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치다 료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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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다 료헤이

우치다 료헤이(일본어: 内田良平, 1874년 2월 11일 ~ 1937년 7월 26일)는 일본의 국가주의자, 우익운동가, 아시아주의자이다. 1901년 대아시아주의와 천황주의를 표방하고, 흑룡회를 설립하였고, 천우협을 통해 이용구와 결탁하여 일진회를 움직여 한일합방청원운동을 일으켰다. 또한, 중국혁명동맹회를 후원하여 중국 혁명의 배후에서 지대한 역할을 하였다.

생애[편집]

우치다는 후쿠오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일본의 전통 무술에 관심이 있었다. 1895년 토요고 대학에서 수학했으며, 대학에서 러시아어를 공부했고, 1897년 시베리아로 여행을 다녀왔다.

그는 어려서 겐요샤라는 민족주의단체에 참여하였는데, 겐요샤는 아시아 본토를 향한 적극적인 외교정책을 추구하는 단체였다. 한국에서 1894년 동학혁명이 일어나자 그는 한국으로 건너가서 동학당을 도왔다. 1901년 일본으로 돌아와서 흑룡회를 창립하였는데, 흑룡회는 극우주의단체로서 러시아, 한국, 그리고 만주로 진출할 것을 주장하는 단체였다.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후 그는 한국병합에 그의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일진회의 후원자이기도 하였다. 1920년대와 1930년대에 그는 일본 사회와 정치의 자유주의를 공격하는데 매우 적극적이었으며, 1925년 수상과 천황의 암살음모로 체포되었으나 무죄로 석방되었다.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