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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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社會主義, socialism)는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와 소수 관리에 반대하고 공동체주의와 최대 다수의 행복 실현을 최고 가치로 하는 공동 이익 인간관[1]을 사회 또는 윤리관의 기반으로 삼고[2][3] 자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하며 생산수단을 공동으로 운영하는 협동 경제와 모든 민중이 노동의 대가로서 정당하고 평등하게 분배받는 사회를 지향하는 다양한 사상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며, 또는 그 과정을 의미하기도 한다. 정치적으로 강력하게 등장한 근대적 사회주의인 초기 사회주의는 1826년 최초로 로버트 오언에 의해 주장되었지만, 훨씬 이전인 고대 그리스철학자 플라톤에서부터 사회주의와 밀접한 사상이 생겨났었으며, 생시몽의 공동체주의, 토머스 모어기독교 평등 사상이 결합되었다. 로버트 오언은 '사회주의'란 용어를 정립화했고, 그 후 유럽 각지에서 푸리에같은 여러 공동체, 집산주의를 지향하며, 이상적인 사회를 꿈꾸는 진보적 학자들에 의해 사회주의는 발전되었다. 오늘날, 사회주의는 민주사회주의와 같은 뜻으로 치환되기도 한다.[4][5][6]

설명

사회민주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로 갈라져 나온 대표적인 정치사상으로는 공산주의(共産主義)와 사회민주주의(社會民主主義)를 들 수 있다.

공산주의는 동기부여가 없이는 노력을 다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지 못한 사실상 쇠퇴한 정치사상으로 대부분 평가되는 데 반해,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등 북유럽 복지국가들을 낳은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와 사회개량주의, 민주주의를 성공적으로 결합해 사회주의 발전 초기의 목적이었던 통제를 통한 결과의 분배가 아닌 무상교육, 복지를 통한 기회의 분배를 이룩한 성공적인 정치사상으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북유럽 복지국가는 자본주의사회에서 민주주의라는 중재를 통해 사회주의로의 변화 과정에 있는 사회주의와 유사하기는 하나, 아직 사회주의를 이룩하지 못한 사회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사회주의의 다른 의미로는 기존의 민주주의자본주의에 비해 훨씬 진보된 체제(예를 들면 민주사회주의 또는 사회민주주의)를 의미하기도 하고, 강력한 정당이 정치-사회적 양상을 지배하고 있는 국가도 사회주의의 일부분일 수 있다.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은 이론의 크나큰 차이점때문에 서로 대립하였지만, 한국에서는 우익들의 군사독재와 특유의 역사와, 역사 이래 비주류로 정권창출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공산주의자와 사민주의자들의 사이가 나쁘지 않다.

여러가지 의미

사회주의는 사회·철학적인 뜻이 있고, 경제적인 뜻이 있고, 정치적인 뜻이 있다. 또한, 이런 분류에 따라 상반되는 의미도 달라진다. 사회주의의 철학적 의미는 극단적 개인주의(Extreme individualism)를 부정하는 것이므로, 철학적인 의미로서의 사회주의는 극단적 개인주의(이기주의와는 다름)에 상반되는 집단주의가 지배하는 모든 삶에서의 철학적 가치라고 볼 수 있으며, 경제적인 뜻에서는 자본주의(Capitalism) 또는 고전적 자유주의(Classical liberalism) 시장 경제를 반대하거나 어느정도 규제한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정치적인 뜻에 있어서 사회주의는 기존 자유주의를 필두로 작은 정부를 구성한 자유민주주의 정부보다 큰 정부를 구성하고, 자본주의 경제로 나타나는 모순을 방치하는 자유주의 통치 아래 약자가 자유의지를 제대로 실현할 수 없음을 자각하고 그러한 사회상에 대해 반대하거나 수정하려는 사상으로도 전해진다. 또한 개인의 자유보다 사회적 발전과 평등 사회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와 상반되는 의미로도 쓰일 수 있다.

개요

자본을 비판, 극복하기 위한 사상들, 사회주의

초기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가 다음과 같은 문제를 내포한다고 여겼다. 자본을 쥐고 착취를 통해 부를 축적한 사회의 극소수에게 권력가 집중되어, 모든 사람이 자신의 가능성을 펼칠 수 있는 평등한 기회를 부여받지 못하고[7], 기술자원의 이용이 제한당하며[8], 자본주의적 소유관계가 생산력에 족쇄를 채운다[9] 는 것이다. 그러나 나중 발전한 사회민주주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듯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는 한 사회 안에서 양립할 수 있다.

카를 마르크스와 더불어 과학적 사회주의(Scientific socialism) 이론의 창시자 중 한 명인 프리드리히 엥겔스[10] 와 프랑스의 공상적 사회주의 이론가인 앙리 드 생시몽은 사회적 생산 개념의 광범위한 도입만이 자본주의의 무정부적인 생산에 의한 폐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라 주장하였다.[11][12] 이들은 이를 위해 사회적 기여에 따른 분배를 실현하여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그러나 사회주의자들 내에서도 이러한 분배가 무슨 기준으로,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논란이 있다.

