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2호선: 두 판 사이의 차이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태그: 되돌려진 기여 동음이의 링크
편집 요약 없음
태그: 되돌려진 기여
38번째 줄: 38번째 줄:
* [[1980년]] [[8월 28일]]: 구청앞역에서 신설동역으로, 대운동장역에서 종합운동장역으로 변경<ref>[http://event.seoul.go.kr/snews/data/CN_MST/1980-795.pdf#page=28&view=FitV&scrollbar=1&toolbar=1&statusbar=1&messages=1&navpanes=1 서울특별시고시 제309호], 1980년 8월 28일.</ref>
* [[1980년]] [[8월 28일]]: 구청앞역에서 신설동역으로, 대운동장역에서 종합운동장역으로 변경<ref>[http://event.seoul.go.kr/snews/data/CN_MST/1980-795.pdf#page=28&view=FitV&scrollbar=1&toolbar=1&statusbar=1&messages=1&navpanes=1 서울특별시고시 제309호], 1980년 8월 28일.</ref>
* [[1980년]] [[10월 31일]]: [[신설동역|신설동]] - [[종합운동장역 (서울)|종합운동장]] 구간 14.3&nbsp;km 개통
* [[1980년]] [[10월 31일]]: [[신설동역|신설동]] - [[종합운동장역 (서울)|종합운동장]] 구간 14.3&nbsp;km 개통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 [[1982년]] [[12월 9일]]: [[종합운동장역 (서울)|종합운동장]] - [[교대역 (서울)|교대]] 구간 역명 결정<ref>[http://event.seoul.go.kr/snews/data/CN_MST/1982-941.pdf#page=5&view=FitV&scrollbar=1&toolbar=1&statusbar=1&messages=1&navpanes=1 서울특별시고시 제505호], 1982년 12월 9일.</ref>
{{회사 정보
* [[1982년]] [[12월 23일]]: [[종합운동장역 (서울)|종합운동장]] - [[교대역 (서울)|교대]] 구간 5.5&nbsp;km 개통
| 이름 = 대우그룹
* [[1983년]] [[6월 30일]]: [[을지로입구역|을지로입구]] - [[교대역 (서울)|교대]] 구간 역명 결정<ref>[http://event.seoul.go.kr/snews/data/CN_MST/1983-972.pdf#page=7&view=FitV&scrollbar=1&toolbar=1&statusbar=1&messages=1&navpanes=1 서울특별시고시 제326호] , 1983년 6월 30일.</ref>
| 원어 = Daewoo Group
* [[1983년]] [[9월 16일]]: [[을지로입구역|을지로입구]] - [[성수역|성수]] 구간 7.9&nbsp;km 개통과 동시에 신설동 - 성수 5.4&nbsp;km 구간이 성수지선으로 별개로 분리
| 워드마크 = Daewoo logo (hangul).svg
* [[1983년]] [[10월 17일]]: [[문래역]]에서 '''[[신도림역]]'''으로, [[문래역|문래3가역]]에서 '''[[문래역]]'''으로 변경<ref>[http://event.seoul.go.kr/snews/data/CN_MST/1983-989.pdf#page=8&view=FitV&scrollbar=1&toolbar=1&statusbar=1&messages=1&navpanes=1 서울특별시고시 제541호], [[1983년]] [[10월 17일]].</ref>
| 형태 = 대기업집단(1989년~1999년)
* [[1983년]] [[12월 17일]]: [[교대역 (서울)|교대]] - [[서울대입구역|서울대입구]] 6.7km 구간 개통<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3121700209206002&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3-12-17&officeId=00020&pageNo=6&printNo=19141&publishType=00020 地下鐵(지하철)Ⅱ 教大(교대)앞~서울大入口(대입구)구간 개통 서울大(대)~乙支路(을지로)입구 49분 걸려 새벽 5시~밤 11시 51분까지 운행], 동아일보, [[1983년]] [[12월 17일]] 작성.</ref>
| 창립 = 1967년 3월 22일 (대우실업 주식회사)
* [[1984년]] [[5월 18일]]: [[홍대입구역|동교역]]에서 '''[[홍대입구역]]'''으로 변경<ref>[http://event.seoul.go.kr/snews/data/CN_MST/1984-1019.pdf#page=30&view=FitV&scrollbar=1&toolbar=1&statusbar=1&messages=1&navpanes=1 서울특별시고시 제295호], [[1984년]] [[5월 18일]].</ref>
| 창립자 = [[김우중]](대표이사 회장)
* [[1984년]] [[5월 22일]]: [[서울대입구역|서울대입구]] - [[을지로입구역|을지로입구]] 19.8&nbsp;km 개통으로 을지로 순환선 완성
| 해체 = 1999년 11월 1일
| 국가 = {{KOR}}
| 장소 = 대우센터빌딩(1977년~1999년)
| 사업 지역 =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 인물 = 김우중(대표이사 회장)
| 산업 = 자동차, 전자, 조선, 건설
| 주요사업부문 = 자동차, 전자, 조선, 건설, 무역, 금융
| 자본금 = 5,000,000원(1967년 기준)
| 매출액 = 분식회계로 정확히 추산불가
| 매출 = 78조원(1999년 기준)
| 영업이익 = -4조원(1999년 기준)
| 자산 총액 = 자본 약 15조 부채 89조
| 주주 = 김우중
| 모기업 = (주)[[포스코인터내셔널|대우]]
| 계열사 = [[대우전자]], [[대우건설]], [[한국GM|대우자동차]], [[대우조선]], [[대우증권]], [[쌍용자동차]] 外
}}

'''대우그룹'''(大宇─, Daewoo Group)은 [[1967년]] 창립한 [[포스코인터내셔널|대우실업]]을 모태로 [[1980년대]]부터 [[1990년대]] 말까지 존재한 [[대한민국]]의 대규모 기업집단이었다.<ref>[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1997120912000601 대우그룹, 쌍용自인수로 재계순위‘3위’]《문화일보》1997년 12월 9일 김병직 기자</ref> 대도섬유의 대(大)와 김우중의 우(宇)를 따서 만들었다. 섬유·무역·건설·조선·중장비·자동차·전자·통신·관광·금융 등 여러 사업부문을 두었으며, [[1993년]] 세계경영 전략 채택 이후 강력한 외형확장으로 사세를 넓혀갔고 [[1998년]]에는 [[현대그룹]]에 이어 재계 2위에 올랐으나 외환위기 이후, 자체 구조조정 실패와 [[1999년]] [[삼성그룹|삼성]]과의 전자-자동차 빅딜 실패로 [[1999년 10월]]부터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그룹 해체를 맞았다.

== 기업연혁 ==
[[파일:Seoul Square.jpg|섬네일|오른쪽|과거 대우그룹의 본사였던 서울스퀘어.]]
대우는 1967년 소규모 사업체로 창업하였으나, 1970년대 경제성장 및 수출호조에 따른 비약적인 발전, 그리고 정부 주도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에 힘입어 단기간에 대한민국 최대기업으로서 성장을 이루게 된다. 대우는 1980년대 후반부터 대한민국 외 국가로 눈을 돌려 동유럽 및 신흥시장 개척을 추진해 왔고, 1993년 세계경영에 나서면서 사세확장을 시도하였다. 이후 외환위기 속에서도 1997년 법정관리에 들어간 쌍용자동차를 인수하였다. 98년 상반기에는 현대그룹에 이은 (자산총액기준) 재계 2위에 올랐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출범이후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자체적 구조조정 실패와 무리한 차입금이 발목을 잡았고 1998년 10월, 대우그룹이 신청한 기업어음(CP)발행이 중단되면서 그룹 위기가 찾아왔다. 1999년이 되면서 삼성그룹과의 대우전자-삼성자동차의 빅딜협상에 들어갔으나 동년 7월, 협상이 결렬되었다. 이후 김우중 회장은 자동차를 중심으로 그룹 구조조정에 뒤늦게 들어갔으나 대우그룹 채권단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1999년 10월, 그룹 해체 수순을 밟았다.

=== 성장 ===
1967년 대우실업 창립 이래, 부산에 공장을 설치하여 1970년대 와이셔츠 등의 봉제품 및 섬유제품의 수출호조와 더불어 경제고도성장으로 급속한 발전을 이루어 신흥 사업체로 주목받았고, 더욱이 정부가 주도하던 경제 정책에 발맞춰 금융, 전자, 중공업, 자동차 사업에도 뛰어들면서 대우 그룹을 형성하게 된다.

* [[1967년]] [[3월 22일]] 모태인 대우실업(주)(대우가족) 창립. (섬유류 봉제품 생산, 수출 주도)
* [[1969년]] 8월 대한민국 기업 해외지사 1호 시드니에 개설.
* [[1971년]] 9월 (주)내쇼날의류 설립.
* [[1972년]] 9월 고려피혁(주) 인수.
* [[1973년]] 쌍미섬유공업(주) 인수. 대우증권의 전신 동양증권(주) 인수. 대우건설(주) 설립.
* [[1975년]] 2월 대우빌딩 착공.
* [[1975년]] 5월 대우실업(주), 종합무역상사 지정.
* [[1976년]] 2월 한국기계공업(주) 인수. 10월 해외건설업면허 취득. 대우중공업(주) 출범.
* [[1977년]] 대우센터 빌딩 준공. 8월 제철화학(주) 경영권 인수.
* [[1978년]] 7월 산업은행으로부터 새한자동차(주) 지분 인수. 대한조선공사 옥포조선소 인수 후 9월 대우조선공업(주) 설립.

=== 도약기 ===
대우 그룹은 (주)대우의 출범과 새한자동차 경영권 장악, 가전사업 진출을 잇달아 성사시키며 현대(現代), 삼성(三星), 럭키금성(LG)과 함께 대한민국 4대 기업군으로 성장한다. 국내 업체들과의 출혈 경쟁에서 기술력과 수익성의 한계를 느낀 대우는 세계로 눈을 돌려 냉전체제의 완화가 도래한 시점에 동유럽 및 공산권 국가에 현지법인을 설립하면서 신시장 개척을 준비하였다.

* [[1981년]] 10월 옥포조선소 준공. 수출의날 15억불탑 수상. 대우실업(주) 및 대우개발(주) 합병 결의.
* [[1982년]] 모기업 (주)대우 출범. 수출의날 20억불탑 수상.
* [[1983년]] 대우자동차(주) 출범. 대우전자(주)에서 대한전선(주)의 가전부문을 흡수. 대우통신(주) 설립.
* [[1984년]] 경남기업(주) 경영 참여. (주)대우경제연구소 설립. 10월 대우자동차부품(주) 설립. 대한민국 최초 VTR 수출.
* [[1986년]] 대우증권 런던사무소 개설. 9월 경남기업(주) 계열 편입.
* [[1987년]] 미얀마 현지 철도차량공장 준공.
* [[1988년]] (주)대우 동베를린지사 설치. 대우투자자문(주) 설립. 프랑스 롱위 전자레인지 공장 건립. 대우증권 홍콩사무소 개설.
* [[1989년]] 제철화학 외 3개사 매각. 대우정보시스템 설립. 대우기전공업㈜ 출범. MHB-Daewoo Bank 설립.
* [[1990년]] (주)대우 모스크바지사 설치. 대우중공업(주) 유럽현지법인 설립. 멕시코 컬러TV 공장 건립.
* [[1991년]] (주)대우 북경지사 설치. 대우증권(주) 유럽현지법인 설립, 취리히사무소 개설.
* [[1992년]] 4월 佛 컬러TV 공장 건립. 佛 컴퓨터 판매법인 설립. 대우증권 美 현지법인 설립. 대우차-GM 제휴관계 청산.

=== 팽창기 ===
(주)대우가 구축한 세계무역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대우자동차(주), 대우중공업(주), 대우전자(주)가 국제적으로 널리 진출하는 '세계경영'은 1993년 '세계경영 우리기술' 슬로건 선포를 시점으로 본격화되었다. 대우가 당시 내세웠던 세계경영은 선진업체가 진출하지 않은 옛 공산권 국가와 앞으로 발전가능성이 무한한 개발도상국 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것으로, 현지법인 설립과 인수합병을 통해 단기간에 정착하여 사세확장을 꾀하는 형태이다. 실제로 대우가 진출을 시도한 개발도상국가의 정부에서는 자국의 경제활성화 목적에서 대우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기에, 대우의 사업확장은 더욱 쉽게 이뤄질 수 있었다. 대한민국 시장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대우자동차(주)의 경우는 대한민국 외 국가에서 판매하는 수량이 대한민국에서 판매하는 수량을 앞지르는 현상을 가져오기도 했다. 이같은 대우의 급속한 성장은 대한민국 경제계와 대한민국 외 국가 경제에 큰 반향을 가져다 주었다.

* [[1993년]] 1월 대우자판 설립.
* [[1993년]] 2월 베트남 합작은행 출자.
* [[1993년]] 3월 세계경영 선포.
* [[1993년]] 5월 우즈벡 가전 공장 설립.
* [[1993년]] 7월 대우중공업(주) 미국현지법인 DEC 설립.
* [[1993년]] 8월 폴란드 TV 공장 설립.
* [[1993년]] 9월 세계최초 공기방울 세탁기 개발.
* [[1994년]] 2월 대우할부금융 설립.
* [[1994년]] 3월 인도 합작증권사 CRB-Daewoo Securities Ltd 출자.
* [[1994년]] 5월 대우자동차(주) 영국 워딩 자동차 기술연구소 건립.
* [[1994년]] 6월 대우중공업 영국현지법인 유로 대우 UK 설립.
* [[1994년]] 10월 대우중공업(주) 대우조선공업 흡수 합병. 중국현지법인 대우중공업연대유한공사 설립.
* [[1994년]] 11월 루마니아 자동차합작공장 DAEWOO-RODAE 설립. 대우중공업(주) 러시아 기술연구소 DISK 설립.
* [[1995년]] 1월 대우중공업(주) 독일 현지법인 ECO 설립. 대우전자(주) 말레이시아 세탁기 공장 설립. 대우뱅크 출범.
* [[1995년]] 2월 대우중공업(주) 일본 현지법인 대우건기 설립.
* [[1995년]] 3월 체코 최대 국영상용차업체 AVIA사 인수. 대우증권(주) 홍콩현지법인 설립.
* [[1995년]] 4월 대우증권(주) 상해사무소 개설.
* [[1995년]] 5월 대한민국 기업 최초, 대북 협력사업 정부승인 획득.
* [[1995년]] 6월 다이너스카드사 인수.
* [[1995년]] 7월 동우개발(주)의 사명을 (주)대우개발로 변경.
* [[1995년]] 9월 베트남 하노이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우즈벡 공화국에 교환기합작공장 알로카대우 설립.
* [[1995년]] 10월 중국천진 팩스밀리 합작공장 설립.
* [[1995년]] 11월 베트남 최초 타포린 합작생산 공장 준공. 폴란드 최대 자동차기업 [[Fabryka Samochodów Osobowych|FSO]] 인수, DAEWOO-FSO 출범.
* [[1996년]] 3월 대우증권(주) 싱가폴사무소 개설. 루마니아 DAEWOO-RODAE 공장 준공.
* [[1996년]] 5월 남북경협 최초회사 민족산업총회사 남포에 설립. 앙골라 대규모 유전발견.
* [[1996년]] 6월 프랑스 롱위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인도뉴델리 첨단 소프트웨어 연구개발센타 설립. 페루육상 유전인수 입찰수주.
* [[1996년]] 7월 한진투자증권 합작 법인 서울투신운용(주) 설립. 우크라이나 대용량교환기 합작공장 드니프로-대우 설립.
* [[1996년]] 10월 대우증권(주) 동경지점 개점. UZ-Daewoo 자동차 공장 준공. 베트남 비담코 자동차 공장 준공.
* [[1996년]] 11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중국 광케이블 합작회사 우시-대우 설립. 루마니아 합작은행 설립.
* [[1997년]] 3월 우즈베키스탄 대우은행 (Uz-Daewoo Bank) 설립.
* [[1997년]] 4월 인도 종합 가전공장 설립. 군산 종합 자동차공장 준공.
* [[1997년]] 5월 인도 CRB증권 대우파이낸스로 상호 변경. 대우선물(주) 설립.
* [[1997년]] 6월 대우증권(주) 싱가포르 현지법인 설립.
* [[1997년]] 7월 대우리스 체코에 설립.
* [[1997년]] 9월 대우자동차(주) 우크라이나 합작공장 설립계약 체결.
* [[1997년]] 12월 한국전기초자(주) 인수.

=== 해체 ===
대우는 세계경영으로 철저히 현지화를 추구함으로써 1993년 당시 150여개에 불과했던 대한민국 외 국가 현지법인을 1998년 11월에는 396개로 끌어올리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대우는 1997년 다가온 경제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물로 나온 쌍용자동차(주)를 인수하여 소형차에서 대형차는 물론, 버스와 트럭, 사륜구동 SUV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차량을 생산하는 풀라인업을 완성시키고 그 밖에도 해외 현지공장 인수 및 확장을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대우는 1998년 [[삼성그룹|삼성]](三星)을 제치고 재계서열 2위까지 뛰어오른다.
* [[1998년]] 3월 30일 대우자동차(주), 쌍용자동차(주) 인수.
* [[1998년]] 5월 스페인 냉장고 공장 설립.
* [[1998년]] 6월 우크라이나 자동차 법인 AUTOZAZ-DAEWOO 공장 본격 가동.
* [[1998년]] 7월 미국 Fortune 선정 매출 500대 기업 중 세계 18위의 기업으로 도약.
* [[1998년]] 10월 대우중공업(주) 이집트공장 준공.
* [[1998년]] 11월 무역의 날 150억불 수출의 탑 수상.

그러나 경기침체의 장기화와 세계 시장의 위축으로 대우의 입지는 크게 흔들렸고, 개발도상국가 위주로 판매망을 확대해온 대우자동차의 부진이 거듭되었다. 경영여건이 안정되지 못한 상황에서 추진한 쌍용자동차의 인수도 큰 실익을 거두지 못하였고, 외형확대의 초점을 맞추어 경영해오다보니 당시 정부가 요구했던 구조조정에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오다보니 구조조정의 실시가 경쟁 그룹에 비해 늦은 편이었다. 정부 주도의 산업체계 개편에 따라 늦게나마 추진한 대우전자-삼성자동차 빅딜협상은 양사간 입장차이로 끝내 결렬되었으며, 1999년 여름에 접어들면서 그룹의 운명을 좌우할 대우와 GM과의 협상(대우차와의 경영권 문제)마저도 실패한 대우는 급속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자금난이 가중되던 대우는 알짜자산인 힐튼호텔 매각 등을 성사시키기도 하지만 1999년 3월에는 이미 부채 비율을 무려 400%를 훨씬 넘은 상태여서 수습이 어려운 지경이었다. 7월 대우는 초고강도 구조조정안을 발표하였으나 채권단은 이를 반려한다. 결국 대우는 1999년 8월 16일 채권단의 재무구조개선수정약정 체결과 더불어, 26일 채권단 관리하에 워크아웃을 맞이함으로써 그룹 해체의 길로 접어든다. 지난 1967년 창업 이래 32년간 대한민국에 경쟁성장의 견인차로 역할을 해오던 기업 중 하나로서, 1993년 세계경영을 선포한지 6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 [[1998년]] 11월 대우그룹 1차 구조조정안 발표.
* [[1998년]] 12월 대우전자(주) 및 삼성자동차(주) 빅딜 발표. (사업맞교환)
* [[1999년]] 4월 19일 대우 2차 구조조정안 발표. (대우 조선, 상용차, 힐튼호텔 등 매각)
* [[1999년]] 6월 30일 삼성자동차 워크아웃 돌입.
* [[1999년]] 7월 16일 대우그룹 구조조정안 발표. (자동차 전문그룹으로의 재탄생)
* [[1999년]] 8월 3일 제일은행 등 채권단 구조조정안 반려.
* [[1999년]] 8월 16일 대우 채권단, 재무구조개선수정약정 체결.
* [[1999년]] 8월 26일 (주)대우, 대우중공업(주), 대우자동차(주), 대우전자(주) 등 12개 회사 워크아웃 돌입.
* [[1999년]] 8월 30일 대우증권(주) 계열 분리, 채권단으로 이양.
* [[1999년]] 10월 김우중 회장, 중국 옌타이 대우자동차 부품공장 준공식 참석.
* [[1999년]] 11월 1일 대우 회장 및 대우그룹 사장단 퇴진.
* [[2000년]] 4월 15일 대규모기업집단 지정 제외.

한 때 세계 경영의 첨병으로 불렸던 대우의 몰락은 경제계에 큰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대우사태는 당대 큰 기업은 절대 흥한다는 '대마불사'의 신화를 깨고 차입경영을 일삼는 부실기업을 과감하게 퇴출시킨 사례로 건실한 기업풍토 조성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이 있는 반면, 대우가 밝혀지지 않은 요인(정치적 문제 또는 국제적 외압)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여론도 일부 존재하고 있어 지금도 눈길을 끈다.

== 구 대우그룹 계열사 ==
현재 대우의 계열사들은 그룹 해체 후 자립 혹은 새로운 기업의 인수를 통해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그룹이 해체된 이후에도 포스코대우, 대우건설, 대우조선해양 등 몇몇 회사들은 여전히 대우의 이름을 유지하며 성공적으로 영업 중이다.

=== 자동차 사업 ===
대우가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자동차 사업은 [[1997년]] 신차 출시, [[1998년]] [[KG모빌리티|쌍용자동차]] 인수에 따른 사세 확장으로 대한민국 시장에서 호조를 거두었으나 부채 누적으로 인한 만성적인 적자로, 대우그룹 핵심 계열사들이 워크아웃에 돌입하면서 완전히 공중분해되고 말았다.

대우자동차(주)는 [[포드]], [[제너럴 모터스]](GM) 등 두 양사간의 해외 매각 의사를 타진하였으나 최종적으로 협상이 모두 결렬되었으며, 대우자동차(주)는 경영 정상화 실패로 인해 [[2000년]] [[11월 10일]]에 [[인천지방법원]]에 법정관리(정리절차) 개시 신청을 냈고, 노사가 극적으로 노사협의회 합의문에 합의한 후, 회사 측의 자구의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여, 법정관리 개시 결정이 내려졌다.

대우자동차는 GM 매각을 위한 구조조정 계획의 일환으로, 9992억 원의 자구계획을 마련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가 인력을 7300여 명 줄이고 재료비, 경상비, 투자비 등을 대폭 감축했으며, 부평공장 생산직 직원 1750명이 강제로 거리로 내몰리는 역대 최대 규모의 정리해고가 김대중 정부 출범 당시에 근로기준법 개정 이후, [[2001년]] 2월초에 단행되기도 했다.

미국 GM이 2001년 6월초에 대우차 인수 의향서를 제출하여, 이듬해인 [[2002년]] [[10월 28일]]에 GM대우(현 [[한국지엠]])라는 외국계 기업으로 새롭게 출범했고, 대한민국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확대에 실패하여 고전을 계속하였던 GM대우는 글로벌 GM의 전략적 요충지로 키우기 위해서 [[2011년 1월]] [[쉐보레]] 브랜드로의 흡수 통합을 선언하였으며, [[2011년]] [[한국GM]](주)가 새롭게 출범하였다.

GM이 인수하지 않은 버스부문, 상용차부문, 부평공장은 [[대우버스]](주), [[타타대우상용차|대우상용차]](주), 대우인천자동차(주)로 분할, 매각되었다.

대우자동차(주)의 버스부문인 [[대우버스]](주)는 [[영안모자]]에 매각되었고, 트럭을 생산하는 상용차 부문은 [[인도]] 최대의 재벌인 [[타타]](TATA)에 매각되어 [[타타대우상용차]](주)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대우그룹 시절 대우자동차와의 합병을 계획하였던 [[KG모빌리티|쌍용자동차]](주)는 대우그룹의 구조조정 당시 대우차와의 분리 매각이 결정되면서 [[2000년 4월]] 대우 계열에서 정식으로 분리되었다. 후에 쌍용자동차(주)는 [[2005년]] [[중국]] 국영자동차회사인 [[상하이자동차]] 그룹에 인수되어, 미국발 금융 위기로 인한 판매 부진이 계속 거듭되면서 [[2009년]] 쌍용자동차(주)의 경영권을 포기하고 한국 시장에 철수하였다. [[2009년]] 쌍용자동차(주)는 법정관리 체제에 들어갔으며, 구조조정에 따른 대규모 정리해고 사태로 노사간의 첨예한 대립까지 위태로울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다가 [[2010년]] 말 인도의 [[마힌드라]] 자동차에 인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 건설, 무역 ===
[[1999년]] 워크아웃으로 (주)대우지스틱스가 먼저 분사되었으며, [[2000년 12월]] 모기업 (주)[[포스코인터내셔널|대우]]가 3개사로 재탄생한다. 청산을 위한 (주)대우 존속법인과 무역부문의 (주)[[포스코인터내셔널|대우인터내셔널]], 건설부문의 (주)[[대우건설]]로 나뉜다.

(주)대우인터내셔널은 대우의 모태사업인 무역은 물론 백화점 등 사업도 하고 있다. [[2010년]] [[포스코]]에 인수되었고, 지금의 [[포스코인터내셔널|포스코대우]]로 재출범한다. 백화점 사업은 2014년 [[롯데쇼핑]](주)에서 인수하여 롯데백화점 마산점이 되었다.

(주)[[대우건설]]은 워크아웃을 단기에 졸업했으며 [[2006년 12월]]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인수되었다. 그러나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무리한 인수합병으로 인한 후유증에 세계 금융위기까지 겪으며 극심한 자금난을 겪자, 2010년 (주)대우건설에 대한 경영권을 포기하였고, [[2011년 1월]]에 금호아시아나 계열에서 정식으로 분리되었다. 현재 최대주주는 [[한국산업은행]]이다.

대우그룹의 또다른 건설회사였던 [[경남기업]](주)는 [[성완종]]이 이끄는 충남지역 건설사인 대아건설(주)에 인수되었다가 [[2004년]]에 대아건설(주)을 합병하면서 국내 10위권의 대형 건설사로 성장가도를 달린다. [[2009년]] 대한민국 건설사들의 잇따른 경영난으로 워크아웃을 재차 겪지만, 실적 개선 등에 힘입어 [[2011년 5월]] 워크아웃을 졸업하는데 성공한다. [[2015년]] 하지만 건설업계 불황이 장기화되고 기업의 오너(Owner)인 성완종이 자원외교비리수사에 연루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2015년 4월]] 마침내 [[경남기업]]은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만다. [[2017년]] [[sm그룹]]이 인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 중공업, 조선 ===
[[2000년]] [[대우중공업]](주)도 대우종합기계(주), 대우조선공업(주) 그리고 대우중공업(주) 잔존법인으로 분할되었다.

주력부문이었던 중장비 및 군수물자 생산을 담당하는 대우종합기계(주)는 [[2005년]]에 [[두산]] 계열로 편입, [[두산인프라코어]](주)로 재탄생하였다.

대우중공업의 조선해양부문은 대우조선공업 주식회사로 분사되었다가 곧 [[대우조선해양]]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한다. 2000년대 조선업계의 호황으로 대우의 계열사 중 가장 먼저 워크아웃을 졸업한 회사로도 주목받았고, 조선업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을 기반으로 건설, 상조사업 등에도 진출하며 자체적으로 조선사업 중심의 기업집단을 일구었다. 2000년 출범한 이래 수년간 경쟁업체인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과 함께 선박 수주잔량으로 세계 수위권을 다투왔지만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변곡점으로 대우조선해양은 2010년대 중반에 이르러 조선업황의 악화로 존폐의 기로에 놓여있는 상태이다.

대우중공업이 3개사로 분할되기 전인 [[1999년 7월]]에는 철도차량 생산부문이 경쟁사인 [[현대정공]](주), [[한진중공업]](주)와 함께 현물출자 형식으로 단일법인을 설립함으로써 국내 유일의 철차제작업체인 [[한국철도차량]]주식회사가 탄생하였다. 하지만 대우종합기계(주)가 승계받은 한국철도차량(주)의 지분은 경영정상화를 위해 [[2001년]]에 [[현대자동차그룹]]에 전량 매각됨으로써 주식회사 [[로템]](現 현대로템(주))으로 재출범한다.

대우중공업(주)의 항공사업부문도 [[1999년 8월]]에 [[삼성항공산업]](주), 현대우주항공(주)과 통합하여 새로이 [[한국항공우주산업]](주)로 출범하였지만, [[대우중공업]]의 지분을 인계받은 [[두산그룹]]의 DIP홀딩스에서는 2016년 [[한국항공우주산업]]의 보유지분을 전부 정리하였다.

=== 전자, 통신 ===
한때 세계 각국의 생산기지를 설치하며 세계적인 전자기업을 표방해 오던 대우전자(주)는 [[1999년]] 워크아웃 대상기업으로 지정되었고, [[2000년 4월]] 대우전자 중심의 기업집단을 구축하고 비수익 사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피아노 사업을 담당하는 벨로체, 컴퓨터 사업을 담당하는 [[루컴즈전자|대우루컴즈]], 가스보일러 사업을 담당하는 대우가스보일러 등이 독립된 업체로 분리되었다. [[2002년]] [[위니아전자|대우전자]]의 TV, 백색가전 등 주력 핵심사업부문이 대부분 [[위니아전자|대우모터공업]] 주식회사로 인계되어 이듬해인 [[2003년]]에 (주)[[대우일렉트로닉스]]로 재출범하였다. 이후에도 [[2008년]] 대우디스플레이 등이 분리되어 [[위니아전자|대우일렉트로닉스]]는 사실상 백색가전 전문업체가 되었다. 2013년 동부그룹이 인수함으로써 [[위니아전자|동부대우전자]] 주식회사로 이름이 바뀌다가 2018년 대유그룹이 인수하여 주식회사 대우전자로 부활하였다. [[2019년]] 주식회사 위니아대우 로 이름이 바꿔다가 [[2020년]] 주식회사 위니아전자로 이름이 바꿨다.

[[대우전자부품]]도 1999년 대우그룹 구조조정으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대상으로 지정되었다. 2000년 4월 대우그룹에서 분리되었다.2008년 회생절차개시 결정을 받았고, 2010년 2월 회생절차 종결 결정을 받았다. 그 후 [[현대자동차]]의 1차 협력그룹인 [[아진그룹]]이 인수했다.

대우통신(주)은 정상화를 위해 통신 관련사업부문을 매각하여 컴퓨터사업은 대우컴퓨터에 양도하였으며 그밖에 사업부문은 대우텔레텍, 대우글로벌 그리고 1999년 합병된 대우정밀공업 계열의 업체들은 대우정밀, 대우파워트레인, 대우프라스틱 등으로 분사되었다.

대우정밀(주)은 에스엔티(S&T그룹)에 인수되어 현재 [[S&T모티브]]로 운영 중이며 대우파워트레인(주)은 GM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컴퍼니(지금의 한국지엠주식회사)에 매각되었고, 대우프라스틱(주)는 삼라마이다스그룹(SM그룹)으로 매각된 후 대우라이프(주)로 바뀌었다가 계열사인 남선알미늄(주)에 합병되었다.

전자 계열사였던 오리온전기(주), 한국전기초자(주), 광전자(주) 등도 워크아웃을 맞아 자취를 감추거나 독자생존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 금융 ===
대우증권(주)는 [[1999년]] 대우가 해체되기 전 채권단이 인수하였으며 후에 대주주가 [[한국산업은행]]으로 변경된다. [[2009년]]에는 한국산업은행의 민영화에 따라 새로이 출범한 [[KDB금융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2015년]]에는 [[미래에셋금융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2001년 8월]] (주)다이너스카드클럽코리아는 [[현대자동차]](주)에 매각되어 [[현대카드]](주)로 변경되었다.

대우캐피탈(주)는 아주그룹에 편입되어 아주캐피탈(주)로 바뀌었다.

=== 스포츠 ===
대우그룹에서 운영 중이던 [[부산 아이파크|부산 대우 로얄즈]]는 [[현대산업개발]]에 매각, [[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인천 대우 제우스]]는 [[신세기통신]]에 매각되고 인천 신세기 빅스로 변경하며 현재 [[부산 아이파크]]와 [[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 미디어 ===
케이블 채널 중에서 대우시네마네트워크는 [[오리온홀딩스|동양그룹]]에 매각되어 [[OCN (텔레비전 채널)|OCN]](현재 [[CJ그룹|CJ]] 산하)으로 변경되었다.

== 같이 보기 ==
=== 건설, 무역 ===
* (주)대우 무역 → [[포스코인터내셔널|포스코대우]] ([[포스코]]에 인수) → [[포스코인터내셔널]]
* (주)대우 건설 → [[대우건설]] (최대주주 [[한국산업은행]])
* (주)대우 백화점 → [[롯데백화점]] 마산점 ([[롯데백화점|롯데쇼핑]]에 인수)

=== 자동차 ===
* 대우자동차 → GM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 → [[한국지엠]] (2002년 [[제너럴 모터스]]에 인수)
* 대우자동차 버스 부문 → [[자일대우버스]] (2003년 [[영안모자]]에 인수)
* 대우자동차 상용차 부문 → [[타타대우상용차]] (2004년 [[타타]]에 인수)
* 쌍용자동차→[[KG모빌리티]] (1998년 [[대우자동차]]에서 인수, 2004년 [[상하이자동차]]에 인수, 2010년 [[마힌드라]]에 피인수, 2022년 [[KG그룹]]에 피인수)
* 대우자동차판매 자동차판매 부분 → [[대우자동차판매]] (2010년 [[영안모자]]에 인수)
* 대우자동차판매 건설 부문 → [[대우산업개발]] (2011년 중국 풍화(豊華)그룹에 인수)

=== 중공업 ===
* 대우중공업 종합기계 부문 → [[두산인프라코어]] (2005년 [[두산그룹]]에 인수)
* 대우중공업 조선해양 부문 → [[대우조선해양]] → [[한화오션]]
* 대우중공업 철도차량 부문 → [[현대로템]] (2001년 [[현대자동차그룹]]에 인수)

=== 전자 ===
* 대우전자 → [[위니아전자|동부대우전자]] → [[위니아전자|대우전자]] (2018년 [[대유그룹]]에 인수) → [[위니아전자|위니아대우]] → [[위니아전자]]
* 대우정밀공업 → [[S&T모티브]] (2006년 [[S&T그룹]]에 인수)

=== 금융 ===
* 대우증권 → [[미래에셋대우]] (2016년 [[미래에셋금융그룹]]에 인수)
* 다이너스클럽코리아 → [[현대카드]] (2001년 [[현대자동차그룹]]에 인수)
* 대우캐피탈 → [[아주캐피탈]] (2005년 [[아주그룹]]에 인수)

=== 기타 ===
* 대우엔지니어링 → [[포스코엔지니어링]] (1990년 계열 분리 → 2002년 포스코에 인수)
* 신성통상 (1984년 계열 분리 → 2002년 가나안에서 인수)
* 대창기업
* (주)고려 → SG고려 (구 고려피혁공업주식회사 → 2003년 (주)가로수닷컴에 인수)
* 세계물산 → SG위카스 → [[SG세계물산]] (2002년 SK글로벌에 인수 → 2005년 (주)가로수닷컴에 인수)
* 대우시네마네트워크 → (주)[[OCN (텔레비전 채널)|오리온시네마네트워크]] (1999년 [[동양그룹]]에 인수되어 별도법인인 [[온미디어]] 설립 → 2010년 CJ에 인수 → 2013년 [[CJ ENM]]에 흡수 합병)
* 부산 대우 로얄즈 → [[부산 아이파크]] (2000년 [[현대산업개발]]에 인수)
* 인천 대우 제우스 → 인천 신세기 빅스 (1999년 [[신세기통신]]에 인수)

== 외부 링크 ==
* [https://daewoosky.com/ 대우세계경영연구회]

== 각주 ==
<references/>

{{대우그룹}}

[[분류:대우그룹| ]]
[[분류:대한민국의 기업]]
[[분류:1967년 설립된 기업]]
[[분류:2000년 해체된 기업]]
[[분류:대한민국의 없어진 기업]]
[[분류:대한민국의 브랜드]]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회사 정보
| 이름 = 대우그룹
| 원어 = Daewoo Group
| 워드마크 = Daewoo logo (hangul).svg
| 형태 = 대기업집단(1989년~1999년)
| 창립 = 1967년 3월 22일 (대우실업 주식회사)
| 창립자 = [[김우중]](대표이사 회장)
| 해체 = 1999년 11월 1일
| 국가 = {{KOR}}
| 장소 = 대우센터빌딩(1977년~1999년)
| 사업 지역 =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 인물 = 김우중(대표이사 회장)
| 산업 = 자동차, 전자, 조선, 건설
| 주요사업부문 = 자동차, 전자, 조선, 건설, 무역, 금융
| 자본금 = 5,000,000원(1967년 기준)
| 매출액 = 분식회계로 정확히 추산불가
| 매출 = 78조원(1999년 기준)
| 영업이익 = -4조원(1999년 기준)
| 자산 총액 = 자본 약 15조 부채 89조
| 주주 = 김우중
| 모기업 = (주)[[포스코인터내셔널|대우]]
| 계열사 = [[대우전자]], [[대우건설]], [[한국GM|대우자동차]], [[대우조선]], [[대우증권]], [[쌍용자동차]] 外
}}

'''대우그룹'''(大宇─, Daewoo Group)은 [[1967년]] 창립한 [[포스코인터내셔널|대우실업]]을 모태로 [[1980년대]]부터 [[1990년대]] 말까지 존재한 [[대한민국]]의 대규모 기업집단이었다.<ref>[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1997120912000601 대우그룹, 쌍용自인수로 재계순위‘3위’]《문화일보》1997년 12월 9일 김병직 기자</ref> 대도섬유의 대(大)와 김우중의 우(宇)를 따서 만들었다. 섬유·무역·건설·조선·중장비·자동차·전자·통신·관광·금융 등 여러 사업부문을 두었으며, [[1993년]] 세계경영 전략 채택 이후 강력한 외형확장으로 사세를 넓혀갔고 [[1998년]]에는 [[현대그룹]]에 이어 재계 2위에 올랐으나 외환위기 이후, 자체 구조조정 실패와 [[1999년]] [[삼성그룹|삼성]]과의 전자-자동차 빅딜 실패로 [[1999년 10월]]부터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그룹 해체를 맞았다.

== 기업연혁 ==
[[파일:Seoul Square.jpg|섬네일|오른쪽|과거 대우그룹의 본사였던 서울스퀘어.]]
대우는 1967년 소규모 사업체로 창업하였으나, 1970년대 경제성장 및 수출호조에 따른 비약적인 발전, 그리고 정부 주도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에 힘입어 단기간에 대한민국 최대기업으로서 성장을 이루게 된다. 대우는 1980년대 후반부터 대한민국 외 국가로 눈을 돌려 동유럽 및 신흥시장 개척을 추진해 왔고, 1993년 세계경영에 나서면서 사세확장을 시도하였다. 이후 외환위기 속에서도 1997년 법정관리에 들어간 쌍용자동차를 인수하였다. 98년 상반기에는 현대그룹에 이은 (자산총액기준) 재계 2위에 올랐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출범이후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자체적 구조조정 실패와 무리한 차입금이 발목을 잡았고 1998년 10월, 대우그룹이 신청한 기업어음(CP)발행이 중단되면서 그룹 위기가 찾아왔다. 1999년이 되면서 삼성그룹과의 대우전자-삼성자동차의 빅딜협상에 들어갔으나 동년 7월, 협상이 결렬되었다. 이후 김우중 회장은 자동차를 중심으로 그룹 구조조정에 뒤늦게 들어갔으나 대우그룹 채권단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1999년 10월, 그룹 해체 수순을 밟았다.

=== 성장 ===
1967년 대우실업 창립 이래, 부산에 공장을 설치하여 1970년대 와이셔츠 등의 봉제품 및 섬유제품의 수출호조와 더불어 경제고도성장으로 급속한 발전을 이루어 신흥 사업체로 주목받았고, 더욱이 정부가 주도하던 경제 정책에 발맞춰 금융, 전자, 중공업, 자동차 사업에도 뛰어들면서 대우 그룹을 형성하게 된다.

* [[1967년]] [[3월 22일]] 모태인 대우실업(주)(대우가족) 창립. (섬유류 봉제품 생산, 수출 주도)
* [[1969년]] 8월 대한민국 기업 해외지사 1호 시드니에 개설.
* [[1971년]] 9월 (주)내쇼날의류 설립.
* [[1972년]] 9월 고려피혁(주) 인수.
* [[1973년]] 쌍미섬유공업(주) 인수. 대우증권의 전신 동양증권(주) 인수. 대우건설(주) 설립.
* [[1975년]] 2월 대우빌딩 착공.
* [[1975년]] 5월 대우실업(주), 종합무역상사 지정.
* [[1976년]] 2월 한국기계공업(주) 인수. 10월 해외건설업면허 취득. 대우중공업(주) 출범.
* [[1977년]] 대우센터 빌딩 준공. 8월 제철화학(주) 경영권 인수.
* [[1978년]] 7월 산업은행으로부터 새한자동차(주) 지분 인수. 대한조선공사 옥포조선소 인수 후 9월 대우조선공업(주) 설립.

=== 도약기 ===
대우 그룹은 (주)대우의 출범과 새한자동차 경영권 장악, 가전사업 진출을 잇달아 성사시키며 현대(現代), 삼성(三星), 럭키금성(LG)과 함께 대한민국 4대 기업군으로 성장한다. 국내 업체들과의 출혈 경쟁에서 기술력과 수익성의 한계를 느낀 대우는 세계로 눈을 돌려 냉전체제의 완화가 도래한 시점에 동유럽 및 공산권 국가에 현지법인을 설립하면서 신시장 개척을 준비하였다.

* [[1981년]] 10월 옥포조선소 준공. 수출의날 15억불탑 수상. 대우실업(주) 및 대우개발(주) 합병 결의.
* [[1982년]] 모기업 (주)대우 출범. 수출의날 20억불탑 수상.
* [[1983년]] 대우자동차(주) 출범. 대우전자(주)에서 대한전선(주)의 가전부문을 흡수. 대우통신(주) 설립.
* [[1984년]] 경남기업(주) 경영 참여. (주)대우경제연구소 설립. 10월 대우자동차부품(주) 설립. 대한민국 최초 VTR 수출.
* [[1986년]] 대우증권 런던사무소 개설. 9월 경남기업(주) 계열 편입.
* [[1987년]] 미얀마 현지 철도차량공장 준공.
* [[1988년]] (주)대우 동베를린지사 설치. 대우투자자문(주) 설립. 프랑스 롱위 전자레인지 공장 건립. 대우증권 홍콩사무소 개설.
* [[1989년]] 제철화학 외 3개사 매각. 대우정보시스템 설립. 대우기전공업㈜ 출범. MHB-Daewoo Bank 설립.
* [[1990년]] (주)대우 모스크바지사 설치. 대우중공업(주) 유럽현지법인 설립. 멕시코 컬러TV 공장 건립.
* [[1991년]] (주)대우 북경지사 설치. 대우증권(주) 유럽현지법인 설립, 취리히사무소 개설.
* [[1992년]] 4월 佛 컬러TV 공장 건립. 佛 컴퓨터 판매법인 설립. 대우증권 美 현지법인 설립. 대우차-GM 제휴관계 청산.

=== 팽창기 ===
(주)대우가 구축한 세계무역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대우자동차(주), 대우중공업(주), 대우전자(주)가 국제적으로 널리 진출하는 '세계경영'은 1993년 '세계경영 우리기술' 슬로건 선포를 시점으로 본격화되었다. 대우가 당시 내세웠던 세계경영은 선진업체가 진출하지 않은 옛 공산권 국가와 앞으로 발전가능성이 무한한 개발도상국 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것으로, 현지법인 설립과 인수합병을 통해 단기간에 정착하여 사세확장을 꾀하는 형태이다. 실제로 대우가 진출을 시도한 개발도상국가의 정부에서는 자국의 경제활성화 목적에서 대우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기에, 대우의 사업확장은 더욱 쉽게 이뤄질 수 있었다. 대한민국 시장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대우자동차(주)의 경우는 대한민국 외 국가에서 판매하는 수량이 대한민국에서 판매하는 수량을 앞지르는 현상을 가져오기도 했다. 이같은 대우의 급속한 성장은 대한민국 경제계와 대한민국 외 국가 경제에 큰 반향을 가져다 주었다.

* [[1993년]] 1월 대우자판 설립.
* [[1993년]] 2월 베트남 합작은행 출자.
* [[1993년]] 3월 세계경영 선포.
* [[1993년]] 5월 우즈벡 가전 공장 설립.
* [[1993년]] 7월 대우중공업(주) 미국현지법인 DEC 설립.
* [[1993년]] 8월 폴란드 TV 공장 설립.
* [[1993년]] 9월 세계최초 공기방울 세탁기 개발.
* [[1994년]] 2월 대우할부금융 설립.
* [[1994년]] 3월 인도 합작증권사 CRB-Daewoo Securities Ltd 출자.
* [[1994년]] 5월 대우자동차(주) 영국 워딩 자동차 기술연구소 건립.
* [[1994년]] 6월 대우중공업 영국현지법인 유로 대우 UK 설립.
* [[1994년]] 10월 대우중공업(주) 대우조선공업 흡수 합병. 중국현지법인 대우중공업연대유한공사 설립.
* [[1994년]] 11월 루마니아 자동차합작공장 DAEWOO-RODAE 설립. 대우중공업(주) 러시아 기술연구소 DISK 설립.
* [[1995년]] 1월 대우중공업(주) 독일 현지법인 ECO 설립. 대우전자(주) 말레이시아 세탁기 공장 설립. 대우뱅크 출범.
* [[1995년]] 2월 대우중공업(주) 일본 현지법인 대우건기 설립.
* [[1995년]] 3월 체코 최대 국영상용차업체 AVIA사 인수. 대우증권(주) 홍콩현지법인 설립.
* [[1995년]] 4월 대우증권(주) 상해사무소 개설.
* [[1995년]] 5월 대한민국 기업 최초, 대북 협력사업 정부승인 획득.
* [[1995년]] 6월 다이너스카드사 인수.
* [[1995년]] 7월 동우개발(주)의 사명을 (주)대우개발로 변경.
* [[1995년]] 9월 베트남 하노이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우즈벡 공화국에 교환기합작공장 알로카대우 설립.
* [[1995년]] 10월 중국천진 팩스밀리 합작공장 설립.
* [[1995년]] 11월 베트남 최초 타포린 합작생산 공장 준공. 폴란드 최대 자동차기업 [[Fabryka Samochodów Osobowych|FSO]] 인수, DAEWOO-FSO 출범.
* [[1996년]] 3월 대우증권(주) 싱가폴사무소 개설. 루마니아 DAEWOO-RODAE 공장 준공.
* [[1996년]] 5월 남북경협 최초회사 민족산업총회사 남포에 설립. 앙골라 대규모 유전발견.
* [[1996년]] 6월 프랑스 롱위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인도뉴델리 첨단 소프트웨어 연구개발센타 설립. 페루육상 유전인수 입찰수주.
* [[1996년]] 7월 한진투자증권 합작 법인 서울투신운용(주) 설립. 우크라이나 대용량교환기 합작공장 드니프로-대우 설립.
* [[1996년]] 10월 대우증권(주) 동경지점 개점. UZ-Daewoo 자동차 공장 준공. 베트남 비담코 자동차 공장 준공.
* [[1996년]] 11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중국 광케이블 합작회사 우시-대우 설립. 루마니아 합작은행 설립.
* [[1997년]] 3월 우즈베키스탄 대우은행 (Uz-Daewoo Bank) 설립.
* [[1997년]] 4월 인도 종합 가전공장 설립. 군산 종합 자동차공장 준공.
* [[1997년]] 5월 인도 CRB증권 대우파이낸스로 상호 변경. 대우선물(주) 설립.
* [[1997년]] 6월 대우증권(주) 싱가포르 현지법인 설립.
* [[1997년]] 7월 대우리스 체코에 설립.
* [[1997년]] 9월 대우자동차(주) 우크라이나 합작공장 설립계약 체결.
* [[1997년]] 12월 한국전기초자(주) 인수.

=== 해체 ===
대우는 세계경영으로 철저히 현지화를 추구함으로써 1993년 당시 150여개에 불과했던 대한민국 외 국가 현지법인을 1998년 11월에는 396개로 끌어올리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대우는 1997년 다가온 경제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물로 나온 쌍용자동차(주)를 인수하여 소형차에서 대형차는 물론, 버스와 트럭, 사륜구동 SUV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차량을 생산하는 풀라인업을 완성시키고 그 밖에도 해외 현지공장 인수 및 확장을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대우는 1998년 [[삼성그룹|삼성]](三星)을 제치고 재계서열 2위까지 뛰어오른다.
* [[1998년]] 3월 30일 대우자동차(주), 쌍용자동차(주) 인수.
* [[1998년]] 5월 스페인 냉장고 공장 설립.
* [[1998년]] 6월 우크라이나 자동차 법인 AUTOZAZ-DAEWOO 공장 본격 가동.
* [[1998년]] 7월 미국 Fortune 선정 매출 500대 기업 중 세계 18위의 기업으로 도약.
* [[1998년]] 10월 대우중공업(주) 이집트공장 준공.
* [[1998년]] 11월 무역의 날 150억불 수출의 탑 수상.

그러나 경기침체의 장기화와 세계 시장의 위축으로 대우의 입지는 크게 흔들렸고, 개발도상국가 위주로 판매망을 확대해온 대우자동차의 부진이 거듭되었다. 경영여건이 안정되지 못한 상황에서 추진한 쌍용자동차의 인수도 큰 실익을 거두지 못하였고, 외형확대의 초점을 맞추어 경영해오다보니 당시 정부가 요구했던 구조조정에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오다보니 구조조정의 실시가 경쟁 그룹에 비해 늦은 편이었다. 정부 주도의 산업체계 개편에 따라 늦게나마 추진한 대우전자-삼성자동차 빅딜협상은 양사간 입장차이로 끝내 결렬되었으며, 1999년 여름에 접어들면서 그룹의 운명을 좌우할 대우와 GM과의 협상(대우차와의 경영권 문제)마저도 실패한 대우는 급속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자금난이 가중되던 대우는 알짜자산인 힐튼호텔 매각 등을 성사시키기도 하지만 1999년 3월에는 이미 부채 비율을 무려 400%를 훨씬 넘은 상태여서 수습이 어려운 지경이었다. 7월 대우는 초고강도 구조조정안을 발표하였으나 채권단은 이를 반려한다. 결국 대우는 1999년 8월 16일 채권단의 재무구조개선수정약정 체결과 더불어, 26일 채권단 관리하에 워크아웃을 맞이함으로써 그룹 해체의 길로 접어든다. 지난 1967년 창업 이래 32년간 대한민국에 경쟁성장의 견인차로 역할을 해오던 기업 중 하나로서, 1993년 세계경영을 선포한지 6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 [[1998년]] 11월 대우그룹 1차 구조조정안 발표.
* [[1998년]] 12월 대우전자(주) 및 삼성자동차(주) 빅딜 발표. (사업맞교환)
* [[1999년]] 4월 19일 대우 2차 구조조정안 발표. (대우 조선, 상용차, 힐튼호텔 등 매각)
* [[1999년]] 6월 30일 삼성자동차 워크아웃 돌입.
* [[1999년]] 7월 16일 대우그룹 구조조정안 발표. (자동차 전문그룹으로의 재탄생)
* [[1999년]] 8월 3일 제일은행 등 채권단 구조조정안 반려.
* [[1999년]] 8월 16일 대우 채권단, 재무구조개선수정약정 체결.
* [[1999년]] 8월 26일 (주)대우, 대우중공업(주), 대우자동차(주), 대우전자(주) 등 12개 회사 워크아웃 돌입.
* [[1999년]] 8월 30일 대우증권(주) 계열 분리, 채권단으로 이양.
* [[1999년]] 10월 김우중 회장, 중국 옌타이 대우자동차 부품공장 준공식 참석.
* [[1999년]] 11월 1일 대우 회장 및 대우그룹 사장단 퇴진.
* [[2000년]] 4월 15일 대규모기업집단 지정 제외.

한 때 세계 경영의 첨병으로 불렸던 대우의 몰락은 경제계에 큰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대우사태는 당대 큰 기업은 절대 흥한다는 '대마불사'의 신화를 깨고 차입경영을 일삼는 부실기업을 과감하게 퇴출시킨 사례로 건실한 기업풍토 조성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이 있는 반면, 대우가 밝혀지지 않은 요인(정치적 문제 또는 국제적 외압)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여론도 일부 존재하고 있어 지금도 눈길을 끈다.

== 구 대우그룹 계열사 ==
현재 대우의 계열사들은 그룹 해체 후 자립 혹은 새로운 기업의 인수를 통해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그룹이 해체된 이후에도 포스코대우, 대우건설, 대우조선해양 등 몇몇 회사들은 여전히 대우의 이름을 유지하며 성공적으로 영업 중이다.

=== 자동차 사업 ===
대우가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자동차 사업은 [[1997년]] 신차 출시, [[1998년]] [[KG모빌리티|쌍용자동차]] 인수에 따른 사세 확장으로 대한민국 시장에서 호조를 거두었으나 부채 누적으로 인한 만성적인 적자로, 대우그룹 핵심 계열사들이 워크아웃에 돌입하면서 완전히 공중분해되고 말았다.

대우자동차(주)는 [[포드]], [[제너럴 모터스]](GM) 등 두 양사간의 해외 매각 의사를 타진하였으나 최종적으로 협상이 모두 결렬되었으며, 대우자동차(주)는 경영 정상화 실패로 인해 [[2000년]] [[11월 10일]]에 [[인천지방법원]]에 법정관리(정리절차) 개시 신청을 냈고, 노사가 극적으로 노사협의회 합의문에 합의한 후, 회사 측의 자구의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여, 법정관리 개시 결정이 내려졌다.

대우자동차는 GM 매각을 위한 구조조정 계획의 일환으로, 9992억 원의 자구계획을 마련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가 인력을 7300여 명 줄이고 재료비, 경상비, 투자비 등을 대폭 감축했으며, 부평공장 생산직 직원 1750명이 강제로 거리로 내몰리는 역대 최대 규모의 정리해고가 김대중 정부 출범 당시에 근로기준법 개정 이후, [[2001년]] 2월초에 단행되기도 했다.

미국 GM이 2001년 6월초에 대우차 인수 의향서를 제출하여, 이듬해인 [[2002년]] [[10월 28일]]에 GM대우(현 [[한국지엠]])라는 외국계 기업으로 새롭게 출범했고, 대한민국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확대에 실패하여 고전을 계속하였던 GM대우는 글로벌 GM의 전략적 요충지로 키우기 위해서 [[2011년 1월]] [[쉐보레]] 브랜드로의 흡수 통합을 선언하였으며, [[2011년]] [[한국GM]](주)가 새롭게 출범하였다.

GM이 인수하지 않은 버스부문, 상용차부문, 부평공장은 [[대우버스]](주), [[타타대우상용차|대우상용차]](주), 대우인천자동차(주)로 분할, 매각되었다.

대우자동차(주)의 버스부문인 [[대우버스]](주)는 [[영안모자]]에 매각되었고, 트럭을 생산하는 상용차 부문은 [[인도]] 최대의 재벌인 [[타타]](TATA)에 매각되어 [[타타대우상용차]](주)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대우그룹 시절 대우자동차와의 합병을 계획하였던 [[KG모빌리티|쌍용자동차]](주)는 대우그룹의 구조조정 당시 대우차와의 분리 매각이 결정되면서 [[2000년 4월]] 대우 계열에서 정식으로 분리되었다. 후에 쌍용자동차(주)는 [[2005년]] [[중국]] 국영자동차회사인 [[상하이자동차]] 그룹에 인수되어, 미국발 금융 위기로 인한 판매 부진이 계속 거듭되면서 [[2009년]] 쌍용자동차(주)의 경영권을 포기하고 한국 시장에 철수하였다. [[2009년]] 쌍용자동차(주)는 법정관리 체제에 들어갔으며, 구조조정에 따른 대규모 정리해고 사태로 노사간의 첨예한 대립까지 위태로울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다가 [[2010년]] 말 인도의 [[마힌드라]] 자동차에 인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 건설, 무역 ===
[[1999년]] 워크아웃으로 (주)대우지스틱스가 먼저 분사되었으며, [[2000년 12월]] 모기업 (주)[[포스코인터내셔널|대우]]가 3개사로 재탄생한다. 청산을 위한 (주)대우 존속법인과 무역부문의 (주)[[포스코인터내셔널|대우인터내셔널]], 건설부문의 (주)[[대우건설]]로 나뉜다.

(주)대우인터내셔널은 대우의 모태사업인 무역은 물론 백화점 등 사업도 하고 있다. [[2010년]] [[포스코]]에 인수되었고, 지금의 [[포스코인터내셔널|포스코대우]]로 재출범한다. 백화점 사업은 2014년 [[롯데쇼핑]](주)에서 인수하여 롯데백화점 마산점이 되었다.

(주)[[대우건설]]은 워크아웃을 단기에 졸업했으며 [[2006년 12월]]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인수되었다. 그러나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무리한 인수합병으로 인한 후유증에 세계 금융위기까지 겪으며 극심한 자금난을 겪자, 2010년 (주)대우건설에 대한 경영권을 포기하였고, [[2011년 1월]]에 금호아시아나 계열에서 정식으로 분리되었다. 현재 최대주주는 [[한국산업은행]]이다.

대우그룹의 또다른 건설회사였던 [[경남기업]](주)는 [[성완종]]이 이끄는 충남지역 건설사인 대아건설(주)에 인수되었다가 [[2004년]]에 대아건설(주)을 합병하면서 국내 10위권의 대형 건설사로 성장가도를 달린다. [[2009년]] 대한민국 건설사들의 잇따른 경영난으로 워크아웃을 재차 겪지만, 실적 개선 등에 힘입어 [[2011년 5월]] 워크아웃을 졸업하는데 성공한다. [[2015년]] 하지만 건설업계 불황이 장기화되고 기업의 오너(Owner)인 성완종이 자원외교비리수사에 연루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2015년 4월]] 마침내 [[경남기업]]은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만다. [[2017년]] [[sm그룹]]이 인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 중공업, 조선 ===
[[2000년]] [[대우중공업]](주)도 대우종합기계(주), 대우조선공업(주) 그리고 대우중공업(주) 잔존법인으로 분할되었다.

주력부문이었던 중장비 및 군수물자 생산을 담당하는 대우종합기계(주)는 [[2005년]]에 [[두산]] 계열로 편입, [[두산인프라코어]](주)로 재탄생하였다.

대우중공업의 조선해양부문은 대우조선공업 주식회사로 분사되었다가 곧 [[대우조선해양]]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한다. 2000년대 조선업계의 호황으로 대우의 계열사 중 가장 먼저 워크아웃을 졸업한 회사로도 주목받았고, 조선업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을 기반으로 건설, 상조사업 등에도 진출하며 자체적으로 조선사업 중심의 기업집단을 일구었다. 2000년 출범한 이래 수년간 경쟁업체인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과 함께 선박 수주잔량으로 세계 수위권을 다투왔지만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변곡점으로 대우조선해양은 2010년대 중반에 이르러 조선업황의 악화로 존폐의 기로에 놓여있는 상태이다.

대우중공업이 3개사로 분할되기 전인 [[1999년 7월]]에는 철도차량 생산부문이 경쟁사인 [[현대정공]](주), [[한진중공업]](주)와 함께 현물출자 형식으로 단일법인을 설립함으로써 국내 유일의 철차제작업체인 [[한국철도차량]]주식회사가 탄생하였다. 하지만 대우종합기계(주)가 승계받은 한국철도차량(주)의 지분은 경영정상화를 위해 [[2001년]]에 [[현대자동차그룹]]에 전량 매각됨으로써 주식회사 [[로템]](現 현대로템(주))으로 재출범한다.

대우중공업(주)의 항공사업부문도 [[1999년 8월]]에 [[삼성항공산업]](주), 현대우주항공(주)과 통합하여 새로이 [[한국항공우주산업]](주)로 출범하였지만, [[대우중공업]]의 지분을 인계받은 [[두산그룹]]의 DIP홀딩스에서는 2016년 [[한국항공우주산업]]의 보유지분을 전부 정리하였다.

=== 전자, 통신 ===
한때 세계 각국의 생산기지를 설치하며 세계적인 전자기업을 표방해 오던 대우전자(주)는 [[1999년]] 워크아웃 대상기업으로 지정되었고, [[2000년 4월]] 대우전자 중심의 기업집단을 구축하고 비수익 사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피아노 사업을 담당하는 벨로체, 컴퓨터 사업을 담당하는 [[루컴즈전자|대우루컴즈]], 가스보일러 사업을 담당하는 대우가스보일러 등이 독립된 업체로 분리되었다. [[2002년]] [[위니아전자|대우전자]]의 TV, 백색가전 등 주력 핵심사업부문이 대부분 [[위니아전자|대우모터공업]] 주식회사로 인계되어 이듬해인 [[2003년]]에 (주)[[대우일렉트로닉스]]로 재출범하였다. 이후에도 [[2008년]] 대우디스플레이 등이 분리되어 [[위니아전자|대우일렉트로닉스]]는 사실상 백색가전 전문업체가 되었다. 2013년 동부그룹이 인수함으로써 [[위니아전자|동부대우전자]] 주식회사로 이름이 바뀌다가 2018년 대유그룹이 인수하여 주식회사 대우전자로 부활하였다. [[2019년]] 주식회사 위니아대우 로 이름이 바꿔다가 [[2020년]] 주식회사 위니아전자로 이름이 바꿨다.

[[대우전자부품]]도 1999년 대우그룹 구조조정으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대상으로 지정되었다. 2000년 4월 대우그룹에서 분리되었다.2008년 회생절차개시 결정을 받았고, 2010년 2월 회생절차 종결 결정을 받았다. 그 후 [[현대자동차]]의 1차 협력그룹인 [[아진그룹]]이 인수했다.

대우통신(주)은 정상화를 위해 통신 관련사업부문을 매각하여 컴퓨터사업은 대우컴퓨터에 양도하였으며 그밖에 사업부문은 대우텔레텍, 대우글로벌 그리고 1999년 합병된 대우정밀공업 계열의 업체들은 대우정밀, 대우파워트레인, 대우프라스틱 등으로 분사되었다.

대우정밀(주)은 에스엔티(S&T그룹)에 인수되어 현재 [[S&T모티브]]로 운영 중이며 대우파워트레인(주)은 GM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컴퍼니(지금의 한국지엠주식회사)에 매각되었고, 대우프라스틱(주)는 삼라마이다스그룹(SM그룹)으로 매각된 후 대우라이프(주)로 바뀌었다가 계열사인 남선알미늄(주)에 합병되었다.

전자 계열사였던 오리온전기(주), 한국전기초자(주), 광전자(주) 등도 워크아웃을 맞아 자취를 감추거나 독자생존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 금융 ===
대우증권(주)는 [[1999년]] 대우가 해체되기 전 채권단이 인수하였으며 후에 대주주가 [[한국산업은행]]으로 변경된다. [[2009년]]에는 한국산업은행의 민영화에 따라 새로이 출범한 [[KDB금융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2015년]]에는 [[미래에셋금융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2001년 8월]] (주)다이너스카드클럽코리아는 [[현대자동차]](주)에 매각되어 [[현대카드]](주)로 변경되었다.

대우캐피탈(주)는 아주그룹에 편입되어 아주캐피탈(주)로 바뀌었다.

=== 스포츠 ===
대우그룹에서 운영 중이던 [[부산 아이파크|부산 대우 로얄즈]]는 [[현대산업개발]]에 매각, [[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인천 대우 제우스]]는 [[신세기통신]]에 매각되고 인천 신세기 빅스로 변경하며 현재 [[부산 아이파크]]와 [[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 미디어 ===
케이블 채널 중에서 대우시네마네트워크는 [[오리온홀딩스|동양그룹]]에 매각되어 [[OCN (텔레비전 채널)|OCN]](현재 [[CJ그룹|CJ]] 산하)으로 변경되었다.

== 같이 보기 ==
=== 건설, 무역 ===
* (주)대우 무역 → [[포스코인터내셔널|포스코대우]] ([[포스코]]에 인수) → [[포스코인터내셔널]]
* (주)대우 건설 → [[대우건설]] (최대주주 [[한국산업은행]])
* (주)대우 백화점 → [[롯데백화점]] 마산점 ([[롯데백화점|롯데쇼핑]]에 인수)

=== 자동차 ===
* 대우자동차 → GM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 → [[한국지엠]] (2002년 [[제너럴 모터스]]에 인수)
* 대우자동차 버스 부문 → [[자일대우버스]] (2003년 [[영안모자]]에 인수)
* 대우자동차 상용차 부문 → [[타타대우상용차]] (2004년 [[타타]]에 인수)
* 쌍용자동차→[[KG모빌리티]] (1998년 [[대우자동차]]에서 인수, 2004년 [[상하이자동차]]에 인수, 2010년 [[마힌드라]]에 피인수, 2022년 [[KG그룹]]에 피인수)
* 대우자동차판매 자동차판매 부분 → [[대우자동차판매]] (2010년 [[영안모자]]에 인수)
* 대우자동차판매 건설 부문 → [[대우산업개발]] (2011년 중국 풍화(豊華)그룹에 인수)

=== 중공업 ===
* 대우중공업 종합기계 부문 → [[두산인프라코어]] (2005년 [[두산그룹]]에 인수)
* 대우중공업 조선해양 부문 → [[대우조선해양]] → [[한화오션]]
* 대우중공업 철도차량 부문 → [[현대로템]] (2001년 [[현대자동차그룹]]에 인수)

=== 전자 ===
* 대우전자 → [[위니아전자|동부대우전자]] → [[위니아전자|대우전자]] (2018년 [[대유그룹]]에 인수) → [[위니아전자|위니아대우]] → [[위니아전자]]
* 대우정밀공업 → [[S&T모티브]] (2006년 [[S&T그룹]]에 인수)

=== 금융 ===
* 대우증권 → [[미래에셋대우]] (2016년 [[미래에셋금융그룹]]에 인수)
* 다이너스클럽코리아 → [[현대카드]] (2001년 [[현대자동차그룹]]에 인수)
* 대우캐피탈 → [[아주캐피탈]] (2005년 [[아주그룹]]에 인수)

=== 기타 ===
* 대우엔지니어링 → [[포스코엔지니어링]] (1990년 계열 분리 → 2002년 포스코에 인수)
* 신성통상 (1984년 계열 분리 → 2002년 가나안에서 인수)
* 대창기업
* (주)고려 → SG고려 (구 고려피혁공업주식회사 → 2003년 (주)가로수닷컴에 인수)
* 세계물산 → SG위카스 → [[SG세계물산]] (2002년 SK글로벌에 인수 → 2005년 (주)가로수닷컴에 인수)
* 대우시네마네트워크 → (주)[[OCN (텔레비전 채널)|오리온시네마네트워크]] (1999년 [[동양그룹]]에 인수되어 별도법인인 [[온미디어]] 설립 → 2010년 CJ에 인수 → 2013년 [[CJ ENM]]에 흡수 합병)
* 부산 대우 로얄즈 → [[부산 아이파크]] (2000년 [[현대산업개발]]에 인수)
* 인천 대우 제우스 → 인천 신세기 빅스 (1999년 [[신세기통신]]에 인수)

== 외부 링크 ==
* [https://daewoosky.com/ 대우세계경영연구회]

== 각주 ==
<references/>

{{대우그룹}}

[[분류:대우그룹| ]]
[[분류:대한민국의 기업]]
[[분류:1967년 설립된 기업]]
[[분류:2000년 해체된 기업]]
[[분류:대한민국의 없어진 기업]]
[[분류:대한민국의 브랜드]]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회사 정보
| 이름 = 대우그룹
| 원어 = Daewoo Group
| 워드마크 = Daewoo logo (hangul).svg
| 형태 = 대기업집단(1989년~1999년)
| 창립 = 1967년 3월 22일 (대우실업 주식회사)
| 창립자 = [[김우중]](대표이사 회장)
| 해체 = 1999년 11월 1일
| 국가 = {{KOR}}
| 장소 = 대우센터빌딩(1977년~1999년)
| 사업 지역 =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 인물 = 김우중(대표이사 회장)
| 산업 = 자동차, 전자, 조선, 건설
| 주요사업부문 = 자동차, 전자, 조선, 건설, 무역, 금융
| 자본금 = 5,000,000원(1967년 기준)
| 매출액 = 분식회계로 정확히 추산불가
| 매출 = 78조원(1999년 기준)
| 영업이익 = -4조원(1999년 기준)
| 자산 총액 = 자본 약 15조 부채 89조
| 주주 = 김우중
| 모기업 = (주)[[포스코인터내셔널|대우]]
| 계열사 = [[대우전자]], [[대우건설]], [[한국GM|대우자동차]], [[대우조선]], [[대우증권]], [[쌍용자동차]] 外
}}

'''대우그룹'''(大宇─, Daewoo Group)은 [[1967년]] 창립한 [[포스코인터내셔널|대우실업]]을 모태로 [[1980년대]]부터 [[1990년대]] 말까지 존재한 [[대한민국]]의 대규모 기업집단이었다.<ref>[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1997120912000601 대우그룹, 쌍용自인수로 재계순위‘3위’]《문화일보》1997년 12월 9일 김병직 기자</ref> 대도섬유의 대(大)와 김우중의 우(宇)를 따서 만들었다. 섬유·무역·건설·조선·중장비·자동차·전자·통신·관광·금융 등 여러 사업부문을 두었으며, [[1993년]] 세계경영 전략 채택 이후 강력한 외형확장으로 사세를 넓혀갔고 [[1998년]]에는 [[현대그룹]]에 이어 재계 2위에 올랐으나 외환위기 이후, 자체 구조조정 실패와 [[1999년]] [[삼성그룹|삼성]]과의 전자-자동차 빅딜 실패로 [[1999년 10월]]부터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그룹 해체를 맞았다.

== 기업연혁 ==
[[파일:Seoul Square.jpg|섬네일|오른쪽|과거 대우그룹의 본사였던 서울스퀘어.]]
대우는 1967년 소규모 사업체로 창업하였으나, 1970년대 경제성장 및 수출호조에 따른 비약적인 발전, 그리고 정부 주도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에 힘입어 단기간에 대한민국 최대기업으로서 성장을 이루게 된다. 대우는 1980년대 후반부터 대한민국 외 국가로 눈을 돌려 동유럽 및 신흥시장 개척을 추진해 왔고, 1993년 세계경영에 나서면서 사세확장을 시도하였다. 이후 외환위기 속에서도 1997년 법정관리에 들어간 쌍용자동차를 인수하였다. 98년 상반기에는 현대그룹에 이은 (자산총액기준) 재계 2위에 올랐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출범이후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자체적 구조조정 실패와 무리한 차입금이 발목을 잡았고 1998년 10월, 대우그룹이 신청한 기업어음(CP)발행이 중단되면서 그룹 위기가 찾아왔다. 1999년이 되면서 삼성그룹과의 대우전자-삼성자동차의 빅딜협상에 들어갔으나 동년 7월, 협상이 결렬되었다. 이후 김우중 회장은 자동차를 중심으로 그룹 구조조정에 뒤늦게 들어갔으나 대우그룹 채권단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1999년 10월, 그룹 해체 수순을 밟았다.

=== 성장 ===
1967년 대우실업 창립 이래, 부산에 공장을 설치하여 1970년대 와이셔츠 등의 봉제품 및 섬유제품의 수출호조와 더불어 경제고도성장으로 급속한 발전을 이루어 신흥 사업체로 주목받았고, 더욱이 정부가 주도하던 경제 정책에 발맞춰 금융, 전자, 중공업, 자동차 사업에도 뛰어들면서 대우 그룹을 형성하게 된다.

* [[1967년]] [[3월 22일]] 모태인 대우실업(주)(대우가족) 창립. (섬유류 봉제품 생산, 수출 주도)
* [[1969년]] 8월 대한민국 기업 해외지사 1호 시드니에 개설.
* [[1971년]] 9월 (주)내쇼날의류 설립.
* [[1972년]] 9월 고려피혁(주) 인수.
* [[1973년]] 쌍미섬유공업(주) 인수. 대우증권의 전신 동양증권(주) 인수. 대우건설(주) 설립.
* [[1975년]] 2월 대우빌딩 착공.
* [[1975년]] 5월 대우실업(주), 종합무역상사 지정.
* [[1976년]] 2월 한국기계공업(주) 인수. 10월 해외건설업면허 취득. 대우중공업(주) 출범.
* [[1977년]] 대우센터 빌딩 준공. 8월 제철화학(주) 경영권 인수.
* [[1978년]] 7월 산업은행으로부터 새한자동차(주) 지분 인수. 대한조선공사 옥포조선소 인수 후 9월 대우조선공업(주) 설립.

=== 도약기 ===
대우 그룹은 (주)대우의 출범과 새한자동차 경영권 장악, 가전사업 진출을 잇달아 성사시키며 현대(現代), 삼성(三星), 럭키금성(LG)과 함께 대한민국 4대 기업군으로 성장한다. 국내 업체들과의 출혈 경쟁에서 기술력과 수익성의 한계를 느낀 대우는 세계로 눈을 돌려 냉전체제의 완화가 도래한 시점에 동유럽 및 공산권 국가에 현지법인을 설립하면서 신시장 개척을 준비하였다.

* [[1981년]] 10월 옥포조선소 준공. 수출의날 15억불탑 수상. 대우실업(주) 및 대우개발(주) 합병 결의.
* [[1982년]] 모기업 (주)대우 출범. 수출의날 20억불탑 수상.
* [[1983년]] 대우자동차(주) 출범. 대우전자(주)에서 대한전선(주)의 가전부문을 흡수. 대우통신(주) 설립.
* [[1984년]] 경남기업(주) 경영 참여. (주)대우경제연구소 설립. 10월 대우자동차부품(주) 설립. 대한민국 최초 VTR 수출.
* [[1986년]] 대우증권 런던사무소 개설. 9월 경남기업(주) 계열 편입.
* [[1987년]] 미얀마 현지 철도차량공장 준공.
* [[1988년]] (주)대우 동베를린지사 설치. 대우투자자문(주) 설립. 프랑스 롱위 전자레인지 공장 건립. 대우증권 홍콩사무소 개설.
* [[1989년]] 제철화학 외 3개사 매각. 대우정보시스템 설립. 대우기전공업㈜ 출범. MHB-Daewoo Bank 설립.
* [[1990년]] (주)대우 모스크바지사 설치. 대우중공업(주) 유럽현지법인 설립. 멕시코 컬러TV 공장 건립.
* [[1991년]] (주)대우 북경지사 설치. 대우증권(주) 유럽현지법인 설립, 취리히사무소 개설.
* [[1992년]] 4월 佛 컬러TV 공장 건립. 佛 컴퓨터 판매법인 설립. 대우증권 美 현지법인 설립. 대우차-GM 제휴관계 청산.

=== 팽창기 ===
(주)대우가 구축한 세계무역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대우자동차(주), 대우중공업(주), 대우전자(주)가 국제적으로 널리 진출하는 '세계경영'은 1993년 '세계경영 우리기술' 슬로건 선포를 시점으로 본격화되었다. 대우가 당시 내세웠던 세계경영은 선진업체가 진출하지 않은 옛 공산권 국가와 앞으로 발전가능성이 무한한 개발도상국 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것으로, 현지법인 설립과 인수합병을 통해 단기간에 정착하여 사세확장을 꾀하는 형태이다. 실제로 대우가 진출을 시도한 개발도상국가의 정부에서는 자국의 경제활성화 목적에서 대우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기에, 대우의 사업확장은 더욱 쉽게 이뤄질 수 있었다. 대한민국 시장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대우자동차(주)의 경우는 대한민국 외 국가에서 판매하는 수량이 대한민국에서 판매하는 수량을 앞지르는 현상을 가져오기도 했다. 이같은 대우의 급속한 성장은 대한민국 경제계와 대한민국 외 국가 경제에 큰 반향을 가져다 주었다.

* [[1993년]] 1월 대우자판 설립.
* [[1993년]] 2월 베트남 합작은행 출자.
* [[1993년]] 3월 세계경영 선포.
* [[1993년]] 5월 우즈벡 가전 공장 설립.
* [[1993년]] 7월 대우중공업(주) 미국현지법인 DEC 설립.
* [[1993년]] 8월 폴란드 TV 공장 설립.
* [[1993년]] 9월 세계최초 공기방울 세탁기 개발.
* [[1994년]] 2월 대우할부금융 설립.
* [[1994년]] 3월 인도 합작증권사 CRB-Daewoo Securities Ltd 출자.
* [[1994년]] 5월 대우자동차(주) 영국 워딩 자동차 기술연구소 건립.
* [[1994년]] 6월 대우중공업 영국현지법인 유로 대우 UK 설립.
* [[1994년]] 10월 대우중공업(주) 대우조선공업 흡수 합병. 중국현지법인 대우중공업연대유한공사 설립.
* [[1994년]] 11월 루마니아 자동차합작공장 DAEWOO-RODAE 설립. 대우중공업(주) 러시아 기술연구소 DISK 설립.
* [[1995년]] 1월 대우중공업(주) 독일 현지법인 ECO 설립. 대우전자(주) 말레이시아 세탁기 공장 설립. 대우뱅크 출범.
* [[1995년]] 2월 대우중공업(주) 일본 현지법인 대우건기 설립.
* [[1995년]] 3월 체코 최대 국영상용차업체 AVIA사 인수. 대우증권(주) 홍콩현지법인 설립.
* [[1995년]] 4월 대우증권(주) 상해사무소 개설.
* [[1995년]] 5월 대한민국 기업 최초, 대북 협력사업 정부승인 획득.
* [[1995년]] 6월 다이너스카드사 인수.
* [[1995년]] 7월 동우개발(주)의 사명을 (주)대우개발로 변경.
* [[1995년]] 9월 베트남 하노이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우즈벡 공화국에 교환기합작공장 알로카대우 설립.
* [[1995년]] 10월 중국천진 팩스밀리 합작공장 설립.
* [[1995년]] 11월 베트남 최초 타포린 합작생산 공장 준공. 폴란드 최대 자동차기업 [[Fabryka Samochodów Osobowych|FSO]] 인수, DAEWOO-FSO 출범.
* [[1996년]] 3월 대우증권(주) 싱가폴사무소 개설. 루마니아 DAEWOO-RODAE 공장 준공.
* [[1996년]] 5월 남북경협 최초회사 민족산업총회사 남포에 설립. 앙골라 대규모 유전발견.
* [[1996년]] 6월 프랑스 롱위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인도뉴델리 첨단 소프트웨어 연구개발센타 설립. 페루육상 유전인수 입찰수주.
* [[1996년]] 7월 한진투자증권 합작 법인 서울투신운용(주) 설립. 우크라이나 대용량교환기 합작공장 드니프로-대우 설립.
* [[1996년]] 10월 대우증권(주) 동경지점 개점. UZ-Daewoo 자동차 공장 준공. 베트남 비담코 자동차 공장 준공.
* [[1996년]] 11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중국 광케이블 합작회사 우시-대우 설립. 루마니아 합작은행 설립.
* [[1997년]] 3월 우즈베키스탄 대우은행 (Uz-Daewoo Bank) 설립.
* [[1997년]] 4월 인도 종합 가전공장 설립. 군산 종합 자동차공장 준공.
* [[1997년]] 5월 인도 CRB증권 대우파이낸스로 상호 변경. 대우선물(주) 설립.
* [[1997년]] 6월 대우증권(주) 싱가포르 현지법인 설립.
* [[1997년]] 7월 대우리스 체코에 설립.
* [[1997년]] 9월 대우자동차(주) 우크라이나 합작공장 설립계약 체결.
* [[1997년]] 12월 한국전기초자(주) 인수.

=== 해체 ===
대우는 세계경영으로 철저히 현지화를 추구함으로써 1993년 당시 150여개에 불과했던 대한민국 외 국가 현지법인을 1998년 11월에는 396개로 끌어올리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대우는 1997년 다가온 경제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물로 나온 쌍용자동차(주)를 인수하여 소형차에서 대형차는 물론, 버스와 트럭, 사륜구동 SUV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차량을 생산하는 풀라인업을 완성시키고 그 밖에도 해외 현지공장 인수 및 확장을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대우는 1998년 [[삼성그룹|삼성]](三星)을 제치고 재계서열 2위까지 뛰어오른다.
* [[1998년]] 3월 30일 대우자동차(주), 쌍용자동차(주) 인수.
* [[1998년]] 5월 스페인 냉장고 공장 설립.
* [[1998년]] 6월 우크라이나 자동차 법인 AUTOZAZ-DAEWOO 공장 본격 가동.
* [[1998년]] 7월 미국 Fortune 선정 매출 500대 기업 중 세계 18위의 기업으로 도약.
* [[1998년]] 10월 대우중공업(주) 이집트공장 준공.
* [[1998년]] 11월 무역의 날 150억불 수출의 탑 수상.

그러나 경기침체의 장기화와 세계 시장의 위축으로 대우의 입지는 크게 흔들렸고, 개발도상국가 위주로 판매망을 확대해온 대우자동차의 부진이 거듭되었다. 경영여건이 안정되지 못한 상황에서 추진한 쌍용자동차의 인수도 큰 실익을 거두지 못하였고, 외형확대의 초점을 맞추어 경영해오다보니 당시 정부가 요구했던 구조조정에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오다보니 구조조정의 실시가 경쟁 그룹에 비해 늦은 편이었다. 정부 주도의 산업체계 개편에 따라 늦게나마 추진한 대우전자-삼성자동차 빅딜협상은 양사간 입장차이로 끝내 결렬되었으며, 1999년 여름에 접어들면서 그룹의 운명을 좌우할 대우와 GM과의 협상(대우차와의 경영권 문제)마저도 실패한 대우는 급속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자금난이 가중되던 대우는 알짜자산인 힐튼호텔 매각 등을 성사시키기도 하지만 1999년 3월에는 이미 부채 비율을 무려 400%를 훨씬 넘은 상태여서 수습이 어려운 지경이었다. 7월 대우는 초고강도 구조조정안을 발표하였으나 채권단은 이를 반려한다. 결국 대우는 1999년 8월 16일 채권단의 재무구조개선수정약정 체결과 더불어, 26일 채권단 관리하에 워크아웃을 맞이함으로써 그룹 해체의 길로 접어든다. 지난 1967년 창업 이래 32년간 대한민국에 경쟁성장의 견인차로 역할을 해오던 기업 중 하나로서, 1993년 세계경영을 선포한지 6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 [[1998년]] 11월 대우그룹 1차 구조조정안 발표.
* [[1998년]] 12월 대우전자(주) 및 삼성자동차(주) 빅딜 발표. (사업맞교환)
* [[1999년]] 4월 19일 대우 2차 구조조정안 발표. (대우 조선, 상용차, 힐튼호텔 등 매각)
* [[1999년]] 6월 30일 삼성자동차 워크아웃 돌입.
* [[1999년]] 7월 16일 대우그룹 구조조정안 발표. (자동차 전문그룹으로의 재탄생)
* [[1999년]] 8월 3일 제일은행 등 채권단 구조조정안 반려.
* [[1999년]] 8월 16일 대우 채권단, 재무구조개선수정약정 체결.
* [[1999년]] 8월 26일 (주)대우, 대우중공업(주), 대우자동차(주), 대우전자(주) 등 12개 회사 워크아웃 돌입.
* [[1999년]] 8월 30일 대우증권(주) 계열 분리, 채권단으로 이양.
* [[1999년]] 10월 김우중 회장, 중국 옌타이 대우자동차 부품공장 준공식 참석.
* [[1999년]] 11월 1일 대우 회장 및 대우그룹 사장단 퇴진.
* [[2000년]] 4월 15일 대규모기업집단 지정 제외.

