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민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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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민족주의(불어: Nationalisme de gauche, 영어: Left-Wing Nationalism, 한자: 左派民族主義) 또는 사회 민족주의(불어: Nationalisme socialiste, 영어: Socialist Nationalism, 한자: 社會民族主義)는 좌파 이념과 민족주의가 결합된 이념이며, 비인종주의, 반국수주의, 반우월주의, 반제국주의적인 것이 특징이며 민족 자결과 민족 해방을 최상의 가치로 여긴다. 때문에 보편적인 민족주의인 '우익 민족주의'와는 여러가지 차이가 있다.

내셔널리즘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 유럽에서 영향력을 얻었다. 당시 프랑스의 좌파 정치인들은 내셔널리즘을 내세웠고, 이후의 혁명 전쟁에서도 내셔널리즘은 진보적인 가치로 인식되었다.

1870년대에 알자스로렌 지방이 독일에 넘어간 이후, 프랑스의 내셔널리즘은 '실지회복론'과 결합하였고 때때로 제국주의를 비판하기도 했다. 1880년대에는 이와 관련한 논쟁이 벌어졌다. 일례로 조르주 클레망소식민주의로 인해 알자스로렌 문제에 대한 관심이 적어졌다고 비판하였다. 그러나 드레퓌스 사건 이후 프랑스의 내셔널리즘은 명백히 우파적인 정치 이념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러한 움직임에 반발하여 좌파적인 내셔널리즘이 태동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대체로 타국의 경제적 압력, 혹은 경제적 통합 과정에서 생기는 불이익에 반발하여 등장했다. 때때로 이들은 유럽 연합과 같은 초국가적인 조직이나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적대감을 표출하기도 한다. 또한 좌파 민족주의는 타국으로 인한 경제적인 착취나 압력에 대해 노동 계급의 역할을 강조하기도 한다.

대한민국에서의 좌파 민족주의는 민족 해방 운동으로 나타났다.

개요[편집]

현대 좌파 민족주의[편집]

좌파 민족주의가 본격적으로 상용화 된 시기는 20세기 초,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 러시아 소비에트 공화국이 탄생되면서 부터 급속히 퍼져나갔다. 현대의 좌파 민족주의는 맑스-레닌주의제국주의론과 공산주의의 인간해방론을 본따서 강대국 압제 세력에 대한 정치, 사회, 문화 및 경제적으로 완전한 자주 국가의 형태를 취하는 것을 이상적인 사회로 보고있다. 20세기 초의 좌파 민족주의 형태는 오늘날까지 이어져오는데, 당시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가진 강대국들은 개발도상국 및, 약소국의 1차 자원의 생산을 강요하는 등, 시세를 강대국의 이익에 맞게 군사력 및 국제적인 정치권력을 이용해 마음대로 변동시켰다.[1] 대부분의 약소국은 이러한 거래를 순응해왔지만 일부 좌파 및 공산주의자들이 이를 강력히 반대하였다. 일단 강대국에 의해 약소국이 생산하는 1차 자원 및 여러 생산품이 강대국의 이익에 맞게 변동되면 생산력을 발생시키는 노동자들한테는 그 이익이 제대로 분배되지 못한다. 또 다른 예로는 강대국 위주로 진행되는 자유무역협정과 같은 것은 강대국에서 생산되는 막대한 상품들을 싼값에 동시다발적으로 수출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협정들은 협정을 받는 약소국 측에서의 소작농, 1차 자원을 생산하는 노동자들에게 경제적으로 큰 부담을 줄 수도 있다. 또한 약소국 착취를 행하는 주요 강대국이 미국이었고 미국은 강력한 산업화 및 근대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성장해왔다.[2] 이는 공산주의와 위배되는 이념을 가진 국가였기 때문에 특히 미국의 개입만큼은 크게 반대를 받아 왔다. 이 현상은 미국이 태평양 일대 또는 남미 일대를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친미화 시키는 도중 일부 좌파들에 의해 정치-사회적인 양상으로 나타났다.

1922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이 정식으로 등장하고 나서 좌파 민족주의는 각 세계에서 친소세력을 중심으로 단합되어 왔는데, 대부분의 좌파 민족주의자들은 사회주의적인 정책 강령을 내걸었다. 한편, 소련에서는 강대국의 제국주의로 인해 식민지화 된 여러 약소국을 지원해 공산화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소련에서는 각국의 식민지 해방세력을 지원해주는 등 여러 활동을 펼쳤는데 대한민국의 역사로는 일제강점기 시기에 한인사회당의 김립이 블라디미르 레닌에게 200만 루블을 받은 것을 대표적인 소련의 좌파 해방운동 지원사로 여기고있다.[3] 소련은 동남아시아의 구공산권(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아프리카 북부 국가, 카리브 해로는 대표적으로 쿠바 그리고 아시아로 치면 중국의 팔로군, 몽골의 몽골 인민전선, 조선동북항일연군(소련 극동군 제88 교도여단), 조선의용대등등 좌파 민족해방세력을 도와준 기록이있다. 21세기의 경우는 기본적으로 사회민주주의를 따르며, 그와 동시에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것을 좌파 민족주의라고도 한다.

