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서울)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종로(鍾路)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사거리에서 동대문구 신설동로터리까지 이르는 도로이자 국도 제6호선의 일부분으로 지정되어 있는 대표적인 도로의 하나를 이르는 말로, 그 주변 일대를 묶어 가리킬 때도 사용한다. 종로의 총 연장은 4.14 km이며 6~8차선도로이다.

역사와 유래[편집]

한성부는 처음부터 조선 왕조의 도성의 역할을 하기 위해 계획 도시로 건설된 곳이다. 종로 또한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도로였다. 조선시대의 종로는 영조척(營造尺)으로 폭 56척, 양옆의 수구(水溝)는 각각 폭 2척의 넓이로 이루어졌다.

처음에는 특별히 붙여진 이름이 없었으나, 종루에서 아침 저녁으로 성문을 열고 닫는 시간을 알린데서 운종가(雲從街)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점점 시간이 지나 운종가라는 이름은 종로라는 이름으로 바뀌었고 그것이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현재 종로라는 명칭은 현재 도로 명칭으로뿐만 아니라 동명, 구명으로까지 쓰이고 있다. 또한, 종로 1가에서 6가까지 이곳의 도로 이름으로 지역명으로도 쓴다.

세종로[1]가 정치적 중심 지역이었던 것에 반하여, 종로는 육의전(六矣廛)을 비롯하여 많은 상점들이 분포하였던 상업지역이었다. 이렇듯 종로는 동서를 횡단하는 도성 내 간선 도로였으나, 조선 후기로 오면서 도로변을 잠식하는 가건물 및 상점들이 늘어나 도로 폭이 점차 줄어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현재까지 지속되어 양품점·서점·제과점을 비롯하여 동대문 시장까지 분포하는 전형적인 상업 지역을 이루게 된 근간이 되었다.

일제 시대의 종로 2가

이렇듯 종로는 조선시대에는 한양의 가장 큰 번화가이자 중심 도로였으며, 근대에는 이 길에는 최초로 전차 노선이 부설되어 서울의 주요 간선 도로로서의 역할을 했다. 1974년에는 대한민국 최초로 이 도로 아래에 지하철이 건설되었다. 이러한 역사를 통해 현대의 종로는 지하철, 버스 등 대중 교통과 도로가 발달되어 있고, 상업 중심의 번화가가 자리잡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도로가 되었다.

주변의 명소[편집]

  • 피맛골 : 조선 시대에 종로를 행차하던 양반들을 피하기 위해 서민들이 이용하던 길. 종로 1가부터 종로 3가까지 남아있으며 2009년 12월에 철거될 예정이었으나 논란이 있어 유지되었다.[2].
  • 보신각
  • 인사동 : 전통문화의 거리로서 고미술점, 공예점, 전통찻집, 음식점 등이 몰려 있다.
  • 낙원상가 : 종로3가 근처에 있는 악기 전문 상가. 이 상가의 상층부는 아파트로 개발되었으며 주위의 오래된 떡집으로도 유명하다.
  • 세운상가 : 종묘 건너편에 있는 전자 제품 전문 상가.
  • 동대문시장 : 흥인지문 근처에 있는 의류 전문 상가.
  • 청계천
  • 충무로 : 대한민국 영화의 중심지.
이름 접속 노선 소재지 비고
국도 제6호선 새문안로와 직결
세종대로사거리 국도 제48호선 세종대로 종로구 세종로 (종로1.2.3.4가동)
종로구청입구 종로3길, 무교로 종로1가 (종로1.2.3.4가동)
종로1가, 종각역 우정국로
종로2가 삼일대로 종로2가 (종로1.2.3.4가동)
육의전 수표로
종로3가 (종로1.2.3.4가동)
종로3가, 종로3가역 돈화문로
종로4가 창경궁로 종로4가 (종로1.2.3.4가동)
종로5가, 종로5가역 동호로, 대학로 종로5가 (종로1.2.3.4가동)
흥인지문, 동대문역 서울특별시도 제50호선 율곡로 종로6가 (종로1.2.3.4가동) 서울특별시도 제50호선 구간
동묘앞역 지봉로 창신동, 숭인동
신설동역: 서울특별시도 제50호선 천호대로
난계로, 보문로, 한빛로
숭인동
국도 제6호선 왕산로와 직결

주석[편집]

  1. 조선시대 당시 육조 거리, 《주례》〈고공기〉72에 따르면 외조[外朝]
  2. [제786호] 골목길, 그곳엔 삶이 있었네 : 문화 : 뉴스 : 레드 기획 : 한겨레21

함께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