한 때 세계 경영의 첨병으로 불렸던 대우의 몰락은 경제계에 큰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대우사태는 당대 큰 기업은 절대 흥한다는 '대마불사'의 신화를 깨고 차입경영을 일삼는 부실기업을 과감하게 퇴출시킨 사례로 건실한 기업풍토 조성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이 있는 반면, 대우가 밝혀지지 않은 요인(정치적 문제 또는 국제적 외압)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여론도 일부 존재하고 있어 지금도 눈길을 끈다.

== 구 대우그룹 계열사 ==
현재 대우의 계열사들은 그룹 해체 후 자립 혹은 새로운 기업의 인수를 통해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그룹이 해체된 이후에도 포스코대우, 대우건설, 대우조선해양 등 몇몇 회사들은 여전히 대우의 이름을 유지하며 성공적으로 영업 중이다.

=== 자동차 사업 ===
대우가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자동차 사업은 [[1997년]] 신차 출시, [[1998년]] [[KG모빌리티|쌍용자동차]] 인수에 따른 사세 확장으로 대한민국 시장에서 호조를 거두었으나 부채 누적으로 인한 만성적인 적자로, 대우그룹 핵심 계열사들이 워크아웃에 돌입하면서 완전히 공중분해되고 말았다.

대우자동차(주)는 [[포드]], [[제너럴 모터스]](GM) 등 두 양사간의 해외 매각 의사를 타진하였으나 최종적으로 협상이 모두 결렬되었으며, 대우자동차(주)는 경영 정상화 실패로 인해 [[2000년]] [[11월 10일]]에 [[인천지방법원]]에 법정관리(정리절차) 개시 신청을 냈고, 노사가 극적으로 노사협의회 합의문에 합의한 후, 회사 측의 자구의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여, 법정관리 개시 결정이 내려졌다.

대우자동차는 GM 매각을 위한 구조조정 계획의 일환으로, 9992억 원의 자구계획을 마련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가 인력을 7300여 명 줄이고 재료비, 경상비, 투자비 등을 대폭 감축했으며, 부평공장 생산직 직원 1750명이 강제로 거리로 내몰리는 역대 최대 규모의 정리해고가 김대중 정부 출범 당시에 근로기준법 개정 이후, [[2001년]] 2월초에 단행되기도 했다.

미국 GM이 2001년 6월초에 대우차 인수 의향서를 제출하여, 이듬해인 [[2002년]] [[10월 28일]]에 GM대우(현 [[한국지엠]])라는 외국계 기업으로 새롭게 출범했고, 대한민국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확대에 실패하여 고전을 계속하였던 GM대우는 글로벌 GM의 전략적 요충지로 키우기 위해서 [[2011년 1월]] [[쉐보레]] 브랜드로의 흡수 통합을 선언하였으며, [[2011년]] [[한국GM]](주)가 새롭게 출범하였다.

GM이 인수하지 않은 버스부문, 상용차부문, 부평공장은 [[대우버스]](주), [[타타대우상용차|대우상용차]](주), 대우인천자동차(주)로 분할, 매각되었다.

대우자동차(주)의 버스부문인 [[대우버스]](주)는 [[영안모자]]에 매각되었고, 트럭을 생산하는 상용차 부문은 [[인도]] 최대의 재벌인 [[타타]](TATA)에 매각되어 [[타타대우상용차]](주)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대우그룹 시절 대우자동차와의 합병을 계획하였던 [[KG모빌리티|쌍용자동차]](주)는 대우그룹의 구조조정 당시 대우차와의 분리 매각이 결정되면서 [[2000년 4월]] 대우 계열에서 정식으로 분리되었다. 후에 쌍용자동차(주)는 [[2005년]] [[중국]] 국영자동차회사인 [[상하이자동차]] 그룹에 인수되어, 미국발 금융 위기로 인한 판매 부진이 계속 거듭되면서 [[2009년]] 쌍용자동차(주)의 경영권을 포기하고 한국 시장에 철수하였다. [[2009년]] 쌍용자동차(주)는 법정관리 체제에 들어갔으며, 구조조정에 따른 대규모 정리해고 사태로 노사간의 첨예한 대립까지 위태로울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다가 [[2010년]] 말 인도의 [[마힌드라]] 자동차에 인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 건설, 무역 ===
[[1999년]] 워크아웃으로 (주)대우지스틱스가 먼저 분사되었으며, [[2000년 12월]] 모기업 (주)[[포스코인터내셔널|대우]]가 3개사로 재탄생한다. 청산을 위한 (주)대우 존속법인과 무역부문의 (주)[[포스코인터내셔널|대우인터내셔널]], 건설부문의 (주)[[대우건설]]로 나뉜다.

(주)대우인터내셔널은 대우의 모태사업인 무역은 물론 백화점 등 사업도 하고 있다. [[2010년]] [[포스코]]에 인수되었고, 지금의 [[포스코인터내셔널|포스코대우]]로 재출범한다. 백화점 사업은 2014년 [[롯데쇼핑]](주)에서 인수하여 롯데백화점 마산점이 되었다.

(주)[[대우건설]]은 워크아웃을 단기에 졸업했으며 [[2006년 12월]]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인수되었다. 그러나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무리한 인수합병으로 인한 후유증에 세계 금융위기까지 겪으며 극심한 자금난을 겪자, 2010년 (주)대우건설에 대한 경영권을 포기하였고, [[2011년 1월]]에 금호아시아나 계열에서 정식으로 분리되었다. 현재 최대주주는 [[한국산업은행]]이다.

대우그룹의 또다른 건설회사였던 [[경남기업]](주)는 [[성완종]]이 이끄는 충남지역 건설사인 대아건설(주)에 인수되었다가 [[2004년]]에 대아건설(주)을 합병하면서 국내 10위권의 대형 건설사로 성장가도를 달린다. [[2009년]] 대한민국 건설사들의 잇따른 경영난으로 워크아웃을 재차 겪지만, 실적 개선 등에 힘입어 [[2011년 5월]] 워크아웃을 졸업하는데 성공한다. [[2015년]] 하지만 건설업계 불황이 장기화되고 기업의 오너(Owner)인 성완종이 자원외교비리수사에 연루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2015년 4월]] 마침내 [[경남기업]]은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만다. [[2017년]] [[sm그룹]]이 인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 중공업, 조선 ===
[[2000년]] [[대우중공업]](주)도 대우종합기계(주), 대우조선공업(주) 그리고 대우중공업(주) 잔존법인으로 분할되었다.

주력부문이었던 중장비 및 군수물자 생산을 담당하는 대우종합기계(주)는 [[2005년]]에 [[두산]] 계열로 편입, [[두산인프라코어]](주)로 재탄생하였다.

대우중공업의 조선해양부문은 대우조선공업 주식회사로 분사되었다가 곧 [[대우조선해양]]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한다. 2000년대 조선업계의 호황으로 대우의 계열사 중 가장 먼저 워크아웃을 졸업한 회사로도 주목받았고, 조선업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을 기반으로 건설, 상조사업 등에도 진출하며 자체적으로 조선사업 중심의 기업집단을 일구었다. 2000년 출범한 이래 수년간 경쟁업체인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과 함께 선박 수주잔량으로 세계 수위권을 다투왔지만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변곡점으로 대우조선해양은 2010년대 중반에 이르러 조선업황의 악화로 존폐의 기로에 놓여있는 상태이다.

대우중공업이 3개사로 분할되기 전인 [[1999년 7월]]에는 철도차량 생산부문이 경쟁사인 [[현대정공]](주), [[한진중공업]](주)와 함께 현물출자 형식으로 단일법인을 설립함으로써 국내 유일의 철차제작업체인 [[한국철도차량]]주식회사가 탄생하였다. 하지만 대우종합기계(주)가 승계받은 한국철도차량(주)의 지분은 경영정상화를 위해 [[2001년]]에 [[현대자동차그룹]]에 전량 매각됨으로써 주식회사 [[로템]](現 현대로템(주))으로 재출범한다.

대우중공업(주)의 항공사업부문도 [[1999년 8월]]에 [[삼성항공산업]](주), 현대우주항공(주)과 통합하여 새로이 [[한국항공우주산업]](주)로 출범하였지만, [[대우중공업]]의 지분을 인계받은 [[두산그룹]]의 DIP홀딩스에서는 2016년 [[한국항공우주산업]]의 보유지분을 전부 정리하였다.

=== 전자, 통신 ===
한때 세계 각국의 생산기지를 설치하며 세계적인 전자기업을 표방해 오던 대우전자(주)는 [[1999년]] 워크아웃 대상기업으로 지정되었고, [[2000년 4월]] 대우전자 중심의 기업집단을 구축하고 비수익 사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피아노 사업을 담당하는 벨로체, 컴퓨터 사업을 담당하는 [[루컴즈전자|대우루컴즈]], 가스보일러 사업을 담당하는 대우가스보일러 등이 독립된 업체로 분리되었다. [[2002년]] [[위니아전자|대우전자]]의 TV, 백색가전 등 주력 핵심사업부문이 대부분 [[위니아전자|대우모터공업]] 주식회사로 인계되어 이듬해인 [[2003년]]에 (주)[[대우일렉트로닉스]]로 재출범하였다. 이후에도 [[2008년]] 대우디스플레이 등이 분리되어 [[위니아전자|대우일렉트로닉스]]는 사실상 백색가전 전문업체가 되었다. 2013년 동부그룹이 인수함으로써 [[위니아전자|동부대우전자]] 주식회사로 이름이 바뀌다가 2018년 대유그룹이 인수하여 주식회사 대우전자로 부활하였다. [[2019년]] 주식회사 위니아대우 로 이름이 바꿔다가 [[2020년]] 주식회사 위니아전자로 이름이 바꿨다.

[[대우전자부품]]도 1999년 대우그룹 구조조정으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대상으로 지정되었다. 2000년 4월 대우그룹에서 분리되었다.2008년 회생절차개시 결정을 받았고, 2010년 2월 회생절차 종결 결정을 받았다. 그 후 [[현대자동차]]의 1차 협력그룹인 [[아진그룹]]이 인수했다.

대우통신(주)은 정상화를 위해 통신 관련사업부문을 매각하여 컴퓨터사업은 대우컴퓨터에 양도하였으며 그밖에 사업부문은 대우텔레텍, 대우글로벌 그리고 1999년 합병된 대우정밀공업 계열의 업체들은 대우정밀, 대우파워트레인, 대우프라스틱 등으로 분사되었다.

대우정밀(주)은 에스엔티(S&T그룹)에 인수되어 현재 [[S&T모티브]]로 운영 중이며 대우파워트레인(주)은 GM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컴퍼니(지금의 한국지엠주식회사)에 매각되었고, 대우프라스틱(주)는 삼라마이다스그룹(SM그룹)으로 매각된 후 대우라이프(주)로 바뀌었다가 계열사인 남선알미늄(주)에 합병되었다.

전자 계열사였던 오리온전기(주), 한국전기초자(주), 광전자(주) 등도 워크아웃을 맞아 자취를 감추거나 독자생존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 금융 ===
대우증권(주)는 [[1999년]] 대우가 해체되기 전 채권단이 인수하였으며 후에 대주주가 [[한국산업은행]]으로 변경된다. [[2009년]]에는 한국산업은행의 민영화에 따라 새로이 출범한 [[KDB금융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2015년]]에는 [[미래에셋금융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2001년 8월]] (주)다이너스카드클럽코리아는 [[현대자동차]](주)에 매각되어 [[현대카드]](주)로 변경되었다.

대우캐피탈(주)는 아주그룹에 편입되어 아주캐피탈(주)로 바뀌었다.

=== 스포츠 ===
대우그룹에서 운영 중이던 [[부산 아이파크|부산 대우 로얄즈]]는 [[현대산업개발]]에 매각, [[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인천 대우 제우스]]는 [[신세기통신]]에 매각되고 인천 신세기 빅스로 변경하며 현재 [[부산 아이파크]]와 [[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 미디어 ===
케이블 채널 중에서 대우시네마네트워크는 [[오리온홀딩스|동양그룹]]에 매각되어 [[OCN (텔레비전 채널)|OCN]](현재 [[CJ그룹|CJ]] 산하)으로 변경되었다.

== 같이 보기 ==
=== 건설, 무역 ===
* (주)대우 무역 → [[포스코인터내셔널|포스코대우]] ([[포스코]]에 인수) → [[포스코인터내셔널]]
* (주)대우 건설 → [[대우건설]] (최대주주 [[한국산업은행]])
* (주)대우 백화점 → [[롯데백화점]] 마산점 ([[롯데백화점|롯데쇼핑]]에 인수)

=== 자동차 ===
* 대우자동차 → GM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 → [[한국지엠]] (2002년 [[제너럴 모터스]]에 인수)
* 대우자동차 버스 부문 → [[자일대우버스]] (2003년 [[영안모자]]에 인수)
* 대우자동차 상용차 부문 → [[타타대우상용차]] (2004년 [[타타]]에 인수)
* 쌍용자동차→[[KG모빌리티]] (1998년 [[대우자동차]]에서 인수, 2004년 [[상하이자동차]]에 인수, 2010년 [[마힌드라]]에 피인수, 2022년 [[KG그룹]]에 피인수)
* 대우자동차판매 자동차판매 부분 → [[대우자동차판매]] (2010년 [[영안모자]]에 인수)
* 대우자동차판매 건설 부문 → [[대우산업개발]] (2011년 중국 풍화(豊華)그룹에 인수)

=== 중공업 ===
* 대우중공업 종합기계 부문 → [[두산인프라코어]] (2005년 [[두산그룹]]에 인수)
* 대우중공업 조선해양 부문 → [[대우조선해양]] → [[한화오션]]
* 대우중공업 철도차량 부문 → [[현대로템]] (2001년 [[현대자동차그룹]]에 인수)

=== 전자 ===
* 대우전자 → [[위니아전자|동부대우전자]] → [[위니아전자|대우전자]] (2018년 [[대유그룹]]에 인수) → [[위니아전자|위니아대우]] → [[위니아전자]]
* 대우정밀공업 → [[S&T모티브]] (2006년 [[S&T그룹]]에 인수)

=== 금융 ===
* 대우증권 → [[미래에셋대우]] (2016년 [[미래에셋금융그룹]]에 인수)
* 다이너스클럽코리아 → [[현대카드]] (2001년 [[현대자동차그룹]]에 인수)
* 대우캐피탈 → [[아주캐피탈]] (2005년 [[아주그룹]]에 인수)

=== 기타 ===
* 대우엔지니어링 → [[포스코엔지니어링]] (1990년 계열 분리 → 2002년 포스코에 인수)
* 신성통상 (1984년 계열 분리 → 2002년 가나안에서 인수)
* 대창기업
* (주)고려 → SG고려 (구 고려피혁공업주식회사 → 2003년 (주)가로수닷컴에 인수)
* 세계물산 → SG위카스 → [[SG세계물산]] (2002년 SK글로벌에 인수 → 2005년 (주)가로수닷컴에 인수)
* 대우시네마네트워크 → (주)[[OCN (텔레비전 채널)|오리온시네마네트워크]] (1999년 [[동양그룹]]에 인수되어 별도법인인 [[온미디어]] 설립 → 2010년 CJ에 인수 → 2013년 [[CJ ENM]]에 흡수 합병)
* 부산 대우 로얄즈 → [[부산 아이파크]] (2000년 [[현대산업개발]]에 인수)
* 인천 대우 제우스 → 인천 신세기 빅스 (1999년 [[신세기통신]]에 인수)

== 외부 링크 ==
* [https://daewoosky.com/ 대우세계경영연구회]

== 각주 ==
<references/>

{{대우그룹}}

[[분류:대우그룹| ]]
[[분류:대한민국의 기업]]
[[분류:1967년 설립된 기업]]
[[분류:2000년 해체된 기업]]
[[분류:대한민국의 없어진 기업]]
[[분류:대한민국의 브랜드]]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회사 정보
| 이름 = 대우그룹
| 원어 = Daewoo Group
| 워드마크 = Daewoo logo (hangul).svg
| 형태 = 대기업집단(1989년~1999년)
| 창립 = 1967년 3월 22일 (대우실업 주식회사)
| 창립자 = [[김우중]](대표이사 회장)
| 해체 = 1999년 11월 1일
| 국가 = {{KOR}}
| 장소 = 대우센터빌딩(1977년~1999년)
| 사업 지역 =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 인물 = 김우중(대표이사 회장)
| 산업 = 자동차, 전자, 조선, 건설
| 주요사업부문 = 자동차, 전자, 조선, 건설, 무역, 금융
| 자본금 = 5,000,000원(1967년 기준)
| 매출액 = 분식회계로 정확히 추산불가
| 매출 = 78조원(1999년 기준)
| 영업이익 = -4조원(1999년 기준)
| 자산 총액 = 자본 약 15조 부채 89조
| 주주 = 김우중
| 모기업 = (주)[[포스코인터내셔널|대우]]
| 계열사 = [[대우전자]], [[대우건설]], [[한국GM|대우자동차]], [[대우조선]], [[대우증권]], [[쌍용자동차]] 外
}}

'''대우그룹'''(大宇─, Daewoo Group)은 [[1967년]] 창립한 [[포스코인터내셔널|대우실업]]을 모태로 [[1980년대]]부터 [[1990년대]] 말까지 존재한 [[대한민국]]의 대규모 기업집단이었다.<ref>[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1997120912000601 대우그룹, 쌍용自인수로 재계순위‘3위’]《문화일보》1997년 12월 9일 김병직 기자</ref> 대도섬유의 대(大)와 김우중의 우(宇)를 따서 만들었다. 섬유·무역·건설·조선·중장비·자동차·전자·통신·관광·금융 등 여러 사업부문을 두었으며, [[1993년]] 세계경영 전략 채택 이후 강력한 외형확장으로 사세를 넓혀갔고 [[1998년]]에는 [[현대그룹]]에 이어 재계 2위에 올랐으나 외환위기 이후, 자체 구조조정 실패와 [[1999년]] [[삼성그룹|삼성]]과의 전자-자동차 빅딜 실패로 [[1999년 10월]]부터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그룹 해체를 맞았다.

== 기업연혁 ==
[[파일:Seoul Square.jpg|섬네일|오른쪽|과거 대우그룹의 본사였던 서울스퀘어.]]
대우는 1967년 소규모 사업체로 창업하였으나, 1970년대 경제성장 및 수출호조에 따른 비약적인 발전, 그리고 정부 주도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에 힘입어 단기간에 대한민국 최대기업으로서 성장을 이루게 된다. 대우는 1980년대 후반부터 대한민국 외 국가로 눈을 돌려 동유럽 및 신흥시장 개척을 추진해 왔고, 1993년 세계경영에 나서면서 사세확장을 시도하였다. 이후 외환위기 속에서도 1997년 법정관리에 들어간 쌍용자동차를 인수하였다. 98년 상반기에는 현대그룹에 이은 (자산총액기준) 재계 2위에 올랐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출범이후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자체적 구조조정 실패와 무리한 차입금이 발목을 잡았고 1998년 10월, 대우그룹이 신청한 기업어음(CP)발행이 중단되면서 그룹 위기가 찾아왔다. 1999년이 되면서 삼성그룹과의 대우전자-삼성자동차의 빅딜협상에 들어갔으나 동년 7월, 협상이 결렬되었다. 이후 김우중 회장은 자동차를 중심으로 그룹 구조조정에 뒤늦게 들어갔으나 대우그룹 채권단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1999년 10월, 그룹 해체 수순을 밟았다.

=== 성장 ===
1967년 대우실업 창립 이래, 부산에 공장을 설치하여 1970년대 와이셔츠 등의 봉제품 및 섬유제품의 수출호조와 더불어 경제고도성장으로 급속한 발전을 이루어 신흥 사업체로 주목받았고, 더욱이 정부가 주도하던 경제 정책에 발맞춰 금융, 전자, 중공업, 자동차 사업에도 뛰어들면서 대우 그룹을 형성하게 된다.

* [[1967년]] [[3월 22일]] 모태인 대우실업(주)(대우가족) 창립. (섬유류 봉제품 생산, 수출 주도)
* [[1969년]] 8월 대한민국 기업 해외지사 1호 시드니에 개설.
* [[1971년]] 9월 (주)내쇼날의류 설립.
* [[1972년]] 9월 고려피혁(주) 인수.
* [[1973년]] 쌍미섬유공업(주) 인수. 대우증권의 전신 동양증권(주) 인수. 대우건설(주) 설립.
* [[1975년]] 2월 대우빌딩 착공.
* [[1975년]] 5월 대우실업(주), 종합무역상사 지정.
* [[1976년]] 2월 한국기계공업(주) 인수. 10월 해외건설업면허 취득. 대우중공업(주) 출범.
* [[1977년]] 대우센터 빌딩 준공. 8월 제철화학(주) 경영권 인수.
* [[1978년]] 7월 산업은행으로부터 새한자동차(주) 지분 인수. 대한조선공사 옥포조선소 인수 후 9월 대우조선공업(주) 설립.

=== 도약기 ===
대우 그룹은 (주)대우의 출범과 새한자동차 경영권 장악, 가전사업 진출을 잇달아 성사시키며 현대(現代), 삼성(三星), 럭키금성(LG)과 함께 대한민국 4대 기업군으로 성장한다. 국내 업체들과의 출혈 경쟁에서 기술력과 수익성의 한계를 느낀 대우는 세계로 눈을 돌려 냉전체제의 완화가 도래한 시점에 동유럽 및 공산권 국가에 현지법인을 설립하면서 신시장 개척을 준비하였다.

* [[1981년]] 10월 옥포조선소 준공. 수출의날 15억불탑 수상. 대우실업(주) 및 대우개발(주) 합병 결의.
* [[1982년]] 모기업 (주)대우 출범. 수출의날 20억불탑 수상.
* [[1983년]] 대우자동차(주) 출범. 대우전자(주)에서 대한전선(주)의 가전부문을 흡수. 대우통신(주) 설립.
* [[1984년]] 경남기업(주) 경영 참여. (주)대우경제연구소 설립. 10월 대우자동차부품(주) 설립. 대한민국 최초 VTR 수출.
* [[1986년]] 대우증권 런던사무소 개설. 9월 경남기업(주) 계열 편입.
* [[1987년]] 미얀마 현지 철도차량공장 준공.
* [[1988년]] (주)대우 동베를린지사 설치. 대우투자자문(주) 설립. 프랑스 롱위 전자레인지 공장 건립. 대우증권 홍콩사무소 개설.
* [[1989년]] 제철화학 외 3개사 매각. 대우정보시스템 설립. 대우기전공업㈜ 출범. MHB-Daewoo Bank 설립.
* [[1990년]] (주)대우 모스크바지사 설치. 대우중공업(주) 유럽현지법인 설립. 멕시코 컬러TV 공장 건립.
* [[1991년]] (주)대우 북경지사 설치. 대우증권(주) 유럽현지법인 설립, 취리히사무소 개설.
* [[1992년]] 4월 佛 컬러TV 공장 건립. 佛 컴퓨터 판매법인 설립. 대우증권 美 현지법인 설립. 대우차-GM 제휴관계 청산.

=== 팽창기 ===
(주)대우가 구축한 세계무역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대우자동차(주), 대우중공업(주), 대우전자(주)가 국제적으로 널리 진출하는 '세계경영'은 1993년 '세계경영 우리기술' 슬로건 선포를 시점으로 본격화되었다. 대우가 당시 내세웠던 세계경영은 선진업체가 진출하지 않은 옛 공산권 국가와 앞으로 발전가능성이 무한한 개발도상국 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것으로, 현지법인 설립과 인수합병을 통해 단기간에 정착하여 사세확장을 꾀하는 형태이다. 실제로 대우가 진출을 시도한 개발도상국가의 정부에서는 자국의 경제활성화 목적에서 대우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기에, 대우의 사업확장은 더욱 쉽게 이뤄질 수 있었다. 대한민국 시장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대우자동차(주)의 경우는 대한민국 외 국가에서 판매하는 수량이 대한민국에서 판매하는 수량을 앞지르는 현상을 가져오기도 했다. 이같은 대우의 급속한 성장은 대한민국 경제계와 대한민국 외 국가 경제에 큰 반향을 가져다 주었다.

* [[1993년]] 1월 대우자판 설립.
* [[1993년]] 2월 베트남 합작은행 출자.
* [[1993년]] 3월 세계경영 선포.
* [[1993년]] 5월 우즈벡 가전 공장 설립.
* [[1993년]] 7월 대우중공업(주) 미국현지법인 DEC 설립.
* [[1993년]] 8월 폴란드 TV 공장 설립.
* [[1993년]] 9월 세계최초 공기방울 세탁기 개발.
* [[1994년]] 2월 대우할부금융 설립.
* [[1994년]] 3월 인도 합작증권사 CRB-Daewoo Securities Ltd 출자.
* [[1994년]] 5월 대우자동차(주) 영국 워딩 자동차 기술연구소 건립.
* [[1994년]] 6월 대우중공업 영국현지법인 유로 대우 UK 설립.
* [[1994년]] 10월 대우중공업(주) 대우조선공업 흡수 합병. 중국현지법인 대우중공업연대유한공사 설립.
* [[1994년]] 11월 루마니아 자동차합작공장 DAEWOO-RODAE 설립. 대우중공업(주) 러시아 기술연구소 DISK 설립.
* [[1995년]] 1월 대우중공업(주) 독일 현지법인 ECO 설립. 대우전자(주) 말레이시아 세탁기 공장 설립. 대우뱅크 출범.
* [[1995년]] 2월 대우중공업(주) 일본 현지법인 대우건기 설립.
* [[1995년]] 3월 체코 최대 국영상용차업체 AVIA사 인수. 대우증권(주) 홍콩현지법인 설립.
* [[1995년]] 4월 대우증권(주) 상해사무소 개설.
* [[1995년]] 5월 대한민국 기업 최초, 대북 협력사업 정부승인 획득.
* [[1995년]] 6월 다이너스카드사 인수.
* [[1995년]] 7월 동우개발(주)의 사명을 (주)대우개발로 변경.
* [[1995년]] 9월 베트남 하노이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우즈벡 공화국에 교환기합작공장 알로카대우 설립.
* [[1995년]] 10월 중국천진 팩스밀리 합작공장 설립.
* [[1995년]] 11월 베트남 최초 타포린 합작생산 공장 준공. 폴란드 최대 자동차기업 [[Fabryka Samochodów Osobowych|FSO]] 인수, DAEWOO-FSO 출범.
* [[1996년]] 3월 대우증권(주) 싱가폴사무소 개설. 루마니아 DAEWOO-RODAE 공장 준공.
* [[1996년]] 5월 남북경협 최초회사 민족산업총회사 남포에 설립. 앙골라 대규모 유전발견.
* [[1996년]] 6월 프랑스 롱위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인도뉴델리 첨단 소프트웨어 연구개발센타 설립. 페루육상 유전인수 입찰수주.
* [[1996년]] 7월 한진투자증권 합작 법인 서울투신운용(주) 설립. 우크라이나 대용량교환기 합작공장 드니프로-대우 설립.
* [[1996년]] 10월 대우증권(주) 동경지점 개점. UZ-Daewoo 자동차 공장 준공. 베트남 비담코 자동차 공장 준공.
* [[1996년]] 11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중국 광케이블 합작회사 우시-대우 설립. 루마니아 합작은행 설립.
* [[1997년]] 3월 우즈베키스탄 대우은행 (Uz-Daewoo Bank) 설립.
* [[1997년]] 4월 인도 종합 가전공장 설립. 군산 종합 자동차공장 준공.
* [[1997년]] 5월 인도 CRB증권 대우파이낸스로 상호 변경. 대우선물(주) 설립.
* [[1997년]] 6월 대우증권(주) 싱가포르 현지법인 설립.
* [[1997년]] 7월 대우리스 체코에 설립.
* [[1997년]] 9월 대우자동차(주) 우크라이나 합작공장 설립계약 체결.
* [[1997년]] 12월 한국전기초자(주) 인수.

=== 해체 ===
대우는 세계경영으로 철저히 현지화를 추구함으로써 1993년 당시 150여개에 불과했던 대한민국 외 국가 현지법인을 1998년 11월에는 396개로 끌어올리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대우는 1997년 다가온 경제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물로 나온 쌍용자동차(주)를 인수하여 소형차에서 대형차는 물론, 버스와 트럭, 사륜구동 SUV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차량을 생산하는 풀라인업을 완성시키고 그 밖에도 해외 현지공장 인수 및 확장을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대우는 1998년 [[삼성그룹|삼성]](三星)을 제치고 재계서열 2위까지 뛰어오른다.
* [[1998년]] 3월 30일 대우자동차(주), 쌍용자동차(주) 인수.
* [[1998년]] 5월 스페인 냉장고 공장 설립.
* [[1998년]] 6월 우크라이나 자동차 법인 AUTOZAZ-DAEWOO 공장 본격 가동.
* [[1998년]] 7월 미국 Fortune 선정 매출 500대 기업 중 세계 18위의 기업으로 도약.
* [[1998년]] 10월 대우중공업(주) 이집트공장 준공.
* [[1998년]] 11월 무역의 날 150억불 수출의 탑 수상.

그러나 경기침체의 장기화와 세계 시장의 위축으로 대우의 입지는 크게 흔들렸고, 개발도상국가 위주로 판매망을 확대해온 대우자동차의 부진이 거듭되었다. 경영여건이 안정되지 못한 상황에서 추진한 쌍용자동차의 인수도 큰 실익을 거두지 못하였고, 외형확대의 초점을 맞추어 경영해오다보니 당시 정부가 요구했던 구조조정에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오다보니 구조조정의 실시가 경쟁 그룹에 비해 늦은 편이었다. 정부 주도의 산업체계 개편에 따라 늦게나마 추진한 대우전자-삼성자동차 빅딜협상은 양사간 입장차이로 끝내 결렬되었으며, 1999년 여름에 접어들면서 그룹의 운명을 좌우할 대우와 GM과의 협상(대우차와의 경영권 문제)마저도 실패한 대우는 급속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자금난이 가중되던 대우는 알짜자산인 힐튼호텔 매각 등을 성사시키기도 하지만 1999년 3월에는 이미 부채 비율을 무려 400%를 훨씬 넘은 상태여서 수습이 어려운 지경이었다. 7월 대우는 초고강도 구조조정안을 발표하였으나 채권단은 이를 반려한다. 결국 대우는 1999년 8월 16일 채권단의 재무구조개선수정약정 체결과 더불어, 26일 채권단 관리하에 워크아웃을 맞이함으로써 그룹 해체의 길로 접어든다. 지난 1967년 창업 이래 32년간 대한민국에 경쟁성장의 견인차로 역할을 해오던 기업 중 하나로서, 1993년 세계경영을 선포한지 6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 [[1998년]] 11월 대우그룹 1차 구조조정안 발표.
* [[1998년]] 12월 대우전자(주) 및 삼성자동차(주) 빅딜 발표. (사업맞교환)
* [[1999년]] 4월 19일 대우 2차 구조조정안 발표. (대우 조선, 상용차, 힐튼호텔 등 매각)
* [[1999년]] 6월 30일 삼성자동차 워크아웃 돌입.
* [[1999년]] 7월 16일 대우그룹 구조조정안 발표. (자동차 전문그룹으로의 재탄생)
* [[1999년]] 8월 3일 제일은행 등 채권단 구조조정안 반려.
* [[1999년]] 8월 16일 대우 채권단, 재무구조개선수정약정 체결.
* [[1999년]] 8월 26일 (주)대우, 대우중공업(주), 대우자동차(주), 대우전자(주) 등 12개 회사 워크아웃 돌입.
* [[1999년]] 8월 30일 대우증권(주) 계열 분리, 채권단으로 이양.
* [[1999년]] 10월 김우중 회장, 중국 옌타이 대우자동차 부품공장 준공식 참석.
* [[1999년]] 11월 1일 대우 회장 및 대우그룹 사장단 퇴진.
* [[2000년]] 4월 15일 대규모기업집단 지정 제외.

한 때 세계 경영의 첨병으로 불렸던 대우의 몰락은 경제계에 큰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대우사태는 당대 큰 기업은 절대 흥한다는 '대마불사'의 신화를 깨고 차입경영을 일삼는 부실기업을 과감하게 퇴출시킨 사례로 건실한 기업풍토 조성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이 있는 반면, 대우가 밝혀지지 않은 요인(정치적 문제 또는 국제적 외압)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여론도 일부 존재하고 있어 지금도 눈길을 끈다.

== 구 대우그룹 계열사 ==
현재 대우의 계열사들은 그룹 해체 후 자립 혹은 새로운 기업의 인수를 통해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그룹이 해체된 이후에도 포스코대우, 대우건설, 대우조선해양 등 몇몇 회사들은 여전히 대우의 이름을 유지하며 성공적으로 영업 중이다.

=== 자동차 사업 ===
대우가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자동차 사업은 [[1997년]] 신차 출시, [[1998년]] [[KG모빌리티|쌍용자동차]] 인수에 따른 사세 확장으로 대한민국 시장에서 호조를 거두었으나 부채 누적으로 인한 만성적인 적자로, 대우그룹 핵심 계열사들이 워크아웃에 돌입하면서 완전히 공중분해되고 말았다.

대우자동차(주)는 [[포드]], [[제너럴 모터스]](GM) 등 두 양사간의 해외 매각 의사를 타진하였으나 최종적으로 협상이 모두 결렬되었으며, 대우자동차(주)는 경영 정상화 실패로 인해 [[2000년]] [[11월 10일]]에 [[인천지방법원]]에 법정관리(정리절차) 개시 신청을 냈고, 노사가 극적으로 노사협의회 합의문에 합의한 후, 회사 측의 자구의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여, 법정관리 개시 결정이 내려졌다.

대우자동차는 GM 매각을 위한 구조조정 계획의 일환으로, 9992억 원의 자구계획을 마련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가 인력을 7300여 명 줄이고 재료비, 경상비, 투자비 등을 대폭 감축했으며, 부평공장 생산직 직원 1750명이 강제로 거리로 내몰리는 역대 최대 규모의 정리해고가 김대중 정부 출범 당시에 근로기준법 개정 이후, [[2001년]] 2월초에 단행되기도 했다.

미국 GM이 2001년 6월초에 대우차 인수 의향서를 제출하여, 이듬해인 [[2002년]] [[10월 28일]]에 GM대우(현 [[한국지엠]])라는 외국계 기업으로 새롭게 출범했고, 대한민국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확대에 실패하여 고전을 계속하였던 GM대우는 글로벌 GM의 전략적 요충지로 키우기 위해서 [[2011년 1월]] [[쉐보레]] 브랜드로의 흡수 통합을 선언하였으며, [[2011년]] [[한국GM]](주)가 새롭게 출범하였다.

GM이 인수하지 않은 버스부문, 상용차부문, 부평공장은 [[대우버스]](주), [[타타대우상용차|대우상용차]](주), 대우인천자동차(주)로 분할, 매각되었다.

대우자동차(주)의 버스부문인 [[대우버스]](주)는 [[영안모자]]에 매각되었고, 트럭을 생산하는 상용차 부문은 [[인도]] 최대의 재벌인 [[타타]](TATA)에 매각되어 [[타타대우상용차]](주)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대우그룹 시절 대우자동차와의 합병을 계획하였던 [[KG모빌리티|쌍용자동차]](주)는 대우그룹의 구조조정 당시 대우차와의 분리 매각이 결정되면서 [[2000년 4월]] 대우 계열에서 정식으로 분리되었다. 후에 쌍용자동차(주)는 [[2005년]] [[중국]] 국영자동차회사인 [[상하이자동차]] 그룹에 인수되어, 미국발 금융 위기로 인한 판매 부진이 계속 거듭되면서 [[2009년]] 쌍용자동차(주)의 경영권을 포기하고 한국 시장에 철수하였다. [[2009년]] 쌍용자동차(주)는 법정관리 체제에 들어갔으며, 구조조정에 따른 대규모 정리해고 사태로 노사간의 첨예한 대립까지 위태로울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다가 [[2010년]] 말 인도의 [[마힌드라]] 자동차에 인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 건설, 무역 ===
[[1999년]] 워크아웃으로 (주)대우지스틱스가 먼저 분사되었으며, [[2000년 12월]] 모기업 (주)[[포스코인터내셔널|대우]]가 3개사로 재탄생한다. 청산을 위한 (주)대우 존속법인과 무역부문의 (주)[[포스코인터내셔널|대우인터내셔널]], 건설부문의 (주)[[대우건설]]로 나뉜다.

(주)대우인터내셔널은 대우의 모태사업인 무역은 물론 백화점 등 사업도 하고 있다. [[2010년]] [[포스코]]에 인수되었고, 지금의 [[포스코인터내셔널|포스코대우]]로 재출범한다. 백화점 사업은 2014년 [[롯데쇼핑]](주)에서 인수하여 롯데백화점 마산점이 되었다.

(주)[[대우건설]]은 워크아웃을 단기에 졸업했으며 [[2006년 12월]]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인수되었다. 그러나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무리한 인수합병으로 인한 후유증에 세계 금융위기까지 겪으며 극심한 자금난을 겪자, 2010년 (주)대우건설에 대한 경영권을 포기하였고, [[2011년 1월]]에 금호아시아나 계열에서 정식으로 분리되었다. 현재 최대주주는 [[한국산업은행]]이다.

대우그룹의 또다른 건설회사였던 [[경남기업]](주)는 [[성완종]]이 이끄는 충남지역 건설사인 대아건설(주)에 인수되었다가 [[2004년]]에 대아건설(주)을 합병하면서 국내 10위권의 대형 건설사로 성장가도를 달린다. [[2009년]] 대한민국 건설사들의 잇따른 경영난으로 워크아웃을 재차 겪지만, 실적 개선 등에 힘입어 [[2011년 5월]] 워크아웃을 졸업하는데 성공한다. [[2015년]] 하지만 건설업계 불황이 장기화되고 기업의 오너(Owner)인 성완종이 자원외교비리수사에 연루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2015년 4월]] 마침내 [[경남기업]]은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만다. [[2017년]] [[sm그룹]]이 인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 중공업, 조선 ===
[[2000년]] [[대우중공업]](주)도 대우종합기계(주), 대우조선공업(주) 그리고 대우중공업(주) 잔존법인으로 분할되었다.

주력부문이었던 중장비 및 군수물자 생산을 담당하는 대우종합기계(주)는 [[2005년]]에 [[두산]] 계열로 편입, [[두산인프라코어]](주)로 재탄생하였다.

대우중공업의 조선해양부문은 대우조선공업 주식회사로 분사되었다가 곧 [[대우조선해양]]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한다. 2000년대 조선업계의 호황으로 대우의 계열사 중 가장 먼저 워크아웃을 졸업한 회사로도 주목받았고, 조선업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을 기반으로 건설, 상조사업 등에도 진출하며 자체적으로 조선사업 중심의 기업집단을 일구었다. 2000년 출범한 이래 수년간 경쟁업체인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과 함께 선박 수주잔량으로 세계 수위권을 다투왔지만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변곡점으로 대우조선해양은 2010년대 중반에 이르러 조선업황의 악화로 존폐의 기로에 놓여있는 상태이다.

대우중공업이 3개사로 분할되기 전인 [[1999년 7월]]에는 철도차량 생산부문이 경쟁사인 [[현대정공]](주), [[한진중공업]](주)와 함께 현물출자 형식으로 단일법인을 설립함으로써 국내 유일의 철차제작업체인 [[한국철도차량]]주식회사가 탄생하였다. 하지만 대우종합기계(주)가 승계받은 한국철도차량(주)의 지분은 경영정상화를 위해 [[2001년]]에 [[현대자동차그룹]]에 전량 매각됨으로써 주식회사 [[로템]](現 현대로템(주))으로 재출범한다.

대우중공업(주)의 항공사업부문도 [[1999년 8월]]에 [[삼성항공산업]](주), 현대우주항공(주)과 통합하여 새로이 [[한국항공우주산업]](주)로 출범하였지만, [[대우중공업]]의 지분을 인계받은 [[두산그룹]]의 DIP홀딩스에서는 2016년 [[한국항공우주산업]]의 보유지분을 전부 정리하였다.

=== 전자, 통신 ===
한때 세계 각국의 생산기지를 설치하며 세계적인 전자기업을 표방해 오던 대우전자(주)는 [[1999년]] 워크아웃 대상기업으로 지정되었고, [[2000년 4월]] 대우전자 중심의 기업집단을 구축하고 비수익 사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피아노 사업을 담당하는 벨로체, 컴퓨터 사업을 담당하는 [[루컴즈전자|대우루컴즈]], 가스보일러 사업을 담당하는 대우가스보일러 등이 독립된 업체로 분리되었다. [[2002년]] [[위니아전자|대우전자]]의 TV, 백색가전 등 주력 핵심사업부문이 대부분 [[위니아전자|대우모터공업]] 주식회사로 인계되어 이듬해인 [[2003년]]에 (주)[[대우일렉트로닉스]]로 재출범하였다. 이후에도 [[2008년]] 대우디스플레이 등이 분리되어 [[위니아전자|대우일렉트로닉스]]는 사실상 백색가전 전문업체가 되었다. 2013년 동부그룹이 인수함으로써 [[위니아전자|동부대우전자]] 주식회사로 이름이 바뀌다가 2018년 대유그룹이 인수하여 주식회사 대우전자로 부활하였다. [[2019년]] 주식회사 위니아대우 로 이름이 바꿔다가 [[2020년]] 주식회사 위니아전자로 이름이 바꿨다.

[[대우전자부품]]도 1999년 대우그룹 구조조정으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대상으로 지정되었다. 2000년 4월 대우그룹에서 분리되었다.2008년 회생절차개시 결정을 받았고, 2010년 2월 회생절차 종결 결정을 받았다. 그 후 [[현대자동차]]의 1차 협력그룹인 [[아진그룹]]이 인수했다.

대우통신(주)은 정상화를 위해 통신 관련사업부문을 매각하여 컴퓨터사업은 대우컴퓨터에 양도하였으며 그밖에 사업부문은 대우텔레텍, 대우글로벌 그리고 1999년 합병된 대우정밀공업 계열의 업체들은 대우정밀, 대우파워트레인, 대우프라스틱 등으로 분사되었다.

대우정밀(주)은 에스엔티(S&T그룹)에 인수되어 현재 [[S&T모티브]]로 운영 중이며 대우파워트레인(주)은 GM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컴퍼니(지금의 한국지엠주식회사)에 매각되었고, 대우프라스틱(주)는 삼라마이다스그룹(SM그룹)으로 매각된 후 대우라이프(주)로 바뀌었다가 계열사인 남선알미늄(주)에 합병되었다.

전자 계열사였던 오리온전기(주), 한국전기초자(주), 광전자(주) 등도 워크아웃을 맞아 자취를 감추거나 독자생존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 금융 ===
대우증권(주)는 [[1999년]] 대우가 해체되기 전 채권단이 인수하였으며 후에 대주주가 [[한국산업은행]]으로 변경된다. [[2009년]]에는 한국산업은행의 민영화에 따라 새로이 출범한 [[KDB금융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2015년]]에는 [[미래에셋금융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2001년 8월]] (주)다이너스카드클럽코리아는 [[현대자동차]](주)에 매각되어 [[현대카드]](주)로 변경되었다.

대우캐피탈(주)는 아주그룹에 편입되어 아주캐피탈(주)로 바뀌었다.

=== 스포츠 ===
대우그룹에서 운영 중이던 [[부산 아이파크|부산 대우 로얄즈]]는 [[현대산업개발]]에 매각, [[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인천 대우 제우스]]는 [[신세기통신]]에 매각되고 인천 신세기 빅스로 변경하며 현재 [[부산 아이파크]]와 [[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 미디어 ===
케이블 채널 중에서 대우시네마네트워크는 [[오리온홀딩스|동양그룹]]에 매각되어 [[OCN (텔레비전 채널)|OCN]](현재 [[CJ그룹|CJ]] 산하)으로 변경되었다.

== 같이 보기 ==
=== 건설, 무역 ===
* (주)대우 무역 → [[포스코인터내셔널|포스코대우]] ([[포스코]]에 인수) → [[포스코인터내셔널]]
* (주)대우 건설 → [[대우건설]] (최대주주 [[한국산업은행]])
* (주)대우 백화점 → [[롯데백화점]] 마산점 ([[롯데백화점|롯데쇼핑]]에 인수)

=== 자동차 ===
* 대우자동차 → GM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 → [[한국지엠]] (2002년 [[제너럴 모터스]]에 인수)
* 대우자동차 버스 부문 → [[자일대우버스]] (2003년 [[영안모자]]에 인수)
* 대우자동차 상용차 부문 → [[타타대우상용차]] (2004년 [[타타]]에 인수)
* 쌍용자동차→[[KG모빌리티]] (1998년 [[대우자동차]]에서 인수, 2004년 [[상하이자동차]]에 인수, 2010년 [[마힌드라]]에 피인수, 2022년 [[KG그룹]]에 피인수)
* 대우자동차판매 자동차판매 부분 → [[대우자동차판매]] (2010년 [[영안모자]]에 인수)
* 대우자동차판매 건설 부문 → [[대우산업개발]] (2011년 중국 풍화(豊華)그룹에 인수)

=== 중공업 ===
* 대우중공업 종합기계 부문 → [[두산인프라코어]] (2005년 [[두산그룹]]에 인수)
* 대우중공업 조선해양 부문 → [[대우조선해양]] → [[한화오션]]
* 대우중공업 철도차량 부문 → [[현대로템]] (2001년 [[현대자동차그룹]]에 인수)

=== 전자 ===
* 대우전자 → [[위니아전자|동부대우전자]] → [[위니아전자|대우전자]] (2018년 [[대유그룹]]에 인수) → [[위니아전자|위니아대우]] → [[위니아전자]]
* 대우정밀공업 → [[S&T모티브]] (2006년 [[S&T그룹]]에 인수)

=== 금융 ===
* 대우증권 → [[미래에셋대우]] (2016년 [[미래에셋금융그룹]]에 인수)
* 다이너스클럽코리아 → [[현대카드]] (2001년 [[현대자동차그룹]]에 인수)
* 대우캐피탈 → [[아주캐피탈]] (2005년 [[아주그룹]]에 인수)

=== 기타 ===
* 대우엔지니어링 → [[포스코엔지니어링]] (1990년 계열 분리 → 2002년 포스코에 인수)
* 신성통상 (1984년 계열 분리 → 2002년 가나안에서 인수)
* 대창기업
* (주)고려 → SG고려 (구 고려피혁공업주식회사 → 2003년 (주)가로수닷컴에 인수)
* 세계물산 → SG위카스 → [[SG세계물산]] (2002년 SK글로벌에 인수 → 2005년 (주)가로수닷컴에 인수)
* 대우시네마네트워크 → (주)[[OCN (텔레비전 채널)|오리온시네마네트워크]] (1999년 [[동양그룹]]에 인수되어 별도법인인 [[온미디어]] 설립 → 2010년 CJ에 인수 → 2013년 [[CJ ENM]]에 흡수 합병)
* 부산 대우 로얄즈 → [[부산 아이파크]] (2000년 [[현대산업개발]]에 인수)
* 인천 대우 제우스 → 인천 신세기 빅스 (1999년 [[신세기통신]]에 인수)

== 외부 링크 ==
* [https://daewoosky.com/ 대우세계경영연구회]

== 각주 ==
<references/>

{{대우그룹}}

[[분류:대우그룹| ]]
[[분류:대한민국의 기업]]
[[분류:1967년 설립된 기업]]
[[분류:2000년 해체된 기업]]
[[분류:대한민국의 없어진 기업]]
[[분류:대한민국의 브랜드]]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회사 정보
| 이름 = 대우그룹
| 원어 = Daewoo Group
| 워드마크 = Daewoo logo (hangul).svg
| 형태 = 대기업집단(1989년~1999년)
| 창립 = 1967년 3월 22일 (대우실업 주식회사)
| 창립자 = [[김우중]](대표이사 회장)
| 해체 = 1999년 11월 1일
| 국가 = {{KOR}}
| 장소 = 대우센터빌딩(1977년~1999년)
| 사업 지역 =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 인물 = 김우중(대표이사 회장)
| 산업 = 자동차, 전자, 조선, 건설
| 주요사업부문 = 자동차, 전자, 조선, 건설, 무역, 금융
| 자본금 = 5,000,000원(1967년 기준)
| 매출액 = 분식회계로 정확히 추산불가
| 매출 = 78조원(1999년 기준)
| 영업이익 = -4조원(1999년 기준)
| 자산 총액 = 자본 약 15조 부채 89조
| 주주 = 김우중
| 모기업 = (주)[[포스코인터내셔널|대우]]
| 계열사 = [[대우전자]], [[대우건설]], [[한국GM|대우자동차]], [[대우조선]], [[대우증권]], [[쌍용자동차]] 外
}}

'''대우그룹'''(大宇─, Daewoo Group)은 [[1967년]] 창립한 [[포스코인터내셔널|대우실업]]을 모태로 [[1980년대]]부터 [[1990년대]] 말까지 존재한 [[대한민국]]의 대규모 기업집단이었다.<ref>[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1997120912000601 대우그룹, 쌍용自인수로 재계순위‘3위’]《문화일보》1997년 12월 9일 김병직 기자</ref> 대도섬유의 대(大)와 김우중의 우(宇)를 따서 만들었다. 섬유·무역·건설·조선·중장비·자동차·전자·통신·관광·금융 등 여러 사업부문을 두었으며, [[1993년]] 세계경영 전략 채택 이후 강력한 외형확장으로 사세를 넓혀갔고 [[1998년]]에는 [[현대그룹]]에 이어 재계 2위에 올랐으나 외환위기 이후, 자체 구조조정 실패와 [[1999년]] [[삼성그룹|삼성]]과의 전자-자동차 빅딜 실패로 [[1999년 10월]]부터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그룹 해체를 맞았다.

== 기업연혁 ==
[[파일:Seoul Square.jpg|섬네일|오른쪽|과거 대우그룹의 본사였던 서울스퀘어.]]
대우는 1967년 소규모 사업체로 창업하였으나, 1970년대 경제성장 및 수출호조에 따른 비약적인 발전, 그리고 정부 주도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에 힘입어 단기간에 대한민국 최대기업으로서 성장을 이루게 된다. 대우는 1980년대 후반부터 대한민국 외 국가로 눈을 돌려 동유럽 및 신흥시장 개척을 추진해 왔고, 1993년 세계경영에 나서면서 사세확장을 시도하였다. 이후 외환위기 속에서도 1997년 법정관리에 들어간 쌍용자동차를 인수하였다. 98년 상반기에는 현대그룹에 이은 (자산총액기준) 재계 2위에 올랐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출범이후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자체적 구조조정 실패와 무리한 차입금이 발목을 잡았고 1998년 10월, 대우그룹이 신청한 기업어음(CP)발행이 중단되면서 그룹 위기가 찾아왔다. 1999년이 되면서 삼성그룹과의 대우전자-삼성자동차의 빅딜협상에 들어갔으나 동년 7월, 협상이 결렬되었다. 이후 김우중 회장은 자동차를 중심으로 그룹 구조조정에 뒤늦게 들어갔으나 대우그룹 채권단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1999년 10월, 그룹 해체 수순을 밟았다.

=== 성장 ===
1967년 대우실업 창립 이래, 부산에 공장을 설치하여 1970년대 와이셔츠 등의 봉제품 및 섬유제품의 수출호조와 더불어 경제고도성장으로 급속한 발전을 이루어 신흥 사업체로 주목받았고, 더욱이 정부가 주도하던 경제 정책에 발맞춰 금융, 전자, 중공업, 자동차 사업에도 뛰어들면서 대우 그룹을 형성하게 된다.

* [[1967년]] [[3월 22일]] 모태인 대우실업(주)(대우가족) 창립. (섬유류 봉제품 생산, 수출 주도)
* [[1969년]] 8월 대한민국 기업 해외지사 1호 시드니에 개설.
* [[1971년]] 9월 (주)내쇼날의류 설립.
* [[1972년]] 9월 고려피혁(주) 인수.
* [[1973년]] 쌍미섬유공업(주) 인수. 대우증권의 전신 동양증권(주) 인수. 대우건설(주) 설립.
* [[1975년]] 2월 대우빌딩 착공.
* [[1975년]] 5월 대우실업(주), 종합무역상사 지정.
* [[1976년]] 2월 한국기계공업(주) 인수. 10월 해외건설업면허 취득. 대우중공업(주) 출범.
* [[1977년]] 대우센터 빌딩 준공. 8월 제철화학(주) 경영권 인수.
* [[1978년]] 7월 산업은행으로부터 새한자동차(주) 지분 인수. 대한조선공사 옥포조선소 인수 후 9월 대우조선공업(주) 설립.

=== 도약기 ===
대우 그룹은 (주)대우의 출범과 새한자동차 경영권 장악, 가전사업 진출을 잇달아 성사시키며 현대(現代), 삼성(三星), 럭키금성(LG)과 함께 대한민국 4대 기업군으로 성장한다. 국내 업체들과의 출혈 경쟁에서 기술력과 수익성의 한계를 느낀 대우는 세계로 눈을 돌려 냉전체제의 완화가 도래한 시점에 동유럽 및 공산권 국가에 현지법인을 설립하면서 신시장 개척을 준비하였다.

* [[1981년]] 10월 옥포조선소 준공. 수출의날 15억불탑 수상. 대우실업(주) 및 대우개발(주) 합병 결의.
* [[1982년]] 모기업 (주)대우 출범. 수출의날 20억불탑 수상.
* [[1983년]] 대우자동차(주) 출범. 대우전자(주)에서 대한전선(주)의 가전부문을 흡수. 대우통신(주) 설립.
* [[1984년]] 경남기업(주) 경영 참여. (주)대우경제연구소 설립. 10월 대우자동차부품(주) 설립. 대한민국 최초 VTR 수출.
* [[1986년]] 대우증권 런던사무소 개설. 9월 경남기업(주) 계열 편입.
* [[1987년]] 미얀마 현지 철도차량공장 준공.
* [[1988년]] (주)대우 동베를린지사 설치. 대우투자자문(주) 설립. 프랑스 롱위 전자레인지 공장 건립. 대우증권 홍콩사무소 개설.
* [[1989년]] 제철화학 외 3개사 매각. 대우정보시스템 설립. 대우기전공업㈜ 출범. MHB-Daewoo Bank 설립.
* [[1990년]] (주)대우 모스크바지사 설치. 대우중공업(주) 유럽현지법인 설립. 멕시코 컬러TV 공장 건립.
* [[1991년]] (주)대우 북경지사 설치. 대우증권(주) 유럽현지법인 설립, 취리히사무소 개설.
* [[1992년]] 4월 佛 컬러TV 공장 건립. 佛 컴퓨터 판매법인 설립. 대우증권 美 현지법인 설립. 대우차-GM 제휴관계 청산.

=== 팽창기 ===
(주)대우가 구축한 세계무역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대우자동차(주), 대우중공업(주), 대우전자(주)가 국제적으로 널리 진출하는 '세계경영'은 1993년 '세계경영 우리기술' 슬로건 선포를 시점으로 본격화되었다. 대우가 당시 내세웠던 세계경영은 선진업체가 진출하지 않은 옛 공산권 국가와 앞으로 발전가능성이 무한한 개발도상국 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것으로, 현지법인 설립과 인수합병을 통해 단기간에 정착하여 사세확장을 꾀하는 형태이다. 실제로 대우가 진출을 시도한 개발도상국가의 정부에서는 자국의 경제활성화 목적에서 대우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기에, 대우의 사업확장은 더욱 쉽게 이뤄질 수 있었다. 대한민국 시장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대우자동차(주)의 경우는 대한민국 외 국가에서 판매하는 수량이 대한민국에서 판매하는 수량을 앞지르는 현상을 가져오기도 했다. 이같은 대우의 급속한 성장은 대한민국 경제계와 대한민국 외 국가 경제에 큰 반향을 가져다 주었다.

* [[1993년]] 1월 대우자판 설립.
* [[1993년]] 2월 베트남 합작은행 출자.
* [[1993년]] 3월 세계경영 선포.
* [[1993년]] 5월 우즈벡 가전 공장 설립.
* [[1993년]] 7월 대우중공업(주) 미국현지법인 DEC 설립.
* [[1993년]] 8월 폴란드 TV 공장 설립.
* [[1993년]] 9월 세계최초 공기방울 세탁기 개발.
* [[1994년]] 2월 대우할부금융 설립.
* [[1994년]] 3월 인도 합작증권사 CRB-Daewoo Securities Ltd 출자.
* [[1994년]] 5월 대우자동차(주) 영국 워딩 자동차 기술연구소 건립.
* [[1994년]] 6월 대우중공업 영국현지법인 유로 대우 UK 설립.
* [[1994년]] 10월 대우중공업(주) 대우조선공업 흡수 합병. 중국현지법인 대우중공업연대유한공사 설립.
* [[1994년]] 11월 루마니아 자동차합작공장 DAEWOO-RODAE 설립. 대우중공업(주) 러시아 기술연구소 DISK 설립.
* [[1995년]] 1월 대우중공업(주) 독일 현지법인 ECO 설립. 대우전자(주) 말레이시아 세탁기 공장 설립. 대우뱅크 출범.
* [[1995년]] 2월 대우중공업(주) 일본 현지법인 대우건기 설립.
* [[1995년]] 3월 체코 최대 국영상용차업체 AVIA사 인수. 대우증권(주) 홍콩현지법인 설립.
* [[1995년]] 4월 대우증권(주) 상해사무소 개설.
* [[1995년]] 5월 대한민국 기업 최초, 대북 협력사업 정부승인 획득.
* [[1995년]] 6월 다이너스카드사 인수.
* [[1995년]] 7월 동우개발(주)의 사명을 (주)대우개발로 변경.
* [[1995년]] 9월 베트남 하노이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우즈벡 공화국에 교환기합작공장 알로카대우 설립.
* [[1995년]] 10월 중국천진 팩스밀리 합작공장 설립.
* [[1995년]] 11월 베트남 최초 타포린 합작생산 공장 준공. 폴란드 최대 자동차기업 [[Fabryka Samochodów Osobowych|FSO]] 인수, DAEWOO-FSO 출범.
* [[1996년]] 3월 대우증권(주) 싱가폴사무소 개설. 루마니아 DAEWOO-RODAE 공장 준공.
* [[1996년]] 5월 남북경협 최초회사 민족산업총회사 남포에 설립. 앙골라 대규모 유전발견.
* [[1996년]] 6월 프랑스 롱위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인도뉴델리 첨단 소프트웨어 연구개발센타 설립. 페루육상 유전인수 입찰수주.
* [[1996년]] 7월 한진투자증권 합작 법인 서울투신운용(주) 설립. 우크라이나 대용량교환기 합작공장 드니프로-대우 설립.
* [[1996년]] 10월 대우증권(주) 동경지점 개점. UZ-Daewoo 자동차 공장 준공. 베트남 비담코 자동차 공장 준공.
* [[1996년]] 11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중국 광케이블 합작회사 우시-대우 설립. 루마니아 합작은행 설립.
* [[1997년]] 3월 우즈베키스탄 대우은행 (Uz-Daewoo Bank) 설립.
* [[1997년]] 4월 인도 종합 가전공장 설립. 군산 종합 자동차공장 준공.
* [[1997년]] 5월 인도 CRB증권 대우파이낸스로 상호 변경. 대우선물(주) 설립.
* [[1997년]] 6월 대우증권(주) 싱가포르 현지법인 설립.
* [[1997년]] 7월 대우리스 체코에 설립.
* [[1997년]] 9월 대우자동차(주) 우크라이나 합작공장 설립계약 체결.
* [[1997년]] 12월 한국전기초자(주) 인수.

=== 해체 ===
대우는 세계경영으로 철저히 현지화를 추구함으로써 1993년 당시 150여개에 불과했던 대한민국 외 국가 현지법인을 1998년 11월에는 396개로 끌어올리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대우는 1997년 다가온 경제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물로 나온 쌍용자동차(주)를 인수하여 소형차에서 대형차는 물론, 버스와 트럭, 사륜구동 SUV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차량을 생산하는 풀라인업을 완성시키고 그 밖에도 해외 현지공장 인수 및 확장을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대우는 1998년 [[삼성그룹|삼성]](三星)을 제치고 재계서열 2위까지 뛰어오른다.
* [[1998년]] 3월 30일 대우자동차(주), 쌍용자동차(주) 인수.
* [[1998년]] 5월 스페인 냉장고 공장 설립.
* [[1998년]] 6월 우크라이나 자동차 법인 AUTOZAZ-DAEWOO 공장 본격 가동.
* [[1998년]] 7월 미국 Fortune 선정 매출 500대 기업 중 세계 18위의 기업으로 도약.
* [[1998년]] 10월 대우중공업(주) 이집트공장 준공.
* [[1998년]] 11월 무역의 날 150억불 수출의 탑 수상.

그러나 경기침체의 장기화와 세계 시장의 위축으로 대우의 입지는 크게 흔들렸고, 개발도상국가 위주로 판매망을 확대해온 대우자동차의 부진이 거듭되었다. 경영여건이 안정되지 못한 상황에서 추진한 쌍용자동차의 인수도 큰 실익을 거두지 못하였고, 외형확대의 초점을 맞추어 경영해오다보니 당시 정부가 요구했던 구조조정에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오다보니 구조조정의 실시가 경쟁 그룹에 비해 늦은 편이었다. 정부 주도의 산업체계 개편에 따라 늦게나마 추진한 대우전자-삼성자동차 빅딜협상은 양사간 입장차이로 끝내 결렬되었으며, 1999년 여름에 접어들면서 그룹의 운명을 좌우할 대우와 GM과의 협상(대우차와의 경영권 문제)마저도 실패한 대우는 급속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자금난이 가중되던 대우는 알짜자산인 힐튼호텔 매각 등을 성사시키기도 하지만 1999년 3월에는 이미 부채 비율을 무려 400%를 훨씬 넘은 상태여서 수습이 어려운 지경이었다. 7월 대우는 초고강도 구조조정안을 발표하였으나 채권단은 이를 반려한다. 결국 대우는 1999년 8월 16일 채권단의 재무구조개선수정약정 체결과 더불어, 26일 채권단 관리하에 워크아웃을 맞이함으로써 그룹 해체의 길로 접어든다. 지난 1967년 창업 이래 32년간 대한민국에 경쟁성장의 견인차로 역할을 해오던 기업 중 하나로서, 1993년 세계경영을 선포한지 6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 [[1998년]] 11월 대우그룹 1차 구조조정안 발표.
* [[1998년]] 12월 대우전자(주) 및 삼성자동차(주) 빅딜 발표. (사업맞교환)
* [[1999년]] 4월 19일 대우 2차 구조조정안 발표. (대우 조선, 상용차, 힐튼호텔 등 매각)
* [[1999년]] 6월 30일 삼성자동차 워크아웃 돌입.
* [[1999년]] 7월 16일 대우그룹 구조조정안 발표. (자동차 전문그룹으로의 재탄생)
* [[1999년]] 8월 3일 제일은행 등 채권단 구조조정안 반려.
* [[1999년]] 8월 16일 대우 채권단, 재무구조개선수정약정 체결.
* [[1999년]] 8월 26일 (주)대우, 대우중공업(주), 대우자동차(주), 대우전자(주) 등 12개 회사 워크아웃 돌입.
* [[1999년]] 8월 30일 대우증권(주) 계열 분리, 채권단으로 이양.
* [[1999년]] 10월 김우중 회장, 중국 옌타이 대우자동차 부품공장 준공식 참석.
* [[1999년]] 11월 1일 대우 회장 및 대우그룹 사장단 퇴진.
* [[2000년]] 4월 15일 대규모기업집단 지정 제외.

한 때 세계 경영의 첨병으로 불렸던 대우의 몰락은 경제계에 큰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대우사태는 당대 큰 기업은 절대 흥한다는 '대마불사'의 신화를 깨고 차입경영을 일삼는 부실기업을 과감하게 퇴출시킨 사례로 건실한 기업풍토 조성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이 있는 반면, 대우가 밝혀지지 않은 요인(정치적 문제 또는 국제적 외압)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여론도 일부 존재하고 있어 지금도 눈길을 끈다.

== 구 대우그룹 계열사 ==
현재 대우의 계열사들은 그룹 해체 후 자립 혹은 새로운 기업의 인수를 통해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그룹이 해체된 이후에도 포스코대우, 대우건설, 대우조선해양 등 몇몇 회사들은 여전히 대우의 이름을 유지하며 성공적으로 영업 중이다.

=== 자동차 사업 ===
대우가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자동차 사업은 [[1997년]] 신차 출시, [[1998년]] [[KG모빌리티|쌍용자동차]] 인수에 따른 사세 확장으로 대한민국 시장에서 호조를 거두었으나 부채 누적으로 인한 만성적인 적자로, 대우그룹 핵심 계열사들이 워크아웃에 돌입하면서 완전히 공중분해되고 말았다.

대우자동차(주)는 [[포드]], [[제너럴 모터스]](GM) 등 두 양사간의 해외 매각 의사를 타진하였으나 최종적으로 협상이 모두 결렬되었으며, 대우자동차(주)는 경영 정상화 실패로 인해 [[2000년]] [[11월 10일]]에 [[인천지방법원]]에 법정관리(정리절차) 개시 신청을 냈고, 노사가 극적으로 노사협의회 합의문에 합의한 후, 회사 측의 자구의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여, 법정관리 개시 결정이 내려졌다.

대우자동차는 GM 매각을 위한 구조조정 계획의 일환으로, 9992억 원의 자구계획을 마련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가 인력을 7300여 명 줄이고 재료비, 경상비, 투자비 등을 대폭 감축했으며, 부평공장 생산직 직원 1750명이 강제로 거리로 내몰리는 역대 최대 규모의 정리해고가 김대중 정부 출범 당시에 근로기준법 개정 이후, [[2001년]] 2월초에 단행되기도 했다.

미국 GM이 2001년 6월초에 대우차 인수 의향서를 제출하여, 이듬해인 [[2002년]] [[10월 28일]]에 GM대우(현 [[한국지엠]])라는 외국계 기업으로 새롭게 출범했고, 대한민국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확대에 실패하여 고전을 계속하였던 GM대우는 글로벌 GM의 전략적 요충지로 키우기 위해서 [[2011년 1월]] [[쉐보레]] 브랜드로의 흡수 통합을 선언하였으며, [[2011년]] [[한국GM]](주)가 새롭게 출범하였다.

GM이 인수하지 않은 버스부문, 상용차부문, 부평공장은 [[대우버스]](주), [[타타대우상용차|대우상용차]](주), 대우인천자동차(주)로 분할, 매각되었다.

대우자동차(주)의 버스부문인 [[대우버스]](주)는 [[영안모자]]에 매각되었고, 트럭을 생산하는 상용차 부문은 [[인도]] 최대의 재벌인 [[타타]](TATA)에 매각되어 [[타타대우상용차]](주)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대우그룹 시절 대우자동차와의 합병을 계획하였던 [[KG모빌리티|쌍용자동차]](주)는 대우그룹의 구조조정 당시 대우차와의 분리 매각이 결정되면서 [[2000년 4월]] 대우 계열에서 정식으로 분리되었다. 후에 쌍용자동차(주)는 [[2005년]] [[중국]] 국영자동차회사인 [[상하이자동차]] 그룹에 인수되어, 미국발 금융 위기로 인한 판매 부진이 계속 거듭되면서 [[2009년]] 쌍용자동차(주)의 경영권을 포기하고 한국 시장에 철수하였다. [[2009년]] 쌍용자동차(주)는 법정관리 체제에 들어갔으며, 구조조정에 따른 대규모 정리해고 사태로 노사간의 첨예한 대립까지 위태로울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다가 [[2010년]] 말 인도의 [[마힌드라]] 자동차에 인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 건설, 무역 ===
[[1999년]] 워크아웃으로 (주)대우지스틱스가 먼저 분사되었으며, [[2000년 12월]] 모기업 (주)[[포스코인터내셔널|대우]]가 3개사로 재탄생한다. 청산을 위한 (주)대우 존속법인과 무역부문의 (주)[[포스코인터내셔널|대우인터내셔널]], 건설부문의 (주)[[대우건설]]로 나뉜다.

(주)대우인터내셔널은 대우의 모태사업인 무역은 물론 백화점 등 사업도 하고 있다. [[2010년]] [[포스코]]에 인수되었고, 지금의 [[포스코인터내셔널|포스코대우]]로 재출범한다. 백화점 사업은 2014년 [[롯데쇼핑]](주)에서 인수하여 롯데백화점 마산점이 되었다.

(주)[[대우건설]]은 워크아웃을 단기에 졸업했으며 [[2006년 12월]]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인수되었다. 그러나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무리한 인수합병으로 인한 후유증에 세계 금융위기까지 겪으며 극심한 자금난을 겪자, 2010년 (주)대우건설에 대한 경영권을 포기하였고, [[2011년 1월]]에 금호아시아나 계열에서 정식으로 분리되었다. 현재 최대주주는 [[한국산업은행]]이다.

대우그룹의 또다른 건설회사였던 [[경남기업]](주)는 [[성완종]]이 이끄는 충남지역 건설사인 대아건설(주)에 인수되었다가 [[2004년]]에 대아건설(주)을 합병하면서 국내 10위권의 대형 건설사로 성장가도를 달린다. [[2009년]] 대한민국 건설사들의 잇따른 경영난으로 워크아웃을 재차 겪지만, 실적 개선 등에 힘입어 [[2011년 5월]] 워크아웃을 졸업하는데 성공한다. [[2015년]] 하지만 건설업계 불황이 장기화되고 기업의 오너(Owner)인 성완종이 자원외교비리수사에 연루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2015년 4월]] 마침내 [[경남기업]]은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만다. [[2017년]] [[sm그룹]]이 인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 중공업, 조선 ===
[[2000년]] [[대우중공업]](주)도 대우종합기계(주), 대우조선공업(주) 그리고 대우중공업(주) 잔존법인으로 분할되었다.

주력부문이었던 중장비 및 군수물자 생산을 담당하는 대우종합기계(주)는 [[2005년]]에 [[두산]] 계열로 편입, [[두산인프라코어]](주)로 재탄생하였다.

대우중공업의 조선해양부문은 대우조선공업 주식회사로 분사되었다가 곧 [[대우조선해양]]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한다. 2000년대 조선업계의 호황으로 대우의 계열사 중 가장 먼저 워크아웃을 졸업한 회사로도 주목받았고, 조선업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을 기반으로 건설, 상조사업 등에도 진출하며 자체적으로 조선사업 중심의 기업집단을 일구었다. 2000년 출범한 이래 수년간 경쟁업체인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과 함께 선박 수주잔량으로 세계 수위권을 다투왔지만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변곡점으로 대우조선해양은 2010년대 중반에 이르러 조선업황의 악화로 존폐의 기로에 놓여있는 상태이다.

대우중공업이 3개사로 분할되기 전인 [[1999년 7월]]에는 철도차량 생산부문이 경쟁사인 [[현대정공]](주), [[한진중공업]](주)와 함께 현물출자 형식으로 단일법인을 설립함으로써 국내 유일의 철차제작업체인 [[한국철도차량]]주식회사가 탄생하였다. 하지만 대우종합기계(주)가 승계받은 한국철도차량(주)의 지분은 경영정상화를 위해 [[2001년]]에 [[현대자동차그룹]]에 전량 매각됨으로써 주식회사 [[로템]](現 현대로템(주))으로 재출범한다.

대우중공업(주)의 항공사업부문도 [[1999년 8월]]에 [[삼성항공산업]](주), 현대우주항공(주)과 통합하여 새로이 [[한국항공우주산업]](주)로 출범하였지만, [[대우중공업]]의 지분을 인계받은 [[두산그룹]]의 DIP홀딩스에서는 2016년 [[한국항공우주산업]]의 보유지분을 전부 정리하였다.

=== 전자, 통신 ===
한때 세계 각국의 생산기지를 설치하며 세계적인 전자기업을 표방해 오던 대우전자(주)는 [[1999년]] 워크아웃 대상기업으로 지정되었고, [[2000년 4월]] 대우전자 중심의 기업집단을 구축하고 비수익 사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피아노 사업을 담당하는 벨로체, 컴퓨터 사업을 담당하는 [[루컴즈전자|대우루컴즈]], 가스보일러 사업을 담당하는 대우가스보일러 등이 독립된 업체로 분리되었다. [[2002년]] [[위니아전자|대우전자]]의 TV, 백색가전 등 주력 핵심사업부문이 대부분 [[위니아전자|대우모터공업]] 주식회사로 인계되어 이듬해인 [[2003년]]에 (주)[[대우일렉트로닉스]]로 재출범하였다. 이후에도 [[2008년]] 대우디스플레이 등이 분리되어 [[위니아전자|대우일렉트로닉스]]는 사실상 백색가전 전문업체가 되었다. 2013년 동부그룹이 인수함으로써 [[위니아전자|동부대우전자]] 주식회사로 이름이 바뀌다가 2018년 대유그룹이 인수하여 주식회사 대우전자로 부활하였다. [[2019년]] 주식회사 위니아대우 로 이름이 바꿔다가 [[2020년]] 주식회사 위니아전자로 이름이 바꿨다.

[[대우전자부품]]도 1999년 대우그룹 구조조정으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대상으로 지정되었다. 2000년 4월 대우그룹에서 분리되었다.2008년 회생절차개시 결정을 받았고, 2010년 2월 회생절차 종결 결정을 받았다. 그 후 [[현대자동차]]의 1차 협력그룹인 [[아진그룹]]이 인수했다.

대우통신(주)은 정상화를 위해 통신 관련사업부문을 매각하여 컴퓨터사업은 대우컴퓨터에 양도하였으며 그밖에 사업부문은 대우텔레텍, 대우글로벌 그리고 1999년 합병된 대우정밀공업 계열의 업체들은 대우정밀, 대우파워트레인, 대우프라스틱 등으로 분사되었다.

대우정밀(주)은 에스엔티(S&T그룹)에 인수되어 현재 [[S&T모티브]]로 운영 중이며 대우파워트레인(주)은 GM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컴퍼니(지금의 한국지엠주식회사)에 매각되었고, 대우프라스틱(주)는 삼라마이다스그룹(SM그룹)으로 매각된 후 대우라이프(주)로 바뀌었다가 계열사인 남선알미늄(주)에 합병되었다.

전자 계열사였던 오리온전기(주), 한국전기초자(주), 광전자(주) 등도 워크아웃을 맞아 자취를 감추거나 독자생존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 금융 ===
대우증권(주)는 [[1999년]] 대우가 해체되기 전 채권단이 인수하였으며 후에 대주주가 [[한국산업은행]]으로 변경된다. [[2009년]]에는 한국산업은행의 민영화에 따라 새로이 출범한 [[KDB금융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2015년]]에는 [[미래에셋금융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2001년 8월]] (주)다이너스카드클럽코리아는 [[현대자동차]](주)에 매각되어 [[현대카드]](주)로 변경되었다.

대우캐피탈(주)는 아주그룹에 편입되어 아주캐피탈(주)로 바뀌었다.

=== 스포츠 ===
대우그룹에서 운영 중이던 [[부산 아이파크|부산 대우 로얄즈]]는 [[현대산업개발]]에 매각, [[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인천 대우 제우스]]는 [[신세기통신]]에 매각되고 인천 신세기 빅스로 변경하며 현재 [[부산 아이파크]]와 [[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 미디어 ===
케이블 채널 중에서 대우시네마네트워크는 [[오리온홀딩스|동양그룹]]에 매각되어 [[OCN (텔레비전 채널)|OCN]](현재 [[CJ그룹|CJ]] 산하)으로 변경되었다.

== 같이 보기 ==
=== 건설, 무역 ===
* (주)대우 무역 → [[포스코인터내셔널|포스코대우]] ([[포스코]]에 인수) → [[포스코인터내셔널]]
* (주)대우 건설 → [[대우건설]] (최대주주 [[한국산업은행]])
* (주)대우 백화점 → [[롯데백화점]] 마산점 ([[롯데백화점|롯데쇼핑]]에 인수)

=== 자동차 ===
* 대우자동차 → GM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 → [[한국지엠]] (2002년 [[제너럴 모터스]]에 인수)
* 대우자동차 버스 부문 → [[자일대우버스]] (2003년 [[영안모자]]에 인수)
* 대우자동차 상용차 부문 → [[타타대우상용차]] (2004년 [[타타]]에 인수)
* 쌍용자동차→[[KG모빌리티]] (1998년 [[대우자동차]]에서 인수, 2004년 [[상하이자동차]]에 인수, 2010년 [[마힌드라]]에 피인수, 2022년 [[KG그룹]]에 피인수)
* 대우자동차판매 자동차판매 부분 → [[대우자동차판매]] (2010년 [[영안모자]]에 인수)
* 대우자동차판매 건설 부문 → [[대우산업개발]] (2011년 중국 풍화(豊華)그룹에 인수)

=== 중공업 ===
* 대우중공업 종합기계 부문 → [[두산인프라코어]] (2005년 [[두산그룹]]에 인수)
* 대우중공업 조선해양 부문 → [[대우조선해양]] → [[한화오션]]
* 대우중공업 철도차량 부문 → [[현대로템]] (2001년 [[현대자동차그룹]]에 인수)

=== 전자 ===
* 대우전자 → [[위니아전자|동부대우전자]] → [[위니아전자|대우전자]] (2018년 [[대유그룹]]에 인수) → [[위니아전자|위니아대우]] → [[위니아전자]]
* 대우정밀공업 → [[S&T모티브]] (2006년 [[S&T그룹]]에 인수)

=== 금융 ===
* 대우증권 → [[미래에셋대우]] (2016년 [[미래에셋금융그룹]]에 인수)
* 다이너스클럽코리아 → [[현대카드]] (2001년 [[현대자동차그룹]]에 인수)
* 대우캐피탈 → [[아주캐피탈]] (2005년 [[아주그룹]]에 인수)

=== 기타 ===
* 대우엔지니어링 → [[포스코엔지니어링]] (1990년 계열 분리 → 2002년 포스코에 인수)
* 신성통상 (1984년 계열 분리 → 2002년 가나안에서 인수)
* 대창기업
* (주)고려 → SG고려 (구 고려피혁공업주식회사 → 2003년 (주)가로수닷컴에 인수)
* 세계물산 → SG위카스 → [[SG세계물산]] (2002년 SK글로벌에 인수 → 2005년 (주)가로수닷컴에 인수)
* 대우시네마네트워크 → (주)[[OCN (텔레비전 채널)|오리온시네마네트워크]] (1999년 [[동양그룹]]에 인수되어 별도법인인 [[온미디어]] 설립 → 2010년 CJ에 인수 → 2013년 [[CJ ENM]]에 흡수 합병)
* 부산 대우 로얄즈 → [[부산 아이파크]] (2000년 [[현대산업개발]]에 인수)
* 인천 대우 제우스 → 인천 신세기 빅스 (1999년 [[신세기통신]]에 인수)

== 외부 링크 ==
* [https://daewoosky.com/ 대우세계경영연구회]

== 각주 ==
<references/>

{{대우그룹}}

[[분류:대우그룹| ]]
[[분류:대한민국의 기업]]
[[분류:1967년 설립된 기업]]
[[분류:2000년 해체된 기업]]
[[분류:대한민국의 없어진 기업]]
[[분류:대한민국의 브랜드]]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회사 정보
| 이름 = 대우그룹
| 원어 = Daewoo Group
| 워드마크 = Daewoo logo (hangul).svg
| 형태 = 대기업집단(1989년~1999년)
| 창립 = 1967년 3월 22일 (대우실업 주식회사)
| 창립자 = [[김우중]](대표이사 회장)
| 해체 = 1999년 11월 1일
| 국가 = {{KOR}}
| 장소 = 대우센터빌딩(1977년~1999년)
| 사업 지역 =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 인물 = 김우중(대표이사 회장)
| 산업 = 자동차, 전자, 조선, 건설
| 주요사업부문 = 자동차, 전자, 조선, 건설, 무역, 금융
| 자본금 = 5,000,000원(1967년 기준)
| 매출액 = 분식회계로 정확히 추산불가
| 매출 = 78조원(1999년 기준)
| 영업이익 = -4조원(1999년 기준)
| 자산 총액 = 자본 약 15조 부채 89조
| 주주 = 김우중
| 모기업 = (주)[[포스코인터내셔널|대우]]
| 계열사 = [[대우전자]], [[대우건설]], [[한국GM|대우자동차]], [[대우조선]], [[대우증권]], [[쌍용자동차]] 外
}}

'''대우그룹'''(大宇─, Daewoo Group)은 [[1967년]] 창립한 [[포스코인터내셔널|대우실업]]을 모태로 [[1980년대]]부터 [[1990년대]] 말까지 존재한 [[대한민국]]의 대규모 기업집단이었다.<ref>[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1997120912000601 대우그룹, 쌍용自인수로 재계순위‘3위’]《문화일보》1997년 12월 9일 김병직 기자</ref> 대도섬유의 대(大)와 김우중의 우(宇)를 따서 만들었다. 섬유·무역·건설·조선·중장비·자동차·전자·통신·관광·금융 등 여러 사업부문을 두었으며, [[1993년]] 세계경영 전략 채택 이후 강력한 외형확장으로 사세를 넓혀갔고 [[1998년]]에는 [[현대그룹]]에 이어 재계 2위에 올랐으나 외환위기 이후, 자체 구조조정 실패와 [[1999년]] [[삼성그룹|삼성]]과의 전자-자동차 빅딜 실패로 [[1999년 10월]]부터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그룹 해체를 맞았다.

== 기업연혁 ==
[[파일:Seoul Square.jpg|섬네일|오른쪽|과거 대우그룹의 본사였던 서울스퀘어.]]
대우는 1967년 소규모 사업체로 창업하였으나, 1970년대 경제성장 및 수출호조에 따른 비약적인 발전, 그리고 정부 주도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에 힘입어 단기간에 대한민국 최대기업으로서 성장을 이루게 된다. 대우는 1980년대 후반부터 대한민국 외 국가로 눈을 돌려 동유럽 및 신흥시장 개척을 추진해 왔고, 1993년 세계경영에 나서면서 사세확장을 시도하였다. 이후 외환위기 속에서도 1997년 법정관리에 들어간 쌍용자동차를 인수하였다. 98년 상반기에는 현대그룹에 이은 (자산총액기준) 재계 2위에 올랐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출범이후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자체적 구조조정 실패와 무리한 차입금이 발목을 잡았고 1998년 10월, 대우그룹이 신청한 기업어음(CP)발행이 중단되면서 그룹 위기가 찾아왔다. 1999년이 되면서 삼성그룹과의 대우전자-삼성자동차의 빅딜협상에 들어갔으나 동년 7월, 협상이 결렬되었다. 이후 김우중 회장은 자동차를 중심으로 그룹 구조조정에 뒤늦게 들어갔으나 대우그룹 채권단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1999년 10월, 그룹 해체 수순을 밟았다.

=== 성장 ===
1967년 대우실업 창립 이래, 부산에 공장을 설치하여 1970년대 와이셔츠 등의 봉제품 및 섬유제품의 수출호조와 더불어 경제고도성장으로 급속한 발전을 이루어 신흥 사업체로 주목받았고, 더욱이 정부가 주도하던 경제 정책에 발맞춰 금융, 전자, 중공업, 자동차 사업에도 뛰어들면서 대우 그룹을 형성하게 된다.

