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세페 가리발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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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세페 가리발디
1807년 7월 4일 ~ 1882년 6월 2일
Giuseppe Garibaldi (1866).jpg
1866년의 가리발디
태어난 곳 니스
죽은 곳 카프레라 섬
근무 사르데냐 왕국 해군
지휘 붉은 셔츠단
주요 참전 브라질 혁명운동,
이탈리아 통일전쟁
기타 이력 프랑스 국민의회 의원,
이탈리아 의회 의원

주세페 가리발디(Giuseppe Garibaldi, 1807년 7월 4일 ~ 1882년 6월 2일)는 이탈리아혁명가, 군인, 정치가이다.

일생[편집]

나다르가찍은 사진.

가리발디는 1807년 7월 4일니스에서 선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가리발디는 이탈리아로 가서 사르데냐 왕국의 해군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또한 마치니청년 이탈리아당에서 활동하던 가리발디는, 1834년마치니의 혁명운동에 동참하다 실패해 프랑스로 망명한다.

이후 1836년 리오그란데와 우루과이의 혁명 전쟁에 참여하였다. 1848년 이탈리아의 통일(Risorgimento) 운동이 일어나자 가리발디는 의용대를 조직하여 참전하여 로마 공화국에 참가하여 나폴레옹 3세의 무력간섭에 대한 방어전을 지휘하였다. 그러나 공화정부가 붕괴되자 뉴욕으로 망명하였다가 1854년 귀국하여 카프레라 섬에서 살았다.

가리발디는 공화주의로부터 사르데냐 왕국에 의한 이탈리아 통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곧 나폴리와 시칠리아 지방을 점령하여 사르데냐 왕국에 토지를 바쳤다. 그는 1859년 해방 전쟁에서 알프스 의용대를 조직하였고, 이듬해 5월에는 "붉은 셔츠대"를 조직하여 양시칠리아 왕국을 한 사람의 손실도 없이 정복하였다. 1860년 다시 진군하여 칼라브리아와 나폴리 지방을 점령하고 이것을 점령한 뒤, 사르데냐의 왕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에게 바침으로써 이탈리아 통일에 기여하였다.

한때 카프레라섬으로 물러났으나, 로마 병합이 더디게 진행되자 이를 못마땅히 여겨 1862년과 1867년에 팔레르모에서 병정을 모집하여 이끌고 로마 탈취를 시도하였다가 실패하여 카프레라섬에 다시 연금되었다. 1870년 강베타의 모병에 호응하여 프랑스로 갔으며, 이듬해 보르도 국민의회에 선출되었으나, 프랑스인과의 관계도 좋지 않아 다시 카프레라섬으로 돌아와 여생을 보냈다. 정치가로서의 식견은 부족했으나, 용감하여 애국자로서 국민들의 존경을 받았다. 이탈리아 통일 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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