했다.[45]

1788년 아서 필립 선장이 이끄는 11척의 제1선단보터니만에 도착했다.[46] 필립의 선단은 죄수 736명을 포함한 1천명 이상의 정착민으로 구성되어 있었다.[47] 제1선단은 이후 정박하기 더 좋은 포트잭슨만으로 이동했으며 1788년 1월 26일 시드니 코브에 첫 정착지가 세워졌다.[48] 1788년 2월 7일 필립 총독은 뉴사우스웨일스 식민지의 설립을 공식적으로 선포했다. 시드니 코브에서는 신선한 물을 공급받을 수 있었고 안전한 항구가 되어줬는데 필립은 "세계 최고로 훌륭한 항구를 놓고 본다면 [...] 이곳에선 천여 개의 돛(배)들이 가장 완벽한 안전을 보장받고 항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49]

정착촌은 직접 경작하는 농업을 기반으로 자급자족하는 유배 식민지로 계획되었다. 죄수들을 고립시키기 위해 무역과 조선업은 금지되었다. 하지만 정착지 주변의 토양은 경작에는 적절하지 않은 질이 낮은 토지로 판명되었고 첫 해 농사가 흉작이 되어 몇년간 굶주림과 엄격한 식량 배급이 이어졌다. 식량 위기는 1790년 중반 제2선단과 1791년 제3선단이 도착하며 완화되었다.[50] 이전의 죄수들은 작은 토지보조금을 받았고 정부와 개인 농장은 컴벌랜드 평원의 패러매타, 윈저, 캠던 등 더 비옥한 토양으로 퍼저나갔다. 1804년이 되면 식민지는 식량 자급자족이 가능한 정도로 발전했다.[51]

1789년 4월 천연두의 유행으로 시드니 지역에 살던 원주민의 절반이 사망했다.[9][52] 1790년 11월에는 벤넬롱이란 원주민이 시드니 지역 씨족의 생존자 전체를 전부 모아 정착지로 이끌어 들어가면서 시드니 정착지 내에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이 살기 시작했다.[53]

필립은 도시 개발에 관한 지시를 받진 못했지만 1788년 7월 시드니 코브의 새로운 도시개발계획을 작성했다. 이 계획에는 넓은 중앙대로, 정부 청사 건물, 법원, 병원 및 기타 공공건물은 있었지만 창고, 상점, 기타 상업 건물은 없었다. 필립은 자신의 계획을 별달리 신경쓰지 않았고 시드니 지역은 전체적으로 계획되지 않은 도시개발이 하나의 특징처럼 되었다.[54][55]

토마스 워틀링의 〈시드니 코브의 전망〉(View of Sydney Cove). 1794–1796년 경 그림으로 추정.

1792년 12월 필립이 총독을 그만두고 오스트레일리아를 떠나자 식민지의 군사 장교들은 토지를 취득하고 방문한 배에서 얻은 소비재를 수입해 오기 시작했다. 또한 전과자들도 무역업에 종사하며 소규모 사업도 운영했다. 군인과 전과자들은 허가 유무에 상관 없이 전부 오늘날 흔히 시드니타운이라고 부르는 왕령지에 집을 짓고 살았다. 뒤를 이은 총독 윌리엄 블라이(1806-1808년 재임)는 시드니의 무역과 상업에 제한을 가했고 퇴역 군 장교들이 소유한 집을 포함해 국왕령에 세운 모든 건물을 철거하라고 명령했다. 이 때문에 1808년 럼 반란이 일어났고 뉴사우스웨일스 군단의 쿠데타로 블라이가 총독 자리에서 축출당했다.[56]

3대 총독인 래클런 매쿼리(1810-1821년 재임)는 시드니와 뉴사우스웨일스의 발전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으로 은행을 설립하고 통화를 제정했으며 병원을 세웠다.[57][58] 또한 시드니의 거리를 계획하기 위해 도시계획자를 고용하고 도로, 부두, 교회, 기타 공공건물의 배치와 건설을 의뢰했다. 시드니와 패러매타를 잇는 패러매타 도로는 1811년 개통했고[59] 블루마운틴즈를 관통하는 도로도 1815년에 완공되어 그레이트디바이딩산맥 서쪽 나무가 드문 목초지에서 대규모로 방목과 농업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60][61]

