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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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 왕국
ราชอาณาจักรไทย
Flag of Thailand.svg Garuda Emblem of Thailand.svg
국기 국장
표어 없음
국가 플렝 찻
Thailand on the globe (Asia centered).svg
수도 방콕 북위 13° 45′ 08″ 동경 100° 29′ 38″ / 북위 13.752222° 동경 100.493889° / 13.752222; 100.493889
정치
공용어 태국어
정부 형태 입헌 군주제
군정하의 의원 내각제 공화국
군주
총리
푸미폰 아둔야뎃
쁘라윳 짠오차
역사
독립  
 • 수코타이 왕조
 • 아유타야 왕조
 • 딱신 왕조
 • 짜끄리 왕조
크메르 제국에서 독립
1238년1368년
1350년1767년
1767년1782년
1782년 4월 7일 - 현재
지리
면적 514,000km² (49 위)
내수면 비율 0.4%
시간대 UTC (UTC+7)
인구
2005년 어림 65,444,371명
2000년 조사 60,916,441명 (19위)
인구 밀도 127명/km² (59위)
경제
GDP(PPP) 2012년 어림값
 • 전체 $6,468억 (24위)
 • 일인당 $10,152 (92위)
HDI 0.690 (103위, 2012년 조사)
통화 (THB)
기타
ISO 3166-1 764, TH, THA
도메인 .th
국제 전화 +66

타이의 왕실 국가국가이다.

타이(타이어: ไทย) 또는 타이 왕국(타이어: ราชอาณาจักรไทย 랏차 아나짝 타이[*])은 동남아시아말레이 반도인도차이나 반도 사이에 걸쳐 있는 나라이다. 동쪽으로 라오스캄보디아, 남쪽으로 타이 만말레이시아, 서쪽으로 안다만 해미얀마와 접하고 있다.

국호[편집]

타이의 국호는 타이어쁘라텟타이(타이어: ประเทศไทย →자유의 땅)이다. 한자 문화권에서는 국호를 음역하여 泰國(태국)으로도 표기하기도 한다. 영어권에서는 타일랜드(Thailand)라고 표기하고 있다.

1939년까지의 공식 국호는 시암(타이어: สยาม 사얌[*])이었던 것을 타이로 고쳤다가 1945년부터 1949년까지 다시 국호를 시암으로 하였고 1949년부터 현재까지 타이로 명명되어 이어져 오고 있다.

역사[편집]

반치앙 문화의 토기

토착문화[편집]

타이족(族)이 인도차이나 반도를 남하(南下)해 언제 현재의 타이에 정주하게 되었는지는 아직 확실히 밝혀지고 있지 않으나 타이에는 반치앙 문화 때부터 여러 다양한 토착 문화가 존재하여 왔다. 지리적 위치로 인하여 타이는 인도중국 그리고 이웃한 동남아시아의 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수코타이 왕국[편집]

학계에서는 타이에 세워진 최초의 국가1238년에 중부지방에 세워진 불교국가인 수코타이 왕국으로 보고 있다. 이는 13세기에서 15세기크메르 제국이 쇠퇴 및 멸망한 것에 뒤이은 것이다. 한 세기 뒤, 수코타이 왕국은 1350년에 세워진 더 큰 타이의 국가인 아유타야 왕국에 의하여 지배되었다.

아유타야 왕국[편집]

아유타야 왕국(1351년~1767년)은 말레이반도까지 그 위세를 떨쳤다. 동쪽으로는 앙코르를 공격해 크메르 제국(802년–1431년)를 위협하였고, 서쪽에서는 미얀마와 대립하였다. 1431년의 시암 군대에 의한 앙코르 약탈 이후, 크메르의 조신(朝臣)들과 힌두교적 관습들이 아유타야 왕국으로 대량 유입되어 세련된 궁정의례와 정비된 행정제도를 만들었으며 크메르의 관습과 종교적 의식들이 시암의 궁정 문화에 수용되었다. 또한 이 시기에 왕족·귀족·일반서민의 사회적 지위를 논넓이로 표시하는 사크티나제도를 확립하였다. 1569년 미얀마와의 전쟁에서 아유타야가 함락되었고, 1584년 중흥의 시조 나레수안 대왕이 다시 미얀마군을 쳐부수고 타이의 독립을 되찾았다. 아유타야왕조시대에도 해외교역이 성하였다.