사회주의에 대한 해석들

사회주의는 단일한 이론에 의해 고정되어 있는 이념이 아니다. 사회와 경제에 대하여 공공성과 사회화가 얼마나 적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사회주의의 분파마다 견해가 다르다. 예컨대 완전한 계획경제를 주장하는 분파(공산주의 등)에서부터 시장경제를 상당부분 인정하는 분파(사회민주주의 등)까지 다양하다. 이 때문에 사회주의의 각 분파는 상대방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사회주의 운동분파에 대한 큰 구분으로는 사회주의 체제의 건설을 위해 급진적 혁명을 지향하는지, 아니면 점진적개혁을 지향하는지에 따른 구분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 사회주의 분파에 따라 "공공경영경제"는 완전한 사회화로 이해되기도 하고, 시장경제가 유지되는 가운데 공기업과 같은 국가가 관리 감독하는 양립체제로 이해되기도 한다. 또, 결과의 분배를 중시하는 공산주의와 기회의 분배를 중시하는 사회민주주의로 나누어 보는 견해도 있다

사회주의자들은 소련의'소련식 경제 개발 모델'에 고무되어 있었다. 이 모델은 모든 생산 수단의 공유화와 중앙 집중적인 계획 경제를 특징으로 한다. 197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의 기간 동안에는 중화인민공화국,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연방공화국, 헝가리인민공화국, 동독과 같은 현실 사회주의의 여러 나라에서 공산주의 정권이 실시한 시장 사회주의가 주목을 받았다. 시장 사회주의는 자유 시장의 존재를 인정하고 국가의 계획 경제와 시장을 병립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한다.[13]

현대의 사회민주주의적 사회주의는 개인재산권(Property rights)과 사업 운영의 권리를 인정하고 시장 경제의 틀 속에서 주요 산업을 공유화하는 형태의 혼합 경제를 지지한다. 이는 자본주의를 개혁하는 것에 보다 촛점을 맞춘 것으로,19세기 말 20세기 초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자본주의 자체를 폐지하려 했던 것과 대비된다. 오늘날 유럽의 복지사회에서 보여주듯 현대의 사회민주주의는 공공성을 기반으로한 복지 국가와 시장의 규제를 주요 경제정책으로 삼으며 결과물의 분배가 아닌 기회의 분배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편 사회주의적 아나키즘이나 자유마르크스주의(또는 신좌파)와 같은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Left libertarianism)에서는 산업의 노동자 자주관리 등의 경영민주주의를 보다 강조한다.

기원

사회주의라는 용어는 19세기에 파생되었다. 영국에서는 감리교(Methodist Church) 노동 공동체를 구상하던 로버트 오웬을 따르는 이들이 1827년 자신들을 설명하는 데에 처음 사용하였으며, 프랑스에서는 1832년 이상적 사회주의자로 불리는 생시몽의 이념을 따르는 이들과 앙시끌로뻬디 누벨의 저자 삐에르 레로J. 레노들이 사용하였다. 그 후 이 용어는 사회주의자들과 그의 비난자들이 폭넓게 활용하였다. 사회주의 단체들 사이에 이견은 존재하나 이들은 대체적으로 19세기20세기 산업·농업 노동자들의 투쟁사를 공유하고 있으며, 연대의 원칙과, 소수가 아니라 폭넓은 대중에게 유리한 경제 체제가 근간이 되는 평등한 사회를 부르짖는다는 것에 합의를 본다.

마르크스주의(Marxism) 이론에서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를 대체할 다음 단계이며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계급 억압이 차츰 약해짐에 따라 최종적으로 공산주의로 발전한다. 마르크스주의공산주의는 둘 다 사회주의의 한 계열이다.

사상적 근간과 분파 체계

계몽주의 시대

프리드리히 엥겔스를 중심으로 한 일련의 마르크스주의자들에 따르면 사회주의 모델과 생각은 인류의 사회역사 초창기로부터 그 근원을 찾을 수 있으며 인간의 본성과 초창기 인간 사회 조직 구조의 불가피한 형태였다. 18세기 계몽 시대가 막을 올리자 일련의 사상가들인 콩도르세, 볼테르, 장 자크 루소, 드니 디드로 등은 프랑스의 동요하는 사회 계층을 위한 지적 그리고 사상적 표현을 제공하였다. 이것은 심지어 앙시앵 레짐(구체제, 舊體制)으로 말미암아 소외된 부르주아지까지도 포함하여 추후 사회주의가 뿌리를 내리게 될 대중적 계급들을 포섭하였다.

