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트제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카스트제( - 制, 신분제)는 세계의 수많은 전근대 사회에서 나타났던 문화/사회적 현상으로, 일정 신분계층집단의 지위를 자손 대대로 세습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신분의 분류는 주로 집단의 경제력, 정치적 권력, 사회 문화에 기인되어 이루어진다. 카스트제 아래에서, 특별한 사건(전쟁,반역 등)이 일어나거나, 개인적 능력이 매우 우수한 사례 등의 예외가 일어나지 않는 한 수직 계층이동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일반적으로, 카스트제는 주로 인도의 신분계층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인도와 같은 일부 낙후한 국가에서는 아직 카스트제의 악습이 남아있고, 대략 2억 5000만명 정도의 세계 인구가 카스트제로 인하여 차별을 받고 있다.[1]
목차 |
[편집] 용어의 유래
대항해시대에 인도와의 항해 무역을 하던 스페인인들과 포르투갈인들이 사용했던 '카스타(Casta)'라는 용어로 부터 유래하였는데, 그 용어는 '순결한' 혹은 '순수한'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이 용어는 포르투갈인들의 14세기의 인도의 사회구조에 대한 선입견으로부터 기인한 인도 문화나 종교적 전통에 대한 몰이해에 기인해 있다. 인도의 카스트제는 고대 사회전통과 힌두교의 법과 연관이 크기 때문에 유럽인들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18세기, 영국이 인도를 점령하였을 때부터 영국인들에 의해 이 제도는 '카스트(Caste)'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편집] 인도의 카스트제
인도에는 현재에도 카스트제의 악습이 남아있어 사회문화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인도의 카스트 계급엔 주요 4개의 계층이 있다.:
| 계층 명칭 | 종사 직업 | 사회적 업무 |
|---|---|---|
| 브라만 | 성직자,학자 등 | 사회인의 교육과 힌두교의 신들에게 기도를 드리는 일 |
| 크샤트리아 | 왕족,귀족,무사 등 | 사회 제도와 안보를 유지하며 국가를 통치하는 일 |
| 바이샤 | 농민,상인,수공업자 등 | 생산 활동과 관련된 일 |
| 수드라 | 잡역,하인 등 | 생산 활동과 관련된 일 |
[편집] 카스트 아래의 카스트
파리아(Paraiyar)는 카스트 아래의 카스트 계층으로써, '불가촉 천민'으로 분류된다. 이들은 악의 구현으로 악마,악귀 등 사회악으로서 다른 계층들로부터 경멸을 당하게 된다. 오늘날에도 파리아들은 인도에서 엄청난 차별대우를 받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격리 수용되어 생활을 한다. 파리아라는 단어를 인용한 용어로는 막스 베버의 천민자본주의(Pariakapitalismus)라는 용어가 있다.
[편집] 다른 지역의 카스트제
[편집] 중국
중국을 지배한 원나라 왕조는 중국 대륙의 민족에 따라 계층을 분화시켰다.
| 민족 | 종사 직업 | 인구구성 비율 |
|---|---|---|
| 몽골인 | 황족,집권 계층 | 1.5% |
| 색목인 | 중간 관리 등 고위층 | 1.5% |
| 한인(漢人) | 하급 관리,군인 등 | 14% - 중국 북부의 일부 토착민 |
| 남인(南人) | 생산 활동 | 83% - 나머지 중국대륙 원주민 |
게다가, 몽골인들이 중국을 점령했던 다른 민족들과 달리 정체성을 유지해 나갈 수 있었던 유력한 이유로써 원 왕조의 카스트제를 꼽기도 한다.
[편집] 일본
- 부라쿠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일본은 중국으로부터 유교적 영향을 받아 자국 백성의 계층을 직업에 따라 사농공상(士農工商)으로 나누었다. 일본의 제일 윗계급의 선비(士)개념은 중국이나 조선과는 달리 무인 계급을 일컫는 개념(사무라이)이었다. 일본의 카스트제 아래의 카스트 계층은 부라쿠민으로, 막노동을 하던 더러운 자들로 여겨졌던 계층이다. 현재에도 일본에는 부라쿠민들을 비공식적으로 차별하는 관행이 남아 있다.
[편집] 한국
- 신분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신라시대의 카스트제는 골품제로 대표된다. 골품제에는 다음과 같은 계층이 있다. : 성골,진골,6-1두품
- 성골 계층에 속하기 위해서는 양친이 모두 성골이어야 한다. 즉, 순수 왕족 계층으로 존재해 왔으나, 7세기에는 거의 사라진다.
- 진골 계층은 부모 중 한 명 혹은 두 명이 진골일 때 부여된다. 이들은 특권 계층으로 모든 등급의 관직에 오를 수 있었다. 특히, 5관등 이상의 직위에는 진골만이 오를 수 있었기 때문에, 고위 요직은 대부분 진골층이 차지하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들의 관직 독점으로 인해 형성된 하위 카스트 계층의 사회 불만은 후에 신라가 망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가 된다.
- 6두품 계층은 뛰어난 능력을 겸비한 지식인 계층이나, 신라의 카스트제(골품제)에 의하여 의를 펴지 못했다. 이들은 후에 반 신라세력이나 지방 토호에 가담하거나 은둔생활을 하게 된다.
- 3두품 이하는 사실상 평민으로 봐도 무방하다.
조선왕조에서도 사농공상(士農工商)으로 대표되는 카스트제가 성립되었다. 이는 고려의 카스트제(귀족/중류/양민/천민)을 계승한 것이다. 양반계층의 하인(노비)일을 하거나 도축업을 하는 자들은 천민계층으로 분류되었다. 고려나 조선의 카스트제에는 중인이라는 카스트 신분이 존재하였는데, 이들은 기능직을 주로 담당하는 계층으로써, 실리적이었고 상업적이었다. 이 제도는 임진왜란 이후, 양반 계층의 무능함이 폭로되고, 조선 정부의 공명첩 발행으로 인하여 크게 흔들린다. 아직도 한국의 일부 지역에는 양반 일족이 남아 그 명맥과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편집] 유럽
유럽의 봉건적 카스트 계층에는 국왕과의 종속관계에 있으면서 국왕의 지방영토를 통치했던 영주계급과 전투를 담당했던 기사계급으로 대표되는 귀족 계급이 존재했고, 크리스트교 성직자 계급이 존재했다. 생산 계층으로써는 농노계급이 존재했다. 유럽 카스트의 특징은 귀족 계급에게 권리를 양도하지 않았던 시민 계급(자유민)이라는 계급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유 도시에 거주하던 시민들이었다. 형식적으로 국왕에 속하였고, 납세의 의무를 졌으나, 그 외의 다른 의무는 부여받지 않았다. 농노계급들도 영주로부터 도피하여 도시에서 1년 동안 체류하는 데 성공하면, 자유민의 지위를 얻을 수 있었다. 훗날 성직자계급과 귀족 계급은 시민 혁명으로 인해 무너지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