수코타이 왕국 시대 만들어진 왓 마하탓의 불상

타이의 독립과 짜끄리 왕조[편집]

1767년 아유타야 왕국이 버마인들에게 무너졌고 중국계 장군 딱신 대왕(鄭昭)이 곧바로 군대를 정비해 미얀마군을 무찌르고 타이의 독립을 회복하였다. 딱신 대왕은 1768년 방콕 건너편의 대방콕 일부에 속하는 톤부리를 도읍지로 정하고 스스로 왕위에 올라 라오스·캄보디아까지 세력을 넓혔으며, 그의 뒤를 이어 부장 프라야 차크리(라마 1세)가 왕위에 올라 짜끄리 왕조1782년 도읍을 방콕으로 옮겼다. 이로써 타이 역사의 현 시기(랏따나꼬신 시기)가 시작되었다. 라마 1세(재위 1782년 - 1809년)는 타이 세력을 크게 확장해 말레이반도의 켈란탄, 미얀마의 타보이까지 지배하였으며 아유타야왕조의 관행부활에 힘쓰고 옛 관례를 재구성하는 법전공포와 불교재흥에 힘썼다.

동남아의 유일한 독립국가[편집]

이와 같이 왕조는 4차례 바뀌었으며 현재는 짜끄리 왕조가 통치한다. 유럽 세력들은 16세기부터 타이를 방문하기 시작하였다. 19세기 유럽 열강의 진출이 극심하여, 미얀마 등 주변국들이 프랑스대영제국의 식민지가 되었을 때에도 타이는 독립국으로 계속 존속할 수 있었던 유일한 나라이다. 이것은 19세기 타이에 매우 유능한 통치자가 오랜 기간 통치를 하였고, 프랑스대영제국 사이의 경쟁의식과 긴장감을 이용하는 정치기술이 있었기 때문이다.

위로부터의 사회개혁[편집]

유럽의 학문과 기술도입에 적극적이던 라마 4세(1851년~1868년)의 뒤를 이어 라마 5세 출라롱콘대왕(재위: 1868년~1910년)은 쇄국제도를 풀고 개국하여 1855년 영국과 통상우호조약을 맺었다. 부역제도와 노예 제도를 폐지하고, 사법·교육제도를 근대화하는 한편 철도·통신사업도 추진하였으며 사회의 모든 방면을 개혁하였다. 이러한 개혁노력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무역 이익을 위하여 주요 조계(租界)를 설정하였다. 그리고 타이는 영국에게는 말레이 인종이 거주하는 말레이 반도의 크다(Kedah)·프를리스(Perlis)·트릉가누(Terengganu)·클란탄(Kelantan)[1]을, 프랑스에게는 메콩강 왼쪽 연안의 라오스를 떼어주어야 했다. 그러나 빠따니라 불리는 말레이 인종이 거주하는 나머지 지역[2]은 오늘날에도 타이의 영토로 남아 있다. 결과적으로, 타이는 유럽의 2개의 식민 지배 권력의 식민지가 된 동남아시아에서 완충국으로 남게 되었다. 라마 4세 때 문호를 개방하였고, 라마 5세는 국가를 개혁하였다. 라마 5세는 지식인에게 해외 유학(留學)을 장려하였고, 관료로 삼았다.

제1차 세계대전[편집]

제1차 세계 대전 초기에는 중립을 선언하였으나 1917년연합국 편으로 참전하게 된다. 전후 승전국으로 처리되어 국제 연맹에 가입할 수 있었고, 1929년 시작된 세계불황은 타이의 경제에도 심각한 타격을 주었으며 1932년에 무혈쿠데타, 즉 입헌혁명이 일어나 전제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로 바뀌어 헌법이 제정되었다. 그러나 송크람 대령이 이끄는 군부독재정권이 국왕 라마 7세영국으로 추방하고 1992년까지 60년간 타이를 장악하게 된다.

제2차세계대전[편집]

대동아회의 기념사진

제2차 세계 대전 때에는 추축국에 가담을 하였으나 영국미국은 이를 감싸줬다. 타이는 1946년에 국제 연합(UN)의 회원국이 되었다. 2차대전 후는 정당정치도 실현되었다. [3]

6·25 전쟁 참전[편집]

타이는 한국 전쟁(6·25 전쟁) 당시 국제 연합 평화 유지군의 일원으로, 1950년 11월 7일에 참전하였다.

군부독재정권과 민주화운동[편집]

이 나라는 반공(反共)을 앞세운 군부독재정권의 지배를 받았으며 여러 차례의 쿠데타를 경험하였다. 1987년 방콕 시민들의 민주화 운동 이후로도 1991년에 수친다 장군의 쿠데타로 군부독재정권이 다시 연장되었고,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최소한 50명이 사망하였다. 결국 라마 9세에 의해 정치적으로 민주화를 거두었다.