* [[1967년]] [[3월 22일]] 모태인 대우실업(주)(대우가족) 창립. (섬유류 봉제품 생산, 수출 주도)
* [[1969년]] 8월 대한민국 기업 해외지사 1호 시드니에 개설.
* [[1971년]] 9월 (주)내쇼날의류 설립.
* [[1972년]] 9월 고려피혁(주) 인수.
* [[1973년]] 쌍미섬유공업(주) 인수. 대우증권의 전신 동양증권(주) 인수. 대우건설(주) 설립.
* [[1975년]] 2월 대우빌딩 착공.
* [[1975년]] 5월 대우실업(주), 종합무역상사 지정.
* [[1976년]] 2월 한국기계공업(주) 인수. 10월 해외건설업면허 취득. 대우중공업(주) 출범.
* [[1977년]] 대우센터 빌딩 준공. 8월 제철화학(주) 경영권 인수.
* [[1978년]] 7월 산업은행으로부터 새한자동차(주) 지분 인수. 대한조선공사 옥포조선소 인수 후 9월 대우조선공업(주) 설립.

=== 도약기 ===
대우 그룹은 (주)대우의 출범과 새한자동차 경영권 장악, 가전사업 진출을 잇달아 성사시키며 현대(現代), 삼성(三星), 럭키금성(LG)과 함께 대한민국 4대 기업군으로 성장한다. 국내 업체들과의 출혈 경쟁에서 기술력과 수익성의 한계를 느낀 대우는 세계로 눈을 돌려 냉전체제의 완화가 도래한 시점에 동유럽 및 공산권 국가에 현지법인을 설립하면서 신시장 개척을 준비하였다.

* [[1981년]] 10월 옥포조선소 준공. 수출의날 15억불탑 수상. 대우실업(주) 및 대우개발(주) 합병 결의.
* [[1982년]] 모기업 (주)대우 출범. 수출의날 20억불탑 수상.
* [[1983년]] 대우자동차(주) 출범. 대우전자(주)에서 대한전선(주)의 가전부문을 흡수. 대우통신(주) 설립.
* [[1984년]] 경남기업(주) 경영 참여. (주)대우경제연구소 설립. 10월 대우자동차부품(주) 설립. 대한민국 최초 VTR 수출.
* [[1986년]] 대우증권 런던사무소 개설. 9월 경남기업(주) 계열 편입.
* [[1987년]] 미얀마 현지 철도차량공장 준공.
* [[1988년]] (주)대우 동베를린지사 설치. 대우투자자문(주) 설립. 프랑스 롱위 전자레인지 공장 건립. 대우증권 홍콩사무소 개설.
* [[1989년]] 제철화학 외 3개사 매각. 대우정보시스템 설립. 대우기전공업㈜ 출범. MHB-Daewoo Bank 설립.
* [[1990년]] (주)대우 모스크바지사 설치. 대우중공업(주) 유럽현지법인 설립. 멕시코 컬러TV 공장 건립.
* [[1991년]] (주)대우 북경지사 설치. 대우증권(주) 유럽현지법인 설립, 취리히사무소 개설.
* [[1992년]] 4월 佛 컬러TV 공장 건립. 佛 컴퓨터 판매법인 설립. 대우증권 美 현지법인 설립. 대우차-GM 제휴관계 청산.

=== 팽창기 ===
(주)대우가 구축한 세계무역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대우자동차(주), 대우중공업(주), 대우전자(주)가 국제적으로 널리 진출하는 '세계경영'은 1993년 '세계경영 우리기술' 슬로건 선포를 시점으로 본격화되었다. 대우가 당시 내세웠던 세계경영은 선진업체가 진출하지 않은 옛 공산권 국가와 앞으로 발전가능성이 무한한 개발도상국 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것으로, 현지법인 설립과 인수합병을 통해 단기간에 정착하여 사세확장을 꾀하는 형태이다. 실제로 대우가 진출을 시도한 개발도상국가의 정부에서는 자국의 경제활성화 목적에서 대우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기에, 대우의 사업확장은 더욱 쉽게 이뤄질 수 있었다. 대한민국 시장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대우자동차(주)의 경우는 대한민국 외 국가에서 판매하는 수량이 대한민국에서 판매하는 수량을 앞지르는 현상을 가져오기도 했다. 이같은 대우의 급속한 성장은 대한민국 경제계와 대한민국 외 국가 경제에 큰 반향을 가져다 주었다.

* [[1993년]] 1월 대우자판 설립.
* [[1993년]] 2월 베트남 합작은행 출자.
* [[1993년]] 3월 세계경영 선포.
* [[1993년]] 5월 우즈벡 가전 공장 설립.
* [[1993년]] 7월 대우중공업(주) 미국현지법인 DEC 설립.
* [[1993년]] 8월 폴란드 TV 공장 설립.
* [[1993년]] 9월 세계최초 공기방울 세탁기 개발.
* [[1994년]] 2월 대우할부금융 설립.
* [[1994년]] 3월 인도 합작증권사 CRB-Daewoo Securities Ltd 출자.
* [[1994년]] 5월 대우자동차(주) 영국 워딩 자동차 기술연구소 건립.
* [[1994년]] 6월 대우중공업 영국현지법인 유로 대우 UK 설립.
* [[1994년]] 10월 대우중공업(주) 대우조선공업 흡수 합병. 중국현지법인 대우중공업연대유한공사 설립.
* [[1994년]] 11월 루마니아 자동차합작공장 DAEWOO-RODAE 설립. 대우중공업(주) 러시아 기술연구소 DISK 설립.
* [[1995년]] 1월 대우중공업(주) 독일 현지법인 ECO 설립. 대우전자(주) 말레이시아 세탁기 공장 설립. 대우뱅크 출범.
* [[1995년]] 2월 대우중공업(주) 일본 현지법인 대우건기 설립.
* [[1995년]] 3월 체코 최대 국영상용차업체 AVIA사 인수. 대우증권(주) 홍콩현지법인 설립.
* [[1995년]] 4월 대우증권(주) 상해사무소 개설.
* [[1995년]] 5월 대한민국 기업 최초, 대북 협력사업 정부승인 획득.
* [[1995년]] 6월 다이너스카드사 인수.
* [[1995년]] 7월 동우개발(주)의 사명을 (주)대우개발로 변경.
* [[1995년]] 9월 베트남 하노이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우즈벡 공화국에 교환기합작공장 알로카대우 설립.
* [[1995년]] 10월 중국천진 팩스밀리 합작공장 설립.
* [[1995년]] 11월 베트남 최초 타포린 합작생산 공장 준공. 폴란드 최대 자동차기업 [[Fabryka Samochodów Osobowych|FSO]] 인수, DAEWOO-FSO 출범.
* [[1996년]] 3월 대우증권(주) 싱가폴사무소 개설. 루마니아 DAEWOO-RODAE 공장 준공.
* [[1996년]] 5월 남북경협 최초회사 민족산업총회사 남포에 설립. 앙골라 대규모 유전발견.
* [[1996년]] 6월 프랑스 롱위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인도뉴델리 첨단 소프트웨어 연구개발센타 설립. 페루육상 유전인수 입찰수주.
* [[1996년]] 7월 한진투자증권 합작 법인 서울투신운용(주) 설립. 우크라이나 대용량교환기 합작공장 드니프로-대우 설립.
* [[1996년]] 10월 대우증권(주) 동경지점 개점. UZ-Daewoo 자동차 공장 준공. 베트남 비담코 자동차 공장 준공.
* [[1996년]] 11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중국 광케이블 합작회사 우시-대우 설립. 루마니아 합작은행 설립.
* [[1997년]] 3월 우즈베키스탄 대우은행 (Uz-Daewoo Bank) 설립.
* [[1997년]] 4월 인도 종합 가전공장 설립. 군산 종합 자동차공장 준공.
* [[1997년]] 5월 인도 CRB증권 대우파이낸스로 상호 변경. 대우선물(주) 설립.
* [[1997년]] 6월 대우증권(주) 싱가포르 현지법인 설립.
* [[1997년]] 7월 대우리스 체코에 설립.
* [[1997년]] 9월 대우자동차(주) 우크라이나 합작공장 설립계약 체결.
* [[1997년]] 12월 한국전기초자(주) 인수.

=== 해체 ===
대우는 세계경영으로 철저히 현지화를 추구함으로써 1993년 당시 150여개에 불과했던 대한민국 외 국가 현지법인을 1998년 11월에는 396개로 끌어올리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대우는 1997년 다가온 경제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물로 나온 쌍용자동차(주)를 인수하여 소형차에서 대형차는 물론, 버스와 트럭, 사륜구동 SUV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차량을 생산하는 풀라인업을 완성시키고 그 밖에도 해외 현지공장 인수 및 확장을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대우는 1998년 [[삼성그룹|삼성]](三星)을 제치고 재계서열 2위까지 뛰어오른다.
* [[1998년]] 3월 30일 대우자동차(주), 쌍용자동차(주) 인수.
* [[1998년]] 5월 스페인 냉장고 공장 설립.
* [[1998년]] 6월 우크라이나 자동차 법인 AUTOZAZ-DAEWOO 공장 본격 가동.
* [[1998년]] 7월 미국 Fortune 선정 매출 500대 기업 중 세계 18위의 기업으로 도약.
* [[1998년]] 10월 대우중공업(주) 이집트공장 준공.
* [[1998년]] 11월 무역의 날 150억불 수출의 탑 수상.

그러나 경기침체의 장기화와 세계 시장의 위축으로 대우의 입지는 크게 흔들렸고, 개발도상국가 위주로 판매망을 확대해온 대우자동차의 부진이 거듭되었다. 경영여건이 안정되지 못한 상황에서 추진한 쌍용자동차의 인수도 큰 실익을 거두지 못하였고, 외형확대의 초점을 맞추어 경영해오다보니 당시 정부가 요구했던 구조조정에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오다보니 구조조정의 실시가 경쟁 그룹에 비해 늦은 편이었다. 정부 주도의 산업체계 개편에 따라 늦게나마 추진한 대우전자-삼성자동차 빅딜협상은 양사간 입장차이로 끝내 결렬되었으며, 1999년 여름에 접어들면서 그룹의 운명을 좌우할 대우와 GM과의 협상(대우차와의 경영권 문제)마저도 실패한 대우는 급속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자금난이 가중되던 대우는 알짜자산인 힐튼호텔 매각 등을 성사시키기도 하지만 1999년 3월에는 이미 부채 비율을 무려 400%를 훨씬 넘은 상태여서 수습이 어려운 지경이었다. 7월 대우는 초고강도 구조조정안을 발표하였으나 채권단은 이를 반려한다. 결국 대우는 1999년 8월 16일 채권단의 재무구조개선수정약정 체결과 더불어, 26일 채권단 관리하에 워크아웃을 맞이함으로써 그룹 해체의 길로 접어든다. 지난 1967년 창업 이래 32년간 대한민국에 경쟁성장의 견인차로 역할을 해오던 기업 중 하나로서, 1993년 세계경영을 선포한지 6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 [[1998년]] 11월 대우그룹 1차 구조조정안 발표.
* [[1998년]] 12월 대우전자(주) 및 삼성자동차(주) 빅딜 발표. (사업맞교환)
* [[1999년]] 4월 19일 대우 2차 구조조정안 발표. (대우 조선, 상용차, 힐튼호텔 등 매각)
* [[1999년]] 6월 30일 삼성자동차 워크아웃 돌입.
* [[1999년]] 7월 16일 대우그룹 구조조정안 발표. (자동차 전문그룹으로의 재탄생)
* [[1999년]] 8월 3일 제일은행 등 채권단 구조조정안 반려.
* [[1999년]] 8월 16일 대우 채권단, 재무구조개선수정약정 체결.
* [[1999년]] 8월 26일 (주)대우, 대우중공업(주), 대우자동차(주), 대우전자(주) 등 12개 회사 워크아웃 돌입.
* [[1999년]] 8월 30일 대우증권(주) 계열 분리, 채권단으로 이양.
* [[1999년]] 10월 김우중 회장, 중국 옌타이 대우자동차 부품공장 준공식 참석.
* [[1999년]] 11월 1일 대우 회장 및 대우그룹 사장단 퇴진.
* [[2000년]] 4월 15일 대규모기업집단 지정 제외.

한 때 세계 경영의 첨병으로 불렸던 대우의 몰락은 경제계에 큰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대우사태는 당대 큰 기업은 절대 흥한다는 '대마불사'의 신화를 깨고 차입경영을 일삼는 부실기업을 과감하게 퇴출시킨 사례로 건실한 기업풍토 조성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이 있는 반면, 대우가 밝혀지지 않은 요인(정치적 문제 또는 국제적 외압)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여론도 일부 존재하고 있어 지금도 눈길을 끈다.

== 구 대우그룹 계열사 ==
현재 대우의 계열사들은 그룹 해체 후 자립 혹은 새로운 기업의 인수를 통해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그룹이 해체된 이후에도 포스코대우, 대우건설, 대우조선해양 등 몇몇 회사들은 여전히 대우의 이름을 유지하며 성공적으로 영업 중이다.

=== 자동차 사업 ===
대우가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자동차 사업은 [[1997년]] 신차 출시, [[1998년]] [[KG모빌리티|쌍용자동차]] 인수에 따른 사세 확장으로 대한민국 시장에서 호조를 거두었으나 부채 누적으로 인한 만성적인 적자로, 대우그룹 핵심 계열사들이 워크아웃에 돌입하면서 완전히 공중분해되고 말았다.

대우자동차(주)는 [[포드]], [[제너럴 모터스]](GM) 등 두 양사간의 해외 매각 의사를 타진하였으나 최종적으로 협상이 모두 결렬되었으며, 대우자동차(주)는 경영 정상화 실패로 인해 [[2000년]] [[11월 10일]]에 [[인천지방법원]]에 법정관리(정리절차) 개시 신청을 냈고, 노사가 극적으로 노사협의회 합의문에 합의한 후, 회사 측의 자구의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여, 법정관리 개시 결정이 내려졌다.

대우자동차는 GM 매각을 위한 구조조정 계획의 일환으로, 9992억 원의 자구계획을 마련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가 인력을 7300여 명 줄이고 재료비, 경상비, 투자비 등을 대폭 감축했으며, 부평공장 생산직 직원 1750명이 강제로 거리로 내몰리는 역대 최대 규모의 정리해고가 김대중 정부 출범 당시에 근로기준법 개정 이후, [[2001년]] 2월초에 단행되기도 했다.

미국 GM이 2001년 6월초에 대우차 인수 의향서를 제출하여, 이듬해인 [[2002년]] [[10월 28일]]에 GM대우(현 [[한국지엠]])라는 외국계 기업으로 새롭게 출범했고, 대한민국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확대에 실패하여 고전을 계속하였던 GM대우는 글로벌 GM의 전략적 요충지로 키우기 위해서 [[2011년 1월]] [[쉐보레]] 브랜드로의 흡수 통합을 선언하였으며, [[2011년]] [[한국GM]](주)가 새롭게 출범하였다.

GM이 인수하지 않은 버스부문, 상용차부문, 부평공장은 [[대우버스]](주), [[타타대우상용차|대우상용차]](주), 대우인천자동차(주)로 분할, 매각되었다.

대우자동차(주)의 버스부문인 [[대우버스]](주)는 [[영안모자]]에 매각되었고, 트럭을 생산하는 상용차 부문은 [[인도]] 최대의 재벌인 [[타타]](TATA)에 매각되어 [[타타대우상용차]](주)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대우그룹 시절 대우자동차와의 합병을 계획하였던 [[KG모빌리티|쌍용자동차]](주)는 대우그룹의 구조조정 당시 대우차와의 분리 매각이 결정되면서 [[2000년 4월]] 대우 계열에서 정식으로 분리되었다. 후에 쌍용자동차(주)는 [[2005년]] [[중국]] 국영자동차회사인 [[상하이자동차]] 그룹에 인수되어, 미국발 금융 위기로 인한 판매 부진이 계속 거듭되면서 [[2009년]] 쌍용자동차(주)의 경영권을 포기하고 한국 시장에 철수하였다. [[2009년]] 쌍용자동차(주)는 법정관리 체제에 들어갔으며, 구조조정에 따른 대규모 정리해고 사태로 노사간의 첨예한 대립까지 위태로울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다가 [[2010년]] 말 인도의 [[마힌드라]] 자동차에 인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 건설, 무역 ===
[[1999년]] 워크아웃으로 (주)대우지스틱스가 먼저 분사되었으며, [[2000년 12월]] 모기업 (주)[[포스코인터내셔널|대우]]가 3개사로 재탄생한다. 청산을 위한 (주)대우 존속법인과 무역부문의 (주)[[포스코인터내셔널|대우인터내셔널]], 건설부문의 (주)[[대우건설]]로 나뉜다.

(주)대우인터내셔널은 대우의 모태사업인 무역은 물론 백화점 등 사업도 하고 있다. [[2010년]] [[포스코]]에 인수되었고, 지금의 [[포스코인터내셔널|포스코대우]]로 재출범한다. 백화점 사업은 2014년 [[롯데쇼핑]](주)에서 인수하여 롯데백화점 마산점이 되었다.

(주)[[대우건설]]은 워크아웃을 단기에 졸업했으며 [[2006년 12월]]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인수되었다. 그러나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무리한 인수합병으로 인한 후유증에 세계 금융위기까지 겪으며 극심한 자금난을 겪자, 2010년 (주)대우건설에 대한 경영권을 포기하였고, [[2011년 1월]]에 금호아시아나 계열에서 정식으로 분리되었다. 현재 최대주주는 [[한국산업은행]]이다.

대우그룹의 또다른 건설회사였던 [[경남기업]](주)는 [[성완종]]이 이끄는 충남지역 건설사인 대아건설(주)에 인수되었다가 [[2004년]]에 대아건설(주)을 합병하면서 국내 10위권의 대형 건설사로 성장가도를 달린다. [[2009년]] 대한민국 건설사들의 잇따른 경영난으로 워크아웃을 재차 겪지만, 실적 개선 등에 힘입어 [[2011년 5월]] 워크아웃을 졸업하는데 성공한다. [[2015년]] 하지만 건설업계 불황이 장기화되고 기업의 오너(Owner)인 성완종이 자원외교비리수사에 연루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2015년 4월]] 마침내 [[경남기업]]은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만다. [[2017년]] [[sm그룹]]이 인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 중공업, 조선 ===
[[2000년]] [[대우중공업]](주)도 대우종합기계(주), 대우조선공업(주) 그리고 대우중공업(주) 잔존법인으로 분할되었다.

주력부문이었던 중장비 및 군수물자 생산을 담당하는 대우종합기계(주)는 [[2005년]]에 [[두산]] 계열로 편입, [[두산인프라코어]](주)로 재탄생하였다.

대우중공업의 조선해양부문은 대우조선공업 주식회사로 분사되었다가 곧 [[대우조선해양]]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한다. 2000년대 조선업계의 호황으로 대우의 계열사 중 가장 먼저 워크아웃을 졸업한 회사로도 주목받았고, 조선업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을 기반으로 건설, 상조사업 등에도 진출하며 자체적으로 조선사업 중심의 기업집단을 일구었다. 2000년 출범한 이래 수년간 경쟁업체인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과 함께 선박 수주잔량으로 세계 수위권을 다투왔지만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변곡점으로 대우조선해양은 2010년대 중반에 이르러 조선업황의 악화로 존폐의 기로에 놓여있는 상태이다.

대우중공업이 3개사로 분할되기 전인 [[1999년 7월]]에는 철도차량 생산부문이 경쟁사인 [[현대정공]](주), [[한진중공업]](주)와 함께 현물출자 형식으로 단일법인을 설립함으로써 국내 유일의 철차제작업체인 [[한국철도차량]]주식회사가 탄생하였다. 하지만 대우종합기계(주)가 승계받은 한국철도차량(주)의 지분은 경영정상화를 위해 [[2001년]]에 [[현대자동차그룹]]에 전량 매각됨으로써 주식회사 [[로템]](現 현대로템(주))으로 재출범한다.

대우중공업(주)의 항공사업부문도 [[1999년 8월]]에 [[삼성항공산업]](주), 현대우주항공(주)과 통합하여 새로이 [[한국항공우주산업]](주)로 출범하였지만, [[대우중공업]]의 지분을 인계받은 [[두산그룹]]의 DIP홀딩스에서는 2016년 [[한국항공우주산업]]의 보유지분을 전부 정리하였다.

=== 전자, 통신 ===
한때 세계 각국의 생산기지를 설치하며 세계적인 전자기업을 표방해 오던 대우전자(주)는 [[1999년]] 워크아웃 대상기업으로 지정되었고, [[2000년 4월]] 대우전자 중심의 기업집단을 구축하고 비수익 사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피아노 사업을 담당하는 벨로체, 컴퓨터 사업을 담당하는 [[루컴즈전자|대우루컴즈]], 가스보일러 사업을 담당하는 대우가스보일러 등이 독립된 업체로 분리되었다. [[2002년]] [[위니아전자|대우전자]]의 TV, 백색가전 등 주력 핵심사업부문이 대부분 [[위니아전자|대우모터공업]] 주식회사로 인계되어 이듬해인 [[2003년]]에 (주)[[대우일렉트로닉스]]로 재출범하였다. 이후에도 [[2008년]] 대우디스플레이 등이 분리되어 [[위니아전자|대우일렉트로닉스]]는 사실상 백색가전 전문업체가 되었다. 2013년 동부그룹이 인수함으로써 [[위니아전자|동부대우전자]] 주식회사로 이름이 바뀌다가 2018년 대유그룹이 인수하여 주식회사 대우전자로 부활하였다. [[2019년]] 주식회사 위니아대우 로 이름이 바꿔다가 [[2020년]] 주식회사 위니아전자로 이름이 바꿨다.

[[대우전자부품]]도 1999년 대우그룹 구조조정으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대상으로 지정되었다. 2000년 4월 대우그룹에서 분리되었다.2008년 회생절차개시 결정을 받았고, 2010년 2월 회생절차 종결 결정을 받았다. 그 후 [[현대자동차]]의 1차 협력그룹인 [[아진그룹]]이 인수했다.

대우통신(주)은 정상화를 위해 통신 관련사업부문을 매각하여 컴퓨터사업은 대우컴퓨터에 양도하였으며 그밖에 사업부문은 대우텔레텍, 대우글로벌 그리고 1999년 합병된 대우정밀공업 계열의 업체들은 대우정밀, 대우파워트레인, 대우프라스틱 등으로 분사되었다.

대우정밀(주)은 에스엔티(S&T그룹)에 인수되어 현재 [[S&T모티브]]로 운영 중이며 대우파워트레인(주)은 GM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컴퍼니(지금의 한국지엠주식회사)에 매각되었고, 대우프라스틱(주)는 삼라마이다스그룹(SM그룹)으로 매각된 후 대우라이프(주)로 바뀌었다가 계열사인 남선알미늄(주)에 합병되었다.

전자 계열사였던 오리온전기(주), 한국전기초자(주), 광전자(주) 등도 워크아웃을 맞아 자취를 감추거나 독자생존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 금융 ===
대우증권(주)는 [[1999년]] 대우가 해체되기 전 채권단이 인수하였으며 후에 대주주가 [[한국산업은행]]으로 변경된다. [[2009년]]에는 한국산업은행의 민영화에 따라 새로이 출범한 [[KDB금융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2015년]]에는 [[미래에셋금융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2001년 8월]] (주)다이너스카드클럽코리아는 [[현대자동차]](주)에 매각되어 [[현대카드]](주)로 변경되었다.

대우캐피탈(주)는 아주그룹에 편입되어 아주캐피탈(주)로 바뀌었다.

=== 스포츠 ===
대우그룹에서 운영 중이던 [[부산 아이파크|부산 대우 로얄즈]]는 [[현대산업개발]]에 매각, [[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인천 대우 제우스]]는 [[신세기통신]]에 매각되고 인천 신세기 빅스로 변경하며 현재 [[부산 아이파크]]와 [[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 미디어 ===
케이블 채널 중에서 대우시네마네트워크는 [[오리온홀딩스|동양그룹]]에 매각되어 [[OCN (텔레비전 채널)|OCN]](현재 [[CJ그룹|CJ]] 산하)으로 변경되었다.

== 같이 보기 ==
=== 건설, 무역 ===
* (주)대우 무역 → [[포스코인터내셔널|포스코대우]] ([[포스코]]에 인수) → [[포스코인터내셔널]]
* (주)대우 건설 → [[대우건설]] (최대주주 [[한국산업은행]])
* (주)대우 백화점 → [[롯데백화점]] 마산점 ([[롯데백화점|롯데쇼핑]]에 인수)

=== 자동차 ===
* 대우자동차 → GM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 → [[한국지엠]] (2002년 [[제너럴 모터스]]에 인수)
* 대우자동차 버스 부문 → [[자일대우버스]] (2003년 [[영안모자]]에 인수)
* 대우자동차 상용차 부문 → [[타타대우상용차]] (2004년 [[타타]]에 인수)
* 쌍용자동차→[[KG모빌리티]] (1998년 [[대우자동차]]에서 인수, 2004년 [[상하이자동차]]에 인수, 2010년 [[마힌드라]]에 피인수, 2022년 [[KG그룹]]에 피인수)
* 대우자동차판매 자동차판매 부분 → [[대우자동차판매]] (2010년 [[영안모자]]에 인수)
* 대우자동차판매 건설 부문 → [[대우산업개발]] (2011년 중국 풍화(豊華)그룹에 인수)

=== 중공업 ===
* 대우중공업 종합기계 부문 → [[두산인프라코어]] (2005년 [[두산그룹]]에 인수)
* 대우중공업 조선해양 부문 → [[대우조선해양]] → [[한화오션]]
* 대우중공업 철도차량 부문 → [[현대로템]] (2001년 [[현대자동차그룹]]에 인수)

=== 전자 ===
* 대우전자 → [[위니아전자|동부대우전자]] → [[위니아전자|대우전자]] (2018년 [[대유그룹]]에 인수) → [[위니아전자|위니아대우]] → [[위니아전자]]
* 대우정밀공업 → [[S&T모티브]] (2006년 [[S&T그룹]]에 인수)

=== 금융 ===
* 대우증권 → [[미래에셋대우]] (2016년 [[미래에셋금융그룹]]에 인수)
* 다이너스클럽코리아 → [[현대카드]] (2001년 [[현대자동차그룹]]에 인수)
* 대우캐피탈 → [[아주캐피탈]] (2005년 [[아주그룹]]에 인수)

=== 기타 ===
* 대우엔지니어링 → [[포스코엔지니어링]] (1990년 계열 분리 → 2002년 포스코에 인수)
* 신성통상 (1984년 계열 분리 → 2002년 가나안에서 인수)
* 대창기업
* (주)고려 → SG고려 (구 고려피혁공업주식회사 → 2003년 (주)가로수닷컴에 인수)
* 세계물산 → SG위카스 → [[SG세계물산]] (2002년 SK글로벌에 인수 → 2005년 (주)가로수닷컴에 인수)
* 대우시네마네트워크 → (주)[[OCN (텔레비전 채널)|오리온시네마네트워크]] (1999년 [[동양그룹]]에 인수되어 별도법인인 [[온미디어]] 설립 → 2010년 CJ에 인수 → 2013년 [[CJ ENM]]에 흡수 합병)
* 부산 대우 로얄즈 → [[부산 아이파크]] (2000년 [[현대산업개발]]에 인수)
* 인천 대우 제우스 → 인천 신세기 빅스 (1999년 [[신세기통신]]에 인수)

== 외부 링크 ==
* [https://daewoosky.com/ 대우세계경영연구회]

== 각주 ==
<references/>

{{대우그룹}}

[[분류:대우그룹| ]]
[[분류:대한민국의 기업]]
[[분류:1967년 설립된 기업]]
[[분류:2000년 해체된 기업]]
[[분류:대한민국의 없어진 기업]]
[[분류:대한민국의 브랜드]]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회사 정보
| 이름 = 대우그룹
| 원어 = Daewoo Group
| 워드마크 = Daewoo logo (hangul).svg
| 형태 = 대기업집단(1989년~1999년)
| 창립 = 1967년 3월 22일 (대우실업 주식회사)
| 창립자 = [[김우중]](대표이사 회장)
| 해체 = 1999년 11월 1일
| 국가 = {{KOR}}
| 장소 = 대우센터빌딩(1977년~1999년)
| 사업 지역 =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 인물 = 김우중(대표이사 회장)
| 산업 = 자동차, 전자, 조선, 건설
| 주요사업부문 = 자동차, 전자, 조선, 건설, 무역, 금융
| 자본금 = 5,000,000원(1967년 기준)
| 매출액 = 분식회계로 정확히 추산불가
| 매출 = 78조원(1999년 기준)
| 영업이익 = -4조원(1999년 기준)
| 자산 총액 = 자본 약 15조 부채 89조
| 주주 = 김우중
| 모기업 = (주)[[포스코인터내셔널|대우]]
| 계열사 = [[대우전자]], [[대우건설]], [[한국GM|대우자동차]], [[대우조선]], [[대우증권]], [[쌍용자동차]] 外
}}

'''대우그룹'''(大宇─, Daewoo Group)은 [[1967년]] 창립한 [[포스코인터내셔널|대우실업]]을 모태로 [[1980년대]]부터 [[1990년대]] 말까지 존재한 [[대한민국]]의 대규모 기업집단이었다.<ref>[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1997120912000601 대우그룹, 쌍용自인수로 재계순위‘3위’]《문화일보》1997년 12월 9일 김병직 기자</ref> 대도섬유의 대(大)와 김우중의 우(宇)를 따서 만들었다. 섬유·무역·건설·조선·중장비·자동차·전자·통신·관광·금융 등 여러 사업부문을 두었으며, [[1993년]] 세계경영 전략 채택 이후 강력한 외형확장으로 사세를 넓혀갔고 [[1998년]]에는 [[현대그룹]]에 이어 재계 2위에 올랐으나 외환위기 이후, 자체 구조조정 실패와 [[1999년]] [[삼성그룹|삼성]]과의 전자-자동차 빅딜 실패로 [[1999년 10월]]부터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그룹 해체를 맞았다.

== 기업연혁 ==
[[파일:Seoul Square.jpg|섬네일|오른쪽|과거 대우그룹의 본사였던 서울스퀘어.]]
대우는 1967년 소규모 사업체로 창업하였으나, 1970년대 경제성장 및 수출호조에 따른 비약적인 발전, 그리고 정부 주도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에 힘입어 단기간에 대한민국 최대기업으로서 성장을 이루게 된다. 대우는 1980년대 후반부터 대한민국 외 국가로 눈을 돌려 동유럽 및 신흥시장 개척을 추진해 왔고, 1993년 세계경영에 나서면서 사세확장을 시도하였다. 이후 외환위기 속에서도 1997년 법정관리에 들어간 쌍용자동차를 인수하였다. 98년 상반기에는 현대그룹에 이은 (자산총액기준) 재계 2위에 올랐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출범이후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자체적 구조조정 실패와 무리한 차입금이 발목을 잡았고 1998년 10월, 대우그룹이 신청한 기업어음(CP)발행이 중단되면서 그룹 위기가 찾아왔다. 1999년이 되면서 삼성그룹과의 대우전자-삼성자동차의 빅딜협상에 들어갔으나 동년 7월, 협상이 결렬되었다. 이후 김우중 회장은 자동차를 중심으로 그룹 구조조정에 뒤늦게 들어갔으나 대우그룹 채권단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1999년 10월, 그룹 해체 수순을 밟았다.

=== 성장 ===
1967년 대우실업 창립 이래, 부산에 공장을 설치하여 1970년대 와이셔츠 등의 봉제품 및 섬유제품의 수출호조와 더불어 경제고도성장으로 급속한 발전을 이루어 신흥 사업체로 주목받았고, 더욱이 정부가 주도하던 경제 정책에 발맞춰 금융, 전자, 중공업, 자동차 사업에도 뛰어들면서 대우 그룹을 형성하게 된다.

* [[1967년]] [[3월 22일]] 모태인 대우실업(주)(대우가족) 창립. (섬유류 봉제품 생산, 수출 주도)
* [[1969년]] 8월 대한민국 기업 해외지사 1호 시드니에 개설.
* [[1971년]] 9월 (주)내쇼날의류 설립.
* [[1972년]] 9월 고려피혁(주) 인수.
* [[1973년]] 쌍미섬유공업(주) 인수. 대우증권의 전신 동양증권(주) 인수. 대우건설(주) 설립.
* [[1975년]] 2월 대우빌딩 착공.
* [[1975년]] 5월 대우실업(주), 종합무역상사 지정.
* [[1976년]] 2월 한국기계공업(주) 인수. 10월 해외건설업면허 취득. 대우중공업(주) 출범.
* [[1977년]] 대우센터 빌딩 준공. 8월 제철화학(주) 경영권 인수.
* [[1978년]] 7월 산업은행으로부터 새한자동차(주) 지분 인수. 대한조선공사 옥포조선소 인수 후 9월 대우조선공업(주) 설립.

=== 도약기 ===
대우 그룹은 (주)대우의 출범과 새한자동차 경영권 장악, 가전사업 진출을 잇달아 성사시키며 현대(現代), 삼성(三星), 럭키금성(LG)과 함께 대한민국 4대 기업군으로 성장한다. 국내 업체들과의 출혈 경쟁에서 기술력과 수익성의 한계를 느낀 대우는 세계로 눈을 돌려 냉전체제의 완화가 도래한 시점에 동유럽 및 공산권 국가에 현지법인을 설립하면서 신시장 개척을 준비하였다.

* [[1981년]] 10월 옥포조선소 준공. 수출의날 15억불탑 수상. 대우실업(주) 및 대우개발(주) 합병 결의.
* [[1982년]] 모기업 (주)대우 출범. 수출의날 20억불탑 수상.
* [[1983년]] 대우자동차(주) 출범. 대우전자(주)에서 대한전선(주)의 가전부문을 흡수. 대우통신(주) 설립.
* [[1984년]] 경남기업(주) 경영 참여. (주)대우경제연구소 설립. 10월 대우자동차부품(주) 설립. 대한민국 최초 VTR 수출.
* [[1986년]] 대우증권 런던사무소 개설. 9월 경남기업(주) 계열 편입.
* [[1987년]] 미얀마 현지 철도차량공장 준공.
* [[1988년]] (주)대우 동베를린지사 설치. 대우투자자문(주) 설립. 프랑스 롱위 전자레인지 공장 건립. 대우증권 홍콩사무소 개설.
* [[1989년]] 제철화학 외 3개사 매각. 대우정보시스템 설립. 대우기전공업㈜ 출범. MHB-Daewoo Bank 설립.
* [[1990년]] (주)대우 모스크바지사 설치. 대우중공업(주) 유럽현지법인 설립. 멕시코 컬러TV 공장 건립.
* [[1991년]] (주)대우 북경지사 설치. 대우증권(주) 유럽현지법인 설립, 취리히사무소 개설.
* [[1992년]] 4월 佛 컬러TV 공장 건립. 佛 컴퓨터 판매법인 설립. 대우증권 美 현지법인 설립. 대우차-GM 제휴관계 청산.

=== 팽창기 ===
(주)대우가 구축한 세계무역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대우자동차(주), 대우중공업(주), 대우전자(주)가 국제적으로 널리 진출하는 '세계경영'은 1993년 '세계경영 우리기술' 슬로건 선포를 시점으로 본격화되었다. 대우가 당시 내세웠던 세계경영은 선진업체가 진출하지 않은 옛 공산권 국가와 앞으로 발전가능성이 무한한 개발도상국 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것으로, 현지법인 설립과 인수합병을 통해 단기간에 정착하여 사세확장을 꾀하는 형태이다. 실제로 대우가 진출을 시도한 개발도상국가의 정부에서는 자국의 경제활성화 목적에서 대우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기에, 대우의 사업확장은 더욱 쉽게 이뤄질 수 있었다. 대한민국 시장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대우자동차(주)의 경우는 대한민국 외 국가에서 판매하는 수량이 대한민국에서 판매하는 수량을 앞지르는 현상을 가져오기도 했다. 이같은 대우의 급속한 성장은 대한민국 경제계와 대한민국 외 국가 경제에 큰 반향을 가져다 주었다.

* [[1993년]] 1월 대우자판 설립.
* [[1993년]] 2월 베트남 합작은행 출자.
* [[1993년]] 3월 세계경영 선포.
* [[1993년]] 5월 우즈벡 가전 공장 설립.
* [[1993년]] 7월 대우중공업(주) 미국현지법인 DEC 설립.
* [[1993년]] 8월 폴란드 TV 공장 설립.
* [[1993년]] 9월 세계최초 공기방울 세탁기 개발.
* [[1994년]] 2월 대우할부금융 설립.
* [[1994년]] 3월 인도 합작증권사 CRB-Daewoo Securities Ltd 출자.
* [[1994년]] 5월 대우자동차(주) 영국 워딩 자동차 기술연구소 건립.
* [[1994년]] 6월 대우중공업 영국현지법인 유로 대우 UK 설립.
* [[1994년]] 10월 대우중공업(주) 대우조선공업 흡수 합병. 중국현지법인 대우중공업연대유한공사 설립.
* [[1994년]] 11월 루마니아 자동차합작공장 DAEWOO-RODAE 설립. 대우중공업(주) 러시아 기술연구소 DISK 설립.
* [[1995년]] 1월 대우중공업(주) 독일 현지법인 ECO 설립. 대우전자(주) 말레이시아 세탁기 공장 설립. 대우뱅크 출범.
* [[1995년]] 2월 대우중공업(주) 일본 현지법인 대우건기 설립.
* [[1995년]] 3월 체코 최대 국영상용차업체 AVIA사 인수. 대우증권(주) 홍콩현지법인 설립.
* [[1995년]] 4월 대우증권(주) 상해사무소 개설.
* [[1995년]] 5월 대한민국 기업 최초, 대북 협력사업 정부승인 획득.
* [[1995년]] 6월 다이너스카드사 인수.
* [[1995년]] 7월 동우개발(주)의 사명을 (주)대우개발로 변경.
* [[1995년]] 9월 베트남 하노이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우즈벡 공화국에 교환기합작공장 알로카대우 설립.
* [[1995년]] 10월 중국천진 팩스밀리 합작공장 설립.
* [[1995년]] 11월 베트남 최초 타포린 합작생산 공장 준공. 폴란드 최대 자동차기업 [[Fabryka Samochodów Osobowych|FSO]] 인수, DAEWOO-FSO 출범.
* [[1996년]] 3월 대우증권(주) 싱가폴사무소 개설. 루마니아 DAEWOO-RODAE 공장 준공.
* [[1996년]] 5월 남북경협 최초회사 민족산업총회사 남포에 설립. 앙골라 대규모 유전발견.
* [[1996년]] 6월 프랑스 롱위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인도뉴델리 첨단 소프트웨어 연구개발센타 설립. 페루육상 유전인수 입찰수주.
* [[1996년]] 7월 한진투자증권 합작 법인 서울투신운용(주) 설립. 우크라이나 대용량교환기 합작공장 드니프로-대우 설립.
* [[1996년]] 10월 대우증권(주) 동경지점 개점. UZ-Daewoo 자동차 공장 준공. 베트남 비담코 자동차 공장 준공.
* [[1996년]] 11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중국 광케이블 합작회사 우시-대우 설립. 루마니아 합작은행 설립.
* [[1997년]] 3월 우즈베키스탄 대우은행 (Uz-Daewoo Bank) 설립.
* [[1997년]] 4월 인도 종합 가전공장 설립. 군산 종합 자동차공장 준공.
* [[1997년]] 5월 인도 CRB증권 대우파이낸스로 상호 변경. 대우선물(주) 설립.
* [[1997년]] 6월 대우증권(주) 싱가포르 현지법인 설립.
* [[1997년]] 7월 대우리스 체코에 설립.
* [[1997년]] 9월 대우자동차(주) 우크라이나 합작공장 설립계약 체결.
* [[1997년]] 12월 한국전기초자(주) 인수.

=== 해체 ===
대우는 세계경영으로 철저히 현지화를 추구함으로써 1993년 당시 150여개에 불과했던 대한민국 외 국가 현지법인을 1998년 11월에는 396개로 끌어올리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대우는 1997년 다가온 경제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물로 나온 쌍용자동차(주)를 인수하여 소형차에서 대형차는 물론, 버스와 트럭, 사륜구동 SUV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차량을 생산하는 풀라인업을 완성시키고 그 밖에도 해외 현지공장 인수 및 확장을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대우는 1998년 [[삼성그룹|삼성]](三星)을 제치고 재계서열 2위까지 뛰어오른다.
* [[1998년]] 3월 30일 대우자동차(주), 쌍용자동차(주) 인수.
* [[1998년]] 5월 스페인 냉장고 공장 설립.
* [[1998년]] 6월 우크라이나 자동차 법인 AUTOZAZ-DAEWOO 공장 본격 가동.
* [[1998년]] 7월 미국 Fortune 선정 매출 500대 기업 중 세계 18위의 기업으로 도약.
* [[1998년]] 10월 대우중공업(주) 이집트공장 준공.
* [[1998년]] 11월 무역의 날 150억불 수출의 탑 수상.

그러나 경기침체의 장기화와 세계 시장의 위축으로 대우의 입지는 크게 흔들렸고, 개발도상국가 위주로 판매망을 확대해온 대우자동차의 부진이 거듭되었다. 경영여건이 안정되지 못한 상황에서 추진한 쌍용자동차의 인수도 큰 실익을 거두지 못하였고, 외형확대의 초점을 맞추어 경영해오다보니 당시 정부가 요구했던 구조조정에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오다보니 구조조정의 실시가 경쟁 그룹에 비해 늦은 편이었다. 정부 주도의 산업체계 개편에 따라 늦게나마 추진한 대우전자-삼성자동차 빅딜협상은 양사간 입장차이로 끝내 결렬되었으며, 1999년 여름에 접어들면서 그룹의 운명을 좌우할 대우와 GM과의 협상(대우차와의 경영권 문제)마저도 실패한 대우는 급속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자금난이 가중되던 대우는 알짜자산인 힐튼호텔 매각 등을 성사시키기도 하지만 1999년 3월에는 이미 부채 비율을 무려 400%를 훨씬 넘은 상태여서 수습이 어려운 지경이었다. 7월 대우는 초고강도 구조조정안을 발표하였으나 채권단은 이를 반려한다. 결국 대우는 1999년 8월 16일 채권단의 재무구조개선수정약정 체결과 더불어, 26일 채권단 관리하에 워크아웃을 맞이함으로써 그룹 해체의 길로 접어든다. 지난 1967년 창업 이래 32년간 대한민국에 경쟁성장의 견인차로 역할을 해오던 기업 중 하나로서, 1993년 세계경영을 선포한지 6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 [[1998년]] 11월 대우그룹 1차 구조조정안 발표.
* [[1998년]] 12월 대우전자(주) 및 삼성자동차(주) 빅딜 발표. (사업맞교환)
* [[1999년]] 4월 19일 대우 2차 구조조정안 발표. (대우 조선, 상용차, 힐튼호텔 등 매각)
* [[1999년]] 6월 30일 삼성자동차 워크아웃 돌입.
* [[1999년]] 7월 16일 대우그룹 구조조정안 발표. (자동차 전문그룹으로의 재탄생)
* [[1999년]] 8월 3일 제일은행 등 채권단 구조조정안 반려.
* [[1999년]] 8월 16일 대우 채권단, 재무구조개선수정약정 체결.
* [[1999년]] 8월 26일 (주)대우, 대우중공업(주), 대우자동차(주), 대우전자(주) 등 12개 회사 워크아웃 돌입.
* [[1999년]] 8월 30일 대우증권(주) 계열 분리, 채권단으로 이양.
* [[1999년]] 10월 김우중 회장, 중국 옌타이 대우자동차 부품공장 준공식 참석.
* [[1999년]] 11월 1일 대우 회장 및 대우그룹 사장단 퇴진.
* [[2000년]] 4월 15일 대규모기업집단 지정 제외.

한 때 세계 경영의 첨병으로 불렸던 대우의 몰락은 경제계에 큰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대우사태는 당대 큰 기업은 절대 흥한다는 '대마불사'의 신화를 깨고 차입경영을 일삼는 부실기업을 과감하게 퇴출시킨 사례로 건실한 기업풍토 조성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이 있는 반면, 대우가 밝혀지지 않은 요인(정치적 문제 또는 국제적 외압)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여론도 일부 존재하고 있어 지금도 눈길을 끈다.

== 구 대우그룹 계열사 ==
현재 대우의 계열사들은 그룹 해체 후 자립 혹은 새로운 기업의 인수를 통해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그룹이 해체된 이후에도 포스코대우, 대우건설, 대우조선해양 등 몇몇 회사들은 여전히 대우의 이름을 유지하며 성공적으로 영업 중이다.

=== 자동차 사업 ===
대우가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자동차 사업은 [[1997년]] 신차 출시, [[1998년]] [[KG모빌리티|쌍용자동차]] 인수에 따른 사세 확장으로 대한민국 시장에서 호조를 거두었으나 부채 누적으로 인한 만성적인 적자로, 대우그룹 핵심 계열사들이 워크아웃에 돌입하면서 완전히 공중분해되고 말았다.

대우자동차(주)는 [[포드]], [[제너럴 모터스]](GM) 등 두 양사간의 해외 매각 의사를 타진하였으나 최종적으로 협상이 모두 결렬되었으며, 대우자동차(주)는 경영 정상화 실패로 인해 [[2000년]] [[11월 10일]]에 [[인천지방법원]]에 법정관리(정리절차) 개시 신청을 냈고, 노사가 극적으로 노사협의회 합의문에 합의한 후, 회사 측의 자구의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여, 법정관리 개시 결정이 내려졌다.

대우자동차는 GM 매각을 위한 구조조정 계획의 일환으로, 9992억 원의 자구계획을 마련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가 인력을 7300여 명 줄이고 재료비, 경상비, 투자비 등을 대폭 감축했으며, 부평공장 생산직 직원 1750명이 강제로 거리로 내몰리는 역대 최대 규모의 정리해고가 김대중 정부 출범 당시에 근로기준법 개정 이후, [[2001년]] 2월초에 단행되기도 했다.

미국 GM이 2001년 6월초에 대우차 인수 의향서를 제출하여, 이듬해인 [[2002년]] [[10월 28일]]에 GM대우(현 [[한국지엠]])라는 외국계 기업으로 새롭게 출범했고, 대한민국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확대에 실패하여 고전을 계속하였던 GM대우는 글로벌 GM의 전략적 요충지로 키우기 위해서 [[2011년 1월]] [[쉐보레]] 브랜드로의 흡수 통합을 선언하였으며, [[2011년]] [[한국GM]](주)가 새롭게 출범하였다.

GM이 인수하지 않은 버스부문, 상용차부문, 부평공장은 [[대우버스]](주), [[타타대우상용차|대우상용차]](주), 대우인천자동차(주)로 분할, 매각되었다.

대우자동차(주)의 버스부문인 [[대우버스]](주)는 [[영안모자]]에 매각되었고, 트럭을 생산하는 상용차 부문은 [[인도]] 최대의 재벌인 [[타타]](TATA)에 매각되어 [[타타대우상용차]](주)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대우그룹 시절 대우자동차와의 합병을 계획하였던 [[KG모빌리티|쌍용자동차]](주)는 대우그룹의 구조조정 당시 대우차와의 분리 매각이 결정되면서 [[2000년 4월]] 대우 계열에서 정식으로 분리되었다. 후에 쌍용자동차(주)는 [[2005년]] [[중국]] 국영자동차회사인 [[상하이자동차]] 그룹에 인수되어, 미국발 금융 위기로 인한 판매 부진이 계속 거듭되면서 [[2009년]] 쌍용자동차(주)의 경영권을 포기하고 한국 시장에 철수하였다. [[2009년]] 쌍용자동차(주)는 법정관리 체제에 들어갔으며, 구조조정에 따른 대규모 정리해고 사태로 노사간의 첨예한 대립까지 위태로울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다가 [[2010년]] 말 인도의 [[마힌드라]] 자동차에 인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 건설, 무역 ===
[[1999년]] 워크아웃으로 (주)대우지스틱스가 먼저 분사되었으며, [[2000년 12월]] 모기업 (주)[[포스코인터내셔널|대우]]가 3개사로 재탄생한다. 청산을 위한 (주)대우 존속법인과 무역부문의 (주)[[포스코인터내셔널|대우인터내셔널]], 건설부문의 (주)[[대우건설]]로 나뉜다.

(주)대우인터내셔널은 대우의 모태사업인 무역은 물론 백화점 등 사업도 하고 있다. [[2010년]] [[포스코]]에 인수되었고, 지금의 [[포스코인터내셔널|포스코대우]]로 재출범한다. 백화점 사업은 2014년 [[롯데쇼핑]](주)에서 인수하여 롯데백화점 마산점이 되었다.

(주)[[대우건설]]은 워크아웃을 단기에 졸업했으며 [[2006년 12월]]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인수되었다. 그러나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무리한 인수합병으로 인한 후유증에 세계 금융위기까지 겪으며 극심한 자금난을 겪자, 2010년 (주)대우건설에 대한 경영권을 포기하였고, [[2011년 1월]]에 금호아시아나 계열에서 정식으로 분리되었다. 현재 최대주주는 [[한국산업은행]]이다.

대우그룹의 또다른 건설회사였던 [[경남기업]](주)는 [[성완종]]이 이끄는 충남지역 건설사인 대아건설(주)에 인수되었다가 [[2004년]]에 대아건설(주)을 합병하면서 국내 10위권의 대형 건설사로 성장가도를 달린다. [[2009년]] 대한민국 건설사들의 잇따른 경영난으로 워크아웃을 재차 겪지만, 실적 개선 등에 힘입어 [[2011년 5월]] 워크아웃을 졸업하는데 성공한다. [[2015년]] 하지만 건설업계 불황이 장기화되고 기업의 오너(Owner)인 성완종이 자원외교비리수사에 연루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2015년 4월]] 마침내 [[경남기업]]은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만다. [[2017년]] [[sm그룹]]이 인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 중공업, 조선 ===
[[2000년]] [[대우중공업]](주)도 대우종합기계(주), 대우조선공업(주) 그리고 대우중공업(주) 잔존법인으로 분할되었다.

주력부문이었던 중장비 및 군수물자 생산을 담당하는 대우종합기계(주)는 [[2005년]]에 [[두산]] 계열로 편입, [[두산인프라코어]](주)로 재탄생하였다.

대우중공업의 조선해양부문은 대우조선공업 주식회사로 분사되었다가 곧 [[대우조선해양]]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한다. 2000년대 조선업계의 호황으로 대우의 계열사 중 가장 먼저 워크아웃을 졸업한 회사로도 주목받았고, 조선업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을 기반으로 건설, 상조사업 등에도 진출하며 자체적으로 조선사업 중심의 기업집단을 일구었다. 2000년 출범한 이래 수년간 경쟁업체인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과 함께 선박 수주잔량으로 세계 수위권을 다투왔지만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변곡점으로 대우조선해양은 2010년대 중반에 이르러 조선업황의 악화로 존폐의 기로에 놓여있는 상태이다.

대우중공업이 3개사로 분할되기 전인 [[1999년 7월]]에는 철도차량 생산부문이 경쟁사인 [[현대정공]](주), [[한진중공업]](주)와 함께 현물출자 형식으로 단일법인을 설립함으로써 국내 유일의 철차제작업체인 [[한국철도차량]]주식회사가 탄생하였다. 하지만 대우종합기계(주)가 승계받은 한국철도차량(주)의 지분은 경영정상화를 위해 [[2001년]]에 [[현대자동차그룹]]에 전량 매각됨으로써 주식회사 [[로템]](現 현대로템(주))으로 재출범한다.

대우중공업(주)의 항공사업부문도 [[1999년 8월]]에 [[삼성항공산업]](주), 현대우주항공(주)과 통합하여 새로이 [[한국항공우주산업]](주)로 출범하였지만, [[대우중공업]]의 지분을 인계받은 [[두산그룹]]의 DIP홀딩스에서는 2016년 [[한국항공우주산업]]의 보유지분을 전부 정리하였다.

=== 전자, 통신 ===
한때 세계 각국의 생산기지를 설치하며 세계적인 전자기업을 표방해 오던 대우전자(주)는 [[1999년]] 워크아웃 대상기업으로 지정되었고, [[2000년 4월]] 대우전자 중심의 기업집단을 구축하고 비수익 사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피아노 사업을 담당하는 벨로체, 컴퓨터 사업을 담당하는 [[루컴즈전자|대우루컴즈]], 가스보일러 사업을 담당하는 대우가스보일러 등이 독립된 업체로 분리되었다. [[2002년]] [[위니아전자|대우전자]]의 TV, 백색가전 등 주력 핵심사업부문이 대부분 [[위니아전자|대우모터공업]] 주식회사로 인계되어 이듬해인 [[2003년]]에 (주)[[대우일렉트로닉스]]로 재출범하였다. 이후에도 [[2008년]] 대우디스플레이 등이 분리되어 [[위니아전자|대우일렉트로닉스]]는 사실상 백색가전 전문업체가 되었다. 2013년 동부그룹이 인수함으로써 [[위니아전자|동부대우전자]] 주식회사로 이름이 바뀌다가 2018년 대유그룹이 인수하여 주식회사 대우전자로 부활하였다. [[2019년]] 주식회사 위니아대우 로 이름이 바꿔다가 [[2020년]] 주식회사 위니아전자로 이름이 바꿨다.

[[대우전자부품]]도 1999년 대우그룹 구조조정으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대상으로 지정되었다. 2000년 4월 대우그룹에서 분리되었다.2008년 회생절차개시 결정을 받았고, 2010년 2월 회생절차 종결 결정을 받았다. 그 후 [[현대자동차]]의 1차 협력그룹인 [[아진그룹]]이 인수했다.

대우통신(주)은 정상화를 위해 통신 관련사업부문을 매각하여 컴퓨터사업은 대우컴퓨터에 양도하였으며 그밖에 사업부문은 대우텔레텍, 대우글로벌 그리고 1999년 합병된 대우정밀공업 계열의 업체들은 대우정밀, 대우파워트레인, 대우프라스틱 등으로 분사되었다.

대우정밀(주)은 에스엔티(S&T그룹)에 인수되어 현재 [[S&T모티브]]로 운영 중이며 대우파워트레인(주)은 GM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컴퍼니(지금의 한국지엠주식회사)에 매각되었고, 대우프라스틱(주)는 삼라마이다스그룹(SM그룹)으로 매각된 후 대우라이프(주)로 바뀌었다가 계열사인 남선알미늄(주)에 합병되었다.

전자 계열사였던 오리온전기(주), 한국전기초자(주), 광전자(주) 등도 워크아웃을 맞아 자취를 감추거나 독자생존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 금융 ===
대우증권(주)는 [[1999년]] 대우가 해체되기 전 채권단이 인수하였으며 후에 대주주가 [[한국산업은행]]으로 변경된다. [[2009년]]에는 한국산업은행의 민영화에 따라 새로이 출범한 [[KDB금융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2015년]]에는 [[미래에셋금융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2001년 8월]] (주)다이너스카드클럽코리아는 [[현대자동차]](주)에 매각되어 [[현대카드]](주)로 변경되었다.

대우캐피탈(주)는 아주그룹에 편입되어 아주캐피탈(주)로 바뀌었다.

=== 스포츠 ===
대우그룹에서 운영 중이던 [[부산 아이파크|부산 대우 로얄즈]]는 [[현대산업개발]]에 매각, [[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인천 대우 제우스]]는 [[신세기통신]]에 매각되고 인천 신세기 빅스로 변경하며 현재 [[부산 아이파크]]와 [[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 미디어 ===
케이블 채널 중에서 대우시네마네트워크는 [[오리온홀딩스|동양그룹]]에 매각되어 [[OCN (텔레비전 채널)|OCN]](현재 [[CJ그룹|CJ]] 산하)으로 변경되었다.

== 같이 보기 ==
=== 건설, 무역 ===
* (주)대우 무역 → [[포스코인터내셔널|포스코대우]] ([[포스코]]에 인수) → [[포스코인터내셔널]]
* (주)대우 건설 → [[대우건설]] (최대주주 [[한국산업은행]])
* (주)대우 백화점 → [[롯데백화점]] 마산점 ([[롯데백화점|롯데쇼핑]]에 인수)

=== 자동차 ===
* 대우자동차 → GM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 → [[한국지엠]] (2002년 [[제너럴 모터스]]에 인수)
* 대우자동차 버스 부문 → [[자일대우버스]] (2003년 [[영안모자]]에 인수)
* 대우자동차 상용차 부문 → [[타타대우상용차]] (2004년 [[타타]]에 인수)
* 쌍용자동차→[[KG모빌리티]] (1998년 [[대우자동차]]에서 인수, 2004년 [[상하이자동차]]에 인수, 2010년 [[마힌드라]]에 피인수, 2022년 [[KG그룹]]에 피인수)
* 대우자동차판매 자동차판매 부분 → [[대우자동차판매]] (2010년 [[영안모자]]에 인수)
* 대우자동차판매 건설 부문 → [[대우산업개발]] (2011년 중국 풍화(豊華)그룹에 인수)

=== 중공업 ===
* 대우중공업 종합기계 부문 → [[두산인프라코어]] (2005년 [[두산그룹]]에 인수)
* 대우중공업 조선해양 부문 → [[대우조선해양]] → [[한화오션]]
* 대우중공업 철도차량 부문 → [[현대로템]] (2001년 [[현대자동차그룹]]에 인수)

=== 전자 ===
* 대우전자 → [[위니아전자|동부대우전자]] → [[위니아전자|대우전자]] (2018년 [[대유그룹]]에 인수) → [[위니아전자|위니아대우]] → [[위니아전자]]
* 대우정밀공업 → [[S&T모티브]] (2006년 [[S&T그룹]]에 인수)

=== 금융 ===
* 대우증권 → [[미래에셋대우]] (2016년 [[미래에셋금융그룹]]에 인수)
* 다이너스클럽코리아 → [[현대카드]] (2001년 [[현대자동차그룹]]에 인수)
* 대우캐피탈 → [[아주캐피탈]] (2005년 [[아주그룹]]에 인수)

=== 기타 ===
* 대우엔지니어링 → [[포스코엔지니어링]] (1990년 계열 분리 → 2002년 포스코에 인수)
* 신성통상 (1984년 계열 분리 → 2002년 가나안에서 인수)
* 대창기업
* (주)고려 → SG고려 (구 고려피혁공업주식회사 → 2003년 (주)가로수닷컴에 인수)
* 세계물산 → SG위카스 → [[SG세계물산]] (2002년 SK글로벌에 인수 → 2005년 (주)가로수닷컴에 인수)
* 대우시네마네트워크 → (주)[[OCN (텔레비전 채널)|오리온시네마네트워크]] (1999년 [[동양그룹]]에 인수되어 별도법인인 [[온미디어]] 설립 → 2010년 CJ에 인수 → 2013년 [[CJ ENM]]에 흡수 합병)
* 부산 대우 로얄즈 → [[부산 아이파크]] (2000년 [[현대산업개발]]에 인수)
* 인천 대우 제우스 → 인천 신세기 빅스 (1999년 [[신세기통신]]에 인수)

== 외부 링크 ==
* [https://daewoosky.com/ 대우세계경영연구회]

== 각주 ==
<references/>

{{대우그룹}}

[[분류:대우그룹| ]]
[[분류:대한민국의 기업]]
[[분류:1967년 설립된 기업]]
[[분류:2000년 해체된 기업]]
[[분류:대한민국의 없어진 기업]]
[[분류:대한민국의 브랜드]]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회사 정보
| 이름 = 대우그룹
| 원어 = Daewoo Group
| 워드마크 = Daewoo logo (hangul).svg
| 형태 = 대기업집단(1989년~1999년)
| 창립 = 1967년 3월 22일 (대우실업 주식회사)
| 창립자 = [[김우중]](대표이사 회장)
| 해체 = 1999년 11월 1일
| 국가 = {{KOR}}
| 장소 = 대우센터빌딩(1977년~1999년)
| 사업 지역 =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 인물 = 김우중(대표이사 회장)
| 산업 = 자동차, 전자, 조선, 건설
| 주요사업부문 = 자동차, 전자, 조선, 건설, 무역, 금융
| 자본금 = 5,000,000원(1967년 기준)
| 매출액 = 분식회계로 정확히 추산불가
| 매출 = 78조원(1999년 기준)
| 영업이익 = -4조원(1999년 기준)
| 자산 총액 = 자본 약 15조 부채 89조
| 주주 = 김우중
| 모기업 = (주)[[포스코인터내셔널|대우]]
| 계열사 = [[대우전자]], [[대우건설]], [[한국GM|대우자동차]], [[대우조선]], [[대우증권]], [[쌍용자동차]] 外
}}

'''대우그룹'''(大宇─, Daewoo Group)은 [[1967년]] 창립한 [[포스코인터내셔널|대우실업]]을 모태로 [[1980년대]]부터 [[1990년대]] 말까지 존재한 [[대한민국]]의 대규모 기업집단이었다.<ref>[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1997120912000601 대우그룹, 쌍용自인수로 재계순위‘3위’]《문화일보》1997년 12월 9일 김병직 기자</ref> 대도섬유의 대(大)와 김우중의 우(宇)를 따서 만들었다. 섬유·무역·건설·조선·중장비·자동차·전자·통신·관광·금융 등 여러 사업부문을 두었으며, [[1993년]] 세계경영 전략 채택 이후 강력한 외형확장으로 사세를 넓혀갔고 [[1998년]]에는 [[현대그룹]]에 이어 재계 2위에 올랐으나 외환위기 이후, 자체 구조조정 실패와 [[1999년]] [[삼성그룹|삼성]]과의 전자-자동차 빅딜 실패로 [[1999년 10월]]부터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그룹 해체를 맞았다.

== 기업연혁 ==
[[파일:Seoul Square.jpg|섬네일|오른쪽|과거 대우그룹의 본사였던 서울스퀘어.]]
대우는 1967년 소규모 사업체로 창업하였으나, 1970년대 경제성장 및 수출호조에 따른 비약적인 발전, 그리고 정부 주도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에 힘입어 단기간에 대한민국 최대기업으로서 성장을 이루게 된다. 대우는 1980년대 후반부터 대한민국 외 국가로 눈을 돌려 동유럽 및 신흥시장 개척을 추진해 왔고, 1993년 세계경영에 나서면서 사세확장을 시도하였다. 이후 외환위기 속에서도 1997년 법정관리에 들어간 쌍용자동차를 인수하였다. 98년 상반기에는 현대그룹에 이은 (자산총액기준) 재계 2위에 올랐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출범이후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자체적 구조조정 실패와 무리한 차입금이 발목을 잡았고 1998년 10월, 대우그룹이 신청한 기업어음(CP)발행이 중단되면서 그룹 위기가 찾아왔다. 1999년이 되면서 삼성그룹과의 대우전자-삼성자동차의 빅딜협상에 들어갔으나 동년 7월, 협상이 결렬되었다. 이후 김우중 회장은 자동차를 중심으로 그룹 구조조정에 뒤늦게 들어갔으나 대우그룹 채권단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1999년 10월, 그룹 해체 수순을 밟았다.

=== 성장 ===
1967년 대우실업 창립 이래, 부산에 공장을 설치하여 1970년대 와이셔츠 등의 봉제품 및 섬유제품의 수출호조와 더불어 경제고도성장으로 급속한 발전을 이루어 신흥 사업체로 주목받았고, 더욱이 정부가 주도하던 경제 정책에 발맞춰 금융, 전자, 중공업, 자동차 사업에도 뛰어들면서 대우 그룹을 형성하게 된다.

* [[1967년]] [[3월 22일]] 모태인 대우실업(주)(대우가족) 창립. (섬유류 봉제품 생산, 수출 주도)
* [[1969년]] 8월 대한민국 기업 해외지사 1호 시드니에 개설.
* [[1971년]] 9월 (주)내쇼날의류 설립.
* [[1972년]] 9월 고려피혁(주) 인수.
* [[1973년]] 쌍미섬유공업(주) 인수. 대우증권의 전신 동양증권(주) 인수. 대우건설(주) 설립.
* [[1975년]] 2월 대우빌딩 착공.
* [[1975년]] 5월 대우실업(주), 종합무역상사 지정.
* [[1976년]] 2월 한국기계공업(주) 인수. 10월 해외건설업면허 취득. 대우중공업(주) 출범.
* [[1977년]] 대우센터 빌딩 준공. 8월 제철화학(주) 경영권 인수.
* [[1978년]] 7월 산업은행으로부터 새한자동차(주) 지분 인수. 대한조선공사 옥포조선소 인수 후 9월 대우조선공업(주) 설립.

=== 도약기 ===
대우 그룹은 (주)대우의 출범과 새한자동차 경영권 장악, 가전사업 진출을 잇달아 성사시키며 현대(現代), 삼성(三星), 럭키금성(LG)과 함께 대한민국 4대 기업군으로 성장한다. 국내 업체들과의 출혈 경쟁에서 기술력과 수익성의 한계를 느낀 대우는 세계로 눈을 돌려 냉전체제의 완화가 도래한 시점에 동유럽 및 공산권 국가에 현지법인을 설립하면서 신시장 개척을 준비하였다.

* [[1981년]] 10월 옥포조선소 준공. 수출의날 15억불탑 수상. 대우실업(주) 및 대우개발(주) 합병 결의.
* [[1982년]] 모기업 (주)대우 출범. 수출의날 20억불탑 수상.
* [[1983년]] 대우자동차(주) 출범. 대우전자(주)에서 대한전선(주)의 가전부문을 흡수. 대우통신(주) 설립.
* [[1984년]] 경남기업(주) 경영 참여. (주)대우경제연구소 설립. 10월 대우자동차부품(주) 설립. 대한민국 최초 VTR 수출.
* [[1986년]] 대우증권 런던사무소 개설. 9월 경남기업(주) 계열 편입.
* [[1987년]] 미얀마 현지 철도차량공장 준공.
* [[1988년]] (주)대우 동베를린지사 설치. 대우투자자문(주) 설립. 프랑스 롱위 전자레인지 공장 건립. 대우증권 홍콩사무소 개설.
* [[1989년]] 제철화학 외 3개사 매각. 대우정보시스템 설립. 대우기전공업㈜ 출범. MHB-Daewoo Bank 설립.
* [[1990년]] (주)대우 모스크바지사 설치. 대우중공업(주) 유럽현지법인 설립. 멕시코 컬러TV 공장 건립.
* [[1991년]] (주)대우 북경지사 설치. 대우증권(주) 유럽현지법인 설립, 취리히사무소 개설.
* [[1992년]] 4월 佛 컬러TV 공장 건립. 佛 컴퓨터 판매법인 설립. 대우증권 美 현지법인 설립. 대우차-GM 제휴관계 청산.

=== 팽창기 ===
(주)대우가 구축한 세계무역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대우자동차(주), 대우중공업(주), 대우전자(주)가 국제적으로 널리 진출하는 '세계경영'은 1993년 '세계경영 우리기술' 슬로건 선포를 시점으로 본격화되었다. 대우가 당시 내세웠던 세계경영은 선진업체가 진출하지 않은 옛 공산권 국가와 앞으로 발전가능성이 무한한 개발도상국 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것으로, 현지법인 설립과 인수합병을 통해 단기간에 정착하여 사세확장을 꾀하는 형태이다. 실제로 대우가 진출을 시도한 개발도상국가의 정부에서는 자국의 경제활성화 목적에서 대우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기에, 대우의 사업확장은 더욱 쉽게 이뤄질 수 있었다. 대한민국 시장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대우자동차(주)의 경우는 대한민국 외 국가에서 판매하는 수량이 대한민국에서 판매하는 수량을 앞지르는 현상을 가져오기도 했다. 이같은 대우의 급속한 성장은 대한민국 경제계와 대한민국 외 국가 경제에 큰 반향을 가져다 주었다.

* [[1993년]] 1월 대우자판 설립.
* [[1993년]] 2월 베트남 합작은행 출자.
* [[1993년]] 3월 세계경영 선포.
* [[1993년]] 5월 우즈벡 가전 공장 설립.
* [[1993년]] 7월 대우중공업(주) 미국현지법인 DEC 설립.
* [[1993년]] 8월 폴란드 TV 공장 설립.
* [[1993년]] 9월 세계최초 공기방울 세탁기 개발.
* [[1994년]] 2월 대우할부금융 설립.
* [[1994년]] 3월 인도 합작증권사 CRB-Daewoo Securities Ltd 출자.
* [[1994년]] 5월 대우자동차(주) 영국 워딩 자동차 기술연구소 건립.
* [[1994년]] 6월 대우중공업 영국현지법인 유로 대우 UK 설립.
* [[1994년]] 10월 대우중공업(주) 대우조선공업 흡수 합병. 중국현지법인 대우중공업연대유한공사 설립.
* [[1994년]] 11월 루마니아 자동차합작공장 DAEWOO-RODAE 설립. 대우중공업(주) 러시아 기술연구소 DISK 설립.
* [[1995년]] 1월 대우중공업(주) 독일 현지법인 ECO 설립. 대우전자(주) 말레이시아 세탁기 공장 설립. 대우뱅크 출범.
* [[1995년]] 2월 대우중공업(주) 일본 현지법인 대우건기 설립.
* [[1995년]] 3월 체코 최대 국영상용차업체 AVIA사 인수. 대우증권(주) 홍콩현지법인 설립.
* [[1995년]] 4월 대우증권(주) 상해사무소 개설.
* [[1995년]] 5월 대한민국 기업 최초, 대북 협력사업 정부승인 획득.
* [[1995년]] 6월 다이너스카드사 인수.
* [[1995년]] 7월 동우개발(주)의 사명을 (주)대우개발로 변경.
* [[1995년]] 9월 베트남 하노이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우즈벡 공화국에 교환기합작공장 알로카대우 설립.
* [[1995년]] 10월 중국천진 팩스밀리 합작공장 설립.
* [[1995년]] 11월 베트남 최초 타포린 합작생산 공장 준공. 폴란드 최대 자동차기업 [[Fabryka Samochodów Osobowych|FSO]] 인수, DAEWOO-FSO 출범.
* [[1996년]] 3월 대우증권(주) 싱가폴사무소 개설. 루마니아 DAEWOO-RODAE 공장 준공.
* [[1996년]] 5월 남북경협 최초회사 민족산업총회사 남포에 설립. 앙골라 대규모 유전발견.
* [[1996년]] 6월 프랑스 롱위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인도뉴델리 첨단 소프트웨어 연구개발센타 설립. 페루육상 유전인수 입찰수주.
* [[1996년]] 7월 한진투자증권 합작 법인 서울투신운용(주) 설립. 우크라이나 대용량교환기 합작공장 드니프로-대우 설립.
* [[1996년]] 10월 대우증권(주) 동경지점 개점. UZ-Daewoo 자동차 공장 준공. 베트남 비담코 자동차 공장 준공.
* [[1996년]] 11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중국 광케이블 합작회사 우시-대우 설립. 루마니아 합작은행 설립.
* [[1997년]] 3월 우즈베키스탄 대우은행 (Uz-Daewoo Bank) 설립.
* [[1997년]] 4월 인도 종합 가전공장 설립. 군산 종합 자동차공장 준공.
* [[1997년]] 5월 인도 CRB증권 대우파이낸스로 상호 변경. 대우선물(주) 설립.
* [[1997년]] 6월 대우증권(주) 싱가포르 현지법인 설립.
* [[1997년]] 7월 대우리스 체코에 설립.
* [[1997년]] 9월 대우자동차(주) 우크라이나 합작공장 설립계약 체결.
* [[1997년]] 12월 한국전기초자(주) 인수.

=== 해체 ===
대우는 세계경영으로 철저히 현지화를 추구함으로써 1993년 당시 150여개에 불과했던 대한민국 외 국가 현지법인을 1998년 11월에는 396개로 끌어올리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대우는 1997년 다가온 경제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물로 나온 쌍용자동차(주)를 인수하여 소형차에서 대형차는 물론, 버스와 트럭, 사륜구동 SUV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차량을 생산하는 풀라인업을 완성시키고 그 밖에도 해외 현지공장 인수 및 확장을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대우는 1998년 [[삼성그룹|삼성]](三星)을 제치고 재계서열 2위까지 뛰어오른다.
* [[1998년]] 3월 30일 대우자동차(주), 쌍용자동차(주) 인수.
* [[1998년]] 5월 스페인 냉장고 공장 설립.
* [[1998년]] 6월 우크라이나 자동차 법인 AUTOZAZ-DAEWOO 공장 본격 가동.
* [[1998년]] 7월 미국 Fortune 선정 매출 500대 기업 중 세계 18위의 기업으로 도약.
* [[1998년]] 10월 대우중공업(주) 이집트공장 준공.
* [[1998년]] 11월 무역의 날 150억불 수출의 탑 수상.

그러나 경기침체의 장기화와 세계 시장의 위축으로 대우의 입지는 크게 흔들렸고, 개발도상국가 위주로 판매망을 확대해온 대우자동차의 부진이 거듭되었다. 경영여건이 안정되지 못한 상황에서 추진한 쌍용자동차의 인수도 큰 실익을 거두지 못하였고, 외형확대의 초점을 맞추어 경영해오다보니 당시 정부가 요구했던 구조조정에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오다보니 구조조정의 실시가 경쟁 그룹에 비해 늦은 편이었다. 정부 주도의 산업체계 개편에 따라 늦게나마 추진한 대우전자-삼성자동차 빅딜협상은 양사간 입장차이로 끝내 결렬되었으며, 1999년 여름에 접어들면서 그룹의 운명을 좌우할 대우와 GM과의 협상(대우차와의 경영권 문제)마저도 실패한 대우는 급속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자금난이 가중되던 대우는 알짜자산인 힐튼호텔 매각 등을 성사시키기도 하지만 1999년 3월에는 이미 부채 비율을 무려 400%를 훨씬 넘은 상태여서 수습이 어려운 지경이었다. 7월 대우는 초고강도 구조조정안을 발표하였으나 채권단은 이를 반려한다. 결국 대우는 1999년 8월 16일 채권단의 재무구조개선수정약정 체결과 더불어, 26일 채권단 관리하에 워크아웃을 맞이함으로써 그룹 해체의 길로 접어든다. 지난 1967년 창업 이래 32년간 대한민국에 경쟁성장의 견인차로 역할을 해오던 기업 중 하나로서, 1993년 세계경영을 선포한지 6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 [[1998년]] 11월 대우그룹 1차 구조조정안 발표.
* [[1998년]] 12월 대우전자(주) 및 삼성자동차(주) 빅딜 발표. (사업맞교환)
* [[1999년]] 4월 19일 대우 2차 구조조정안 발표. (대우 조선, 상용차, 힐튼호텔 등 매각)
* [[1999년]] 6월 30일 삼성자동차 워크아웃 돌입.
* [[1999년]] 7월 16일 대우그룹 구조조정안 발표. (자동차 전문그룹으로의 재탄생)
* [[1999년]] 8월 3일 제일은행 등 채권단 구조조정안 반려.
* [[1999년]] 8월 16일 대우 채권단, 재무구조개선수정약정 체결.
* [[1999년]] 8월 26일 (주)대우, 대우중공업(주), 대우자동차(주), 대우전자(주) 등 12개 회사 워크아웃 돌입.
* [[1999년]] 8월 30일 대우증권(주) 계열 분리, 채권단으로 이양.
* [[1999년]] 10월 김우중 회장, 중국 옌타이 대우자동차 부품공장 준공식 참석.
* [[1999년]] 11월 1일 대우 회장 및 대우그룹 사장단 퇴진.
* [[2000년]] 4월 15일 대규모기업집단 지정 제외.

한 때 세계 경영의 첨병으로 불렸던 대우의 몰락은 경제계에 큰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대우사태는 당대 큰 기업은 절대 흥한다는 '대마불사'의 신화를 깨고 차입경영을 일삼는 부실기업을 과감하게 퇴출시킨 사례로 건실한 기업풍토 조성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이 있는 반면, 대우가 밝혀지지 않은 요인(정치적 문제 또는 국제적 외압)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여론도 일부 존재하고 있어 지금도 눈길을 끈다.

== 구 대우그룹 계열사 ==
현재 대우의 계열사들은 그룹 해체 후 자립 혹은 새로운 기업의 인수를 통해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그룹이 해체된 이후에도 포스코대우, 대우건설, 대우조선해양 등 몇몇 회사들은 여전히 대우의 이름을 유지하며 성공적으로 영업 중이다.

=== 자동차 사업 ===
대우가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자동차 사업은 [[1997년]] 신차 출시, [[1998년]] [[KG모빌리티|쌍용자동차]] 인수에 따른 사세 확장으로 대한민국 시장에서 호조를 거두었으나 부채 누적으로 인한 만성적인 적자로, 대우그룹 핵심 계열사들이 워크아웃에 돌입하면서 완전히 공중분해되고 말았다.

대우자동차(주)는 [[포드]], [[제너럴 모터스]](GM) 등 두 양사간의 해외 매각 의사를 타진하였으나 최종적으로 협상이 모두 결렬되었으며, 대우자동차(주)는 경영 정상화 실패로 인해 [[2000년]] [[11월 10일]]에 [[인천지방법원]]에 법정관리(정리절차) 개시 신청을 냈고, 노사가 극적으로 노사협의회 합의문에 합의한 후, 회사 측의 자구의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여, 법정관리 개시 결정이 내려졌다.

대우자동차는 GM 매각을 위한 구조조정 계획의 일환으로, 9992억 원의 자구계획을 마련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가 인력을 7300여 명 줄이고 재료비, 경상비, 투자비 등을 대폭 감축했으며, 부평공장 생산직 직원 1750명이 강제로 거리로 내몰리는 역대 최대 규모의 정리해고가 김대중 정부 출범 당시에 근로기준법 개정 이후, [[2001년]] 2월초에 단행되기도 했다.

미국 GM이 2001년 6월초에 대우차 인수 의향서를 제출하여, 이듬해인 [[2002년]] [[10월 28일]]에 GM대우(현 [[한국지엠]])라는 외국계 기업으로 새롭게 출범했고, 대한민국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확대에 실패하여 고전을 계속하였던 GM대우는 글로벌 GM의 전략적 요충지로 키우기 위해서 [[2011년 1월]] [[쉐보레]] 브랜드로의 흡수 통합을 선언하였으며, [[2011년]] [[한국GM]](주)가 새롭게 출범하였다.

GM이 인수하지 않은 버스부문, 상용차부문, 부평공장은 [[대우버스]](주), [[타타대우상용차|대우상용차]](주), 대우인천자동차(주)로 분할, 매각되었다.

대우자동차(주)의 버스부문인 [[대우버스]](주)는 [[영안모자]]에 매각되었고, 트럭을 생산하는 상용차 부문은 [[인도]] 최대의 재벌인 [[타타]](TATA)에 매각되어 [[타타대우상용차]](주)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대우그룹 시절 대우자동차와의 합병을 계획하였던 [[KG모빌리티|쌍용자동차]](주)는 대우그룹의 구조조정 당시 대우차와의 분리 매각이 결정되면서 [[2000년 4월]] 대우 계열에서 정식으로 분리되었다. 후에 쌍용자동차(주)는 [[2005년]] [[중국]] 국영자동차회사인 [[상하이자동차]] 그룹에 인수되어, 미국발 금융 위기로 인한 판매 부진이 계속 거듭되면서 [[2009년]] 쌍용자동차(주)의 경영권을 포기하고 한국 시장에 철수하였다. [[2009년]] 쌍용자동차(주)는 법정관리 체제에 들어갔으며, 구조조정에 따른 대규모 정리해고 사태로 노사간의 첨예한 대립까지 위태로울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다가 [[2010년]] 말 인도의 [[마힌드라]] 자동차에 인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 건설, 무역 ===
[[1999년]] 워크아웃으로 (주)대우지스틱스가 먼저 분사되었으며, [[2000년 12월]] 모기업 (주)[[포스코인터내셔널|대우]]가 3개사로 재탄생한다. 청산을 위한 (주)대우 존속법인과 무역부문의 (주)[[포스코인터내셔널|대우인터내셔널]], 건설부문의 (주)[[대우건설]]로 나뉜다.

(주)대우인터내셔널은 대우의 모태사업인 무역은 물론 백화점 등 사업도 하고 있다. [[2010년]] [[포스코]]에 인수되었고, 지금의 [[포스코인터내셔널|포스코대우]]로 재출범한다. 백화점 사업은 2014년 [[롯데쇼핑]](주)에서 인수하여 롯데백화점 마산점이 되었다.

(주)[[대우건설]]은 워크아웃을 단기에 졸업했으며 [[2006년 12월]]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인수되었다. 그러나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무리한 인수합병으로 인한 후유증에 세계 금융위기까지 겪으며 극심한 자금난을 겪자, 2010년 (주)대우건설에 대한 경영권을 포기하였고, [[2011년 1월]]에 금호아시아나 계열에서 정식으로 분리되었다. 현재 최대주주는 [[한국산업은행]]이다.

대우그룹의 또다른 건설회사였던 [[경남기업]](주)는 [[성완종]]이 이끄는 충남지역 건설사인 대아건설(주)에 인수되었다가 [[2004년]]에 대아건설(주)을 합병하면서 국내 10위권의 대형 건설사로 성장가도를 달린다. [[2009년]] 대한민국 건설사들의 잇따른 경영난으로 워크아웃을 재차 겪지만, 실적 개선 등에 힘입어 [[2011년 5월]] 워크아웃을 졸업하는데 성공한다. [[2015년]] 하지만 건설업계 불황이 장기화되고 기업의 오너(Owner)인 성완종이 자원외교비리수사에 연루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2015년 4월]] 마침내 [[경남기업]]은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만다. [[2017년]] [[sm그룹]]이 인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 중공업, 조선 ===
[[2000년]] [[대우중공업]](주)도 대우종합기계(주), 대우조선공업(주) 그리고 대우중공업(주) 잔존법인으로 분할되었다.

주력부문이었던 중장비 및 군수물자 생산을 담당하는 대우종합기계(주)는 [[2005년]]에 [[두산]] 계열로 편입, [[두산인프라코어]](주)로 재탄생하였다.

대우중공업의 조선해양부문은 대우조선공업 주식회사로 분사되었다가 곧 [[대우조선해양]]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한다. 2000년대 조선업계의 호황으로 대우의 계열사 중 가장 먼저 워크아웃을 졸업한 회사로도 주목받았고, 조선업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을 기반으로 건설, 상조사업 등에도 진출하며 자체적으로 조선사업 중심의 기업집단을 일구었다. 2000년 출범한 이래 수년간 경쟁업체인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과 함께 선박 수주잔량으로 세계 수위권을 다투왔지만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변곡점으로 대우조선해양은 2010년대 중반에 이르러 조선업황의 악화로 존폐의 기로에 놓여있는 상태이다.

대우중공업이 3개사로 분할되기 전인 [[1999년 7월]]에는 철도차량 생산부문이 경쟁사인 [[현대정공]](주), [[한진중공업]](주)와 함께 현물출자 형식으로 단일법인을 설립함으로써 국내 유일의 철차제작업체인 [[한국철도차량]]주식회사가 탄생하였다. 하지만 대우종합기계(주)가 승계받은 한국철도차량(주)의 지분은 경영정상화를 위해 [[2001년]]에 [[현대자동차그룹]]에 전량 매각됨으로써 주식회사 [[로템]](現 현대로템(주))으로 재출범한다.

대우중공업(주)의 항공사업부문도 [[1999년 8월]]에 [[삼성항공산업]](주), 현대우주항공(주)과 통합하여 새로이 [[한국항공우주산업]](주)로 출범하였지만, [[대우중공업]]의 지분을 인계받은 [[두산그룹]]의 DIP홀딩스에서는 2016년 [[한국항공우주산업]]의 보유지분을 전부 정리하였다.

