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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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 1834년~1896년)는 영국의 작가이자 건축가이다.

윌리엄 모리스

생애[편집]

1834년 영국 런던 동북부에 있는 월섬스토에서 부유한 증권 중개업자의 셋째로 태어났다. 1848년 사립 기숙학교인 말버러 칼리지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중세역사와 고딕 건축에 관한 을 탐독했다. 1851년 교내 폭동으로 퇴학을 당한 후 옥스퍼드에 입학하기 위해 가정교사에게 교육을 받았다. 

옥스퍼드 시절[편집]

1853년 성공회 신부가 되기 위해 당시 옥스퍼드 운동이 활발하던 옥스퍼드 대학교에 입학했으나 오히려 중세사와 당시의 사회 문제에 관심을 쏟았다. 모리스는 옥스퍼드에서 평생의 친구가 된 화가 번 존스(Burne Jones, 1833년~1898년)를 만났고, 그의 사상의 토대가 된 러스킨(John Ruskin, 1819년~1900년)과 칼라일(Thomas Carlyle, 1795년~1881년)의 저작을 탐독했다. 특히 노동의 가치를 찬양하는 러스킨의 예술론에 영향을 받았다. 1855년 여름 옥스퍼드대학교 시절 모리스는 친구들과 함께 프랑스 북부 지방의 중세 고딕양식의 교회들을 방문했으며 파리에서는 자연에서 겸허하게 배우는 예술을 표방한 ‘라파엘 전파’의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Dante Gabriel Rossetti, 1828년~1882년)의 작품에 매료되었다. 모리스는 이 여행을 통해 성직자로서의 꿈을 접고 예술가로, 건축가로 살아가고자 결심한 계기가 되었다.

예술가로서의 삶[편집]

1856년 대학교를 졸업한 모리스는 회화공부를 1859년까지 하였다. 1857년 여름 모리스는 로세티, 번 존스, 라파엘 전파 화가들과 함께 옥스퍼드 대학교의 박물관과 학생회관의 천장과 벽에‘아서왕의 죽음’을 주제로 프레스코화를 그린 경험은 그의 신혼집인 레드하우스 건축과 디자인 회사 ‘모리스.마셜.포크 회사'설립으로 이어졌다. 레드하우스는 중세 고딕풍의 건축물로 근대건축의 출발점이자 미술공예운동의 요람이 되었다. 모리스는 번 존스, 로세티, 웨브 등을 공동경영자로 하여 1861년 디자인회사‘모리스·마셜·포크 회사’를 설립했다. 모리스·마셜·포크 회시는 모든 생활용품을 예술가의 손으로 직접 아름답게 만들어 저렴하게 판매하겠다는 취지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벽화, 벽지, 장식, 스테인글라스, 조각, 자수, 가구 등 모든 영역에서 작품을 만들었다. ‘모리스·마셜·포크 회사’는 1874년 ‘모리스 회사’로 개편되었다. 모리스의 사업은 번창해서 1877년 런던에서 가장 번화한 옥스퍼드가에 상점을 낼 정도였다. 1884년 백여 명의 노동자를 고용했다. 하지만 모리스 회사의 노동자들은 모리스의 감독 하에서 기계적인 노동에 시달렸으며, 그들이 만든 제품들은 저렴하게 판매한다는 당초 취지와는 달리 높은 가격에 팔렸다. 게다가 공동경영자였던 로세티와 아내 제인 버든(Jane Burden, 1839년~1914년)이 불륜을 저지른 불행한 가정사 때문에 1874년 로세티와 결별해야 했고 평생 그를 증오했다.

정치 활동[편집]

1876년 터키불가리아 기독교인들을 학살했음에도 제정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하기 위해 영국보수당 정부는 터키를 지원했다. 이에 분노한 모리스는 ‘동구문제협회’에 가담했고 자유당원이 되었다.하지만 자유당이 영국아일랜드 탄압을 지지하고 노동조합 지도자들도 노동자의 권익이 아닌, 투표권에만 관심을 기울이자, 1883년 사회주의 정치단체인 ‘민주연맹’(후에 사회민주연맹으로 개명, 사회주의 단체임을 분명히 한다.)에 가입했다. ‘민주연맹’은 보통선거권 실현, 은행·철도·토지의 국유화, 1일 8시간 노동시간제 확립 등을 주장했다. 이때 같이 활동한 동료들로는 영국의 사회주의 운동을 형성한 하인드먼, 백스, 마르크스의 막내 딸 엘리노어와 그이 남편인 에이블링이 있다. 하지만 정치적 노선 차이로 연맹을 탈퇴, 사회주의 동맹을 결성했다. 사회주의 동맹은 국가사회주의를 거부하고 혁명적 사회주의를 지향했다.

출판 활동[편집]

모리스는 ‘사회주의동맹’의 기관지 《커먼월》(Commonweal)을 편집했으며, 이곳에 《에코토피아 뉴스》[1]를 연재했다. 1891년 켈름스코트 출판사를 설립했다. 그는 책 표지를 직접 디자인했는데,나뭇잎과 의 우아함을 표지에 그려낸게 모리스식 북디자인의 특징이다. 1896년 만들어진 《초서 작품집》은 세계 3대 아름다운 인쇄본 중 하나로 찬양받고 있다.

켈름스코트 출판사에서 만든 책

주석[편집]

  1. 《에코토피아 뉴스》는 국내에서 번역에 따라 《유토피아에서 온 소식》으로도 번역된다.

참고 자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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