경제위기[편집]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가 타이를 강타하였고 타이의 화폐인 은 1 미국 달러 당 56밧까지 치솟았다.(1997년 이전에는 대략 25밧이었다.) 그 이후로 밧은 다시 평가절상되기 시작하여 2012년 12월 현재는 30밧 정도이다.

탁신 총리 축출[편집]

2006년손티 분야랏끌린 육군 총사령관이 해외를 방문한 탁신 친나왓 총리를 축출한 쿠데타를 성공시켰다.

2008년 탁신 세력인 팔랑쁘라차촌(국민의 힘;PPP)당이 선거에 승리함으로써 싸막 쑨트라웻이 총리가 되었으나, 탁신 반대세력의 반발과 요리쇼 스캔들 등으로 인해 사임하게 된다. 최근 타이에는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으며, 이 결과로 최소 27명이 사망하고 1000명이 부상당했다. [4] 타이는 왕당파 시위대(노란색상징)와 반대파 시위대(빨간셔츠상징)로 인해서 혼란을 겪고 있으며, 옐로셔츠 시위대가 공항을 점거하기까지 했다.[5] 타이에서 계속된 시위는 사법부가 반정부 시위대의 손을 들어주면서 끝났다.[6] [7] 그리고 반정부 시위대도 공항 점거농성을 끝내기로 결정했다.[8] 이후 새로 치러진 총선에서 신임 총리로 영국 유학파 출신 엘리트 이미지를 가진 민주당의 아피씻 웻차치와가 선출되었다. 하지만 탁신 세력을 지지하는 쓰어댕(레드 셔츠)세력들이 타이 전역에서 시위를 벌여 태국의 정국은 극심한 혼란을 빚게 되었다.[9] 2011년 새로 치러진 총선에서 사업가 출신의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막내 여동생 잉락 친나왓이 새로 타이의 총리로 선출되었다.[10] 2013~2014년 타이 정치 위기2014년 타이 쿠데타로 친나왓이 쫓겨나고 군정 통치가 이뤄지고있다.

자연 환경[편집]

지리[편집]

국토의 면적은 51만4000㎢로 세계 49위이다. 이는 프랑스미국캘리포니아 주와 비슷한 크기이다. 동남아시아 대륙의 중앙에 위치하는 타이는 자연환경에 따라 크게 네 개의 지역 - 북부, 중부, 동북부 및 남부- 로 구분되며, 그 지역마다 여러 가지 특징을 보인다.

북부 산악지대
북부
북부는 높은 산악지대로 미얀마, 라오스와 접경한다. 비교적 시원한 기후이다. 남북방향의 높은 산맥이 줄지어 있으며, 타이 내 최고봉인 도이 인타논(2,576m)도 이 지역에 있다. 산맥 사이에 치앙마이·치앙라이·난·람빵 등 작은 분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하천 골짜기를 이용한 교통로가 예로부터 발달되었다. 주변 산지에서 흘러내리는 강물로 전통적 관개수리체계가 발달되어 타이에서 가장 생산성 높은 집약적 농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코끼리들이 숲에서 일을 하고 겨울철 딸기나 복숭아와 같은 과일을 재배하기에 알맞은 곳이다.
동북부
동북부(이싼)는 거의 전역에 코랏 분지가 펼쳐져 있으며, 강우량이 적어 농작물이 자라기 어려운 환경에 있고, 경제적인 빈곤이 문제가 되는 지역이다. 타이 중부 동쪽끝은 페차분 산맥과 동파야디옌 산맥으로 갑자기 막힌다. 이 산맥들은 역사적으로 타이 중부와 타이 동북부를 갈라놓았는데, 산맥 서쪽은 가파른 산지이자 무성한 삼림지역이고 동쪽은 큰 대지로 타이 전국토의 약 1/3을 차지한다. 메콩 강에 접하고 있기도 하다. 기복있는 저지대는 논으로 만들어지고, 고지대는 소림(疎林)으로 덮였지만 인구증가에 따라 소림지역도 논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벼농사 외에 밭농사와 축산도 이루어진다.
중부
중부에는 짜오프라야 강이 형성한 광대한 짜오프라야 삼각주로 불리는 풍성한 평지가 퍼져, 세계에서 손꼽히는 유수한 벼농사 지대를 만들어 내고 있다. 짜오프라야 강은 국내 제일의 하천으로 중부의 교통의 대동맥이면서 생활과 농업 생산에 필요한 물을 공급한다. 타이 중부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짜오프라야 삼각주는 구델타와 신델타로 나뉜다. 구델타는 예로부터 육지로 만들어진 땅이며, 장대한 자연제방과 습지로 인해 깊은 물에서도 잘 견디는 부도(浮滔)라는 벼 품종이 재배되고 있다. 신델타는 아유타야로부터 해안에 이르는 드넓은 지역이며, 완전한 평탄지로 좀체로 물이 빠지지 않는다. 19세기 말부터 물길이 가로세로로 파여져 벼농사 경작지를 확장시킴과 동시에 새로운 취락도 형성하였으며 오늘날 타이 제1의 곡창지이다. 품질 좋은 과일도 이곳에서 많이 재배된다. 타이 중부 서쪽끝은 다우나산맥으로 미얀마와 국경을 이룬다.
남부
남부는 말레이 반도의 일부를 차지하며, 대부분 산지이나 시암만쪽 동편에는 해안에 잇닿은 소규모 해안평야가 몇 곳에 형성되어 자급자족할 수 있는 벼농사가 이루어진다. 파라 고무나무가 펼쳐져 있고, 최근까지 주석 채굴이 활발했다. 어업도 중요하다. 또, 우기가 중부보다 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타이 정부는 남부에 말레이 반도 대운하 계획을 제시하고 있지만, 아직 검토 중이다. [11]
위 4개의 지역에 아래 2개의 지역을 더하여 6개의 지역으로 구분할 수도 있다. [12] :74
푸껫 쁘롬텝 곶
동부 해안 지대
아름다운 해변 휴양지로 유명한 지역이다.
서부
수력발전을 하기에 알맞은 서쪽의 산악지역과 계곡이다.