근대적 사회주의

근대적인 형태의 사회주의는 초창기부터 일련의 성격을 공유하였다. 이것들은 극단적 개인주의보다 공동체주의와 사회안정 추구, 경쟁보다 협동, 그리고 정치·경제 일반과 이러한 것들에 대한 정책을 실행함에 있어서 산업계, 정치계 지도자들 또는 각 구조들을 대표하는 엘리트보다는 대중 계층과 노동자를 중시하고 이들이 권력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초창기 사회주의는 계급 투쟁으로서 사고하지는 않고 다만 새로운 사회의 건설을 위하여 부요한 자들이 가난한 자들과 함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사유에 대한 도전과 혁명에 있어서 프롤레타리아의 특별한 위상에 대하여 계급 투쟁이라는 답변은 프랑스 혁명바뵈프민중의 사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후 이러한 사상은 마르크스주의 분파가 크게 발전시킨다.

마르크스주의

1848년 혁명의 때에는 서로 경쟁 관계에 있는 "사회주의"들이 존재하였다. 이 중 가장 영향력 있는 것은 생시몽과 오웬 그리고 샤를 푸리에가 설립한 것들이었다. 이 시대 카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이들 사상을 "이상주의적 사회주의"로 부르며 스스로는 이들과 구분하기 위하여 "공산주의자"라고 부르고 있었다. (추후 엥겔스는 마르크스주의를 논리를 갖춘 사회주의 이론이라는 뜻에서 "과학적 사회주의"라 부르기 시작했다.[14])

파시즘과 연관성

20세기에 사회주의의 한 분파인 국가사회주의이탈리아의 혁명적 조합주의자 조르주 소렐민족조합주의 이론, 유럽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은 반-계몽주의적 사회주의를 유럽의 국민주의(Nationalism) 문학자들과 후에 베니토 무솔리니가 계승하여 파시즘이 탄생한다. 이러한 역사 때문에 사회주의에 반대하는 자본주의자 또는 자유주의 우익 세력은 사회주의와 파시즘을 동일시하나, 파시즘의 사회주의적 경향은 오늘날 사회주의 운동의 모태가 되는 이론인 생시몽, 샤를 푸리에 계의 계몽주의적 사회주의(또는 초기사회주의) 또는 마르크스주의의 사회주의 경향과 매우 다르고 심지어 반대되는 개념도 많기 때문에 파시즘과 사회주의를 동일시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인 것이다.[15]

정치적인 후기 파시즘 운동의 시발점은 1919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시작된다. 이탈리아 초기의 파시스트들은 과격한 퇴역군인과 국가주의생디칼리스트, 미래파 지식인, 젊은 반(反)부르주아 불만 세력, 중산층으로 민족의 영광과 사회 변화를 함께 꿈꿨던 사람들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 이들이 사회주의자 및 급진[16]기독교 정당인 이탈리아 인민당(Partito Populare Italiano, PPI)과 달랐던 점은 민족주의밖에 없었다. 실제로 초기 이탈리아 파시스트 중 많은 사람들이 무솔리니와 마찬가지로 좌파 출신들이었다. 파시스트 행동대파시즘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구성비가 우파 쪽으로 기울게 만들었다. 지주의 아들들과 심지어는 일부 범죄 집단들도 이제 파시즘 운동에 참여했다. 그러나 파시즘은 여전히 초기의 특성을 유지했다. 즉, 새로운 파시즘은 기성세대와 기득권에 저항하는 세대의 반란이었다.[17]

무솔리니1919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실패한 좌파 민족주의 파시즘을 고수하지 않고, 자신의 운동을 정치적 기회로 활용하는 편을 택했다. 1920년에서 1922년 사이 그의 연설과 강령에서 무솔리니가 점차 우파 쪽으로 점진적으로 변화해가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초기 파시즘에서 가장 먼저 사라진 사상은 전쟁과 제국주의에 대한 거부였고, 그 다음으로는 반자본주의가 사라졌다. '참호(에서 얻을) 반전주의'는 전투의 기억이 아직 생생하던 당시 퇴역군인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던 신념이었다.[17]

이탈리아 산세폴크로 광장에서 발표한 강령은 (피우메와 달마티아 해변에 대한 이탈리아의 권리를 주장하기는 했지만) '각 나라의 영토를 보전하는 것이 최우선의 원리'라는 국제연맹의 원칙을 받아들였다.[17] 이때까지만 해도 이탈리아의 기성 우파, 반왕당파 및 공화정 세력은 귀족과 재벌들의 이권을 수호하고 그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유지하였으며, 이들을 좌파로 규정, 위험성을 경고하는 수준에서 머물렀다.

