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르미도르의 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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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해된 로베스피에르

테르미도르의 반동(Thermidorian Reaction) 또는 테르미도르의 쿠데타프랑스 대혁명 이 후 권력을 잡게 된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가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숙청하는 공포정치 끝에 결국 살해당한 사건이다.

테르미도르(Thermidor)는 혁명 때 제정된 프랑스 혁명력(후에 나폴레옹에 의해 폐지) 중 11번째 달을 의미한다. 이 사건으로 인해 프랑스 혁명은 실질적으로 끝나게 되고, 시민 혁명은 종말을 고했다.

배경[편집]

자코뱅파1793년부터 1794년 사이에 프랑스 내외의 전란을 수습한 후 국민은 공포 정치에 싫증을 느끼게 되었다. 1794년 봄에 에베르 파당통 파가 숙청을 당하면서 자코뱅파의 일부는 국민 공회의 중도파와 긴밀하게 협력하여 로베스피에르를 타도하려고 했다. 또한, 공포 정치의 선봉으로 파리보다 더 심한 탄압을 했던 지방 파견 의원(조제프 푸셰, 장 랑베르 탈리앵 등)들은 로베스피에르의 추궁을 두려워하여 선제공격을 계획하고 있었다.

한편, 공포 정치의 중심이었던 공안위원회도 로베스피에르 파(로베스피에르, 생 쥐스트, 쿠통)과 전란 수습으로 세력을 확장한 온건파(라자르 카르노 등)으로 분열되었다. 그것이 싫증이 난 로베스피에르는 6월 중순부터 7월 26일까지 공개석상에는 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 사이에도 반대파의 음모는 진행되고 있었다. 7월 22일에는 대립 관계에 있던 《공안위원회》와 《보안위원회》의 합동회의가 열렸지만, 로베스피에르는 더 이상 생 쥐스트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사건 전개와 영향[편집]

로베스피에르파가 점거한 시청을 공격하는 부르동과 바라스의 군대
습격당하는 로베스피에르파

7월 26일, 로베스피에르가 공회에 나타나 반혁명파를 숙청하겠다고 말하자 비요 바렌장 랑베르 탈리앵 등의 의원들은 ‘반혁명파가 누구냐? 이름을 밝혀라!’ 라고 저항했다.

다음날, 즉 7월 27일 반로베스피에르 파(대부분이 지롱드 파)는 행동을 개시하여 로베스피에르를 체포해 처형하기로 했다. 로베스피에르와 정치적 동료였던 이들 조차도 그를 배신했고 이 배신자들마저 반로베스피에르 파에 의해 숙청된다.

결국 그날 밤 프랑수아 루이 부르동폴 바라스가 시청에서 농성 중이던 로베스피에르파를 습격해 로베스피에르의 오른팔 루이 앙투안 드 생쥐스트의 친구 필립 르바는 자살했고 동생 오귀스탱 로베스피에르는 창문에서 뛰어내려 도망치려 했으며 로베스피에르의 동료 조르주 쿠통은 떠밀려 계단에서 곤두박질 쳤고 로베스피에르도 턱에 총을 맞았다.

공포정치로 국가를 안정시키고자 했으나 오히려 국가를 혼란에 빠트린 로베스피에르는 7월 28일 푸키에 탱빌에게 고발당해 자신이 혁명 정신과 국가 안보를 운운하며 많은 사람을 죽였던 도구인 기요틴에 올라가 생쥐스트, 쿠통, 오귀스탱 및 18명의 동료들과 함께 처형당했다.

로베스피에르의 죽음으로 혁명 주도권은 부르주아 계층, 지롱드 파의 온건파들이 쥐게 되었고, 총재 정부, 통령 정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등장까지 테르미도르의 반동을 기점으로 새로운 국면이 나타났다.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