빔라오 람지 암베드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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빔라오 람지 암베드카르

빔라오 람지 암베드카르(Bhimrao Ramji Ambedkar, 1891년 4월 14일 ~ 1956년 12월 6일)는 불가촉천민 출신으로 인도 참여인권운동의 선구자, 인도불교의 부흥자, 정치인, 대학교수, 영국 변호사 이다. 인도불가촉천민(달리트)들의 권익을 위해서 불가촉천민 식수권 운동, 불가촉천민 분리선거 운동, 집단 불교 개종운동을 이끌었다. 카스트제를 유지하고, 분리선거를 인정하지 않은 국민회의의 마하트마 간디와 많은 충돌을 빚었다. 지금도 인도 곳곳에는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생애[편집]

인도의 마디아프라데시 주의 모우에서 태어났다. 세포이로 영국 군대에 있었던 부모님 덕분에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은 생활을 했다. 1908년에 라마바이와 결혼한다. 봄베이(엘핀스톤)대학을 졸업,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 컬럼비아 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 취득, 런던정경대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 취득, 영국 명문 그레이 법학원 변호사자격 취득, 런던정경대학 경제학박사학위 취득하였다. 불가촉천민 출신으로서는 미국과 영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다.

귀국후 1924년 피억압계급복지회를 창립하였으며, 1927년에 힌두교의 카스트제도를 비판하기 위해 마누법전을 불태우는 운동을 하였다. 영국 원탁회의에 인도 불가촉천민 대표로 참석하여, 불가촉천민의 분리선거와 권익증진을 요구하였으나, 마하트마 간디의 반대 단식투쟁으로 인하여 좌절되었다. 그 후 욜라선언을 통해 "나는 원치 않게도 힌두교인으로 태어났지만 힌두교도로 죽지않겠다."고 선언하며 불교개종을 이끌었다. 56년 불교개종식에서는 단 이틀 만에 50만 명의 불교신자로 개종을 하는 성과를 이뤄내었다. 그는 이후 달리트 인권해방과 여성의 재산상속, 이혼의 권리 등의 권익증진에도 힘쓰며 하층민들의 교육을 위해 생전에 5개의 대학을 설립하고, 헌법개정을 통한 대학 입학 할당량 보장을 이끌어내었다. 영국 식민지 인도에서 노동부장관을 시작으로 1947년에 독립인도의 법무장관으로 임명되어, 인도헌법 초안적성위원회 의장이 되었다. 인도 상원의원으로 평생 민중들 옆에서 그들의 인권을 위해 헌신했다. 서재에서 죽는 그 순간에도 <붓다와 그의 법(法)>이라는 불교서적의 원고교정에 힘썼다.

인도인들은 '바바사헤브(아버지와 같은 스승)'이라고 부르며 존경하고 있다. 그의 헌신적인 참여인권운동의 결과로 많은 불가촉천민들이 훗날 인도의 대통령, 하원의장, 대학총장, 정당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생전에 인도 헌법개정을 통한 인권향상에 힘써서 모교 컬럼비아대학에서는 그에게 명예법학박사학위를 수여하였다.

저서[편집]

  1. 인도로 간 붓다 (이상근 譯, 청미래 출판)
  2. 붓다와 다르마 (박희준 譯, 민족사 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