반미사상[편집]

21세기 현대 좌파 민족주의가 모두 반미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좌파 민족주의가 생기고 나서 현재까지 대부분의 좌파 민족주의자들이 쓴 역사는 반미적이었다. 좌파 민족주의가 반미적으로 변했을 때는 일차적으로 소련이 생긴 1922년에서 독소전쟁이 일어난 1941년 사이이다. 이 사이에 미국은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태평양 일대와 남미 일대 그리고 카리브해를 친미화 시키고 있었는데 강렬한 자국 민족주의 의식에 의해 큰 어려움을 겪었다. 기본적으로 프랑스에서 생긴 좌파 민족주의와 달리 근현대의 좌파 민족주의는 마르크스의 인간해방론 레닌의 제국주의론 사상을 어느정도 이어받은 조류이기 때문에 반자본주의적인데, 자본주의 세력의 가장큰 세력인 미국을 신봉하는 친미적 정부는 배제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좌파 민족주의자들은 반미적으로 미국을 신제국주의 국가로 분류한다. 때문에 좌파 민족주의에서는 강대국의 개입을 민족주의로 맞받아치기 보다는 제국주의의 간섭으로 규정한다.[4][5]

1945년 2차 대전이 종전 된 이후 본격적인 냉전이 시작되고 나서 좌파 민족주의는 사회주의 또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단순한 민족심을 나타내는 용어로 쓰이거나 또는 친소적인 공산주의자들의 자국 해방론적 사고방식을 일컫는데 사용되었다.

우익 민족주의와의 차이[편집]

좌파 민족주의는 우익 민족주의와 달리 인종주의, 제국주의, 국수주의, 우월주의에 반대한다. 순수한 형태의 민족주의는 드레퓌스 사건에 의해 우익사상으로 분류되었는데, 우익 민족주의는 후에 파쇼적으로 변할 수 있는 단점을 가지고 있으며, 민족주의의 우편향 정도에 따라 국수주의제국주의 그리고 국가 통제주의적인 파시즘으로 변모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것을 국제적인 분쟁의 소재로 일삼을 수도 있다. 이에 반해 좌파 민족주의는 민족심 추구의 한계를 정하고있다. 그 이유는 좌파 민족주의가 마르크스 사상을 이어받으므로써 대부분의 좌파 민족주의 세력은 공산주의 내지는 사회주의자들이 대다수였고, 그들이 목표로 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국제주의적인 협력관계를 만들어 나가야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국수주의같은 배타적인 이념이 배제되었다. 또한 제국주의의 경우는 블라디미르 레닌의 국가와 혁명, 제국주의론에서 나와있듯이 배제되어야 할 일차적 대상이었기에 역시 반제국주의적이었다.

분파[편집]

좌파 민족주의 성향을 띠는 사상은 여러가지 있으며, 대부분 사회주의에 관련된 사상이다.

사례[편집]

대한민국에서의 사례[편집]

20세기 초반의 근현대 좌파 민족주의는 최초로 고려공산당에 의해서 나타났다. 그 후 한인사회당, 조선공산당, 조선 민족혁명당과 같은 세력이 혁명적 좌파 민족주의를 계승한다. 1940년대에는 건국동맹도 좌파 민족주의적인 단체로 분류되었다. 인물로는 대표적으로 김두봉, 김원봉, 홍명희, 조소앙, 박헌영, 조봉암, 김일성, 최용건, 여운형등등이 있다.

대한민국에서의 21세기 현대적인 좌파 민족주의는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후반까지 민족해방(NL)이라는 진보적인 민주화 운동을 통해서 처음으로 나타났다. 이들중 극소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좌파 파시즘적인 주체사상을 신념으로 가진 세력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비주류이며, 반미적인 좌파 민족주의자들이 대부분이다. 대한민국에서 좌파 민족주의는 당시는 노동착취가 만연하고 기득권 그리고 주류 정치인들은 민족주의를 운운해 우민화 정책을 이용하면서, 자신들은 철저한 친미주의자인 시대였고, 이런 시대에서 평등 그리고 복지가 아닌 과한 경쟁과 기득권 안정만을 추구하는적인 사상을 지닌 정치인들이 많았던 시기라는 점에서 큰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은 마르크스 사상을 기초로 한다는 하에 반공주의가 심화된 대한민국에서는 지속적으로 지지를 얻기 힘들었다. 또한 반미적이고 민족주의적이며, 사회주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좌파 민족주의자들은 때때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비슷하다는 소리와 함께 조작된 간첩사건의 주역도 되었다.[6][7]

외국의 사례[편집]

좌파 민족주의는 전 세계에 걸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집권 정당이 좌파 민족주의를 주창하기도 한다.