1919년 6월의 강령에서는 직업적 군대를 방어적 의미의 민병대로 대체하고 무기 및 군수품 공장을 국유화한다는 파시스트들의 주장은 그대로였지만, 국제연맹 이야기는 사라졌다. 1921년 발표한 강령에서 달라진 파시스트당은 국제연맹을 편파적이라고 비난하고, '지중해 라틴 문명의 보루'이자 이탈리아적인 것(Italianita)의 보루로서 이탈리아의 역할을 강조했으며, 이탈리아의 식민지 개척과 대규모 상비군의 필요성을 주장했다.[17] 무솔리니는 자랑스러운 이탈리아, 로마 제국의 옛 영광, 반국가 행위자 처벌 등을 주창했다. 이러한 무솔리니와 파시스트들의 주장은 제1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대중들의 급격한 동의를 얻으면서 기성의 우파 정당을 대체하여 집권당의 위치에 오르게 된다.

영국에서 2차대전 직후 일부 좌파와 극우파들은 파시즘을 신봉하였으나, 히틀러 등의 패망으로 좌절되고 말았다.

1940년은 처칠이 노동당을 포함한 거국 내각을 표방함에 따라, 일부 반공주의자들이 신봉했던 파시즘이 독일과 이탈리아 국경을 넘어 영국에서도 하나의 이념으로 민주주의와 대적할 수 있었던 해였다. 훗날 마이클 푸트는 "1940년은 우파에게 징발당한 대단히 상징적인 해"라고 말했다.[18]

사회주의자들의 공통된 신념

맥락에 따라 사회주의라는 표현은 이들 사상, 또는 이들 사상의 직계 후손을 칭할 수 있다. 이들 사상은 아주 넓은 범위의 시각을 포괄한다. 그러나 공통된 신념은 봉건자본주의적 사회들이 소수의 경제 엘리트를 위하여 작동하고 있다는 인식과 대중이 없이는 이 엘리트들도 존재할 수 없으므로 사회가 공중의 이익을 위하여 운영되어야 한다는 것을 포함한다. "사회주의"적 사상들은 경제 경쟁보다 경제 협력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으며 거의 대부분 어떠한 형태의 계획 경제를 추구한다. (일부 분파들, 특히 초기의 분파들은 중앙 계획을 선호하나 이것은 모든 분파들이 공유하는 점은 아니다).) 이들은 모두 생산 수단과 부 그리고 서비스 분배의 적어도 일부분을 대중 또는 협력적 소유 제도로 바꾸는 것을 지지한다.

역사적으로 사회주의 사상은 노동조합의 성장과 보조를 같이하였다. 세계의 수많은 곳에서 이들 두 개 운동은 아직 긴밀한 연관이 있으며 다른 곳에서는 두가지 움직임으로 분리되었다.

사회주의 경제의 종류

오늘날에는 사회주의와 계획 경제를 등치시켜서 보는 시각이 일부 존재하지만, 그것이 사회주의 경제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아니다. 21세기 기준으로 사회주의적 경제의 급진적 실행은 매우 어려운 과제 중 하나로 남아있다. 공산권이 붕괴한 후 자본주의 강대국이 세계 경제를 주름잡게 됨에 따라 사회주의 경제의 실행은 단순히 내부의 문제만이 아니라 외부의 경제 공격 문제에도 신경을 써야한다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계획 경제

사회주의적 계획 경제의 장점이자 특징은 특정 개인의 욕구에 의한 경제 개발, 생산 활동이 아닌 공동체 또는 사회 전체의 이익에 맞는 경제 개발, 생산 활동이 이루어진다는 점에 있다. 또한 다른 특징으로는 정경유착, 불로소득, 대외금융 자본에 대한 제재를 엄격하게 실행한다는 점에서 지령 경제, 혼합 경제와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경제 규모가 커짐에 따라 시장 경제나 혼합 경제에 비해 많은 행정비용, 시간이 필요하므로 그 비효율성이 나타난다는 단점도 있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단점을 해소하기 위해 계획경제주의자들은 원거리에서 절차상의 행정비용이 들지 않도록 경제를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중이다.

소비에트식 계획 경제

1918년에서 1920년 간, 1924년부터 1965년까지 소련에서 사용했던 경제 체제이다. 소비에트식 계획 경제의 역사는 러시아 혁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블라디미르 레닌은 러시아 공산주의 운동을 지도하면서, 노동자들의 자주 경영 가능성을 믿었다. 10월 혁명 이후 레닌은 모든 생산수단을 사회화하여 노동공동체에게 모든 생산수단의 관리를 맡겼다. 그러나, 당시 러시아 노동자의 3/4은 문맹이었고 생산수단을 관리할 능력은 없었다. 이런 상태에서 생산수단을 사회화하자 경제 경영에 치명적인 문제가 생긴다. 이러한 문제에 봉착한 레닌과 볼셰비키는 생산수단의 사회화가 아닌 소수의 경제 엘리트들로 하여금 '국유화'로 경제 제체를 다시하게 되었다.[19]