매쿼리가 1821년 총독직을 그만두고 떠나자 뉴사우스웨일스의 공식 정책이 영국 이민자들의 자유로운 이주를 장려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식민지를 향한 이민자는 1826-1830년 자유민 이민자 900명에서 1836-1840년 29,000명으로 급증했고 이들 중 대다수가 시드니에 정착했다.[62][63] 1840년대까지 시드니는 더 록스와 같은 탱크 스트림 서쪽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과 노동계층이 거주한 지역과 부유한 주민이 거주하는 동쪽 지역이 확연히 구분되었다.[63] 자유 정착민, 자유 정착민 사이에서 태어난 자유민, 재소 기간이 끝난 전과자가 시드니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면서 민의를 대표하는 정부 수립과 죄수 이송 중단 요구을 향한 대중의 압력이 증가했다. 결국 1840년 뉴사우스웨일스로 죄수를 이송하는 작업이 중단되었다.[64]

컴벌랜드 평원 분쟁[편집]

1804년 캐슬힐 죄수 반란을 그린 그림.

식민도시 (1841-1900년)[편집]

신식민지의 초기의 인구는 1000명을 겨우 넘는 정도였지만, 당시는 유배지로 인구 대부분은 죄수였다. 1822년에는 벌써 은행, 시장, 발달한 도로망, 경찰조직을 갖춘 마을이 되었다. 1833년, 마을의 행정은 3명의 행정관의 손에 운영되어 1842년에는 자치체가 되었다. 1847년에는 죄수가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불과 3.2%에까지 내렸갔다. 당시 시드니에는 유럽에서 매주 배가 들어왔으며, 영국이나 다른 유럽 지역에서 이민자들이 도착했다. 죄수의 인구가 감소함에 따라 따라, 상업 활동이 왕성해졌다. 처음에는 벽돌 제조와 제재에 한정되어 있던 제 2차 산업의 발전은 뉴사우스웨일스주의 자유무역 정책이 현지 공업의 안정을 저해했기 때문으로 지적되었다. 1901년의 연방 성립후, 자유무역 정책은 유명무실해졌고, 각 주간의 긴밀한 제휴 하에서 주간 교역이 현저한 진전을 이루었다.

골드러쉬[편집]

시드니는 19세기 전반까지는 호주 6개의 영국 식민지의 중심으로 명실상부한 최대의 도시였다. 1851년뉴사우스웨일즈 주빅토리아주에서 금이 발견된 최초의 골드 러시가 이루어지면서 시드니의 인구는 급격히 증가하고 급속한 산업화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골드러시와 영국 본국과의 사이 대권 항로에서 멜버른이 훨씬 더 유리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멜버른이 발달 속도를 높여 19세기 후반에 시드니는 제 2의 도시로 자리를 잡았다. 이때부터 시드니와 멜버른 사이의 전통적인 경쟁 관계가 형성되었으며, 멜버른은 호주의 최대 도시이자 가장 부유한 도시가 되었다.

근현대[편집]

20세기가 되면서 시드니가 다시 멜버른 인구를 추월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 시드니는 국내 최대의 도시로 계속 자리 잡고있다. 1970년에서 1980년대, 호주연방 준비은행과 호주 증권거래소와 함께 시드니의 CBD는 분명히 국내 최대의 금융 도시가 되어 멜버른을 제쳤다. 도시 지역의 확대와 함께 인구의 교외화가 진행되어 도시 지역의 서쪽은 도심에서 60 km 이상 떨어진 블루 마운틴 기슭에까지 확장되고 있었다. 20 세기 전반에 걸쳐 보면 제2차 세계대전 후 10년간을 더욱 크게확장되었고, 유럽과 이후 아시아 이민자가 늘어나면서 시드니의 도시 지역은 확대를 계속했다. 시드니의 특징인 다양한 국제적인 분위기는 이러한 이민자들에 의해 형성된 문화가 주된 요인이다.