기후[편집]

동남아시아의 다른 여러 나라와 마찬가지로 열대몬순 지대에 속한다. 수도 방콕의 가장 더운 4월의 평균 기온이 섭씨 29.5도이며 가장 시원한 12월의 평균 기온은 섭씨 25.3도이다. 연교차는 4.2 이다. 이러한 단조로운 기후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몬순이다. 5월부터 10월까지는 남서몬순이 부는 우기로, 연간 강우량의 거의 전부가 이 시기에 쏠린다. 11월부터 4월까지는 동북몬순이 불어 아시아 대륙의 건조한 대기의 영향을 받아 건조기가 된다.[13]

정치[편집]

민주주의[편집]

러시아의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과 악수하는 라마 9세
방콕 민주주의 기념비

타이의 정치입헌군주제에 근거한 민주주의이다. 현 국왕은 푸미폰 야둔야뎃 국왕이다. 타이 국민들의 국왕에 대한 사랑과 존경심이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정치적인 형태로는 입헌 군주제에 기초한 내각 책임제를 취한다.

쿠데타[편집]

다만 2006년 9월 19일 손티 분야랏끌린 육군 총사령관이 쿠데타를 일으켜 '민주 개혁 평의회'를 구성해 유지되고 있다.

행정 구역[편집]

수도방콕 (끄룽텝)이며, 치앙마이핫야이 등의 주요 도시가 있다. 행정 구역으로는 위치 구분에 따라 5개의 지역(중부, 동부, 북부, 북동부, 남부)에, 76개의 짱왓(changwat)으로 나뉜다(타이의 주 참조). 중부에는 앙텅 등 19개, 동부에는 차층사오 등 7개, 북부에는 치앙마이 등 17개, 동북부에는 암낫짜른 등 19개, 남부에는 춤폰 등 14개의 짱왓이 있다.

대외 관계[편집]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을 때 타이의 여론은 친독일이었다. 일찍이 프랑스영국에는 많은 영토를 빼앗긴 적이 있었던 데 비해, 독일은 철도개발에 도움을 주었고, 타이 영토에 야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라마 6세는 1914년 중립을 선포하고 전쟁이 종반에 이를 때까지 계속 중립입장을 고수하였다. 1917년 미국이 대독 선전포고를 하고 연합국 측의 승리가 확실해지자, 라마 6세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대하여 선전포고하였다. 이와 같은 형식적인 참전이 타이에게 막대한 이익을 가져왔다. 파리 강화 회의(1919년)가 열렸을 때 타이는 전승국의 입장으로 참가하고 국제연맹의 창설과 함께 정회원국이 되어(1920년) 불평등조약을 갱신하는 계기가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의 타이 외교는 이중외교(dual diplomacy)이고, 주위 정세에 따라 유연히 흔들리는 대나무외교(bamboo diplomacy)였다. [14]

현재의 외교는 반공을 기본노선으로 하며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서구열강의 식민통치를 받지 않고 독립을 유지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미국과 적극적으로 친밀관계를 맺어 많은 경제원조를 받았다. 그러나 공산국가들과도 돈독한 외교 관계를 유지하여 왔고, 한국과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다.