=== 전자, 통신 ===
한때 세계 각국의 생산기지를 설치하며 세계적인 전자기업을 표방해 오던 대우전자(주)는 [[1999년]] 워크아웃 대상기업으로 지정되었고, [[2000년 4월]] 대우전자 중심의 기업집단을 구축하고 비수익 사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피아노 사업을 담당하는 벨로체, 컴퓨터 사업을 담당하는 [[루컴즈전자|대우루컴즈]], 가스보일러 사업을 담당하는 대우가스보일러 등이 독립된 업체로 분리되었다. [[2002년]] [[위니아전자|대우전자]]의 TV, 백색가전 등 주력 핵심사업부문이 대부분 [[위니아전자|대우모터공업]] 주식회사로 인계되어 이듬해인 [[2003년]]에 (주)[[대우일렉트로닉스]]로 재출범하였다. 이후에도 [[2008년]] 대우디스플레이 등이 분리되어 [[위니아전자|대우일렉트로닉스]]는 사실상 백색가전 전문업체가 되었다. 2013년 동부그룹이 인수함으로써 [[위니아전자|동부대우전자]] 주식회사로 이름이 바뀌다가 2018년 대유그룹이 인수하여 주식회사 대우전자로 부활하였다. [[2019년]] 주식회사 위니아대우 로 이름이 바꿔다가 [[2020년]] 주식회사 위니아전자로 이름이 바꿨다.

[[대우전자부품]]도 1999년 대우그룹 구조조정으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대상으로 지정되었다. 2000년 4월 대우그룹에서 분리되었다.2008년 회생절차개시 결정을 받았고, 2010년 2월 회생절차 종결 결정을 받았다. 그 후 [[현대자동차]]의 1차 협력그룹인 [[아진그룹]]이 인수했다.

대우통신(주)은 정상화를 위해 통신 관련사업부문을 매각하여 컴퓨터사업은 대우컴퓨터에 양도하였으며 그밖에 사업부문은 대우텔레텍, 대우글로벌 그리고 1999년 합병된 대우정밀공업 계열의 업체들은 대우정밀, 대우파워트레인, 대우프라스틱 등으로 분사되었다.

대우정밀(주)은 에스엔티(S&T그룹)에 인수되어 현재 [[S&T모티브]]로 운영 중이며 대우파워트레인(주)은 GM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컴퍼니(지금의 한국지엠주식회사)에 매각되었고, 대우프라스틱(주)는 삼라마이다스그룹(SM그룹)으로 매각된 후 대우라이프(주)로 바뀌었다가 계열사인 남선알미늄(주)에 합병되었다.

전자 계열사였던 오리온전기(주), 한국전기초자(주), 광전자(주) 등도 워크아웃을 맞아 자취를 감추거나 독자생존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 금융 ===
대우증권(주)는 [[1999년]] 대우가 해체되기 전 채권단이 인수하였으며 후에 대주주가 [[한국산업은행]]으로 변경된다. [[2009년]]에는 한국산업은행의 민영화에 따라 새로이 출범한 [[KDB금융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2015년]]에는 [[미래에셋금융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2001년 8월]] (주)다이너스카드클럽코리아는 [[현대자동차]](주)에 매각되어 [[현대카드]](주)로 변경되었다.

대우캐피탈(주)는 아주그룹에 편입되어 아주캐피탈(주)로 바뀌었다.

=== 스포츠 ===
대우그룹에서 운영 중이던 [[부산 아이파크|부산 대우 로얄즈]]는 [[현대산업개발]]에 매각, [[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인천 대우 제우스]]는 [[신세기통신]]에 매각되고 인천 신세기 빅스로 변경하며 현재 [[부산 아이파크]]와 [[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 미디어 ===
케이블 채널 중에서 대우시네마네트워크는 [[오리온홀딩스|동양그룹]]에 매각되어 [[OCN (텔레비전 채널)|OCN]](현재 [[CJ그룹|CJ]] 산하)으로 변경되었다.

== 같이 보기 ==
=== 건설, 무역 ===
* (주)대우 무역 → [[포스코인터내셔널|포스코대우]] ([[포스코]]에 인수) → [[포스코인터내셔널]]
* (주)대우 건설 → [[대우건설]] (최대주주 [[한국산업은행]])
* (주)대우 백화점 → [[롯데백화점]] 마산점 ([[롯데백화점|롯데쇼핑]]에 인수)

=== 자동차 ===
* 대우자동차 → GM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 → [[한국지엠]] (2002년 [[제너럴 모터스]]에 인수)
* 대우자동차 버스 부문 → [[자일대우버스]] (2003년 [[영안모자]]에 인수)
* 대우자동차 상용차 부문 → [[타타대우상용차]] (2004년 [[타타]]에 인수)
* 쌍용자동차→[[KG모빌리티]] (1998년 [[대우자동차]]에서 인수, 2004년 [[상하이자동차]]에 인수, 2010년 [[마힌드라]]에 피인수, 2022년 [[KG그룹]]에 피인수)
* 대우자동차판매 자동차판매 부분 → [[대우자동차판매]] (2010년 [[영안모자]]에 인수)
* 대우자동차판매 건설 부문 → [[대우산업개발]] (2011년 중국 풍화(豊華)그룹에 인수)

=== 중공업 ===
* 대우중공업 종합기계 부문 → [[두산인프라코어]] (2005년 [[두산그룹]]에 인수)
* 대우중공업 조선해양 부문 → [[대우조선해양]] → [[한화오션]]
* 대우중공업 철도차량 부문 → [[현대로템]] (2001년 [[현대자동차그룹]]에 인수)

=== 전자 ===
* 대우전자 → [[위니아전자|동부대우전자]] → [[위니아전자|대우전자]] (2018년 [[대유그룹]]에 인수) → [[위니아전자|위니아대우]] → [[위니아전자]]
* 대우정밀공업 → [[S&T모티브]] (2006년 [[S&T그룹]]에 인수)

=== 금융 ===
* 대우증권 → [[미래에셋대우]] (2016년 [[미래에셋금융그룹]]에 인수)
* 다이너스클럽코리아 → [[현대카드]] (2001년 [[현대자동차그룹]]에 인수)
* 대우캐피탈 → [[아주캐피탈]] (2005년 [[아주그룹]]에 인수)

=== 기타 ===
* 대우엔지니어링 → [[포스코엔지니어링]] (1990년 계열 분리 → 2002년 포스코에 인수)
* 신성통상 (1984년 계열 분리 → 2002년 가나안에서 인수)
* 대창기업
* (주)고려 → SG고려 (구 고려피혁공업주식회사 → 2003년 (주)가로수닷컴에 인수)
* 세계물산 → SG위카스 → [[SG세계물산]] (2002년 SK글로벌에 인수 → 2005년 (주)가로수닷컴에 인수)
* 대우시네마네트워크 → (주)[[OCN (텔레비전 채널)|오리온시네마네트워크]] (1999년 [[동양그룹]]에 인수되어 별도법인인 [[온미디어]] 설립 → 2010년 CJ에 인수 → 2013년 [[CJ ENM]]에 흡수 합병)
* 부산 대우 로얄즈 → [[부산 아이파크]] (2000년 [[현대산업개발]]에 인수)
* 인천 대우 제우스 → 인천 신세기 빅스 (1999년 [[신세기통신]]에 인수)

== 외부 링크 ==
* [https://daewoosky.com/ 대우세계경영연구회]

== 각주 ==
<references/>

{{대우그룹}}

[[분류:대우그룹| ]]
[[분류:대한민국의 기업]]
[[분류:1967년 설립된 기업]]
[[분류:2000년 해체된 기업]]
[[분류:대한민국의 없어진 기업]]
[[분류:대한민국의 브랜드]]

* [[1985년]] [[3월 1일]]: [[건대입구역|화양역]]에서 '''[[건대입구역]]'''으로 변경<ref>[http://event.seoul.go.kr/snews/data/CN_MST/1985-1062.pdf#page=51&view=FitV&scrollbar=1&toolbar=1&statusbar=1&messages=1&navpanes=1 서울특별시고시 제128호], 1985년 2월 28일.</ref>
* [[1985년]] [[3월 1일]]: [[건대입구역|화양역]]에서 '''[[건대입구역]]'''으로 변경<ref>[http://event.seoul.go.kr/snews/data/CN_MST/1985-1062.pdf#page=51&view=FitV&scrollbar=1&toolbar=1&statusbar=1&messages=1&navpanes=1 서울특별시고시 제128호], 1985년 2월 28일.</ref>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 [[1985년]] [[10월 18일]]: [[서울 지하철 3호선]]·[[서울 지하철 4호선|4호선]]의 연장 개통으로 [[을지로3가역]], [[교대역 (서울)|교대역]], [[서울운동장역]] (현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사당역]]이 환승역이 됨
{{회사 정보
| 이름 = 대우그룹
| 원어 = Daewoo Group
| 워드마크 = Daewoo logo (hangul).svg
| 형태 = 대기업집단(1989년~1999년)
| 창립 = 1967년 3월 22일 (대우실업 주식회사)
| 창립자 = [[김우중]](대표이사 회장)
| 해체 = 1999년 11월 1일
| 국가 = {{KOR}}
| 장소 = 대우센터빌딩(1977년~1999년)
| 사업 지역 =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 인물 = 김우중(대표이사 회장)
| 산업 = 자동차, 전자, 조선, 건설
| 주요사업부문 = 자동차, 전자, 조선, 건설, 무역, 금융
| 자본금 = 5,000,000원(1967년 기준)
| 매출액 = 분식회계로 정확히 추산불가
| 매출 = 78조원(1999년 기준)
| 영업이익 = -4조원(1999년 기준)
| 자산 총액 = 자본 약 15조 부채 89조
| 주주 = 김우중
| 모기업 = (주)[[포스코인터내셔널|대우]]
| 계열사 = [[대우전자]], [[대우건설]], [[한국GM|대우자동차]], [[대우조선]], [[대우증권]], [[쌍용자동차]] 外
}}

'''대우그룹'''(大宇─, Daewoo Group)은 [[1967년]] 창립한 [[포스코인터내셔널|대우실업]]을 모태로 [[1980년대]]부터 [[1990년대]] 말까지 존재한 [[대한민국]]의 대규모 기업집단이었다.<ref>[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1997120912000601 대우그룹, 쌍용自인수로 재계순위‘3위’]《문화일보》1997년 12월 9일 김병직 기자</ref> 대도섬유의 대(大)와 김우중의 우(宇)를 따서 만들었다. 섬유·무역·건설·조선·중장비·자동차·전자·통신·관광·금융 등 여러 사업부문을 두었으며, [[1993년]] 세계경영 전략 채택 이후 강력한 외형확장으로 사세를 넓혀갔고 [[1998년]]에는 [[현대그룹]]에 이어 재계 2위에 올랐으나 외환위기 이후, 자체 구조조정 실패와 [[1999년]] [[삼성그룹|삼성]]과의 전자-자동차 빅딜 실패로 [[1999년 10월]]부터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그룹 해체를 맞았다.

== 기업연혁 ==
[[파일:Seoul Square.jpg|섬네일|오른쪽|과거 대우그룹의 본사였던 서울스퀘어.]]
대우는 1967년 소규모 사업체로 창업하였으나, 1970년대 경제성장 및 수출호조에 따른 비약적인 발전, 그리고 정부 주도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에 힘입어 단기간에 대한민국 최대기업으로서 성장을 이루게 된다. 대우는 1980년대 후반부터 대한민국 외 국가로 눈을 돌려 동유럽 및 신흥시장 개척을 추진해 왔고, 1993년 세계경영에 나서면서 사세확장을 시도하였다. 이후 외환위기 속에서도 1997년 법정관리에 들어간 쌍용자동차를 인수하였다. 98년 상반기에는 현대그룹에 이은 (자산총액기준) 재계 2위에 올랐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출범이후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자체적 구조조정 실패와 무리한 차입금이 발목을 잡았고 1998년 10월, 대우그룹이 신청한 기업어음(CP)발행이 중단되면서 그룹 위기가 찾아왔다. 1999년이 되면서 삼성그룹과의 대우전자-삼성자동차의 빅딜협상에 들어갔으나 동년 7월, 협상이 결렬되었다. 이후 김우중 회장은 자동차를 중심으로 그룹 구조조정에 뒤늦게 들어갔으나 대우그룹 채권단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1999년 10월, 그룹 해체 수순을 밟았다.

=== 성장 ===
1967년 대우실업 창립 이래, 부산에 공장을 설치하여 1970년대 와이셔츠 등의 봉제품 및 섬유제품의 수출호조와 더불어 경제고도성장으로 급속한 발전을 이루어 신흥 사업체로 주목받았고, 더욱이 정부가 주도하던 경제 정책에 발맞춰 금융, 전자, 중공업, 자동차 사업에도 뛰어들면서 대우 그룹을 형성하게 된다.

* [[1967년]] [[3월 22일]] 모태인 대우실업(주)(대우가족) 창립. (섬유류 봉제품 생산, 수출 주도)
* [[1969년]] 8월 대한민국 기업 해외지사 1호 시드니에 개설.
* [[1971년]] 9월 (주)내쇼날의류 설립.
* [[1972년]] 9월 고려피혁(주) 인수.
* [[1973년]] 쌍미섬유공업(주) 인수. 대우증권의 전신 동양증권(주) 인수. 대우건설(주) 설립.
* [[1975년]] 2월 대우빌딩 착공.
* [[1975년]] 5월 대우실업(주), 종합무역상사 지정.
* [[1976년]] 2월 한국기계공업(주) 인수. 10월 해외건설업면허 취득. 대우중공업(주) 출범.
* [[1977년]] 대우센터 빌딩 준공. 8월 제철화학(주) 경영권 인수.
* [[1978년]] 7월 산업은행으로부터 새한자동차(주) 지분 인수. 대한조선공사 옥포조선소 인수 후 9월 대우조선공업(주) 설립.

=== 도약기 ===
대우 그룹은 (주)대우의 출범과 새한자동차 경영권 장악, 가전사업 진출을 잇달아 성사시키며 현대(現代), 삼성(三星), 럭키금성(LG)과 함께 대한민국 4대 기업군으로 성장한다. 국내 업체들과의 출혈 경쟁에서 기술력과 수익성의 한계를 느낀 대우는 세계로 눈을 돌려 냉전체제의 완화가 도래한 시점에 동유럽 및 공산권 국가에 현지법인을 설립하면서 신시장 개척을 준비하였다.

* [[1981년]] 10월 옥포조선소 준공. 수출의날 15억불탑 수상. 대우실업(주) 및 대우개발(주) 합병 결의.
* [[1982년]] 모기업 (주)대우 출범. 수출의날 20억불탑 수상.
* [[1983년]] 대우자동차(주) 출범. 대우전자(주)에서 대한전선(주)의 가전부문을 흡수. 대우통신(주) 설립.
* [[1984년]] 경남기업(주) 경영 참여. (주)대우경제연구소 설립. 10월 대우자동차부품(주) 설립. 대한민국 최초 VTR 수출.
* [[1986년]] 대우증권 런던사무소 개설. 9월 경남기업(주) 계열 편입.
* [[1987년]] 미얀마 현지 철도차량공장 준공.
* [[1988년]] (주)대우 동베를린지사 설치. 대우투자자문(주) 설립. 프랑스 롱위 전자레인지 공장 건립. 대우증권 홍콩사무소 개설.
* [[1989년]] 제철화학 외 3개사 매각. 대우정보시스템 설립. 대우기전공업㈜ 출범. MHB-Daewoo Bank 설립.
* [[1990년]] (주)대우 모스크바지사 설치. 대우중공업(주) 유럽현지법인 설립. 멕시코 컬러TV 공장 건립.
* [[1991년]] (주)대우 북경지사 설치. 대우증권(주) 유럽현지법인 설립, 취리히사무소 개설.
* [[1992년]] 4월 佛 컬러TV 공장 건립. 佛 컴퓨터 판매법인 설립. 대우증권 美 현지법인 설립. 대우차-GM 제휴관계 청산.

=== 팽창기 ===
(주)대우가 구축한 세계무역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대우자동차(주), 대우중공업(주), 대우전자(주)가 국제적으로 널리 진출하는 '세계경영'은 1993년 '세계경영 우리기술' 슬로건 선포를 시점으로 본격화되었다. 대우가 당시 내세웠던 세계경영은 선진업체가 진출하지 않은 옛 공산권 국가와 앞으로 발전가능성이 무한한 개발도상국 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것으로, 현지법인 설립과 인수합병을 통해 단기간에 정착하여 사세확장을 꾀하는 형태이다. 실제로 대우가 진출을 시도한 개발도상국가의 정부에서는 자국의 경제활성화 목적에서 대우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기에, 대우의 사업확장은 더욱 쉽게 이뤄질 수 있었다. 대한민국 시장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대우자동차(주)의 경우는 대한민국 외 국가에서 판매하는 수량이 대한민국에서 판매하는 수량을 앞지르는 현상을 가져오기도 했다. 이같은 대우의 급속한 성장은 대한민국 경제계와 대한민국 외 국가 경제에 큰 반향을 가져다 주었다.

* [[1993년]] 1월 대우자판 설립.
* [[1993년]] 2월 베트남 합작은행 출자.
* [[1993년]] 3월 세계경영 선포.
* [[1993년]] 5월 우즈벡 가전 공장 설립.
* [[1993년]] 7월 대우중공업(주) 미국현지법인 DEC 설립.
* [[1993년]] 8월 폴란드 TV 공장 설립.
* [[1993년]] 9월 세계최초 공기방울 세탁기 개발.
* [[1994년]] 2월 대우할부금융 설립.
* [[1994년]] 3월 인도 합작증권사 CRB-Daewoo Securities Ltd 출자.
* [[1994년]] 5월 대우자동차(주) 영국 워딩 자동차 기술연구소 건립.
* [[1994년]] 6월 대우중공업 영국현지법인 유로 대우 UK 설립.
* [[1994년]] 10월 대우중공업(주) 대우조선공업 흡수 합병. 중국현지법인 대우중공업연대유한공사 설립.
* [[1994년]] 11월 루마니아 자동차합작공장 DAEWOO-RODAE 설립. 대우중공업(주) 러시아 기술연구소 DISK 설립.
* [[1995년]] 1월 대우중공업(주) 독일 현지법인 ECO 설립. 대우전자(주) 말레이시아 세탁기 공장 설립. 대우뱅크 출범.
* [[1995년]] 2월 대우중공업(주) 일본 현지법인 대우건기 설립.
* [[1995년]] 3월 체코 최대 국영상용차업체 AVIA사 인수. 대우증권(주) 홍콩현지법인 설립.
* [[1995년]] 4월 대우증권(주) 상해사무소 개설.
* [[1995년]] 5월 대한민국 기업 최초, 대북 협력사업 정부승인 획득.
* [[1995년]] 6월 다이너스카드사 인수.
* [[1995년]] 7월 동우개발(주)의 사명을 (주)대우개발로 변경.
* [[1995년]] 9월 베트남 하노이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우즈벡 공화국에 교환기합작공장 알로카대우 설립.
* [[1995년]] 10월 중국천진 팩스밀리 합작공장 설립.
* [[1995년]] 11월 베트남 최초 타포린 합작생산 공장 준공. 폴란드 최대 자동차기업 [[Fabryka Samochodów Osobowych|FSO]] 인수, DAEWOO-FSO 출범.
* [[1996년]] 3월 대우증권(주) 싱가폴사무소 개설. 루마니아 DAEWOO-RODAE 공장 준공.
* [[1996년]] 5월 남북경협 최초회사 민족산업총회사 남포에 설립. 앙골라 대규모 유전발견.
* [[1996년]] 6월 프랑스 롱위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인도뉴델리 첨단 소프트웨어 연구개발센타 설립. 페루육상 유전인수 입찰수주.
* [[1996년]] 7월 한진투자증권 합작 법인 서울투신운용(주) 설립. 우크라이나 대용량교환기 합작공장 드니프로-대우 설립.
* [[1996년]] 10월 대우증권(주) 동경지점 개점. UZ-Daewoo 자동차 공장 준공. 베트남 비담코 자동차 공장 준공.
* [[1996년]] 11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중국 광케이블 합작회사 우시-대우 설립. 루마니아 합작은행 설립.
* [[1997년]] 3월 우즈베키스탄 대우은행 (Uz-Daewoo Bank) 설립.
* [[1997년]] 4월 인도 종합 가전공장 설립. 군산 종합 자동차공장 준공.
* [[1997년]] 5월 인도 CRB증권 대우파이낸스로 상호 변경. 대우선물(주) 설립.
* [[1997년]] 6월 대우증권(주) 싱가포르 현지법인 설립.
* [[1997년]] 7월 대우리스 체코에 설립.
* [[1997년]] 9월 대우자동차(주) 우크라이나 합작공장 설립계약 체결.
* [[1997년]] 12월 한국전기초자(주) 인수.

=== 해체 ===
대우는 세계경영으로 철저히 현지화를 추구함으로써 1993년 당시 150여개에 불과했던 대한민국 외 국가 현지법인을 1998년 11월에는 396개로 끌어올리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대우는 1997년 다가온 경제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물로 나온 쌍용자동차(주)를 인수하여 소형차에서 대형차는 물론, 버스와 트럭, 사륜구동 SUV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차량을 생산하는 풀라인업을 완성시키고 그 밖에도 해외 현지공장 인수 및 확장을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대우는 1998년 [[삼성그룹|삼성]](三星)을 제치고 재계서열 2위까지 뛰어오른다.
* [[1998년]] 3월 30일 대우자동차(주), 쌍용자동차(주) 인수.
* [[1998년]] 5월 스페인 냉장고 공장 설립.
* [[1998년]] 6월 우크라이나 자동차 법인 AUTOZAZ-DAEWOO 공장 본격 가동.
* [[1998년]] 7월 미국 Fortune 선정 매출 500대 기업 중 세계 18위의 기업으로 도약.
* [[1998년]] 10월 대우중공업(주) 이집트공장 준공.
* [[1998년]] 11월 무역의 날 150억불 수출의 탑 수상.

그러나 경기침체의 장기화와 세계 시장의 위축으로 대우의 입지는 크게 흔들렸고, 개발도상국가 위주로 판매망을 확대해온 대우자동차의 부진이 거듭되었다. 경영여건이 안정되지 못한 상황에서 추진한 쌍용자동차의 인수도 큰 실익을 거두지 못하였고, 외형확대의 초점을 맞추어 경영해오다보니 당시 정부가 요구했던 구조조정에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오다보니 구조조정의 실시가 경쟁 그룹에 비해 늦은 편이었다. 정부 주도의 산업체계 개편에 따라 늦게나마 추진한 대우전자-삼성자동차 빅딜협상은 양사간 입장차이로 끝내 결렬되었으며, 1999년 여름에 접어들면서 그룹의 운명을 좌우할 대우와 GM과의 협상(대우차와의 경영권 문제)마저도 실패한 대우는 급속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자금난이 가중되던 대우는 알짜자산인 힐튼호텔 매각 등을 성사시키기도 하지만 1999년 3월에는 이미 부채 비율을 무려 400%를 훨씬 넘은 상태여서 수습이 어려운 지경이었다. 7월 대우는 초고강도 구조조정안을 발표하였으나 채권단은 이를 반려한다. 결국 대우는 1999년 8월 16일 채권단의 재무구조개선수정약정 체결과 더불어, 26일 채권단 관리하에 워크아웃을 맞이함으로써 그룹 해체의 길로 접어든다. 지난 1967년 창업 이래 32년간 대한민국에 경쟁성장의 견인차로 역할을 해오던 기업 중 하나로서, 1993년 세계경영을 선포한지 6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 [[1998년]] 11월 대우그룹 1차 구조조정안 발표.
* [[1998년]] 12월 대우전자(주) 및 삼성자동차(주) 빅딜 발표. (사업맞교환)
* [[1999년]] 4월 19일 대우 2차 구조조정안 발표. (대우 조선, 상용차, 힐튼호텔 등 매각)
* [[1999년]] 6월 30일 삼성자동차 워크아웃 돌입.
* [[1999년]] 7월 16일 대우그룹 구조조정안 발표. (자동차 전문그룹으로의 재탄생)
* [[1999년]] 8월 3일 제일은행 등 채권단 구조조정안 반려.
* [[1999년]] 8월 16일 대우 채권단, 재무구조개선수정약정 체결.
* [[1999년]] 8월 26일 (주)대우, 대우중공업(주), 대우자동차(주), 대우전자(주) 등 12개 회사 워크아웃 돌입.
* [[1999년]] 8월 30일 대우증권(주) 계열 분리, 채권단으로 이양.
* [[1999년]] 10월 김우중 회장, 중국 옌타이 대우자동차 부품공장 준공식 참석.
* [[1999년]] 11월 1일 대우 회장 및 대우그룹 사장단 퇴진.
* [[2000년]] 4월 15일 대규모기업집단 지정 제외.

한 때 세계 경영의 첨병으로 불렸던 대우의 몰락은 경제계에 큰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대우사태는 당대 큰 기업은 절대 흥한다는 '대마불사'의 신화를 깨고 차입경영을 일삼는 부실기업을 과감하게 퇴출시킨 사례로 건실한 기업풍토 조성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이 있는 반면, 대우가 밝혀지지 않은 요인(정치적 문제 또는 국제적 외압)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여론도 일부 존재하고 있어 지금도 눈길을 끈다.

== 구 대우그룹 계열사 ==
현재 대우의 계열사들은 그룹 해체 후 자립 혹은 새로운 기업의 인수를 통해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그룹이 해체된 이후에도 포스코대우, 대우건설, 대우조선해양 등 몇몇 회사들은 여전히 대우의 이름을 유지하며 성공적으로 영업 중이다.

=== 자동차 사업 ===
대우가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자동차 사업은 [[1997년]] 신차 출시, [[1998년]] [[KG모빌리티|쌍용자동차]] 인수에 따른 사세 확장으로 대한민국 시장에서 호조를 거두었으나 부채 누적으로 인한 만성적인 적자로, 대우그룹 핵심 계열사들이 워크아웃에 돌입하면서 완전히 공중분해되고 말았다.

대우자동차(주)는 [[포드]], [[제너럴 모터스]](GM) 등 두 양사간의 해외 매각 의사를 타진하였으나 최종적으로 협상이 모두 결렬되었으며, 대우자동차(주)는 경영 정상화 실패로 인해 [[2000년]] [[11월 10일]]에 [[인천지방법원]]에 법정관리(정리절차) 개시 신청을 냈고, 노사가 극적으로 노사협의회 합의문에 합의한 후, 회사 측의 자구의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여, 법정관리 개시 결정이 내려졌다.

대우자동차는 GM 매각을 위한 구조조정 계획의 일환으로, 9992억 원의 자구계획을 마련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가 인력을 7300여 명 줄이고 재료비, 경상비, 투자비 등을 대폭 감축했으며, 부평공장 생산직 직원 1750명이 강제로 거리로 내몰리는 역대 최대 규모의 정리해고가 김대중 정부 출범 당시에 근로기준법 개정 이후, [[2001년]] 2월초에 단행되기도 했다.

미국 GM이 2001년 6월초에 대우차 인수 의향서를 제출하여, 이듬해인 [[2002년]] [[10월 28일]]에 GM대우(현 [[한국지엠]])라는 외국계 기업으로 새롭게 출범했고, 대한민국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확대에 실패하여 고전을 계속하였던 GM대우는 글로벌 GM의 전략적 요충지로 키우기 위해서 [[2011년 1월]] [[쉐보레]] 브랜드로의 흡수 통합을 선언하였으며, [[2011년]] [[한국GM]](주)가 새롭게 출범하였다.

GM이 인수하지 않은 버스부문, 상용차부문, 부평공장은 [[대우버스]](주), [[타타대우상용차|대우상용차]](주), 대우인천자동차(주)로 분할, 매각되었다.

대우자동차(주)의 버스부문인 [[대우버스]](주)는 [[영안모자]]에 매각되었고, 트럭을 생산하는 상용차 부문은 [[인도]] 최대의 재벌인 [[타타]](TATA)에 매각되어 [[타타대우상용차]](주)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대우그룹 시절 대우자동차와의 합병을 계획하였던 [[KG모빌리티|쌍용자동차]](주)는 대우그룹의 구조조정 당시 대우차와의 분리 매각이 결정되면서 [[2000년 4월]] 대우 계열에서 정식으로 분리되었다. 후에 쌍용자동차(주)는 [[2005년]] [[중국]] 국영자동차회사인 [[상하이자동차]] 그룹에 인수되어, 미국발 금융 위기로 인한 판매 부진이 계속 거듭되면서 [[2009년]] 쌍용자동차(주)의 경영권을 포기하고 한국 시장에 철수하였다. [[2009년]] 쌍용자동차(주)는 법정관리 체제에 들어갔으며, 구조조정에 따른 대규모 정리해고 사태로 노사간의 첨예한 대립까지 위태로울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다가 [[2010년]] 말 인도의 [[마힌드라]] 자동차에 인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 건설, 무역 ===
[[1999년]] 워크아웃으로 (주)대우지스틱스가 먼저 분사되었으며, [[2000년 12월]] 모기업 (주)[[포스코인터내셔널|대우]]가 3개사로 재탄생한다. 청산을 위한 (주)대우 존속법인과 무역부문의 (주)[[포스코인터내셔널|대우인터내셔널]], 건설부문의 (주)[[대우건설]]로 나뉜다.

(주)대우인터내셔널은 대우의 모태사업인 무역은 물론 백화점 등 사업도 하고 있다. [[2010년]] [[포스코]]에 인수되었고, 지금의 [[포스코인터내셔널|포스코대우]]로 재출범한다. 백화점 사업은 2014년 [[롯데쇼핑]](주)에서 인수하여 롯데백화점 마산점이 되었다.

(주)[[대우건설]]은 워크아웃을 단기에 졸업했으며 [[2006년 12월]]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인수되었다. 그러나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무리한 인수합병으로 인한 후유증에 세계 금융위기까지 겪으며 극심한 자금난을 겪자, 2010년 (주)대우건설에 대한 경영권을 포기하였고, [[2011년 1월]]에 금호아시아나 계열에서 정식으로 분리되었다. 현재 최대주주는 [[한국산업은행]]이다.

대우그룹의 또다른 건설회사였던 [[경남기업]](주)는 [[성완종]]이 이끄는 충남지역 건설사인 대아건설(주)에 인수되었다가 [[2004년]]에 대아건설(주)을 합병하면서 국내 10위권의 대형 건설사로 성장가도를 달린다. [[2009년]] 대한민국 건설사들의 잇따른 경영난으로 워크아웃을 재차 겪지만, 실적 개선 등에 힘입어 [[2011년 5월]] 워크아웃을 졸업하는데 성공한다. [[2015년]] 하지만 건설업계 불황이 장기화되고 기업의 오너(Owner)인 성완종이 자원외교비리수사에 연루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2015년 4월]] 마침내 [[경남기업]]은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만다. [[2017년]] [[sm그룹]]이 인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 중공업, 조선 ===
[[2000년]] [[대우중공업]](주)도 대우종합기계(주), 대우조선공업(주) 그리고 대우중공업(주) 잔존법인으로 분할되었다.

주력부문이었던 중장비 및 군수물자 생산을 담당하는 대우종합기계(주)는 [[2005년]]에 [[두산]] 계열로 편입, [[두산인프라코어]](주)로 재탄생하였다.

대우중공업의 조선해양부문은 대우조선공업 주식회사로 분사되었다가 곧 [[대우조선해양]]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한다. 2000년대 조선업계의 호황으로 대우의 계열사 중 가장 먼저 워크아웃을 졸업한 회사로도 주목받았고, 조선업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을 기반으로 건설, 상조사업 등에도 진출하며 자체적으로 조선사업 중심의 기업집단을 일구었다. 2000년 출범한 이래 수년간 경쟁업체인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과 함께 선박 수주잔량으로 세계 수위권을 다투왔지만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변곡점으로 대우조선해양은 2010년대 중반에 이르러 조선업황의 악화로 존폐의 기로에 놓여있는 상태이다.

대우중공업이 3개사로 분할되기 전인 [[1999년 7월]]에는 철도차량 생산부문이 경쟁사인 [[현대정공]](주), [[한진중공업]](주)와 함께 현물출자 형식으로 단일법인을 설립함으로써 국내 유일의 철차제작업체인 [[한국철도차량]]주식회사가 탄생하였다. 하지만 대우종합기계(주)가 승계받은 한국철도차량(주)의 지분은 경영정상화를 위해 [[2001년]]에 [[현대자동차그룹]]에 전량 매각됨으로써 주식회사 [[로템]](現 현대로템(주))으로 재출범한다.

대우중공업(주)의 항공사업부문도 [[1999년 8월]]에 [[삼성항공산업]](주), 현대우주항공(주)과 통합하여 새로이 [[한국항공우주산업]](주)로 출범하였지만, [[대우중공업]]의 지분을 인계받은 [[두산그룹]]의 DIP홀딩스에서는 2016년 [[한국항공우주산업]]의 보유지분을 전부 정리하였다.

=== 전자, 통신 ===
한때 세계 각국의 생산기지를 설치하며 세계적인 전자기업을 표방해 오던 대우전자(주)는 [[1999년]] 워크아웃 대상기업으로 지정되었고, [[2000년 4월]] 대우전자 중심의 기업집단을 구축하고 비수익 사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피아노 사업을 담당하는 벨로체, 컴퓨터 사업을 담당하는 [[루컴즈전자|대우루컴즈]], 가스보일러 사업을 담당하는 대우가스보일러 등이 독립된 업체로 분리되었다. [[2002년]] [[위니아전자|대우전자]]의 TV, 백색가전 등 주력 핵심사업부문이 대부분 [[위니아전자|대우모터공업]] 주식회사로 인계되어 이듬해인 [[2003년]]에 (주)[[대우일렉트로닉스]]로 재출범하였다. 이후에도 [[2008년]] 대우디스플레이 등이 분리되어 [[위니아전자|대우일렉트로닉스]]는 사실상 백색가전 전문업체가 되었다. 2013년 동부그룹이 인수함으로써 [[위니아전자|동부대우전자]] 주식회사로 이름이 바뀌다가 2018년 대유그룹이 인수하여 주식회사 대우전자로 부활하였다. [[2019년]] 주식회사 위니아대우 로 이름이 바꿔다가 [[2020년]] 주식회사 위니아전자로 이름이 바꿨다.

[[대우전자부품]]도 1999년 대우그룹 구조조정으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대상으로 지정되었다. 2000년 4월 대우그룹에서 분리되었다.2008년 회생절차개시 결정을 받았고, 2010년 2월 회생절차 종결 결정을 받았다. 그 후 [[현대자동차]]의 1차 협력그룹인 [[아진그룹]]이 인수했다.

대우통신(주)은 정상화를 위해 통신 관련사업부문을 매각하여 컴퓨터사업은 대우컴퓨터에 양도하였으며 그밖에 사업부문은 대우텔레텍, 대우글로벌 그리고 1999년 합병된 대우정밀공업 계열의 업체들은 대우정밀, 대우파워트레인, 대우프라스틱 등으로 분사되었다.

대우정밀(주)은 에스엔티(S&T그룹)에 인수되어 현재 [[S&T모티브]]로 운영 중이며 대우파워트레인(주)은 GM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컴퍼니(지금의 한국지엠주식회사)에 매각되었고, 대우프라스틱(주)는 삼라마이다스그룹(SM그룹)으로 매각된 후 대우라이프(주)로 바뀌었다가 계열사인 남선알미늄(주)에 합병되었다.

전자 계열사였던 오리온전기(주), 한국전기초자(주), 광전자(주) 등도 워크아웃을 맞아 자취를 감추거나 독자생존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 금융 ===
대우증권(주)는 [[1999년]] 대우가 해체되기 전 채권단이 인수하였으며 후에 대주주가 [[한국산업은행]]으로 변경된다. [[2009년]]에는 한국산업은행의 민영화에 따라 새로이 출범한 [[KDB금융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2015년]]에는 [[미래에셋금융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2001년 8월]] (주)다이너스카드클럽코리아는 [[현대자동차]](주)에 매각되어 [[현대카드]](주)로 변경되었다.

대우캐피탈(주)는 아주그룹에 편입되어 아주캐피탈(주)로 바뀌었다.

=== 스포츠 ===
대우그룹에서 운영 중이던 [[부산 아이파크|부산 대우 로얄즈]]는 [[현대산업개발]]에 매각, [[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인천 대우 제우스]]는 [[신세기통신]]에 매각되고 인천 신세기 빅스로 변경하며 현재 [[부산 아이파크]]와 [[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 미디어 ===
케이블 채널 중에서 대우시네마네트워크는 [[오리온홀딩스|동양그룹]]에 매각되어 [[OCN (텔레비전 채널)|OCN]](현재 [[CJ그룹|CJ]] 산하)으로 변경되었다.

== 같이 보기 ==
=== 건설, 무역 ===
* (주)대우 무역 → [[포스코인터내셔널|포스코대우]] ([[포스코]]에 인수) → [[포스코인터내셔널]]
* (주)대우 건설 → [[대우건설]] (최대주주 [[한국산업은행]])
* (주)대우 백화점 → [[롯데백화점]] 마산점 ([[롯데백화점|롯데쇼핑]]에 인수)

=== 자동차 ===
* 대우자동차 → GM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 → [[한국지엠]] (2002년 [[제너럴 모터스]]에 인수)
* 대우자동차 버스 부문 → [[자일대우버스]] (2003년 [[영안모자]]에 인수)
* 대우자동차 상용차 부문 → [[타타대우상용차]] (2004년 [[타타]]에 인수)
* 쌍용자동차→[[KG모빌리티]] (1998년 [[대우자동차]]에서 인수, 2004년 [[상하이자동차]]에 인수, 2010년 [[마힌드라]]에 피인수, 2022년 [[KG그룹]]에 피인수)
* 대우자동차판매 자동차판매 부분 → [[대우자동차판매]] (2010년 [[영안모자]]에 인수)
* 대우자동차판매 건설 부문 → [[대우산업개발]] (2011년 중국 풍화(豊華)그룹에 인수)

=== 중공업 ===
* 대우중공업 종합기계 부문 → [[두산인프라코어]] (2005년 [[두산그룹]]에 인수)
* 대우중공업 조선해양 부문 → [[대우조선해양]] → [[한화오션]]
* 대우중공업 철도차량 부문 → [[현대로템]] (2001년 [[현대자동차그룹]]에 인수)

=== 전자 ===
* 대우전자 → [[위니아전자|동부대우전자]] → [[위니아전자|대우전자]] (2018년 [[대유그룹]]에 인수) → [[위니아전자|위니아대우]] → [[위니아전자]]
* 대우정밀공업 → [[S&T모티브]] (2006년 [[S&T그룹]]에 인수)

=== 금융 ===
* 대우증권 → [[미래에셋대우]] (2016년 [[미래에셋금융그룹]]에 인수)
* 다이너스클럽코리아 → [[현대카드]] (2001년 [[현대자동차그룹]]에 인수)
* 대우캐피탈 → [[아주캐피탈]] (2005년 [[아주그룹]]에 인수)

=== 기타 ===
* 대우엔지니어링 → [[포스코엔지니어링]] (1990년 계열 분리 → 2002년 포스코에 인수)
* 신성통상 (1984년 계열 분리 → 2002년 가나안에서 인수)
* 대창기업
* (주)고려 → SG고려 (구 고려피혁공업주식회사 → 2003년 (주)가로수닷컴에 인수)
* 세계물산 → SG위카스 → [[SG세계물산]] (2002년 SK글로벌에 인수 → 2005년 (주)가로수닷컴에 인수)
* 대우시네마네트워크 → (주)[[OCN (텔레비전 채널)|오리온시네마네트워크]] (1999년 [[동양그룹]]에 인수되어 별도법인인 [[온미디어]] 설립 → 2010년 CJ에 인수 → 2013년 [[CJ ENM]]에 흡수 합병)
* 부산 대우 로얄즈 → [[부산 아이파크]] (2000년 [[현대산업개발]]에 인수)
* 인천 대우 제우스 → 인천 신세기 빅스 (1999년 [[신세기통신]]에 인수)

== 외부 링크 ==
* [https://daewoosky.com/ 대우세계경영연구회]

== 각주 ==
<references/>

{{대우그룹}}

[[분류:대우그룹| ]]
[[분류:대한민국의 기업]]
[[분류:1967년 설립된 기업]]
[[분류:2000년 해체된 기업]]
[[분류:대한민국의 없어진 기업]]
[[분류:대한민국의 브랜드]]

* [[1985년]] [[10월 24일]] : [[서울운동장역]]에서 '''[[동대문운동장역]]'''으로 변경<ref>[http://event.seoul.go.kr/snews/data/CN_MST/1985-1199.pdf#page=2&view=FitV&scrollbar=1&toolbar=1&statusbar=1&messages=1&navpanes=1 서울특별시고시 제698호], [[1985년]] [[10월 16일]].</ref>
* [[1985년]] [[10월 24일]] : [[서울운동장역]]에서 '''[[동대문운동장역]]'''으로 변경<ref>[http://event.seoul.go.kr/snews/data/CN_MST/1985-1199.pdf#page=2&view=FitV&scrollbar=1&toolbar=1&statusbar=1&messages=1&navpanes=1 서울특별시고시 제698호], [[1985년]] [[10월 16일]].</ref>
* [[1992년]] [[3월 20일]]: [[기지역]]에서 [[용답역]]으로 역명 변경
* [[1992년]] [[3월 20일]]: [[기지역]]에서 [[용답역]]으로 역명 변경
54번째 줄: 2,214번째 줄:
* [[1996년]] [[3월 20일]]: [[#신정지선|신정지선]] [[신정네거리역|신정네거리]] - [[까치산역|까치산]] 1.4&nbsp;km 구간이 [[서울 지하철 5호선]] 연장 개통과 동시에 개통
* [[1996년]] [[3월 20일]]: [[#신정지선|신정지선]] [[신정네거리역|신정네거리]] - [[까치산역|까치산]] 1.4&nbsp;km 구간이 [[서울 지하철 5호선]] 연장 개통과 동시에 개통
* [[1996년]] [[12월 31일]]: [[당산역|당산]] - [[합정역|합정]] 2&nbsp;km 구간이 [[당산철교]] 재시공으로 운행 중단
* [[1996년]] [[12월 31일]]: [[당산역|당산]] - [[합정역|합정]] 2&nbsp;km 구간이 [[당산철교]] 재시공으로 운행 중단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 [[1999년]] [[11월 22일]]: [[당산역|당산]] - [[합정역|합정]] 2&nbsp;km 구간이 [[당산철교]] 재시공 완료로 재개통
{{회사 정보
| 이름 = 대우그룹
| 원어 = Daewoo Group
| 워드마크 = Daewoo logo (hangul).svg
| 형태 = 대기업집단(1989년~1999년)
| 창립 = 1967년 3월 22일 (대우실업 주식회사)
| 창립자 = [[김우중]](대표이사 회장)
| 해체 = 1999년 11월 1일
| 국가 = {{KOR}}
| 장소 = 대우센터빌딩(1977년~1999년)
| 사업 지역 =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 인물 = 김우중(대표이사 회장)
| 산업 = 자동차, 전자, 조선, 건설
| 주요사업부문 = 자동차, 전자, 조선, 건설, 무역, 금융
| 자본금 = 5,000,000원(1967년 기준)
| 매출액 = 분식회계로 정확히 추산불가
| 매출 = 78조원(1999년 기준)
| 영업이익 = -4조원(1999년 기준)
| 자산 총액 = 자본 약 15조 부채 89조
| 주주 = 김우중
| 모기업 = (주)[[포스코인터내셔널|대우]]
| 계열사 = [[대우전자]], [[대우건설]], [[한국GM|대우자동차]], [[대우조선]], [[대우증권]], [[쌍용자동차]] 外
}}

'''대우그룹'''(大宇─, Daewoo Group)은 [[1967년]] 창립한 [[포스코인터내셔널|대우실업]]을 모태로 [[1980년대]]부터 [[1990년대]] 말까지 존재한 [[대한민국]]의 대규모 기업집단이었다.<ref>[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1997120912000601 대우그룹, 쌍용自인수로 재계순위‘3위’]《문화일보》1997년 12월 9일 김병직 기자</ref> 대도섬유의 대(大)와 김우중의 우(宇)를 따서 만들었다. 섬유·무역·건설·조선·중장비·자동차·전자·통신·관광·금융 등 여러 사업부문을 두었으며, [[1993년]] 세계경영 전략 채택 이후 강력한 외형확장으로 사세를 넓혀갔고 [[1998년]]에는 [[현대그룹]]에 이어 재계 2위에 올랐으나 외환위기 이후, 자체 구조조정 실패와 [[1999년]] [[삼성그룹|삼성]]과의 전자-자동차 빅딜 실패로 [[1999년 10월]]부터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그룹 해체를 맞았다.

== 기업연혁 ==
[[파일:Seoul Square.jpg|섬네일|오른쪽|과거 대우그룹의 본사였던 서울스퀘어.]]
대우는 1967년 소규모 사업체로 창업하였으나, 1970년대 경제성장 및 수출호조에 따른 비약적인 발전, 그리고 정부 주도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에 힘입어 단기간에 대한민국 최대기업으로서 성장을 이루게 된다. 대우는 1980년대 후반부터 대한민국 외 국가로 눈을 돌려 동유럽 및 신흥시장 개척을 추진해 왔고, 1993년 세계경영에 나서면서 사세확장을 시도하였다. 이후 외환위기 속에서도 1997년 법정관리에 들어간 쌍용자동차를 인수하였다. 98년 상반기에는 현대그룹에 이은 (자산총액기준) 재계 2위에 올랐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출범이후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자체적 구조조정 실패와 무리한 차입금이 발목을 잡았고 1998년 10월, 대우그룹이 신청한 기업어음(CP)발행이 중단되면서 그룹 위기가 찾아왔다. 1999년이 되면서 삼성그룹과의 대우전자-삼성자동차의 빅딜협상에 들어갔으나 동년 7월, 협상이 결렬되었다. 이후 김우중 회장은 자동차를 중심으로 그룹 구조조정에 뒤늦게 들어갔으나 대우그룹 채권단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1999년 10월, 그룹 해체 수순을 밟았다.

=== 성장 ===
1967년 대우실업 창립 이래, 부산에 공장을 설치하여 1970년대 와이셔츠 등의 봉제품 및 섬유제품의 수출호조와 더불어 경제고도성장으로 급속한 발전을 이루어 신흥 사업체로 주목받았고, 더욱이 정부가 주도하던 경제 정책에 발맞춰 금융, 전자, 중공업, 자동차 사업에도 뛰어들면서 대우 그룹을 형성하게 된다.

* [[1967년]] [[3월 22일]] 모태인 대우실업(주)(대우가족) 창립. (섬유류 봉제품 생산, 수출 주도)
* [[1969년]] 8월 대한민국 기업 해외지사 1호 시드니에 개설.
* [[1971년]] 9월 (주)내쇼날의류 설립.
* [[1972년]] 9월 고려피혁(주) 인수.
* [[1973년]] 쌍미섬유공업(주) 인수. 대우증권의 전신 동양증권(주) 인수. 대우건설(주) 설립.
* [[1975년]] 2월 대우빌딩 착공.
* [[1975년]] 5월 대우실업(주), 종합무역상사 지정.
* [[1976년]] 2월 한국기계공업(주) 인수. 10월 해외건설업면허 취득. 대우중공업(주) 출범.
* [[1977년]] 대우센터 빌딩 준공. 8월 제철화학(주) 경영권 인수.
* [[1978년]] 7월 산업은행으로부터 새한자동차(주) 지분 인수. 대한조선공사 옥포조선소 인수 후 9월 대우조선공업(주) 설립.

=== 도약기 ===
대우 그룹은 (주)대우의 출범과 새한자동차 경영권 장악, 가전사업 진출을 잇달아 성사시키며 현대(現代), 삼성(三星), 럭키금성(LG)과 함께 대한민국 4대 기업군으로 성장한다. 국내 업체들과의 출혈 경쟁에서 기술력과 수익성의 한계를 느낀 대우는 세계로 눈을 돌려 냉전체제의 완화가 도래한 시점에 동유럽 및 공산권 국가에 현지법인을 설립하면서 신시장 개척을 준비하였다.

* [[1981년]] 10월 옥포조선소 준공. 수출의날 15억불탑 수상. 대우실업(주) 및 대우개발(주) 합병 결의.
* [[1982년]] 모기업 (주)대우 출범. 수출의날 20억불탑 수상.
* [[1983년]] 대우자동차(주) 출범. 대우전자(주)에서 대한전선(주)의 가전부문을 흡수. 대우통신(주) 설립.
* [[1984년]] 경남기업(주) 경영 참여. (주)대우경제연구소 설립. 10월 대우자동차부품(주) 설립. 대한민국 최초 VTR 수출.
* [[1986년]] 대우증권 런던사무소 개설. 9월 경남기업(주) 계열 편입.
* [[1987년]] 미얀마 현지 철도차량공장 준공.
* [[1988년]] (주)대우 동베를린지사 설치. 대우투자자문(주) 설립. 프랑스 롱위 전자레인지 공장 건립. 대우증권 홍콩사무소 개설.
* [[1989년]] 제철화학 외 3개사 매각. 대우정보시스템 설립. 대우기전공업㈜ 출범. MHB-Daewoo Bank 설립.
* [[1990년]] (주)대우 모스크바지사 설치. 대우중공업(주) 유럽현지법인 설립. 멕시코 컬러TV 공장 건립.
* [[1991년]] (주)대우 북경지사 설치. 대우증권(주) 유럽현지법인 설립, 취리히사무소 개설.
* [[1992년]] 4월 佛 컬러TV 공장 건립. 佛 컴퓨터 판매법인 설립. 대우증권 美 현지법인 설립. 대우차-GM 제휴관계 청산.

=== 팽창기 ===
(주)대우가 구축한 세계무역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대우자동차(주), 대우중공업(주), 대우전자(주)가 국제적으로 널리 진출하는 '세계경영'은 1993년 '세계경영 우리기술' 슬로건 선포를 시점으로 본격화되었다. 대우가 당시 내세웠던 세계경영은 선진업체가 진출하지 않은 옛 공산권 국가와 앞으로 발전가능성이 무한한 개발도상국 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것으로, 현지법인 설립과 인수합병을 통해 단기간에 정착하여 사세확장을 꾀하는 형태이다. 실제로 대우가 진출을 시도한 개발도상국가의 정부에서는 자국의 경제활성화 목적에서 대우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기에, 대우의 사업확장은 더욱 쉽게 이뤄질 수 있었다. 대한민국 시장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대우자동차(주)의 경우는 대한민국 외 국가에서 판매하는 수량이 대한민국에서 판매하는 수량을 앞지르는 현상을 가져오기도 했다. 이같은 대우의 급속한 성장은 대한민국 경제계와 대한민국 외 국가 경제에 큰 반향을 가져다 주었다.

* [[1993년]] 1월 대우자판 설립.
* [[1993년]] 2월 베트남 합작은행 출자.
* [[1993년]] 3월 세계경영 선포.
* [[1993년]] 5월 우즈벡 가전 공장 설립.
* [[1993년]] 7월 대우중공업(주) 미국현지법인 DEC 설립.
* [[1993년]] 8월 폴란드 TV 공장 설립.
* [[1993년]] 9월 세계최초 공기방울 세탁기 개발.
* [[1994년]] 2월 대우할부금융 설립.
* [[1994년]] 3월 인도 합작증권사 CRB-Daewoo Securities Ltd 출자.
* [[1994년]] 5월 대우자동차(주) 영국 워딩 자동차 기술연구소 건립.
* [[1994년]] 6월 대우중공업 영국현지법인 유로 대우 UK 설립.
* [[1994년]] 10월 대우중공업(주) 대우조선공업 흡수 합병. 중국현지법인 대우중공업연대유한공사 설립.
* [[1994년]] 11월 루마니아 자동차합작공장 DAEWOO-RODAE 설립. 대우중공업(주) 러시아 기술연구소 DISK 설립.
* [[1995년]] 1월 대우중공업(주) 독일 현지법인 ECO 설립. 대우전자(주) 말레이시아 세탁기 공장 설립. 대우뱅크 출범.
* [[1995년]] 2월 대우중공업(주) 일본 현지법인 대우건기 설립.
* [[1995년]] 3월 체코 최대 국영상용차업체 AVIA사 인수. 대우증권(주) 홍콩현지법인 설립.
* [[1995년]] 4월 대우증권(주) 상해사무소 개설.
* [[1995년]] 5월 대한민국 기업 최초, 대북 협력사업 정부승인 획득.
* [[1995년]] 6월 다이너스카드사 인수.
* [[1995년]] 7월 동우개발(주)의 사명을 (주)대우개발로 변경.
* [[1995년]] 9월 베트남 하노이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우즈벡 공화국에 교환기합작공장 알로카대우 설립.
* [[1995년]] 10월 중국천진 팩스밀리 합작공장 설립.
* [[1995년]] 11월 베트남 최초 타포린 합작생산 공장 준공. 폴란드 최대 자동차기업 [[Fabryka Samochodów Osobowych|FSO]] 인수, DAEWOO-FSO 출범.
* [[1996년]] 3월 대우증권(주) 싱가폴사무소 개설. 루마니아 DAEWOO-RODAE 공장 준공.
* [[1996년]] 5월 남북경협 최초회사 민족산업총회사 남포에 설립. 앙골라 대규모 유전발견.
* [[1996년]] 6월 프랑스 롱위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인도뉴델리 첨단 소프트웨어 연구개발센타 설립. 페루육상 유전인수 입찰수주.
* [[1996년]] 7월 한진투자증권 합작 법인 서울투신운용(주) 설립. 우크라이나 대용량교환기 합작공장 드니프로-대우 설립.
* [[1996년]] 10월 대우증권(주) 동경지점 개점. UZ-Daewoo 자동차 공장 준공. 베트남 비담코 자동차 공장 준공.
* [[1996년]] 11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중국 광케이블 합작회사 우시-대우 설립. 루마니아 합작은행 설립.
* [[1997년]] 3월 우즈베키스탄 대우은행 (Uz-Daewoo Bank) 설립.
* [[1997년]] 4월 인도 종합 가전공장 설립. 군산 종합 자동차공장 준공.
* [[1997년]] 5월 인도 CRB증권 대우파이낸스로 상호 변경. 대우선물(주) 설립.
* [[1997년]] 6월 대우증권(주) 싱가포르 현지법인 설립.
* [[1997년]] 7월 대우리스 체코에 설립.
* [[1997년]] 9월 대우자동차(주) 우크라이나 합작공장 설립계약 체결.
* [[1997년]] 12월 한국전기초자(주) 인수.

=== 해체 ===
대우는 세계경영으로 철저히 현지화를 추구함으로써 1993년 당시 150여개에 불과했던 대한민국 외 국가 현지법인을 1998년 11월에는 396개로 끌어올리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대우는 1997년 다가온 경제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물로 나온 쌍용자동차(주)를 인수하여 소형차에서 대형차는 물론, 버스와 트럭, 사륜구동 SUV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차량을 생산하는 풀라인업을 완성시키고 그 밖에도 해외 현지공장 인수 및 확장을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대우는 1998년 [[삼성그룹|삼성]](三星)을 제치고 재계서열 2위까지 뛰어오른다.
* [[1998년]] 3월 30일 대우자동차(주), 쌍용자동차(주) 인수.
* [[1998년]] 5월 스페인 냉장고 공장 설립.
* [[1998년]] 6월 우크라이나 자동차 법인 AUTOZAZ-DAEWOO 공장 본격 가동.
* [[1998년]] 7월 미국 Fortune 선정 매출 500대 기업 중 세계 18위의 기업으로 도약.
* [[1998년]] 10월 대우중공업(주) 이집트공장 준공.
* [[1998년]] 11월 무역의 날 150억불 수출의 탑 수상.

그러나 경기침체의 장기화와 세계 시장의 위축으로 대우의 입지는 크게 흔들렸고, 개발도상국가 위주로 판매망을 확대해온 대우자동차의 부진이 거듭되었다. 경영여건이 안정되지 못한 상황에서 추진한 쌍용자동차의 인수도 큰 실익을 거두지 못하였고, 외형확대의 초점을 맞추어 경영해오다보니 당시 정부가 요구했던 구조조정에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오다보니 구조조정의 실시가 경쟁 그룹에 비해 늦은 편이었다. 정부 주도의 산업체계 개편에 따라 늦게나마 추진한 대우전자-삼성자동차 빅딜협상은 양사간 입장차이로 끝내 결렬되었으며, 1999년 여름에 접어들면서 그룹의 운명을 좌우할 대우와 GM과의 협상(대우차와의 경영권 문제)마저도 실패한 대우는 급속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자금난이 가중되던 대우는 알짜자산인 힐튼호텔 매각 등을 성사시키기도 하지만 1999년 3월에는 이미 부채 비율을 무려 400%를 훨씬 넘은 상태여서 수습이 어려운 지경이었다. 7월 대우는 초고강도 구조조정안을 발표하였으나 채권단은 이를 반려한다. 결국 대우는 1999년 8월 16일 채권단의 재무구조개선수정약정 체결과 더불어, 26일 채권단 관리하에 워크아웃을 맞이함으로써 그룹 해체의 길로 접어든다. 지난 1967년 창업 이래 32년간 대한민국에 경쟁성장의 견인차로 역할을 해오던 기업 중 하나로서, 1993년 세계경영을 선포한지 6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 [[1998년]] 11월 대우그룹 1차 구조조정안 발표.
* [[1998년]] 12월 대우전자(주) 및 삼성자동차(주) 빅딜 발표. (사업맞교환)
* [[1999년]] 4월 19일 대우 2차 구조조정안 발표. (대우 조선, 상용차, 힐튼호텔 등 매각)
* [[1999년]] 6월 30일 삼성자동차 워크아웃 돌입.
* [[1999년]] 7월 16일 대우그룹 구조조정안 발표. (자동차 전문그룹으로의 재탄생)
* [[1999년]] 8월 3일 제일은행 등 채권단 구조조정안 반려.
* [[1999년]] 8월 16일 대우 채권단, 재무구조개선수정약정 체결.
* [[1999년]] 8월 26일 (주)대우, 대우중공업(주), 대우자동차(주), 대우전자(주) 등 12개 회사 워크아웃 돌입.
* [[1999년]] 8월 30일 대우증권(주) 계열 분리, 채권단으로 이양.
* [[1999년]] 10월 김우중 회장, 중국 옌타이 대우자동차 부품공장 준공식 참석.
* [[1999년]] 11월 1일 대우 회장 및 대우그룹 사장단 퇴진.
* [[2000년]] 4월 15일 대규모기업집단 지정 제외.

한 때 세계 경영의 첨병으로 불렸던 대우의 몰락은 경제계에 큰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대우사태는 당대 큰 기업은 절대 흥한다는 '대마불사'의 신화를 깨고 차입경영을 일삼는 부실기업을 과감하게 퇴출시킨 사례로 건실한 기업풍토 조성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이 있는 반면, 대우가 밝혀지지 않은 요인(정치적 문제 또는 국제적 외압)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여론도 일부 존재하고 있어 지금도 눈길을 끈다.

== 구 대우그룹 계열사 ==
현재 대우의 계열사들은 그룹 해체 후 자립 혹은 새로운 기업의 인수를 통해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그룹이 해체된 이후에도 포스코대우, 대우건설, 대우조선해양 등 몇몇 회사들은 여전히 대우의 이름을 유지하며 성공적으로 영업 중이다.

=== 자동차 사업 ===
대우가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자동차 사업은 [[1997년]] 신차 출시, [[1998년]] [[KG모빌리티|쌍용자동차]] 인수에 따른 사세 확장으로 대한민국 시장에서 호조를 거두었으나 부채 누적으로 인한 만성적인 적자로, 대우그룹 핵심 계열사들이 워크아웃에 돌입하면서 완전히 공중분해되고 말았다.

대우자동차(주)는 [[포드]], [[제너럴 모터스]](GM) 등 두 양사간의 해외 매각 의사를 타진하였으나 최종적으로 협상이 모두 결렬되었으며, 대우자동차(주)는 경영 정상화 실패로 인해 [[2000년]] [[11월 10일]]에 [[인천지방법원]]에 법정관리(정리절차) 개시 신청을 냈고, 노사가 극적으로 노사협의회 합의문에 합의한 후, 회사 측의 자구의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여, 법정관리 개시 결정이 내려졌다.

대우자동차는 GM 매각을 위한 구조조정 계획의 일환으로, 9992억 원의 자구계획을 마련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가 인력을 7300여 명 줄이고 재료비, 경상비, 투자비 등을 대폭 감축했으며, 부평공장 생산직 직원 1750명이 강제로 거리로 내몰리는 역대 최대 규모의 정리해고가 김대중 정부 출범 당시에 근로기준법 개정 이후, [[2001년]] 2월초에 단행되기도 했다.

미국 GM이 2001년 6월초에 대우차 인수 의향서를 제출하여, 이듬해인 [[2002년]] [[10월 28일]]에 GM대우(현 [[한국지엠]])라는 외국계 기업으로 새롭게 출범했고, 대한민국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확대에 실패하여 고전을 계속하였던 GM대우는 글로벌 GM의 전략적 요충지로 키우기 위해서 [[2011년 1월]] [[쉐보레]] 브랜드로의 흡수 통합을 선언하였으며, [[2011년]] [[한국GM]](주)가 새롭게 출범하였다.

GM이 인수하지 않은 버스부문, 상용차부문, 부평공장은 [[대우버스]](주), [[타타대우상용차|대우상용차]](주), 대우인천자동차(주)로 분할, 매각되었다.

대우자동차(주)의 버스부문인 [[대우버스]](주)는 [[영안모자]]에 매각되었고, 트럭을 생산하는 상용차 부문은 [[인도]] 최대의 재벌인 [[타타]](TATA)에 매각되어 [[타타대우상용차]](주)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대우그룹 시절 대우자동차와의 합병을 계획하였던 [[KG모빌리티|쌍용자동차]](주)는 대우그룹의 구조조정 당시 대우차와의 분리 매각이 결정되면서 [[2000년 4월]] 대우 계열에서 정식으로 분리되었다. 후에 쌍용자동차(주)는 [[2005년]] [[중국]] 국영자동차회사인 [[상하이자동차]] 그룹에 인수되어, 미국발 금융 위기로 인한 판매 부진이 계속 거듭되면서 [[2009년]] 쌍용자동차(주)의 경영권을 포기하고 한국 시장에 철수하였다. [[2009년]] 쌍용자동차(주)는 법정관리 체제에 들어갔으며, 구조조정에 따른 대규모 정리해고 사태로 노사간의 첨예한 대립까지 위태로울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다가 [[2010년]] 말 인도의 [[마힌드라]] 자동차에 인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 건설, 무역 ===
[[1999년]] 워크아웃으로 (주)대우지스틱스가 먼저 분사되었으며, [[2000년 12월]] 모기업 (주)[[포스코인터내셔널|대우]]가 3개사로 재탄생한다. 청산을 위한 (주)대우 존속법인과 무역부문의 (주)[[포스코인터내셔널|대우인터내셔널]], 건설부문의 (주)[[대우건설]]로 나뉜다.

(주)대우인터내셔널은 대우의 모태사업인 무역은 물론 백화점 등 사업도 하고 있다. [[2010년]] [[포스코]]에 인수되었고, 지금의 [[포스코인터내셔널|포스코대우]]로 재출범한다. 백화점 사업은 2014년 [[롯데쇼핑]](주)에서 인수하여 롯데백화점 마산점이 되었다.

(주)[[대우건설]]은 워크아웃을 단기에 졸업했으며 [[2006년 12월]]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인수되었다. 그러나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무리한 인수합병으로 인한 후유증에 세계 금융위기까지 겪으며 극심한 자금난을 겪자, 2010년 (주)대우건설에 대한 경영권을 포기하였고, [[2011년 1월]]에 금호아시아나 계열에서 정식으로 분리되었다. 현재 최대주주는 [[한국산업은행]]이다.

대우그룹의 또다른 건설회사였던 [[경남기업]](주)는 [[성완종]]이 이끄는 충남지역 건설사인 대아건설(주)에 인수되었다가 [[2004년]]에 대아건설(주)을 합병하면서 국내 10위권의 대형 건설사로 성장가도를 달린다. [[2009년]] 대한민국 건설사들의 잇따른 경영난으로 워크아웃을 재차 겪지만, 실적 개선 등에 힘입어 [[2011년 5월]] 워크아웃을 졸업하는데 성공한다. [[2015년]] 하지만 건설업계 불황이 장기화되고 기업의 오너(Owner)인 성완종이 자원외교비리수사에 연루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2015년 4월]] 마침내 [[경남기업]]은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만다. [[2017년]] [[sm그룹]]이 인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 중공업, 조선 ===
[[2000년]] [[대우중공업]](주)도 대우종합기계(주), 대우조선공업(주) 그리고 대우중공업(주) 잔존법인으로 분할되었다.

주력부문이었던 중장비 및 군수물자 생산을 담당하는 대우종합기계(주)는 [[2005년]]에 [[두산]] 계열로 편입, [[두산인프라코어]](주)로 재탄생하였다.

대우중공업의 조선해양부문은 대우조선공업 주식회사로 분사되었다가 곧 [[대우조선해양]]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한다. 2000년대 조선업계의 호황으로 대우의 계열사 중 가장 먼저 워크아웃을 졸업한 회사로도 주목받았고, 조선업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을 기반으로 건설, 상조사업 등에도 진출하며 자체적으로 조선사업 중심의 기업집단을 일구었다. 2000년 출범한 이래 수년간 경쟁업체인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과 함께 선박 수주잔량으로 세계 수위권을 다투왔지만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변곡점으로 대우조선해양은 2010년대 중반에 이르러 조선업황의 악화로 존폐의 기로에 놓여있는 상태이다.

대우중공업이 3개사로 분할되기 전인 [[1999년 7월]]에는 철도차량 생산부문이 경쟁사인 [[현대정공]](주), [[한진중공업]](주)와 함께 현물출자 형식으로 단일법인을 설립함으로써 국내 유일의 철차제작업체인 [[한국철도차량]]주식회사가 탄생하였다. 하지만 대우종합기계(주)가 승계받은 한국철도차량(주)의 지분은 경영정상화를 위해 [[2001년]]에 [[현대자동차그룹]]에 전량 매각됨으로써 주식회사 [[로템]](現 현대로템(주))으로 재출범한다.

대우중공업(주)의 항공사업부문도 [[1999년 8월]]에 [[삼성항공산업]](주), 현대우주항공(주)과 통합하여 새로이 [[한국항공우주산업]](주)로 출범하였지만, [[대우중공업]]의 지분을 인계받은 [[두산그룹]]의 DIP홀딩스에서는 2016년 [[한국항공우주산업]]의 보유지분을 전부 정리하였다.

=== 전자, 통신 ===
한때 세계 각국의 생산기지를 설치하며 세계적인 전자기업을 표방해 오던 대우전자(주)는 [[1999년]] 워크아웃 대상기업으로 지정되었고, [[2000년 4월]] 대우전자 중심의 기업집단을 구축하고 비수익 사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피아노 사업을 담당하는 벨로체, 컴퓨터 사업을 담당하는 [[루컴즈전자|대우루컴즈]], 가스보일러 사업을 담당하는 대우가스보일러 등이 독립된 업체로 분리되었다. [[2002년]] [[위니아전자|대우전자]]의 TV, 백색가전 등 주력 핵심사업부문이 대부분 [[위니아전자|대우모터공업]] 주식회사로 인계되어 이듬해인 [[2003년]]에 (주)[[대우일렉트로닉스]]로 재출범하였다. 이후에도 [[2008년]] 대우디스플레이 등이 분리되어 [[위니아전자|대우일렉트로닉스]]는 사실상 백색가전 전문업체가 되었다. 2013년 동부그룹이 인수함으로써 [[위니아전자|동부대우전자]] 주식회사로 이름이 바뀌다가 2018년 대유그룹이 인수하여 주식회사 대우전자로 부활하였다. [[2019년]] 주식회사 위니아대우 로 이름이 바꿔다가 [[2020년]] 주식회사 위니아전자로 이름이 바꿨다.

[[대우전자부품]]도 1999년 대우그룹 구조조정으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대상으로 지정되었다. 2000년 4월 대우그룹에서 분리되었다.2008년 회생절차개시 결정을 받았고, 2010년 2월 회생절차 종결 결정을 받았다. 그 후 [[현대자동차]]의 1차 협력그룹인 [[아진그룹]]이 인수했다.

대우통신(주)은 정상화를 위해 통신 관련사업부문을 매각하여 컴퓨터사업은 대우컴퓨터에 양도하였으며 그밖에 사업부문은 대우텔레텍, 대우글로벌 그리고 1999년 합병된 대우정밀공업 계열의 업체들은 대우정밀, 대우파워트레인, 대우프라스틱 등으로 분사되었다.

대우정밀(주)은 에스엔티(S&T그룹)에 인수되어 현재 [[S&T모티브]]로 운영 중이며 대우파워트레인(주)은 GM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컴퍼니(지금의 한국지엠주식회사)에 매각되었고, 대우프라스틱(주)는 삼라마이다스그룹(SM그룹)으로 매각된 후 대우라이프(주)로 바뀌었다가 계열사인 남선알미늄(주)에 합병되었다.

전자 계열사였던 오리온전기(주), 한국전기초자(주), 광전자(주) 등도 워크아웃을 맞아 자취를 감추거나 독자생존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 금융 ===
대우증권(주)는 [[1999년]] 대우가 해체되기 전 채권단이 인수하였으며 후에 대주주가 [[한국산업은행]]으로 변경된다. [[2009년]]에는 한국산업은행의 민영화에 따라 새로이 출범한 [[KDB금융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2015년]]에는 [[미래에셋금융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2001년 8월]] (주)다이너스카드클럽코리아는 [[현대자동차]](주)에 매각되어 [[현대카드]](주)로 변경되었다.

대우캐피탈(주)는 아주그룹에 편입되어 아주캐피탈(주)로 바뀌었다.

=== 스포츠 ===
대우그룹에서 운영 중이던 [[부산 아이파크|부산 대우 로얄즈]]는 [[현대산업개발]]에 매각, [[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인천 대우 제우스]]는 [[신세기통신]]에 매각되고 인천 신세기 빅스로 변경하며 현재 [[부산 아이파크]]와 [[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 미디어 ===
케이블 채널 중에서 대우시네마네트워크는 [[오리온홀딩스|동양그룹]]에 매각되어 [[OCN (텔레비전 채널)|OCN]](현재 [[CJ그룹|CJ]] 산하)으로 변경되었다.

== 같이 보기 ==
=== 건설, 무역 ===
* (주)대우 무역 → [[포스코인터내셔널|포스코대우]] ([[포스코]]에 인수) → [[포스코인터내셔널]]
* (주)대우 건설 → [[대우건설]] (최대주주 [[한국산업은행]])
* (주)대우 백화점 → [[롯데백화점]] 마산점 ([[롯데백화점|롯데쇼핑]]에 인수)

=== 자동차 ===
* 대우자동차 → GM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 → [[한국지엠]] (2002년 [[제너럴 모터스]]에 인수)
* 대우자동차 버스 부문 → [[자일대우버스]] (2003년 [[영안모자]]에 인수)
* 대우자동차 상용차 부문 → [[타타대우상용차]] (2004년 [[타타]]에 인수)
* 쌍용자동차→[[KG모빌리티]] (1998년 [[대우자동차]]에서 인수, 2004년 [[상하이자동차]]에 인수, 2010년 [[마힌드라]]에 피인수, 2022년 [[KG그룹]]에 피인수)
* 대우자동차판매 자동차판매 부분 → [[대우자동차판매]] (2010년 [[영안모자]]에 인수)
* 대우자동차판매 건설 부문 → [[대우산업개발]] (2011년 중국 풍화(豊華)그룹에 인수)

=== 중공업 ===
* 대우중공업 종합기계 부문 → [[두산인프라코어]] (2005년 [[두산그룹]]에 인수)
* 대우중공업 조선해양 부문 → [[대우조선해양]] → [[한화오션]]
* 대우중공업 철도차량 부문 → [[현대로템]] (2001년 [[현대자동차그룹]]에 인수)

=== 전자 ===
* 대우전자 → [[위니아전자|동부대우전자]] → [[위니아전자|대우전자]] (2018년 [[대유그룹]]에 인수) → [[위니아전자|위니아대우]] → [[위니아전자]]
* 대우정밀공업 → [[S&T모티브]] (2006년 [[S&T그룹]]에 인수)

=== 금융 ===
* 대우증권 → [[미래에셋대우]] (2016년 [[미래에셋금융그룹]]에 인수)
* 다이너스클럽코리아 → [[현대카드]] (2001년 [[현대자동차그룹]]에 인수)
* 대우캐피탈 → [[아주캐피탈]] (2005년 [[아주그룹]]에 인수)

=== 기타 ===
* 대우엔지니어링 → [[포스코엔지니어링]] (1990년 계열 분리 → 2002년 포스코에 인수)
* 신성통상 (1984년 계열 분리 → 2002년 가나안에서 인수)
* 대창기업
* (주)고려 → SG고려 (구 고려피혁공업주식회사 → 2003년 (주)가로수닷컴에 인수)
* 세계물산 → SG위카스 → [[SG세계물산]] (2002년 SK글로벌에 인수 → 2005년 (주)가로수닷컴에 인수)
* 대우시네마네트워크 → (주)[[OCN (텔레비전 채널)|오리온시네마네트워크]] (1999년 [[동양그룹]]에 인수되어 별도법인인 [[온미디어]] 설립 → 2010년 CJ에 인수 → 2013년 [[CJ ENM]]에 흡수 합병)
* 부산 대우 로얄즈 → [[부산 아이파크]] (2000년 [[현대산업개발]]에 인수)
* 인천 대우 제우스 → 인천 신세기 빅스 (1999년 [[신세기통신]]에 인수)

== 외부 링크 ==
* [https://daewoosky.com/ 대우세계경영연구회]

== 각주 ==
<references/>

{{대우그룹}}

[[분류:대우그룹| ]]
[[분류:대한민국의 기업]]
[[분류:1967년 설립된 기업]]
[[분류:2000년 해체된 기업]]
[[분류:대한민국의 없어진 기업]]
[[분류:대한민국의 브랜드]]

* [[2001년]] [[8월 3일]]: [[신당역]] [[서울 지하철 6호선|6호선]] 환승 통로 개통
* [[2001년]] [[8월 3일]]: [[신당역]] [[서울 지하철 6호선|6호선]] 환승 통로 개통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 [[2004년]] [[10월 1일]]: [[구로공단역]]에서 [[구로디지털단지역]]으로 변경
{{회사 정보
| 이름 = 대우그룹
| 원어 = Daewoo Group
| 워드마크 = Daewoo logo (hangul).svg
| 형태 = 대기업집단(1989년~1999년)
| 창립 = 1967년 3월 22일 (대우실업 주식회사)
| 창립자 = [[김우중]](대표이사 회장)
| 해체 = 1999년 11월 1일
| 국가 = {{KOR}}
| 장소 = 대우센터빌딩(1977년~1999년)
| 사업 지역 =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 인물 = 김우중(대표이사 회장)
| 산업 = 자동차, 전자, 조선, 건설
| 주요사업부문 = 자동차, 전자, 조선, 건설, 무역, 금융
| 자본금 = 5,000,000원(1967년 기준)
| 매출액 = 분식회계로 정확히 추산불가
| 매출 = 78조원(1999년 기준)
| 영업이익 = -4조원(1999년 기준)
| 자산 총액 = 자본 약 15조 부채 89조
| 주주 = 김우중
| 모기업 = (주)[[포스코인터내셔널|대우]]
| 계열사 = [[대우전자]], [[대우건설]], [[한국GM|대우자동차]], [[대우조선]], [[대우증권]], [[쌍용자동차]] 外
}}

'''대우그룹'''(大宇─, Daewoo Group)은 [[1967년]] 창립한 [[포스코인터내셔널|대우실업]]을 모태로 [[1980년대]]부터 [[1990년대]] 말까지 존재한 [[대한민국]]의 대규모 기업집단이었다.<ref>[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1997120912000601 대우그룹, 쌍용自인수로 재계순위‘3위’]《문화일보》1997년 12월 9일 김병직 기자</ref> 대도섬유의 대(大)와 김우중의 우(宇)를 따서 만들었다. 섬유·무역·건설·조선·중장비·자동차·전자·통신·관광·금융 등 여러 사업부문을 두었으며, [[1993년]] 세계경영 전략 채택 이후 강력한 외형확장으로 사세를 넓혀갔고 [[1998년]]에는 [[현대그룹]]에 이어 재계 2위에 올랐으나 외환위기 이후, 자체 구조조정 실패와 [[1999년]] [[삼성그룹|삼성]]과의 전자-자동차 빅딜 실패로 [[1999년 10월]]부터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그룹 해체를 맞았다.

== 기업연혁 ==
[[파일:Seoul Square.jpg|섬네일|오른쪽|과거 대우그룹의 본사였던 서울스퀘어.]]
대우는 1967년 소규모 사업체로 창업하였으나, 1970년대 경제성장 및 수출호조에 따른 비약적인 발전, 그리고 정부 주도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에 힘입어 단기간에 대한민국 최대기업으로서 성장을 이루게 된다. 대우는 1980년대 후반부터 대한민국 외 국가로 눈을 돌려 동유럽 및 신흥시장 개척을 추진해 왔고, 1993년 세계경영에 나서면서 사세확장을 시도하였다. 이후 외환위기 속에서도 1997년 법정관리에 들어간 쌍용자동차를 인수하였다. 98년 상반기에는 현대그룹에 이은 (자산총액기준) 재계 2위에 올랐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출범이후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자체적 구조조정 실패와 무리한 차입금이 발목을 잡았고 1998년 10월, 대우그룹이 신청한 기업어음(CP)발행이 중단되면서 그룹 위기가 찾아왔다. 1999년이 되면서 삼성그룹과의 대우전자-삼성자동차의 빅딜협상에 들어갔으나 동년 7월, 협상이 결렬되었다. 이후 김우중 회장은 자동차를 중심으로 그룹 구조조정에 뒤늦게 들어갔으나 대우그룹 채권단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1999년 10월, 그룹 해체 수순을 밟았다.

=== 성장 ===
1967년 대우실업 창립 이래, 부산에 공장을 설치하여 1970년대 와이셔츠 등의 봉제품 및 섬유제품의 수출호조와 더불어 경제고도성장으로 급속한 발전을 이루어 신흥 사업체로 주목받았고, 더욱이 정부가 주도하던 경제 정책에 발맞춰 금융, 전자, 중공업, 자동차 사업에도 뛰어들면서 대우 그룹을 형성하게 된다.

* [[1967년]] [[3월 22일]] 모태인 대우실업(주)(대우가족) 창립. (섬유류 봉제품 생산, 수출 주도)
* [[1969년]] 8월 대한민국 기업 해외지사 1호 시드니에 개설.
* [[1971년]] 9월 (주)내쇼날의류 설립.
* [[1972년]] 9월 고려피혁(주) 인수.
* [[1973년]] 쌍미섬유공업(주) 인수. 대우증권의 전신 동양증권(주) 인수. 대우건설(주) 설립.
* [[1975년]] 2월 대우빌딩 착공.
* [[1975년]] 5월 대우실업(주), 종합무역상사 지정.
* [[1976년]] 2월 한국기계공업(주) 인수. 10월 해외건설업면허 취득. 대우중공업(주) 출범.
* [[1977년]] 대우센터 빌딩 준공. 8월 제철화학(주) 경영권 인수.
* [[1978년]] 7월 산업은행으로부터 새한자동차(주) 지분 인수. 대한조선공사 옥포조선소 인수 후 9월 대우조선공업(주) 설립.

=== 도약기 ===
대우 그룹은 (주)대우의 출범과 새한자동차 경영권 장악, 가전사업 진출을 잇달아 성사시키며 현대(現代), 삼성(三星), 럭키금성(LG)과 함께 대한민국 4대 기업군으로 성장한다. 국내 업체들과의 출혈 경쟁에서 기술력과 수익성의 한계를 느낀 대우는 세계로 눈을 돌려 냉전체제의 완화가 도래한 시점에 동유럽 및 공산권 국가에 현지법인을 설립하면서 신시장 개척을 준비하였다.

* [[1981년]] 10월 옥포조선소 준공. 수출의날 15억불탑 수상. 대우실업(주) 및 대우개발(주) 합병 결의.
* [[1982년]] 모기업 (주)대우 출범. 수출의날 20억불탑 수상.
* [[1983년]] 대우자동차(주) 출범. 대우전자(주)에서 대한전선(주)의 가전부문을 흡수. 대우통신(주) 설립.
* [[1984년]] 경남기업(주) 경영 참여. (주)대우경제연구소 설립. 10월 대우자동차부품(주) 설립. 대한민국 최초 VTR 수출.
* [[1986년]] 대우증권 런던사무소 개설. 9월 경남기업(주) 계열 편입.
* [[1987년]] 미얀마 현지 철도차량공장 준공.
* [[1988년]] (주)대우 동베를린지사 설치. 대우투자자문(주) 설립. 프랑스 롱위 전자레인지 공장 건립. 대우증권 홍콩사무소 개설.
* [[1989년]] 제철화학 외 3개사 매각. 대우정보시스템 설립. 대우기전공업㈜ 출범. MHB-Daewoo Bank 설립.
* [[1990년]] (주)대우 모스크바지사 설치. 대우중공업(주) 유럽현지법인 설립. 멕시코 컬러TV 공장 건립.
* [[1991년]] (주)대우 북경지사 설치. 대우증권(주) 유럽현지법인 설립, 취리히사무소 개설.
* [[1992년]] 4월 佛 컬러TV 공장 건립. 佛 컴퓨터 판매법인 설립. 대우증권 美 현지법인 설립. 대우차-GM 제휴관계 청산.

=== 팽창기 ===
(주)대우가 구축한 세계무역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대우자동차(주), 대우중공업(주), 대우전자(주)가 국제적으로 널리 진출하는 '세계경영'은 1993년 '세계경영 우리기술' 슬로건 선포를 시점으로 본격화되었다. 대우가 당시 내세웠던 세계경영은 선진업체가 진출하지 않은 옛 공산권 국가와 앞으로 발전가능성이 무한한 개발도상국 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것으로, 현지법인 설립과 인수합병을 통해 단기간에 정착하여 사세확장을 꾀하는 형태이다. 실제로 대우가 진출을 시도한 개발도상국가의 정부에서는 자국의 경제활성화 목적에서 대우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기에, 대우의 사업확장은 더욱 쉽게 이뤄질 수 있었다. 대한민국 시장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대우자동차(주)의 경우는 대한민국 외 국가에서 판매하는 수량이 대한민국에서 판매하는 수량을 앞지르는 현상을 가져오기도 했다. 이같은 대우의 급속한 성장은 대한민국 경제계와 대한민국 외 국가 경제에 큰 반향을 가져다 주었다.