지리[편집]

시드니는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남동쪽 기슭의 포토 잭슨 만(시드니항) 및 보타니만에 접하는 항만 도시이다. 사방은 장대한 대자연에 둘러싸여 있어 동쪽으로 태평양, 서쪽으로 블루 마운틴, 북쪽으로 호크스베리카와, 남쪽으로 로열 국립 공원이 있다. 게다가 시드니는 많은 후미나 해안을 가지고 있다. 본다이 비치는 특히 유명한데 시내에서 가까운 포토 잭슨 만은 리아스식 해안으로 세계 최대의 천연의 입강으로 여겨진다. 이와 같이 풍부한 자연이 풍족한 시드니이지만, 자연 재해인 지진은 인체에서는 감지할 수 없는 무감 지진을 제외하고 거의 없다.

기후[편집]

Sydney (Observatory Hill)의 기후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최고 기온 기록 °C (°F) 45.8
(114.4)
42.1
(107.8)
39.8
(103.6)
34.2
(93.6)
30.0
(86.0)
26.9
(80.4)
26.5
(79.7)
31.3
(88.3)
34.6
(94.3)
38.2
(100.8)
41.8
(107.2)
42.2
(108.0)
45.8
(114.4)
평균 최고 기온 °C (°F) 26.5
(79.7)
26.5
(79.7)
25.4
(77.7)
23.3
(73.9)
20.6
(69.1)
18.0
(64.4)
17.4
(63.3)
18.9
(66.0)
21.2
(70.2)
22.8
(73.0)
23.8
(74.8)
25.5
(77.9)
22.5
(72.5)
일 평균 기온 °C (°F) 23.0
(73.4)
23.1
(73.6)
21.7
(71.1)
20.7
(69.3)
16.5
(61.7)
13.9
(57.0)
13.0
(55.4)
14.3
(57.7)
16.6
(61.9)
18.6
(65.5)
20.0
(68.0)
21.9
(71.4)
18.5
(65.3)
평균 최저 기온 °C (°F) 19.6
(67.3)
19.7
(67.5)
18.1
(64.6)
15.3
(59.5)
12.5
(54.5)
9.8
(49.6)
8.7
(47.7)
9.7
(49.5)
12.0
(53.6)
14.4
(57.9)
16.3
(61.3)
18.3
(64.9)
14.5
(58.1)
최저 기온 기록 °C (°F) 10.6
(51.1)
9.6
(49.3)
9.3
(48.7)
7.0
(44.6)
4.4
(39.9)
2.1
(35.8)
2.2
(36.0)
2.7
(36.9)
4.9
(40.8)
5.7
(42.3)
7.7
(45.9)
9.1
(48.4)
2.1
(35.8)
평균 강우량 mm (인치) 96.0
(3.78)
136.6
(5.38)
109.4
(4.31)
137.0
(5.39)
117.6
(4.63)
117.8
(4.64)
80.8
(3.18)
91.8
(3.61)
69.2
(2.72)
82.2
(3.24)
104.8
(4.13)
79.4
(3.13)
1,222.7
(48.14)
평균 강우일수 12.3 12.9 13.3 11.1 12.2 10.5 10.2 8.4 8.8 11.1 12.7 11.2 134.7
평균 오후 상대 습도 (%) 61 62 60 59 58 56 52 48 50 53 57 58 56
평균 월간 일조시간 235.6 202.4 213.9 207.0 195.3 177.0 204.6 244.9 237.0 244.9 228.0 244.9 2,635.5
가능 일조율 53 54 56 61 59 60 65 72 66 61 55 55 60
출처 1: Bureau of Meteorology[65] (1981-2010 averages, records 1861-)
출처 2: Bureau of Meteorology, Sydney Airport (sunshine hours)[66]

행정[편집]

시드니 지방 행정 구역

일반적으로 하나라고 이해되는 경우가 많은 시드니 대도시권(metropolitan area)은 통계상의 영역으로 설정되어 있는 것이지 그 자체는 자치 단체가 아니다. 기초 자치 단체는 대도시권 내에 38개의 행정구역(LGAs : Local Government Areas)이며, 각 지방 행정 구역은 역사적 경위에 입각하여 종종 "시 City"라고 부른다. 이러한 지방 행정 구역의 하나인 시드니 시(City of Sydney)는 시드니 만에 접해 있는 고층 빌딩이 집중된 CBD 주변의 도심 단지가 도시이다. 관광지이기도한 시드니 시청사 "타운 홀"은 광역 시드니 대도시권이 아닌 이 "시드니 시"의 시청이다. 그러나 이 "시드니 시" 시장은 올림픽과 같은 이벤트 의례에서는 대도시권 전체를 대표하는 것과 같은 직무를 수행할 수 있다.