사회주의 인터내셔널(Socialist International)과 관계가 있는 아프리카 민족회의(African National Congress)의 경우, 흑인들의 민주주의적인 시민권 운동을 벌이고 있다. 또한 이들은 흑인 민족주의를 제창하고 있다. 짐바브웨로버트 무가베의 경우, 소수 백인의 지배권에 맞서 투쟁하였으며, 이 역시 좌파 민족주의의 한 모습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유럽에서는 2차세계대전 당시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던 프랑스 공산당도 좌파 민족주의의 한 예로 등장하며, 좌파 민족주의의 대표적 사례로는 북아일랜드신페인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사회민주주의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으나, 아일랜드북아일랜드의 통일을 추진한다는 점에서 민족주의적인 면모가 돋보인다. 이 외에도 분리주의 경향이 강한 바스크 공산당. 세르비아 사회당 등이 대표적인 좌파 민족주의 정당이다.

동아시아에서는 중국공산당팔로군을 예로 들 수 있으며 동남아시아의 경우는 프랑스 식민지배하에 있던 인도차이나권 좌익 독립운동 단체인 베트민, 파테트라오, 캄푸치아도 예로 들 수 있으며, 인도의 경우는 인도국민회의와 같은 사회민주주의적인 성격인 단체도 좌파 민족주의 단체이다. 베트남의 경우 남베트남에서 좌파 민족주의 성향으로 결성된 일명 베트콩으로 불리던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도 그 예로 들 수 있다. 서남아시아 지역 역시 좌파 민족주의가 활발한 곳이다. 대표적인 정당이 바로 팔레스타인파타(Fatah)이다. 이들은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 참관자이지만, 동시에 이스라엘로부터의 독립을 추구한다. 터키 노동당의 경우, 좌파적인 색채를 띠고 있지만 동시에 케말 아타튀르크, 마오쩌둥, 피델 카스트로 등의 영향으로 반미 민족주의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에스파냐포르투갈 등의 식민지였던 남아메리카에서도 좌파적인 민족주의 운동이 활발했다. 대표적인 것이 시몬 볼리바르와 그를 계승하는 볼리바르주의이다. 우고 차베스가 이끄는 베네수엘라 통일사회당은 볼리바르주의를 지지하는 대표적인 정당이다. 이들은 반미, 반제국주의적인 행보로 유명하다.

20세기 초 부터는 오히려 민족해방 운동은 오히려 우익에 비해 좌익들이 활발히 행했으며, 대한민국도 그와 같다.

비판[편집]

좌파 민족주의는 국가의 평등과 자주적 자유를 옹호하면서, 노동자 및 농민 세력의 해방을 운운하는 등 매우 유용한 사상이기는 하지만, 자칫하면 폭력혁명과 일국사회주의론을 신봉하게되는 좌파 파시즘으로 변질될 수 있다. 그 예로 국제주의적이고 탈민족주이적이어야 할 공산주의 이념을 따랐던 소련스탈린에 의해 더 군국주의화 되고 정치 권력이 막강해져 완전한 독재로 치닫는등 위험한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또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좌파 민족주의를 권력의 유지를 위해 사용한다는 학자들의 평도 있다. 사실상 주체사상도 위와 같은 목적을 특화시켜서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 외 캄보디아의 독립운동가였던 폴포트도 킬링필드를 자행하였고, 쿠바의 경우도 피델 카스트로가 공산주의와 좌파 민족주의의 특유 반미사상을 이용해 연이어 독재를 하는 등 좌파 민족주의는 여러가지로 부정한 용도로도 쓰일 수 있다.

같이 보기[편집]

주석[편집]

  1. 이 부문은 미국에 대한 19세기 후기에서 20세기 초기이 역사와 태평양 일대의 약소국과 남미 개발도상국의 역사를 비교대조하면 알 수 있다.
  2. 이는 세계 좌파민족주의자 및 남미 일대 공산주의자들의 행적을 보면 알 수 있다.
  3.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25862
  4.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2082201031532158004
  5.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8011743065&code=900308
  6. http://mbn.mk.co.kr/pages/news/newsView.php?news_seq_no=322341&category=mbn00008
  7. 조봉암 선생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견해와 같은 '평화통일론'을 제기한 것을 주된 이유로 삼아 사법살인한 조봉암 사건 또는 진보당 사건을 참조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