소비에트식 계획 경제 사회에서는 중앙 정부와 지역 공동체가 모든 경제권을 쥐며, 분배, 공급, 수요, 상품 가격 등 수많은 경제 요소들을 계획 및 관리한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 때문에 행정학적, 사회학적 측면도 고려해야 하며, 정치경제학과 겹쳐질 수 있다. 소규모 경제에서 소비에트식 계획 경제는 경제 성장 또는 발전에는 불필요한 민간 간의 이해관계를 제약하고, 경제 발전에 몰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한 사회주의적 경제 이론이지만, 경제 규모가 커질 수록 경제 성장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고 전해지며, 중앙 당국의 판단착오가 겹쳐지면 그 피해는 막대하다. 동시에 중앙 정부 경제 관료들에게 과한 업무량을 부담하기도 하는 체제이다. 북한의 경우는 소비에트식 계획 경제를 90년대 중반에 포기했으며, 계획-지령 경제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오늘날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은 인터넷 시스템이 발달하면서 소비에트식 계획 경제의 21세기화를 진행중이다. 대한민국에서는 박정희가 소비에트식 계획 경제를 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소비에트식 계획 경제는 임금을 '직접 임금'의 형태보단, '사회적 임금'[20] 의 형태로 지급하며, 개별 소비의 자유를 일정 부분 제한하고, 생산수단을 모두 국유화한다는 점에서 박정희의 자본주의적 지령 경제랑은 다른 개념이다.[21] 해당 경제 정책을 시행하는 국가는 쿠바가 있으며, 과거에는 소련, 모택동 치하의 중국, 북한 등 수많은 공산권이 실행했었다.

탈집중화 계획 경제

민주사회주의, 탈권위 마르크스주의의 대표적인 사회주의 경제 운용 방식이며, 생산수단과 관련이 밀접한 민간경제단체, 그 안의 노동자, 생산수단 단위로 이루어진 공동체와 함께 계획 경제를 꾸려나가는 사회주의적 경제이다. 소비에트식 계획 경제와 같은 계획 경제의 일부로 취급되지만, 탈집중화 이론을 주장하는 이론가들은 경제 규모가 커짐에 따라 소비에트식 계획 경제가 한계를 갖는다는 것을 인정하고 러시아 혁명 시절에 실행된 일련의 사회주의적 계획 경제 정책의 불가피성에 대해서도 또한 인정한다. 동시에 오늘날 탈집중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축적 및 점층되어온 노동자들의 경영 능력을 조명하며, 그에 따른 경제 관리 능력을 중시한다. 이러한 점을 들어 민중, 노동자 대다수가 충분히 교육 수준이 높기 때문에 충분히 생산수단을 경영할 능력이 된다고 주장하며 즉, '소비에트'식이 아닌 중앙정부 집중 경제를 멀리하는 '탈집중' 계획 경제를 주장한다.[22]

또한 이들은 21세기 사회에 계획 경제를 실행함에 있어서 모든 과학·기술력을 효과적으로 동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점에서 탈집중화 계획 경제의 특징은 IT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고 주장한다는 데에 있다. 탈집중화 이론은 컴퓨터 시스템이 발달하면 1990년대 초반부터 나온 사회주의 경제 이론이며, 경제 계획을 IT, 인터넷 외의 수많은 첨단 전자기기를 이용하여 관리한다는 내용이 주이다. 다른 경제 체제와 달리 IT기술 발전이 상당히 높아야 가능한 사회주의 경제이다. 해당 국가로는 베네수엘라, 살바도르 정부 시절의 칠레, 유럽의 일부 국가 등이 있다.[23]

사회주의 지령 경제

사회주의적 지령 경제는 정부의 정치적 지배력을 유지하면서도 생산수단에 파견된 경영인에게 해당 생산수단 내에서 독점적인 경제정책 권한을 부여하는 경제 정책이다. 중앙 정부의 지배력은 유지하고 경제는 자본주의와 다를 바 없이 성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주의라고 보기에 모호한 점도 많다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경제 정책은 시장 매커니즘에 따른 경제 성장을 촉진시킬 수 있으나 정경유착, 시장 부패가 증가한다.[24][25]

계획-지령 경제

1965년부터 1987년까지 소련이 행했던 경제 정책이며, 전체적으로는 계획 경제의 틀을 유지하나, 생산 수단의 경영권은 전적으로 해당 산업지 경영인에게 주어진다. 다만 그 성과에 따른 수입의 분배는 모두 국가가 결정한다는 점에서 시장-지령 경제와는 다르다, 이러한 정책은 계획 경제 하에서 생산성을 증대시킬 수도 있다고 알려져있지만, 동시에 산업지의 불균형적인 성장을 초래하고 정경유착을 유발할 수 있다. 소련은 1965년부터 부분적인 계획-지령 경제 체제를 수용했고, 1988년부터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가서 시장-지령 경제도, 계획-지령 경제도 아닌 모호한 체제가 되었다. 해당 경제 정책을 시행하는 국가로는 라오스, 북한[26] 이 있으며, 과거 소련도 시행했었다.[27]