경제[편집]

개관[편집]

타이는 신흥공업국 중 하나이다. 타이는 1985년부터 1995년까지 연 9%에 가까운 성장률을 기록하며 세계적인 고율 성장기를 보낸 다음, 타이의 화폐 의 평가절하 압력을 받아오다가 1997년에 회복할 수 없는 재정적 약점을 보이고 정부가 환율을 변동환율제로 해야만 하는 위기를 맞이하였다. 밧은 오랫동안 미화 1달러 당 25밧에 안정되어 있었다가 1998년 1월에 56밧까지 가치가 떨어지고, 그 해에 경제 규모는 10.2% 수축하였다. 타이 은행의 붕괴는 더 큰 아시아 금융 위기를 불러일으켰다.

타이는 1998년에 회복 국면에 접어들어 2000년에는 4.2% 확장되고 4.4% 성장하였는데 이는 같은 해에 20%나 증가한 수출 덕분이었다. 2001년 세계 경제의 약화로 성장은 그 기세가 꺾였다가 중국의 급성장과 "탁시노믹스"라고도 널리 알려진 탁신 친나왓 총리의 여러 가지 국내 경기 부양 정책으로 인하여 그 이후에는 경기가 좋아졌다. 2003년2004년의 경기 성장은 연간 6%를 상회하였다. [15]

타이의 연간 수출액은 1,235억 달러를 상회한다.(2006년)[15] 주요 수출 품목은 , 섬유, 신발, 수산물, 고무, 보석, 자동차, 컴퓨터, 가전제품 등이다.

중요한 산업으로는 전자 제품, 전자 부품, 컴퓨터 부품, 자동차가 있다. 또한 관광업은 타이 GDP의 5% 정도를 기여하고 있다. 장기 체류하는 외국인들과 그들의 사업도 GDP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

경제 주요 지표
(2003년)[출처 필요]
국내총생산 1,423억 달러
1인당 GDP 2.251 달러
경제성장률 6.7%
수출 1235억 달러(2006년)
수입 750억 달러
외환보유고 421억 달러
외채 522억 달러
세계적인 쌀 수출국, 타이

농수산업[편집]

농업은 타이의 주산업이며 그 중에서도 도작(稻作)은 국민생활의 기초이다. 쌀은 국민의 주식인 동시 제1의 수출품이기도 하다. 타이는 세계 제1위의 쌀 수출국으로서 매년 도정미 650만 톤을 수출한다. 쌀은 이 나라의 가장 중요한 곡물이다. 타이는 메콩 강 유역의 나라 중 가장 높은 경지율(27.25%)을 보인다.[16] 이 중 55%는 쌀 경작지이다. [17] 주산지는 많은 소작농이 생산에 종사하고 있는 중부 삼각주지역이다. 쌀 다음으로 중요한 산물이 고무와 옥수수인데 역시 수출된다. 수산자원으로는 담수어가 압도적으로 많다. 하천, 운하, 호수에서 잡히는 어류는 국민의 필요 불가결한 단백질 공급원이 되고 있다. 연안의 해양어업은 별로 발달해 있지 않다. [18]

공업[편집]

전에는 경공업이 약간 발달했을 정도로 외국 공업제품의 시장이 되어 있었으나 근년 외국자본의 도입으로 공업화를 이룩하려는 노력이 눈에 띄고 있다. [18]

유통과 무역[편집]

화교의 활약이 없으면 경제가 마비될 정도로 화교가 유통기구를 독점하고 있다. 주요 수출상대국은 미국·네덜란드·싱가포르·홍콩·일본 등이다. 수입도 크게 달라져 소비재수입이 크게 줄고, 공업생산용 원재료·자본재·원유 등이 두드러지게 늘었다. 주수입 상대국은 미국·사우디아라비아·싱가포르·말레이지아·일본 등이다. 공업화에 필요한 원재료와 자본재수입이 급증해 농산물 수출액을 넘기 때문에 무역수지는 언제나 적자이다. 특히 대일 무역적자가 커져 해마다 무역마찰문제를 불러 일으켰다. 무역수지적자는 관광수입과 외국으로부터의 송금과 민간투자·정부차관 등으로 메워진다. 특히 관광수입 증대와 더불어 아랍산유국으로부터 보내져 오는 노동임금이 많다.[18]

관광 산업[편집]