* [[1993년]] 1월 대우자판 설립.
* [[1993년]] 2월 베트남 합작은행 출자.
* [[1993년]] 3월 세계경영 선포.
* [[1993년]] 5월 우즈벡 가전 공장 설립.
* [[1993년]] 7월 대우중공업(주) 미국현지법인 DEC 설립.
* [[1993년]] 8월 폴란드 TV 공장 설립.
* [[1993년]] 9월 세계최초 공기방울 세탁기 개발.
* [[1994년]] 2월 대우할부금융 설립.
* [[1994년]] 3월 인도 합작증권사 CRB-Daewoo Securities Ltd 출자.
* [[1994년]] 5월 대우자동차(주) 영국 워딩 자동차 기술연구소 건립.
* [[1994년]] 6월 대우중공업 영국현지법인 유로 대우 UK 설립.
* [[1994년]] 10월 대우중공업(주) 대우조선공업 흡수 합병. 중국현지법인 대우중공업연대유한공사 설립.
* [[1994년]] 11월 루마니아 자동차합작공장 DAEWOO-RODAE 설립. 대우중공업(주) 러시아 기술연구소 DISK 설립.
* [[1995년]] 1월 대우중공업(주) 독일 현지법인 ECO 설립. 대우전자(주) 말레이시아 세탁기 공장 설립. 대우뱅크 출범.
* [[1995년]] 2월 대우중공업(주) 일본 현지법인 대우건기 설립.
* [[1995년]] 3월 체코 최대 국영상용차업체 AVIA사 인수. 대우증권(주) 홍콩현지법인 설립.
* [[1995년]] 4월 대우증권(주) 상해사무소 개설.
* [[1995년]] 5월 대한민국 기업 최초, 대북 협력사업 정부승인 획득.
* [[1995년]] 6월 다이너스카드사 인수.
* [[1995년]] 7월 동우개발(주)의 사명을 (주)대우개발로 변경.
* [[1995년]] 9월 베트남 하노이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우즈벡 공화국에 교환기합작공장 알로카대우 설립.
* [[1995년]] 10월 중국천진 팩스밀리 합작공장 설립.
* [[1995년]] 11월 베트남 최초 타포린 합작생산 공장 준공. 폴란드 최대 자동차기업 [[Fabryka Samochodów Osobowych|FSO]] 인수, DAEWOO-FSO 출범.
* [[1996년]] 3월 대우증권(주) 싱가폴사무소 개설. 루마니아 DAEWOO-RODAE 공장 준공.
* [[1996년]] 5월 남북경협 최초회사 민족산업총회사 남포에 설립. 앙골라 대규모 유전발견.
* [[1996년]] 6월 프랑스 롱위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인도뉴델리 첨단 소프트웨어 연구개발센타 설립. 페루육상 유전인수 입찰수주.
* [[1996년]] 7월 한진투자증권 합작 법인 서울투신운용(주) 설립. 우크라이나 대용량교환기 합작공장 드니프로-대우 설립.
* [[1996년]] 10월 대우증권(주) 동경지점 개점. UZ-Daewoo 자동차 공장 준공. 베트남 비담코 자동차 공장 준공.
* [[1996년]] 11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중국 광케이블 합작회사 우시-대우 설립. 루마니아 합작은행 설립.
* [[1997년]] 3월 우즈베키스탄 대우은행 (Uz-Daewoo Bank) 설립.
* [[1997년]] 4월 인도 종합 가전공장 설립. 군산 종합 자동차공장 준공.
* [[1997년]] 5월 인도 CRB증권 대우파이낸스로 상호 변경. 대우선물(주) 설립.
* [[1997년]] 6월 대우증권(주) 싱가포르 현지법인 설립.
* [[1997년]] 7월 대우리스 체코에 설립.
* [[1997년]] 9월 대우자동차(주) 우크라이나 합작공장 설립계약 체결.
* [[1997년]] 12월 한국전기초자(주) 인수.

=== 해체 ===
대우는 세계경영으로 철저히 현지화를 추구함으로써 1993년 당시 150여개에 불과했던 대한민국 외 국가 현지법인을 1998년 11월에는 396개로 끌어올리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대우는 1997년 다가온 경제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물로 나온 쌍용자동차(주)를 인수하여 소형차에서 대형차는 물론, 버스와 트럭, 사륜구동 SUV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차량을 생산하는 풀라인업을 완성시키고 그 밖에도 해외 현지공장 인수 및 확장을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대우는 1998년 [[삼성그룹|삼성]](三星)을 제치고 재계서열 2위까지 뛰어오른다.
* [[1998년]] 3월 30일 대우자동차(주), 쌍용자동차(주) 인수.
* [[1998년]] 5월 스페인 냉장고 공장 설립.
* [[1998년]] 6월 우크라이나 자동차 법인 AUTOZAZ-DAEWOO 공장 본격 가동.
* [[1998년]] 7월 미국 Fortune 선정 매출 500대 기업 중 세계 18위의 기업으로 도약.
* [[1998년]] 10월 대우중공업(주) 이집트공장 준공.
* [[1998년]] 11월 무역의 날 150억불 수출의 탑 수상.

그러나 경기침체의 장기화와 세계 시장의 위축으로 대우의 입지는 크게 흔들렸고, 개발도상국가 위주로 판매망을 확대해온 대우자동차의 부진이 거듭되었다. 경영여건이 안정되지 못한 상황에서 추진한 쌍용자동차의 인수도 큰 실익을 거두지 못하였고, 외형확대의 초점을 맞추어 경영해오다보니 당시 정부가 요구했던 구조조정에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오다보니 구조조정의 실시가 경쟁 그룹에 비해 늦은 편이었다. 정부 주도의 산업체계 개편에 따라 늦게나마 추진한 대우전자-삼성자동차 빅딜협상은 양사간 입장차이로 끝내 결렬되었으며, 1999년 여름에 접어들면서 그룹의 운명을 좌우할 대우와 GM과의 협상(대우차와의 경영권 문제)마저도 실패한 대우는 급속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자금난이 가중되던 대우는 알짜자산인 힐튼호텔 매각 등을 성사시키기도 하지만 1999년 3월에는 이미 부채 비율을 무려 400%를 훨씬 넘은 상태여서 수습이 어려운 지경이었다. 7월 대우는 초고강도 구조조정안을 발표하였으나 채권단은 이를 반려한다. 결국 대우는 1999년 8월 16일 채권단의 재무구조개선수정약정 체결과 더불어, 26일 채권단 관리하에 워크아웃을 맞이함으로써 그룹 해체의 길로 접어든다. 지난 1967년 창업 이래 32년간 대한민국에 경쟁성장의 견인차로 역할을 해오던 기업 중 하나로서, 1993년 세계경영을 선포한지 6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 [[1998년]] 11월 대우그룹 1차 구조조정안 발표.
* [[1998년]] 12월 대우전자(주) 및 삼성자동차(주) 빅딜 발표. (사업맞교환)
* [[1999년]] 4월 19일 대우 2차 구조조정안 발표. (대우 조선, 상용차, 힐튼호텔 등 매각)
* [[1999년]] 6월 30일 삼성자동차 워크아웃 돌입.
* [[1999년]] 7월 16일 대우그룹 구조조정안 발표. (자동차 전문그룹으로의 재탄생)
* [[1999년]] 8월 3일 제일은행 등 채권단 구조조정안 반려.
* [[1999년]] 8월 16일 대우 채권단, 재무구조개선수정약정 체결.
* [[1999년]] 8월 26일 (주)대우, 대우중공업(주), 대우자동차(주), 대우전자(주) 등 12개 회사 워크아웃 돌입.
* [[1999년]] 8월 30일 대우증권(주) 계열 분리, 채권단으로 이양.
* [[1999년]] 10월 김우중 회장, 중국 옌타이 대우자동차 부품공장 준공식 참석.
* [[1999년]] 11월 1일 대우 회장 및 대우그룹 사장단 퇴진.
* [[2000년]] 4월 15일 대규모기업집단 지정 제외.

한 때 세계 경영의 첨병으로 불렸던 대우의 몰락은 경제계에 큰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대우사태는 당대 큰 기업은 절대 흥한다는 '대마불사'의 신화를 깨고 차입경영을 일삼는 부실기업을 과감하게 퇴출시킨 사례로 건실한 기업풍토 조성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이 있는 반면, 대우가 밝혀지지 않은 요인(정치적 문제 또는 국제적 외압)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여론도 일부 존재하고 있어 지금도 눈길을 끈다.

== 구 대우그룹 계열사 ==
현재 대우의 계열사들은 그룹 해체 후 자립 혹은 새로운 기업의 인수를 통해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그룹이 해체된 이후에도 포스코대우, 대우건설, 대우조선해양 등 몇몇 회사들은 여전히 대우의 이름을 유지하며 성공적으로 영업 중이다.

=== 자동차 사업 ===
대우가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자동차 사업은 [[1997년]] 신차 출시, [[1998년]] [[KG모빌리티|쌍용자동차]] 인수에 따른 사세 확장으로 대한민국 시장에서 호조를 거두었으나 부채 누적으로 인한 만성적인 적자로, 대우그룹 핵심 계열사들이 워크아웃에 돌입하면서 완전히 공중분해되고 말았다.

대우자동차(주)는 [[포드]], [[제너럴 모터스]](GM) 등 두 양사간의 해외 매각 의사를 타진하였으나 최종적으로 협상이 모두 결렬되었으며, 대우자동차(주)는 경영 정상화 실패로 인해 [[2000년]] [[11월 10일]]에 [[인천지방법원]]에 법정관리(정리절차) 개시 신청을 냈고, 노사가 극적으로 노사협의회 합의문에 합의한 후, 회사 측의 자구의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여, 법정관리 개시 결정이 내려졌다.

대우자동차는 GM 매각을 위한 구조조정 계획의 일환으로, 9992억 원의 자구계획을 마련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가 인력을 7300여 명 줄이고 재료비, 경상비, 투자비 등을 대폭 감축했으며, 부평공장 생산직 직원 1750명이 강제로 거리로 내몰리는 역대 최대 규모의 정리해고가 김대중 정부 출범 당시에 근로기준법 개정 이후, [[2001년]] 2월초에 단행되기도 했다.

미국 GM이 2001년 6월초에 대우차 인수 의향서를 제출하여, 이듬해인 [[2002년]] [[10월 28일]]에 GM대우(현 [[한국지엠]])라는 외국계 기업으로 새롭게 출범했고, 대한민국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확대에 실패하여 고전을 계속하였던 GM대우는 글로벌 GM의 전략적 요충지로 키우기 위해서 [[2011년 1월]] [[쉐보레]] 브랜드로의 흡수 통합을 선언하였으며, [[2011년]] [[한국GM]](주)가 새롭게 출범하였다.

GM이 인수하지 않은 버스부문, 상용차부문, 부평공장은 [[대우버스]](주), [[타타대우상용차|대우상용차]](주), 대우인천자동차(주)로 분할, 매각되었다.

대우자동차(주)의 버스부문인 [[대우버스]](주)는 [[영안모자]]에 매각되었고, 트럭을 생산하는 상용차 부문은 [[인도]] 최대의 재벌인 [[타타]](TATA)에 매각되어 [[타타대우상용차]](주)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대우그룹 시절 대우자동차와의 합병을 계획하였던 [[KG모빌리티|쌍용자동차]](주)는 대우그룹의 구조조정 당시 대우차와의 분리 매각이 결정되면서 [[2000년 4월]] 대우 계열에서 정식으로 분리되었다. 후에 쌍용자동차(주)는 [[2005년]] [[중국]] 국영자동차회사인 [[상하이자동차]] 그룹에 인수되어, 미국발 금융 위기로 인한 판매 부진이 계속 거듭되면서 [[2009년]] 쌍용자동차(주)의 경영권을 포기하고 한국 시장에 철수하였다. [[2009년]] 쌍용자동차(주)는 법정관리 체제에 들어갔으며, 구조조정에 따른 대규모 정리해고 사태로 노사간의 첨예한 대립까지 위태로울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다가 [[2010년]] 말 인도의 [[마힌드라]] 자동차에 인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 건설, 무역 ===
[[1999년]] 워크아웃으로 (주)대우지스틱스가 먼저 분사되었으며, [[2000년 12월]] 모기업 (주)[[포스코인터내셔널|대우]]가 3개사로 재탄생한다. 청산을 위한 (주)대우 존속법인과 무역부문의 (주)[[포스코인터내셔널|대우인터내셔널]], 건설부문의 (주)[[대우건설]]로 나뉜다.

(주)대우인터내셔널은 대우의 모태사업인 무역은 물론 백화점 등 사업도 하고 있다. [[2010년]] [[포스코]]에 인수되었고, 지금의 [[포스코인터내셔널|포스코대우]]로 재출범한다. 백화점 사업은 2014년 [[롯데쇼핑]](주)에서 인수하여 롯데백화점 마산점이 되었다.

(주)[[대우건설]]은 워크아웃을 단기에 졸업했으며 [[2006년 12월]]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인수되었다. 그러나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무리한 인수합병으로 인한 후유증에 세계 금융위기까지 겪으며 극심한 자금난을 겪자, 2010년 (주)대우건설에 대한 경영권을 포기하였고, [[2011년 1월]]에 금호아시아나 계열에서 정식으로 분리되었다. 현재 최대주주는 [[한국산업은행]]이다.

대우그룹의 또다른 건설회사였던 [[경남기업]](주)는 [[성완종]]이 이끄는 충남지역 건설사인 대아건설(주)에 인수되었다가 [[2004년]]에 대아건설(주)을 합병하면서 국내 10위권의 대형 건설사로 성장가도를 달린다. [[2009년]] 대한민국 건설사들의 잇따른 경영난으로 워크아웃을 재차 겪지만, 실적 개선 등에 힘입어 [[2011년 5월]] 워크아웃을 졸업하는데 성공한다. [[2015년]] 하지만 건설업계 불황이 장기화되고 기업의 오너(Owner)인 성완종이 자원외교비리수사에 연루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2015년 4월]] 마침내 [[경남기업]]은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만다. [[2017년]] [[sm그룹]]이 인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 중공업, 조선 ===
[[2000년]] [[대우중공업]](주)도 대우종합기계(주), 대우조선공업(주) 그리고 대우중공업(주) 잔존법인으로 분할되었다.

주력부문이었던 중장비 및 군수물자 생산을 담당하는 대우종합기계(주)는 [[2005년]]에 [[두산]] 계열로 편입, [[두산인프라코어]](주)로 재탄생하였다.

대우중공업의 조선해양부문은 대우조선공업 주식회사로 분사되었다가 곧 [[대우조선해양]]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한다. 2000년대 조선업계의 호황으로 대우의 계열사 중 가장 먼저 워크아웃을 졸업한 회사로도 주목받았고, 조선업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을 기반으로 건설, 상조사업 등에도 진출하며 자체적으로 조선사업 중심의 기업집단을 일구었다. 2000년 출범한 이래 수년간 경쟁업체인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과 함께 선박 수주잔량으로 세계 수위권을 다투왔지만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변곡점으로 대우조선해양은 2010년대 중반에 이르러 조선업황의 악화로 존폐의 기로에 놓여있는 상태이다.

대우중공업이 3개사로 분할되기 전인 [[1999년 7월]]에는 철도차량 생산부문이 경쟁사인 [[현대정공]](주), [[한진중공업]](주)와 함께 현물출자 형식으로 단일법인을 설립함으로써 국내 유일의 철차제작업체인 [[한국철도차량]]주식회사가 탄생하였다. 하지만 대우종합기계(주)가 승계받은 한국철도차량(주)의 지분은 경영정상화를 위해 [[2001년]]에 [[현대자동차그룹]]에 전량 매각됨으로써 주식회사 [[로템]](現 현대로템(주))으로 재출범한다.

대우중공업(주)의 항공사업부문도 [[1999년 8월]]에 [[삼성항공산업]](주), 현대우주항공(주)과 통합하여 새로이 [[한국항공우주산업]](주)로 출범하였지만, [[대우중공업]]의 지분을 인계받은 [[두산그룹]]의 DIP홀딩스에서는 2016년 [[한국항공우주산업]]의 보유지분을 전부 정리하였다.

=== 전자, 통신 ===
한때 세계 각국의 생산기지를 설치하며 세계적인 전자기업을 표방해 오던 대우전자(주)는 [[1999년]] 워크아웃 대상기업으로 지정되었고, [[2000년 4월]] 대우전자 중심의 기업집단을 구축하고 비수익 사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피아노 사업을 담당하는 벨로체, 컴퓨터 사업을 담당하는 [[루컴즈전자|대우루컴즈]], 가스보일러 사업을 담당하는 대우가스보일러 등이 독립된 업체로 분리되었다. [[2002년]] [[위니아전자|대우전자]]의 TV, 백색가전 등 주력 핵심사업부문이 대부분 [[위니아전자|대우모터공업]] 주식회사로 인계되어 이듬해인 [[2003년]]에 (주)[[대우일렉트로닉스]]로 재출범하였다. 이후에도 [[2008년]] 대우디스플레이 등이 분리되어 [[위니아전자|대우일렉트로닉스]]는 사실상 백색가전 전문업체가 되었다. 2013년 동부그룹이 인수함으로써 [[위니아전자|동부대우전자]] 주식회사로 이름이 바뀌다가 2018년 대유그룹이 인수하여 주식회사 대우전자로 부활하였다. [[2019년]] 주식회사 위니아대우 로 이름이 바꿔다가 [[2020년]] 주식회사 위니아전자로 이름이 바꿨다.

[[대우전자부품]]도 1999년 대우그룹 구조조정으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대상으로 지정되었다. 2000년 4월 대우그룹에서 분리되었다.2008년 회생절차개시 결정을 받았고, 2010년 2월 회생절차 종결 결정을 받았다. 그 후 [[현대자동차]]의 1차 협력그룹인 [[아진그룹]]이 인수했다.

대우통신(주)은 정상화를 위해 통신 관련사업부문을 매각하여 컴퓨터사업은 대우컴퓨터에 양도하였으며 그밖에 사업부문은 대우텔레텍, 대우글로벌 그리고 1999년 합병된 대우정밀공업 계열의 업체들은 대우정밀, 대우파워트레인, 대우프라스틱 등으로 분사되었다.

대우정밀(주)은 에스엔티(S&T그룹)에 인수되어 현재 [[S&T모티브]]로 운영 중이며 대우파워트레인(주)은 GM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컴퍼니(지금의 한국지엠주식회사)에 매각되었고, 대우프라스틱(주)는 삼라마이다스그룹(SM그룹)으로 매각된 후 대우라이프(주)로 바뀌었다가 계열사인 남선알미늄(주)에 합병되었다.

전자 계열사였던 오리온전기(주), 한국전기초자(주), 광전자(주) 등도 워크아웃을 맞아 자취를 감추거나 독자생존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 금융 ===
대우증권(주)는 [[1999년]] 대우가 해체되기 전 채권단이 인수하였으며 후에 대주주가 [[한국산업은행]]으로 변경된다. [[2009년]]에는 한국산업은행의 민영화에 따라 새로이 출범한 [[KDB금융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2015년]]에는 [[미래에셋금융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2001년 8월]] (주)다이너스카드클럽코리아는 [[현대자동차]](주)에 매각되어 [[현대카드]](주)로 변경되었다.

대우캐피탈(주)는 아주그룹에 편입되어 아주캐피탈(주)로 바뀌었다.

=== 스포츠 ===
대우그룹에서 운영 중이던 [[부산 아이파크|부산 대우 로얄즈]]는 [[현대산업개발]]에 매각, [[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인천 대우 제우스]]는 [[신세기통신]]에 매각되고 인천 신세기 빅스로 변경하며 현재 [[부산 아이파크]]와 [[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 미디어 ===
케이블 채널 중에서 대우시네마네트워크는 [[오리온홀딩스|동양그룹]]에 매각되어 [[OCN (텔레비전 채널)|OCN]](현재 [[CJ그룹|CJ]] 산하)으로 변경되었다.

== 같이 보기 ==
=== 건설, 무역 ===
* (주)대우 무역 → [[포스코인터내셔널|포스코대우]] ([[포스코]]에 인수) → [[포스코인터내셔널]]
* (주)대우 건설 → [[대우건설]] (최대주주 [[한국산업은행]])
* (주)대우 백화점 → [[롯데백화점]] 마산점 ([[롯데백화점|롯데쇼핑]]에 인수)

=== 자동차 ===
* 대우자동차 → GM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 → [[한국지엠]] (2002년 [[제너럴 모터스]]에 인수)
* 대우자동차 버스 부문 → [[자일대우버스]] (2003년 [[영안모자]]에 인수)
* 대우자동차 상용차 부문 → [[타타대우상용차]] (2004년 [[타타]]에 인수)
* 쌍용자동차→[[KG모빌리티]] (1998년 [[대우자동차]]에서 인수, 2004년 [[상하이자동차]]에 인수, 2010년 [[마힌드라]]에 피인수, 2022년 [[KG그룹]]에 피인수)
* 대우자동차판매 자동차판매 부분 → [[대우자동차판매]] (2010년 [[영안모자]]에 인수)
* 대우자동차판매 건설 부문 → [[대우산업개발]] (2011년 중국 풍화(豊華)그룹에 인수)

=== 중공업 ===
* 대우중공업 종합기계 부문 → [[두산인프라코어]] (2005년 [[두산그룹]]에 인수)
* 대우중공업 조선해양 부문 → [[대우조선해양]] → [[한화오션]]
* 대우중공업 철도차량 부문 → [[현대로템]] (2001년 [[현대자동차그룹]]에 인수)

=== 전자 ===
* 대우전자 → [[위니아전자|동부대우전자]] → [[위니아전자|대우전자]] (2018년 [[대유그룹]]에 인수) → [[위니아전자|위니아대우]] → [[위니아전자]]
* 대우정밀공업 → [[S&T모티브]] (2006년 [[S&T그룹]]에 인수)

=== 금융 ===
* 대우증권 → [[미래에셋대우]] (2016년 [[미래에셋금융그룹]]에 인수)
* 다이너스클럽코리아 → [[현대카드]] (2001년 [[현대자동차그룹]]에 인수)
* 대우캐피탈 → [[아주캐피탈]] (2005년 [[아주그룹]]에 인수)

=== 기타 ===
* 대우엔지니어링 → [[포스코엔지니어링]] (1990년 계열 분리 → 2002년 포스코에 인수)
* 신성통상 (1984년 계열 분리 → 2002년 가나안에서 인수)
* 대창기업
* (주)고려 → SG고려 (구 고려피혁공업주식회사 → 2003년 (주)가로수닷컴에 인수)
* 세계물산 → SG위카스 → [[SG세계물산]] (2002년 SK글로벌에 인수 → 2005년 (주)가로수닷컴에 인수)
* 대우시네마네트워크 → (주)[[OCN (텔레비전 채널)|오리온시네마네트워크]] (1999년 [[동양그룹]]에 인수되어 별도법인인 [[온미디어]] 설립 → 2010년 CJ에 인수 → 2013년 [[CJ ENM]]에 흡수 합병)
* 부산 대우 로얄즈 → [[부산 아이파크]] (2000년 [[현대산업개발]]에 인수)
* 인천 대우 제우스 → 인천 신세기 빅스 (1999년 [[신세기통신]]에 인수)

== 외부 링크 ==
* [https://daewoosky.com/ 대우세계경영연구회]

== 각주 ==
<references/>

{{대우그룹}}

[[분류:대우그룹| ]]
[[분류:대한민국의 기업]]
[[분류:1967년 설립된 기업]]
[[분류:2000년 해체된 기업]]
[[분류:대한민국의 없어진 기업]]
[[분류:대한민국의 브랜드]]

* [[2005년]] [[10월 20일]]: [[신답역|신답]] - [[신설동역|신설동]] 사이에 [[용두역]] 개통
* [[2005년]] [[10월 20일]]: [[신답역|신답]] - [[신설동역|신설동]] 사이에 [[용두역]] 개통
* [[2009년]] [[10월 29일]] : 동대문운동장역에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으로 변경<ref>[http://event.seoul.go.kr/snews/data/CN_MST/%C1%A62940%C8%A3.pdf#page=163&view=FitV&scrollbar=1&toolbar=1&statusbar=1&messages=1&navpanes=1 서울특별시고시 제2009-428호], 2009년 10월 29일.</ref>
* [[2009년]] [[10월 29일]] : 동대문운동장역에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으로 변경<ref>[http://event.seoul.go.kr/snews/data/CN_MST/%C1%A62940%C8%A3.pdf#page=163&view=FitV&scrollbar=1&toolbar=1&statusbar=1&messages=1&navpanes=1 서울특별시고시 제2009-428호], 2009년 10월 29일.</ref>

2024년 4월 19일 (금) 20:10 판

서울 지하철 2호선
구로디지털단지역에 진입 중인 208편성
구로디지털단지역에 진입 중인 214편성
기본 정보
운행 국가대한민국
종류도시 철도
체계수도권 전철(서울 지하철)
상태영업 중
기점본선: 시청역
(서울특별시 중구)
성수지선: 성수역
(서울특별시 성동구)
신정지선: 신도림역
(서울특별시 구로구)
종점본선: 시청역
(서울특별시 중구)
성수지선: 신설동역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신정지선: 까치산역
(서울특별시 강서구)
역 수51
개통일1980년 10월 31일(신설동~종합운동장)
1982년 12월 23일(종합운동장~교대)
1983년 9월 16일(을지로입구~성수)
1983년 12월 17일(교대~서울대입구)
1984년 5월 22일(서울대입구~을지로입구)
1992년 5월 22일(신도림~양천구청)
1996년 2월 29일(양천구청~신정네거리)
1996년 3월 20일(신정네거리~까치산)
소유자서울특별시
운영자서울교통공사
노선 제원
영업 거리시청~시청 본선: 49.1 km
성수~신설동 성수지선: 5.4 km
신도림~까치산 신정지선: 6.0 km
궤간1,435 mm(표준궤)
선로 수2(시청 - 시청, 성수 - 신설동, 도림천 - 신정네거리)
전철화가공전차선·가공강체가선
직류 1,500 V
신호 방식Nippon Signal ATS,ATS-P
(2022년 종료)[1]
LZB/ATP/ATO [수동운전]
영업 최고 속도LZB/ATP/ATO 구간 80km/h
서울 지하철 2호선
km
0.0
201 시청
0.7
202 을지로입구
1.5
203 을지로3가
2.1
204 을지로4가
3.1
205 동대문역사문화공원
4.0
206 신당
4.9
207 상왕십리
5.7
208 왕십리
6.7
209 한양대
7.8
210 뚝섬
8.6
0.0
211 성수
2.3
211-1 용답/군자차량사업소
3.3
211-2 신답
4.2
211-3 용두
5.4
211-4 신설동
연결선
9.8
212 건대입구
11.4
213 구의
12.3
214 강변
(한강, 잠실철교)
14.1
215 잠실나루
15.1
216 잠실
16.3
217 잠실새내
17.5
218 종합운동장
18.5
219 삼성
19.8
220 선릉
21.0
221 역삼
21.8
222 강남
23.0
223 교대
23.7
224 서초
25.4
225 방배
27.0
226 사당
28.7
227 낙성대
29.7
228 서울대입구
30.7
229 봉천
31.8
230 신림
33.6
231 신대방
34.7
232 구로디지털단지
35.8
233 대림
37.6
0.0
234 신도림
1.0
234-1 도림천
2.7
234-2 양천구청
4.6
234-3 신정네거리
연결선
6.0
234-4 까치산
38.8
235 문래
39.7
236 영등포구청
40.8
237 당산
(한강, 당산철교)
42.8
238 합정
43.9
239 홍대입구
45.2
240 신촌
46.0
241 이대
46.9
242 아현
47.7
243 충정로
48.8
201 시청

서울 지하철 2호선(서울 地下鐵 2號線) 혹은 수도권 전철 2호선(首都圈 電鐵 2號線)은 대한민국 서울 지하철 노선이자, 수도권 전철운행 계통이다. 서울 주요 지역을 순환한 을지로순환선, 성수역신설동역을 잇는 성수지선[내용주 1], 신도림역까치산역을 잇는 신정지선으로 구성된다.

운행 계통은 을지로순환선을 시계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순환내선순환, 외선순환과 성수지선, 신정지선을 왕복하는 운행 계통이 있다. 노선 안내 등에 사용되는 색상은 녹색이다.

2012년 기준으로 서울 지하철 2호선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붐비는 노선으로 서울 지하철 전체 이용 승객의 31%인 일평균 204만 8000명이 이 노선을 이용하고 있다.[2] 전 구간을 서울교통공사가 담당한다. 통행방향은 어디서든 우측통행이다.

개요

플랩식 행선 안내기, LED 행선 안내기 도입 이전까지 1기 지하철 구간에서 사용하였다. 서울 지하철 2호선에는 2010년까지 남아 있었으며 2005년에 일부 역사에 새로운 행선 안내기가 설치됐지만, 사업자의 계약 문제로 얼마 뒤 철거되었고, 2010년 새 사업자가 선정되어 행선 안내기가 LCD 방식 신형으로 교체되면서 현재는 모두 철거되었다.

구자춘 전 서울시장의 3핵도시 구상[내용주 2]에 따라 1972년의 계획[내용주 3]을 파기하고 계획한 노선으로,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88 서울 올림픽을 대비하기 위하여 건설되었다는 특징도 있다.

서울 도심과 부도심을 이으며 도심에서 방사형으로 뻗어나가는 서울 지하철수도권 전철 각 노선을 잇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혼잡도가 높은 편이며, 특히 오전 8시 ~ 오전 9시, 교대 - 강남 구간은 아침 출근 시간대를 기준으로 대한민국 철도 노선 중 최고의 혼잡률인 225%의 혼잡률을 보였다. 2호선의 전동차 정원은 1576명[내용주 4] 인 것을 감안하면 이는 가장 혼잡한 시간대에는 한 편의 전동차가 평균 3514.5명의 인원을 수송하였음을 보여준다.

운영

운행

외선·내선 순환

서류 상의 기준점은 시청역이나, 운영 및 열차 운행에 있어서는 성수역신도림역이 기준점이 된다. 내선 순환은 순환선을 시계 방향으로 도는 운행 계통이며, 외선 순환은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돈다. 이전에는 노선의 별칭을 따라 이 운행 계통을 을지로 순환선으로 불렀으나 현재는 잘 쓰이지 않는다. 모든 열차가 각 역에 정차하며, 대부분의 열차는 차량기지 인근에 위치한 성수역 혹은 신도림역을 출발하여 본선을 몇 바퀴를 돈 뒤 다시 성수역 또는 신도림역에서 운행을 마치는 형태로 운행된다. 이외에도 막차 시간대에는 을지로입구역, 서울대입구역, 삼성역, 홍대입구역 종착 열차가 있으며 이들은 해당 역의 주박선에서 주박을 하고, 다음 날 새벽에 첫차로 운행 후 차량기지로 입고한다. 순환선 전 구간을 한 바퀴 운행하는 데 걸리는 표준 시간은 1시간 27분 (87분) ~ 1시간 30분 (90분)이나 출·퇴근 시간 등에는 지연으로 인하여 다소 늦어질 수 있다. 10량 75개 편성이며 운행 시에는 앞쪽 운전실에 기관사, 뒤쪽 운전실에 차장이 근무하는 2인 승무제를 시행하며 이는 1호선, 3호선, 4호선 (코레일 포함)과 같다.

1996년 12월 31일부터 1999년 11월 22일까지 당산철교가 재시공으로 사용이 중지되었을 때 내선 순환은 당산역까지, 외선 순환은 홍대입구역이나 합정역까지만 운행된 적이 있었다.[내용주 5]

성수지선

성수 - 신설동 구간을 운행하는 지선 운행 계통이다. 2호선이 1980년 10월 31일 1단계 개통으로 신설동 - 성수 - 종합운동장 구간이 처음 개통된 이래로 1982년 12월 23일 2단계 개통으로 종합운동장 - 교대 구간이 연장 개통될 당시까지만 해도 본선 구간의 일부로 운행되었다. 그러나 1983년 9월 16일 성수 - 을지로입구 3단계 구간이 연장 개통하면서 을지로입구 - 종합운동장 구간이 본선이 되고, 신설동 - 성수 구간이 성수지선으로 분리되어 현재와 동일한 운행 계통을 구축하게 되었다. 성수역에서 시종착하는 열차들은 성수지선을 통하여 군자차량사업소로 입고하거나 기지에서 출고한다. 수도권 전철 1호선을 운행하는 서울교통공사 1000호대 VVVF 전동차서울교통공사 1000호대 저항제어 전동차 역시 서울 지하철 1호선 동묘앞역에서 종착 후 신설동역 구내의 1호선 및 2호선의 연결선을 이용하여 2호선 신설동역 유령 승강장 (지하 3층)을 통과한 후, 군자차량기지로 입고한다. 이 때문에 종종 성수지선 전동차가 용답역 또는 신답역에 1분 이상 정차하는 경우도 있다.[3] 성수지선은 4량 5개편성이며 신정지선과 마찬가지로 편성량이 짧아 1인 승무제를 시행하여 전동차 뒤쪽 운전실에 차장이 별도로 근무하지 않는다.

신정지선

신도림~까치산 구간을 운행한 지선 운행 계통이다. 신도림역신정차량사업소 사이의 입출고선을 연장한 방식으로 건설되었으며, 까치산역에서 5호선으로 갈아탈 수 있다. 또한, 까치산역 인근에 5호선과의 연결선이 있어서 서울 지하철 5호선 개통 당시 5호선 전동차7·8호선 전동차고덕차량기지방화차량기지로 운송하는데 사용되기도 하였다. 신정네거리역에서 까치산역, 신도림역에서 도림천역구간이 단선이기 때문에 선행열차가 신정네거리역에서 까치산역으로 들어가거나, 도림천역에서 신도림역으로 간 경우, 후속열차는 선행열차가 되돌아 나올 때까지 대기하여야 하기 때문에 (대략 10분) 배차간격이 긴 편이다. 또한 도림천역양천구청역 사이에 있는 신정차량사업소와의 연결선을 통하여 열차가 입출고하기 때문에 지선 열차가 양천구청역이나 도림천역에서 대기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신정지선은 6량 4개편성이며 성수지선과 마찬가지로 편성 량수가 적어 1인 승무제를 시행하여 전동차 뒤쪽 운전실에 차장이 별도로 근무하지 않는다.

차량

군자차량사업소, 신정차량사업소에 배치되어 있으며, 입·출고 시에는 각 차량기지와 연결된 지선을 이용한다.

역사

2단계 개통 기념 승차권

대우그룹
Daewoo Group
형태대기업집단(1989년~1999년)
창립1967년 3월 22일 (대우실업 주식회사)
창립자김우중(대표이사 회장)
산업 분야자동차, 전자, 조선, 건설
해체1999년 11월 1일
본사 소재지대우센터빌딩(1977년~1999년)
사업 지역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핵심 인물
김우중(대표이사 회장)
매출액분식회계로 정확히 추산불가
영업이익
-4조원(1999년 기준)
자산총액자본 약 15조 부채 89조
주요 주주김우중
모기업(주)대우
계열사대우전자, 대우건설, 대우자동차, 대우조선, 대우증권, 쌍용자동차
자본금5,000,000원(1967년 기준)

대우그룹(大宇─, Daewoo Group)은 1967년 창립한 대우실업을 모태로 1980년대부터 1990년대 말까지 존재한 대한민국의 대규모 기업집단이었다.[6] 대도섬유의 대(大)와 김우중의 우(宇)를 따서 만들었다. 섬유·무역·건설·조선·중장비·자동차·전자·통신·관광·금융 등 여러 사업부문을 두었으며, 1993년 세계경영 전략 채택 이후 강력한 외형확장으로 사세를 넓혀갔고 1998년에는 현대그룹에 이어 재계 2위에 올랐으나 외환위기 이후, 자체 구조조정 실패와 1999년 삼성과의 전자-자동차 빅딜 실패로 1999년 10월부터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그룹 해체를 맞았다.

기업연혁

과거 대우그룹의 본사였던 서울스퀘어.

대우는 1967년 소규모 사업체로 창업하였으나, 1970년대 경제성장 및 수출호조에 따른 비약적인 발전, 그리고 정부 주도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에 힘입어 단기간에 대한민국 최대기업으로서 성장을 이루게 된다. 대우는 1980년대 후반부터 대한민국 외 국가로 눈을 돌려 동유럽 및 신흥시장 개척을 추진해 왔고, 1993년 세계경영에 나서면서 사세확장을 시도하였다. 이후 외환위기 속에서도 1997년 법정관리에 들어간 쌍용자동차를 인수하였다. 98년 상반기에는 현대그룹에 이은 (자산총액기준) 재계 2위에 올랐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출범이후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자체적 구조조정 실패와 무리한 차입금이 발목을 잡았고 1998년 10월, 대우그룹이 신청한 기업어음(CP)발행이 중단되면서 그룹 위기가 찾아왔다. 1999년이 되면서 삼성그룹과의 대우전자-삼성자동차의 빅딜협상에 들어갔으나 동년 7월, 협상이 결렬되었다. 이후 김우중 회장은 자동차를 중심으로 그룹 구조조정에 뒤늦게 들어갔으나 대우그룹 채권단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1999년 10월, 그룹 해체 수순을 밟았다.

성장

1967년 대우실업 창립 이래, 부산에 공장을 설치하여 1970년대 와이셔츠 등의 봉제품 및 섬유제품의 수출호조와 더불어 경제고도성장으로 급속한 발전을 이루어 신흥 사업체로 주목받았고, 더욱이 정부가 주도하던 경제 정책에 발맞춰 금융, 전자, 중공업, 자동차 사업에도 뛰어들면서 대우 그룹을 형성하게 된다.

  • 1967년 3월 22일 모태인 대우실업(주)(대우가족) 창립. (섬유류 봉제품 생산, 수출 주도)
  • 1969년 8월 대한민국 기업 해외지사 1호 시드니에 개설.
  • 1971년 9월 (주)내쇼날의류 설립.
  • 1972년 9월 고려피혁(주) 인수.
  • 1973년 쌍미섬유공업(주) 인수. 대우증권의 전신 동양증권(주) 인수. 대우건설(주) 설립.
  • 1975년 2월 대우빌딩 착공.
  • 1975년 5월 대우실업(주), 종합무역상사 지정.
  • 1976년 2월 한국기계공업(주) 인수. 10월 해외건설업면허 취득. 대우중공업(주) 출범.
  • 1977년 대우센터 빌딩 준공. 8월 제철화학(주) 경영권 인수.
  • 1978년 7월 산업은행으로부터 새한자동차(주) 지분 인수. 대한조선공사 옥포조선소 인수 후 9월 대우조선공업(주) 설립.

도약기

대우 그룹은 (주)대우의 출범과 새한자동차 경영권 장악, 가전사업 진출을 잇달아 성사시키며 현대(現代), 삼성(三星), 럭키금성(LG)과 함께 대한민국 4대 기업군으로 성장한다. 국내 업체들과의 출혈 경쟁에서 기술력과 수익성의 한계를 느낀 대우는 세계로 눈을 돌려 냉전체제의 완화가 도래한 시점에 동유럽 및 공산권 국가에 현지법인을 설립하면서 신시장 개척을 준비하였다.

  • 1981년 10월 옥포조선소 준공. 수출의날 15억불탑 수상. 대우실업(주) 및 대우개발(주) 합병 결의.
  • 1982년 모기업 (주)대우 출범. 수출의날 20억불탑 수상.
  • 1983년 대우자동차(주) 출범. 대우전자(주)에서 대한전선(주)의 가전부문을 흡수. 대우통신(주) 설립.
  • 1984년 경남기업(주) 경영 참여. (주)대우경제연구소 설립. 10월 대우자동차부품(주) 설립. 대한민국 최초 VTR 수출.
  • 1986년 대우증권 런던사무소 개설. 9월 경남기업(주) 계열 편입.
  • 1987년 미얀마 현지 철도차량공장 준공.
  • 1988년 (주)대우 동베를린지사 설치. 대우투자자문(주) 설립. 프랑스 롱위 전자레인지 공장 건립. 대우증권 홍콩사무소 개설.
  • 1989년 제철화학 외 3개사 매각. 대우정보시스템 설립. 대우기전공업㈜ 출범. MHB-Daewoo Bank 설립.
  • 1990년 (주)대우 모스크바지사 설치. 대우중공업(주) 유럽현지법인 설립. 멕시코 컬러TV 공장 건립.
  • 1991년 (주)대우 북경지사 설치. 대우증권(주) 유럽현지법인 설립, 취리히사무소 개설.
  • 1992년 4월 佛 컬러TV 공장 건립. 佛 컴퓨터 판매법인 설립. 대우증권 美 현지법인 설립. 대우차-GM 제휴관계 청산.

팽창기

(주)대우가 구축한 세계무역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대우자동차(주), 대우중공업(주), 대우전자(주)가 국제적으로 널리 진출하는 '세계경영'은 1993년 '세계경영 우리기술' 슬로건 선포를 시점으로 본격화되었다. 대우가 당시 내세웠던 세계경영은 선진업체가 진출하지 않은 옛 공산권 국가와 앞으로 발전가능성이 무한한 개발도상국 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것으로, 현지법인 설립과 인수합병을 통해 단기간에 정착하여 사세확장을 꾀하는 형태이다. 실제로 대우가 진출을 시도한 개발도상국가의 정부에서는 자국의 경제활성화 목적에서 대우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기에, 대우의 사업확장은 더욱 쉽게 이뤄질 수 있었다. 대한민국 시장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대우자동차(주)의 경우는 대한민국 외 국가에서 판매하는 수량이 대한민국에서 판매하는 수량을 앞지르는 현상을 가져오기도 했다. 이같은 대우의 급속한 성장은 대한민국 경제계와 대한민국 외 국가 경제에 큰 반향을 가져다 주었다.

  • 1993년 1월 대우자판 설립.
  • 1993년 2월 베트남 합작은행 출자.
  • 1993년 3월 세계경영 선포.
  • 1993년 5월 우즈벡 가전 공장 설립.
  • 1993년 7월 대우중공업(주) 미국현지법인 DEC 설립.
  • 1993년 8월 폴란드 TV 공장 설립.
  • 1993년 9월 세계최초 공기방울 세탁기 개발.
  • 1994년 2월 대우할부금융 설립.
  • 1994년 3월 인도 합작증권사 CRB-Daewoo Securities Ltd 출자.
  • 1994년 5월 대우자동차(주) 영국 워딩 자동차 기술연구소 건립.
  • 1994년 6월 대우중공업 영국현지법인 유로 대우 UK 설립.
  • 1994년 10월 대우중공업(주) 대우조선공업 흡수 합병. 중국현지법인 대우중공업연대유한공사 설립.
  • 1994년 11월 루마니아 자동차합작공장 DAEWOO-RODAE 설립. 대우중공업(주) 러시아 기술연구소 DISK 설립.
  • 1995년 1월 대우중공업(주) 독일 현지법인 ECO 설립. 대우전자(주) 말레이시아 세탁기 공장 설립. 대우뱅크 출범.
  • 1995년 2월 대우중공업(주) 일본 현지법인 대우건기 설립.
  • 1995년 3월 체코 최대 국영상용차업체 AVIA사 인수. 대우증권(주) 홍콩현지법인 설립.
  • 1995년 4월 대우증권(주) 상해사무소 개설.
  • 1995년 5월 대한민국 기업 최초, 대북 협력사업 정부승인 획득.
  • 1995년 6월 다이너스카드사 인수.
  • 1995년 7월 동우개발(주)의 사명을 (주)대우개발로 변경.
  • 1995년 9월 베트남 하노이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우즈벡 공화국에 교환기합작공장 알로카대우 설립.
  • 1995년 10월 중국천진 팩스밀리 합작공장 설립.
  • 1995년 11월 베트남 최초 타포린 합작생산 공장 준공. 폴란드 최대 자동차기업 FSO 인수, DAEWOO-FSO 출범.
  • 1996년 3월 대우증권(주) 싱가폴사무소 개설. 루마니아 DAEWOO-RODAE 공장 준공.
  • 1996년 5월 남북경협 최초회사 민족산업총회사 남포에 설립. 앙골라 대규모 유전발견.
  • 1996년 6월 프랑스 롱위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인도뉴델리 첨단 소프트웨어 연구개발센타 설립. 페루육상 유전인수 입찰수주.
  • 1996년 7월 한진투자증권 합작 법인 서울투신운용(주) 설립. 우크라이나 대용량교환기 합작공장 드니프로-대우 설립.
  • 1996년 10월 대우증권(주) 동경지점 개점. UZ-Daewoo 자동차 공장 준공. 베트남 비담코 자동차 공장 준공.
  • 1996년 11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중국 광케이블 합작회사 우시-대우 설립. 루마니아 합작은행 설립.
  • 1997년 3월 우즈베키스탄 대우은행 (Uz-Daewoo Bank) 설립.
  • 1997년 4월 인도 종합 가전공장 설립. 군산 종합 자동차공장 준공.
  • 1997년 5월 인도 CRB증권 대우파이낸스로 상호 변경. 대우선물(주) 설립.
  • 1997년 6월 대우증권(주) 싱가포르 현지법인 설립.
  • 1997년 7월 대우리스 체코에 설립.
  • 1997년 9월 대우자동차(주) 우크라이나 합작공장 설립계약 체결.
  • 1997년 12월 한국전기초자(주) 인수.

해체

대우는 세계경영으로 철저히 현지화를 추구함으로써 1993년 당시 150여개에 불과했던 대한민국 외 국가 현지법인을 1998년 11월에는 396개로 끌어올리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대우는 1997년 다가온 경제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물로 나온 쌍용자동차(주)를 인수하여 소형차에서 대형차는 물론, 버스와 트럭, 사륜구동 SUV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차량을 생산하는 풀라인업을 완성시키고 그 밖에도 해외 현지공장 인수 및 확장을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대우는 1998년 삼성(三星)을 제치고 재계서열 2위까지 뛰어오른다.

  • 1998년 3월 30일 대우자동차(주), 쌍용자동차(주) 인수.
  • 1998년 5월 스페인 냉장고 공장 설립.
  • 1998년 6월 우크라이나 자동차 법인 AUTOZAZ-DAEWOO 공장 본격 가동.
  • 1998년 7월 미국 Fortune 선정 매출 500대 기업 중 세계 18위의 기업으로 도약.
  • 1998년 10월 대우중공업(주) 이집트공장 준공.
  • 1998년 11월 무역의 날 150억불 수출의 탑 수상.

그러나 경기침체의 장기화와 세계 시장의 위축으로 대우의 입지는 크게 흔들렸고, 개발도상국가 위주로 판매망을 확대해온 대우자동차의 부진이 거듭되었다. 경영여건이 안정되지 못한 상황에서 추진한 쌍용자동차의 인수도 큰 실익을 거두지 못하였고, 외형확대의 초점을 맞추어 경영해오다보니 당시 정부가 요구했던 구조조정에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오다보니 구조조정의 실시가 경쟁 그룹에 비해 늦은 편이었다. 정부 주도의 산업체계 개편에 따라 늦게나마 추진한 대우전자-삼성자동차 빅딜협상은 양사간 입장차이로 끝내 결렬되었으며, 1999년 여름에 접어들면서 그룹의 운명을 좌우할 대우와 GM과의 협상(대우차와의 경영권 문제)마저도 실패한 대우는 급속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자금난이 가중되던 대우는 알짜자산인 힐튼호텔 매각 등을 성사시키기도 하지만 1999년 3월에는 이미 부채 비율을 무려 400%를 훨씬 넘은 상태여서 수습이 어려운 지경이었다. 7월 대우는 초고강도 구조조정안을 발표하였으나 채권단은 이를 반려한다. 결국 대우는 1999년 8월 16일 채권단의 재무구조개선수정약정 체결과 더불어, 26일 채권단 관리하에 워크아웃을 맞이함으로써 그룹 해체의 길로 접어든다. 지난 1967년 창업 이래 32년간 대한민국에 경쟁성장의 견인차로 역할을 해오던 기업 중 하나로서, 1993년 세계경영을 선포한지 6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 1998년 11월 대우그룹 1차 구조조정안 발표.
  • 1998년 12월 대우전자(주) 및 삼성자동차(주) 빅딜 발표. (사업맞교환)
  • 1999년 4월 19일 대우 2차 구조조정안 발표. (대우 조선, 상용차, 힐튼호텔 등 매각)
  • 1999년 6월 30일 삼성자동차 워크아웃 돌입.
  • 1999년 7월 16일 대우그룹 구조조정안 발표. (자동차 전문그룹으로의 재탄생)
  • 1999년 8월 3일 제일은행 등 채권단 구조조정안 반려.
  • 1999년 8월 16일 대우 채권단, 재무구조개선수정약정 체결.
  • 1999년 8월 26일 (주)대우, 대우중공업(주), 대우자동차(주), 대우전자(주) 등 12개 회사 워크아웃 돌입.
  • 1999년 8월 30일 대우증권(주) 계열 분리, 채권단으로 이양.
  • 1999년 10월 김우중 회장, 중국 옌타이 대우자동차 부품공장 준공식 참석.
  • 1999년 11월 1일 대우 회장 및 대우그룹 사장단 퇴진.
  • 2000년 4월 15일 대규모기업집단 지정 제외.

한 때 세계 경영의 첨병으로 불렸던 대우의 몰락은 경제계에 큰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대우사태는 당대 큰 기업은 절대 흥한다는 '대마불사'의 신화를 깨고 차입경영을 일삼는 부실기업을 과감하게 퇴출시킨 사례로 건실한 기업풍토 조성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이 있는 반면, 대우가 밝혀지지 않은 요인(정치적 문제 또는 국제적 외압)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여론도 일부 존재하고 있어 지금도 눈길을 끈다.

구 대우그룹 계열사

현재 대우의 계열사들은 그룹 해체 후 자립 혹은 새로운 기업의 인수를 통해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그룹이 해체된 이후에도 포스코대우, 대우건설, 대우조선해양 등 몇몇 회사들은 여전히 대우의 이름을 유지하며 성공적으로 영업 중이다.

자동차 사업

대우가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자동차 사업은 1997년 신차 출시, 1998년 쌍용자동차 인수에 따른 사세 확장으로 대한민국 시장에서 호조를 거두었으나 부채 누적으로 인한 만성적인 적자로, 대우그룹 핵심 계열사들이 워크아웃에 돌입하면서 완전히 공중분해되고 말았다.

대우자동차(주)는 포드, 제너럴 모터스(GM) 등 두 양사간의 해외 매각 의사를 타진하였으나 최종적으로 협상이 모두 결렬되었으며, 대우자동차(주)는 경영 정상화 실패로 인해 2000년 11월 10일인천지방법원에 법정관리(정리절차) 개시 신청을 냈고, 노사가 극적으로 노사협의회 합의문에 합의한 후, 회사 측의 자구의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여, 법정관리 개시 결정이 내려졌다.

대우자동차는 GM 매각을 위한 구조조정 계획의 일환으로, 9992억 원의 자구계획을 마련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가 인력을 7300여 명 줄이고 재료비, 경상비, 투자비 등을 대폭 감축했으며, 부평공장 생산직 직원 1750명이 강제로 거리로 내몰리는 역대 최대 규모의 정리해고가 김대중 정부 출범 당시에 근로기준법 개정 이후, 2001년 2월초에 단행되기도 했다.

미국 GM이 2001년 6월초에 대우차 인수 의향서를 제출하여, 이듬해인 2002년 10월 28일에 GM대우(현 한국지엠)라는 외국계 기업으로 새롭게 출범했고, 대한민국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확대에 실패하여 고전을 계속하였던 GM대우는 글로벌 GM의 전략적 요충지로 키우기 위해서 2011년 1월 쉐보레 브랜드로의 흡수 통합을 선언하였으며, 2011년 한국GM(주)가 새롭게 출범하였다.

GM이 인수하지 않은 버스부문, 상용차부문, 부평공장은 대우버스(주), 대우상용차(주), 대우인천자동차(주)로 분할, 매각되었다.

대우자동차(주)의 버스부문인 대우버스(주)는 영안모자에 매각되었고, 트럭을 생산하는 상용차 부문은 인도 최대의 재벌인 타타(TATA)에 매각되어 타타대우상용차(주)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대우그룹 시절 대우자동차와의 합병을 계획하였던 쌍용자동차(주)는 대우그룹의 구조조정 당시 대우차와의 분리 매각이 결정되면서 2000년 4월 대우 계열에서 정식으로 분리되었다. 후에 쌍용자동차(주)는 2005년 중국 국영자동차회사인 상하이자동차 그룹에 인수되어, 미국발 금융 위기로 인한 판매 부진이 계속 거듭되면서 2009년 쌍용자동차(주)의 경영권을 포기하고 한국 시장에 철수하였다. 2009년 쌍용자동차(주)는 법정관리 체제에 들어갔으며, 구조조정에 따른 대규모 정리해고 사태로 노사간의 첨예한 대립까지 위태로울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다가 2010년 말 인도의 마힌드라 자동차에 인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건설, 무역

1999년 워크아웃으로 (주)대우지스틱스가 먼저 분사되었으며, 2000년 12월 모기업 (주)대우가 3개사로 재탄생한다. 청산을 위한 (주)대우 존속법인과 무역부문의 (주)대우인터내셔널, 건설부문의 (주)대우건설로 나뉜다.

(주)대우인터내셔널은 대우의 모태사업인 무역은 물론 백화점 등 사업도 하고 있다. 2010년 포스코에 인수되었고, 지금의 포스코대우로 재출범한다. 백화점 사업은 2014년 롯데쇼핑(주)에서 인수하여 롯데백화점 마산점이 되었다.

(주)대우건설은 워크아웃을 단기에 졸업했으며 2006년 12월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인수되었다. 그러나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무리한 인수합병으로 인한 후유증에 세계 금융위기까지 겪으며 극심한 자금난을 겪자, 2010년 (주)대우건설에 대한 경영권을 포기하였고, 2011년 1월에 금호아시아나 계열에서 정식으로 분리되었다. 현재 최대주주는 한국산업은행이다.

대우그룹의 또다른 건설회사였던 경남기업(주)는 성완종이 이끄는 충남지역 건설사인 대아건설(주)에 인수되었다가 2004년에 대아건설(주)을 합병하면서 국내 10위권의 대형 건설사로 성장가도를 달린다. 2009년 대한민국 건설사들의 잇따른 경영난으로 워크아웃을 재차 겪지만, 실적 개선 등에 힘입어 2011년 5월 워크아웃을 졸업하는데 성공한다. 2015년 하지만 건설업계 불황이 장기화되고 기업의 오너(Owner)인 성완종이 자원외교비리수사에 연루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2015년 4월 마침내 경남기업은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만다. 2017년 sm그룹이 인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중공업, 조선

2000년 대우중공업(주)도 대우종합기계(주), 대우조선공업(주) 그리고 대우중공업(주) 잔존법인으로 분할되었다.

주력부문이었던 중장비 및 군수물자 생산을 담당하는 대우종합기계(주)는 2005년두산 계열로 편입, 두산인프라코어(주)로 재탄생하였다.

대우중공업의 조선해양부문은 대우조선공업 주식회사로 분사되었다가 곧 대우조선해양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한다. 2000년대 조선업계의 호황으로 대우의 계열사 중 가장 먼저 워크아웃을 졸업한 회사로도 주목받았고, 조선업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을 기반으로 건설, 상조사업 등에도 진출하며 자체적으로 조선사업 중심의 기업집단을 일구었다. 2000년 출범한 이래 수년간 경쟁업체인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과 함께 선박 수주잔량으로 세계 수위권을 다투왔지만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변곡점으로 대우조선해양은 2010년대 중반에 이르러 조선업황의 악화로 존폐의 기로에 놓여있는 상태이다.

대우중공업이 3개사로 분할되기 전인 1999년 7월에는 철도차량 생산부문이 경쟁사인 현대정공(주), 한진중공업(주)와 함께 현물출자 형식으로 단일법인을 설립함으로써 국내 유일의 철차제작업체인 한국철도차량주식회사가 탄생하였다. 하지만 대우종합기계(주)가 승계받은 한국철도차량(주)의 지분은 경영정상화를 위해 2001년현대자동차그룹에 전량 매각됨으로써 주식회사 로템(現 현대로템(주))으로 재출범한다.

대우중공업(주)의 항공사업부문도 1999년 8월삼성항공산업(주), 현대우주항공(주)과 통합하여 새로이 한국항공우주산업(주)로 출범하였지만, 대우중공업의 지분을 인계받은 두산그룹의 DIP홀딩스에서는 2016년 한국항공우주산업의 보유지분을 전부 정리하였다.

전자, 통신

한때 세계 각국의 생산기지를 설치하며 세계적인 전자기업을 표방해 오던 대우전자(주)는 1999년 워크아웃 대상기업으로 지정되었고, 2000년 4월 대우전자 중심의 기업집단을 구축하고 비수익 사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피아노 사업을 담당하는 벨로체, 컴퓨터 사업을 담당하는 대우루컴즈, 가스보일러 사업을 담당하는 대우가스보일러 등이 독립된 업체로 분리되었다. 2002년 대우전자의 TV, 백색가전 등 주력 핵심사업부문이 대부분 대우모터공업 주식회사로 인계되어 이듬해인 2003년에 (주)대우일렉트로닉스로 재출범하였다. 이후에도 2008년 대우디스플레이 등이 분리되어 대우일렉트로닉스는 사실상 백색가전 전문업체가 되었다. 2013년 동부그룹이 인수함으로써 동부대우전자 주식회사로 이름이 바뀌다가 2018년 대유그룹이 인수하여 주식회사 대우전자로 부활하였다. 2019년 주식회사 위니아대우 로 이름이 바꿔다가 2020년 주식회사 위니아전자로 이름이 바꿨다.

대우전자부품도 1999년 대우그룹 구조조정으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대상으로 지정되었다. 2000년 4월 대우그룹에서 분리되었다.2008년 회생절차개시 결정을 받았고, 2010년 2월 회생절차 종결 결정을 받았다. 그 후 현대자동차의 1차 협력그룹인 아진그룹이 인수했다.

대우통신(주)은 정상화를 위해 통신 관련사업부문을 매각하여 컴퓨터사업은 대우컴퓨터에 양도하였으며 그밖에 사업부문은 대우텔레텍, 대우글로벌 그리고 1999년 합병된 대우정밀공업 계열의 업체들은 대우정밀, 대우파워트레인, 대우프라스틱 등으로 분사되었다.

대우정밀(주)은 에스엔티(S&T그룹)에 인수되어 현재 S&T모티브로 운영 중이며 대우파워트레인(주)은 GM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컴퍼니(지금의 한국지엠주식회사)에 매각되었고, 대우프라스틱(주)는 삼라마이다스그룹(SM그룹)으로 매각된 후 대우라이프(주)로 바뀌었다가 계열사인 남선알미늄(주)에 합병되었다.

전자 계열사였던 오리온전기(주), 한국전기초자(주), 광전자(주) 등도 워크아웃을 맞아 자취를 감추거나 독자생존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금융

대우증권(주)는 1999년 대우가 해체되기 전 채권단이 인수하였으며 후에 대주주가 한국산업은행으로 변경된다. 2009년에는 한국산업은행의 민영화에 따라 새로이 출범한 KDB금융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2015년에는 미래에셋금융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2001년 8월 (주)다이너스카드클럽코리아는 현대자동차(주)에 매각되어 현대카드(주)로 변경되었다.

대우캐피탈(주)는 아주그룹에 편입되어 아주캐피탈(주)로 바뀌었다.

스포츠

대우그룹에서 운영 중이던 부산 대우 로얄즈현대산업개발에 매각, 인천 대우 제우스신세기통신에 매각되고 인천 신세기 빅스로 변경하며 현재 부산 아이파크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미디어

케이블 채널 중에서 대우시네마네트워크는 동양그룹에 매각되어 OCN(현재 CJ 산하)으로 변경되었다.

같이 보기

건설, 무역

자동차

중공업

전자

금융

기타

  • 대우엔지니어링 → 포스코엔지니어링 (1990년 계열 분리 → 2002년 포스코에 인수)
  • 신성통상 (1984년 계열 분리 → 2002년 가나안에서 인수)
  • 대창기업
  • (주)고려 → SG고려 (구 고려피혁공업주식회사 → 2003년 (주)가로수닷컴에 인수)
  • 세계물산 → SG위카스 → SG세계물산 (2002년 SK글로벌에 인수 → 2005년 (주)가로수닷컴에 인수)
  • 대우시네마네트워크 → (주)오리온시네마네트워크 (1999년 동양그룹에 인수되어 별도법인인 온미디어 설립 → 2010년 CJ에 인수 → 2013년 CJ ENM에 흡수 합병)
  • 부산 대우 로얄즈 → 부산 아이파크 (2000년 현대산업개발에 인수)
  • 인천 대우 제우스 → 인천 신세기 빅스 (1999년 신세기통신에 인수)

외부 링크

각주

  1. 성수지선만 2024년 종료예정
  2. 오진희 (2013년 3월 15일). “지난해 서울지하철 24억명 이용..2호선 강남역 가장 붐벼”. 아시아경제. 2013년 7월 9일에 확인함. 
  3. 김범석 (2010년 11월 16일). “신설동 지하 유령역, 스크린서 깨어날까”. 동아일보. 2011년 4월 28일에 확인함. 
  4. 서울특별시고시 제181호 , 1980년 5월 28일.
  5. 서울특별시고시 제309호, 1980년 8월 28일.
  6. 대우그룹, 쌍용自인수로 재계순위‘3위’《문화일보》1997년 12월 9일 김병직 기자

대우그룹
Daewoo Group
형태대기업집단(1989년~1999년)
창립1967년 3월 22일 (대우실업 주식회사)
창립자김우중(대표이사 회장)
산업 분야자동차, 전자, 조선, 건설
해체1999년 11월 1일
본사 소재지대우센터빌딩(1977년~1999년)
사업 지역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핵심 인물
김우중(대표이사 회장)
매출액분식회계로 정확히 추산불가
영업이익
-4조원(1999년 기준)
자산총액자본 약 15조 부채 89조
주요 주주김우중
모기업(주)대우
계열사대우전자, 대우건설, 대우자동차, 대우조선, 대우증권, 쌍용자동차
자본금5,000,000원(1967년 기준)

대우그룹(大宇─, Daewoo Group)은 1967년 창립한 대우실업을 모태로 1980년대부터 1990년대 말까지 존재한 대한민국의 대규모 기업집단이었다.[1] 대도섬유의 대(大)와 김우중의 우(宇)를 따서 만들었다. 섬유·무역·건설·조선·중장비·자동차·전자·통신·관광·금융 등 여러 사업부문을 두었으며, 1993년 세계경영 전략 채택 이후 강력한 외형확장으로 사세를 넓혀갔고 1998년에는 현대그룹에 이어 재계 2위에 올랐으나 외환위기 이후, 자체 구조조정 실패와 1999년 삼성과의 전자-자동차 빅딜 실패로 1999년 10월부터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그룹 해체를 맞았다.

기업연혁

과거 대우그룹의 본사였던 서울스퀘어.

대우는 1967년 소규모 사업체로 창업하였으나, 1970년대 경제성장 및 수출호조에 따른 비약적인 발전, 그리고 정부 주도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에 힘입어 단기간에 대한민국 최대기업으로서 성장을 이루게 된다. 대우는 1980년대 후반부터 대한민국 외 국가로 눈을 돌려 동유럽 및 신흥시장 개척을 추진해 왔고, 1993년 세계경영에 나서면서 사세확장을 시도하였다. 이후 외환위기 속에서도 1997년 법정관리에 들어간 쌍용자동차를 인수하였다. 98년 상반기에는 현대그룹에 이은 (자산총액기준) 재계 2위에 올랐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출범이후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자체적 구조조정 실패와 무리한 차입금이 발목을 잡았고 1998년 10월, 대우그룹이 신청한 기업어음(CP)발행이 중단되면서 그룹 위기가 찾아왔다. 1999년이 되면서 삼성그룹과의 대우전자-삼성자동차의 빅딜협상에 들어갔으나 동년 7월, 협상이 결렬되었다. 이후 김우중 회장은 자동차를 중심으로 그룹 구조조정에 뒤늦게 들어갔으나 대우그룹 채권단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1999년 10월, 그룹 해체 수순을 밟았다.

성장

1967년 대우실업 창립 이래, 부산에 공장을 설치하여 1970년대 와이셔츠 등의 봉제품 및 섬유제품의 수출호조와 더불어 경제고도성장으로 급속한 발전을 이루어 신흥 사업체로 주목받았고, 더욱이 정부가 주도하던 경제 정책에 발맞춰 금융, 전자, 중공업, 자동차 사업에도 뛰어들면서 대우 그룹을 형성하게 된다.

  • 1967년 3월 22일 모태인 대우실업(주)(대우가족) 창립. (섬유류 봉제품 생산, 수출 주도)
  • 1969년 8월 대한민국 기업 해외지사 1호 시드니에 개설.
  • 1971년 9월 (주)내쇼날의류 설립.
  • 1972년 9월 고려피혁(주) 인수.
  • 1973년 쌍미섬유공업(주) 인수. 대우증권의 전신 동양증권(주) 인수. 대우건설(주) 설립.
  • 1975년 2월 대우빌딩 착공.
  • 1975년 5월 대우실업(주), 종합무역상사 지정.
  • 1976년 2월 한국기계공업(주) 인수. 10월 해외건설업면허 취득. 대우중공업(주) 출범.
  • 1977년 대우센터 빌딩 준공. 8월 제철화학(주) 경영권 인수.
  • 1978년 7월 산업은행으로부터 새한자동차(주) 지분 인수. 대한조선공사 옥포조선소 인수 후 9월 대우조선공업(주) 설립.

도약기

대우 그룹은 (주)대우의 출범과 새한자동차 경영권 장악, 가전사업 진출을 잇달아 성사시키며 현대(現代), 삼성(三星), 럭키금성(LG)과 함께 대한민국 4대 기업군으로 성장한다. 국내 업체들과의 출혈 경쟁에서 기술력과 수익성의 한계를 느낀 대우는 세계로 눈을 돌려 냉전체제의 완화가 도래한 시점에 동유럽 및 공산권 국가에 현지법인을 설립하면서 신시장 개척을 준비하였다.

  • 1981년 10월 옥포조선소 준공. 수출의날 15억불탑 수상. 대우실업(주) 및 대우개발(주) 합병 결의.
  • 1982년 모기업 (주)대우 출범. 수출의날 20억불탑 수상.
  • 1983년 대우자동차(주) 출범. 대우전자(주)에서 대한전선(주)의 가전부문을 흡수. 대우통신(주) 설립.
  • 1984년 경남기업(주) 경영 참여. (주)대우경제연구소 설립. 10월 대우자동차부품(주) 설립. 대한민국 최초 VTR 수출.
  • 1986년 대우증권 런던사무소 개설. 9월 경남기업(주) 계열 편입.
  • 1987년 미얀마 현지 철도차량공장 준공.
  • 1988년 (주)대우 동베를린지사 설치. 대우투자자문(주) 설립. 프랑스 롱위 전자레인지 공장 건립. 대우증권 홍콩사무소 개설.
  • 1989년 제철화학 외 3개사 매각. 대우정보시스템 설립. 대우기전공업㈜ 출범. MHB-Daewoo Bank 설립.
  • 1990년 (주)대우 모스크바지사 설치. 대우중공업(주) 유럽현지법인 설립. 멕시코 컬러TV 공장 건립.
  • 1991년 (주)대우 북경지사 설치. 대우증권(주) 유럽현지법인 설립, 취리히사무소 개설.
  • 1992년 4월 佛 컬러TV 공장 건립. 佛 컴퓨터 판매법인 설립. 대우증권 美 현지법인 설립. 대우차-GM 제휴관계 청산.

팽창기

(주)대우가 구축한 세계무역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대우자동차(주), 대우중공업(주), 대우전자(주)가 국제적으로 널리 진출하는 '세계경영'은 1993년 '세계경영 우리기술' 슬로건 선포를 시점으로 본격화되었다. 대우가 당시 내세웠던 세계경영은 선진업체가 진출하지 않은 옛 공산권 국가와 앞으로 발전가능성이 무한한 개발도상국 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것으로, 현지법인 설립과 인수합병을 통해 단기간에 정착하여 사세확장을 꾀하는 형태이다. 실제로 대우가 진출을 시도한 개발도상국가의 정부에서는 자국의 경제활성화 목적에서 대우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기에, 대우의 사업확장은 더욱 쉽게 이뤄질 수 있었다. 대한민국 시장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대우자동차(주)의 경우는 대한민국 외 국가에서 판매하는 수량이 대한민국에서 판매하는 수량을 앞지르는 현상을 가져오기도 했다. 이같은 대우의 급속한 성장은 대한민국 경제계와 대한민국 외 국가 경제에 큰 반향을 가져다 주었다.

  • 1993년 1월 대우자판 설립.
  • 1993년 2월 베트남 합작은행 출자.
  • 1993년 3월 세계경영 선포.
  • 1993년 5월 우즈벡 가전 공장 설립.
  • 1993년 7월 대우중공업(주) 미국현지법인 DEC 설립.
  • 1993년 8월 폴란드 TV 공장 설립.
  • 1993년 9월 세계최초 공기방울 세탁기 개발.
  • 1994년 2월 대우할부금융 설립.
  • 1994년 3월 인도 합작증권사 CRB-Daewoo Securities Ltd 출자.
  • 1994년 5월 대우자동차(주) 영국 워딩 자동차 기술연구소 건립.
  • 1994년 6월 대우중공업 영국현지법인 유로 대우 UK 설립.
  • 1994년 10월 대우중공업(주) 대우조선공업 흡수 합병. 중국현지법인 대우중공업연대유한공사 설립.
  • 1994년 11월 루마니아 자동차합작공장 DAEWOO-RODAE 설립. 대우중공업(주) 러시아 기술연구소 DISK 설립.
  • 1995년 1월 대우중공업(주) 독일 현지법인 ECO 설립. 대우전자(주) 말레이시아 세탁기 공장 설립. 대우뱅크 출범.
  • 1995년 2월 대우중공업(주) 일본 현지법인 대우건기 설립.
  • 1995년 3월 체코 최대 국영상용차업체 AVIA사 인수. 대우증권(주) 홍콩현지법인 설립.
  • 1995년 4월 대우증권(주) 상해사무소 개설.
  • 1995년 5월 대한민국 기업 최초, 대북 협력사업 정부승인 획득.
  • 1995년 6월 다이너스카드사 인수.
  • 1995년 7월 동우개발(주)의 사명을 (주)대우개발로 변경.
  • 1995년 9월 베트남 하노이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우즈벡 공화국에 교환기합작공장 알로카대우 설립.
  • 1995년 10월 중국천진 팩스밀리 합작공장 설립.
  • 1995년 11월 베트남 최초 타포린 합작생산 공장 준공. 폴란드 최대 자동차기업 FSO 인수, DAEWOO-FSO 출범.
  • 1996년 3월 대우증권(주) 싱가폴사무소 개설. 루마니아 DAEWOO-RODAE 공장 준공.
  • 1996년 5월 남북경협 최초회사 민족산업총회사 남포에 설립. 앙골라 대규모 유전발견.
  • 1996년 6월 프랑스 롱위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인도뉴델리 첨단 소프트웨어 연구개발센타 설립. 페루육상 유전인수 입찰수주.
  • 1996년 7월 한진투자증권 합작 법인 서울투신운용(주) 설립. 우크라이나 대용량교환기 합작공장 드니프로-대우 설립.
  • 1996년 10월 대우증권(주) 동경지점 개점. UZ-Daewoo 자동차 공장 준공. 베트남 비담코 자동차 공장 준공.
  • 1996년 11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중국 광케이블 합작회사 우시-대우 설립. 루마니아 합작은행 설립.
  • 1997년 3월 우즈베키스탄 대우은행 (Uz-Daewoo Bank) 설립.
  • 1997년 4월 인도 종합 가전공장 설립. 군산 종합 자동차공장 준공.
  • 1997년 5월 인도 CRB증권 대우파이낸스로 상호 변경. 대우선물(주) 설립.
  • 1997년 6월 대우증권(주) 싱가포르 현지법인 설립.
  • 1997년 7월 대우리스 체코에 설립.
  • 1997년 9월 대우자동차(주) 우크라이나 합작공장 설립계약 체결.
  • 1997년 12월 한국전기초자(주) 인수.

해체

대우는 세계경영으로 철저히 현지화를 추구함으로써 1993년 당시 150여개에 불과했던 대한민국 외 국가 현지법인을 1998년 11월에는 396개로 끌어올리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대우는 1997년 다가온 경제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물로 나온 쌍용자동차(주)를 인수하여 소형차에서 대형차는 물론, 버스와 트럭, 사륜구동 SUV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차량을 생산하는 풀라인업을 완성시키고 그 밖에도 해외 현지공장 인수 및 확장을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대우는 1998년 삼성(三星)을 제치고 재계서열 2위까지 뛰어오른다.

  • 1998년 3월 30일 대우자동차(주), 쌍용자동차(주) 인수.
  • 1998년 5월 스페인 냉장고 공장 설립.
  • 1998년 6월 우크라이나 자동차 법인 AUTOZAZ-DAEWOO 공장 본격 가동.
  • 1998년 7월 미국 Fortune 선정 매출 500대 기업 중 세계 18위의 기업으로 도약.
  • 1998년 10월 대우중공업(주) 이집트공장 준공.
  • 1998년 11월 무역의 날 150억불 수출의 탑 수상.

그러나 경기침체의 장기화와 세계 시장의 위축으로 대우의 입지는 크게 흔들렸고, 개발도상국가 위주로 판매망을 확대해온 대우자동차의 부진이 거듭되었다. 경영여건이 안정되지 못한 상황에서 추진한 쌍용자동차의 인수도 큰 실익을 거두지 못하였고, 외형확대의 초점을 맞추어 경영해오다보니 당시 정부가 요구했던 구조조정에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오다보니 구조조정의 실시가 경쟁 그룹에 비해 늦은 편이었다. 정부 주도의 산업체계 개편에 따라 늦게나마 추진한 대우전자-삼성자동차 빅딜협상은 양사간 입장차이로 끝내 결렬되었으며, 1999년 여름에 접어들면서 그룹의 운명을 좌우할 대우와 GM과의 협상(대우차와의 경영권 문제)마저도 실패한 대우는 급속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자금난이 가중되던 대우는 알짜자산인 힐튼호텔 매각 등을 성사시키기도 하지만 1999년 3월에는 이미 부채 비율을 무려 400%를 훨씬 넘은 상태여서 수습이 어려운 지경이었다. 7월 대우는 초고강도 구조조정안을 발표하였으나 채권단은 이를 반려한다. 결국 대우는 1999년 8월 16일 채권단의 재무구조개선수정약정 체결과 더불어, 26일 채권단 관리하에 워크아웃을 맞이함으로써 그룹 해체의 길로 접어든다. 지난 1967년 창업 이래 32년간 대한민국에 경쟁성장의 견인차로 역할을 해오던 기업 중 하나로서, 1993년 세계경영을 선포한지 6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 1998년 11월 대우그룹 1차 구조조정안 발표.
  • 1998년 12월 대우전자(주) 및 삼성자동차(주) 빅딜 발표. (사업맞교환)
  • 1999년 4월 19일 대우 2차 구조조정안 발표. (대우 조선, 상용차, 힐튼호텔 등 매각)
  • 1999년 6월 30일 삼성자동차 워크아웃 돌입.
  • 1999년 7월 16일 대우그룹 구조조정안 발표. (자동차 전문그룹으로의 재탄생)
  • 1999년 8월 3일 제일은행 등 채권단 구조조정안 반려.
  • 1999년 8월 16일 대우 채권단, 재무구조개선수정약정 체결.
  • 1999년 8월 26일 (주)대우, 대우중공업(주), 대우자동차(주), 대우전자(주) 등 12개 회사 워크아웃 돌입.
  • 1999년 8월 30일 대우증권(주) 계열 분리, 채권단으로 이양.
  • 1999년 10월 김우중 회장, 중국 옌타이 대우자동차 부품공장 준공식 참석.
  • 1999년 11월 1일 대우 회장 및 대우그룹 사장단 퇴진.
  • 2000년 4월 15일 대규모기업집단 지정 제외.

한 때 세계 경영의 첨병으로 불렸던 대우의 몰락은 경제계에 큰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대우사태는 당대 큰 기업은 절대 흥한다는 '대마불사'의 신화를 깨고 차입경영을 일삼는 부실기업을 과감하게 퇴출시킨 사례로 건실한 기업풍토 조성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이 있는 반면, 대우가 밝혀지지 않은 요인(정치적 문제 또는 국제적 외압)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여론도 일부 존재하고 있어 지금도 눈길을 끈다.

구 대우그룹 계열사

현재 대우의 계열사들은 그룹 해체 후 자립 혹은 새로운 기업의 인수를 통해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그룹이 해체된 이후에도 포스코대우, 대우건설, 대우조선해양 등 몇몇 회사들은 여전히 대우의 이름을 유지하며 성공적으로 영업 중이다.

자동차 사업

대우가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자동차 사업은 1997년 신차 출시, 1998년 쌍용자동차 인수에 따른 사세 확장으로 대한민국 시장에서 호조를 거두었으나 부채 누적으로 인한 만성적인 적자로, 대우그룹 핵심 계열사들이 워크아웃에 돌입하면서 완전히 공중분해되고 말았다.

대우자동차(주)는 포드, 제너럴 모터스(GM) 등 두 양사간의 해외 매각 의사를 타진하였으나 최종적으로 협상이 모두 결렬되었으며, 대우자동차(주)는 경영 정상화 실패로 인해 2000년 11월 10일인천지방법원에 법정관리(정리절차) 개시 신청을 냈고, 노사가 극적으로 노사협의회 합의문에 합의한 후, 회사 측의 자구의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여, 법정관리 개시 결정이 내려졌다.

대우자동차는 GM 매각을 위한 구조조정 계획의 일환으로, 9992억 원의 자구계획을 마련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가 인력을 7300여 명 줄이고 재료비, 경상비, 투자비 등을 대폭 감축했으며, 부평공장 생산직 직원 1750명이 강제로 거리로 내몰리는 역대 최대 규모의 정리해고가 김대중 정부 출범 당시에 근로기준법 개정 이후, 2001년 2월초에 단행되기도 했다.

미국 GM이 2001년 6월초에 대우차 인수 의향서를 제출하여, 이듬해인 2002년 10월 28일에 GM대우(현 한국지엠)라는 외국계 기업으로 새롭게 출범했고, 대한민국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확대에 실패하여 고전을 계속하였던 GM대우는 글로벌 GM의 전략적 요충지로 키우기 위해서 2011년 1월 쉐보레 브랜드로의 흡수 통합을 선언하였으며, 2011년 한국GM(주)가 새롭게 출범하였다.

GM이 인수하지 않은 버스부문, 상용차부문, 부평공장은 대우버스(주), 대우상용차(주), 대우인천자동차(주)로 분할, 매각되었다.

대우자동차(주)의 버스부문인 대우버스(주)는 영안모자에 매각되었고, 트럭을 생산하는 상용차 부문은 인도 최대의 재벌인 타타(TATA)에 매각되어 타타대우상용차(주)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대우그룹 시절 대우자동차와의 합병을 계획하였던 쌍용자동차(주)는 대우그룹의 구조조정 당시 대우차와의 분리 매각이 결정되면서 2000년 4월 대우 계열에서 정식으로 분리되었다. 후에 쌍용자동차(주)는 2005년 중국 국영자동차회사인 상하이자동차 그룹에 인수되어, 미국발 금융 위기로 인한 판매 부진이 계속 거듭되면서 2009년 쌍용자동차(주)의 경영권을 포기하고 한국 시장에 철수하였다. 2009년 쌍용자동차(주)는 법정관리 체제에 들어갔으며, 구조조정에 따른 대규모 정리해고 사태로 노사간의 첨예한 대립까지 위태로울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다가 2010년 말 인도의 마힌드라 자동차에 인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건설, 무역

1999년 워크아웃으로 (주)대우지스틱스가 먼저 분사되었으며, 2000년 12월 모기업 (주)대우가 3개사로 재탄생한다. 청산을 위한 (주)대우 존속법인과 무역부문의 (주)대우인터내셔널, 건설부문의 (주)대우건설로 나뉜다.

(주)대우인터내셔널은 대우의 모태사업인 무역은 물론 백화점 등 사업도 하고 있다. 2010년 포스코에 인수되었고, 지금의 포스코대우로 재출범한다. 백화점 사업은 2014년 롯데쇼핑(주)에서 인수하여 롯데백화점 마산점이 되었다.

(주)대우건설은 워크아웃을 단기에 졸업했으며 2006년 12월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인수되었다. 그러나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무리한 인수합병으로 인한 후유증에 세계 금융위기까지 겪으며 극심한 자금난을 겪자, 2010년 (주)대우건설에 대한 경영권을 포기하였고, 2011년 1월에 금호아시아나 계열에서 정식으로 분리되었다. 현재 최대주주는 한국산업은행이다.

대우그룹의 또다른 건설회사였던 경남기업(주)는 성완종이 이끄는 충남지역 건설사인 대아건설(주)에 인수되었다가 2004년에 대아건설(주)을 합병하면서 국내 10위권의 대형 건설사로 성장가도를 달린다. 2009년 대한민국 건설사들의 잇따른 경영난으로 워크아웃을 재차 겪지만, 실적 개선 등에 힘입어 2011년 5월 워크아웃을 졸업하는데 성공한다. 2015년 하지만 건설업계 불황이 장기화되고 기업의 오너(Owner)인 성완종이 자원외교비리수사에 연루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2015년 4월 마침내 경남기업은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만다. 2017년 sm그룹이 인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중공업, 조선

2000년 대우중공업(주)도 대우종합기계(주), 대우조선공업(주) 그리고 대우중공업(주) 잔존법인으로 분할되었다.

주력부문이었던 중장비 및 군수물자 생산을 담당하는 대우종합기계(주)는 2005년두산 계열로 편입, 두산인프라코어(주)로 재탄생하였다.

대우중공업의 조선해양부문은 대우조선공업 주식회사로 분사되었다가 곧 대우조선해양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한다. 2000년대 조선업계의 호황으로 대우의 계열사 중 가장 먼저 워크아웃을 졸업한 회사로도 주목받았고, 조선업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을 기반으로 건설, 상조사업 등에도 진출하며 자체적으로 조선사업 중심의 기업집단을 일구었다. 2000년 출범한 이래 수년간 경쟁업체인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과 함께 선박 수주잔량으로 세계 수위권을 다투왔지만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변곡점으로 대우조선해양은 2010년대 중반에 이르러 조선업황의 악화로 존폐의 기로에 놓여있는 상태이다.

대우중공업이 3개사로 분할되기 전인 1999년 7월에는 철도차량 생산부문이 경쟁사인 현대정공(주), 한진중공업(주)와 함께 현물출자 형식으로 단일법인을 설립함으로써 국내 유일의 철차제작업체인 한국철도차량주식회사가 탄생하였다. 하지만 대우종합기계(주)가 승계받은 한국철도차량(주)의 지분은 경영정상화를 위해 2001년현대자동차그룹에 전량 매각됨으로써 주식회사 로템(現 현대로템(주))으로 재출범한다.

대우중공업(주)의 항공사업부문도 1999년 8월삼성항공산업(주), 현대우주항공(주)과 통합하여 새로이 한국항공우주산업(주)로 출범하였지만, 대우중공업의 지분을 인계받은 두산그룹의 DIP홀딩스에서는 2016년 한국항공우주산업의 보유지분을 전부 정리하였다.

전자, 통신

한때 세계 각국의 생산기지를 설치하며 세계적인 전자기업을 표방해 오던 대우전자(주)는 1999년 워크아웃 대상기업으로 지정되었고, 2000년 4월 대우전자 중심의 기업집단을 구축하고 비수익 사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피아노 사업을 담당하는 벨로체, 컴퓨터 사업을 담당하는 대우루컴즈, 가스보일러 사업을 담당하는 대우가스보일러 등이 독립된 업체로 분리되었다. 2002년 대우전자의 TV, 백색가전 등 주력 핵심사업부문이 대부분 대우모터공업 주식회사로 인계되어 이듬해인 2003년에 (주)대우일렉트로닉스로 재출범하였다. 이후에도 2008년 대우디스플레이 등이 분리되어 대우일렉트로닉스는 사실상 백색가전 전문업체가 되었다. 2013년 동부그룹이 인수함으로써 동부대우전자 주식회사로 이름이 바뀌다가 2018년 대유그룹이 인수하여 주식회사 대우전자로 부활하였다. 2019년 주식회사 위니아대우 로 이름이 바꿔다가 2020년 주식회사 위니아전자로 이름이 바꿨다.