시장-지령 경제

시장-지령 경제는 권위주의적 성향을 가졌던 수많은 정부에서 실시한 경제 정책과 유사하다.[28] 또한, 한 종류로 취급되는 1979년부터 중국에서 본격화 된 시장주의적인 중국식 시장-지령 경제 체제를 주로 중국식 시장 경제라고 칭한다. 사유 재산이 전적으로 허용되며,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지대, 생산수단은 국가 소유이나, 일부 지대와 생산수단, 금융의 사적 소유가 허용되고, 시장 형성이 제한없이 가능하다. 다만, 중앙 정부의 경제 간섭은 존재하며, 이러한 간섭의 목표는 딱히 정해진 바가 없지만,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이뤄져온 시장-지령 경제에서의 정부 간섭은 시장의 투명성,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간섭이라기 보단 해당 산업지의 경영인이 어떤 방식으로 산업 경영을 실행하는 지를 관리하기 위함에 불과했다. 이러한 경제 정책은 중앙 정부의 정치적 지배력을 유지하면서, 경제는 시장 경제의 매커니즘을 따라, 정부의 경제 계획없이 성장할 수 있게 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장-지령 경제 또한 막대한 정경유착과 빈부격차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와 다를 바 없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1921년부터 1923년까지 이루어진 전시공산주의에서의 '신경제정책'도 시장-지령 경제의 일부에 포함된다. 해당 경제 정책을 시행하는 국가로는 중화인민공화국, 베트남, 카자흐스탄 등등이 있다.[29]

혼합 경제

협동조합식 혼합 경제/사회민주적 시장 경제

2차 대전 종전 이후 서, 북유럽에서 광범위하게 실행된 사회민주주의적 혼합 경제이다. 사유 재산이 전적으로 허용되고,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가 전적으로 허용된다. 정부는 시장의 투명, 공정성을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으며, 이러한 일련의 혼합 경제 정책의 궁극적 목표는 거대기업의 독과점, 횡포의 방어, 시장 실패에 대한 방지가 있다. 동시에 정부는 협동조합의 설립을 지원한다. 협동조합을 지원하고 대기업을 견제함으로써 가격 경쟁이 가능한 완전경쟁체제에 가까운 경제를 만드려고 하는 것도 또한 협동조합주의 혼합 경제 체제 하에서의 정부의 역할이다. 사회주의적 요소가 제일 적고, 이론에 있어서도 사회주의의 범위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해온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후생경제학케인즈주의 경제학으로부터 많이 차용된 것이므로 사실상 자본주의 경제에 불과하다는 주장도있다. 해당 국가로는 북유럽서유럽 등이 있다.[30]

분파

19세기 이후 세계의 사회주의 이념은 다양한 분파를 형성하면서 진화, 발전하였다. 그러나 한국적 상황에서는 아직 사회주의를 경직되게 해석,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개량적 사회주의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을 기점으로 형성된 사회개량주의 또는 개량적 사회주의는 사회민주주의민주사회주의 그리고 국가사회주의의 뿌리가 되었다. 개량적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지만, 그 안에서 사회 개혁과 사회주의적인 정책을 점진적으로 실행해나가는 사상의 총칭이다.

과학적 사회주의

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를 기점으로 형성된 과학적 사회주의는 '사회주의 체제'를 처음으로 구현했으며, 근본적이고 현실적인 사회 개혁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지속적인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정치, 사회, 경제, 철학 면의 이론을 담고있으며 후에 블라디미르 레닌이 계승하여 일반적인 공산주의를 뜻하는 마르크스-레닌주의가 과학적 사회주의의 대표적인 분파로 남았다.


이상적 사회주의

이상적 사회주의는 다른 말로 '공상적 사회주의'라고도 한다. 엘리 알레뷔에 따르면 "사회주의"라는 표현은 두가지 상이한 사회 및 경제 체제를 표방하는 두 개 조직에서 상호 독립적으로 도입하였다. 이들의 한 무리는 생시몽, 특히 1813-33년 사이에 피에르 뤼록스이며 다른 무리는 1835년경 로버트 오언의 추종자이다. 이상적 사회주의는 사회주의 본연의 뜻과 같은 동의어로 알려져 있었으나 마르크스가 기존의 사회주의를 이상적이고 현실에 도입하기 어려운 사회주의라고 보아 자신이 만든 '과학적 사회주의'와 기존의 사회주의를 비교하기 위해 기존의 사회주의를 '이상적 사회주의' 칭하였다. 이상적 사회주의는 바쿠닌, 프루동, 크로폿킨 같은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계승되었으며 대표적으로는 아나키즘이 있다. 주류 아나키즘은 대표적으로 사회주의적 아나키즘(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이 있으며 이상적 사회주의는 상호부조를 중시하며 자본, , 국가는 인간을 잔인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소수 사회주의

개량적, 과학적, 이상적 사회주의 분파에 속하지않은 소수파에 해당하는 사회주의파가 존재한다.