치앙마이의 왓 프라 싱

주요 산업은 관광업이다. 이 나라는 유명한 관광 명소들과 문화재로 인해 엄청난 수입을 올리고 있다. 태국의 관광산업은 국가 수입의 60%에 이를 정도로 관광산업에 의존하고 있다. 때문에 곳곳에 관광지와 유적지가 펼쳐져 있다. (관광지와 유적지에 대해서는 관광 참조)

화폐[편집]

타이의 화폐 단위는 으로, 1밧은 100사땅(satang)이다. 지폐는 20, 50, 100, 500, 1000 밧이 있으며, 동전은 25, 50 사땅과 1, 2, 5, 10 밧이 있다. 전 권종에 모두 국왕이 그려져 있다. 사땅 동전은 보통 슈퍼마켓이나 편의점 등에서 간혹 사용되며 일반적으로는 잘 쓰이지 않는다.

타이의 형법에서는 "돈을 훼손하는 것은 불법이다."라는 문구가 있다.

주요 자원[편집]

주요 자연 자원으로는 주석, 천연 고무, 텅스텐, 천연 가스, 탄탈럼, 목재, , 물고기, 석고, 갈탄, 형석, 경작지, , 타피오카, 안티몬 등이 있다.

교통[편집]

교통에 있어서는 하천과 운하를 이용한 수운이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중부에서는 운하가 사방팔방으로 발달해서 사람과 물자의 수송에 이용되고 있다. 일찍이 방콕은 운하와 수로가 많아 수운이 발달하여, "동양의 베니스"라고 칭송받기도 하였으나, 지금은 그 대부분이 매립되어 도로가 되어 버렸다. 또한 타이 북부의 국경을 흐르는 메콩 강에는 2001년 6월에 타이, 라오스, 미얀마, 중화인민공화국 간에 메콩강 상선통항협정이 체결되어, 유역 각국 간의 통항로로 이용되고 있다. 타이의 철도는 국유회사인 타이국유철도가 4개 노선을 운영하며,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와는 직결된다. 방콕에는 고가철도와 지하철도 개통되었다. 도로교통은 현재 급속한 발달 과정에 있다. [19] 국내 모든 도시를 연결하는 교통기관으로서, 철도보다도 대량수송공사에 의한 버스 쪽으로 발달하고 있다. 도시 교통도 방콕을 제외한 대부분의 도시에서는 소형 트럭을 개조하여 만든 버스(썽태우)가 일반적이다. 수완나품 공항은 아시아의 허브 공항의 하나로서, 전 세계의 항공사들이 드나들고 있으며, 타이항공과 여러 저가 항공사들이 운항중이다. 대한민국인천, 일본나리타 등의 도시에는 타이항공, 대한항공, 일본항공 등이 운항하고 있다.

사회[편집]

교육[편집]

유치원[편집]

타이의 교육 제도는 유치원 제도가 이미 기본적으로 정착되어 왔으며, 초 중 고 대학교의 기본 학제가 한국과 같거나 비슷하게 운영된다. 유치원 및 영아 유치원 교육은 교육 자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서라기보다는, 반드시 있어야 하기 때문에 존재한다. 타이에서는 일할 수 있는 여자들의 절반이 직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내와 남편 모두 직장을 다니는 맞벌이 부부가 많다. 그래서 부모의 출근 시간대에서부터 퇴근 시간대까지 아이들을 돌봐 주는 탁아소의 역할을 부담하는 요금에 따라서 탄력 있게 감당하고 있다.

진학[편집]

타이에서 명문대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좋은 고등학교를 나와야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상급학교 진학은 시험을 통하여 하기 때문에 원하는 고등학교에서 공부하기 위해서는 좋은 중학교를, 좋은 중학교를 위해서는 좋은 초등학교를, 좋은 초등학교를 다니기 위해서는 좋은 유치원을 나와야만 한다. 따라서 교육에 관심 있는 부모들은 아이들이 에서 좀 멀고, 힘이 들더라도 좀 더 나은 유치원에 보내려고 애를 쓴다. 비판적으로 보면, 타이에서 교육의 기회는 자녀를 명문학교에 보낼 수 있을 만큼 돈이 많은 소수 부유층들만 가질 수 있고, 대부분의 민중들에게는 처음부터 상당히 닫혀있는 것이다.

중고교과정[편집]
타이의 보이, 걸 스카우트

타이에는 중 고교 과정을 위해 각각 3년을 들여야만 하는 정규 학제 이외에도, 중고교 졸업장을 비교적 손쉽게 받을 수 있는 길이 여러 가지로 열려 있다.

