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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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디어 랭의 사진 작품, 1936년 3월 캘리포니아 니포모에서 7살 된 딸을 데리고 배급권을 기다리는 32세 여성 모습.

대공황(大恐慌, 영어: Great Depression)은 1928년에 일부 국가에서 야기된 경제공황이 1929년 10월 24일, 뉴욕 주식시장 대폭락, 즉 ‘검은 목요일’로 촉발되어 전 세계로 확대된 경제공황을 뜻한다.

전개[편집]

단기적 현상으로 지속되었던 공황은 오래 지속되면서 전세계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미국의 경우 도시지역의 실업률은 38퍼센트 이상이었고 국민소득은 1929년 이래 30퍼센트 이상 감소했다.[1]

이 시기 JP모건은 다른 기업들을 인수했다. 공황이 가라앉은 1930년대 중반의 JP모건의 지배 아래로 들어온 기업으로는 자산규모가 1억 달러 이상이던 기업은 JP모건퍼스트 내셔널 뱅크 등 은행 14개, 생명보험회사 4개, 제너럴일렉트릭AT&T 등 전기 전화 가스 등 공기업 8개, 철도회사 4개, U.S. 스틸 등 자동차 철강 제조업체 12개사에 이르렀다. 여기에 공황 때 흡수한 중견기업까지 합하면 JP모건 산하의 기업체 수는 440개사였으며, 자산총액은 770억 달러에 달했다. 이는 미국 상장기업 200개사의 자산총액 가운데 40%에 가까운 액수였다.[2]

원인[편집]

대공황에 대한 원인 분석에 대해서는 케인즈학파통화주의자 사이에 차이가 있다. 존 케인즈는 대공황의 원인이 유효수요의 부족으로 보고 정부가 직접 개입하여 수요를 창출하면 위기가 해결될 것이라고 보았다. 한편 통화주의자인 밀턴 프리드먼안나 슈왈츠는 "케인즈의 주장처럼 수요의 붕괴에 따라 촉발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포에 질린 예금자들이 예금을 갑작스럽게 인출하자 은행들이 도산하면서 은행잔고와 준비금이 동이 난 직접적인 결과"라며 통화공급의 붕괴를 대공황의 원인으로 보았다.[3]

영향[편집]

몇몇 지식인들은 자본주의가 종말이 왔다고 주장하며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공산주의를 생각하고 소련을 여행한 경험을 글로 쓰기도 하였다.[1] 기술의 발전을 자본주의의 원동력으로 보았던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기술의 혁신이 정체되어 더이상 발전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붕괴할 것이며 사회주의가 도래한다고 주장했다.[4]

실업자의 증가와 중산층의 몰락은 정치적 극단주의를 도래하였다.[5] 일본에서는 1931년 하마구치 내각이 실각하면서 입헌 민주주의의 종언과 만주 침략을 알리는 전환점이 되었으며, 유럽에선 파시즘이 등장하는 데 영향을 줬다.[1] 독일에서는 디플레이션 정책으로 인해 불과 2년 사이 실업자수가 2배에 달하는 600만 명에 도달하면서 아돌프 히틀러가 정권을 잡는 계기가 되었다.[5] 심지어 영국과 미국에서도 파시스트 운동이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였으나, 영국에서는 1931년 국민 정부가 성립되며 민주주의를 수호하였고, 미국에서는 1932년 대선에서 당선된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이른바 '뉴딜 정책'을 실시하며 경제 회복을 꾀하였다.[5]

각주[편집]

  1. 윤석범. 《새거시경제학》. 123p쪽. 
  2. 이리유카바 최《그림자정부,경제편》
  3. 누리엘 루비니, 스티븐 미흠 (2010). 허익준 옮김, 편집. 《위기 경제학》. 청림출판. 84-87쪽. ISBN 978-89-352-0836-4. 
  4. 민경국 (2014.2.14). 《경제사상사》. 21세기북스. 205-206p쪽. ISBN 8950954427. 
  5. 지오프리 파커 (2004). 《아틀라스 세계사》 2판. 사계절. 146-147쪽.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