대우전자부품도 1999년 대우그룹 구조조정으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대상으로 지정되었다. 2000년 4월 대우그룹에서 분리되었다.2008년 회생절차개시 결정을 받았고, 2010년 2월 회생절차 종결 결정을 받았다. 그 후 현대자동차의 1차 협력그룹인 아진그룹이 인수했다.

대우통신(주)은 정상화를 위해 통신 관련사업부문을 매각하여 컴퓨터사업은 대우컴퓨터에 양도하였으며 그밖에 사업부문은 대우텔레텍, 대우글로벌 그리고 1999년 합병된 대우정밀공업 계열의 업체들은 대우정밀, 대우파워트레인, 대우프라스틱 등으로 분사되었다.

대우정밀(주)은 에스엔티(S&T그룹)에 인수되어 현재 S&T모티브로 운영 중이며 대우파워트레인(주)은 GM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컴퍼니(지금의 한국지엠주식회사)에 매각되었고, 대우프라스틱(주)는 삼라마이다스그룹(SM그룹)으로 매각된 후 대우라이프(주)로 바뀌었다가 계열사인 남선알미늄(주)에 합병되었다.

전자 계열사였던 오리온전기(주), 한국전기초자(주), 광전자(주) 등도 워크아웃을 맞아 자취를 감추거나 독자생존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금융

대우증권(주)는 1999년 대우가 해체되기 전 채권단이 인수하였으며 후에 대주주가 한국산업은행으로 변경된다. 2009년에는 한국산업은행의 민영화에 따라 새로이 출범한 KDB금융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2015년에는 미래에셋금융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2001년 8월 (주)다이너스카드클럽코리아는 현대자동차(주)에 매각되어 현대카드(주)로 변경되었다.

대우캐피탈(주)는 아주그룹에 편입되어 아주캐피탈(주)로 바뀌었다.

스포츠

대우그룹에서 운영 중이던 부산 대우 로얄즈현대산업개발에 매각, 인천 대우 제우스신세기통신에 매각되고 인천 신세기 빅스로 변경하며 현재 부산 아이파크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미디어

케이블 채널 중에서 대우시네마네트워크는 동양그룹에 매각되어 OCN(현재 CJ 산하)으로 변경되었다.

같이 보기

건설, 무역

자동차

중공업

전자

금융

기타

  • 대우엔지니어링 → 포스코엔지니어링 (1990년 계열 분리 → 2002년 포스코에 인수)
  • 신성통상 (1984년 계열 분리 → 2002년 가나안에서 인수)
  • 대창기업
  • (주)고려 → SG고려 (구 고려피혁공업주식회사 → 2003년 (주)가로수닷컴에 인수)
  • 세계물산 → SG위카스 → SG세계물산 (2002년 SK글로벌에 인수 → 2005년 (주)가로수닷컴에 인수)
  • 대우시네마네트워크 → (주)오리온시네마네트워크 (1999년 동양그룹에 인수되어 별도법인인 온미디어 설립 → 2010년 CJ에 인수 → 2013년 CJ ENM에 흡수 합병)
  • 부산 대우 로얄즈 → 부산 아이파크 (2000년 현대산업개발에 인수)
  • 인천 대우 제우스 → 인천 신세기 빅스 (1999년 신세기통신에 인수)

외부 링크

각주

  1. 대우그룹, 쌍용自인수로 재계순위‘3위’《문화일보》1997년 12월 9일 김병직 기자

대우그룹
Daewoo Group
형태대기업집단(1989년~1999년)
창립1967년 3월 22일 (대우실업 주식회사)
창립자김우중(대표이사 회장)
산업 분야자동차, 전자, 조선, 건설
해체1999년 11월 1일
본사 소재지대우센터빌딩(1977년~1999년)
사업 지역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핵심 인물
김우중(대표이사 회장)
매출액분식회계로 정확히 추산불가
영업이익
-4조원(1999년 기준)
자산총액자본 약 15조 부채 89조
주요 주주김우중
모기업(주)대우
계열사대우전자, 대우건설, 대우자동차, 대우조선, 대우증권, 쌍용자동차
자본금5,000,000원(1967년 기준)

대우그룹(大宇─, Daewoo Group)은 1967년 창립한 대우실업을 모태로 1980년대부터 1990년대 말까지 존재한 대한민국의 대규모 기업집단이었다.[1] 대도섬유의 대(大)와 김우중의 우(宇)를 따서 만들었다. 섬유·무역·건설·조선·중장비·자동차·전자·통신·관광·금융 등 여러 사업부문을 두었으며, 1993년 세계경영 전략 채택 이후 강력한 외형확장으로 사세를 넓혀갔고 1998년에는 현대그룹에 이어 재계 2위에 올랐으나 외환위기 이후, 자체 구조조정 실패와 1999년 삼성과의 전자-자동차 빅딜 실패로 1999년 10월부터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그룹 해체를 맞았다.

기업연혁

과거 대우그룹의 본사였던 서울스퀘어.

대우는 1967년 소규모 사업체로 창업하였으나, 1970년대 경제성장 및 수출호조에 따른 비약적인 발전, 그리고 정부 주도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에 힘입어 단기간에 대한민국 최대기업으로서 성장을 이루게 된다. 대우는 1980년대 후반부터 대한민국 외 국가로 눈을 돌려 동유럽 및 신흥시장 개척을 추진해 왔고, 1993년 세계경영에 나서면서 사세확장을 시도하였다. 이후 외환위기 속에서도 1997년 법정관리에 들어간 쌍용자동차를 인수하였다. 98년 상반기에는 현대그룹에 이은 (자산총액기준) 재계 2위에 올랐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출범이후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자체적 구조조정 실패와 무리한 차입금이 발목을 잡았고 1998년 10월, 대우그룹이 신청한 기업어음(CP)발행이 중단되면서 그룹 위기가 찾아왔다. 1999년이 되면서 삼성그룹과의 대우전자-삼성자동차의 빅딜협상에 들어갔으나 동년 7월, 협상이 결렬되었다. 이후 김우중 회장은 자동차를 중심으로 그룹 구조조정에 뒤늦게 들어갔으나 대우그룹 채권단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1999년 10월, 그룹 해체 수순을 밟았다.

성장

1967년 대우실업 창립 이래, 부산에 공장을 설치하여 1970년대 와이셔츠 등의 봉제품 및 섬유제품의 수출호조와 더불어 경제고도성장으로 급속한 발전을 이루어 신흥 사업체로 주목받았고, 더욱이 정부가 주도하던 경제 정책에 발맞춰 금융, 전자, 중공업, 자동차 사업에도 뛰어들면서 대우 그룹을 형성하게 된다.

  • 1967년 3월 22일 모태인 대우실업(주)(대우가족) 창립. (섬유류 봉제품 생산, 수출 주도)
  • 1969년 8월 대한민국 기업 해외지사 1호 시드니에 개설.
  • 1971년 9월 (주)내쇼날의류 설립.
  • 1972년 9월 고려피혁(주) 인수.
  • 1973년 쌍미섬유공업(주) 인수. 대우증권의 전신 동양증권(주) 인수. 대우건설(주) 설립.
  • 1975년 2월 대우빌딩 착공.
  • 1975년 5월 대우실업(주), 종합무역상사 지정.
  • 1976년 2월 한국기계공업(주) 인수. 10월 해외건설업면허 취득. 대우중공업(주) 출범.
  • 1977년 대우센터 빌딩 준공. 8월 제철화학(주) 경영권 인수.
  • 1978년 7월 산업은행으로부터 새한자동차(주) 지분 인수. 대한조선공사 옥포조선소 인수 후 9월 대우조선공업(주) 설립.

도약기

대우 그룹은 (주)대우의 출범과 새한자동차 경영권 장악, 가전사업 진출을 잇달아 성사시키며 현대(現代), 삼성(三星), 럭키금성(LG)과 함께 대한민국 4대 기업군으로 성장한다. 국내 업체들과의 출혈 경쟁에서 기술력과 수익성의 한계를 느낀 대우는 세계로 눈을 돌려 냉전체제의 완화가 도래한 시점에 동유럽 및 공산권 국가에 현지법인을 설립하면서 신시장 개척을 준비하였다.

  • 1981년 10월 옥포조선소 준공. 수출의날 15억불탑 수상. 대우실업(주) 및 대우개발(주) 합병 결의.
  • 1982년 모기업 (주)대우 출범. 수출의날 20억불탑 수상.
  • 1983년 대우자동차(주) 출범. 대우전자(주)에서 대한전선(주)의 가전부문을 흡수. 대우통신(주) 설립.
  • 1984년 경남기업(주) 경영 참여. (주)대우경제연구소 설립. 10월 대우자동차부품(주) 설립. 대한민국 최초 VTR 수출.
  • 1986년 대우증권 런던사무소 개설. 9월 경남기업(주) 계열 편입.
  • 1987년 미얀마 현지 철도차량공장 준공.
  • 1988년 (주)대우 동베를린지사 설치. 대우투자자문(주) 설립. 프랑스 롱위 전자레인지 공장 건립. 대우증권 홍콩사무소 개설.
  • 1989년 제철화학 외 3개사 매각. 대우정보시스템 설립. 대우기전공업㈜ 출범. MHB-Daewoo Bank 설립.
  • 1990년 (주)대우 모스크바지사 설치. 대우중공업(주) 유럽현지법인 설립. 멕시코 컬러TV 공장 건립.
  • 1991년 (주)대우 북경지사 설치. 대우증권(주) 유럽현지법인 설립, 취리히사무소 개설.
  • 1992년 4월 佛 컬러TV 공장 건립. 佛 컴퓨터 판매법인 설립. 대우증권 美 현지법인 설립. 대우차-GM 제휴관계 청산.

팽창기

(주)대우가 구축한 세계무역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대우자동차(주), 대우중공업(주), 대우전자(주)가 국제적으로 널리 진출하는 '세계경영'은 1993년 '세계경영 우리기술' 슬로건 선포를 시점으로 본격화되었다. 대우가 당시 내세웠던 세계경영은 선진업체가 진출하지 않은 옛 공산권 국가와 앞으로 발전가능성이 무한한 개발도상국 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것으로, 현지법인 설립과 인수합병을 통해 단기간에 정착하여 사세확장을 꾀하는 형태이다. 실제로 대우가 진출을 시도한 개발도상국가의 정부에서는 자국의 경제활성화 목적에서 대우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기에, 대우의 사업확장은 더욱 쉽게 이뤄질 수 있었다. 대한민국 시장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대우자동차(주)의 경우는 대한민국 외 국가에서 판매하는 수량이 대한민국에서 판매하는 수량을 앞지르는 현상을 가져오기도 했다. 이같은 대우의 급속한 성장은 대한민국 경제계와 대한민국 외 국가 경제에 큰 반향을 가져다 주었다.

  • 1993년 1월 대우자판 설립.
  • 1993년 2월 베트남 합작은행 출자.
  • 1993년 3월 세계경영 선포.
  • 1993년 5월 우즈벡 가전 공장 설립.
  • 1993년 7월 대우중공업(주) 미국현지법인 DEC 설립.
  • 1993년 8월 폴란드 TV 공장 설립.
  • 1993년 9월 세계최초 공기방울 세탁기 개발.
  • 1994년 2월 대우할부금융 설립.
  • 1994년 3월 인도 합작증권사 CRB-Daewoo Securities Ltd 출자.
  • 1994년 5월 대우자동차(주) 영국 워딩 자동차 기술연구소 건립.
  • 1994년 6월 대우중공업 영국현지법인 유로 대우 UK 설립.
  • 1994년 10월 대우중공업(주) 대우조선공업 흡수 합병. 중국현지법인 대우중공업연대유한공사 설립.
  • 1994년 11월 루마니아 자동차합작공장 DAEWOO-RODAE 설립. 대우중공업(주) 러시아 기술연구소 DISK 설립.
  • 1995년 1월 대우중공업(주) 독일 현지법인 ECO 설립. 대우전자(주) 말레이시아 세탁기 공장 설립. 대우뱅크 출범.
  • 1995년 2월 대우중공업(주) 일본 현지법인 대우건기 설립.
  • 1995년 3월 체코 최대 국영상용차업체 AVIA사 인수. 대우증권(주) 홍콩현지법인 설립.
  • 1995년 4월 대우증권(주) 상해사무소 개설.
  • 1995년 5월 대한민국 기업 최초, 대북 협력사업 정부승인 획득.
  • 1995년 6월 다이너스카드사 인수.
  • 1995년 7월 동우개발(주)의 사명을 (주)대우개발로 변경.
  • 1995년 9월 베트남 하노이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우즈벡 공화국에 교환기합작공장 알로카대우 설립.
  • 1995년 10월 중국천진 팩스밀리 합작공장 설립.
  • 1995년 11월 베트남 최초 타포린 합작생산 공장 준공. 폴란드 최대 자동차기업 FSO 인수, DAEWOO-FSO 출범.
  • 1996년 3월 대우증권(주) 싱가폴사무소 개설. 루마니아 DAEWOO-RODAE 공장 준공.
  • 1996년 5월 남북경협 최초회사 민족산업총회사 남포에 설립. 앙골라 대규모 유전발견.
  • 1996년 6월 프랑스 롱위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인도뉴델리 첨단 소프트웨어 연구개발센타 설립. 페루육상 유전인수 입찰수주.
  • 1996년 7월 한진투자증권 합작 법인 서울투신운용(주) 설립. 우크라이나 대용량교환기 합작공장 드니프로-대우 설립.
  • 1996년 10월 대우증권(주) 동경지점 개점. UZ-Daewoo 자동차 공장 준공. 베트남 비담코 자동차 공장 준공.
  • 1996년 11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중국 광케이블 합작회사 우시-대우 설립. 루마니아 합작은행 설립.
  • 1997년 3월 우즈베키스탄 대우은행 (Uz-Daewoo Bank) 설립.
  • 1997년 4월 인도 종합 가전공장 설립. 군산 종합 자동차공장 준공.
  • 1997년 5월 인도 CRB증권 대우파이낸스로 상호 변경. 대우선물(주) 설립.
  • 1997년 6월 대우증권(주) 싱가포르 현지법인 설립.
  • 1997년 7월 대우리스 체코에 설립.
  • 1997년 9월 대우자동차(주) 우크라이나 합작공장 설립계약 체결.
  • 1997년 12월 한국전기초자(주) 인수.

해체

대우는 세계경영으로 철저히 현지화를 추구함으로써 1993년 당시 150여개에 불과했던 대한민국 외 국가 현지법인을 1998년 11월에는 396개로 끌어올리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대우는 1997년 다가온 경제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물로 나온 쌍용자동차(주)를 인수하여 소형차에서 대형차는 물론, 버스와 트럭, 사륜구동 SUV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차량을 생산하는 풀라인업을 완성시키고 그 밖에도 해외 현지공장 인수 및 확장을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대우는 1998년 삼성(三星)을 제치고 재계서열 2위까지 뛰어오른다.

  • 1998년 3월 30일 대우자동차(주), 쌍용자동차(주) 인수.
  • 1998년 5월 스페인 냉장고 공장 설립.
  • 1998년 6월 우크라이나 자동차 법인 AUTOZAZ-DAEWOO 공장 본격 가동.
  • 1998년 7월 미국 Fortune 선정 매출 500대 기업 중 세계 18위의 기업으로 도약.
  • 1998년 10월 대우중공업(주) 이집트공장 준공.
  • 1998년 11월 무역의 날 150억불 수출의 탑 수상.

그러나 경기침체의 장기화와 세계 시장의 위축으로 대우의 입지는 크게 흔들렸고, 개발도상국가 위주로 판매망을 확대해온 대우자동차의 부진이 거듭되었다. 경영여건이 안정되지 못한 상황에서 추진한 쌍용자동차의 인수도 큰 실익을 거두지 못하였고, 외형확대의 초점을 맞추어 경영해오다보니 당시 정부가 요구했던 구조조정에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오다보니 구조조정의 실시가 경쟁 그룹에 비해 늦은 편이었다. 정부 주도의 산업체계 개편에 따라 늦게나마 추진한 대우전자-삼성자동차 빅딜협상은 양사간 입장차이로 끝내 결렬되었으며, 1999년 여름에 접어들면서 그룹의 운명을 좌우할 대우와 GM과의 협상(대우차와의 경영권 문제)마저도 실패한 대우는 급속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자금난이 가중되던 대우는 알짜자산인 힐튼호텔 매각 등을 성사시키기도 하지만 1999년 3월에는 이미 부채 비율을 무려 400%를 훨씬 넘은 상태여서 수습이 어려운 지경이었다. 7월 대우는 초고강도 구조조정안을 발표하였으나 채권단은 이를 반려한다. 결국 대우는 1999년 8월 16일 채권단의 재무구조개선수정약정 체결과 더불어, 26일 채권단 관리하에 워크아웃을 맞이함으로써 그룹 해체의 길로 접어든다. 지난 1967년 창업 이래 32년간 대한민국에 경쟁성장의 견인차로 역할을 해오던 기업 중 하나로서, 1993년 세계경영을 선포한지 6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 1998년 11월 대우그룹 1차 구조조정안 발표.
  • 1998년 12월 대우전자(주) 및 삼성자동차(주) 빅딜 발표. (사업맞교환)
  • 1999년 4월 19일 대우 2차 구조조정안 발표. (대우 조선, 상용차, 힐튼호텔 등 매각)
  • 1999년 6월 30일 삼성자동차 워크아웃 돌입.
  • 1999년 7월 16일 대우그룹 구조조정안 발표. (자동차 전문그룹으로의 재탄생)
  • 1999년 8월 3일 제일은행 등 채권단 구조조정안 반려.
  • 1999년 8월 16일 대우 채권단, 재무구조개선수정약정 체결.
  • 1999년 8월 26일 (주)대우, 대우중공업(주), 대우자동차(주), 대우전자(주) 등 12개 회사 워크아웃 돌입.
  • 1999년 8월 30일 대우증권(주) 계열 분리, 채권단으로 이양.
  • 1999년 10월 김우중 회장, 중국 옌타이 대우자동차 부품공장 준공식 참석.
  • 1999년 11월 1일 대우 회장 및 대우그룹 사장단 퇴진.
  • 2000년 4월 15일 대규모기업집단 지정 제외.

한 때 세계 경영의 첨병으로 불렸던 대우의 몰락은 경제계에 큰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대우사태는 당대 큰 기업은 절대 흥한다는 '대마불사'의 신화를 깨고 차입경영을 일삼는 부실기업을 과감하게 퇴출시킨 사례로 건실한 기업풍토 조성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이 있는 반면, 대우가 밝혀지지 않은 요인(정치적 문제 또는 국제적 외압)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여론도 일부 존재하고 있어 지금도 눈길을 끈다.

구 대우그룹 계열사

현재 대우의 계열사들은 그룹 해체 후 자립 혹은 새로운 기업의 인수를 통해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그룹이 해체된 이후에도 포스코대우, 대우건설, 대우조선해양 등 몇몇 회사들은 여전히 대우의 이름을 유지하며 성공적으로 영업 중이다.

자동차 사업

대우가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자동차 사업은 1997년 신차 출시, 1998년 쌍용자동차 인수에 따른 사세 확장으로 대한민국 시장에서 호조를 거두었으나 부채 누적으로 인한 만성적인 적자로, 대우그룹 핵심 계열사들이 워크아웃에 돌입하면서 완전히 공중분해되고 말았다.

대우자동차(주)는 포드, 제너럴 모터스(GM) 등 두 양사간의 해외 매각 의사를 타진하였으나 최종적으로 협상이 모두 결렬되었으며, 대우자동차(주)는 경영 정상화 실패로 인해 2000년 11월 10일인천지방법원에 법정관리(정리절차) 개시 신청을 냈고, 노사가 극적으로 노사협의회 합의문에 합의한 후, 회사 측의 자구의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여, 법정관리 개시 결정이 내려졌다.

대우자동차는 GM 매각을 위한 구조조정 계획의 일환으로, 9992억 원의 자구계획을 마련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가 인력을 7300여 명 줄이고 재료비, 경상비, 투자비 등을 대폭 감축했으며, 부평공장 생산직 직원 1750명이 강제로 거리로 내몰리는 역대 최대 규모의 정리해고가 김대중 정부 출범 당시에 근로기준법 개정 이후, 2001년 2월초에 단행되기도 했다.

미국 GM이 2001년 6월초에 대우차 인수 의향서를 제출하여, 이듬해인 2002년 10월 28일에 GM대우(현 한국지엠)라는 외국계 기업으로 새롭게 출범했고, 대한민국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확대에 실패하여 고전을 계속하였던 GM대우는 글로벌 GM의 전략적 요충지로 키우기 위해서 2011년 1월 쉐보레 브랜드로의 흡수 통합을 선언하였으며, 2011년 한국GM(주)가 새롭게 출범하였다.

GM이 인수하지 않은 버스부문, 상용차부문, 부평공장은 대우버스(주), 대우상용차(주), 대우인천자동차(주)로 분할, 매각되었다.

대우자동차(주)의 버스부문인 대우버스(주)는 영안모자에 매각되었고, 트럭을 생산하는 상용차 부문은 인도 최대의 재벌인 타타(TATA)에 매각되어 타타대우상용차(주)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대우그룹 시절 대우자동차와의 합병을 계획하였던 쌍용자동차(주)는 대우그룹의 구조조정 당시 대우차와의 분리 매각이 결정되면서 2000년 4월 대우 계열에서 정식으로 분리되었다. 후에 쌍용자동차(주)는 2005년 중국 국영자동차회사인 상하이자동차 그룹에 인수되어, 미국발 금융 위기로 인한 판매 부진이 계속 거듭되면서 2009년 쌍용자동차(주)의 경영권을 포기하고 한국 시장에 철수하였다. 2009년 쌍용자동차(주)는 법정관리 체제에 들어갔으며, 구조조정에 따른 대규모 정리해고 사태로 노사간의 첨예한 대립까지 위태로울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다가 2010년 말 인도의 마힌드라 자동차에 인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건설, 무역

1999년 워크아웃으로 (주)대우지스틱스가 먼저 분사되었으며, 2000년 12월 모기업 (주)대우가 3개사로 재탄생한다. 청산을 위한 (주)대우 존속법인과 무역부문의 (주)대우인터내셔널, 건설부문의 (주)대우건설로 나뉜다.

(주)대우인터내셔널은 대우의 모태사업인 무역은 물론 백화점 등 사업도 하고 있다. 2010년 포스코에 인수되었고, 지금의 포스코대우로 재출범한다. 백화점 사업은 2014년 롯데쇼핑(주)에서 인수하여 롯데백화점 마산점이 되었다.

(주)대우건설은 워크아웃을 단기에 졸업했으며 2006년 12월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인수되었다. 그러나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무리한 인수합병으로 인한 후유증에 세계 금융위기까지 겪으며 극심한 자금난을 겪자, 2010년 (주)대우건설에 대한 경영권을 포기하였고, 2011년 1월에 금호아시아나 계열에서 정식으로 분리되었다. 현재 최대주주는 한국산업은행이다.

대우그룹의 또다른 건설회사였던 경남기업(주)는 성완종이 이끄는 충남지역 건설사인 대아건설(주)에 인수되었다가 2004년에 대아건설(주)을 합병하면서 국내 10위권의 대형 건설사로 성장가도를 달린다. 2009년 대한민국 건설사들의 잇따른 경영난으로 워크아웃을 재차 겪지만, 실적 개선 등에 힘입어 2011년 5월 워크아웃을 졸업하는데 성공한다. 2015년 하지만 건설업계 불황이 장기화되고 기업의 오너(Owner)인 성완종이 자원외교비리수사에 연루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2015년 4월 마침내 경남기업은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만다. 2017년 sm그룹이 인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중공업, 조선

2000년 대우중공업(주)도 대우종합기계(주), 대우조선공업(주) 그리고 대우중공업(주) 잔존법인으로 분할되었다.

주력부문이었던 중장비 및 군수물자 생산을 담당하는 대우종합기계(주)는 2005년두산 계열로 편입, 두산인프라코어(주)로 재탄생하였다.

대우중공업의 조선해양부문은 대우조선공업 주식회사로 분사되었다가 곧 대우조선해양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한다. 2000년대 조선업계의 호황으로 대우의 계열사 중 가장 먼저 워크아웃을 졸업한 회사로도 주목받았고, 조선업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을 기반으로 건설, 상조사업 등에도 진출하며 자체적으로 조선사업 중심의 기업집단을 일구었다. 2000년 출범한 이래 수년간 경쟁업체인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과 함께 선박 수주잔량으로 세계 수위권을 다투왔지만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변곡점으로 대우조선해양은 2010년대 중반에 이르러 조선업황의 악화로 존폐의 기로에 놓여있는 상태이다.

대우중공업이 3개사로 분할되기 전인 1999년 7월에는 철도차량 생산부문이 경쟁사인 현대정공(주), 한진중공업(주)와 함께 현물출자 형식으로 단일법인을 설립함으로써 국내 유일의 철차제작업체인 한국철도차량주식회사가 탄생하였다. 하지만 대우종합기계(주)가 승계받은 한국철도차량(주)의 지분은 경영정상화를 위해 2001년현대자동차그룹에 전량 매각됨으로써 주식회사 로템(現 현대로템(주))으로 재출범한다.

대우중공업(주)의 항공사업부문도 1999년 8월삼성항공산업(주), 현대우주항공(주)과 통합하여 새로이 한국항공우주산업(주)로 출범하였지만, 대우중공업의 지분을 인계받은 두산그룹의 DIP홀딩스에서는 2016년 한국항공우주산업의 보유지분을 전부 정리하였다.

전자, 통신

한때 세계 각국의 생산기지를 설치하며 세계적인 전자기업을 표방해 오던 대우전자(주)는 1999년 워크아웃 대상기업으로 지정되었고, 2000년 4월 대우전자 중심의 기업집단을 구축하고 비수익 사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피아노 사업을 담당하는 벨로체, 컴퓨터 사업을 담당하는 대우루컴즈, 가스보일러 사업을 담당하는 대우가스보일러 등이 독립된 업체로 분리되었다. 2002년 대우전자의 TV, 백색가전 등 주력 핵심사업부문이 대부분 대우모터공업 주식회사로 인계되어 이듬해인 2003년에 (주)대우일렉트로닉스로 재출범하였다. 이후에도 2008년 대우디스플레이 등이 분리되어 대우일렉트로닉스는 사실상 백색가전 전문업체가 되었다. 2013년 동부그룹이 인수함으로써 동부대우전자 주식회사로 이름이 바뀌다가 2018년 대유그룹이 인수하여 주식회사 대우전자로 부활하였다. 2019년 주식회사 위니아대우 로 이름이 바꿔다가 2020년 주식회사 위니아전자로 이름이 바꿨다.

대우전자부품도 1999년 대우그룹 구조조정으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대상으로 지정되었다. 2000년 4월 대우그룹에서 분리되었다.2008년 회생절차개시 결정을 받았고, 2010년 2월 회생절차 종결 결정을 받았다. 그 후 현대자동차의 1차 협력그룹인 아진그룹이 인수했다.

대우통신(주)은 정상화를 위해 통신 관련사업부문을 매각하여 컴퓨터사업은 대우컴퓨터에 양도하였으며 그밖에 사업부문은 대우텔레텍, 대우글로벌 그리고 1999년 합병된 대우정밀공업 계열의 업체들은 대우정밀, 대우파워트레인, 대우프라스틱 등으로 분사되었다.

대우정밀(주)은 에스엔티(S&T그룹)에 인수되어 현재 S&T모티브로 운영 중이며 대우파워트레인(주)은 GM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컴퍼니(지금의 한국지엠주식회사)에 매각되었고, 대우프라스틱(주)는 삼라마이다스그룹(SM그룹)으로 매각된 후 대우라이프(주)로 바뀌었다가 계열사인 남선알미늄(주)에 합병되었다.

전자 계열사였던 오리온전기(주), 한국전기초자(주), 광전자(주) 등도 워크아웃을 맞아 자취를 감추거나 독자생존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금융

대우증권(주)는 1999년 대우가 해체되기 전 채권단이 인수하였으며 후에 대주주가 한국산업은행으로 변경된다. 2009년에는 한국산업은행의 민영화에 따라 새로이 출범한 KDB금융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2015년에는 미래에셋금융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2001년 8월 (주)다이너스카드클럽코리아는 현대자동차(주)에 매각되어 현대카드(주)로 변경되었다.

대우캐피탈(주)는 아주그룹에 편입되어 아주캐피탈(주)로 바뀌었다.

스포츠

대우그룹에서 운영 중이던 부산 대우 로얄즈현대산업개발에 매각, 인천 대우 제우스신세기통신에 매각되고 인천 신세기 빅스로 변경하며 현재 부산 아이파크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미디어

케이블 채널 중에서 대우시네마네트워크는 동양그룹에 매각되어 OCN(현재 CJ 산하)으로 변경되었다.

같이 보기

건설, 무역

자동차

중공업

전자

금융

기타

  • 대우엔지니어링 → 포스코엔지니어링 (1990년 계열 분리 → 2002년 포스코에 인수)
  • 신성통상 (1984년 계열 분리 → 2002년 가나안에서 인수)
  • 대창기업
  • (주)고려 → SG고려 (구 고려피혁공업주식회사 → 2003년 (주)가로수닷컴에 인수)
  • 세계물산 → SG위카스 → SG세계물산 (2002년 SK글로벌에 인수 → 2005년 (주)가로수닷컴에 인수)
  • 대우시네마네트워크 → (주)오리온시네마네트워크 (1999년 동양그룹에 인수되어 별도법인인 온미디어 설립 → 2010년 CJ에 인수 → 2013년 CJ ENM에 흡수 합병)
  • 부산 대우 로얄즈 → 부산 아이파크 (2000년 현대산업개발에 인수)
  • 인천 대우 제우스 → 인천 신세기 빅스 (1999년 신세기통신에 인수)

외부 링크

각주

  1. 대우그룹, 쌍용自인수로 재계순위‘3위’《문화일보》1997년 12월 9일 김병직 기자

대우그룹
Daewoo Group
형태대기업집단(1989년~1999년)
창립1967년 3월 22일 (대우실업 주식회사)
창립자김우중(대표이사 회장)
산업 분야자동차, 전자, 조선, 건설
해체1999년 11월 1일
본사 소재지대우센터빌딩(1977년~1999년)
사업 지역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핵심 인물
김우중(대표이사 회장)
매출액분식회계로 정확히 추산불가
영업이익
-4조원(1999년 기준)
자산총액자본 약 15조 부채 89조
주요 주주김우중
모기업(주)대우
계열사대우전자, 대우건설, 대우자동차, 대우조선, 대우증권, 쌍용자동차
자본금5,000,000원(1967년 기준)

대우그룹(大宇─, Daewoo Group)은 1967년 창립한 대우실업을 모태로 1980년대부터 1990년대 말까지 존재한 대한민국의 대규모 기업집단이었다.[1] 대도섬유의 대(大)와 김우중의 우(宇)를 따서 만들었다. 섬유·무역·건설·조선·중장비·자동차·전자·통신·관광·금융 등 여러 사업부문을 두었으며, 1993년 세계경영 전략 채택 이후 강력한 외형확장으로 사세를 넓혀갔고 1998년에는 현대그룹에 이어 재계 2위에 올랐으나 외환위기 이후, 자체 구조조정 실패와 1999년 삼성과의 전자-자동차 빅딜 실패로 1999년 10월부터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그룹 해체를 맞았다.

기업연혁

과거 대우그룹의 본사였던 서울스퀘어.

대우는 1967년 소규모 사업체로 창업하였으나, 1970년대 경제성장 및 수출호조에 따른 비약적인 발전, 그리고 정부 주도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에 힘입어 단기간에 대한민국 최대기업으로서 성장을 이루게 된다. 대우는 1980년대 후반부터 대한민국 외 국가로 눈을 돌려 동유럽 및 신흥시장 개척을 추진해 왔고, 1993년 세계경영에 나서면서 사세확장을 시도하였다. 이후 외환위기 속에서도 1997년 법정관리에 들어간 쌍용자동차를 인수하였다. 98년 상반기에는 현대그룹에 이은 (자산총액기준) 재계 2위에 올랐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출범이후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자체적 구조조정 실패와 무리한 차입금이 발목을 잡았고 1998년 10월, 대우그룹이 신청한 기업어음(CP)발행이 중단되면서 그룹 위기가 찾아왔다. 1999년이 되면서 삼성그룹과의 대우전자-삼성자동차의 빅딜협상에 들어갔으나 동년 7월, 협상이 결렬되었다. 이후 김우중 회장은 자동차를 중심으로 그룹 구조조정에 뒤늦게 들어갔으나 대우그룹 채권단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1999년 10월, 그룹 해체 수순을 밟았다.

성장

1967년 대우실업 창립 이래, 부산에 공장을 설치하여 1970년대 와이셔츠 등의 봉제품 및 섬유제품의 수출호조와 더불어 경제고도성장으로 급속한 발전을 이루어 신흥 사업체로 주목받았고, 더욱이 정부가 주도하던 경제 정책에 발맞춰 금융, 전자, 중공업, 자동차 사업에도 뛰어들면서 대우 그룹을 형성하게 된다.

  • 1967년 3월 22일 모태인 대우실업(주)(대우가족) 창립. (섬유류 봉제품 생산, 수출 주도)
  • 1969년 8월 대한민국 기업 해외지사 1호 시드니에 개설.
  • 1971년 9월 (주)내쇼날의류 설립.
  • 1972년 9월 고려피혁(주) 인수.
  • 1973년 쌍미섬유공업(주) 인수. 대우증권의 전신 동양증권(주) 인수. 대우건설(주) 설립.
  • 1975년 2월 대우빌딩 착공.
  • 1975년 5월 대우실업(주), 종합무역상사 지정.
  • 1976년 2월 한국기계공업(주) 인수. 10월 해외건설업면허 취득. 대우중공업(주) 출범.
  • 1977년 대우센터 빌딩 준공. 8월 제철화학(주) 경영권 인수.
  • 1978년 7월 산업은행으로부터 새한자동차(주) 지분 인수. 대한조선공사 옥포조선소 인수 후 9월 대우조선공업(주) 설립.

도약기

대우 그룹은 (주)대우의 출범과 새한자동차 경영권 장악, 가전사업 진출을 잇달아 성사시키며 현대(現代), 삼성(三星), 럭키금성(LG)과 함께 대한민국 4대 기업군으로 성장한다. 국내 업체들과의 출혈 경쟁에서 기술력과 수익성의 한계를 느낀 대우는 세계로 눈을 돌려 냉전체제의 완화가 도래한 시점에 동유럽 및 공산권 국가에 현지법인을 설립하면서 신시장 개척을 준비하였다.

  • 1981년 10월 옥포조선소 준공. 수출의날 15억불탑 수상. 대우실업(주) 및 대우개발(주) 합병 결의.
  • 1982년 모기업 (주)대우 출범. 수출의날 20억불탑 수상.
  • 1983년 대우자동차(주) 출범. 대우전자(주)에서 대한전선(주)의 가전부문을 흡수. 대우통신(주) 설립.
  • 1984년 경남기업(주) 경영 참여. (주)대우경제연구소 설립. 10월 대우자동차부품(주) 설립. 대한민국 최초 VTR 수출.
  • 1986년 대우증권 런던사무소 개설. 9월 경남기업(주) 계열 편입.
  • 1987년 미얀마 현지 철도차량공장 준공.
  • 1988년 (주)대우 동베를린지사 설치. 대우투자자문(주) 설립. 프랑스 롱위 전자레인지 공장 건립. 대우증권 홍콩사무소 개설.
  • 1989년 제철화학 외 3개사 매각. 대우정보시스템 설립. 대우기전공업㈜ 출범. MHB-Daewoo Bank 설립.
  • 1990년 (주)대우 모스크바지사 설치. 대우중공업(주) 유럽현지법인 설립. 멕시코 컬러TV 공장 건립.
  • 1991년 (주)대우 북경지사 설치. 대우증권(주) 유럽현지법인 설립, 취리히사무소 개설.
  • 1992년 4월 佛 컬러TV 공장 건립. 佛 컴퓨터 판매법인 설립. 대우증권 美 현지법인 설립. 대우차-GM 제휴관계 청산.

팽창기

(주)대우가 구축한 세계무역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대우자동차(주), 대우중공업(주), 대우전자(주)가 국제적으로 널리 진출하는 '세계경영'은 1993년 '세계경영 우리기술' 슬로건 선포를 시점으로 본격화되었다. 대우가 당시 내세웠던 세계경영은 선진업체가 진출하지 않은 옛 공산권 국가와 앞으로 발전가능성이 무한한 개발도상국 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것으로, 현지법인 설립과 인수합병을 통해 단기간에 정착하여 사세확장을 꾀하는 형태이다. 실제로 대우가 진출을 시도한 개발도상국가의 정부에서는 자국의 경제활성화 목적에서 대우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기에, 대우의 사업확장은 더욱 쉽게 이뤄질 수 있었다. 대한민국 시장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대우자동차(주)의 경우는 대한민국 외 국가에서 판매하는 수량이 대한민국에서 판매하는 수량을 앞지르는 현상을 가져오기도 했다. 이같은 대우의 급속한 성장은 대한민국 경제계와 대한민국 외 국가 경제에 큰 반향을 가져다 주었다.

  • 1993년 1월 대우자판 설립.
  • 1993년 2월 베트남 합작은행 출자.
  • 1993년 3월 세계경영 선포.
  • 1993년 5월 우즈벡 가전 공장 설립.
  • 1993년 7월 대우중공업(주) 미국현지법인 DEC 설립.
  • 1993년 8월 폴란드 TV 공장 설립.
  • 1993년 9월 세계최초 공기방울 세탁기 개발.
  • 1994년 2월 대우할부금융 설립.
  • 1994년 3월 인도 합작증권사 CRB-Daewoo Securities Ltd 출자.
  • 1994년 5월 대우자동차(주) 영국 워딩 자동차 기술연구소 건립.
  • 1994년 6월 대우중공업 영국현지법인 유로 대우 UK 설립.
  • 1994년 10월 대우중공업(주) 대우조선공업 흡수 합병. 중국현지법인 대우중공업연대유한공사 설립.
  • 1994년 11월 루마니아 자동차합작공장 DAEWOO-RODAE 설립. 대우중공업(주) 러시아 기술연구소 DISK 설립.
  • 1995년 1월 대우중공업(주) 독일 현지법인 ECO 설립. 대우전자(주) 말레이시아 세탁기 공장 설립. 대우뱅크 출범.
  • 1995년 2월 대우중공업(주) 일본 현지법인 대우건기 설립.
  • 1995년 3월 체코 최대 국영상용차업체 AVIA사 인수. 대우증권(주) 홍콩현지법인 설립.
  • 1995년 4월 대우증권(주) 상해사무소 개설.
  • 1995년 5월 대한민국 기업 최초, 대북 협력사업 정부승인 획득.
  • 1995년 6월 다이너스카드사 인수.
  • 1995년 7월 동우개발(주)의 사명을 (주)대우개발로 변경.
  • 1995년 9월 베트남 하노이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우즈벡 공화국에 교환기합작공장 알로카대우 설립.
  • 1995년 10월 중국천진 팩스밀리 합작공장 설립.
  • 1995년 11월 베트남 최초 타포린 합작생산 공장 준공. 폴란드 최대 자동차기업 FSO 인수, DAEWOO-FSO 출범.
  • 1996년 3월 대우증권(주) 싱가폴사무소 개설. 루마니아 DAEWOO-RODAE 공장 준공.
  • 1996년 5월 남북경협 최초회사 민족산업총회사 남포에 설립. 앙골라 대규모 유전발견.
  • 1996년 6월 프랑스 롱위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인도뉴델리 첨단 소프트웨어 연구개발센타 설립. 페루육상 유전인수 입찰수주.
  • 1996년 7월 한진투자증권 합작 법인 서울투신운용(주) 설립. 우크라이나 대용량교환기 합작공장 드니프로-대우 설립.
  • 1996년 10월 대우증권(주) 동경지점 개점. UZ-Daewoo 자동차 공장 준공. 베트남 비담코 자동차 공장 준공.
  • 1996년 11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중국 광케이블 합작회사 우시-대우 설립. 루마니아 합작은행 설립.
  • 1997년 3월 우즈베키스탄 대우은행 (Uz-Daewoo Bank) 설립.
  • 1997년 4월 인도 종합 가전공장 설립. 군산 종합 자동차공장 준공.
  • 1997년 5월 인도 CRB증권 대우파이낸스로 상호 변경. 대우선물(주) 설립.
  • 1997년 6월 대우증권(주) 싱가포르 현지법인 설립.
  • 1997년 7월 대우리스 체코에 설립.
  • 1997년 9월 대우자동차(주) 우크라이나 합작공장 설립계약 체결.
  • 1997년 12월 한국전기초자(주) 인수.

해체

대우는 세계경영으로 철저히 현지화를 추구함으로써 1993년 당시 150여개에 불과했던 대한민국 외 국가 현지법인을 1998년 11월에는 396개로 끌어올리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대우는 1997년 다가온 경제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물로 나온 쌍용자동차(주)를 인수하여 소형차에서 대형차는 물론, 버스와 트럭, 사륜구동 SUV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차량을 생산하는 풀라인업을 완성시키고 그 밖에도 해외 현지공장 인수 및 확장을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대우는 1998년 삼성(三星)을 제치고 재계서열 2위까지 뛰어오른다.

  • 1998년 3월 30일 대우자동차(주), 쌍용자동차(주) 인수.
  • 1998년 5월 스페인 냉장고 공장 설립.
  • 1998년 6월 우크라이나 자동차 법인 AUTOZAZ-DAEWOO 공장 본격 가동.
  • 1998년 7월 미국 Fortune 선정 매출 500대 기업 중 세계 18위의 기업으로 도약.
  • 1998년 10월 대우중공업(주) 이집트공장 준공.
  • 1998년 11월 무역의 날 150억불 수출의 탑 수상.

그러나 경기침체의 장기화와 세계 시장의 위축으로 대우의 입지는 크게 흔들렸고, 개발도상국가 위주로 판매망을 확대해온 대우자동차의 부진이 거듭되었다. 경영여건이 안정되지 못한 상황에서 추진한 쌍용자동차의 인수도 큰 실익을 거두지 못하였고, 외형확대의 초점을 맞추어 경영해오다보니 당시 정부가 요구했던 구조조정에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오다보니 구조조정의 실시가 경쟁 그룹에 비해 늦은 편이었다. 정부 주도의 산업체계 개편에 따라 늦게나마 추진한 대우전자-삼성자동차 빅딜협상은 양사간 입장차이로 끝내 결렬되었으며, 1999년 여름에 접어들면서 그룹의 운명을 좌우할 대우와 GM과의 협상(대우차와의 경영권 문제)마저도 실패한 대우는 급속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자금난이 가중되던 대우는 알짜자산인 힐튼호텔 매각 등을 성사시키기도 하지만 1999년 3월에는 이미 부채 비율을 무려 400%를 훨씬 넘은 상태여서 수습이 어려운 지경이었다. 7월 대우는 초고강도 구조조정안을 발표하였으나 채권단은 이를 반려한다. 결국 대우는 1999년 8월 16일 채권단의 재무구조개선수정약정 체결과 더불어, 26일 채권단 관리하에 워크아웃을 맞이함으로써 그룹 해체의 길로 접어든다. 지난 1967년 창업 이래 32년간 대한민국에 경쟁성장의 견인차로 역할을 해오던 기업 중 하나로서, 1993년 세계경영을 선포한지 6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 1998년 11월 대우그룹 1차 구조조정안 발표.
  • 1998년 12월 대우전자(주) 및 삼성자동차(주) 빅딜 발표. (사업맞교환)
  • 1999년 4월 19일 대우 2차 구조조정안 발표. (대우 조선, 상용차, 힐튼호텔 등 매각)
  • 1999년 6월 30일 삼성자동차 워크아웃 돌입.
  • 1999년 7월 16일 대우그룹 구조조정안 발표. (자동차 전문그룹으로의 재탄생)
  • 1999년 8월 3일 제일은행 등 채권단 구조조정안 반려.
  • 1999년 8월 16일 대우 채권단, 재무구조개선수정약정 체결.
  • 1999년 8월 26일 (주)대우, 대우중공업(주), 대우자동차(주), 대우전자(주) 등 12개 회사 워크아웃 돌입.
  • 1999년 8월 30일 대우증권(주) 계열 분리, 채권단으로 이양.
  • 1999년 10월 김우중 회장, 중국 옌타이 대우자동차 부품공장 준공식 참석.
  • 1999년 11월 1일 대우 회장 및 대우그룹 사장단 퇴진.
  • 2000년 4월 15일 대규모기업집단 지정 제외.

한 때 세계 경영의 첨병으로 불렸던 대우의 몰락은 경제계에 큰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대우사태는 당대 큰 기업은 절대 흥한다는 '대마불사'의 신화를 깨고 차입경영을 일삼는 부실기업을 과감하게 퇴출시킨 사례로 건실한 기업풍토 조성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이 있는 반면, 대우가 밝혀지지 않은 요인(정치적 문제 또는 국제적 외압)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여론도 일부 존재하고 있어 지금도 눈길을 끈다.

구 대우그룹 계열사

현재 대우의 계열사들은 그룹 해체 후 자립 혹은 새로운 기업의 인수를 통해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그룹이 해체된 이후에도 포스코대우, 대우건설, 대우조선해양 등 몇몇 회사들은 여전히 대우의 이름을 유지하며 성공적으로 영업 중이다.

자동차 사업

대우가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자동차 사업은 1997년 신차 출시, 1998년 쌍용자동차 인수에 따른 사세 확장으로 대한민국 시장에서 호조를 거두었으나 부채 누적으로 인한 만성적인 적자로, 대우그룹 핵심 계열사들이 워크아웃에 돌입하면서 완전히 공중분해되고 말았다.

대우자동차(주)는 포드, 제너럴 모터스(GM) 등 두 양사간의 해외 매각 의사를 타진하였으나 최종적으로 협상이 모두 결렬되었으며, 대우자동차(주)는 경영 정상화 실패로 인해 2000년 11월 10일인천지방법원에 법정관리(정리절차) 개시 신청을 냈고, 노사가 극적으로 노사협의회 합의문에 합의한 후, 회사 측의 자구의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여, 법정관리 개시 결정이 내려졌다.

대우자동차는 GM 매각을 위한 구조조정 계획의 일환으로, 9992억 원의 자구계획을 마련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가 인력을 7300여 명 줄이고 재료비, 경상비, 투자비 등을 대폭 감축했으며, 부평공장 생산직 직원 1750명이 강제로 거리로 내몰리는 역대 최대 규모의 정리해고가 김대중 정부 출범 당시에 근로기준법 개정 이후, 2001년 2월초에 단행되기도 했다.

미국 GM이 2001년 6월초에 대우차 인수 의향서를 제출하여, 이듬해인 2002년 10월 28일에 GM대우(현 한국지엠)라는 외국계 기업으로 새롭게 출범했고, 대한민국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확대에 실패하여 고전을 계속하였던 GM대우는 글로벌 GM의 전략적 요충지로 키우기 위해서 2011년 1월 쉐보레 브랜드로의 흡수 통합을 선언하였으며, 2011년 한국GM(주)가 새롭게 출범하였다.

GM이 인수하지 않은 버스부문, 상용차부문, 부평공장은 대우버스(주), 대우상용차(주), 대우인천자동차(주)로 분할, 매각되었다.

대우자동차(주)의 버스부문인 대우버스(주)는 영안모자에 매각되었고, 트럭을 생산하는 상용차 부문은 인도 최대의 재벌인 타타(TATA)에 매각되어 타타대우상용차(주)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대우그룹 시절 대우자동차와의 합병을 계획하였던 쌍용자동차(주)는 대우그룹의 구조조정 당시 대우차와의 분리 매각이 결정되면서 2000년 4월 대우 계열에서 정식으로 분리되었다. 후에 쌍용자동차(주)는 2005년 중국 국영자동차회사인 상하이자동차 그룹에 인수되어, 미국발 금융 위기로 인한 판매 부진이 계속 거듭되면서 2009년 쌍용자동차(주)의 경영권을 포기하고 한국 시장에 철수하였다. 2009년 쌍용자동차(주)는 법정관리 체제에 들어갔으며, 구조조정에 따른 대규모 정리해고 사태로 노사간의 첨예한 대립까지 위태로울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다가 2010년 말 인도의 마힌드라 자동차에 인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건설, 무역

1999년 워크아웃으로 (주)대우지스틱스가 먼저 분사되었으며, 2000년 12월 모기업 (주)대우가 3개사로 재탄생한다. 청산을 위한 (주)대우 존속법인과 무역부문의 (주)대우인터내셔널, 건설부문의 (주)대우건설로 나뉜다.

(주)대우인터내셔널은 대우의 모태사업인 무역은 물론 백화점 등 사업도 하고 있다. 2010년 포스코에 인수되었고, 지금의 포스코대우로 재출범한다. 백화점 사업은 2014년 롯데쇼핑(주)에서 인수하여 롯데백화점 마산점이 되었다.

(주)대우건설은 워크아웃을 단기에 졸업했으며 2006년 12월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인수되었다. 그러나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무리한 인수합병으로 인한 후유증에 세계 금융위기까지 겪으며 극심한 자금난을 겪자, 2010년 (주)대우건설에 대한 경영권을 포기하였고, 2011년 1월에 금호아시아나 계열에서 정식으로 분리되었다. 현재 최대주주는 한국산업은행이다.

대우그룹의 또다른 건설회사였던 경남기업(주)는 성완종이 이끄는 충남지역 건설사인 대아건설(주)에 인수되었다가 2004년에 대아건설(주)을 합병하면서 국내 10위권의 대형 건설사로 성장가도를 달린다. 2009년 대한민국 건설사들의 잇따른 경영난으로 워크아웃을 재차 겪지만, 실적 개선 등에 힘입어 2011년 5월 워크아웃을 졸업하는데 성공한다. 2015년 하지만 건설업계 불황이 장기화되고 기업의 오너(Owner)인 성완종이 자원외교비리수사에 연루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2015년 4월 마침내 경남기업은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만다. 2017년 sm그룹이 인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중공업, 조선

2000년 대우중공업(주)도 대우종합기계(주), 대우조선공업(주) 그리고 대우중공업(주) 잔존법인으로 분할되었다.

주력부문이었던 중장비 및 군수물자 생산을 담당하는 대우종합기계(주)는 2005년두산 계열로 편입, 두산인프라코어(주)로 재탄생하였다.

대우중공업의 조선해양부문은 대우조선공업 주식회사로 분사되었다가 곧 대우조선해양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한다. 2000년대 조선업계의 호황으로 대우의 계열사 중 가장 먼저 워크아웃을 졸업한 회사로도 주목받았고, 조선업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을 기반으로 건설, 상조사업 등에도 진출하며 자체적으로 조선사업 중심의 기업집단을 일구었다. 2000년 출범한 이래 수년간 경쟁업체인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과 함께 선박 수주잔량으로 세계 수위권을 다투왔지만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변곡점으로 대우조선해양은 2010년대 중반에 이르러 조선업황의 악화로 존폐의 기로에 놓여있는 상태이다.

대우중공업이 3개사로 분할되기 전인 1999년 7월에는 철도차량 생산부문이 경쟁사인 현대정공(주), 한진중공업(주)와 함께 현물출자 형식으로 단일법인을 설립함으로써 국내 유일의 철차제작업체인 한국철도차량주식회사가 탄생하였다. 하지만 대우종합기계(주)가 승계받은 한국철도차량(주)의 지분은 경영정상화를 위해 2001년현대자동차그룹에 전량 매각됨으로써 주식회사 로템(現 현대로템(주))으로 재출범한다.

대우중공업(주)의 항공사업부문도 1999년 8월삼성항공산업(주), 현대우주항공(주)과 통합하여 새로이 한국항공우주산업(주)로 출범하였지만, 대우중공업의 지분을 인계받은 두산그룹의 DIP홀딩스에서는 2016년 한국항공우주산업의 보유지분을 전부 정리하였다.

전자, 통신

한때 세계 각국의 생산기지를 설치하며 세계적인 전자기업을 표방해 오던 대우전자(주)는 1999년 워크아웃 대상기업으로 지정되었고, 2000년 4월 대우전자 중심의 기업집단을 구축하고 비수익 사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피아노 사업을 담당하는 벨로체, 컴퓨터 사업을 담당하는 대우루컴즈, 가스보일러 사업을 담당하는 대우가스보일러 등이 독립된 업체로 분리되었다. 2002년 대우전자의 TV, 백색가전 등 주력 핵심사업부문이 대부분 대우모터공업 주식회사로 인계되어 이듬해인 2003년에 (주)대우일렉트로닉스로 재출범하였다. 이후에도 2008년 대우디스플레이 등이 분리되어 대우일렉트로닉스는 사실상 백색가전 전문업체가 되었다. 2013년 동부그룹이 인수함으로써 동부대우전자 주식회사로 이름이 바뀌다가 2018년 대유그룹이 인수하여 주식회사 대우전자로 부활하였다. 2019년 주식회사 위니아대우 로 이름이 바꿔다가 2020년 주식회사 위니아전자로 이름이 바꿨다.

대우전자부품도 1999년 대우그룹 구조조정으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대상으로 지정되었다. 2000년 4월 대우그룹에서 분리되었다.2008년 회생절차개시 결정을 받았고, 2010년 2월 회생절차 종결 결정을 받았다. 그 후 현대자동차의 1차 협력그룹인 아진그룹이 인수했다.

대우통신(주)은 정상화를 위해 통신 관련사업부문을 매각하여 컴퓨터사업은 대우컴퓨터에 양도하였으며 그밖에 사업부문은 대우텔레텍, 대우글로벌 그리고 1999년 합병된 대우정밀공업 계열의 업체들은 대우정밀, 대우파워트레인, 대우프라스틱 등으로 분사되었다.

대우정밀(주)은 에스엔티(S&T그룹)에 인수되어 현재 S&T모티브로 운영 중이며 대우파워트레인(주)은 GM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컴퍼니(지금의 한국지엠주식회사)에 매각되었고, 대우프라스틱(주)는 삼라마이다스그룹(SM그룹)으로 매각된 후 대우라이프(주)로 바뀌었다가 계열사인 남선알미늄(주)에 합병되었다.

전자 계열사였던 오리온전기(주), 한국전기초자(주), 광전자(주) 등도 워크아웃을 맞아 자취를 감추거나 독자생존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금융

대우증권(주)는 1999년 대우가 해체되기 전 채권단이 인수하였으며 후에 대주주가 한국산업은행으로 변경된다. 2009년에는 한국산업은행의 민영화에 따라 새로이 출범한 KDB금융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2015년에는 미래에셋금융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2001년 8월 (주)다이너스카드클럽코리아는 현대자동차(주)에 매각되어 현대카드(주)로 변경되었다.

대우캐피탈(주)는 아주그룹에 편입되어 아주캐피탈(주)로 바뀌었다.

스포츠

대우그룹에서 운영 중이던 부산 대우 로얄즈현대산업개발에 매각, 인천 대우 제우스신세기통신에 매각되고 인천 신세기 빅스로 변경하며 현재 부산 아이파크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미디어

케이블 채널 중에서 대우시네마네트워크는 동양그룹에 매각되어 OCN(현재 CJ 산하)으로 변경되었다.

같이 보기

건설, 무역

자동차

중공업

전자

금융

기타

  • 대우엔지니어링 → 포스코엔지니어링 (1990년 계열 분리 → 2002년 포스코에 인수)
  • 신성통상 (1984년 계열 분리 → 2002년 가나안에서 인수)
  • 대창기업
  • (주)고려 → SG고려 (구 고려피혁공업주식회사 → 2003년 (주)가로수닷컴에 인수)
  • 세계물산 → SG위카스 → SG세계물산 (2002년 SK글로벌에 인수 → 2005년 (주)가로수닷컴에 인수)
  • 대우시네마네트워크 → (주)오리온시네마네트워크 (1999년 동양그룹에 인수되어 별도법인인 온미디어 설립 → 2010년 CJ에 인수 → 2013년 CJ ENM에 흡수 합병)
  • 부산 대우 로얄즈 → 부산 아이파크 (2000년 현대산업개발에 인수)
  • 인천 대우 제우스 → 인천 신세기 빅스 (1999년 신세기통신에 인수)

외부 링크

각주

  1. 대우그룹, 쌍용自인수로 재계순위‘3위’《문화일보》1997년 12월 9일 김병직 기자

대우그룹
Daewoo Group
형태대기업집단(1989년~1999년)
창립1967년 3월 22일 (대우실업 주식회사)
창립자김우중(대표이사 회장)
산업 분야자동차, 전자, 조선, 건설
해체1999년 11월 1일
본사 소재지대우센터빌딩(1977년~1999년)
사업 지역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핵심 인물
김우중(대표이사 회장)
매출액분식회계로 정확히 추산불가
영업이익
-4조원(1999년 기준)
자산총액자본 약 15조 부채 89조
주요 주주김우중
모기업(주)대우
계열사대우전자, 대우건설, 대우자동차, 대우조선, 대우증권, 쌍용자동차
자본금5,000,000원(1967년 기준)

대우그룹(大宇─, Daewoo Group)은 1967년 창립한 대우실업을 모태로 1980년대부터 1990년대 말까지 존재한 대한민국의 대규모 기업집단이었다.[1] 대도섬유의 대(大)와 김우중의 우(宇)를 따서 만들었다. 섬유·무역·건설·조선·중장비·자동차·전자·통신·관광·금융 등 여러 사업부문을 두었으며, 1993년 세계경영 전략 채택 이후 강력한 외형확장으로 사세를 넓혀갔고 1998년에는 현대그룹에 이어 재계 2위에 올랐으나 외환위기 이후, 자체 구조조정 실패와 1999년 삼성과의 전자-자동차 빅딜 실패로 1999년 10월부터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그룹 해체를 맞았다.

기업연혁

과거 대우그룹의 본사였던 서울스퀘어.

대우는 1967년 소규모 사업체로 창업하였으나, 1970년대 경제성장 및 수출호조에 따른 비약적인 발전, 그리고 정부 주도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에 힘입어 단기간에 대한민국 최대기업으로서 성장을 이루게 된다. 대우는 1980년대 후반부터 대한민국 외 국가로 눈을 돌려 동유럽 및 신흥시장 개척을 추진해 왔고, 1993년 세계경영에 나서면서 사세확장을 시도하였다. 이후 외환위기 속에서도 1997년 법정관리에 들어간 쌍용자동차를 인수하였다. 98년 상반기에는 현대그룹에 이은 (자산총액기준) 재계 2위에 올랐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출범이후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자체적 구조조정 실패와 무리한 차입금이 발목을 잡았고 1998년 10월, 대우그룹이 신청한 기업어음(CP)발행이 중단되면서 그룹 위기가 찾아왔다. 1999년이 되면서 삼성그룹과의 대우전자-삼성자동차의 빅딜협상에 들어갔으나 동년 7월, 협상이 결렬되었다. 이후 김우중 회장은 자동차를 중심으로 그룹 구조조정에 뒤늦게 들어갔으나 대우그룹 채권단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1999년 10월, 그룹 해체 수순을 밟았다.

성장

1967년 대우실업 창립 이래, 부산에 공장을 설치하여 1970년대 와이셔츠 등의 봉제품 및 섬유제품의 수출호조와 더불어 경제고도성장으로 급속한 발전을 이루어 신흥 사업체로 주목받았고, 더욱이 정부가 주도하던 경제 정책에 발맞춰 금융, 전자, 중공업, 자동차 사업에도 뛰어들면서 대우 그룹을 형성하게 된다.

  • 1967년 3월 22일 모태인 대우실업(주)(대우가족) 창립. (섬유류 봉제품 생산, 수출 주도)
  • 1969년 8월 대한민국 기업 해외지사 1호 시드니에 개설.
  • 1971년 9월 (주)내쇼날의류 설립.
  • 1972년 9월 고려피혁(주) 인수.
  • 1973년 쌍미섬유공업(주) 인수. 대우증권의 전신 동양증권(주) 인수. 대우건설(주) 설립.
  • 1975년 2월 대우빌딩 착공.
  • 1975년 5월 대우실업(주), 종합무역상사 지정.
  • 1976년 2월 한국기계공업(주) 인수. 10월 해외건설업면허 취득. 대우중공업(주) 출범.
  • 1977년 대우센터 빌딩 준공. 8월 제철화학(주) 경영권 인수.
  • 1978년 7월 산업은행으로부터 새한자동차(주) 지분 인수. 대한조선공사 옥포조선소 인수 후 9월 대우조선공업(주) 설립.

도약기

대우 그룹은 (주)대우의 출범과 새한자동차 경영권 장악, 가전사업 진출을 잇달아 성사시키며 현대(現代), 삼성(三星), 럭키금성(LG)과 함께 대한민국 4대 기업군으로 성장한다. 국내 업체들과의 출혈 경쟁에서 기술력과 수익성의 한계를 느낀 대우는 세계로 눈을 돌려 냉전체제의 완화가 도래한 시점에 동유럽 및 공산권 국가에 현지법인을 설립하면서 신시장 개척을 준비하였다.

  • 1981년 10월 옥포조선소 준공. 수출의날 15억불탑 수상. 대우실업(주) 및 대우개발(주) 합병 결의.
  • 1982년 모기업 (주)대우 출범. 수출의날 20억불탑 수상.
  • 1983년 대우자동차(주) 출범. 대우전자(주)에서 대한전선(주)의 가전부문을 흡수. 대우통신(주) 설립.
  • 1984년 경남기업(주) 경영 참여. (주)대우경제연구소 설립. 10월 대우자동차부품(주) 설립. 대한민국 최초 VTR 수출.
  • 1986년 대우증권 런던사무소 개설. 9월 경남기업(주) 계열 편입.
  • 1987년 미얀마 현지 철도차량공장 준공.
  • 1988년 (주)대우 동베를린지사 설치. 대우투자자문(주) 설립. 프랑스 롱위 전자레인지 공장 건립. 대우증권 홍콩사무소 개설.
  • 1989년 제철화학 외 3개사 매각. 대우정보시스템 설립. 대우기전공업㈜ 출범. MHB-Daewoo Bank 설립.
  • 1990년 (주)대우 모스크바지사 설치. 대우중공업(주) 유럽현지법인 설립. 멕시코 컬러TV 공장 건립.
  • 1991년 (주)대우 북경지사 설치. 대우증권(주) 유럽현지법인 설립, 취리히사무소 개설.
  • 1992년 4월 佛 컬러TV 공장 건립. 佛 컴퓨터 판매법인 설립. 대우증권 美 현지법인 설립. 대우차-GM 제휴관계 청산.

팽창기

(주)대우가 구축한 세계무역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대우자동차(주), 대우중공업(주), 대우전자(주)가 국제적으로 널리 진출하는 '세계경영'은 1993년 '세계경영 우리기술' 슬로건 선포를 시점으로 본격화되었다. 대우가 당시 내세웠던 세계경영은 선진업체가 진출하지 않은 옛 공산권 국가와 앞으로 발전가능성이 무한한 개발도상국 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것으로, 현지법인 설립과 인수합병을 통해 단기간에 정착하여 사세확장을 꾀하는 형태이다. 실제로 대우가 진출을 시도한 개발도상국가의 정부에서는 자국의 경제활성화 목적에서 대우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기에, 대우의 사업확장은 더욱 쉽게 이뤄질 수 있었다. 대한민국 시장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대우자동차(주)의 경우는 대한민국 외 국가에서 판매하는 수량이 대한민국에서 판매하는 수량을 앞지르는 현상을 가져오기도 했다. 이같은 대우의 급속한 성장은 대한민국 경제계와 대한민국 외 국가 경제에 큰 반향을 가져다 주었다.

  • 1993년 1월 대우자판 설립.
  • 1993년 2월 베트남 합작은행 출자.
  • 1993년 3월 세계경영 선포.
  • 1993년 5월 우즈벡 가전 공장 설립.
  • 1993년 7월 대우중공업(주) 미국현지법인 DEC 설립.
  • 1993년 8월 폴란드 TV 공장 설립.
  • 1993년 9월 세계최초 공기방울 세탁기 개발.
  • 1994년 2월 대우할부금융 설립.
  • 1994년 3월 인도 합작증권사 CRB-Daewoo Securities Ltd 출자.
  • 1994년 5월 대우자동차(주) 영국 워딩 자동차 기술연구소 건립.
  • 1994년 6월 대우중공업 영국현지법인 유로 대우 UK 설립.
  • 1994년 10월 대우중공업(주) 대우조선공업 흡수 합병. 중국현지법인 대우중공업연대유한공사 설립.
  • 1994년 11월 루마니아 자동차합작공장 DAEWOO-RODAE 설립. 대우중공업(주) 러시아 기술연구소 DISK 설립.
  • 1995년 1월 대우중공업(주) 독일 현지법인 ECO 설립. 대우전자(주) 말레이시아 세탁기 공장 설립. 대우뱅크 출범.
  • 1995년 2월 대우중공업(주) 일본 현지법인 대우건기 설립.
  • 1995년 3월 체코 최대 국영상용차업체 AVIA사 인수. 대우증권(주) 홍콩현지법인 설립.
  • 1995년 4월 대우증권(주) 상해사무소 개설.
  • 1995년 5월 대한민국 기업 최초, 대북 협력사업 정부승인 획득.
  • 1995년 6월 다이너스카드사 인수.
  • 1995년 7월 동우개발(주)의 사명을 (주)대우개발로 변경.
  • 1995년 9월 베트남 하노이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우즈벡 공화국에 교환기합작공장 알로카대우 설립.
  • 1995년 10월 중국천진 팩스밀리 합작공장 설립.
  • 1995년 11월 베트남 최초 타포린 합작생산 공장 준공. 폴란드 최대 자동차기업 FSO 인수, DAEWOO-FSO 출범.
  • 1996년 3월 대우증권(주) 싱가폴사무소 개설. 루마니아 DAEWOO-RODAE 공장 준공.
  • 1996년 5월 남북경협 최초회사 민족산업총회사 남포에 설립. 앙골라 대규모 유전발견.
  • 1996년 6월 프랑스 롱위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인도뉴델리 첨단 소프트웨어 연구개발센타 설립. 페루육상 유전인수 입찰수주.
  • 1996년 7월 한진투자증권 합작 법인 서울투신운용(주) 설립. 우크라이나 대용량교환기 합작공장 드니프로-대우 설립.
  • 1996년 10월 대우증권(주) 동경지점 개점. UZ-Daewoo 자동차 공장 준공. 베트남 비담코 자동차 공장 준공.
  • 1996년 11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중국 광케이블 합작회사 우시-대우 설립. 루마니아 합작은행 설립.
  • 1997년 3월 우즈베키스탄 대우은행 (Uz-Daewoo Bank) 설립.
  • 1997년 4월 인도 종합 가전공장 설립. 군산 종합 자동차공장 준공.
  • 1997년 5월 인도 CRB증권 대우파이낸스로 상호 변경. 대우선물(주) 설립.
  • 1997년 6월 대우증권(주) 싱가포르 현지법인 설립.
  • 1997년 7월 대우리스 체코에 설립.
  • 1997년 9월 대우자동차(주) 우크라이나 합작공장 설립계약 체결.
  • 1997년 12월 한국전기초자(주) 인수.

해체

대우는 세계경영으로 철저히 현지화를 추구함으로써 1993년 당시 150여개에 불과했던 대한민국 외 국가 현지법인을 1998년 11월에는 396개로 끌어올리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대우는 1997년 다가온 경제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물로 나온 쌍용자동차(주)를 인수하여 소형차에서 대형차는 물론, 버스와 트럭, 사륜구동 SUV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차량을 생산하는 풀라인업을 완성시키고 그 밖에도 해외 현지공장 인수 및 확장을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대우는 1998년 삼성(三星)을 제치고 재계서열 2위까지 뛰어오른다.

  • 1998년 3월 30일 대우자동차(주), 쌍용자동차(주) 인수.
  • 1998년 5월 스페인 냉장고 공장 설립.
  • 1998년 6월 우크라이나 자동차 법인 AUTOZAZ-DAEWOO 공장 본격 가동.
  • 1998년 7월 미국 Fortune 선정 매출 500대 기업 중 세계 18위의 기업으로 도약.
  • 1998년 10월 대우중공업(주) 이집트공장 준공.
  • 1998년 11월 무역의 날 150억불 수출의 탑 수상.

그러나 경기침체의 장기화와 세계 시장의 위축으로 대우의 입지는 크게 흔들렸고, 개발도상국가 위주로 판매망을 확대해온 대우자동차의 부진이 거듭되었다. 경영여건이 안정되지 못한 상황에서 추진한 쌍용자동차의 인수도 큰 실익을 거두지 못하였고, 외형확대의 초점을 맞추어 경영해오다보니 당시 정부가 요구했던 구조조정에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오다보니 구조조정의 실시가 경쟁 그룹에 비해 늦은 편이었다. 정부 주도의 산업체계 개편에 따라 늦게나마 추진한 대우전자-삼성자동차 빅딜협상은 양사간 입장차이로 끝내 결렬되었으며, 1999년 여름에 접어들면서 그룹의 운명을 좌우할 대우와 GM과의 협상(대우차와의 경영권 문제)마저도 실패한 대우는 급속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자금난이 가중되던 대우는 알짜자산인 힐튼호텔 매각 등을 성사시키기도 하지만 1999년 3월에는 이미 부채 비율을 무려 400%를 훨씬 넘은 상태여서 수습이 어려운 지경이었다. 7월 대우는 초고강도 구조조정안을 발표하였으나 채권단은 이를 반려한다. 결국 대우는 1999년 8월 16일 채권단의 재무구조개선수정약정 체결과 더불어, 26일 채권단 관리하에 워크아웃을 맞이함으로써 그룹 해체의 길로 접어든다. 지난 1967년 창업 이래 32년간 대한민국에 경쟁성장의 견인차로 역할을 해오던 기업 중 하나로서, 1993년 세계경영을 선포한지 6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 1998년 11월 대우그룹 1차 구조조정안 발표.
  • 1998년 12월 대우전자(주) 및 삼성자동차(주) 빅딜 발표. (사업맞교환)
  • 1999년 4월 19일 대우 2차 구조조정안 발표. (대우 조선, 상용차, 힐튼호텔 등 매각)
  • 1999년 6월 30일 삼성자동차 워크아웃 돌입.
  • 1999년 7월 16일 대우그룹 구조조정안 발표. (자동차 전문그룹으로의 재탄생)
  • 1999년 8월 3일 제일은행 등 채권단 구조조정안 반려.
  • 1999년 8월 16일 대우 채권단, 재무구조개선수정약정 체결.
  • 1999년 8월 26일 (주)대우, 대우중공업(주), 대우자동차(주), 대우전자(주) 등 12개 회사 워크아웃 돌입.
  • 1999년 8월 30일 대우증권(주) 계열 분리, 채권단으로 이양.
  • 1999년 10월 김우중 회장, 중국 옌타이 대우자동차 부품공장 준공식 참석.
  • 1999년 11월 1일 대우 회장 및 대우그룹 사장단 퇴진.
  • 2000년 4월 15일 대규모기업집단 지정 제외.

한 때 세계 경영의 첨병으로 불렸던 대우의 몰락은 경제계에 큰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대우사태는 당대 큰 기업은 절대 흥한다는 '대마불사'의 신화를 깨고 차입경영을 일삼는 부실기업을 과감하게 퇴출시킨 사례로 건실한 기업풍토 조성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이 있는 반면, 대우가 밝혀지지 않은 요인(정치적 문제 또는 국제적 외압)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여론도 일부 존재하고 있어 지금도 눈길을 끈다.

구 대우그룹 계열사

현재 대우의 계열사들은 그룹 해체 후 자립 혹은 새로운 기업의 인수를 통해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그룹이 해체된 이후에도 포스코대우, 대우건설, 대우조선해양 등 몇몇 회사들은 여전히 대우의 이름을 유지하며 성공적으로 영업 중이다.

자동차 사업

대우가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자동차 사업은 1997년 신차 출시, 1998년 쌍용자동차 인수에 따른 사세 확장으로 대한민국 시장에서 호조를 거두었으나 부채 누적으로 인한 만성적인 적자로, 대우그룹 핵심 계열사들이 워크아웃에 돌입하면서 완전히 공중분해되고 말았다.

대우자동차(주)는 포드, 제너럴 모터스(GM) 등 두 양사간의 해외 매각 의사를 타진하였으나 최종적으로 협상이 모두 결렬되었으며, 대우자동차(주)는 경영 정상화 실패로 인해 2000년 11월 10일인천지방법원에 법정관리(정리절차) 개시 신청을 냈고, 노사가 극적으로 노사협의회 합의문에 합의한 후, 회사 측의 자구의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여, 법정관리 개시 결정이 내려졌다.

대우자동차는 GM 매각을 위한 구조조정 계획의 일환으로, 9992억 원의 자구계획을 마련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가 인력을 7300여 명 줄이고 재료비, 경상비, 투자비 등을 대폭 감축했으며, 부평공장 생산직 직원 1750명이 강제로 거리로 내몰리는 역대 최대 규모의 정리해고가 김대중 정부 출범 당시에 근로기준법 개정 이후, 2001년 2월초에 단행되기도 했다.

미국 GM이 2001년 6월초에 대우차 인수 의향서를 제출하여, 이듬해인 2002년 10월 28일에 GM대우(현 한국지엠)라는 외국계 기업으로 새롭게 출범했고, 대한민국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확대에 실패하여 고전을 계속하였던 GM대우는 글로벌 GM의 전략적 요충지로 키우기 위해서 2011년 1월 쉐보레 브랜드로의 흡수 통합을 선언하였으며, 2011년 한국GM(주)가 새롭게 출범하였다.

GM이 인수하지 않은 버스부문, 상용차부문, 부평공장은 대우버스(주), 대우상용차(주), 대우인천자동차(주)로 분할, 매각되었다.

대우자동차(주)의 버스부문인 대우버스(주)는 영안모자에 매각되었고, 트럭을 생산하는 상용차 부문은 인도 최대의 재벌인 타타(TATA)에 매각되어 타타대우상용차(주)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대우그룹 시절 대우자동차와의 합병을 계획하였던 쌍용자동차(주)는 대우그룹의 구조조정 당시 대우차와의 분리 매각이 결정되면서 2000년 4월 대우 계열에서 정식으로 분리되었다. 후에 쌍용자동차(주)는 2005년 중국 국영자동차회사인 상하이자동차 그룹에 인수되어, 미국발 금융 위기로 인한 판매 부진이 계속 거듭되면서 2009년 쌍용자동차(주)의 경영권을 포기하고 한국 시장에 철수하였다. 2009년 쌍용자동차(주)는 법정관리 체제에 들어갔으며, 구조조정에 따른 대규모 정리해고 사태로 노사간의 첨예한 대립까지 위태로울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다가 2010년 말 인도의 마힌드라 자동차에 인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건설, 무역

1999년 워크아웃으로 (주)대우지스틱스가 먼저 분사되었으며, 2000년 12월 모기업 (주)대우가 3개사로 재탄생한다. 청산을 위한 (주)대우 존속법인과 무역부문의 (주)대우인터내셔널, 건설부문의 (주)대우건설로 나뉜다.

(주)대우인터내셔널은 대우의 모태사업인 무역은 물론 백화점 등 사업도 하고 있다. 2010년 포스코에 인수되었고, 지금의 포스코대우로 재출범한다. 백화점 사업은 2014년 롯데쇼핑(주)에서 인수하여 롯데백화점 마산점이 되었다.

(주)대우건설은 워크아웃을 단기에 졸업했으며 2006년 12월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인수되었다. 그러나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무리한 인수합병으로 인한 후유증에 세계 금융위기까지 겪으며 극심한 자금난을 겪자, 2010년 (주)대우건설에 대한 경영권을 포기하였고, 2011년 1월에 금호아시아나 계열에서 정식으로 분리되었다. 현재 최대주주는 한국산업은행이다.

대우그룹의 또다른 건설회사였던 경남기업(주)는 성완종이 이끄는 충남지역 건설사인 대아건설(주)에 인수되었다가 2004년에 대아건설(주)을 합병하면서 국내 10위권의 대형 건설사로 성장가도를 달린다. 2009년 대한민국 건설사들의 잇따른 경영난으로 워크아웃을 재차 겪지만, 실적 개선 등에 힘입어 2011년 5월 워크아웃을 졸업하는데 성공한다. 2015년 하지만 건설업계 불황이 장기화되고 기업의 오너(Owner)인 성완종이 자원외교비리수사에 연루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2015년 4월 마침내 경남기업은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만다. 2017년 sm그룹이 인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중공업, 조선

2000년 대우중공업(주)도 대우종합기계(주), 대우조선공업(주) 그리고 대우중공업(주) 잔존법인으로 분할되었다.

주력부문이었던 중장비 및 군수물자 생산을 담당하는 대우종합기계(주)는 2005년두산 계열로 편입, 두산인프라코어(주)로 재탄생하였다.

대우중공업의 조선해양부문은 대우조선공업 주식회사로 분사되었다가 곧 대우조선해양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한다. 2000년대 조선업계의 호황으로 대우의 계열사 중 가장 먼저 워크아웃을 졸업한 회사로도 주목받았고, 조선업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을 기반으로 건설, 상조사업 등에도 진출하며 자체적으로 조선사업 중심의 기업집단을 일구었다. 2000년 출범한 이래 수년간 경쟁업체인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과 함께 선박 수주잔량으로 세계 수위권을 다투왔지만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변곡점으로 대우조선해양은 2010년대 중반에 이르러 조선업황의 악화로 존폐의 기로에 놓여있는 상태이다.

대우중공업이 3개사로 분할되기 전인 1999년 7월에는 철도차량 생산부문이 경쟁사인 현대정공(주), 한진중공업(주)와 함께 현물출자 형식으로 단일법인을 설립함으로써 국내 유일의 철차제작업체인 한국철도차량주식회사가 탄생하였다. 하지만 대우종합기계(주)가 승계받은 한국철도차량(주)의 지분은 경영정상화를 위해 2001년현대자동차그룹에 전량 매각됨으로써 주식회사 로템(現 현대로템(주))으로 재출범한다.

대우중공업(주)의 항공사업부문도 1999년 8월삼성항공산업(주), 현대우주항공(주)과 통합하여 새로이 한국항공우주산업(주)로 출범하였지만, 대우중공업의 지분을 인계받은 두산그룹의 DIP홀딩스에서는 2016년 한국항공우주산업의 보유지분을 전부 정리하였다.

전자, 통신

한때 세계 각국의 생산기지를 설치하며 세계적인 전자기업을 표방해 오던 대우전자(주)는 1999년 워크아웃 대상기업으로 지정되었고, 2000년 4월 대우전자 중심의 기업집단을 구축하고 비수익 사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피아노 사업을 담당하는 벨로체, 컴퓨터 사업을 담당하는 대우루컴즈, 가스보일러 사업을 담당하는 대우가스보일러 등이 독립된 업체로 분리되었다. 2002년 대우전자의 TV, 백색가전 등 주력 핵심사업부문이 대부분 대우모터공업 주식회사로 인계되어 이듬해인 2003년에 (주)대우일렉트로닉스로 재출범하였다. 이후에도 2008년 대우디스플레이 등이 분리되어 대우일렉트로닉스는 사실상 백색가전 전문업체가 되었다. 2013년 동부그룹이 인수함으로써 동부대우전자 주식회사로 이름이 바뀌다가 2018년 대유그룹이 인수하여 주식회사 대우전자로 부활하였다. 2019년 주식회사 위니아대우 로 이름이 바꿔다가 2020년 주식회사 위니아전자로 이름이 바꿨다.

대우전자부품도 1999년 대우그룹 구조조정으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대상으로 지정되었다. 2000년 4월 대우그룹에서 분리되었다.2008년 회생절차개시 결정을 받았고, 2010년 2월 회생절차 종결 결정을 받았다. 그 후 현대자동차의 1차 협력그룹인 아진그룹이 인수했다.

대우통신(주)은 정상화를 위해 통신 관련사업부문을 매각하여 컴퓨터사업은 대우컴퓨터에 양도하였으며 그밖에 사업부문은 대우텔레텍, 대우글로벌 그리고 1999년 합병된 대우정밀공업 계열의 업체들은 대우정밀, 대우파워트레인, 대우프라스틱 등으로 분사되었다.

대우정밀(주)은 에스엔티(S&T그룹)에 인수되어 현재 S&T모티브로 운영 중이며 대우파워트레인(주)은 GM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컴퍼니(지금의 한국지엠주식회사)에 매각되었고, 대우프라스틱(주)는 삼라마이다스그룹(SM그룹)으로 매각된 후 대우라이프(주)로 바뀌었다가 계열사인 남선알미늄(주)에 합병되었다.

전자 계열사였던 오리온전기(주), 한국전기초자(주), 광전자(주) 등도 워크아웃을 맞아 자취를 감추거나 독자생존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금융

대우증권(주)는 1999년 대우가 해체되기 전 채권단이 인수하였으며 후에 대주주가 한국산업은행으로 변경된다. 2009년에는 한국산업은행의 민영화에 따라 새로이 출범한 KDB금융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2015년에는 미래에셋금융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2001년 8월 (주)다이너스카드클럽코리아는 현대자동차(주)에 매각되어 현대카드(주)로 변경되었다.

대우캐피탈(주)는 아주그룹에 편입되어 아주캐피탈(주)로 바뀌었다.

스포츠

대우그룹에서 운영 중이던 부산 대우 로얄즈현대산업개발에 매각, 인천 대우 제우스신세기통신에 매각되고 인천 신세기 빅스로 변경하며 현재 부산 아이파크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미디어

케이블 채널 중에서 대우시네마네트워크는 동양그룹에 매각되어 OCN(현재 CJ 산하)으로 변경되었다.

같이 보기

건설, 무역

자동차

중공업

전자

금융

기타

  • 대우엔지니어링 → 포스코엔지니어링 (1990년 계열 분리 → 2002년 포스코에 인수)
  • 신성통상 (1984년 계열 분리 → 2002년 가나안에서 인수)
  • 대창기업
  • (주)고려 → SG고려 (구 고려피혁공업주식회사 → 2003년 (주)가로수닷컴에 인수)
  • 세계물산 → SG위카스 → SG세계물산 (2002년 SK글로벌에 인수 → 2005년 (주)가로수닷컴에 인수)
  • 대우시네마네트워크 → (주)오리온시네마네트워크 (1999년 동양그룹에 인수되어 별도법인인 온미디어 설립 → 2010년 CJ에 인수 → 2013년 CJ ENM에 흡수 합병)
  • 부산 대우 로얄즈 → 부산 아이파크 (2000년 현대산업개발에 인수)
  • 인천 대우 제우스 → 인천 신세기 빅스 (1999년 신세기통신에 인수)

외부 링크

각주

  1. 대우그룹, 쌍용自인수로 재계순위‘3위’《문화일보》1997년 12월 9일 김병직 기자

대우그룹
Daewoo Group
형태대기업집단(1989년~1999년)
창립1967년 3월 22일 (대우실업 주식회사)
창립자김우중(대표이사 회장)
산업 분야자동차, 전자, 조선, 건설
해체1999년 11월 1일
본사 소재지대우센터빌딩(1977년~1999년)
사업 지역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핵심 인물
김우중(대표이사 회장)
매출액분식회계로 정확히 추산불가
영업이익
-4조원(1999년 기준)
자산총액자본 약 15조 부채 89조
주요 주주김우중
모기업(주)대우
계열사대우전자, 대우건설, 대우자동차, 대우조선, 대우증권, 쌍용자동차
자본금5,000,000원(1967년 기준)

대우그룹(大宇─, Daewoo Group)은 1967년 창립한 대우실업을 모태로 1980년대부터 1990년대 말까지 존재한 대한민국의 대규모 기업집단이었다.[1] 대도섬유의 대(大)와 김우중의 우(宇)를 따서 만들었다. 섬유·무역·건설·조선·중장비·자동차·전자·통신·관광·금융 등 여러 사업부문을 두었으며, 1993년 세계경영 전략 채택 이후 강력한 외형확장으로 사세를 넓혀갔고 1998년에는 현대그룹에 이어 재계 2위에 올랐으나 외환위기 이후, 자체 구조조정 실패와 1999년 삼성과의 전자-자동차 빅딜 실패로 1999년 10월부터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그룹 해체를 맞았다.