  1. 주간에는 일하면서 야간 수업 또는 주말 수업으로 2년 정도 공부하면 중학교나 고등학교 졸업장을 얻을 수 있는 준 정규 과정이 전국적으로 많은 정규학교에 병설되어 있기 때문에 조금만 시간을 내면 졸업할 수 있다. 이렇게 공부할 수 있는 조건은 제때에 공부를 시작하지 못하고 2-3년 정도 자기 학년보다 늦어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2. 준 정규 과정에도 훨씬 못 미치는 수업 시간 및 수업 연한을 갖고 중 고등학교 과정을 마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3. 검정고시가 있다.
대학교[편집]
출라롱꼰 대학에 방문한 미국의 대통령 버락 오바마

대학 과정은 분야별로 명문대가 있는데, 방콕의 쭐라롱껀, 탐마쌋, 씨나카린위롯, 씬라빠껀, 까셋쌋, 마히던 대학교 등이 명문이며 지방의 명문으로는 북부의 치앙마이 대학교, 북동부(이산)의 컨깬대학교, 남부의 송클라나카린대학교가 있다. 한편, 공부는 하고 싶으나 가정형편이 뒷받침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방콕에는 물론 지방에도 곳곳에 개방대학이 개설되어 있다. 그 중 방콕에 있는 람캄행 대학은 세계에서 학생 수가 가장 많은 대학으로 알려져 있다. 고등학교 졸업장만 있으면 누구든 공부를 시작할 수 있다. 학비가 저렴하여 등록금과 교재 구입비를 포함하여 한 학기당 25-30달러 정도 되므로 공부를 하고픈 학생들이 전국에서 몰려든다. 강의는 하나도 안 들어도 되고, 시험 성적으로 학점을 얻는다. 하지만 졸업이 어려워서, 개방대학을 나오면 사회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면서 일할 수 있다.

범죄[편집]

관광객을 상대로 한 소매치기나 날치기 범죄가 발생하며, 방콕의 유흥가 밀집 지역인 팟퐁, 나나 지역에서는 마약이 불법적으로 유통되기도 한다.[20] 타이의 국왕이나 왕실을 모독하는 국왕 모독죄를 범하면 타이 형법 112조에 따라 최저 3년에서 최고 15년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는데[21][22] 이는 타이 국왕의 사진이나 초상을 훼손하는 것도 해당된다.[23]

언어[편집]

타이어공용어로 지정되어 있다. 타이어는 크메르족과 몬족의 언어가 섞여 만들어졌다. 자음 44자, 모음 32자이고, 5개의 성조가 있다. 북부 지방은 사투리를 사용하지만 표준어와 큰 차이가 없다.[24]

주민[편집]

타이족이 다수를 차지한다. 또한 타이의 주류에서는 벗어난 여러 인종들도 타이의 인구를 구성하고 있다. 이들은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말레이시아에도 거주하고 있으며 타이의 문화적 영향이 강하게 작용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엄격한 전통 생활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화교 또한 타이 사회, 특히 방콕 주변에서 특징적인 요소이다. 화교의 타이 사회로의 성공적인 진입은 이들이 경제적, 정치적 권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해 주었는데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이 타이의 전 수상 탁신 친나왓이다. 그는 2001년부터 정권을 잡았으나 2006년 9월 19일 쿠데타에 의하여 축출된 바 있다. 소수 민족으로는 화교 이외에도, 크메르족, 몬족, 말레이족, 산간부족(먀오, 야오, 라와, 리소, 무소, 카렌, 이코)이 있다. [3]

언론[편집]

타이 사회는 최근에 여러 개의 언어를 사용하는 언론과 미디어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수많은 영어, 타이어, 중국어 신문들이 유통되고 있다. 가장 인기 있는 타이의 잡지들은 매혹적이고 우아하게 보이려고 머리기사에 영어를 쓴다. 방콕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큰 사업 건들은 영어로 진행된다. 타이 사람들끼리 말할 때에도 그들이 교육을 받았고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졌음을 나타내기 위하여 영어로 말한다. 타이는 2003년 기준으로 매일 최소한 1300만 부수의 신문이 유통되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신문 시장이다.