“사회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다른 사상

"자유주의", "보수주의" 또는 "민주주의"등의 정치 용어들과 마찬가지로 (예는 이승만자유당,박정희민주공화당, 전두환민주정의당을 보라) "사회주의" 또는 "사회주의자"라는 표현은 역사적 사회주의 움직임과 거의 관련이 없는, 또는 사회주의를 극단적으로 억압하고 반대하는 조직들에 의해 사용되기도 하였다.

실례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탄압한 파시즘 정당인 나치당 ("국가 사회주의 노동자당")은 자신의 공식 명칭에 "사회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으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러한 용어 사용이 오직 선전적 의도에 기반한 것이었으며. 이들은 상황에 따라 노동자 옹호 또는 기업 옹호 포지션을 취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사회주의라는 표현의 적대적 사용

몇몇 조직들은 (#“사회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다른 사상을 참고)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 부르나 대부분의 사회주의자들은 이들을 사회주의와 상치되는 것으로 인식한다. 동시에, 이 표현은 우파 정치가들이 자신보다 덜 보수적인 주체를 깎아내리려고 할 때 사용된다. (예: 공공 보건을 "사회주의 의료"라고 부르거나 미국 민주당을 "사회당"으로 부르는 것). 본 문서에서 사용하는 "사회주의"는 "사회주의"라는 표현이 이러한 맥락에서 사용될 때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여러 분파들을 가르는 현안

사회주의의 여러 분파를 가르는 질문의 예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31]

  • 사회 변화는 혁명을 통하여 이룰 것인가, 아니면 개혁을 통하여 이룰 것인가, 또는 어디까지 가능한가?
⇒ 근본적 사회구조 변혁이냐, 점진적 개혁이냐?
  • 사회 변화를 일으키는 주체적 요소를 전통적 요소인 노동자 계급으로 설정할 것인가, 계급보다는 유연한 틀인 계층으로 설명할 것인가? 농민, 자본가, 소상인 등과 노동자 계급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 사회 변화를 주도할 '피억압 다수'를 어떤 범주로 설정할 것인가? 기존의 부르주아적 정치집단과는 어떠한 관계를 유지할 것인가?
  • 사회 변화에 있어서 일국적 특성을 강조할 것인가, 국제적인 연대를 추구할 것인가?
⇒ 일국 사회주의냐, 국제 사회주의냐?

사회주의의 종교이해

사회주의에 대해 대다수의 종교인들은 종교에 반대하는 이론으로 잘못 생각한다. 물론 옛 소비에트 연방에서 러시아의 전통교회인 정교회주교들과 사제들을 학살하는 등 사회주의자들이 종교에 대해 적대적이었던 것은 맞지만, 이는 민중을 해방하고 민중의 편에 서야할 종교가 오히려 지배계급의 편에 서서 민중의 아편 노릇을 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32][33] 북한에서 종교말살정책을 실시하여 종교인들이 남한으로 이주한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였다.[34] 사회주의에서는 종교가 하느님의 이름으로 민중을 억압하고 지배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 뿐이지, 종교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프랑스 사회주의자였던 장 조레스는 인간을 지배하는 하느님은 없다고 했지, 하느님은 없다고 하지 않았으며[35], 엥겔스독일 이데올로기에서 공산주의 사회가 건설된다고 해도 종교는 현재상태 그대로 놔두라고 말한다.[36] 따라서 사회주의=반종교사상, 종교=반사회주의로 이해하는 것은 정확한 이해가 아니다.

그러나, 블라디미르 레닌이 최종 개량한 마르크스-레닌주의부터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인해 공산주의 혁명에 있어서 종교는 배척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같이 보기