NSW 의회, 주 정부가 도시 전반의 행정을 통제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시드니에 있다고 하는 시설은 도심에 있는 것 이외는 "시드니 시"가 아닌 다른 행정 구역에 존재하고 있다. 예를 들어, 타롱가 동물원은 모스만, 시드니 올림픽 주경기장은 오번(Auburn), 본다이 비치는 웨바리, 시드니 국제공항은 터미널이 보타니 베이시, 활주로의 끝은 로크 데이르 시에 있다. 여기서는 영어 정식 명칭 City로 붙이는 행정 구역 단지는 "시"로 번역하고 있지만, City가 아니라 Council, Municipality, Shire 등으로 칭하는 다른 행정 구역도 일반적으로 "시"라는 명칭으로 번역되는 경우가 많다.

시드니 대도시권 전체에 관한 행정은 대중교통 운영, 주요 도로의 정비, 교통 통제, 경찰, 중등 교육 이상의 교육 주요 사회 자본의 정비 계획 등 대부분을 NSW 주정부가 관리하고 있다. 원래 주 인구의 대부분이 시드니 대도시권에 집중하고 있으며, 주 정부의 행정 기능도 대부분이 시드니 대도시권에 포함되어 있지만, 도시 지역과 주변 지역과의 경계를 두지 않고 NSW 주 전체를 관리구역으로 한번에 모든 행정을 주관하고 있다.

경제[편집]

금융과 경제의 허브인 시드니 시

시드니는 상공업, 금융, 교통의 중심 도시이며, 2008년 지역 내 GDP는 2130억 달러로 세계 28위이다. 호주 증권거래소(ASX)와 호주 연방준비은행(RBA), 국내 대형 업체들이 본사를 시드니에 두고 있다. 국내 최대의 고용을 낳고, 국내 GDP 중 25%를 차지하며, 그 경제 규모는 국내 최대이다. 평균 가계 소득은 국내 여러 도시 중 가장 많았으며, 실업률은 2004년 기준으로 4.9%이다. GaWC에 따르면 시드니는 남반구에서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하는 1급 세계 도시+로 분류되고 있다.

시드니 항구(포트 잭슨)는 뉴사우스 웨일즈 교역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주요 수출 품목은 양털, 밀, 밀가루, 양가죽, 육류이며, 수입은 기계가 가장 중요한 품목이다. 국내로 주로 들어오는 물건은 석탄, 목재, 설탕이 있다. 시드니는 세계 최대의 원모 시장으로 뉴사우스 웨일즈 양모의 3분의 2는이 항구에서 적출된다. 이 항구는 조선 수리의 중심지이며, 대형 선박을 수용할 수 있는 부두도 있다.

호주의 산업에서 멜버른과 함께 시드니에서 나가는 원재료의 조달이 쉽다는 것이 한 원인이다. 소비재를 중심으로, 시드니는 뉴사우스 웨일즈의 공업 생산의 약 절반을 생산하고 있으며, 목재, 조선, 화학, 농업 토목 기계, 전기 기계, 석유 정제 등 여러 산업이 활발하다.

인구통계[편집]

10대 해외 출생국[67]
출생국 인구 (2006)
영국의 기 영국 175,166
중국의 기 중국 109,142
뉴질랜드의 기 뉴질랜드 81,064
베트남의 기 베트남 62,144
레바논의 기 레바논 54,502
인도의 기 인도 52,975
필리핀의 기 필리핀 52,087
이탈리아의 기 이탈리아 44,563
홍콩의 기 홍콩 36,866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32,124
시드니 인구
연도별
1800 3,000
1820 12,000
1851 39,000
1871 200,000 (골드러쉬)
1901 500,000
1925 1,000,000
1962 2,000,000
2001 3,366,542
2006 4,119,190
2008 4,399,722
2010 4,504,469
2026 5,487,200 (계획)[68]
2056 7,649,000 (계획)[68]

2006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시드니 시 지역의 인구는 3,641,422명[69] 으로, 시드니 통계 지역의 인구는 4,119,190명이었다.[70] 통계 지역은 성장을 가감하여 산출된 추정치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대도시보다 인구가 커지고 있다. 시드니의 인구 밀도는 4,023명/km2로 국내 최대이다.