종교[편집]

타이에서는 대부분이 소승불교로서의 불교를 종교로 믿고 있으며, 소수의 주민들은 이슬람, 중국계 종교, 기독교 등을 믿는다.[25]

문화[편집]

타이의 특징적인 상좌부 불교의 명상 중인 승려

타이는 불교의 나라이자 사원의 나라이다. 주민의 95% 이상이 불교 신자이며, 대부분이 소승 불교 신자이다. 타이의 승려들은 한국과는 달리 육식과 음주를 허용하지만 정오 이후의 식사는 금지하며, 여성은 승려와 접촉할 수 없다. 또한 타이에는 아름다운 왕궁과 많은 불교 사원들이 있다. 타이는 왕실에 대한 믿음과 존경이 대단한 나라이다. 조상에 대한 존경은 타이의 정신적 관습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축구가 무어이 타이를 대신하여 인기를 얻고 있으며 이제는 타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이다.[출처 필요] 타이의 고전무용은 콘과 라콘, 라밤 등 세 종류가 있는데 수많은 장식품을 사용한 화려한 의상과 우아한 춤동작이 특징이며 타이의 중요한 관광자원이자 자랑거리이다. 해마다 11월이면 유명한 코끼리몰이 축제가 열려 다양한 코끼리 묘기를 펼친다. 타이의 음식은 다섯 가지 기본적인 맛, 단 맛, 향이 강한 맛, 신 맛, 쓴 맛, 짠 맛이 어우러져 있다. 타이는 전통적인 관광유적과 현대 첨단문명이 잘 맞물려 현대적인 발전을 추구하면서도 푸른하늘 아래 황금빛으로 빛나는 수많은 사원, 과거의 영광을 증언하는 관광유적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기타[편집]

  • 타이의 전봇대는 사면체로 되어 있다.
  • 타이에서는 군대를 제비뽑기로 가는데, 빨간색 제비를 뽑으면 입대 당첨, 검은색 제비를 뽑으면 병역 면제이다.

주석[편집]

  1. 이 곳은 나중에 말레이시아 북부의 주가 된다.
  2. 이는 다시 4개의 구역으로 세분된다.
  3.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타이의 역사·주민
  4. 태국 시위대-경찰 충돌...2명 사망·300여 명 부상
  5. 태국 공항 점거 7일째
  6. 泰 내각 총사퇴… 공항 점거도 풀기로(종합)
  7. <태국 집권당 해체...항공기 운항 재개 합의>(종합2보)
  8. 태국 시위대 "공항 점거농성 3일 해제"
  9. `레드 셔츠` 격렬 시위…태국은 `準전시 상태`
  10. 잉락 친나왓, 태국 총리로 공식 취임
  11.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타이의 자연
  12. 김성기 (2000년). 《코스따라 세계여행 동남아시아》. 민서출판사. ISBN 978-89-422-0046-7
  13.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타이의 기후
  14. 한국태국학회, 《태국의 이해》 (동남아학총서2),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2005)33쪽
  15. CIA world factbook - Thailand
  16. CIA world factbook - Greater Mekong Subregion
  17. IRRI country profile
  18.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타이의 산업
  19.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타이의 교통·도시
  20. 해외안전여행 : 국가별 안전정보. 대한민국 외교통상부. 2010년 11월 15일에 확인. “방콕을 비롯한 파타야, 푸켓 등 주요 관광지에서는 소매치기 오토바이 날치기 등이 빈번히 발생하는 바, 소지품 관리에 유의해야 하며 귀중품, 고가 카메라 등을 눈에 띄게 휴대하고 다니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합니다. …중략… 수도 방콕 시내의 경우 유흥가 밀집지역인 팟퐁, 나나 지역은 마약이 불법적으로 유통되는 만큼 유흥업소 출입시 유의하여야 합니다.”
  21. 타이 형법 제112조: 국왕, 왕비, 왕위 계승자 또는 섭정을 비방, 모욕하거나 위협한 자는 최저 3년, 최고 15년까지의 징역에 처한다. (มาตรา ๑๑๒ ผู้ใดหมิ่นประมาท ดูหมิ่น หรือแสดงความอาฆาตมาดร้ายพระมหากษัตริย์ พระราชินี รัชทายาท หรือผู้สำเร็จราชการแทนพระองค์ ต้องระวางโทษจำคุกตั้งแต่สามปีถึงสิบห้าปี)
  22. (연합뉴스 인용). "태국 군부, 국왕모독죄로 탁신 고발 검토", 《조선닷컴》, 2008년 11월 4일 작성. 2010년 11월 15일 확인. "입헌군주제인 태국에서는 국왕과 왕실에 대한 모독은 중죄로 다스려 유죄로 판명될 경우 징역 3년에서 최고 15년형에 처해진다. 이 법은 종종 정적을 공격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3. 전성옥(연합뉴스 인용). "태국국왕 초상화 먹칠 스위스인 ‘75년 징역’ 위기", 《한겨레신문사》, 2006년 12월 22일 작성. 2010년 11월 15일 확인.
  24. 트래블게릴라 편, (2005년). 《태국·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 100배 즐기기》. 랜덤하우스중앙, 30쪽
  25. 세계기도정보

같이 보기[편집]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