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레타리아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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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레타리아혁명(독일어: Proletariat revolution, 영어: Proletarian revolution)은 사회경제체제가 생산수단을 자본으로서 소유한 많은 자본금을 가지고 대부하여 이자를 받거나 그것을 이용해, 노동력을 제공하고 얻은 임금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을 고용ㆍ사역하여, 기업을 경영해 기업의 총수입에서 임대·지대·이자·감가상각비 따위를 빼고 남는 순이익을 내는 사람들이 이윤을 얻는 생산 활동을 하게끔 보장하는 사회에서, 노동을 이용해 물건을 일정하게 생산하는 과정에서 노동의 대상이나 도구가 되는 돈·토지·삼림·지하자원·원료·생산용구·생산용건물·교통수단·통신수단 등를 소유하지 않고 노동력을 판매해 생활하는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 이윤 추구를 목적하는 자본을 가진 사람들이 지배하게끔 구조화한 모든 사회경제체제 관계를 철폐하고서 사회주의 시회를 실현하려고 일으키는 혁명이다. 유의어로는 사회주의혁명·노동자혁명이 있다.

개요[편집]

마르크스는, 사회의 총체적인 개조 과정은 인성이 존재할 필요성이 없고 인간 태초의 욕망이 사회를 지배하는 낡은 사회 경제 체제인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일시 개조되고 후에 완전한 공산주의를 이룩한다고 설명하고 자본주의사회주의 사이의 전환점을 프롤레타리아혁명이라고 칭하였다.

프롤레타리아혁명은 마르크스엥겔스가 공동으로 제작한 공산당 선언,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거론되었다. 위 두 서적에서는 자본주의라는 취약한 사회를 떠받드는 부르주아들이 만들어 놓은 군대, 종교, 경찰, 국가 등은 사라지고 개인이 생산수단을 가지고 있어 필요에 의한 생산하는 사회주의사회를 건설하여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1917년 프롤레타리아혁명을 최초로 이룩한 블라디미르 레닌은 위와 같은 취약한 전후 배경으로는 혁명을 이끌면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리라 예상하였고 그 결과 기존 마르크스주의를 개조하여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만들었다. 기존 공산주의와 달리 마르크스·레닌주의가 덧붙여진 공산주의제국주의론, 국가와 혁명 등 부속 이론이 결집한 서적이 추가됐는데 이것은 공산주의사회를 이룩하여도 타 제국주의 세력에 의해 공산주의사회 존립이 위태로워질 수 있기에 전 세계에 공산주의를 전파하여야 하고 그 때문에 인민으로 이루어진 군대경찰 등 질서를 유지는 기관은 있어여야 하며, 공산주의 하부 사상인 사회주의 체제를 과도기로 설정하여 궁극으로는 국가를 소멸 공산주의사회를 완벽하게 건설하겠다는 사상을 창시하고 노동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인민위원회라는 정치 기구를 설립하고 지원해야 하며, 혁명 방법도 직업 혁명가가 지휘하는, 노동하는 많은 사람과 농민으로 구성된 소위 혁명 '전위대'를 두어 정치혁명을 일으키는 이론인 전위대 체계론을 주장한다.

마침내 탄생한 최초 사회주의국가인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련방은 기존 국가 시스템과 달리 프롤레타리아혁명이란 속성에 결부해 타국과 자국을 구분하지 않았고 세계의 프롤레타리아혁명을 지도하거나 지원하는 국가로서 성장하였는데 이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련방의 세계성을 띤 프롤레타리아혁명 방침은 지배계급의 반동 음모를 봉쇄하고 자본주의의 국제 간섭을 배제, 계획경제의 사회주의다운 공업화와 집단농업, 인본주의에 기초한 교육, 사상 면에서의 사회개조를 이용한 사회혁명과 문화혁명을 이용해 사회주의를 건설한다고 방침했다. 마지막으로 그 궁극에 도달한 목표가 달성되면 그 이념은 공산주의로의 이행을 보장하고 국가 시스템은 점차 소멸하여 인민으로 이루어진, 사람이 완벽히 개조된 사회주의사회 자치 세력에게 자리를 물려 준다고 되어 있다.

이런 프롤레타리아혁명은 1917년 러시아에서 레닌이 지도한 덕분에 실현된 후 동유럽과 중국, 쿠바, 베트남 등으로 확산했으나 국제주의성을 띤 혁명은 스탈린 탓에 일국사회주의론을 거치면서 국가주의스럽고 혁명 과정이 전후 독재스럽게 모순화해 갔다.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련방은 겉으로는 프롤레타리아혁명을 대폭으로 지원했으나 몇몇 독재자 탓에 내부로는 좌파 파시즘과 다를 바 없는 통치 양상이 초래됐고 사회주의에 토대한 공업화 즉, 경공업과 농업을 중시하지 않고 중공업을 지나치게 발달하게 해 식량의 자급량을 늦췄으며 노멘클라투라 현상 탓에 빈부 격차가 발생했고 민주주의에 상충하는 통치로 국가 스시템이 소멸하여야 할 공산주의 이념이 오히려 국가 통제 주의다운 정치 양상을 띠었다. 1985년 후에는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이 모순을 없애고자 사회 개혁 정책을 전개했지만 실패하였고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련방에서의 공산주의사회 이상 실현은 결국 실패하게 되었다.

가고문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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