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무가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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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무가베
Robert Gabriel Mugabe
로버트 무가베(2009년)
로버트 무가베(2009년)
짐바브웨 짐바브웨제3·4·5·6·7·8대 대통령
임기 1987년 12월 31일 ~
부통령 조지프 음시카
조이스 무주루
총리 모건 창기라이
전임: 케이넌 바나나(제2대)

짐바브웨 짐바브웨의의 제1대 총리
임기 1980년 4월 18일 ~ 1987년 12월 31일
대통령 케이넌 바나나
전임: -
후임: 모건 창기라이(제2대)

출생일 1924년 2월 21일(1924-02-21) (90세)
출생지 로디지아 로디지아 솔즈베리
정당 ZANU-PF
종교 로마 가톨릭
배우자 그레이스 무가베
서명 Signature of Robert Mugabe clear.svg

로버트 무가베(Robert Mugabe, 1924년 2월 21일~)는 짐바브웨정치가이다.

1980년 4월 짐바브웨가 정식으로 건국되면서 총리를 맡아 실권을 가졌으며, 1987년부터 총리제를 폐지하고 대통령이 되어 현재까지 30년 넘게 짐바브웨를 통치하고 있다. 그러나 2008년과 2013년 대통령 선거에 대해 정통성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생애[편집]

생애 초반[편집]

솔즈베리(하라레) 부근의 농촌에서 태어났고 로마 가톨릭 교회 신자였던 그는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세운 학교를 다닌 후, 남아프리카 연방포트헤어 대학교를 졸업하였고, 영국으로 건너가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수학하기도 했다.

정치 활동[편집]

학창시절부터 흑인 민족주의 운동에 참여했으며, 가나에서 교사로 재직하다가 가나가 영국에서 독립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곧바로 로디지아로 돌아와 독립 운동에 참여하였다. 처음에는 짐바브웨 아프리카 인민동맹(ZAPU)에 참여했으나, 결별하고 1963년 짐바브웨 아프리카 민족동맹(ZANU) 창립에 참여하여 간부가 되었다. 그러나 1964년 과한 언동을 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10년간 수감되었다.

총선거 승리[편집]

1974년 가석방되었고 ZANU 의장에 취임하였다. 1976년 그가 이끄는 ZANU와 조슈아 은코모가 이끄는 ZAPU가 연합하여 애국전선(PF)을 결성했으며, 애국전선은 모잠비크 등 외국에 근거지를 두고 백인 정권에 대해 무장 투쟁을 전개했다. 그러나 백인인 이언 스미스 총리는 애국전선을 배제하고 국내의 흑인 온건세력과 협상하여 1979년 총선을 치렀다.

이에 애국전선은 총선 무효화를 주장하여 1980년 다시 총선이 치러졌으며, 그가 이끄는 ZANU가 최다 의석을 확보, 그는 그 해 4월 건국된 짐바브웨의 초대 총리로 취임했다.

총리 재직 시절[편집]

초기에 무가베는 은코모가 이끄는 애국전선과 연정을 구성했고, 백인들의 정치참여도 보장하며 유화적인 정책을 취했다. 경제 개발을 위한 정책을 내놓고 흑인들의 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1982년 은코모를 연정에서 축출했으며, 흑인들간의 민족 대립으로 혼란에 빠졌으며, 짐바브웨 경제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하던 백인들은 짐바브웨를 떠나며 국가 경제는 파탄상태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무가베는 차츰 독재 정책을 취하며 국내외의 비난을 받았다.

대통령 재임시[편집]

1987년 자신의 ZANU와 은코모가 이끌던 애국전선을 통합하여 짐바브웨 아프리카 민족동맹-애국전선(ZANU-PF)으로 개편하였고, 다른 당들의 활동을 불법화하며 1당 독재 체제를 구축했다. 나라 정체를 의원내각제에서 1당 독재의 대통령제로 바꾸어, 총리제를 폐지하고 대통령에 모든 권한을 집중시키도록 하며 그 자신이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이후 공산주의자로써, 마오쩌둥의 계획경제체제를 받아들이고, 1990년대에는 일당독재의 마르크스주의 국가로 건설하려고 했으나, 국제 사회의 압력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90년 3월과 1996년 3월 대통령 선거에서는 80~90%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국제 여론의 악화로 2000년 총선에서는 야당의 참여를 허용하였으며, 모건 창기라이가 이끄는 민주변화동맹(MDC)이 약진하였다. 그런 가운데 그 무렵 그는 백인들의 토지를 무상으로 몰수하여 국가 경제를 더 큰 혼란에 빠뜨렸고 백인들의 탈출 행렬이 이어졌다.

2002년 3월 대통령 선거에서는 모건 창기라이와 격돌했으나, 다시 다수표를 얻으며 당선되었다. 짐바브웨의 경제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로 전락하였으나, 그와 그의 부인 그레이스는 호화 생활을 하며 외국으로 많은 재산을 빼돌려 물의를 빚었다. 각국의 경제 제재와 식량난으로 초인플레이션 상황에 직면하자 여러 차폐 화폐개혁을 실행했으나 경제 혼란은 더욱 심해졌다.

2007년 여당과 야당의 합의하에 헌법을 개정하여 대통령 임기를 6년에서 5년으로 변경하였고, 이후 2008년 3월 총선과 대선을 맞이하였다.

2008년 대통령 선거[편집]

총선에서는 창기라이가 이끄는 MDC가 최다 의석을 확보했고, 대선에서는 창기라이가 47.9%의 득표율로 43.2%를 얻은 무가베를 꺾었다. 이에 그 해 6월 2차 투표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무가베측은 창기라이의 선거운동을 조직적으로 방해하였다. 창기라이는 선거에 부정이 개입되었다며 선거 무효를 주장했으나, 무가베는 선거를 강행, 창기라이가 불참한 가운데 85.5%의 득표율로 당선되어 5번째 대통령 임기를 수행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국제 사회에서는 이 선거가 무효이며, 짐바브웨에 대한 제재 조치를 강화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에 국내외의 비난에 직면한 무가베는 창기라이측과의 협상을 통해 헌법을 개정하여 총리직을 부활시키고 창기라이를 총리로 임명하였다.

2013년 대통령 선거[편집]

2013년 7월 31일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었으나 61.9%의 지지로 재선되었으며, 모건 창기라이 후보가 득표율 33.9%로 2위에 올랐다. 그러나 창기라이의 민주변화운동은 선거에 부정이 개입되었다고 주장하며, 보츠와나 정부는 보츠와나 선거감시단이 여러 부정행위를 목격하였다며 남부아프리카개발공동체(SADC) 회의에서 선거 검증이 필요하다는 점을 제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1] 선거 결과가 인정되면 로버트 무가베는 5년 임기를 더 수행하게 되어 7대 대통령에 취임한다. 로버트 무가베는 총리직과 5번의 대통령 임기를 수행하여 현재 33년간 짐바브웨의 지도자로 있다.

비판[편집]

  • 무가베는 현재까지의 통치 기간 동안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면서도 안으로는 돈을 많이 쓰고 호화로운 삶을 누렸다. 이 때문에 무가베는 세계 여론의 비난을 받았다.

주석[편집]

  1. "보츠와나 "짐바브웨 대선 공정성에 의문"", 《연합뉴스》, 2013-08-06 17:23 작성.
전 임
자일 싱
비동맹 운동 사무총장
1986년 ~ 1989년
후 임
야네즈 드르노브셰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