각주

  1. 카를 마르크스는 인간은 '욕망 추구 존재'이고, 보편적 윤리에서 선악 판단은 최대 다수의 행복 실현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점에서 공리주의와 공통적인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생각은 기존에 생시몽샤를 푸리에를 비롯한 수많은 초기 사회주의자들이 갖고있던 생각과 동일한 것이었다. 단, 공리주의적 경제윤리는 자본주의 사회를 전제하기 때문에 사회주의자들은 공리주의적 경제윤리를 부정한다.
  2. Andrew Vincent, 『Modern political ideologies』 Wiley-Blackwell publishing. 2010. pg. 87 ~ 88
  3. 임상훈, 『20세기 사상 지도 : 마르크스에서 지제크까지 눈으로 그려 보는 현대 철학』(2012, 부키) pp. 51 ~ 57
  4. Newman, Michael. (2005) Socialism: A Very Short Introduction, Oxford University Press, ISBN 0-19-280431-6
  5. "Socialism". Oxford English Dictionary. "1. A theory or policy of social organisation which aims at or advocates the ownership and control of the means of production, capital, land, property, etc., by the community as a whole, and their administration or distribution in the interests of all. 2. A state of society in which things are held or used in common."
  6. "Socialism".Merriam-Webster Unabridged Dictionary
  7. Socialism, (2009), in Encyclopædia Britannica. Retrieved October 14, 2009, from Encyclopædia Britannica Online: http://www.britannica.com/EBchecked/topic/551569/socialism, "Main" summary: "Socialists complain that capitalism necessarily leads to unfair and exploitative concentrations of wealth and power in the hands of the relative few who emerge victorious from free-market competition—people who then use their wealth and power to reinforce their dominance in society."
  8.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들이 기술과 자원의 이용에 관한 결정권을 독점하기 때문에 공공의 목적에 맞는 합리적 이용이 힘들어진다는 의미이다.
  9. Marx and Engels Selected Works, Lawrence and Wishart, 1968, p. 40. Capitalist property relations put a "fetter" on the productive forces.
  10. 엥겔스는 마르크스의 사상적인 동지였으며, 마르크스 사상을 요약한 문헌들중 하나인 공산당 선언(공산주의 선언)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동저자이다. 《새로운 공동체를 위한 운동-공산주의 선언》/박찬종 지음/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원저/아이세움
  11. Socialism: Utopian and Scientific at Marxists.org
  12. Frederick Engels. Socialism: Utopian and Scientific. p. 92–11. Chapter III: Historical Materialism
  13. "Market socialism," Dictionary of the Social Sciences. Craig Calhoun, ed. Oxford University Press 2002; and "Market socialism" The Concise Oxford Dictionary of Politics. Ed. Iain McLean and Alistair McMillan. Oxford University Press, 2003. See also Joseph Stiglitz, "Whither Socialism?" Cambridge, MA: MIT Press, 1995 for a recent analysis of the market socialism model of mid–20th century economists Oskar R. Lange, Abba P. Lerner, and Fred M. Taylor.
  14. 《교과서 밖의 세계사》/김성환 지음/사계절
  15. 한형식, 《맑스주의 역사 강의》(그린비)
  16. 파시즘 : 열정과 광기의 정치 혁명 (로버트 O. 팩스턴 지음, 손명희, 최희영 역, 도서출판 교양인) 154페이지
  17. 파시즘 : 열정과 광기의 정치 혁명 (로버트 O. 팩스턴 지음, 손명희, 최희영 역, 도서출판 교양인) 155페이지
  18. 앤드류 로버츠, CEO 히틀러와 처칠 리더십의 비밀 (이은정 역, 휴먼앤북스) 46페이지
  19.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참조
  20. 예를 들면, 국가에서 배당해주는 자동차, 가구, 전자기기, 육아수당, 임대 아파트, 배급소에서 배급되는 식량, 생필품 등이 '사회적 임금'에 속하며, 직접 임금은 투기 가능한 자본 또는 화폐의 형태로 한꺼번에 주어진다. 시장 경제를 주요 경제 체제로 삼는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주로 임금을 직접 임금의 형태로 주며,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주로 임금을 사회적 임금의 형태로 준다.
  21. Kaser, M C, Soviet Economics, 1970, London: Weidenfeld & Nicolson, p. 102
  22. 김수행의 《마르크스가 예측한 미래사회》참조
  23. Democratic Planned Socialism, by Campbell, Al. 2002. Science and Society, 66(1), Spring 2002, 29-42.
  24. Sombart, W., Der moderne Kapitalismus, 3Bde, 1902~27
  25. Schumpeter, J. A., Capitalism, Socialism and Democracy, 1942
  26. 단, 시장 경제적 요소도 혼합된 상태다.
  27. Ian Adam 저,《Ecomomic reform》(1989) p. 14 참조
  28. 나치 독일, 파시스트 이탈리아, 박정희 치하의 대한민국 등
  29. Heazle, Michael; Knight, Nick (2007). 《China–Japan Relations in the Twenty-first Century: Creating a Future Past?》 참조
  30. Steger, Manfred B. The Quest for Evolutionary Socialism: Eduard Bernstein And Social Democracy. Cambridge, England, UK; New York, New York, USA: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7. pg. 146
  31. 로자 룩셈부르크,《사회 개혁이냐 혁명이냐》, 책세상, 2002
    알렉스 캘리니코스, 《마르크스의 사상》, 북막스, 2002 등 참조
  32. 포이에르바흐에 대한 테제》/칼 마르크스 지음
  33. 예수전》/김규항 지음/돌배게
  34. 《교회야,교회야 뭐하니?》/지성수 지음/예루살렘
  35. 《사회주의와 자유》/장 조레스 지음/책세상
  36. 《공산당 선언》/칼 마르크스, 엥겔스 같이 씀/책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