기업연혁

과거 대우그룹의 본사였던 서울스퀘어.

대우는 1967년 소규모 사업체로 창업하였으나, 1970년대 경제성장 및 수출호조에 따른 비약적인 발전, 그리고 정부 주도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에 힘입어 단기간에 대한민국 최대기업으로서 성장을 이루게 된다. 대우는 1980년대 후반부터 대한민국 외 국가로 눈을 돌려 동유럽 및 신흥시장 개척을 추진해 왔고, 1993년 세계경영에 나서면서 사세확장을 시도하였다. 이후 외환위기 속에서도 1997년 법정관리에 들어간 쌍용자동차를 인수하였다. 98년 상반기에는 현대그룹에 이은 (자산총액기준) 재계 2위에 올랐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출범이후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자체적 구조조정 실패와 무리한 차입금이 발목을 잡았고 1998년 10월, 대우그룹이 신청한 기업어음(CP)발행이 중단되면서 그룹 위기가 찾아왔다. 1999년이 되면서 삼성그룹과의 대우전자-삼성자동차의 빅딜협상에 들어갔으나 동년 7월, 협상이 결렬되었다. 이후 김우중 회장은 자동차를 중심으로 그룹 구조조정에 뒤늦게 들어갔으나 대우그룹 채권단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1999년 10월, 그룹 해체 수순을 밟았다.

성장

1967년 대우실업 창립 이래, 부산에 공장을 설치하여 1970년대 와이셔츠 등의 봉제품 및 섬유제품의 수출호조와 더불어 경제고도성장으로 급속한 발전을 이루어 신흥 사업체로 주목받았고, 더욱이 정부가 주도하던 경제 정책에 발맞춰 금융, 전자, 중공업, 자동차 사업에도 뛰어들면서 대우 그룹을 형성하게 된다.

  • 1967년 3월 22일 모태인 대우실업(주)(대우가족) 창립. (섬유류 봉제품 생산, 수출 주도)
  • 1969년 8월 대한민국 기업 해외지사 1호 시드니에 개설.
  • 1971년 9월 (주)내쇼날의류 설립.
  • 1972년 9월 고려피혁(주) 인수.
  • 1973년 쌍미섬유공업(주) 인수. 대우증권의 전신 동양증권(주) 인수. 대우건설(주) 설립.
  • 1975년 2월 대우빌딩 착공.
  • 1975년 5월 대우실업(주), 종합무역상사 지정.
  • 1976년 2월 한국기계공업(주) 인수. 10월 해외건설업면허 취득. 대우중공업(주) 출범.
  • 1977년 대우센터 빌딩 준공. 8월 제철화학(주) 경영권 인수.
  • 1978년 7월 산업은행으로부터 새한자동차(주) 지분 인수. 대한조선공사 옥포조선소 인수 후 9월 대우조선공업(주) 설립.

도약기

대우 그룹은 (주)대우의 출범과 새한자동차 경영권 장악, 가전사업 진출을 잇달아 성사시키며 현대(現代), 삼성(三星), 럭키금성(LG)과 함께 대한민국 4대 기업군으로 성장한다. 국내 업체들과의 출혈 경쟁에서 기술력과 수익성의 한계를 느낀 대우는 세계로 눈을 돌려 냉전체제의 완화가 도래한 시점에 동유럽 및 공산권 국가에 현지법인을 설립하면서 신시장 개척을 준비하였다.

  • 1981년 10월 옥포조선소 준공. 수출의날 15억불탑 수상. 대우실업(주) 및 대우개발(주) 합병 결의.
  • 1982년 모기업 (주)대우 출범. 수출의날 20억불탑 수상.
  • 1983년 대우자동차(주) 출범. 대우전자(주)에서 대한전선(주)의 가전부문을 흡수. 대우통신(주) 설립.
  • 1984년 경남기업(주) 경영 참여. (주)대우경제연구소 설립. 10월 대우자동차부품(주) 설립. 대한민국 최초 VTR 수출.
  • 1986년 대우증권 런던사무소 개설. 9월 경남기업(주) 계열 편입.
  • 1987년 미얀마 현지 철도차량공장 준공.
  • 1988년 (주)대우 동베를린지사 설치. 대우투자자문(주) 설립. 프랑스 롱위 전자레인지 공장 건립. 대우증권 홍콩사무소 개설.
  • 1989년 제철화학 외 3개사 매각. 대우정보시스템 설립. 대우기전공업㈜ 출범. MHB-Daewoo Bank 설립.
  • 1990년 (주)대우 모스크바지사 설치. 대우중공업(주) 유럽현지법인 설립. 멕시코 컬러TV 공장 건립.
  • 1991년 (주)대우 북경지사 설치. 대우증권(주) 유럽현지법인 설립, 취리히사무소 개설.
  • 1992년 4월 佛 컬러TV 공장 건립. 佛 컴퓨터 판매법인 설립. 대우증권 美 현지법인 설립. 대우차-GM 제휴관계 청산.

팽창기

(주)대우가 구축한 세계무역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대우자동차(주), 대우중공업(주), 대우전자(주)가 국제적으로 널리 진출하는 '세계경영'은 1993년 '세계경영 우리기술' 슬로건 선포를 시점으로 본격화되었다. 대우가 당시 내세웠던 세계경영은 선진업체가 진출하지 않은 옛 공산권 국가와 앞으로 발전가능성이 무한한 개발도상국 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것으로, 현지법인 설립과 인수합병을 통해 단기간에 정착하여 사세확장을 꾀하는 형태이다. 실제로 대우가 진출을 시도한 개발도상국가의 정부에서는 자국의 경제활성화 목적에서 대우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기에, 대우의 사업확장은 더욱 쉽게 이뤄질 수 있었다. 대한민국 시장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대우자동차(주)의 경우는 대한민국 외 국가에서 판매하는 수량이 대한민국에서 판매하는 수량을 앞지르는 현상을 가져오기도 했다. 이같은 대우의 급속한 성장은 대한민국 경제계와 대한민국 외 국가 경제에 큰 반향을 가져다 주었다.

  • 1993년 1월 대우자판 설립.
  • 1993년 2월 베트남 합작은행 출자.
  • 1993년 3월 세계경영 선포.
  • 1993년 5월 우즈벡 가전 공장 설립.
  • 1993년 7월 대우중공업(주) 미국현지법인 DEC 설립.
  • 1993년 8월 폴란드 TV 공장 설립.
  • 1993년 9월 세계최초 공기방울 세탁기 개발.
  • 1994년 2월 대우할부금융 설립.
  • 1994년 3월 인도 합작증권사 CRB-Daewoo Securities Ltd 출자.
  • 1994년 5월 대우자동차(주) 영국 워딩 자동차 기술연구소 건립.
  • 1994년 6월 대우중공업 영국현지법인 유로 대우 UK 설립.
  • 1994년 10월 대우중공업(주) 대우조선공업 흡수 합병. 중국현지법인 대우중공업연대유한공사 설립.
  • 1994년 11월 루마니아 자동차합작공장 DAEWOO-RODAE 설립. 대우중공업(주) 러시아 기술연구소 DISK 설립.
  • 1995년 1월 대우중공업(주) 독일 현지법인 ECO 설립. 대우전자(주) 말레이시아 세탁기 공장 설립. 대우뱅크 출범.
  • 1995년 2월 대우중공업(주) 일본 현지법인 대우건기 설립.
  • 1995년 3월 체코 최대 국영상용차업체 AVIA사 인수. 대우증권(주) 홍콩현지법인 설립.
  • 1995년 4월 대우증권(주) 상해사무소 개설.
  • 1995년 5월 대한민국 기업 최초, 대북 협력사업 정부승인 획득.
  • 1995년 6월 다이너스카드사 인수.
  • 1995년 7월 동우개발(주)의 사명을 (주)대우개발로 변경.
  • 1995년 9월 베트남 하노이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우즈벡 공화국에 교환기합작공장 알로카대우 설립.
  • 1995년 10월 중국천진 팩스밀리 합작공장 설립.
  • 1995년 11월 베트남 최초 타포린 합작생산 공장 준공. 폴란드 최대 자동차기업 FSO 인수, DAEWOO-FSO 출범.
  • 1996년 3월 대우증권(주) 싱가폴사무소 개설. 루마니아 DAEWOO-RODAE 공장 준공.
  • 1996년 5월 남북경협 최초회사 민족산업총회사 남포에 설립. 앙골라 대규모 유전발견.
  • 1996년 6월 프랑스 롱위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인도뉴델리 첨단 소프트웨어 연구개발센타 설립. 페루육상 유전인수 입찰수주.
  • 1996년 7월 한진투자증권 합작 법인 서울투신운용(주) 설립. 우크라이나 대용량교환기 합작공장 드니프로-대우 설립.
  • 1996년 10월 대우증권(주) 동경지점 개점. UZ-Daewoo 자동차 공장 준공. 베트남 비담코 자동차 공장 준공.
  • 1996년 11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중국 광케이블 합작회사 우시-대우 설립. 루마니아 합작은행 설립.
  • 1997년 3월 우즈베키스탄 대우은행 (Uz-Daewoo Bank) 설립.
  • 1997년 4월 인도 종합 가전공장 설립. 군산 종합 자동차공장 준공.
  • 1997년 5월 인도 CRB증권 대우파이낸스로 상호 변경. 대우선물(주) 설립.
  • 1997년 6월 대우증권(주) 싱가포르 현지법인 설립.
  • 1997년 7월 대우리스 체코에 설립.
  • 1997년 9월 대우자동차(주) 우크라이나 합작공장 설립계약 체결.
  • 1997년 12월 한국전기초자(주) 인수.

해체

대우는 세계경영으로 철저히 현지화를 추구함으로써 1993년 당시 150여개에 불과했던 대한민국 외 국가 현지법인을 1998년 11월에는 396개로 끌어올리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대우는 1997년 다가온 경제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물로 나온 쌍용자동차(주)를 인수하여 소형차에서 대형차는 물론, 버스와 트럭, 사륜구동 SUV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차량을 생산하는 풀라인업을 완성시키고 그 밖에도 해외 현지공장 인수 및 확장을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대우는 1998년 삼성(三星)을 제치고 재계서열 2위까지 뛰어오른다.

  • 1998년 3월 30일 대우자동차(주), 쌍용자동차(주) 인수.
  • 1998년 5월 스페인 냉장고 공장 설립.
  • 1998년 6월 우크라이나 자동차 법인 AUTOZAZ-DAEWOO 공장 본격 가동.
  • 1998년 7월 미국 Fortune 선정 매출 500대 기업 중 세계 18위의 기업으로 도약.
  • 1998년 10월 대우중공업(주) 이집트공장 준공.
  • 1998년 11월 무역의 날 150억불 수출의 탑 수상.

그러나 경기침체의 장기화와 세계 시장의 위축으로 대우의 입지는 크게 흔들렸고, 개발도상국가 위주로 판매망을 확대해온 대우자동차의 부진이 거듭되었다. 경영여건이 안정되지 못한 상황에서 추진한 쌍용자동차의 인수도 큰 실익을 거두지 못하였고, 외형확대의 초점을 맞추어 경영해오다보니 당시 정부가 요구했던 구조조정에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오다보니 구조조정의 실시가 경쟁 그룹에 비해 늦은 편이었다. 정부 주도의 산업체계 개편에 따라 늦게나마 추진한 대우전자-삼성자동차 빅딜협상은 양사간 입장차이로 끝내 결렬되었으며, 1999년 여름에 접어들면서 그룹의 운명을 좌우할 대우와 GM과의 협상(대우차와의 경영권 문제)마저도 실패한 대우는 급속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자금난이 가중되던 대우는 알짜자산인 힐튼호텔 매각 등을 성사시키기도 하지만 1999년 3월에는 이미 부채 비율을 무려 400%를 훨씬 넘은 상태여서 수습이 어려운 지경이었다. 7월 대우는 초고강도 구조조정안을 발표하였으나 채권단은 이를 반려한다. 결국 대우는 1999년 8월 16일 채권단의 재무구조개선수정약정 체결과 더불어, 26일 채권단 관리하에 워크아웃을 맞이함으로써 그룹 해체의 길로 접어든다. 지난 1967년 창업 이래 32년간 대한민국에 경쟁성장의 견인차로 역할을 해오던 기업 중 하나로서, 1993년 세계경영을 선포한지 6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 1998년 11월 대우그룹 1차 구조조정안 발표.
  • 1998년 12월 대우전자(주) 및 삼성자동차(주) 빅딜 발표. (사업맞교환)
  • 1999년 4월 19일 대우 2차 구조조정안 발표. (대우 조선, 상용차, 힐튼호텔 등 매각)
  • 1999년 6월 30일 삼성자동차 워크아웃 돌입.
  • 1999년 7월 16일 대우그룹 구조조정안 발표. (자동차 전문그룹으로의 재탄생)
  • 1999년 8월 3일 제일은행 등 채권단 구조조정안 반려.
  • 1999년 8월 16일 대우 채권단, 재무구조개선수정약정 체결.
  • 1999년 8월 26일 (주)대우, 대우중공업(주), 대우자동차(주), 대우전자(주) 등 12개 회사 워크아웃 돌입.
  • 1999년 8월 30일 대우증권(주) 계열 분리, 채권단으로 이양.
  • 1999년 10월 김우중 회장, 중국 옌타이 대우자동차 부품공장 준공식 참석.
  • 1999년 11월 1일 대우 회장 및 대우그룹 사장단 퇴진.
  • 2000년 4월 15일 대규모기업집단 지정 제외.

한 때 세계 경영의 첨병으로 불렸던 대우의 몰락은 경제계에 큰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대우사태는 당대 큰 기업은 절대 흥한다는 '대마불사'의 신화를 깨고 차입경영을 일삼는 부실기업을 과감하게 퇴출시킨 사례로 건실한 기업풍토 조성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이 있는 반면, 대우가 밝혀지지 않은 요인(정치적 문제 또는 국제적 외압)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여론도 일부 존재하고 있어 지금도 눈길을 끈다.

구 대우그룹 계열사

현재 대우의 계열사들은 그룹 해체 후 자립 혹은 새로운 기업의 인수를 통해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그룹이 해체된 이후에도 포스코대우, 대우건설, 대우조선해양 등 몇몇 회사들은 여전히 대우의 이름을 유지하며 성공적으로 영업 중이다.

자동차 사업

대우가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자동차 사업은 1997년 신차 출시, 1998년 쌍용자동차 인수에 따른 사세 확장으로 대한민국 시장에서 호조를 거두었으나 부채 누적으로 인한 만성적인 적자로, 대우그룹 핵심 계열사들이 워크아웃에 돌입하면서 완전히 공중분해되고 말았다.

대우자동차(주)는 포드, 제너럴 모터스(GM) 등 두 양사간의 해외 매각 의사를 타진하였으나 최종적으로 협상이 모두 결렬되었으며, 대우자동차(주)는 경영 정상화 실패로 인해 2000년 11월 10일인천지방법원에 법정관리(정리절차) 개시 신청을 냈고, 노사가 극적으로 노사협의회 합의문에 합의한 후, 회사 측의 자구의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여, 법정관리 개시 결정이 내려졌다.

대우자동차는 GM 매각을 위한 구조조정 계획의 일환으로, 9992억 원의 자구계획을 마련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가 인력을 7300여 명 줄이고 재료비, 경상비, 투자비 등을 대폭 감축했으며, 부평공장 생산직 직원 1750명이 강제로 거리로 내몰리는 역대 최대 규모의 정리해고가 김대중 정부 출범 당시에 근로기준법 개정 이후, 2001년 2월초에 단행되기도 했다.

미국 GM이 2001년 6월초에 대우차 인수 의향서를 제출하여, 이듬해인 2002년 10월 28일에 GM대우(현 한국지엠)라는 외국계 기업으로 새롭게 출범했고, 대한민국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확대에 실패하여 고전을 계속하였던 GM대우는 글로벌 GM의 전략적 요충지로 키우기 위해서 2011년 1월 쉐보레 브랜드로의 흡수 통합을 선언하였으며, 2011년 한국GM(주)가 새롭게 출범하였다.

GM이 인수하지 않은 버스부문, 상용차부문, 부평공장은 대우버스(주), 대우상용차(주), 대우인천자동차(주)로 분할, 매각되었다.

대우자동차(주)의 버스부문인 대우버스(주)는 영안모자에 매각되었고, 트럭을 생산하는 상용차 부문은 인도 최대의 재벌인 타타(TATA)에 매각되어 타타대우상용차(주)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대우그룹 시절 대우자동차와의 합병을 계획하였던 쌍용자동차(주)는 대우그룹의 구조조정 당시 대우차와의 분리 매각이 결정되면서 2000년 4월 대우 계열에서 정식으로 분리되었다. 후에 쌍용자동차(주)는 2005년 중국 국영자동차회사인 상하이자동차 그룹에 인수되어, 미국발 금융 위기로 인한 판매 부진이 계속 거듭되면서 2009년 쌍용자동차(주)의 경영권을 포기하고 한국 시장에 철수하였다. 2009년 쌍용자동차(주)는 법정관리 체제에 들어갔으며, 구조조정에 따른 대규모 정리해고 사태로 노사간의 첨예한 대립까지 위태로울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다가 2010년 말 인도의 마힌드라 자동차에 인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건설, 무역

1999년 워크아웃으로 (주)대우지스틱스가 먼저 분사되었으며, 2000년 12월 모기업 (주)대우가 3개사로 재탄생한다. 청산을 위한 (주)대우 존속법인과 무역부문의 (주)대우인터내셔널, 건설부문의 (주)대우건설로 나뉜다.

(주)대우인터내셔널은 대우의 모태사업인 무역은 물론 백화점 등 사업도 하고 있다. 2010년 포스코에 인수되었고, 지금의 포스코대우로 재출범한다. 백화점 사업은 2014년 롯데쇼핑(주)에서 인수하여 롯데백화점 마산점이 되었다.

(주)대우건설은 워크아웃을 단기에 졸업했으며 2006년 12월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인수되었다. 그러나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무리한 인수합병으로 인한 후유증에 세계 금융위기까지 겪으며 극심한 자금난을 겪자, 2010년 (주)대우건설에 대한 경영권을 포기하였고, 2011년 1월에 금호아시아나 계열에서 정식으로 분리되었다. 현재 최대주주는 한국산업은행이다.

대우그룹의 또다른 건설회사였던 경남기업(주)는 성완종이 이끄는 충남지역 건설사인 대아건설(주)에 인수되었다가 2004년에 대아건설(주)을 합병하면서 국내 10위권의 대형 건설사로 성장가도를 달린다. 2009년 대한민국 건설사들의 잇따른 경영난으로 워크아웃을 재차 겪지만, 실적 개선 등에 힘입어 2011년 5월 워크아웃을 졸업하는데 성공한다. 2015년 하지만 건설업계 불황이 장기화되고 기업의 오너(Owner)인 성완종이 자원외교비리수사에 연루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2015년 4월 마침내 경남기업은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만다. 2017년 sm그룹이 인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중공업, 조선

2000년 대우중공업(주)도 대우종합기계(주), 대우조선공업(주) 그리고 대우중공업(주) 잔존법인으로 분할되었다.

주력부문이었던 중장비 및 군수물자 생산을 담당하는 대우종합기계(주)는 2005년두산 계열로 편입, 두산인프라코어(주)로 재탄생하였다.

대우중공업의 조선해양부문은 대우조선공업 주식회사로 분사되었다가 곧 대우조선해양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한다. 2000년대 조선업계의 호황으로 대우의 계열사 중 가장 먼저 워크아웃을 졸업한 회사로도 주목받았고, 조선업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을 기반으로 건설, 상조사업 등에도 진출하며 자체적으로 조선사업 중심의 기업집단을 일구었다. 2000년 출범한 이래 수년간 경쟁업체인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과 함께 선박 수주잔량으로 세계 수위권을 다투왔지만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변곡점으로 대우조선해양은 2010년대 중반에 이르러 조선업황의 악화로 존폐의 기로에 놓여있는 상태이다.

대우중공업이 3개사로 분할되기 전인 1999년 7월에는 철도차량 생산부문이 경쟁사인 현대정공(주), 한진중공업(주)와 함께 현물출자 형식으로 단일법인을 설립함으로써 국내 유일의 철차제작업체인 한국철도차량주식회사가 탄생하였다. 하지만 대우종합기계(주)가 승계받은 한국철도차량(주)의 지분은 경영정상화를 위해 2001년현대자동차그룹에 전량 매각됨으로써 주식회사 로템(現 현대로템(주))으로 재출범한다.

대우중공업(주)의 항공사업부문도 1999년 8월삼성항공산업(주), 현대우주항공(주)과 통합하여 새로이 한국항공우주산업(주)로 출범하였지만, 대우중공업의 지분을 인계받은 두산그룹의 DIP홀딩스에서는 2016년 한국항공우주산업의 보유지분을 전부 정리하였다.

전자, 통신

한때 세계 각국의 생산기지를 설치하며 세계적인 전자기업을 표방해 오던 대우전자(주)는 1999년 워크아웃 대상기업으로 지정되었고, 2000년 4월 대우전자 중심의 기업집단을 구축하고 비수익 사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피아노 사업을 담당하는 벨로체, 컴퓨터 사업을 담당하는 대우루컴즈, 가스보일러 사업을 담당하는 대우가스보일러 등이 독립된 업체로 분리되었다. 2002년 대우전자의 TV, 백색가전 등 주력 핵심사업부문이 대부분 대우모터공업 주식회사로 인계되어 이듬해인 2003년에 (주)대우일렉트로닉스로 재출범하였다. 이후에도 2008년 대우디스플레이 등이 분리되어 대우일렉트로닉스는 사실상 백색가전 전문업체가 되었다. 2013년 동부그룹이 인수함으로써 동부대우전자 주식회사로 이름이 바뀌다가 2018년 대유그룹이 인수하여 주식회사 대우전자로 부활하였다. 2019년 주식회사 위니아대우 로 이름이 바꿔다가 2020년 주식회사 위니아전자로 이름이 바꿨다.

대우전자부품도 1999년 대우그룹 구조조정으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대상으로 지정되었다. 2000년 4월 대우그룹에서 분리되었다.2008년 회생절차개시 결정을 받았고, 2010년 2월 회생절차 종결 결정을 받았다. 그 후 현대자동차의 1차 협력그룹인 아진그룹이 인수했다.

대우통신(주)은 정상화를 위해 통신 관련사업부문을 매각하여 컴퓨터사업은 대우컴퓨터에 양도하였으며 그밖에 사업부문은 대우텔레텍, 대우글로벌 그리고 1999년 합병된 대우정밀공업 계열의 업체들은 대우정밀, 대우파워트레인, 대우프라스틱 등으로 분사되었다.

대우정밀(주)은 에스엔티(S&T그룹)에 인수되어 현재 S&T모티브로 운영 중이며 대우파워트레인(주)은 GM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컴퍼니(지금의 한국지엠주식회사)에 매각되었고, 대우프라스틱(주)는 삼라마이다스그룹(SM그룹)으로 매각된 후 대우라이프(주)로 바뀌었다가 계열사인 남선알미늄(주)에 합병되었다.

전자 계열사였던 오리온전기(주), 한국전기초자(주), 광전자(주) 등도 워크아웃을 맞아 자취를 감추거나 독자생존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금융

대우증권(주)는 1999년 대우가 해체되기 전 채권단이 인수하였으며 후에 대주주가 한국산업은행으로 변경된다. 2009년에는 한국산업은행의 민영화에 따라 새로이 출범한 KDB금융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2015년에는 미래에셋금융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2001년 8월 (주)다이너스카드클럽코리아는 현대자동차(주)에 매각되어 현대카드(주)로 변경되었다.

대우캐피탈(주)는 아주그룹에 편입되어 아주캐피탈(주)로 바뀌었다.

스포츠

대우그룹에서 운영 중이던 부산 대우 로얄즈현대산업개발에 매각, 인천 대우 제우스신세기통신에 매각되고 인천 신세기 빅스로 변경하며 현재 부산 아이파크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미디어

케이블 채널 중에서 대우시네마네트워크는 동양그룹에 매각되어 OCN(현재 CJ 산하)으로 변경되었다.

같이 보기

건설, 무역

자동차

중공업

전자

금융

기타

  • 대우엔지니어링 → 포스코엔지니어링 (1990년 계열 분리 → 2002년 포스코에 인수)
  • 신성통상 (1984년 계열 분리 → 2002년 가나안에서 인수)
  • 대창기업
  • (주)고려 → SG고려 (구 고려피혁공업주식회사 → 2003년 (주)가로수닷컴에 인수)
  • 세계물산 → SG위카스 → SG세계물산 (2002년 SK글로벌에 인수 → 2005년 (주)가로수닷컴에 인수)
  • 대우시네마네트워크 → (주)오리온시네마네트워크 (1999년 동양그룹에 인수되어 별도법인인 온미디어 설립 → 2010년 CJ에 인수 → 2013년 CJ ENM에 흡수 합병)
  • 부산 대우 로얄즈 → 부산 아이파크 (2000년 현대산업개발에 인수)
  • 인천 대우 제우스 → 인천 신세기 빅스 (1999년 신세기통신에 인수)

외부 링크

각주

  1. 대우그룹, 쌍용自인수로 재계순위‘3위’《문화일보》1997년 12월 9일 김병직 기자

대우그룹
Daewoo Group
형태대기업집단(1989년~1999년)
창립1967년 3월 22일 (대우실업 주식회사)
창립자김우중(대표이사 회장)
산업 분야자동차, 전자, 조선, 건설
해체1999년 11월 1일
본사 소재지대우센터빌딩(1977년~1999년)
사업 지역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핵심 인물
김우중(대표이사 회장)
매출액분식회계로 정확히 추산불가
영업이익
-4조원(1999년 기준)
자산총액자본 약 15조 부채 89조
주요 주주김우중
모기업(주)대우
계열사대우전자, 대우건설, 대우자동차, 대우조선, 대우증권, 쌍용자동차
자본금5,000,000원(1967년 기준)

대우그룹(大宇─, Daewoo Group)은 1967년 창립한 대우실업을 모태로 1980년대부터 1990년대 말까지 존재한 대한민국의 대규모 기업집단이었다.[1] 대도섬유의 대(大)와 김우중의 우(宇)를 따서 만들었다. 섬유·무역·건설·조선·중장비·자동차·전자·통신·관광·금융 등 여러 사업부문을 두었으며, 1993년 세계경영 전략 채택 이후 강력한 외형확장으로 사세를 넓혀갔고 1998년에는 현대그룹에 이어 재계 2위에 올랐으나 외환위기 이후, 자체 구조조정 실패와 1999년 삼성과의 전자-자동차 빅딜 실패로 1999년 10월부터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그룹 해체를 맞았다.

기업연혁

과거 대우그룹의 본사였던 서울스퀘어.

대우는 1967년 소규모 사업체로 창업하였으나, 1970년대 경제성장 및 수출호조에 따른 비약적인 발전, 그리고 정부 주도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에 힘입어 단기간에 대한민국 최대기업으로서 성장을 이루게 된다. 대우는 1980년대 후반부터 대한민국 외 국가로 눈을 돌려 동유럽 및 신흥시장 개척을 추진해 왔고, 1993년 세계경영에 나서면서 사세확장을 시도하였다. 이후 외환위기 속에서도 1997년 법정관리에 들어간 쌍용자동차를 인수하였다. 98년 상반기에는 현대그룹에 이은 (자산총액기준) 재계 2위에 올랐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출범이후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자체적 구조조정 실패와 무리한 차입금이 발목을 잡았고 1998년 10월, 대우그룹이 신청한 기업어음(CP)발행이 중단되면서 그룹 위기가 찾아왔다. 1999년이 되면서 삼성그룹과의 대우전자-삼성자동차의 빅딜협상에 들어갔으나 동년 7월, 협상이 결렬되었다. 이후 김우중 회장은 자동차를 중심으로 그룹 구조조정에 뒤늦게 들어갔으나 대우그룹 채권단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1999년 10월, 그룹 해체 수순을 밟았다.

성장

1967년 대우실업 창립 이래, 부산에 공장을 설치하여 1970년대 와이셔츠 등의 봉제품 및 섬유제품의 수출호조와 더불어 경제고도성장으로 급속한 발전을 이루어 신흥 사업체로 주목받았고, 더욱이 정부가 주도하던 경제 정책에 발맞춰 금융, 전자, 중공업, 자동차 사업에도 뛰어들면서 대우 그룹을 형성하게 된다.

  • 1967년 3월 22일 모태인 대우실업(주)(대우가족) 창립. (섬유류 봉제품 생산, 수출 주도)
  • 1969년 8월 대한민국 기업 해외지사 1호 시드니에 개설.
  • 1971년 9월 (주)내쇼날의류 설립.
  • 1972년 9월 고려피혁(주) 인수.
  • 1973년 쌍미섬유공업(주) 인수. 대우증권의 전신 동양증권(주) 인수. 대우건설(주) 설립.
  • 1975년 2월 대우빌딩 착공.
  • 1975년 5월 대우실업(주), 종합무역상사 지정.
  • 1976년 2월 한국기계공업(주) 인수. 10월 해외건설업면허 취득. 대우중공업(주) 출범.
  • 1977년 대우센터 빌딩 준공. 8월 제철화학(주) 경영권 인수.
  • 1978년 7월 산업은행으로부터 새한자동차(주) 지분 인수. 대한조선공사 옥포조선소 인수 후 9월 대우조선공업(주) 설립.

도약기

대우 그룹은 (주)대우의 출범과 새한자동차 경영권 장악, 가전사업 진출을 잇달아 성사시키며 현대(現代), 삼성(三星), 럭키금성(LG)과 함께 대한민국 4대 기업군으로 성장한다. 국내 업체들과의 출혈 경쟁에서 기술력과 수익성의 한계를 느낀 대우는 세계로 눈을 돌려 냉전체제의 완화가 도래한 시점에 동유럽 및 공산권 국가에 현지법인을 설립하면서 신시장 개척을 준비하였다.

  • 1981년 10월 옥포조선소 준공. 수출의날 15억불탑 수상. 대우실업(주) 및 대우개발(주) 합병 결의.
  • 1982년 모기업 (주)대우 출범. 수출의날 20억불탑 수상.
  • 1983년 대우자동차(주) 출범. 대우전자(주)에서 대한전선(주)의 가전부문을 흡수. 대우통신(주) 설립.
  • 1984년 경남기업(주) 경영 참여. (주)대우경제연구소 설립. 10월 대우자동차부품(주) 설립. 대한민국 최초 VTR 수출.
  • 1986년 대우증권 런던사무소 개설. 9월 경남기업(주) 계열 편입.
  • 1987년 미얀마 현지 철도차량공장 준공.
  • 1988년 (주)대우 동베를린지사 설치. 대우투자자문(주) 설립. 프랑스 롱위 전자레인지 공장 건립. 대우증권 홍콩사무소 개설.
  • 1989년 제철화학 외 3개사 매각. 대우정보시스템 설립. 대우기전공업㈜ 출범. MHB-Daewoo Bank 설립.
  • 1990년 (주)대우 모스크바지사 설치. 대우중공업(주) 유럽현지법인 설립. 멕시코 컬러TV 공장 건립.
  • 1991년 (주)대우 북경지사 설치. 대우증권(주) 유럽현지법인 설립, 취리히사무소 개설.
  • 1992년 4월 佛 컬러TV 공장 건립. 佛 컴퓨터 판매법인 설립. 대우증권 美 현지법인 설립. 대우차-GM 제휴관계 청산.

팽창기

(주)대우가 구축한 세계무역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대우자동차(주), 대우중공업(주), 대우전자(주)가 국제적으로 널리 진출하는 '세계경영'은 1993년 '세계경영 우리기술' 슬로건 선포를 시점으로 본격화되었다. 대우가 당시 내세웠던 세계경영은 선진업체가 진출하지 않은 옛 공산권 국가와 앞으로 발전가능성이 무한한 개발도상국 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것으로, 현지법인 설립과 인수합병을 통해 단기간에 정착하여 사세확장을 꾀하는 형태이다. 실제로 대우가 진출을 시도한 개발도상국가의 정부에서는 자국의 경제활성화 목적에서 대우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기에, 대우의 사업확장은 더욱 쉽게 이뤄질 수 있었다. 대한민국 시장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대우자동차(주)의 경우는 대한민국 외 국가에서 판매하는 수량이 대한민국에서 판매하는 수량을 앞지르는 현상을 가져오기도 했다. 이같은 대우의 급속한 성장은 대한민국 경제계와 대한민국 외 국가 경제에 큰 반향을 가져다 주었다.

  • 1993년 1월 대우자판 설립.
  • 1993년 2월 베트남 합작은행 출자.
  • 1993년 3월 세계경영 선포.
  • 1993년 5월 우즈벡 가전 공장 설립.
  • 1993년 7월 대우중공업(주) 미국현지법인 DEC 설립.
  • 1993년 8월 폴란드 TV 공장 설립.
  • 1993년 9월 세계최초 공기방울 세탁기 개발.
  • 1994년 2월 대우할부금융 설립.
  • 1994년 3월 인도 합작증권사 CRB-Daewoo Securities Ltd 출자.
  • 1994년 5월 대우자동차(주) 영국 워딩 자동차 기술연구소 건립.
  • 1994년 6월 대우중공업 영국현지법인 유로 대우 UK 설립.
  • 1994년 10월 대우중공업(주) 대우조선공업 흡수 합병. 중국현지법인 대우중공업연대유한공사 설립.
  • 1994년 11월 루마니아 자동차합작공장 DAEWOO-RODAE 설립. 대우중공업(주) 러시아 기술연구소 DISK 설립.
  • 1995년 1월 대우중공업(주) 독일 현지법인 ECO 설립. 대우전자(주) 말레이시아 세탁기 공장 설립. 대우뱅크 출범.
  • 1995년 2월 대우중공업(주) 일본 현지법인 대우건기 설립.
  • 1995년 3월 체코 최대 국영상용차업체 AVIA사 인수. 대우증권(주) 홍콩현지법인 설립.
  • 1995년 4월 대우증권(주) 상해사무소 개설.
  • 1995년 5월 대한민국 기업 최초, 대북 협력사업 정부승인 획득.
  • 1995년 6월 다이너스카드사 인수.
  • 1995년 7월 동우개발(주)의 사명을 (주)대우개발로 변경.
  • 1995년 9월 베트남 하노이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우즈벡 공화국에 교환기합작공장 알로카대우 설립.
  • 1995년 10월 중국천진 팩스밀리 합작공장 설립.
  • 1995년 11월 베트남 최초 타포린 합작생산 공장 준공. 폴란드 최대 자동차기업 FSO 인수, DAEWOO-FSO 출범.
  • 1996년 3월 대우증권(주) 싱가폴사무소 개설. 루마니아 DAEWOO-RODAE 공장 준공.
  • 1996년 5월 남북경협 최초회사 민족산업총회사 남포에 설립. 앙골라 대규모 유전발견.
  • 1996년 6월 프랑스 롱위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인도뉴델리 첨단 소프트웨어 연구개발센타 설립. 페루육상 유전인수 입찰수주.
  • 1996년 7월 한진투자증권 합작 법인 서울투신운용(주) 설립. 우크라이나 대용량교환기 합작공장 드니프로-대우 설립.
  • 1996년 10월 대우증권(주) 동경지점 개점. UZ-Daewoo 자동차 공장 준공. 베트남 비담코 자동차 공장 준공.
  • 1996년 11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중국 광케이블 합작회사 우시-대우 설립. 루마니아 합작은행 설립.
  • 1997년 3월 우즈베키스탄 대우은행 (Uz-Daewoo Bank) 설립.
  • 1997년 4월 인도 종합 가전공장 설립. 군산 종합 자동차공장 준공.
  • 1997년 5월 인도 CRB증권 대우파이낸스로 상호 변경. 대우선물(주) 설립.
  • 1997년 6월 대우증권(주) 싱가포르 현지법인 설립.
  • 1997년 7월 대우리스 체코에 설립.
  • 1997년 9월 대우자동차(주) 우크라이나 합작공장 설립계약 체결.
  • 1997년 12월 한국전기초자(주) 인수.

해체

대우는 세계경영으로 철저히 현지화를 추구함으로써 1993년 당시 150여개에 불과했던 대한민국 외 국가 현지법인을 1998년 11월에는 396개로 끌어올리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대우는 1997년 다가온 경제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물로 나온 쌍용자동차(주)를 인수하여 소형차에서 대형차는 물론, 버스와 트럭, 사륜구동 SUV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차량을 생산하는 풀라인업을 완성시키고 그 밖에도 해외 현지공장 인수 및 확장을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대우는 1998년 삼성(三星)을 제치고 재계서열 2위까지 뛰어오른다.

  • 1998년 3월 30일 대우자동차(주), 쌍용자동차(주) 인수.
  • 1998년 5월 스페인 냉장고 공장 설립.
  • 1998년 6월 우크라이나 자동차 법인 AUTOZAZ-DAEWOO 공장 본격 가동.
  • 1998년 7월 미국 Fortune 선정 매출 500대 기업 중 세계 18위의 기업으로 도약.
  • 1998년 10월 대우중공업(주) 이집트공장 준공.
  • 1998년 11월 무역의 날 150억불 수출의 탑 수상.

그러나 경기침체의 장기화와 세계 시장의 위축으로 대우의 입지는 크게 흔들렸고, 개발도상국가 위주로 판매망을 확대해온 대우자동차의 부진이 거듭되었다. 경영여건이 안정되지 못한 상황에서 추진한 쌍용자동차의 인수도 큰 실익을 거두지 못하였고, 외형확대의 초점을 맞추어 경영해오다보니 당시 정부가 요구했던 구조조정에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오다보니 구조조정의 실시가 경쟁 그룹에 비해 늦은 편이었다. 정부 주도의 산업체계 개편에 따라 늦게나마 추진한 대우전자-삼성자동차 빅딜협상은 양사간 입장차이로 끝내 결렬되었으며, 1999년 여름에 접어들면서 그룹의 운명을 좌우할 대우와 GM과의 협상(대우차와의 경영권 문제)마저도 실패한 대우는 급속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자금난이 가중되던 대우는 알짜자산인 힐튼호텔 매각 등을 성사시키기도 하지만 1999년 3월에는 이미 부채 비율을 무려 400%를 훨씬 넘은 상태여서 수습이 어려운 지경이었다. 7월 대우는 초고강도 구조조정안을 발표하였으나 채권단은 이를 반려한다. 결국 대우는 1999년 8월 16일 채권단의 재무구조개선수정약정 체결과 더불어, 26일 채권단 관리하에 워크아웃을 맞이함으로써 그룹 해체의 길로 접어든다. 지난 1967년 창업 이래 32년간 대한민국에 경쟁성장의 견인차로 역할을 해오던 기업 중 하나로서, 1993년 세계경영을 선포한지 6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 1998년 11월 대우그룹 1차 구조조정안 발표.
  • 1998년 12월 대우전자(주) 및 삼성자동차(주) 빅딜 발표. (사업맞교환)
  • 1999년 4월 19일 대우 2차 구조조정안 발표. (대우 조선, 상용차, 힐튼호텔 등 매각)
  • 1999년 6월 30일 삼성자동차 워크아웃 돌입.
  • 1999년 7월 16일 대우그룹 구조조정안 발표. (자동차 전문그룹으로의 재탄생)
  • 1999년 8월 3일 제일은행 등 채권단 구조조정안 반려.
  • 1999년 8월 16일 대우 채권단, 재무구조개선수정약정 체결.
  • 1999년 8월 26일 (주)대우, 대우중공업(주), 대우자동차(주), 대우전자(주) 등 12개 회사 워크아웃 돌입.
  • 1999년 8월 30일 대우증권(주) 계열 분리, 채권단으로 이양.
  • 1999년 10월 김우중 회장, 중국 옌타이 대우자동차 부품공장 준공식 참석.
  • 1999년 11월 1일 대우 회장 및 대우그룹 사장단 퇴진.
  • 2000년 4월 15일 대규모기업집단 지정 제외.

한 때 세계 경영의 첨병으로 불렸던 대우의 몰락은 경제계에 큰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대우사태는 당대 큰 기업은 절대 흥한다는 '대마불사'의 신화를 깨고 차입경영을 일삼는 부실기업을 과감하게 퇴출시킨 사례로 건실한 기업풍토 조성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이 있는 반면, 대우가 밝혀지지 않은 요인(정치적 문제 또는 국제적 외압)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여론도 일부 존재하고 있어 지금도 눈길을 끈다.

구 대우그룹 계열사

현재 대우의 계열사들은 그룹 해체 후 자립 혹은 새로운 기업의 인수를 통해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그룹이 해체된 이후에도 포스코대우, 대우건설, 대우조선해양 등 몇몇 회사들은 여전히 대우의 이름을 유지하며 성공적으로 영업 중이다.

자동차 사업

대우가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자동차 사업은 1997년 신차 출시, 1998년 쌍용자동차 인수에 따른 사세 확장으로 대한민국 시장에서 호조를 거두었으나 부채 누적으로 인한 만성적인 적자로, 대우그룹 핵심 계열사들이 워크아웃에 돌입하면서 완전히 공중분해되고 말았다.

대우자동차(주)는 포드, 제너럴 모터스(GM) 등 두 양사간의 해외 매각 의사를 타진하였으나 최종적으로 협상이 모두 결렬되었으며, 대우자동차(주)는 경영 정상화 실패로 인해 2000년 11월 10일인천지방법원에 법정관리(정리절차) 개시 신청을 냈고, 노사가 극적으로 노사협의회 합의문에 합의한 후, 회사 측의 자구의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여, 법정관리 개시 결정이 내려졌다.

대우자동차는 GM 매각을 위한 구조조정 계획의 일환으로, 9992억 원의 자구계획을 마련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가 인력을 7300여 명 줄이고 재료비, 경상비, 투자비 등을 대폭 감축했으며, 부평공장 생산직 직원 1750명이 강제로 거리로 내몰리는 역대 최대 규모의 정리해고가 김대중 정부 출범 당시에 근로기준법 개정 이후, 2001년 2월초에 단행되기도 했다.

미국 GM이 2001년 6월초에 대우차 인수 의향서를 제출하여, 이듬해인 2002년 10월 28일에 GM대우(현 한국지엠)라는 외국계 기업으로 새롭게 출범했고, 대한민국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확대에 실패하여 고전을 계속하였던 GM대우는 글로벌 GM의 전략적 요충지로 키우기 위해서 2011년 1월 쉐보레 브랜드로의 흡수 통합을 선언하였으며, 2011년 한국GM(주)가 새롭게 출범하였다.

GM이 인수하지 않은 버스부문, 상용차부문, 부평공장은 대우버스(주), 대우상용차(주), 대우인천자동차(주)로 분할, 매각되었다.

대우자동차(주)의 버스부문인 대우버스(주)는 영안모자에 매각되었고, 트럭을 생산하는 상용차 부문은 인도 최대의 재벌인 타타(TATA)에 매각되어 타타대우상용차(주)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대우그룹 시절 대우자동차와의 합병을 계획하였던 쌍용자동차(주)는 대우그룹의 구조조정 당시 대우차와의 분리 매각이 결정되면서 2000년 4월 대우 계열에서 정식으로 분리되었다. 후에 쌍용자동차(주)는 2005년 중국 국영자동차회사인 상하이자동차 그룹에 인수되어, 미국발 금융 위기로 인한 판매 부진이 계속 거듭되면서 2009년 쌍용자동차(주)의 경영권을 포기하고 한국 시장에 철수하였다. 2009년 쌍용자동차(주)는 법정관리 체제에 들어갔으며, 구조조정에 따른 대규모 정리해고 사태로 노사간의 첨예한 대립까지 위태로울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다가 2010년 말 인도의 마힌드라 자동차에 인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건설, 무역

1999년 워크아웃으로 (주)대우지스틱스가 먼저 분사되었으며, 2000년 12월 모기업 (주)대우가 3개사로 재탄생한다. 청산을 위한 (주)대우 존속법인과 무역부문의 (주)대우인터내셔널, 건설부문의 (주)대우건설로 나뉜다.

(주)대우인터내셔널은 대우의 모태사업인 무역은 물론 백화점 등 사업도 하고 있다. 2010년 포스코에 인수되었고, 지금의 포스코대우로 재출범한다. 백화점 사업은 2014년 롯데쇼핑(주)에서 인수하여 롯데백화점 마산점이 되었다.

(주)대우건설은 워크아웃을 단기에 졸업했으며 2006년 12월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인수되었다. 그러나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무리한 인수합병으로 인한 후유증에 세계 금융위기까지 겪으며 극심한 자금난을 겪자, 2010년 (주)대우건설에 대한 경영권을 포기하였고, 2011년 1월에 금호아시아나 계열에서 정식으로 분리되었다. 현재 최대주주는 한국산업은행이다.

대우그룹의 또다른 건설회사였던 경남기업(주)는 성완종이 이끄는 충남지역 건설사인 대아건설(주)에 인수되었다가 2004년에 대아건설(주)을 합병하면서 국내 10위권의 대형 건설사로 성장가도를 달린다. 2009년 대한민국 건설사들의 잇따른 경영난으로 워크아웃을 재차 겪지만, 실적 개선 등에 힘입어 2011년 5월 워크아웃을 졸업하는데 성공한다. 2015년 하지만 건설업계 불황이 장기화되고 기업의 오너(Owner)인 성완종이 자원외교비리수사에 연루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2015년 4월 마침내 경남기업은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만다. 2017년 sm그룹이 인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중공업, 조선

2000년 대우중공업(주)도 대우종합기계(주), 대우조선공업(주) 그리고 대우중공업(주) 잔존법인으로 분할되었다.

주력부문이었던 중장비 및 군수물자 생산을 담당하는 대우종합기계(주)는 2005년두산 계열로 편입, 두산인프라코어(주)로 재탄생하였다.

대우중공업의 조선해양부문은 대우조선공업 주식회사로 분사되었다가 곧 대우조선해양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한다. 2000년대 조선업계의 호황으로 대우의 계열사 중 가장 먼저 워크아웃을 졸업한 회사로도 주목받았고, 조선업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을 기반으로 건설, 상조사업 등에도 진출하며 자체적으로 조선사업 중심의 기업집단을 일구었다. 2000년 출범한 이래 수년간 경쟁업체인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과 함께 선박 수주잔량으로 세계 수위권을 다투왔지만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변곡점으로 대우조선해양은 2010년대 중반에 이르러 조선업황의 악화로 존폐의 기로에 놓여있는 상태이다.

대우중공업이 3개사로 분할되기 전인 1999년 7월에는 철도차량 생산부문이 경쟁사인 현대정공(주), 한진중공업(주)와 함께 현물출자 형식으로 단일법인을 설립함으로써 국내 유일의 철차제작업체인 한국철도차량주식회사가 탄생하였다. 하지만 대우종합기계(주)가 승계받은 한국철도차량(주)의 지분은 경영정상화를 위해 2001년현대자동차그룹에 전량 매각됨으로써 주식회사 로템(現 현대로템(주))으로 재출범한다.

대우중공업(주)의 항공사업부문도 1999년 8월삼성항공산업(주), 현대우주항공(주)과 통합하여 새로이 한국항공우주산업(주)로 출범하였지만, 대우중공업의 지분을 인계받은 두산그룹의 DIP홀딩스에서는 2016년 한국항공우주산업의 보유지분을 전부 정리하였다.

전자, 통신

한때 세계 각국의 생산기지를 설치하며 세계적인 전자기업을 표방해 오던 대우전자(주)는 1999년 워크아웃 대상기업으로 지정되었고, 2000년 4월 대우전자 중심의 기업집단을 구축하고 비수익 사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피아노 사업을 담당하는 벨로체, 컴퓨터 사업을 담당하는 대우루컴즈, 가스보일러 사업을 담당하는 대우가스보일러 등이 독립된 업체로 분리되었다. 2002년 대우전자의 TV, 백색가전 등 주력 핵심사업부문이 대부분 대우모터공업 주식회사로 인계되어 이듬해인 2003년에 (주)대우일렉트로닉스로 재출범하였다. 이후에도 2008년 대우디스플레이 등이 분리되어 대우일렉트로닉스는 사실상 백색가전 전문업체가 되었다. 2013년 동부그룹이 인수함으로써 동부대우전자 주식회사로 이름이 바뀌다가 2018년 대유그룹이 인수하여 주식회사 대우전자로 부활하였다. 2019년 주식회사 위니아대우 로 이름이 바꿔다가 2020년 주식회사 위니아전자로 이름이 바꿨다.

대우전자부품도 1999년 대우그룹 구조조정으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대상으로 지정되었다. 2000년 4월 대우그룹에서 분리되었다.2008년 회생절차개시 결정을 받았고, 2010년 2월 회생절차 종결 결정을 받았다. 그 후 현대자동차의 1차 협력그룹인 아진그룹이 인수했다.

대우통신(주)은 정상화를 위해 통신 관련사업부문을 매각하여 컴퓨터사업은 대우컴퓨터에 양도하였으며 그밖에 사업부문은 대우텔레텍, 대우글로벌 그리고 1999년 합병된 대우정밀공업 계열의 업체들은 대우정밀, 대우파워트레인, 대우프라스틱 등으로 분사되었다.

대우정밀(주)은 에스엔티(S&T그룹)에 인수되어 현재 S&T모티브로 운영 중이며 대우파워트레인(주)은 GM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컴퍼니(지금의 한국지엠주식회사)에 매각되었고, 대우프라스틱(주)는 삼라마이다스그룹(SM그룹)으로 매각된 후 대우라이프(주)로 바뀌었다가 계열사인 남선알미늄(주)에 합병되었다.

전자 계열사였던 오리온전기(주), 한국전기초자(주), 광전자(주) 등도 워크아웃을 맞아 자취를 감추거나 독자생존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금융

대우증권(주)는 1999년 대우가 해체되기 전 채권단이 인수하였으며 후에 대주주가 한국산업은행으로 변경된다. 2009년에는 한국산업은행의 민영화에 따라 새로이 출범한 KDB금융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2015년에는 미래에셋금융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2001년 8월 (주)다이너스카드클럽코리아는 현대자동차(주)에 매각되어 현대카드(주)로 변경되었다.

대우캐피탈(주)는 아주그룹에 편입되어 아주캐피탈(주)로 바뀌었다.

스포츠

대우그룹에서 운영 중이던 부산 대우 로얄즈현대산업개발에 매각, 인천 대우 제우스신세기통신에 매각되고 인천 신세기 빅스로 변경하며 현재 부산 아이파크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미디어

케이블 채널 중에서 대우시네마네트워크는 동양그룹에 매각되어 OCN(현재 CJ 산하)으로 변경되었다.

같이 보기

건설, 무역

자동차

중공업

전자

금융

기타

  • 대우엔지니어링 → 포스코엔지니어링 (1990년 계열 분리 → 2002년 포스코에 인수)
  • 신성통상 (1984년 계열 분리 → 2002년 가나안에서 인수)
  • 대창기업
  • (주)고려 → SG고려 (구 고려피혁공업주식회사 → 2003년 (주)가로수닷컴에 인수)
  • 세계물산 → SG위카스 → SG세계물산 (2002년 SK글로벌에 인수 → 2005년 (주)가로수닷컴에 인수)
  • 대우시네마네트워크 → (주)오리온시네마네트워크 (1999년 동양그룹에 인수되어 별도법인인 온미디어 설립 → 2010년 CJ에 인수 → 2013년 CJ ENM에 흡수 합병)
  • 부산 대우 로얄즈 → 부산 아이파크 (2000년 현대산업개발에 인수)
  • 인천 대우 제우스 → 인천 신세기 빅스 (1999년 신세기통신에 인수)

외부 링크

각주

  1. 대우그룹, 쌍용自인수로 재계순위‘3위’《문화일보》1997년 12월 9일 김병직 기자

대우그룹
Daewoo Group
형태대기업집단(1989년~1999년)
창립1967년 3월 22일 (대우실업 주식회사)
창립자김우중(대표이사 회장)
산업 분야자동차, 전자, 조선, 건설
해체1999년 11월 1일
본사 소재지대우센터빌딩(1977년~1999년)
사업 지역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핵심 인물
김우중(대표이사 회장)
매출액분식회계로 정확히 추산불가
영업이익
-4조원(1999년 기준)
자산총액자본 약 15조 부채 89조
주요 주주김우중
모기업(주)대우
계열사대우전자, 대우건설, 대우자동차, 대우조선, 대우증권, 쌍용자동차
자본금5,000,000원(1967년 기준)

대우그룹(大宇─, Daewoo Group)은 1967년 창립한 대우실업을 모태로 1980년대부터 1990년대 말까지 존재한 대한민국의 대규모 기업집단이었다.[1] 대도섬유의 대(大)와 김우중의 우(宇)를 따서 만들었다. 섬유·무역·건설·조선·중장비·자동차·전자·통신·관광·금융 등 여러 사업부문을 두었으며, 1993년 세계경영 전략 채택 이후 강력한 외형확장으로 사세를 넓혀갔고 1998년에는 현대그룹에 이어 재계 2위에 올랐으나 외환위기 이후, 자체 구조조정 실패와 1999년 삼성과의 전자-자동차 빅딜 실패로 1999년 10월부터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그룹 해체를 맞았다.

기업연혁

과거 대우그룹의 본사였던 서울스퀘어.

대우는 1967년 소규모 사업체로 창업하였으나, 1970년대 경제성장 및 수출호조에 따른 비약적인 발전, 그리고 정부 주도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에 힘입어 단기간에 대한민국 최대기업으로서 성장을 이루게 된다. 대우는 1980년대 후반부터 대한민국 외 국가로 눈을 돌려 동유럽 및 신흥시장 개척을 추진해 왔고, 1993년 세계경영에 나서면서 사세확장을 시도하였다. 이후 외환위기 속에서도 1997년 법정관리에 들어간 쌍용자동차를 인수하였다. 98년 상반기에는 현대그룹에 이은 (자산총액기준) 재계 2위에 올랐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출범이후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자체적 구조조정 실패와 무리한 차입금이 발목을 잡았고 1998년 10월, 대우그룹이 신청한 기업어음(CP)발행이 중단되면서 그룹 위기가 찾아왔다. 1999년이 되면서 삼성그룹과의 대우전자-삼성자동차의 빅딜협상에 들어갔으나 동년 7월, 협상이 결렬되었다. 이후 김우중 회장은 자동차를 중심으로 그룹 구조조정에 뒤늦게 들어갔으나 대우그룹 채권단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1999년 10월, 그룹 해체 수순을 밟았다.

성장

1967년 대우실업 창립 이래, 부산에 공장을 설치하여 1970년대 와이셔츠 등의 봉제품 및 섬유제품의 수출호조와 더불어 경제고도성장으로 급속한 발전을 이루어 신흥 사업체로 주목받았고, 더욱이 정부가 주도하던 경제 정책에 발맞춰 금융, 전자, 중공업, 자동차 사업에도 뛰어들면서 대우 그룹을 형성하게 된다.

  • 1967년 3월 22일 모태인 대우실업(주)(대우가족) 창립. (섬유류 봉제품 생산, 수출 주도)
  • 1969년 8월 대한민국 기업 해외지사 1호 시드니에 개설.
  • 1971년 9월 (주)내쇼날의류 설립.
  • 1972년 9월 고려피혁(주) 인수.
  • 1973년 쌍미섬유공업(주) 인수. 대우증권의 전신 동양증권(주) 인수. 대우건설(주) 설립.
  • 1975년 2월 대우빌딩 착공.
  • 1975년 5월 대우실업(주), 종합무역상사 지정.
  • 1976년 2월 한국기계공업(주) 인수. 10월 해외건설업면허 취득. 대우중공업(주) 출범.
  • 1977년 대우센터 빌딩 준공. 8월 제철화학(주) 경영권 인수.
  • 1978년 7월 산업은행으로부터 새한자동차(주) 지분 인수. 대한조선공사 옥포조선소 인수 후 9월 대우조선공업(주) 설립.

도약기

대우 그룹은 (주)대우의 출범과 새한자동차 경영권 장악, 가전사업 진출을 잇달아 성사시키며 현대(現代), 삼성(三星), 럭키금성(LG)과 함께 대한민국 4대 기업군으로 성장한다. 국내 업체들과의 출혈 경쟁에서 기술력과 수익성의 한계를 느낀 대우는 세계로 눈을 돌려 냉전체제의 완화가 도래한 시점에 동유럽 및 공산권 국가에 현지법인을 설립하면서 신시장 개척을 준비하였다.

  • 1981년 10월 옥포조선소 준공. 수출의날 15억불탑 수상. 대우실업(주) 및 대우개발(주) 합병 결의.
  • 1982년 모기업 (주)대우 출범. 수출의날 20억불탑 수상.
  • 1983년 대우자동차(주) 출범. 대우전자(주)에서 대한전선(주)의 가전부문을 흡수. 대우통신(주) 설립.
  • 1984년 경남기업(주) 경영 참여. (주)대우경제연구소 설립. 10월 대우자동차부품(주) 설립. 대한민국 최초 VTR 수출.
  • 1986년 대우증권 런던사무소 개설. 9월 경남기업(주) 계열 편입.
  • 1987년 미얀마 현지 철도차량공장 준공.
  • 1988년 (주)대우 동베를린지사 설치. 대우투자자문(주) 설립. 프랑스 롱위 전자레인지 공장 건립. 대우증권 홍콩사무소 개설.
  • 1989년 제철화학 외 3개사 매각. 대우정보시스템 설립. 대우기전공업㈜ 출범. MHB-Daewoo Bank 설립.
  • 1990년 (주)대우 모스크바지사 설치. 대우중공업(주) 유럽현지법인 설립. 멕시코 컬러TV 공장 건립.
  • 1991년 (주)대우 북경지사 설치. 대우증권(주) 유럽현지법인 설립, 취리히사무소 개설.
  • 1992년 4월 佛 컬러TV 공장 건립. 佛 컴퓨터 판매법인 설립. 대우증권 美 현지법인 설립. 대우차-GM 제휴관계 청산.

팽창기

(주)대우가 구축한 세계무역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대우자동차(주), 대우중공업(주), 대우전자(주)가 국제적으로 널리 진출하는 '세계경영'은 1993년 '세계경영 우리기술' 슬로건 선포를 시점으로 본격화되었다. 대우가 당시 내세웠던 세계경영은 선진업체가 진출하지 않은 옛 공산권 국가와 앞으로 발전가능성이 무한한 개발도상국 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것으로, 현지법인 설립과 인수합병을 통해 단기간에 정착하여 사세확장을 꾀하는 형태이다. 실제로 대우가 진출을 시도한 개발도상국가의 정부에서는 자국의 경제활성화 목적에서 대우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기에, 대우의 사업확장은 더욱 쉽게 이뤄질 수 있었다. 대한민국 시장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대우자동차(주)의 경우는 대한민국 외 국가에서 판매하는 수량이 대한민국에서 판매하는 수량을 앞지르는 현상을 가져오기도 했다. 이같은 대우의 급속한 성장은 대한민국 경제계와 대한민국 외 국가 경제에 큰 반향을 가져다 주었다.

  • 1993년 1월 대우자판 설립.
  • 1993년 2월 베트남 합작은행 출자.
  • 1993년 3월 세계경영 선포.
  • 1993년 5월 우즈벡 가전 공장 설립.
  • 1993년 7월 대우중공업(주) 미국현지법인 DEC 설립.
  • 1993년 8월 폴란드 TV 공장 설립.
  • 1993년 9월 세계최초 공기방울 세탁기 개발.
  • 1994년 2월 대우할부금융 설립.
  • 1994년 3월 인도 합작증권사 CRB-Daewoo Securities Ltd 출자.
  • 1994년 5월 대우자동차(주) 영국 워딩 자동차 기술연구소 건립.
  • 1994년 6월 대우중공업 영국현지법인 유로 대우 UK 설립.
  • 1994년 10월 대우중공업(주) 대우조선공업 흡수 합병. 중국현지법인 대우중공업연대유한공사 설립.
  • 1994년 11월 루마니아 자동차합작공장 DAEWOO-RODAE 설립. 대우중공업(주) 러시아 기술연구소 DISK 설립.
  • 1995년 1월 대우중공업(주) 독일 현지법인 ECO 설립. 대우전자(주) 말레이시아 세탁기 공장 설립. 대우뱅크 출범.
  • 1995년 2월 대우중공업(주) 일본 현지법인 대우건기 설립.
  • 1995년 3월 체코 최대 국영상용차업체 AVIA사 인수. 대우증권(주) 홍콩현지법인 설립.
  • 1995년 4월 대우증권(주) 상해사무소 개설.
  • 1995년 5월 대한민국 기업 최초, 대북 협력사업 정부승인 획득.
  • 1995년 6월 다이너스카드사 인수.
  • 1995년 7월 동우개발(주)의 사명을 (주)대우개발로 변경.
  • 1995년 9월 베트남 하노이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우즈벡 공화국에 교환기합작공장 알로카대우 설립.
  • 1995년 10월 중국천진 팩스밀리 합작공장 설립.
  • 1995년 11월 베트남 최초 타포린 합작생산 공장 준공. 폴란드 최대 자동차기업 FSO 인수, DAEWOO-FSO 출범.
  • 1996년 3월 대우증권(주) 싱가폴사무소 개설. 루마니아 DAEWOO-RODAE 공장 준공.
  • 1996년 5월 남북경협 최초회사 민족산업총회사 남포에 설립. 앙골라 대규모 유전발견.
  • 1996년 6월 프랑스 롱위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인도뉴델리 첨단 소프트웨어 연구개발센타 설립. 페루육상 유전인수 입찰수주.
  • 1996년 7월 한진투자증권 합작 법인 서울투신운용(주) 설립. 우크라이나 대용량교환기 합작공장 드니프로-대우 설립.
  • 1996년 10월 대우증권(주) 동경지점 개점. UZ-Daewoo 자동차 공장 준공. 베트남 비담코 자동차 공장 준공.
  • 1996년 11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중국 광케이블 합작회사 우시-대우 설립. 루마니아 합작은행 설립.
  • 1997년 3월 우즈베키스탄 대우은행 (Uz-Daewoo Bank) 설립.
  • 1997년 4월 인도 종합 가전공장 설립. 군산 종합 자동차공장 준공.
  • 1997년 5월 인도 CRB증권 대우파이낸스로 상호 변경. 대우선물(주) 설립.
  • 1997년 6월 대우증권(주) 싱가포르 현지법인 설립.
  • 1997년 7월 대우리스 체코에 설립.
  • 1997년 9월 대우자동차(주) 우크라이나 합작공장 설립계약 체결.
  • 1997년 12월 한국전기초자(주) 인수.

해체

대우는 세계경영으로 철저히 현지화를 추구함으로써 1993년 당시 150여개에 불과했던 대한민국 외 국가 현지법인을 1998년 11월에는 396개로 끌어올리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대우는 1997년 다가온 경제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물로 나온 쌍용자동차(주)를 인수하여 소형차에서 대형차는 물론, 버스와 트럭, 사륜구동 SUV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차량을 생산하는 풀라인업을 완성시키고 그 밖에도 해외 현지공장 인수 및 확장을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대우는 1998년 삼성(三星)을 제치고 재계서열 2위까지 뛰어오른다.

  • 1998년 3월 30일 대우자동차(주), 쌍용자동차(주) 인수.
  • 1998년 5월 스페인 냉장고 공장 설립.
  • 1998년 6월 우크라이나 자동차 법인 AUTOZAZ-DAEWOO 공장 본격 가동.
  • 1998년 7월 미국 Fortune 선정 매출 500대 기업 중 세계 18위의 기업으로 도약.
  • 1998년 10월 대우중공업(주) 이집트공장 준공.
  • 1998년 11월 무역의 날 150억불 수출의 탑 수상.

그러나 경기침체의 장기화와 세계 시장의 위축으로 대우의 입지는 크게 흔들렸고, 개발도상국가 위주로 판매망을 확대해온 대우자동차의 부진이 거듭되었다. 경영여건이 안정되지 못한 상황에서 추진한 쌍용자동차의 인수도 큰 실익을 거두지 못하였고, 외형확대의 초점을 맞추어 경영해오다보니 당시 정부가 요구했던 구조조정에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오다보니 구조조정의 실시가 경쟁 그룹에 비해 늦은 편이었다. 정부 주도의 산업체계 개편에 따라 늦게나마 추진한 대우전자-삼성자동차 빅딜협상은 양사간 입장차이로 끝내 결렬되었으며, 1999년 여름에 접어들면서 그룹의 운명을 좌우할 대우와 GM과의 협상(대우차와의 경영권 문제)마저도 실패한 대우는 급속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자금난이 가중되던 대우는 알짜자산인 힐튼호텔 매각 등을 성사시키기도 하지만 1999년 3월에는 이미 부채 비율을 무려 400%를 훨씬 넘은 상태여서 수습이 어려운 지경이었다. 7월 대우는 초고강도 구조조정안을 발표하였으나 채권단은 이를 반려한다. 결국 대우는 1999년 8월 16일 채권단의 재무구조개선수정약정 체결과 더불어, 26일 채권단 관리하에 워크아웃을 맞이함으로써 그룹 해체의 길로 접어든다. 지난 1967년 창업 이래 32년간 대한민국에 경쟁성장의 견인차로 역할을 해오던 기업 중 하나로서, 1993년 세계경영을 선포한지 6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 1998년 11월 대우그룹 1차 구조조정안 발표.
  • 1998년 12월 대우전자(주) 및 삼성자동차(주) 빅딜 발표. (사업맞교환)
  • 1999년 4월 19일 대우 2차 구조조정안 발표. (대우 조선, 상용차, 힐튼호텔 등 매각)
  • 1999년 6월 30일 삼성자동차 워크아웃 돌입.
  • 1999년 7월 16일 대우그룹 구조조정안 발표. (자동차 전문그룹으로의 재탄생)
  • 1999년 8월 3일 제일은행 등 채권단 구조조정안 반려.
  • 1999년 8월 16일 대우 채권단, 재무구조개선수정약정 체결.
  • 1999년 8월 26일 (주)대우, 대우중공업(주), 대우자동차(주), 대우전자(주) 등 12개 회사 워크아웃 돌입.
  • 1999년 8월 30일 대우증권(주) 계열 분리, 채권단으로 이양.
  • 1999년 10월 김우중 회장, 중국 옌타이 대우자동차 부품공장 준공식 참석.
  • 1999년 11월 1일 대우 회장 및 대우그룹 사장단 퇴진.
  • 2000년 4월 15일 대규모기업집단 지정 제외.

한 때 세계 경영의 첨병으로 불렸던 대우의 몰락은 경제계에 큰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대우사태는 당대 큰 기업은 절대 흥한다는 '대마불사'의 신화를 깨고 차입경영을 일삼는 부실기업을 과감하게 퇴출시킨 사례로 건실한 기업풍토 조성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이 있는 반면, 대우가 밝혀지지 않은 요인(정치적 문제 또는 국제적 외압)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여론도 일부 존재하고 있어 지금도 눈길을 끈다.

구 대우그룹 계열사

현재 대우의 계열사들은 그룹 해체 후 자립 혹은 새로운 기업의 인수를 통해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그룹이 해체된 이후에도 포스코대우, 대우건설, 대우조선해양 등 몇몇 회사들은 여전히 대우의 이름을 유지하며 성공적으로 영업 중이다.

자동차 사업

대우가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자동차 사업은 1997년 신차 출시, 1998년 쌍용자동차 인수에 따른 사세 확장으로 대한민국 시장에서 호조를 거두었으나 부채 누적으로 인한 만성적인 적자로, 대우그룹 핵심 계열사들이 워크아웃에 돌입하면서 완전히 공중분해되고 말았다.

대우자동차(주)는 포드, 제너럴 모터스(GM) 등 두 양사간의 해외 매각 의사를 타진하였으나 최종적으로 협상이 모두 결렬되었으며, 대우자동차(주)는 경영 정상화 실패로 인해 2000년 11월 10일인천지방법원에 법정관리(정리절차) 개시 신청을 냈고, 노사가 극적으로 노사협의회 합의문에 합의한 후, 회사 측의 자구의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여, 법정관리 개시 결정이 내려졌다.

대우자동차는 GM 매각을 위한 구조조정 계획의 일환으로, 9992억 원의 자구계획을 마련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가 인력을 7300여 명 줄이고 재료비, 경상비, 투자비 등을 대폭 감축했으며, 부평공장 생산직 직원 1750명이 강제로 거리로 내몰리는 역대 최대 규모의 정리해고가 김대중 정부 출범 당시에 근로기준법 개정 이후, 2001년 2월초에 단행되기도 했다.

미국 GM이 2001년 6월초에 대우차 인수 의향서를 제출하여, 이듬해인 2002년 10월 28일에 GM대우(현 한국지엠)라는 외국계 기업으로 새롭게 출범했고, 대한민국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확대에 실패하여 고전을 계속하였던 GM대우는 글로벌 GM의 전략적 요충지로 키우기 위해서 2011년 1월 쉐보레 브랜드로의 흡수 통합을 선언하였으며, 2011년 한국GM(주)가 새롭게 출범하였다.

GM이 인수하지 않은 버스부문, 상용차부문, 부평공장은 대우버스(주), 대우상용차(주), 대우인천자동차(주)로 분할, 매각되었다.

대우자동차(주)의 버스부문인 대우버스(주)는 영안모자에 매각되었고, 트럭을 생산하는 상용차 부문은 인도 최대의 재벌인 타타(TATA)에 매각되어 타타대우상용차(주)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대우그룹 시절 대우자동차와의 합병을 계획하였던 쌍용자동차(주)는 대우그룹의 구조조정 당시 대우차와의 분리 매각이 결정되면서 2000년 4월 대우 계열에서 정식으로 분리되었다. 후에 쌍용자동차(주)는 2005년 중국 국영자동차회사인 상하이자동차 그룹에 인수되어, 미국발 금융 위기로 인한 판매 부진이 계속 거듭되면서 2009년 쌍용자동차(주)의 경영권을 포기하고 한국 시장에 철수하였다. 2009년 쌍용자동차(주)는 법정관리 체제에 들어갔으며, 구조조정에 따른 대규모 정리해고 사태로 노사간의 첨예한 대립까지 위태로울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다가 2010년 말 인도의 마힌드라 자동차에 인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건설, 무역

1999년 워크아웃으로 (주)대우지스틱스가 먼저 분사되었으며, 2000년 12월 모기업 (주)대우가 3개사로 재탄생한다. 청산을 위한 (주)대우 존속법인과 무역부문의 (주)대우인터내셔널, 건설부문의 (주)대우건설로 나뉜다.

(주)대우인터내셔널은 대우의 모태사업인 무역은 물론 백화점 등 사업도 하고 있다. 2010년 포스코에 인수되었고, 지금의 포스코대우로 재출범한다. 백화점 사업은 2014년 롯데쇼핑(주)에서 인수하여 롯데백화점 마산점이 되었다.

(주)대우건설은 워크아웃을 단기에 졸업했으며 2006년 12월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인수되었다. 그러나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무리한 인수합병으로 인한 후유증에 세계 금융위기까지 겪으며 극심한 자금난을 겪자, 2010년 (주)대우건설에 대한 경영권을 포기하였고, 2011년 1월에 금호아시아나 계열에서 정식으로 분리되었다. 현재 최대주주는 한국산업은행이다.

대우그룹의 또다른 건설회사였던 경남기업(주)는 성완종이 이끄는 충남지역 건설사인 대아건설(주)에 인수되었다가 2004년에 대아건설(주)을 합병하면서 국내 10위권의 대형 건설사로 성장가도를 달린다. 2009년 대한민국 건설사들의 잇따른 경영난으로 워크아웃을 재차 겪지만, 실적 개선 등에 힘입어 2011년 5월 워크아웃을 졸업하는데 성공한다. 2015년 하지만 건설업계 불황이 장기화되고 기업의 오너(Owner)인 성완종이 자원외교비리수사에 연루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2015년 4월 마침내 경남기업은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만다. 2017년 sm그룹이 인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중공업, 조선

2000년 대우중공업(주)도 대우종합기계(주), 대우조선공업(주) 그리고 대우중공업(주) 잔존법인으로 분할되었다.

주력부문이었던 중장비 및 군수물자 생산을 담당하는 대우종합기계(주)는 2005년두산 계열로 편입, 두산인프라코어(주)로 재탄생하였다.

대우중공업의 조선해양부문은 대우조선공업 주식회사로 분사되었다가 곧 대우조선해양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한다. 2000년대 조선업계의 호황으로 대우의 계열사 중 가장 먼저 워크아웃을 졸업한 회사로도 주목받았고, 조선업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을 기반으로 건설, 상조사업 등에도 진출하며 자체적으로 조선사업 중심의 기업집단을 일구었다. 2000년 출범한 이래 수년간 경쟁업체인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과 함께 선박 수주잔량으로 세계 수위권을 다투왔지만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변곡점으로 대우조선해양은 2010년대 중반에 이르러 조선업황의 악화로 존폐의 기로에 놓여있는 상태이다.

대우중공업이 3개사로 분할되기 전인 1999년 7월에는 철도차량 생산부문이 경쟁사인 현대정공(주), 한진중공업(주)와 함께 현물출자 형식으로 단일법인을 설립함으로써 국내 유일의 철차제작업체인 한국철도차량주식회사가 탄생하였다. 하지만 대우종합기계(주)가 승계받은 한국철도차량(주)의 지분은 경영정상화를 위해 2001년현대자동차그룹에 전량 매각됨으로써 주식회사 로템(現 현대로템(주))으로 재출범한다.

대우중공업(주)의 항공사업부문도 1999년 8월삼성항공산업(주), 현대우주항공(주)과 통합하여 새로이 한국항공우주산업(주)로 출범하였지만, 대우중공업의 지분을 인계받은 두산그룹의 DIP홀딩스에서는 2016년 한국항공우주산업의 보유지분을 전부 정리하였다.

전자, 통신

한때 세계 각국의 생산기지를 설치하며 세계적인 전자기업을 표방해 오던 대우전자(주)는 1999년 워크아웃 대상기업으로 지정되었고, 2000년 4월 대우전자 중심의 기업집단을 구축하고 비수익 사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피아노 사업을 담당하는 벨로체, 컴퓨터 사업을 담당하는 대우루컴즈, 가스보일러 사업을 담당하는 대우가스보일러 등이 독립된 업체로 분리되었다. 2002년 대우전자의 TV, 백색가전 등 주력 핵심사업부문이 대부분 대우모터공업 주식회사로 인계되어 이듬해인 2003년에 (주)대우일렉트로닉스로 재출범하였다. 이후에도 2008년 대우디스플레이 등이 분리되어 대우일렉트로닉스는 사실상 백색가전 전문업체가 되었다. 2013년 동부그룹이 인수함으로써 동부대우전자 주식회사로 이름이 바뀌다가 2018년 대유그룹이 인수하여 주식회사 대우전자로 부활하였다. 2019년 주식회사 위니아대우 로 이름이 바꿔다가 2020년 주식회사 위니아전자로 이름이 바꿨다.

대우전자부품도 1999년 대우그룹 구조조정으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대상으로 지정되었다. 2000년 4월 대우그룹에서 분리되었다.2008년 회생절차개시 결정을 받았고, 2010년 2월 회생절차 종결 결정을 받았다. 그 후 현대자동차의 1차 협력그룹인 아진그룹이 인수했다.

대우통신(주)은 정상화를 위해 통신 관련사업부문을 매각하여 컴퓨터사업은 대우컴퓨터에 양도하였으며 그밖에 사업부문은 대우텔레텍, 대우글로벌 그리고 1999년 합병된 대우정밀공업 계열의 업체들은 대우정밀, 대우파워트레인, 대우프라스틱 등으로 분사되었다.

대우정밀(주)은 에스엔티(S&T그룹)에 인수되어 현재 S&T모티브로 운영 중이며 대우파워트레인(주)은 GM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컴퍼니(지금의 한국지엠주식회사)에 매각되었고, 대우프라스틱(주)는 삼라마이다스그룹(SM그룹)으로 매각된 후 대우라이프(주)로 바뀌었다가 계열사인 남선알미늄(주)에 합병되었다.

전자 계열사였던 오리온전기(주), 한국전기초자(주), 광전자(주) 등도 워크아웃을 맞아 자취를 감추거나 독자생존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금융

대우증권(주)는 1999년 대우가 해체되기 전 채권단이 인수하였으며 후에 대주주가 한국산업은행으로 변경된다. 2009년에는 한국산업은행의 민영화에 따라 새로이 출범한 KDB금융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2015년에는 미래에셋금융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2001년 8월 (주)다이너스카드클럽코리아는 현대자동차(주)에 매각되어 현대카드(주)로 변경되었다.

대우캐피탈(주)는 아주그룹에 편입되어 아주캐피탈(주)로 바뀌었다.

스포츠

대우그룹에서 운영 중이던 부산 대우 로얄즈현대산업개발에 매각, 인천 대우 제우스신세기통신에 매각되고 인천 신세기 빅스로 변경하며 현재 부산 아이파크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미디어

케이블 채널 중에서 대우시네마네트워크는 동양그룹에 매각되어 OCN(현재 CJ 산하)으로 변경되었다.

같이 보기

건설, 무역

자동차

중공업

전자

금융

기타

  • 대우엔지니어링 → 포스코엔지니어링 (1990년 계열 분리 → 2002년 포스코에 인수)
  • 신성통상 (1984년 계열 분리 → 2002년 가나안에서 인수)
  • 대창기업
  • (주)고려 → SG고려 (구 고려피혁공업주식회사 → 2003년 (주)가로수닷컴에 인수)
  • 세계물산 → SG위카스 → SG세계물산 (2002년 SK글로벌에 인수 → 2005년 (주)가로수닷컴에 인수)
  • 대우시네마네트워크 → (주)오리온시네마네트워크 (1999년 동양그룹에 인수되어 별도법인인 온미디어 설립 → 2010년 CJ에 인수 → 2013년 CJ ENM에 흡수 합병)
  • 부산 대우 로얄즈 → 부산 아이파크 (2000년 현대산업개발에 인수)
  • 인천 대우 제우스 → 인천 신세기 빅스 (1999년 신세기통신에 인수)

외부 링크

각주

  1. 대우그룹, 쌍용自인수로 재계순위‘3위’《문화일보》1997년 12월 9일 김병직 기자

대우그룹
Daewoo Group
형태대기업집단(1989년~1999년)
창립1967년 3월 22일 (대우실업 주식회사)
창립자김우중(대표이사 회장)
산업 분야자동차, 전자, 조선, 건설
해체1999년 11월 1일
본사 소재지대우센터빌딩(1977년~1999년)
사업 지역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핵심 인물
김우중(대표이사 회장)
매출액분식회계로 정확히 추산불가
영업이익
-4조원(1999년 기준)
자산총액자본 약 15조 부채 89조
주요 주주김우중
모기업(주)대우
계열사대우전자, 대우건설, 대우자동차, 대우조선, 대우증권, 쌍용자동차
자본금5,000,000원(1967년 기준)

대우그룹(大宇─, Daewoo Group)은 1967년 창립한 대우실업을 모태로 1980년대부터 1990년대 말까지 존재한 대한민국의 대규모 기업집단이었다.[2] 대도섬유의 대(大)와 김우중의 우(宇)를 따서 만들었다. 섬유·무역·건설·조선·중장비·자동차·전자·통신·관광·금융 등 여러 사업부문을 두었으며, 1993년 세계경영 전략 채택 이후 강력한 외형확장으로 사세를 넓혀갔고 1998년에는 현대그룹에 이어 재계 2위에 올랐으나 외환위기 이후, 자체 구조조정 실패와 1999년 삼성과의 전자-자동차 빅딜 실패로 1999년 10월부터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그룹 해체를 맞았다.

기업연혁

과거 대우그룹의 본사였던 서울스퀘어.

대우는 1967년 소규모 사업체로 창업하였으나, 1970년대 경제성장 및 수출호조에 따른 비약적인 발전, 그리고 정부 주도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에 힘입어 단기간에 대한민국 최대기업으로서 성장을 이루게 된다. 대우는 1980년대 후반부터 대한민국 외 국가로 눈을 돌려 동유럽 및 신흥시장 개척을 추진해 왔고, 1993년 세계경영에 나서면서 사세확장을 시도하였다. 이후 외환위기 속에서도 1997년 법정관리에 들어간 쌍용자동차를 인수하였다. 98년 상반기에는 현대그룹에 이은 (자산총액기준) 재계 2위에 올랐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출범이후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자체적 구조조정 실패와 무리한 차입금이 발목을 잡았고 1998년 10월, 대우그룹이 신청한 기업어음(CP)발행이 중단되면서 그룹 위기가 찾아왔다. 1999년이 되면서 삼성그룹과의 대우전자-삼성자동차의 빅딜협상에 들어갔으나 동년 7월, 협상이 결렬되었다. 이후 김우중 회장은 자동차를 중심으로 그룹 구조조정에 뒤늦게 들어갔으나 대우그룹 채권단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1999년 10월, 그룹 해체 수순을 밟았다.

성장

1967년 대우실업 창립 이래, 부산에 공장을 설치하여 1970년대 와이셔츠 등의 봉제품 및 섬유제품의 수출호조와 더불어 경제고도성장으로 급속한 발전을 이루어 신흥 사업체로 주목받았고, 더욱이 정부가 주도하던 경제 정책에 발맞춰 금융, 전자, 중공업, 자동차 사업에도 뛰어들면서 대우 그룹을 형성하게 된다.

  • 1967년 3월 22일 모태인 대우실업(주)(대우가족) 창립. (섬유류 봉제품 생산, 수출 주도)
  • 1969년 8월 대한민국 기업 해외지사 1호 시드니에 개설.
  • 1971년 9월 (주)내쇼날의류 설립.
  • 1972년 9월 고려피혁(주) 인수.
  • 1973년 쌍미섬유공업(주) 인수. 대우증권의 전신 동양증권(주) 인수. 대우건설(주) 설립.
  • 1975년 2월 대우빌딩 착공.
  • 1975년 5월 대우실업(주), 종합무역상사 지정.
  • 1976년 2월 한국기계공업(주) 인수. 10월 해외건설업면허 취득. 대우중공업(주) 출범.
  • 1977년 대우센터 빌딩 준공. 8월 제철화학(주) 경영권 인수.
  • 1978년 7월 산업은행으로부터 새한자동차(주) 지분 인수. 대한조선공사 옥포조선소 인수 후 9월 대우조선공업(주) 설립.