자신의 민족이 무엇인가라는 설문에서, 시민의 대부분은 스스로를 잉글랜드계, 아일랜드계, 스코틀랜드계, 중국계라고 답했다. 또한 이 설문에 따르면 원주민은 전체 중 2%로 해외 출생자 수는 마찬가지로 31.7%였다.

주요 이민자의 출신 국가는 영국, 중국, 뉴질랜드이다. 또한 베트남, 파키스탄, 레바논, 이탈리아, 인도, 필리핀 이주자 수가 상당수에 이른다. 시민의 대부분은 영어를 처음 또는 두 번째 언어로 말을 하며, 아랍어(레바논 계가 우세), 중국어(대부분 북경어, 상하이어, 광둥어), 이탈리아어 등이 있었다.

시드니의 해외이민자 수는 고급 다문화 도시인 런던이나 파리보다 많고, 그 숫자는 세계에서 7번째로 꼽힌다. 종교를 묻는 설문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의 64%가 기독교, 14.1%는 무교, 10.4%는 무응답, 3.9%는 무슬림, 3.7%는 불교도, 1.7%는 힌두교도, 0.9%는 유대교였다.

또한 주민의 중위연령은 34세로 젊고[71], 65세 이상의 고령층은 전체의 12%에 이른다.

문화[편집]

엔터테인먼트[편집]

시드니에서는 많은 이색적인 축제와 호주 최대의 사회 문화 이벤트가 개최된다. 예를 들면, 국내 최대의 예술 축제인 시드니 페스티벌(Sydney Festival)은 매년 1월에 개최된다. 이외에도 비엔날레 오브 시드니(Biennale of Sydney)는 1973년부터 계속 현대 미술 축제로 자리를 잡아 왔고, 빅 데이 아웃(Big Day Out)은 락 페스티벌이다.

시드니 마디 그라스(Sydney Gay and Lesbian Mardi Gras)는 옥스포드 스트리트에서, 시드니 영화제 등 많은 영화제와 시드니 로열 이스터 쇼(Sydney Royal Easter Show)는 시드니 올림픽 공원에서 개최된다. 오스트레일리안 아이돌 결승전은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서 즐길 수 있다. 호주 패션 위크(Australian Fashion Week)는 매년 4,5월에 개최된다. 또한, 새해 전야와 오스트레일리아 데이의 축전은 국내 최대이다. 오스트레일리아 동부표준시 기준으로 매년 1월 1일 0시에 오페라 하우스 주변과 시드니 달링 하버 주변에서 세계 최대의 새해 맞이 불꽃놀이가 매년 실시된다. 이를 보기 위해 전 세계의 많은 관광객들이 시드니를 방문한다.

관광[편집]

시드니에는 오페라 하우스, 하버 브리지, 본다이 비치, 타롱가 동물원 등 수없이 많은 관광 명소들이 있고 호주에서만 시식이 가능 한 캥거루 햄버거, 캥거루 스테이크도 맛볼 수 있다.

스포츠[편집]

시드니에서 스포츠는 문화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잉글랜드에서 전래된 《럭비 리그》는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이다. 호주와 뉴질랜드의 리그, 내셔널 럭비 리그에 참가하는 국내 16개 팀 중 시드니를 본거지로 하는 것은 9개 팀에 이른다. 농구, 네트볼, 럭비 유니온, 크리켓, 야구에서 시드니를 본거지로 하는 프로팀이 있으며, 각계에서 시드니는 "시드니 정신"이라고 표현된다. 이밖에 호주의 국기인 오지 풋볼축구 프로팀도 시드니에 있다.

내셔널 럭비 리그와 같은 대규모 스포츠 이벤트는 일반적으로 시드니 올림픽 메인 스타디움이었던 스타디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개최된다. 이외에도 요트경기인 시드니 투 호바트 요트 경주(Sydney to Hobart Yacht Race), 경마 경기인 골든 슬리퍼 스테익스(Golden Slipper Stakes), 마라톤 경기인 시티 투 서프(City to Surf) 같은 이벤트도 시드니에서 개최된다.

1920년대에 건조되어 크리켓 국제 경기를 많이 개최하고, 오지 풋볼 대표팀인 시드니 스완즈의 홈 그라운드이기도한 시드니 크리켓 그라운드는 오랫동안 시드니 최대의 경기장이었다. 그러나,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대회의 메인 장소로 시드니 올림픽 공원에 지어진 당시 국내 최대의 스타디움 오스트레일리아로 대체되었다.

미디어[편집]

얼티모에 있는 ABC 방송국 빌딩

시드니의 주요 일간지는 《더 시드니 모닝 헤럴드》(The Sydney Morning Herald), 《더 데일리 텔레그래프》(The Daily Telegraph) 두개가 있다. 전자는 고급 종이를 사용하며, 보도 내용은 국내외 뉴스, 문화, 비즈니스 및 광범위한. 현존하는 국내 최고의 신문이며, 1831년부터 발행을 계속하고있다. 후자는 뉴스 코퍼레이션 산하의 타블로이드 판이다.

TV는 공영 방송민간 방송 네트워크로 나뉜다. 공영 방송은 ABC, SBS 2개의 방송국이 있다. 민간 방송으로는 세븐 네트워크(Seven Network), 나인 네트워크(Nine Network), 네트워크 텐(Network Ten), TVS 4개의 네트워크가 있다.

건축[편집]

교육[편집]

1850년에 설립된 시드니 대학교

시드니에는 1850년에 설립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인 시드니 대학교를 비롯하여 함께 라이벌 관계를 이루고 있는 뉴사우스웨일즈 대학교 등 총 5개의 주립·공립 대학교들이 위치하고 있다. 시드니에 위치한 대학교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이 중 시드니 대학교뉴사우스웨일즈 대학교는 오스트레일리아 내 소위 최고의 명문 연구 중심 대학들의 모임인 그룹 오브 에이트의 멤버이다.

위 5개 대학들 외에도 시드니에는 몇몇 사립 전문대학들과 타 도시를 베이스로 하나 시드니에 캠퍼스를 가지고 있는 몇몇 대학들이 위치하고 있다.

교통[편집]

국제여객선이 있는 서큘러퀴 선착장
시드니 시티 레일

시드니는 고속도로, 철도, 페리의 광범위한 교통망을 가지고 있다. 시민의 주요 교통 수단은 자동차이다. 이 흐름을 원활하게 하여 도심 교통 체증을 해소하기 위해, 시드니 도심 지역을 환상에 건설한 메트로드도 특히 중요한 도로망이다.

뉴사우스 웨일즈 정부의 공기업인 시티 레일은 터널을 통과하기는 하지만 지하로 다니는 구간이 매우 적다. 또한 지하철로 불리는 전철은 멜버른에만 있다. 시티레일은 도심에서는 지하를 달리고, 중심 시가지를 벗어난 구간에서는 지상을 달리는 복합형 철도이다. 도심 CBD 내에서 순환 운행을 하고 있는 라인을 "시티 서클"(City Circle)이라고 부르지만 주로 관광용으로 많이 사용된다. 올림픽 이후 시티 레일의 실적은 크게 저하되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05년 시티 레일 시간표를 재구성하고, 열차 기관사의 고용을 확대했다.

마스콧 교외에 있는 오스트레일리아 최대의 국제공항,즉 시드니 국제공항(킹스포드 스미스 국제공항)은 남부 근교에 있으며, 국제선, 국내선을 불문하고 대부분의 정기편이 운행된다. 더 소규모의 뱅크스타운 공항은 주로 사설 공항으로 사용된다. 현재 제2의 시드니 공항이 있어야 한다는 논쟁이 제기되고 있다. 2003년 연구조사에서 시드니 국제공항은 교통의 적체로 인해 20년동안 국제공항 용도로만 사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72]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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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