도약기

대우 그룹은 (주)대우의 출범과 새한자동차 경영권 장악, 가전사업 진출을 잇달아 성사시키며 현대(現代), 삼성(三星), 럭키금성(LG)과 함께 대한민국 4대 기업군으로 성장한다. 국내 업체들과의 출혈 경쟁에서 기술력과 수익성의 한계를 느낀 대우는 세계로 눈을 돌려 냉전체제의 완화가 도래한 시점에 동유럽 및 공산권 국가에 현지법인을 설립하면서 신시장 개척을 준비하였다.

  • 1981년 10월 옥포조선소 준공. 수출의날 15억불탑 수상. 대우실업(주) 및 대우개발(주) 합병 결의.
  • 1982년 모기업 (주)대우 출범. 수출의날 20억불탑 수상.
  • 1983년 대우자동차(주) 출범. 대우전자(주)에서 대한전선(주)의 가전부문을 흡수. 대우통신(주) 설립.
  • 1984년 경남기업(주) 경영 참여. (주)대우경제연구소 설립. 10월 대우자동차부품(주) 설립. 대한민국 최초 VTR 수출.
  • 1986년 대우증권 런던사무소 개설. 9월 경남기업(주) 계열 편입.
  • 1987년 미얀마 현지 철도차량공장 준공.
  • 1988년 (주)대우 동베를린지사 설치. 대우투자자문(주) 설립. 프랑스 롱위 전자레인지 공장 건립. 대우증권 홍콩사무소 개설.
  • 1989년 제철화학 외 3개사 매각. 대우정보시스템 설립. 대우기전공업㈜ 출범. MHB-Daewoo Bank 설립.
  • 1990년 (주)대우 모스크바지사 설치. 대우중공업(주) 유럽현지법인 설립. 멕시코 컬러TV 공장 건립.
  • 1991년 (주)대우 북경지사 설치. 대우증권(주) 유럽현지법인 설립, 취리히사무소 개설.
  • 1992년 4월 佛 컬러TV 공장 건립. 佛 컴퓨터 판매법인 설립. 대우증권 美 현지법인 설립. 대우차-GM 제휴관계 청산.

팽창기

(주)대우가 구축한 세계무역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대우자동차(주), 대우중공업(주), 대우전자(주)가 국제적으로 널리 진출하는 '세계경영'은 1993년 '세계경영 우리기술' 슬로건 선포를 시점으로 본격화되었다. 대우가 당시 내세웠던 세계경영은 선진업체가 진출하지 않은 옛 공산권 국가와 앞으로 발전가능성이 무한한 개발도상국 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것으로, 현지법인 설립과 인수합병을 통해 단기간에 정착하여 사세확장을 꾀하는 형태이다. 실제로 대우가 진출을 시도한 개발도상국가의 정부에서는 자국의 경제활성화 목적에서 대우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기에, 대우의 사업확장은 더욱 쉽게 이뤄질 수 있었다. 대한민국 시장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대우자동차(주)의 경우는 대한민국 외 국가에서 판매하는 수량이 대한민국에서 판매하는 수량을 앞지르는 현상을 가져오기도 했다. 이같은 대우의 급속한 성장은 대한민국 경제계와 대한민국 외 국가 경제에 큰 반향을 가져다 주었다.

  • 1993년 1월 대우자판 설립.
  • 1993년 2월 베트남 합작은행 출자.
  • 1993년 3월 세계경영 선포.
  • 1993년 5월 우즈벡 가전 공장 설립.
  • 1993년 7월 대우중공업(주) 미국현지법인 DEC 설립.
  • 1993년 8월 폴란드 TV 공장 설립.
  • 1993년 9월 세계최초 공기방울 세탁기 개발.
  • 1994년 2월 대우할부금융 설립.
  • 1994년 3월 인도 합작증권사 CRB-Daewoo Securities Ltd 출자.
  • 1994년 5월 대우자동차(주) 영국 워딩 자동차 기술연구소 건립.
  • 1994년 6월 대우중공업 영국현지법인 유로 대우 UK 설립.
  • 1994년 10월 대우중공업(주) 대우조선공업 흡수 합병. 중국현지법인 대우중공업연대유한공사 설립.
  • 1994년 11월 루마니아 자동차합작공장 DAEWOO-RODAE 설립. 대우중공업(주) 러시아 기술연구소 DISK 설립.
  • 1995년 1월 대우중공업(주) 독일 현지법인 ECO 설립. 대우전자(주) 말레이시아 세탁기 공장 설립. 대우뱅크 출범.
  • 1995년 2월 대우중공업(주) 일본 현지법인 대우건기 설립.
  • 1995년 3월 체코 최대 국영상용차업체 AVIA사 인수. 대우증권(주) 홍콩현지법인 설립.
  • 1995년 4월 대우증권(주) 상해사무소 개설.
  • 1995년 5월 대한민국 기업 최초, 대북 협력사업 정부승인 획득.
  • 1995년 6월 다이너스카드사 인수.
  • 1995년 7월 동우개발(주)의 사명을 (주)대우개발로 변경.
  • 1995년 9월 베트남 하노이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우즈벡 공화국에 교환기합작공장 알로카대우 설립.
  • 1995년 10월 중국천진 팩스밀리 합작공장 설립.
  • 1995년 11월 베트남 최초 타포린 합작생산 공장 준공. 폴란드 최대 자동차기업 FSO 인수, DAEWOO-FSO 출범.
  • 1996년 3월 대우증권(주) 싱가폴사무소 개설. 루마니아 DAEWOO-RODAE 공장 준공.
  • 1996년 5월 남북경협 최초회사 민족산업총회사 남포에 설립. 앙골라 대규모 유전발견.
  • 1996년 6월 프랑스 롱위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인도뉴델리 첨단 소프트웨어 연구개발센타 설립. 페루육상 유전인수 입찰수주.
  • 1996년 7월 한진투자증권 합작 법인 서울투신운용(주) 설립. 우크라이나 대용량교환기 합작공장 드니프로-대우 설립.
  • 1996년 10월 대우증권(주) 동경지점 개점. UZ-Daewoo 자동차 공장 준공. 베트남 비담코 자동차 공장 준공.
  • 1996년 11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중국 광케이블 합작회사 우시-대우 설립. 루마니아 합작은행 설립.
  • 1997년 3월 우즈베키스탄 대우은행 (Uz-Daewoo Bank) 설립.
  • 1997년 4월 인도 종합 가전공장 설립. 군산 종합 자동차공장 준공.
  • 1997년 5월 인도 CRB증권 대우파이낸스로 상호 변경. 대우선물(주) 설립.
  • 1997년 6월 대우증권(주) 싱가포르 현지법인 설립.
  • 1997년 7월 대우리스 체코에 설립.
  • 1997년 9월 대우자동차(주) 우크라이나 합작공장 설립계약 체결.
  • 1997년 12월 한국전기초자(주) 인수.

해체

대우는 세계경영으로 철저히 현지화를 추구함으로써 1993년 당시 150여개에 불과했던 대한민국 외 국가 현지법인을 1998년 11월에는 396개로 끌어올리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대우는 1997년 다가온 경제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물로 나온 쌍용자동차(주)를 인수하여 소형차에서 대형차는 물론, 버스와 트럭, 사륜구동 SUV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차량을 생산하는 풀라인업을 완성시키고 그 밖에도 해외 현지공장 인수 및 확장을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대우는 1998년 삼성(三星)을 제치고 재계서열 2위까지 뛰어오른다.

  • 1998년 3월 30일 대우자동차(주), 쌍용자동차(주) 인수.
  • 1998년 5월 스페인 냉장고 공장 설립.
  • 1998년 6월 우크라이나 자동차 법인 AUTOZAZ-DAEWOO 공장 본격 가동.
  • 1998년 7월 미국 Fortune 선정 매출 500대 기업 중 세계 18위의 기업으로 도약.
  • 1998년 10월 대우중공업(주) 이집트공장 준공.
  • 1998년 11월 무역의 날 150억불 수출의 탑 수상.

그러나 경기침체의 장기화와 세계 시장의 위축으로 대우의 입지는 크게 흔들렸고, 개발도상국가 위주로 판매망을 확대해온 대우자동차의 부진이 거듭되었다. 경영여건이 안정되지 못한 상황에서 추진한 쌍용자동차의 인수도 큰 실익을 거두지 못하였고, 외형확대의 초점을 맞추어 경영해오다보니 당시 정부가 요구했던 구조조정에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오다보니 구조조정의 실시가 경쟁 그룹에 비해 늦은 편이었다. 정부 주도의 산업체계 개편에 따라 늦게나마 추진한 대우전자-삼성자동차 빅딜협상은 양사간 입장차이로 끝내 결렬되었으며, 1999년 여름에 접어들면서 그룹의 운명을 좌우할 대우와 GM과의 협상(대우차와의 경영권 문제)마저도 실패한 대우는 급속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자금난이 가중되던 대우는 알짜자산인 힐튼호텔 매각 등을 성사시키기도 하지만 1999년 3월에는 이미 부채 비율을 무려 400%를 훨씬 넘은 상태여서 수습이 어려운 지경이었다. 7월 대우는 초고강도 구조조정안을 발표하였으나 채권단은 이를 반려한다. 결국 대우는 1999년 8월 16일 채권단의 재무구조개선수정약정 체결과 더불어, 26일 채권단 관리하에 워크아웃을 맞이함으로써 그룹 해체의 길로 접어든다. 지난 1967년 창업 이래 32년간 대한민국에 경쟁성장의 견인차로 역할을 해오던 기업 중 하나로서, 1993년 세계경영을 선포한지 6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 1998년 11월 대우그룹 1차 구조조정안 발표.
  • 1998년 12월 대우전자(주) 및 삼성자동차(주) 빅딜 발표. (사업맞교환)
  • 1999년 4월 19일 대우 2차 구조조정안 발표. (대우 조선, 상용차, 힐튼호텔 등 매각)
  • 1999년 6월 30일 삼성자동차 워크아웃 돌입.
  • 1999년 7월 16일 대우그룹 구조조정안 발표. (자동차 전문그룹으로의 재탄생)
  • 1999년 8월 3일 제일은행 등 채권단 구조조정안 반려.
  • 1999년 8월 16일 대우 채권단, 재무구조개선수정약정 체결.
  • 1999년 8월 26일 (주)대우, 대우중공업(주), 대우자동차(주), 대우전자(주) 등 12개 회사 워크아웃 돌입.
  • 1999년 8월 30일 대우증권(주) 계열 분리, 채권단으로 이양.
  • 1999년 10월 김우중 회장, 중국 옌타이 대우자동차 부품공장 준공식 참석.
  • 1999년 11월 1일 대우 회장 및 대우그룹 사장단 퇴진.
  • 2000년 4월 15일 대규모기업집단 지정 제외.

한 때 세계 경영의 첨병으로 불렸던 대우의 몰락은 경제계에 큰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대우사태는 당대 큰 기업은 절대 흥한다는 '대마불사'의 신화를 깨고 차입경영을 일삼는 부실기업을 과감하게 퇴출시킨 사례로 건실한 기업풍토 조성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이 있는 반면, 대우가 밝혀지지 않은 요인(정치적 문제 또는 국제적 외압)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여론도 일부 존재하고 있어 지금도 눈길을 끈다.

구 대우그룹 계열사

현재 대우의 계열사들은 그룹 해체 후 자립 혹은 새로운 기업의 인수를 통해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그룹이 해체된 이후에도 포스코대우, 대우건설, 대우조선해양 등 몇몇 회사들은 여전히 대우의 이름을 유지하며 성공적으로 영업 중이다.

자동차 사업

대우가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자동차 사업은 1997년 신차 출시, 1998년 쌍용자동차 인수에 따른 사세 확장으로 대한민국 시장에서 호조를 거두었으나 부채 누적으로 인한 만성적인 적자로, 대우그룹 핵심 계열사들이 워크아웃에 돌입하면서 완전히 공중분해되고 말았다.

대우자동차(주)는 포드, 제너럴 모터스(GM) 등 두 양사간의 해외 매각 의사를 타진하였으나 최종적으로 협상이 모두 결렬되었으며, 대우자동차(주)는 경영 정상화 실패로 인해 2000년 11월 10일인천지방법원에 법정관리(정리절차) 개시 신청을 냈고, 노사가 극적으로 노사협의회 합의문에 합의한 후, 회사 측의 자구의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여, 법정관리 개시 결정이 내려졌다.

대우자동차는 GM 매각을 위한 구조조정 계획의 일환으로, 9992억 원의 자구계획을 마련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가 인력을 7300여 명 줄이고 재료비, 경상비, 투자비 등을 대폭 감축했으며, 부평공장 생산직 직원 1750명이 강제로 거리로 내몰리는 역대 최대 규모의 정리해고가 김대중 정부 출범 당시에 근로기준법 개정 이후, 2001년 2월초에 단행되기도 했다.

미국 GM이 2001년 6월초에 대우차 인수 의향서를 제출하여, 이듬해인 2002년 10월 28일에 GM대우(현 한국지엠)라는 외국계 기업으로 새롭게 출범했고, 대한민국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확대에 실패하여 고전을 계속하였던 GM대우는 글로벌 GM의 전략적 요충지로 키우기 위해서 2011년 1월 쉐보레 브랜드로의 흡수 통합을 선언하였으며, 2011년 한국GM(주)가 새롭게 출범하였다.

GM이 인수하지 않은 버스부문, 상용차부문, 부평공장은 대우버스(주), 대우상용차(주), 대우인천자동차(주)로 분할, 매각되었다.

대우자동차(주)의 버스부문인 대우버스(주)는 영안모자에 매각되었고, 트럭을 생산하는 상용차 부문은 인도 최대의 재벌인 타타(TATA)에 매각되어 타타대우상용차(주)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대우그룹 시절 대우자동차와의 합병을 계획하였던 쌍용자동차(주)는 대우그룹의 구조조정 당시 대우차와의 분리 매각이 결정되면서 2000년 4월 대우 계열에서 정식으로 분리되었다. 후에 쌍용자동차(주)는 2005년 중국 국영자동차회사인 상하이자동차 그룹에 인수되어, 미국발 금융 위기로 인한 판매 부진이 계속 거듭되면서 2009년 쌍용자동차(주)의 경영권을 포기하고 한국 시장에 철수하였다. 2009년 쌍용자동차(주)는 법정관리 체제에 들어갔으며, 구조조정에 따른 대규모 정리해고 사태로 노사간의 첨예한 대립까지 위태로울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다가 2010년 말 인도의 마힌드라 자동차에 인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건설, 무역

1999년 워크아웃으로 (주)대우지스틱스가 먼저 분사되었으며, 2000년 12월 모기업 (주)대우가 3개사로 재탄생한다. 청산을 위한 (주)대우 존속법인과 무역부문의 (주)대우인터내셔널, 건설부문의 (주)대우건설로 나뉜다.

(주)대우인터내셔널은 대우의 모태사업인 무역은 물론 백화점 등 사업도 하고 있다. 2010년 포스코에 인수되었고, 지금의 포스코대우로 재출범한다. 백화점 사업은 2014년 롯데쇼핑(주)에서 인수하여 롯데백화점 마산점이 되었다.

(주)대우건설은 워크아웃을 단기에 졸업했으며 2006년 12월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인수되었다. 그러나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무리한 인수합병으로 인한 후유증에 세계 금융위기까지 겪으며 극심한 자금난을 겪자, 2010년 (주)대우건설에 대한 경영권을 포기하였고, 2011년 1월에 금호아시아나 계열에서 정식으로 분리되었다. 현재 최대주주는 한국산업은행이다.

대우그룹의 또다른 건설회사였던 경남기업(주)는 성완종이 이끄는 충남지역 건설사인 대아건설(주)에 인수되었다가 2004년에 대아건설(주)을 합병하면서 국내 10위권의 대형 건설사로 성장가도를 달린다. 2009년 대한민국 건설사들의 잇따른 경영난으로 워크아웃을 재차 겪지만, 실적 개선 등에 힘입어 2011년 5월 워크아웃을 졸업하는데 성공한다. 2015년 하지만 건설업계 불황이 장기화되고 기업의 오너(Owner)인 성완종이 자원외교비리수사에 연루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2015년 4월 마침내 경남기업은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만다. 2017년 sm그룹이 인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중공업, 조선

2000년 대우중공업(주)도 대우종합기계(주), 대우조선공업(주) 그리고 대우중공업(주) 잔존법인으로 분할되었다.

주력부문이었던 중장비 및 군수물자 생산을 담당하는 대우종합기계(주)는 2005년두산 계열로 편입, 두산인프라코어(주)로 재탄생하였다.

대우중공업의 조선해양부문은 대우조선공업 주식회사로 분사되었다가 곧 대우조선해양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한다. 2000년대 조선업계의 호황으로 대우의 계열사 중 가장 먼저 워크아웃을 졸업한 회사로도 주목받았고, 조선업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을 기반으로 건설, 상조사업 등에도 진출하며 자체적으로 조선사업 중심의 기업집단을 일구었다. 2000년 출범한 이래 수년간 경쟁업체인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과 함께 선박 수주잔량으로 세계 수위권을 다투왔지만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변곡점으로 대우조선해양은 2010년대 중반에 이르러 조선업황의 악화로 존폐의 기로에 놓여있는 상태이다.

대우중공업이 3개사로 분할되기 전인 1999년 7월에는 철도차량 생산부문이 경쟁사인 현대정공(주), 한진중공업(주)와 함께 현물출자 형식으로 단일법인을 설립함으로써 국내 유일의 철차제작업체인 한국철도차량주식회사가 탄생하였다. 하지만 대우종합기계(주)가 승계받은 한국철도차량(주)의 지분은 경영정상화를 위해 2001년현대자동차그룹에 전량 매각됨으로써 주식회사 로템(現 현대로템(주))으로 재출범한다.

대우중공업(주)의 항공사업부문도 1999년 8월삼성항공산업(주), 현대우주항공(주)과 통합하여 새로이 한국항공우주산업(주)로 출범하였지만, 대우중공업의 지분을 인계받은 두산그룹의 DIP홀딩스에서는 2016년 한국항공우주산업의 보유지분을 전부 정리하였다.

전자, 통신

한때 세계 각국의 생산기지를 설치하며 세계적인 전자기업을 표방해 오던 대우전자(주)는 1999년 워크아웃 대상기업으로 지정되었고, 2000년 4월 대우전자 중심의 기업집단을 구축하고 비수익 사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피아노 사업을 담당하는 벨로체, 컴퓨터 사업을 담당하는 대우루컴즈, 가스보일러 사업을 담당하는 대우가스보일러 등이 독립된 업체로 분리되었다. 2002년 대우전자의 TV, 백색가전 등 주력 핵심사업부문이 대부분 대우모터공업 주식회사로 인계되어 이듬해인 2003년에 (주)대우일렉트로닉스로 재출범하였다. 이후에도 2008년 대우디스플레이 등이 분리되어 대우일렉트로닉스는 사실상 백색가전 전문업체가 되었다. 2013년 동부그룹이 인수함으로써 동부대우전자 주식회사로 이름이 바뀌다가 2018년 대유그룹이 인수하여 주식회사 대우전자로 부활하였다. 2019년 주식회사 위니아대우 로 이름이 바꿔다가 2020년 주식회사 위니아전자로 이름이 바꿨다.

대우전자부품도 1999년 대우그룹 구조조정으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대상으로 지정되었다. 2000년 4월 대우그룹에서 분리되었다.2008년 회생절차개시 결정을 받았고, 2010년 2월 회생절차 종결 결정을 받았다. 그 후 현대자동차의 1차 협력그룹인 아진그룹이 인수했다.

대우통신(주)은 정상화를 위해 통신 관련사업부문을 매각하여 컴퓨터사업은 대우컴퓨터에 양도하였으며 그밖에 사업부문은 대우텔레텍, 대우글로벌 그리고 1999년 합병된 대우정밀공업 계열의 업체들은 대우정밀, 대우파워트레인, 대우프라스틱 등으로 분사되었다.

대우정밀(주)은 에스엔티(S&T그룹)에 인수되어 현재 S&T모티브로 운영 중이며 대우파워트레인(주)은 GM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컴퍼니(지금의 한국지엠주식회사)에 매각되었고, 대우프라스틱(주)는 삼라마이다스그룹(SM그룹)으로 매각된 후 대우라이프(주)로 바뀌었다가 계열사인 남선알미늄(주)에 합병되었다.

전자 계열사였던 오리온전기(주), 한국전기초자(주), 광전자(주) 등도 워크아웃을 맞아 자취를 감추거나 독자생존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금융

대우증권(주)는 1999년 대우가 해체되기 전 채권단이 인수하였으며 후에 대주주가 한국산업은행으로 변경된다. 2009년에는 한국산업은행의 민영화에 따라 새로이 출범한 KDB금융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2015년에는 미래에셋금융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2001년 8월 (주)다이너스카드클럽코리아는 현대자동차(주)에 매각되어 현대카드(주)로 변경되었다.

대우캐피탈(주)는 아주그룹에 편입되어 아주캐피탈(주)로 바뀌었다.

스포츠

대우그룹에서 운영 중이던 부산 대우 로얄즈현대산업개발에 매각, 인천 대우 제우스신세기통신에 매각되고 인천 신세기 빅스로 변경하며 현재 부산 아이파크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미디어

케이블 채널 중에서 대우시네마네트워크는 동양그룹에 매각되어 OCN(현재 CJ 산하)으로 변경되었다.

같이 보기

건설, 무역

자동차

중공업

전자

금융

기타

  • 대우엔지니어링 → 포스코엔지니어링 (1990년 계열 분리 → 2002년 포스코에 인수)
  • 신성통상 (1984년 계열 분리 → 2002년 가나안에서 인수)
  • 대창기업
  • (주)고려 → SG고려 (구 고려피혁공업주식회사 → 2003년 (주)가로수닷컴에 인수)
  • 세계물산 → SG위카스 → SG세계물산 (2002년 SK글로벌에 인수 → 2005년 (주)가로수닷컴에 인수)
  • 대우시네마네트워크 → (주)오리온시네마네트워크 (1999년 동양그룹에 인수되어 별도법인인 온미디어 설립 → 2010년 CJ에 인수 → 2013년 CJ ENM에 흡수 합병)
  • 부산 대우 로얄즈 → 부산 아이파크 (2000년 현대산업개발에 인수)
  • 인천 대우 제우스 → 인천 신세기 빅스 (1999년 신세기통신에 인수)

외부 링크

각주

  1. 서울특별시고시 제128호, 1985년 2월 28일.
  2. 대우그룹, 쌍용自인수로 재계순위‘3위’《문화일보》1997년 12월 9일 김병직 기자

대우그룹
Daewoo Group
형태대기업집단(1989년~1999년)
창립1967년 3월 22일 (대우실업 주식회사)
창립자김우중(대표이사 회장)
산업 분야자동차, 전자, 조선, 건설
해체1999년 11월 1일
본사 소재지대우센터빌딩(1977년~1999년)
사업 지역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핵심 인물
김우중(대표이사 회장)
매출액분식회계로 정확히 추산불가
영업이익
-4조원(1999년 기준)
자산총액자본 약 15조 부채 89조
주요 주주김우중
모기업(주)대우
계열사대우전자, 대우건설, 대우자동차, 대우조선, 대우증권, 쌍용자동차
자본금5,000,000원(1967년 기준)

대우그룹(大宇─, Daewoo Group)은 1967년 창립한 대우실업을 모태로 1980년대부터 1990년대 말까지 존재한 대한민국의 대규모 기업집단이었다.[2] 대도섬유의 대(大)와 김우중의 우(宇)를 따서 만들었다. 섬유·무역·건설·조선·중장비·자동차·전자·통신·관광·금융 등 여러 사업부문을 두었으며, 1993년 세계경영 전략 채택 이후 강력한 외형확장으로 사세를 넓혀갔고 1998년에는 현대그룹에 이어 재계 2위에 올랐으나 외환위기 이후, 자체 구조조정 실패와 1999년 삼성과의 전자-자동차 빅딜 실패로 1999년 10월부터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그룹 해체를 맞았다.

기업연혁

과거 대우그룹의 본사였던 서울스퀘어.

대우는 1967년 소규모 사업체로 창업하였으나, 1970년대 경제성장 및 수출호조에 따른 비약적인 발전, 그리고 정부 주도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에 힘입어 단기간에 대한민국 최대기업으로서 성장을 이루게 된다. 대우는 1980년대 후반부터 대한민국 외 국가로 눈을 돌려 동유럽 및 신흥시장 개척을 추진해 왔고, 1993년 세계경영에 나서면서 사세확장을 시도하였다. 이후 외환위기 속에서도 1997년 법정관리에 들어간 쌍용자동차를 인수하였다. 98년 상반기에는 현대그룹에 이은 (자산총액기준) 재계 2위에 올랐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출범이후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자체적 구조조정 실패와 무리한 차입금이 발목을 잡았고 1998년 10월, 대우그룹이 신청한 기업어음(CP)발행이 중단되면서 그룹 위기가 찾아왔다. 1999년이 되면서 삼성그룹과의 대우전자-삼성자동차의 빅딜협상에 들어갔으나 동년 7월, 협상이 결렬되었다. 이후 김우중 회장은 자동차를 중심으로 그룹 구조조정에 뒤늦게 들어갔으나 대우그룹 채권단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1999년 10월, 그룹 해체 수순을 밟았다.

성장

1967년 대우실업 창립 이래, 부산에 공장을 설치하여 1970년대 와이셔츠 등의 봉제품 및 섬유제품의 수출호조와 더불어 경제고도성장으로 급속한 발전을 이루어 신흥 사업체로 주목받았고, 더욱이 정부가 주도하던 경제 정책에 발맞춰 금융, 전자, 중공업, 자동차 사업에도 뛰어들면서 대우 그룹을 형성하게 된다.

  • 1967년 3월 22일 모태인 대우실업(주)(대우가족) 창립. (섬유류 봉제품 생산, 수출 주도)
  • 1969년 8월 대한민국 기업 해외지사 1호 시드니에 개설.
  • 1971년 9월 (주)내쇼날의류 설립.
  • 1972년 9월 고려피혁(주) 인수.
  • 1973년 쌍미섬유공업(주) 인수. 대우증권의 전신 동양증권(주) 인수. 대우건설(주) 설립.
  • 1975년 2월 대우빌딩 착공.
  • 1975년 5월 대우실업(주), 종합무역상사 지정.
  • 1976년 2월 한국기계공업(주) 인수. 10월 해외건설업면허 취득. 대우중공업(주) 출범.
  • 1977년 대우센터 빌딩 준공. 8월 제철화학(주) 경영권 인수.
  • 1978년 7월 산업은행으로부터 새한자동차(주) 지분 인수. 대한조선공사 옥포조선소 인수 후 9월 대우조선공업(주) 설립.

도약기

대우 그룹은 (주)대우의 출범과 새한자동차 경영권 장악, 가전사업 진출을 잇달아 성사시키며 현대(現代), 삼성(三星), 럭키금성(LG)과 함께 대한민국 4대 기업군으로 성장한다. 국내 업체들과의 출혈 경쟁에서 기술력과 수익성의 한계를 느낀 대우는 세계로 눈을 돌려 냉전체제의 완화가 도래한 시점에 동유럽 및 공산권 국가에 현지법인을 설립하면서 신시장 개척을 준비하였다.

  • 1981년 10월 옥포조선소 준공. 수출의날 15억불탑 수상. 대우실업(주) 및 대우개발(주) 합병 결의.
  • 1982년 모기업 (주)대우 출범. 수출의날 20억불탑 수상.
  • 1983년 대우자동차(주) 출범. 대우전자(주)에서 대한전선(주)의 가전부문을 흡수. 대우통신(주) 설립.
  • 1984년 경남기업(주) 경영 참여. (주)대우경제연구소 설립. 10월 대우자동차부품(주) 설립. 대한민국 최초 VTR 수출.
  • 1986년 대우증권 런던사무소 개설. 9월 경남기업(주) 계열 편입.
  • 1987년 미얀마 현지 철도차량공장 준공.
  • 1988년 (주)대우 동베를린지사 설치. 대우투자자문(주) 설립. 프랑스 롱위 전자레인지 공장 건립. 대우증권 홍콩사무소 개설.
  • 1989년 제철화학 외 3개사 매각. 대우정보시스템 설립. 대우기전공업㈜ 출범. MHB-Daewoo Bank 설립.
  • 1990년 (주)대우 모스크바지사 설치. 대우중공업(주) 유럽현지법인 설립. 멕시코 컬러TV 공장 건립.
  • 1991년 (주)대우 북경지사 설치. 대우증권(주) 유럽현지법인 설립, 취리히사무소 개설.
  • 1992년 4월 佛 컬러TV 공장 건립. 佛 컴퓨터 판매법인 설립. 대우증권 美 현지법인 설립. 대우차-GM 제휴관계 청산.

팽창기

(주)대우가 구축한 세계무역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대우자동차(주), 대우중공업(주), 대우전자(주)가 국제적으로 널리 진출하는 '세계경영'은 1993년 '세계경영 우리기술' 슬로건 선포를 시점으로 본격화되었다. 대우가 당시 내세웠던 세계경영은 선진업체가 진출하지 않은 옛 공산권 국가와 앞으로 발전가능성이 무한한 개발도상국 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것으로, 현지법인 설립과 인수합병을 통해 단기간에 정착하여 사세확장을 꾀하는 형태이다. 실제로 대우가 진출을 시도한 개발도상국가의 정부에서는 자국의 경제활성화 목적에서 대우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기에, 대우의 사업확장은 더욱 쉽게 이뤄질 수 있었다. 대한민국 시장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대우자동차(주)의 경우는 대한민국 외 국가에서 판매하는 수량이 대한민국에서 판매하는 수량을 앞지르는 현상을 가져오기도 했다. 이같은 대우의 급속한 성장은 대한민국 경제계와 대한민국 외 국가 경제에 큰 반향을 가져다 주었다.

  • 1993년 1월 대우자판 설립.
  • 1993년 2월 베트남 합작은행 출자.
  • 1993년 3월 세계경영 선포.
  • 1993년 5월 우즈벡 가전 공장 설립.
  • 1993년 7월 대우중공업(주) 미국현지법인 DEC 설립.
  • 1993년 8월 폴란드 TV 공장 설립.
  • 1993년 9월 세계최초 공기방울 세탁기 개발.
  • 1994년 2월 대우할부금융 설립.
  • 1994년 3월 인도 합작증권사 CRB-Daewoo Securities Ltd 출자.
  • 1994년 5월 대우자동차(주) 영국 워딩 자동차 기술연구소 건립.
  • 1994년 6월 대우중공업 영국현지법인 유로 대우 UK 설립.
  • 1994년 10월 대우중공업(주) 대우조선공업 흡수 합병. 중국현지법인 대우중공업연대유한공사 설립.
  • 1994년 11월 루마니아 자동차합작공장 DAEWOO-RODAE 설립. 대우중공업(주) 러시아 기술연구소 DISK 설립.
  • 1995년 1월 대우중공업(주) 독일 현지법인 ECO 설립. 대우전자(주) 말레이시아 세탁기 공장 설립. 대우뱅크 출범.
  • 1995년 2월 대우중공업(주) 일본 현지법인 대우건기 설립.
  • 1995년 3월 체코 최대 국영상용차업체 AVIA사 인수. 대우증권(주) 홍콩현지법인 설립.
  • 1995년 4월 대우증권(주) 상해사무소 개설.
  • 1995년 5월 대한민국 기업 최초, 대북 협력사업 정부승인 획득.
  • 1995년 6월 다이너스카드사 인수.
  • 1995년 7월 동우개발(주)의 사명을 (주)대우개발로 변경.
  • 1995년 9월 베트남 하노이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우즈벡 공화국에 교환기합작공장 알로카대우 설립.
  • 1995년 10월 중국천진 팩스밀리 합작공장 설립.
  • 1995년 11월 베트남 최초 타포린 합작생산 공장 준공. 폴란드 최대 자동차기업 FSO 인수, DAEWOO-FSO 출범.
  • 1996년 3월 대우증권(주) 싱가폴사무소 개설. 루마니아 DAEWOO-RODAE 공장 준공.
  • 1996년 5월 남북경협 최초회사 민족산업총회사 남포에 설립. 앙골라 대규모 유전발견.
  • 1996년 6월 프랑스 롱위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인도뉴델리 첨단 소프트웨어 연구개발센타 설립. 페루육상 유전인수 입찰수주.
  • 1996년 7월 한진투자증권 합작 법인 서울투신운용(주) 설립. 우크라이나 대용량교환기 합작공장 드니프로-대우 설립.
  • 1996년 10월 대우증권(주) 동경지점 개점. UZ-Daewoo 자동차 공장 준공. 베트남 비담코 자동차 공장 준공.
  • 1996년 11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중국 광케이블 합작회사 우시-대우 설립. 루마니아 합작은행 설립.
  • 1997년 3월 우즈베키스탄 대우은행 (Uz-Daewoo Bank) 설립.
  • 1997년 4월 인도 종합 가전공장 설립. 군산 종합 자동차공장 준공.
  • 1997년 5월 인도 CRB증권 대우파이낸스로 상호 변경. 대우선물(주) 설립.
  • 1997년 6월 대우증권(주) 싱가포르 현지법인 설립.
  • 1997년 7월 대우리스 체코에 설립.
  • 1997년 9월 대우자동차(주) 우크라이나 합작공장 설립계약 체결.
  • 1997년 12월 한국전기초자(주) 인수.

해체

대우는 세계경영으로 철저히 현지화를 추구함으로써 1993년 당시 150여개에 불과했던 대한민국 외 국가 현지법인을 1998년 11월에는 396개로 끌어올리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대우는 1997년 다가온 경제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물로 나온 쌍용자동차(주)를 인수하여 소형차에서 대형차는 물론, 버스와 트럭, 사륜구동 SUV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차량을 생산하는 풀라인업을 완성시키고 그 밖에도 해외 현지공장 인수 및 확장을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대우는 1998년 삼성(三星)을 제치고 재계서열 2위까지 뛰어오른다.

  • 1998년 3월 30일 대우자동차(주), 쌍용자동차(주) 인수.
  • 1998년 5월 스페인 냉장고 공장 설립.
  • 1998년 6월 우크라이나 자동차 법인 AUTOZAZ-DAEWOO 공장 본격 가동.
  • 1998년 7월 미국 Fortune 선정 매출 500대 기업 중 세계 18위의 기업으로 도약.
  • 1998년 10월 대우중공업(주) 이집트공장 준공.
  • 1998년 11월 무역의 날 150억불 수출의 탑 수상.

그러나 경기침체의 장기화와 세계 시장의 위축으로 대우의 입지는 크게 흔들렸고, 개발도상국가 위주로 판매망을 확대해온 대우자동차의 부진이 거듭되었다. 경영여건이 안정되지 못한 상황에서 추진한 쌍용자동차의 인수도 큰 실익을 거두지 못하였고, 외형확대의 초점을 맞추어 경영해오다보니 당시 정부가 요구했던 구조조정에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오다보니 구조조정의 실시가 경쟁 그룹에 비해 늦은 편이었다. 정부 주도의 산업체계 개편에 따라 늦게나마 추진한 대우전자-삼성자동차 빅딜협상은 양사간 입장차이로 끝내 결렬되었으며, 1999년 여름에 접어들면서 그룹의 운명을 좌우할 대우와 GM과의 협상(대우차와의 경영권 문제)마저도 실패한 대우는 급속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자금난이 가중되던 대우는 알짜자산인 힐튼호텔 매각 등을 성사시키기도 하지만 1999년 3월에는 이미 부채 비율을 무려 400%를 훨씬 넘은 상태여서 수습이 어려운 지경이었다. 7월 대우는 초고강도 구조조정안을 발표하였으나 채권단은 이를 반려한다. 결국 대우는 1999년 8월 16일 채권단의 재무구조개선수정약정 체결과 더불어, 26일 채권단 관리하에 워크아웃을 맞이함으로써 그룹 해체의 길로 접어든다. 지난 1967년 창업 이래 32년간 대한민국에 경쟁성장의 견인차로 역할을 해오던 기업 중 하나로서, 1993년 세계경영을 선포한지 6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 1998년 11월 대우그룹 1차 구조조정안 발표.
  • 1998년 12월 대우전자(주) 및 삼성자동차(주) 빅딜 발표. (사업맞교환)
  • 1999년 4월 19일 대우 2차 구조조정안 발표. (대우 조선, 상용차, 힐튼호텔 등 매각)
  • 1999년 6월 30일 삼성자동차 워크아웃 돌입.
  • 1999년 7월 16일 대우그룹 구조조정안 발표. (자동차 전문그룹으로의 재탄생)
  • 1999년 8월 3일 제일은행 등 채권단 구조조정안 반려.
  • 1999년 8월 16일 대우 채권단, 재무구조개선수정약정 체결.
  • 1999년 8월 26일 (주)대우, 대우중공업(주), 대우자동차(주), 대우전자(주) 등 12개 회사 워크아웃 돌입.
  • 1999년 8월 30일 대우증권(주) 계열 분리, 채권단으로 이양.
  • 1999년 10월 김우중 회장, 중국 옌타이 대우자동차 부품공장 준공식 참석.
  • 1999년 11월 1일 대우 회장 및 대우그룹 사장단 퇴진.
  • 2000년 4월 15일 대규모기업집단 지정 제외.

한 때 세계 경영의 첨병으로 불렸던 대우의 몰락은 경제계에 큰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대우사태는 당대 큰 기업은 절대 흥한다는 '대마불사'의 신화를 깨고 차입경영을 일삼는 부실기업을 과감하게 퇴출시킨 사례로 건실한 기업풍토 조성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이 있는 반면, 대우가 밝혀지지 않은 요인(정치적 문제 또는 국제적 외압)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여론도 일부 존재하고 있어 지금도 눈길을 끈다.

구 대우그룹 계열사

현재 대우의 계열사들은 그룹 해체 후 자립 혹은 새로운 기업의 인수를 통해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그룹이 해체된 이후에도 포스코대우, 대우건설, 대우조선해양 등 몇몇 회사들은 여전히 대우의 이름을 유지하며 성공적으로 영업 중이다.

자동차 사업

대우가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자동차 사업은 1997년 신차 출시, 1998년 쌍용자동차 인수에 따른 사세 확장으로 대한민국 시장에서 호조를 거두었으나 부채 누적으로 인한 만성적인 적자로, 대우그룹 핵심 계열사들이 워크아웃에 돌입하면서 완전히 공중분해되고 말았다.

대우자동차(주)는 포드, 제너럴 모터스(GM) 등 두 양사간의 해외 매각 의사를 타진하였으나 최종적으로 협상이 모두 결렬되었으며, 대우자동차(주)는 경영 정상화 실패로 인해 2000년 11월 10일인천지방법원에 법정관리(정리절차) 개시 신청을 냈고, 노사가 극적으로 노사협의회 합의문에 합의한 후, 회사 측의 자구의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여, 법정관리 개시 결정이 내려졌다.

대우자동차는 GM 매각을 위한 구조조정 계획의 일환으로, 9992억 원의 자구계획을 마련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가 인력을 7300여 명 줄이고 재료비, 경상비, 투자비 등을 대폭 감축했으며, 부평공장 생산직 직원 1750명이 강제로 거리로 내몰리는 역대 최대 규모의 정리해고가 김대중 정부 출범 당시에 근로기준법 개정 이후, 2001년 2월초에 단행되기도 했다.

미국 GM이 2001년 6월초에 대우차 인수 의향서를 제출하여, 이듬해인 2002년 10월 28일에 GM대우(현 한국지엠)라는 외국계 기업으로 새롭게 출범했고, 대한민국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확대에 실패하여 고전을 계속하였던 GM대우는 글로벌 GM의 전략적 요충지로 키우기 위해서 2011년 1월 쉐보레 브랜드로의 흡수 통합을 선언하였으며, 2011년 한국GM(주)가 새롭게 출범하였다.

GM이 인수하지 않은 버스부문, 상용차부문, 부평공장은 대우버스(주), 대우상용차(주), 대우인천자동차(주)로 분할, 매각되었다.

대우자동차(주)의 버스부문인 대우버스(주)는 영안모자에 매각되었고, 트럭을 생산하는 상용차 부문은 인도 최대의 재벌인 타타(TATA)에 매각되어 타타대우상용차(주)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대우그룹 시절 대우자동차와의 합병을 계획하였던 쌍용자동차(주)는 대우그룹의 구조조정 당시 대우차와의 분리 매각이 결정되면서 2000년 4월 대우 계열에서 정식으로 분리되었다. 후에 쌍용자동차(주)는 2005년 중국 국영자동차회사인 상하이자동차 그룹에 인수되어, 미국발 금융 위기로 인한 판매 부진이 계속 거듭되면서 2009년 쌍용자동차(주)의 경영권을 포기하고 한국 시장에 철수하였다. 2009년 쌍용자동차(주)는 법정관리 체제에 들어갔으며, 구조조정에 따른 대규모 정리해고 사태로 노사간의 첨예한 대립까지 위태로울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다가 2010년 말 인도의 마힌드라 자동차에 인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건설, 무역

1999년 워크아웃으로 (주)대우지스틱스가 먼저 분사되었으며, 2000년 12월 모기업 (주)대우가 3개사로 재탄생한다. 청산을 위한 (주)대우 존속법인과 무역부문의 (주)대우인터내셔널, 건설부문의 (주)대우건설로 나뉜다.

(주)대우인터내셔널은 대우의 모태사업인 무역은 물론 백화점 등 사업도 하고 있다. 2010년 포스코에 인수되었고, 지금의 포스코대우로 재출범한다. 백화점 사업은 2014년 롯데쇼핑(주)에서 인수하여 롯데백화점 마산점이 되었다.

(주)대우건설은 워크아웃을 단기에 졸업했으며 2006년 12월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인수되었다. 그러나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무리한 인수합병으로 인한 후유증에 세계 금융위기까지 겪으며 극심한 자금난을 겪자, 2010년 (주)대우건설에 대한 경영권을 포기하였고, 2011년 1월에 금호아시아나 계열에서 정식으로 분리되었다. 현재 최대주주는 한국산업은행이다.

대우그룹의 또다른 건설회사였던 경남기업(주)는 성완종이 이끄는 충남지역 건설사인 대아건설(주)에 인수되었다가 2004년에 대아건설(주)을 합병하면서 국내 10위권의 대형 건설사로 성장가도를 달린다. 2009년 대한민국 건설사들의 잇따른 경영난으로 워크아웃을 재차 겪지만, 실적 개선 등에 힘입어 2011년 5월 워크아웃을 졸업하는데 성공한다. 2015년 하지만 건설업계 불황이 장기화되고 기업의 오너(Owner)인 성완종이 자원외교비리수사에 연루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2015년 4월 마침내 경남기업은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만다. 2017년 sm그룹이 인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중공업, 조선

2000년 대우중공업(주)도 대우종합기계(주), 대우조선공업(주) 그리고 대우중공업(주) 잔존법인으로 분할되었다.

주력부문이었던 중장비 및 군수물자 생산을 담당하는 대우종합기계(주)는 2005년두산 계열로 편입, 두산인프라코어(주)로 재탄생하였다.

대우중공업의 조선해양부문은 대우조선공업 주식회사로 분사되었다가 곧 대우조선해양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한다. 2000년대 조선업계의 호황으로 대우의 계열사 중 가장 먼저 워크아웃을 졸업한 회사로도 주목받았고, 조선업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을 기반으로 건설, 상조사업 등에도 진출하며 자체적으로 조선사업 중심의 기업집단을 일구었다. 2000년 출범한 이래 수년간 경쟁업체인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과 함께 선박 수주잔량으로 세계 수위권을 다투왔지만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변곡점으로 대우조선해양은 2010년대 중반에 이르러 조선업황의 악화로 존폐의 기로에 놓여있는 상태이다.

대우중공업이 3개사로 분할되기 전인 1999년 7월에는 철도차량 생산부문이 경쟁사인 현대정공(주), 한진중공업(주)와 함께 현물출자 형식으로 단일법인을 설립함으로써 국내 유일의 철차제작업체인 한국철도차량주식회사가 탄생하였다. 하지만 대우종합기계(주)가 승계받은 한국철도차량(주)의 지분은 경영정상화를 위해 2001년현대자동차그룹에 전량 매각됨으로써 주식회사 로템(現 현대로템(주))으로 재출범한다.

대우중공업(주)의 항공사업부문도 1999년 8월삼성항공산업(주), 현대우주항공(주)과 통합하여 새로이 한국항공우주산업(주)로 출범하였지만, 대우중공업의 지분을 인계받은 두산그룹의 DIP홀딩스에서는 2016년 한국항공우주산업의 보유지분을 전부 정리하였다.

전자, 통신

한때 세계 각국의 생산기지를 설치하며 세계적인 전자기업을 표방해 오던 대우전자(주)는 1999년 워크아웃 대상기업으로 지정되었고, 2000년 4월 대우전자 중심의 기업집단을 구축하고 비수익 사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피아노 사업을 담당하는 벨로체, 컴퓨터 사업을 담당하는 대우루컴즈, 가스보일러 사업을 담당하는 대우가스보일러 등이 독립된 업체로 분리되었다. 2002년 대우전자의 TV, 백색가전 등 주력 핵심사업부문이 대부분 대우모터공업 주식회사로 인계되어 이듬해인 2003년에 (주)대우일렉트로닉스로 재출범하였다. 이후에도 2008년 대우디스플레이 등이 분리되어 대우일렉트로닉스는 사실상 백색가전 전문업체가 되었다. 2013년 동부그룹이 인수함으로써 동부대우전자 주식회사로 이름이 바뀌다가 2018년 대유그룹이 인수하여 주식회사 대우전자로 부활하였다. 2019년 주식회사 위니아대우 로 이름이 바꿔다가 2020년 주식회사 위니아전자로 이름이 바꿨다.

대우전자부품도 1999년 대우그룹 구조조정으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대상으로 지정되었다. 2000년 4월 대우그룹에서 분리되었다.2008년 회생절차개시 결정을 받았고, 2010년 2월 회생절차 종결 결정을 받았다. 그 후 현대자동차의 1차 협력그룹인 아진그룹이 인수했다.

대우통신(주)은 정상화를 위해 통신 관련사업부문을 매각하여 컴퓨터사업은 대우컴퓨터에 양도하였으며 그밖에 사업부문은 대우텔레텍, 대우글로벌 그리고 1999년 합병된 대우정밀공업 계열의 업체들은 대우정밀, 대우파워트레인, 대우프라스틱 등으로 분사되었다.

대우정밀(주)은 에스엔티(S&T그룹)에 인수되어 현재 S&T모티브로 운영 중이며 대우파워트레인(주)은 GM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컴퍼니(지금의 한국지엠주식회사)에 매각되었고, 대우프라스틱(주)는 삼라마이다스그룹(SM그룹)으로 매각된 후 대우라이프(주)로 바뀌었다가 계열사인 남선알미늄(주)에 합병되었다.

전자 계열사였던 오리온전기(주), 한국전기초자(주), 광전자(주) 등도 워크아웃을 맞아 자취를 감추거나 독자생존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금융

대우증권(주)는 1999년 대우가 해체되기 전 채권단이 인수하였으며 후에 대주주가 한국산업은행으로 변경된다. 2009년에는 한국산업은행의 민영화에 따라 새로이 출범한 KDB금융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2015년에는 미래에셋금융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2001년 8월 (주)다이너스카드클럽코리아는 현대자동차(주)에 매각되어 현대카드(주)로 변경되었다.

대우캐피탈(주)는 아주그룹에 편입되어 아주캐피탈(주)로 바뀌었다.

스포츠

대우그룹에서 운영 중이던 부산 대우 로얄즈현대산업개발에 매각, 인천 대우 제우스신세기통신에 매각되고 인천 신세기 빅스로 변경하며 현재 부산 아이파크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미디어

케이블 채널 중에서 대우시네마네트워크는 동양그룹에 매각되어 OCN(현재 CJ 산하)으로 변경되었다.

같이 보기

건설, 무역

자동차

중공업

전자

금융

기타

  • 대우엔지니어링 → 포스코엔지니어링 (1990년 계열 분리 → 2002년 포스코에 인수)
  • 신성통상 (1984년 계열 분리 → 2002년 가나안에서 인수)
  • 대창기업
  • (주)고려 → SG고려 (구 고려피혁공업주식회사 → 2003년 (주)가로수닷컴에 인수)
  • 세계물산 → SG위카스 → SG세계물산 (2002년 SK글로벌에 인수 → 2005년 (주)가로수닷컴에 인수)
  • 대우시네마네트워크 → (주)오리온시네마네트워크 (1999년 동양그룹에 인수되어 별도법인인 온미디어 설립 → 2010년 CJ에 인수 → 2013년 CJ ENM에 흡수 합병)
  • 부산 대우 로얄즈 → 부산 아이파크 (2000년 현대산업개발에 인수)
  • 인천 대우 제우스 → 인천 신세기 빅스 (1999년 신세기통신에 인수)

외부 링크

각주

대우그룹
Daewoo Group
형태대기업집단(1989년~1999년)
창립1967년 3월 22일 (대우실업 주식회사)
창립자김우중(대표이사 회장)
산업 분야자동차, 전자, 조선, 건설
해체1999년 11월 1일
본사 소재지대우센터빌딩(1977년~1999년)
사업 지역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핵심 인물
김우중(대표이사 회장)
매출액분식회계로 정확히 추산불가
영업이익
-4조원(1999년 기준)
자산총액자본 약 15조 부채 89조
주요 주주김우중
모기업(주)대우
계열사대우전자, 대우건설, 대우자동차, 대우조선, 대우증권, 쌍용자동차
자본금5,000,000원(1967년 기준)

대우그룹(大宇─, Daewoo Group)은 1967년 창립한 대우실업을 모태로 1980년대부터 1990년대 말까지 존재한 대한민국의 대규모 기업집단이었다.[1] 대도섬유의 대(大)와 김우중의 우(宇)를 따서 만들었다. 섬유·무역·건설·조선·중장비·자동차·전자·통신·관광·금융 등 여러 사업부문을 두었으며, 1993년 세계경영 전략 채택 이후 강력한 외형확장으로 사세를 넓혀갔고 1998년에는 현대그룹에 이어 재계 2위에 올랐으나 외환위기 이후, 자체 구조조정 실패와 1999년 삼성과의 전자-자동차 빅딜 실패로 1999년 10월부터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그룹 해체를 맞았다.

기업연혁

과거 대우그룹의 본사였던 서울스퀘어.

대우는 1967년 소규모 사업체로 창업하였으나, 1970년대 경제성장 및 수출호조에 따른 비약적인 발전, 그리고 정부 주도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에 힘입어 단기간에 대한민국 최대기업으로서 성장을 이루게 된다. 대우는 1980년대 후반부터 대한민국 외 국가로 눈을 돌려 동유럽 및 신흥시장 개척을 추진해 왔고, 1993년 세계경영에 나서면서 사세확장을 시도하였다. 이후 외환위기 속에서도 1997년 법정관리에 들어간 쌍용자동차를 인수하였다. 98년 상반기에는 현대그룹에 이은 (자산총액기준) 재계 2위에 올랐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출범이후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자체적 구조조정 실패와 무리한 차입금이 발목을 잡았고 1998년 10월, 대우그룹이 신청한 기업어음(CP)발행이 중단되면서 그룹 위기가 찾아왔다. 1999년이 되면서 삼성그룹과의 대우전자-삼성자동차의 빅딜협상에 들어갔으나 동년 7월, 협상이 결렬되었다. 이후 김우중 회장은 자동차를 중심으로 그룹 구조조정에 뒤늦게 들어갔으나 대우그룹 채권단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1999년 10월, 그룹 해체 수순을 밟았다.

성장

1967년 대우실업 창립 이래, 부산에 공장을 설치하여 1970년대 와이셔츠 등의 봉제품 및 섬유제품의 수출호조와 더불어 경제고도성장으로 급속한 발전을 이루어 신흥 사업체로 주목받았고, 더욱이 정부가 주도하던 경제 정책에 발맞춰 금융, 전자, 중공업, 자동차 사업에도 뛰어들면서 대우 그룹을 형성하게 된다.

  • 1967년 3월 22일 모태인 대우실업(주)(대우가족) 창립. (섬유류 봉제품 생산, 수출 주도)
  • 1969년 8월 대한민국 기업 해외지사 1호 시드니에 개설.
  • 1971년 9월 (주)내쇼날의류 설립.
  • 1972년 9월 고려피혁(주) 인수.
  • 1973년 쌍미섬유공업(주) 인수. 대우증권의 전신 동양증권(주) 인수. 대우건설(주) 설립.
  • 1975년 2월 대우빌딩 착공.
  • 1975년 5월 대우실업(주), 종합무역상사 지정.
  • 1976년 2월 한국기계공업(주) 인수. 10월 해외건설업면허 취득. 대우중공업(주) 출범.
  • 1977년 대우센터 빌딩 준공. 8월 제철화학(주) 경영권 인수.
  • 1978년 7월 산업은행으로부터 새한자동차(주) 지분 인수. 대한조선공사 옥포조선소 인수 후 9월 대우조선공업(주) 설립.

도약기

대우 그룹은 (주)대우의 출범과 새한자동차 경영권 장악, 가전사업 진출을 잇달아 성사시키며 현대(現代), 삼성(三星), 럭키금성(LG)과 함께 대한민국 4대 기업군으로 성장한다. 국내 업체들과의 출혈 경쟁에서 기술력과 수익성의 한계를 느낀 대우는 세계로 눈을 돌려 냉전체제의 완화가 도래한 시점에 동유럽 및 공산권 국가에 현지법인을 설립하면서 신시장 개척을 준비하였다.

  • 1981년 10월 옥포조선소 준공. 수출의날 15억불탑 수상. 대우실업(주) 및 대우개발(주) 합병 결의.
  • 1982년 모기업 (주)대우 출범. 수출의날 20억불탑 수상.
  • 1983년 대우자동차(주) 출범. 대우전자(주)에서 대한전선(주)의 가전부문을 흡수. 대우통신(주) 설립.
  • 1984년 경남기업(주) 경영 참여. (주)대우경제연구소 설립. 10월 대우자동차부품(주) 설립. 대한민국 최초 VTR 수출.
  • 1986년 대우증권 런던사무소 개설. 9월 경남기업(주) 계열 편입.
  • 1987년 미얀마 현지 철도차량공장 준공.
  • 1988년 (주)대우 동베를린지사 설치. 대우투자자문(주) 설립. 프랑스 롱위 전자레인지 공장 건립. 대우증권 홍콩사무소 개설.
  • 1989년 제철화학 외 3개사 매각. 대우정보시스템 설립. 대우기전공업㈜ 출범. MHB-Daewoo Bank 설립.
  • 1990년 (주)대우 모스크바지사 설치. 대우중공업(주) 유럽현지법인 설립. 멕시코 컬러TV 공장 건립.
  • 1991년 (주)대우 북경지사 설치. 대우증권(주) 유럽현지법인 설립, 취리히사무소 개설.
  • 1992년 4월 佛 컬러TV 공장 건립. 佛 컴퓨터 판매법인 설립. 대우증권 美 현지법인 설립. 대우차-GM 제휴관계 청산.

팽창기

(주)대우가 구축한 세계무역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대우자동차(주), 대우중공업(주), 대우전자(주)가 국제적으로 널리 진출하는 '세계경영'은 1993년 '세계경영 우리기술' 슬로건 선포를 시점으로 본격화되었다. 대우가 당시 내세웠던 세계경영은 선진업체가 진출하지 않은 옛 공산권 국가와 앞으로 발전가능성이 무한한 개발도상국 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것으로, 현지법인 설립과 인수합병을 통해 단기간에 정착하여 사세확장을 꾀하는 형태이다. 실제로 대우가 진출을 시도한 개발도상국가의 정부에서는 자국의 경제활성화 목적에서 대우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기에, 대우의 사업확장은 더욱 쉽게 이뤄질 수 있었다. 대한민국 시장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대우자동차(주)의 경우는 대한민국 외 국가에서 판매하는 수량이 대한민국에서 판매하는 수량을 앞지르는 현상을 가져오기도 했다. 이같은 대우의 급속한 성장은 대한민국 경제계와 대한민국 외 국가 경제에 큰 반향을 가져다 주었다.

  • 1993년 1월 대우자판 설립.
  • 1993년 2월 베트남 합작은행 출자.
  • 1993년 3월 세계경영 선포.
  • 1993년 5월 우즈벡 가전 공장 설립.
  • 1993년 7월 대우중공업(주) 미국현지법인 DEC 설립.
  • 1993년 8월 폴란드 TV 공장 설립.
  • 1993년 9월 세계최초 공기방울 세탁기 개발.
  • 1994년 2월 대우할부금융 설립.
  • 1994년 3월 인도 합작증권사 CRB-Daewoo Securities Ltd 출자.
  • 1994년 5월 대우자동차(주) 영국 워딩 자동차 기술연구소 건립.
  • 1994년 6월 대우중공업 영국현지법인 유로 대우 UK 설립.
  • 1994년 10월 대우중공업(주) 대우조선공업 흡수 합병. 중국현지법인 대우중공업연대유한공사 설립.
  • 1994년 11월 루마니아 자동차합작공장 DAEWOO-RODAE 설립. 대우중공업(주) 러시아 기술연구소 DISK 설립.
  • 1995년 1월 대우중공업(주) 독일 현지법인 ECO 설립. 대우전자(주) 말레이시아 세탁기 공장 설립. 대우뱅크 출범.
  • 1995년 2월 대우중공업(주) 일본 현지법인 대우건기 설립.
  • 1995년 3월 체코 최대 국영상용차업체 AVIA사 인수. 대우증권(주) 홍콩현지법인 설립.
  • 1995년 4월 대우증권(주) 상해사무소 개설.
  • 1995년 5월 대한민국 기업 최초, 대북 협력사업 정부승인 획득.
  • 1995년 6월 다이너스카드사 인수.
  • 1995년 7월 동우개발(주)의 사명을 (주)대우개발로 변경.
  • 1995년 9월 베트남 하노이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우즈벡 공화국에 교환기합작공장 알로카대우 설립.
  • 1995년 10월 중국천진 팩스밀리 합작공장 설립.
  • 1995년 11월 베트남 최초 타포린 합작생산 공장 준공. 폴란드 최대 자동차기업 FSO 인수, DAEWOO-FSO 출범.
  • 1996년 3월 대우증권(주) 싱가폴사무소 개설. 루마니아 DAEWOO-RODAE 공장 준공.
  • 1996년 5월 남북경협 최초회사 민족산업총회사 남포에 설립. 앙골라 대규모 유전발견.
  • 1996년 6월 프랑스 롱위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인도뉴델리 첨단 소프트웨어 연구개발센타 설립. 페루육상 유전인수 입찰수주.
  • 1996년 7월 한진투자증권 합작 법인 서울투신운용(주) 설립. 우크라이나 대용량교환기 합작공장 드니프로-대우 설립.
  • 1996년 10월 대우증권(주) 동경지점 개점. UZ-Daewoo 자동차 공장 준공. 베트남 비담코 자동차 공장 준공.
  • 1996년 11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중국 광케이블 합작회사 우시-대우 설립. 루마니아 합작은행 설립.
  • 1997년 3월 우즈베키스탄 대우은행 (Uz-Daewoo Bank) 설립.
  • 1997년 4월 인도 종합 가전공장 설립. 군산 종합 자동차공장 준공.
  • 1997년 5월 인도 CRB증권 대우파이낸스로 상호 변경. 대우선물(주) 설립.
  • 1997년 6월 대우증권(주) 싱가포르 현지법인 설립.
  • 1997년 7월 대우리스 체코에 설립.
  • 1997년 9월 대우자동차(주) 우크라이나 합작공장 설립계약 체결.
  • 1997년 12월 한국전기초자(주) 인수.

해체

대우는 세계경영으로 철저히 현지화를 추구함으로써 1993년 당시 150여개에 불과했던 대한민국 외 국가 현지법인을 1998년 11월에는 396개로 끌어올리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대우는 1997년 다가온 경제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물로 나온 쌍용자동차(주)를 인수하여 소형차에서 대형차는 물론, 버스와 트럭, 사륜구동 SUV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차량을 생산하는 풀라인업을 완성시키고 그 밖에도 해외 현지공장 인수 및 확장을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대우는 1998년 삼성(三星)을 제치고 재계서열 2위까지 뛰어오른다.

  • 1998년 3월 30일 대우자동차(주), 쌍용자동차(주) 인수.
  • 1998년 5월 스페인 냉장고 공장 설립.
  • 1998년 6월 우크라이나 자동차 법인 AUTOZAZ-DAEWOO 공장 본격 가동.
  • 1998년 7월 미국 Fortune 선정 매출 500대 기업 중 세계 18위의 기업으로 도약.
  • 1998년 10월 대우중공업(주) 이집트공장 준공.
  • 1998년 11월 무역의 날 150억불 수출의 탑 수상.

그러나 경기침체의 장기화와 세계 시장의 위축으로 대우의 입지는 크게 흔들렸고, 개발도상국가 위주로 판매망을 확대해온 대우자동차의 부진이 거듭되었다. 경영여건이 안정되지 못한 상황에서 추진한 쌍용자동차의 인수도 큰 실익을 거두지 못하였고, 외형확대의 초점을 맞추어 경영해오다보니 당시 정부가 요구했던 구조조정에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오다보니 구조조정의 실시가 경쟁 그룹에 비해 늦은 편이었다. 정부 주도의 산업체계 개편에 따라 늦게나마 추진한 대우전자-삼성자동차 빅딜협상은 양사간 입장차이로 끝내 결렬되었으며, 1999년 여름에 접어들면서 그룹의 운명을 좌우할 대우와 GM과의 협상(대우차와의 경영권 문제)마저도 실패한 대우는 급속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자금난이 가중되던 대우는 알짜자산인 힐튼호텔 매각 등을 성사시키기도 하지만 1999년 3월에는 이미 부채 비율을 무려 400%를 훨씬 넘은 상태여서 수습이 어려운 지경이었다. 7월 대우는 초고강도 구조조정안을 발표하였으나 채권단은 이를 반려한다. 결국 대우는 1999년 8월 16일 채권단의 재무구조개선수정약정 체결과 더불어, 26일 채권단 관리하에 워크아웃을 맞이함으로써 그룹 해체의 길로 접어든다. 지난 1967년 창업 이래 32년간 대한민국에 경쟁성장의 견인차로 역할을 해오던 기업 중 하나로서, 1993년 세계경영을 선포한지 6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 1998년 11월 대우그룹 1차 구조조정안 발표.
  • 1998년 12월 대우전자(주) 및 삼성자동차(주) 빅딜 발표. (사업맞교환)
  • 1999년 4월 19일 대우 2차 구조조정안 발표. (대우 조선, 상용차, 힐튼호텔 등 매각)
  • 1999년 6월 30일 삼성자동차 워크아웃 돌입.
  • 1999년 7월 16일 대우그룹 구조조정안 발표. (자동차 전문그룹으로의 재탄생)
  • 1999년 8월 3일 제일은행 등 채권단 구조조정안 반려.
  • 1999년 8월 16일 대우 채권단, 재무구조개선수정약정 체결.
  • 1999년 8월 26일 (주)대우, 대우중공업(주), 대우자동차(주), 대우전자(주) 등 12개 회사 워크아웃 돌입.
  • 1999년 8월 30일 대우증권(주) 계열 분리, 채권단으로 이양.
  • 1999년 10월 김우중 회장, 중국 옌타이 대우자동차 부품공장 준공식 참석.
  • 1999년 11월 1일 대우 회장 및 대우그룹 사장단 퇴진.
  • 2000년 4월 15일 대규모기업집단 지정 제외.

한 때 세계 경영의 첨병으로 불렸던 대우의 몰락은 경제계에 큰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대우사태는 당대 큰 기업은 절대 흥한다는 '대마불사'의 신화를 깨고 차입경영을 일삼는 부실기업을 과감하게 퇴출시킨 사례로 건실한 기업풍토 조성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이 있는 반면, 대우가 밝혀지지 않은 요인(정치적 문제 또는 국제적 외압)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여론도 일부 존재하고 있어 지금도 눈길을 끈다.

구 대우그룹 계열사

현재 대우의 계열사들은 그룹 해체 후 자립 혹은 새로운 기업의 인수를 통해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그룹이 해체된 이후에도 포스코대우, 대우건설, 대우조선해양 등 몇몇 회사들은 여전히 대우의 이름을 유지하며 성공적으로 영업 중이다.

자동차 사업

대우가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자동차 사업은 1997년 신차 출시, 1998년 쌍용자동차 인수에 따른 사세 확장으로 대한민국 시장에서 호조를 거두었으나 부채 누적으로 인한 만성적인 적자로, 대우그룹 핵심 계열사들이 워크아웃에 돌입하면서 완전히 공중분해되고 말았다.

대우자동차(주)는 포드, 제너럴 모터스(GM) 등 두 양사간의 해외 매각 의사를 타진하였으나 최종적으로 협상이 모두 결렬되었으며, 대우자동차(주)는 경영 정상화 실패로 인해 2000년 11월 10일인천지방법원에 법정관리(정리절차) 개시 신청을 냈고, 노사가 극적으로 노사협의회 합의문에 합의한 후, 회사 측의 자구의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여, 법정관리 개시 결정이 내려졌다.

대우자동차는 GM 매각을 위한 구조조정 계획의 일환으로, 9992억 원의 자구계획을 마련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가 인력을 7300여 명 줄이고 재료비, 경상비, 투자비 등을 대폭 감축했으며, 부평공장 생산직 직원 1750명이 강제로 거리로 내몰리는 역대 최대 규모의 정리해고가 김대중 정부 출범 당시에 근로기준법 개정 이후, 2001년 2월초에 단행되기도 했다.

미국 GM이 2001년 6월초에 대우차 인수 의향서를 제출하여, 이듬해인 2002년 10월 28일에 GM대우(현 한국지엠)라는 외국계 기업으로 새롭게 출범했고, 대한민국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확대에 실패하여 고전을 계속하였던 GM대우는 글로벌 GM의 전략적 요충지로 키우기 위해서 2011년 1월 쉐보레 브랜드로의 흡수 통합을 선언하였으며, 2011년 한국GM(주)가 새롭게 출범하였다.

GM이 인수하지 않은 버스부문, 상용차부문, 부평공장은 대우버스(주), 대우상용차(주), 대우인천자동차(주)로 분할, 매각되었다.

대우자동차(주)의 버스부문인 대우버스(주)는 영안모자에 매각되었고, 트럭을 생산하는 상용차 부문은 인도 최대의 재벌인 타타(TATA)에 매각되어 타타대우상용차(주)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대우그룹 시절 대우자동차와의 합병을 계획하였던 쌍용자동차(주)는 대우그룹의 구조조정 당시 대우차와의 분리 매각이 결정되면서 2000년 4월 대우 계열에서 정식으로 분리되었다. 후에 쌍용자동차(주)는 2005년 중국 국영자동차회사인 상하이자동차 그룹에 인수되어, 미국발 금융 위기로 인한 판매 부진이 계속 거듭되면서 2009년 쌍용자동차(주)의 경영권을 포기하고 한국 시장에 철수하였다. 2009년 쌍용자동차(주)는 법정관리 체제에 들어갔으며, 구조조정에 따른 대규모 정리해고 사태로 노사간의 첨예한 대립까지 위태로울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다가 2010년 말 인도의 마힌드라 자동차에 인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건설, 무역

1999년 워크아웃으로 (주)대우지스틱스가 먼저 분사되었으며, 2000년 12월 모기업 (주)대우가 3개사로 재탄생한다. 청산을 위한 (주)대우 존속법인과 무역부문의 (주)대우인터내셔널, 건설부문의 (주)대우건설로 나뉜다.

(주)대우인터내셔널은 대우의 모태사업인 무역은 물론 백화점 등 사업도 하고 있다. 2010년 포스코에 인수되었고, 지금의 포스코대우로 재출범한다. 백화점 사업은 2014년 롯데쇼핑(주)에서 인수하여 롯데백화점 마산점이 되었다.

(주)대우건설은 워크아웃을 단기에 졸업했으며 2006년 12월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인수되었다. 그러나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무리한 인수합병으로 인한 후유증에 세계 금융위기까지 겪으며 극심한 자금난을 겪자, 2010년 (주)대우건설에 대한 경영권을 포기하였고, 2011년 1월에 금호아시아나 계열에서 정식으로 분리되었다. 현재 최대주주는 한국산업은행이다.

대우그룹의 또다른 건설회사였던 경남기업(주)는 성완종이 이끄는 충남지역 건설사인 대아건설(주)에 인수되었다가 2004년에 대아건설(주)을 합병하면서 국내 10위권의 대형 건설사로 성장가도를 달린다. 2009년 대한민국 건설사들의 잇따른 경영난으로 워크아웃을 재차 겪지만, 실적 개선 등에 힘입어 2011년 5월 워크아웃을 졸업하는데 성공한다. 2015년 하지만 건설업계 불황이 장기화되고 기업의 오너(Owner)인 성완종이 자원외교비리수사에 연루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2015년 4월 마침내 경남기업은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만다. 2017년 sm그룹이 인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중공업, 조선

2000년 대우중공업(주)도 대우종합기계(주), 대우조선공업(주) 그리고 대우중공업(주) 잔존법인으로 분할되었다.

주력부문이었던 중장비 및 군수물자 생산을 담당하는 대우종합기계(주)는 2005년두산 계열로 편입, 두산인프라코어(주)로 재탄생하였다.

대우중공업의 조선해양부문은 대우조선공업 주식회사로 분사되었다가 곧 대우조선해양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한다. 2000년대 조선업계의 호황으로 대우의 계열사 중 가장 먼저 워크아웃을 졸업한 회사로도 주목받았고, 조선업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을 기반으로 건설, 상조사업 등에도 진출하며 자체적으로 조선사업 중심의 기업집단을 일구었다. 2000년 출범한 이래 수년간 경쟁업체인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과 함께 선박 수주잔량으로 세계 수위권을 다투왔지만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변곡점으로 대우조선해양은 2010년대 중반에 이르러 조선업황의 악화로 존폐의 기로에 놓여있는 상태이다.

대우중공업이 3개사로 분할되기 전인 1999년 7월에는 철도차량 생산부문이 경쟁사인 현대정공(주), 한진중공업(주)와 함께 현물출자 형식으로 단일법인을 설립함으로써 국내 유일의 철차제작업체인 한국철도차량주식회사가 탄생하였다. 하지만 대우종합기계(주)가 승계받은 한국철도차량(주)의 지분은 경영정상화를 위해 2001년현대자동차그룹에 전량 매각됨으로써 주식회사 로템(現 현대로템(주))으로 재출범한다.

대우중공업(주)의 항공사업부문도 1999년 8월삼성항공산업(주), 현대우주항공(주)과 통합하여 새로이 한국항공우주산업(주)로 출범하였지만, 대우중공업의 지분을 인계받은 두산그룹의 DIP홀딩스에서는 2016년 한국항공우주산업의 보유지분을 전부 정리하였다.

전자, 통신

한때 세계 각국의 생산기지를 설치하며 세계적인 전자기업을 표방해 오던 대우전자(주)는 1999년 워크아웃 대상기업으로 지정되었고, 2000년 4월 대우전자 중심의 기업집단을 구축하고 비수익 사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피아노 사업을 담당하는 벨로체, 컴퓨터 사업을 담당하는 대우루컴즈, 가스보일러 사업을 담당하는 대우가스보일러 등이 독립된 업체로 분리되었다. 2002년 대우전자의 TV, 백색가전 등 주력 핵심사업부문이 대부분 대우모터공업 주식회사로 인계되어 이듬해인 2003년에 (주)대우일렉트로닉스로 재출범하였다. 이후에도 2008년 대우디스플레이 등이 분리되어 대우일렉트로닉스는 사실상 백색가전 전문업체가 되었다. 2013년 동부그룹이 인수함으로써 동부대우전자 주식회사로 이름이 바뀌다가 2018년 대유그룹이 인수하여 주식회사 대우전자로 부활하였다. 2019년 주식회사 위니아대우 로 이름이 바꿔다가 2020년 주식회사 위니아전자로 이름이 바꿨다.

대우전자부품도 1999년 대우그룹 구조조정으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대상으로 지정되었다. 2000년 4월 대우그룹에서 분리되었다.2008년 회생절차개시 결정을 받았고, 2010년 2월 회생절차 종결 결정을 받았다. 그 후 현대자동차의 1차 협력그룹인 아진그룹이 인수했다.

대우통신(주)은 정상화를 위해 통신 관련사업부문을 매각하여 컴퓨터사업은 대우컴퓨터에 양도하였으며 그밖에 사업부문은 대우텔레텍, 대우글로벌 그리고 1999년 합병된 대우정밀공업 계열의 업체들은 대우정밀, 대우파워트레인, 대우프라스틱 등으로 분사되었다.

대우정밀(주)은 에스엔티(S&T그룹)에 인수되어 현재 S&T모티브로 운영 중이며 대우파워트레인(주)은 GM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컴퍼니(지금의 한국지엠주식회사)에 매각되었고, 대우프라스틱(주)는 삼라마이다스그룹(SM그룹)으로 매각된 후 대우라이프(주)로 바뀌었다가 계열사인 남선알미늄(주)에 합병되었다.

전자 계열사였던 오리온전기(주), 한국전기초자(주), 광전자(주) 등도 워크아웃을 맞아 자취를 감추거나 독자생존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금융

대우증권(주)는 1999년 대우가 해체되기 전 채권단이 인수하였으며 후에 대주주가 한국산업은행으로 변경된다. 2009년에는 한국산업은행의 민영화에 따라 새로이 출범한 KDB금융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2015년에는 미래에셋금융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2001년 8월 (주)다이너스카드클럽코리아는 현대자동차(주)에 매각되어 현대카드(주)로 변경되었다.

대우캐피탈(주)는 아주그룹에 편입되어 아주캐피탈(주)로 바뀌었다.

스포츠

대우그룹에서 운영 중이던 부산 대우 로얄즈현대산업개발에 매각, 인천 대우 제우스신세기통신에 매각되고 인천 신세기 빅스로 변경하며 현재 부산 아이파크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미디어

케이블 채널 중에서 대우시네마네트워크는 동양그룹에 매각되어 OCN(현재 CJ 산하)으로 변경되었다.

같이 보기

건설, 무역

자동차

중공업

전자

금융

기타

  • 대우엔지니어링 → 포스코엔지니어링 (1990년 계열 분리 → 2002년 포스코에 인수)
  • 신성통상 (1984년 계열 분리 → 2002년 가나안에서 인수)
  • 대창기업
  • (주)고려 → SG고려 (구 고려피혁공업주식회사 → 2003년 (주)가로수닷컴에 인수)
  • 세계물산 → SG위카스 → SG세계물산 (2002년 SK글로벌에 인수 → 2005년 (주)가로수닷컴에 인수)
  • 대우시네마네트워크 → (주)오리온시네마네트워크 (1999년 동양그룹에 인수되어 별도법인인 온미디어 설립 → 2010년 CJ에 인수 → 2013년 CJ ENM에 흡수 합병)
  • 부산 대우 로얄즈 → 부산 아이파크 (2000년 현대산업개발에 인수)
  • 인천 대우 제우스 → 인천 신세기 빅스 (1999년 신세기통신에 인수)

외부 링크

각주

  1. 대우그룹, 쌍용自인수로 재계순위‘3위’《문화일보》1997년 12월 9일 김병직 기자

역 목록

본선 (을지로순환선)


번호
역명 접속 노선 역간
거리
누적
거리
소재지
한글 로마자 한자
대우그룹
Daewoo Group
형태대기업집단(1989년~1999년)
창립1967년 3월 22일 (대우실업 주식회사)
창립자김우중(대표이사 회장)
산업 분야자동차, 전자, 조선, 건설
해체1999년 11월 1일
본사 소재지대우센터빌딩(1977년~1999년)
사업 지역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핵심 인물
김우중(대표이사 회장)
매출액분식회계로 정확히 추산불가
영업이익
-4조원(1999년 기준)
자산총액자본 약 15조 부채 89조
주요 주주김우중
모기업(주)대우
계열사대우전자, 대우건설, 대우자동차, 대우조선, 대우증권, 쌍용자동차
자본금5,000,000원(1967년 기준)

대우그룹(大宇─, Daewoo Group)은 1967년 창립한 대우실업을 모태로 1980년대부터 1990년대 말까지 존재한 대한민국의 대규모 기업집단이었다.[6] 대도섬유의 대(大)와 김우중의 우(宇)를 따서 만들었다. 섬유·무역·건설·조선·중장비·자동차·전자·통신·관광·금융 등 여러 사업부문을 두었으며, 1993년 세계경영 전략 채택 이후 강력한 외형확장으로 사세를 넓혀갔고 1998년에는 현대그룹에 이어 재계 2위에 올랐으나 외환위기 이후, 자체 구조조정 실패와 1999년 삼성과의 전자-자동차 빅딜 실패로 1999년 10월부터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그룹 해체를 맞았다.

기업연혁

과거 대우그룹의 본사였던 서울스퀘어.

대우는 1967년 소규모 사업체로 창업하였으나, 1970년대 경제성장 및 수출호조에 따른 비약적인 발전, 그리고 정부 주도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에 힘입어 단기간에 대한민국 최대기업으로서 성장을 이루게 된다. 대우는 1980년대 후반부터 대한민국 외 국가로 눈을 돌려 동유럽 및 신흥시장 개척을 추진해 왔고, 1993년 세계경영에 나서면서 사세확장을 시도하였다. 이후 외환위기 속에서도 1997년 법정관리에 들어간 쌍용자동차를 인수하였다. 98년 상반기에는 현대그룹에 이은 (자산총액기준) 재계 2위에 올랐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출범이후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자체적 구조조정 실패와 무리한 차입금이 발목을 잡았고 1998년 10월, 대우그룹이 신청한 기업어음(CP)발행이 중단되면서 그룹 위기가 찾아왔다. 1999년이 되면서 삼성그룹과의 대우전자-삼성자동차의 빅딜협상에 들어갔으나 동년 7월, 협상이 결렬되었다. 이후 김우중 회장은 자동차를 중심으로 그룹 구조조정에 뒤늦게 들어갔으나 대우그룹 채권단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1999년 10월, 그룹 해체 수순을 밟았다.

성장

1967년 대우실업 창립 이래, 부산에 공장을 설치하여 1970년대 와이셔츠 등의 봉제품 및 섬유제품의 수출호조와 더불어 경제고도성장으로 급속한 발전을 이루어 신흥 사업체로 주목받았고, 더욱이 정부가 주도하던 경제 정책에 발맞춰 금융, 전자, 중공업, 자동차 사업에도 뛰어들면서 대우 그룹을 형성하게 된다.

  • 1967년 3월 22일 모태인 대우실업(주)(대우가족) 창립. (섬유류 봉제품 생산, 수출 주도)
  • 1969년 8월 대한민국 기업 해외지사 1호 시드니에 개설.
  • 1971년 9월 (주)내쇼날의류 설립.
  • 1972년 9월 고려피혁(주) 인수.
  • 1973년 쌍미섬유공업(주) 인수. 대우증권의 전신 동양증권(주) 인수. 대우건설(주) 설립.
  • 1975년 2월 대우빌딩 착공.
  • 1975년 5월 대우실업(주), 종합무역상사 지정.
  • 1976년 2월 한국기계공업(주) 인수. 10월 해외건설업면허 취득. 대우중공업(주) 출범.
  • 1977년 대우센터 빌딩 준공. 8월 제철화학(주) 경영권 인수.
  • 1978년 7월 산업은행으로부터 새한자동차(주) 지분 인수. 대한조선공사 옥포조선소 인수 후 9월 대우조선공업(주) 설립.

도약기

대우 그룹은 (주)대우의 출범과 새한자동차 경영권 장악, 가전사업 진출을 잇달아 성사시키며 현대(現代), 삼성(三星), 럭키금성(LG)과 함께 대한민국 4대 기업군으로 성장한다. 국내 업체들과의 출혈 경쟁에서 기술력과 수익성의 한계를 느낀 대우는 세계로 눈을 돌려 냉전체제의 완화가 도래한 시점에 동유럽 및 공산권 국가에 현지법인을 설립하면서 신시장 개척을 준비하였다.

  • 1981년 10월 옥포조선소 준공. 수출의날 15억불탑 수상. 대우실업(주) 및 대우개발(주) 합병 결의.
  • 1982년 모기업 (주)대우 출범. 수출의날 20억불탑 수상.
  • 1983년 대우자동차(주) 출범. 대우전자(주)에서 대한전선(주)의 가전부문을 흡수. 대우통신(주) 설립.
  • 1984년 경남기업(주) 경영 참여. (주)대우경제연구소 설립. 10월 대우자동차부품(주) 설립. 대한민국 최초 VTR 수출.
  • 1986년 대우증권 런던사무소 개설. 9월 경남기업(주) 계열 편입.
  • 1987년 미얀마 현지 철도차량공장 준공.
  • 1988년 (주)대우 동베를린지사 설치. 대우투자자문(주) 설립. 프랑스 롱위 전자레인지 공장 건립. 대우증권 홍콩사무소 개설.
  • 1989년 제철화학 외 3개사 매각. 대우정보시스템 설립. 대우기전공업㈜ 출범. MHB-Daewoo Bank 설립.
  • 1990년 (주)대우 모스크바지사 설치. 대우중공업(주) 유럽현지법인 설립. 멕시코 컬러TV 공장 건립.
  • 1991년 (주)대우 북경지사 설치. 대우증권(주) 유럽현지법인 설립, 취리히사무소 개설.
  • 1992년 4월 佛 컬러TV 공장 건립. 佛 컴퓨터 판매법인 설립. 대우증권 美 현지법인 설립. 대우차-GM 제휴관계 청산.

팽창기

(주)대우가 구축한 세계무역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대우자동차(주), 대우중공업(주), 대우전자(주)가 국제적으로 널리 진출하는 '세계경영'은 1993년 '세계경영 우리기술' 슬로건 선포를 시점으로 본격화되었다. 대우가 당시 내세웠던 세계경영은 선진업체가 진출하지 않은 옛 공산권 국가와 앞으로 발전가능성이 무한한 개발도상국 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것으로, 현지법인 설립과 인수합병을 통해 단기간에 정착하여 사세확장을 꾀하는 형태이다. 실제로 대우가 진출을 시도한 개발도상국가의 정부에서는 자국의 경제활성화 목적에서 대우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기에, 대우의 사업확장은 더욱 쉽게 이뤄질 수 있었다. 대한민국 시장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대우자동차(주)의 경우는 대한민국 외 국가에서 판매하는 수량이 대한민국에서 판매하는 수량을 앞지르는 현상을 가져오기도 했다. 이같은 대우의 급속한 성장은 대한민국 경제계와 대한민국 외 국가 경제에 큰 반향을 가져다 주었다.

  • 1993년 1월 대우자판 설립.
  • 1993년 2월 베트남 합작은행 출자.
  • 1993년 3월 세계경영 선포.
  • 1993년 5월 우즈벡 가전 공장 설립.
  • 1993년 7월 대우중공업(주) 미국현지법인 DEC 설립.
  • 1993년 8월 폴란드 TV 공장 설립.
  • 1993년 9월 세계최초 공기방울 세탁기 개발.
  • 1994년 2월 대우할부금융 설립.
  • 1994년 3월 인도 합작증권사 CRB-Daewoo Securities Ltd 출자.
  • 1994년 5월 대우자동차(주) 영국 워딩 자동차 기술연구소 건립.
  • 1994년 6월 대우중공업 영국현지법인 유로 대우 UK 설립.
  • 1994년 10월 대우중공업(주) 대우조선공업 흡수 합병. 중국현지법인 대우중공업연대유한공사 설립.
  • 1994년 11월 루마니아 자동차합작공장 DAEWOO-RODAE 설립. 대우중공업(주) 러시아 기술연구소 DISK 설립.
  • 1995년 1월 대우중공업(주) 독일 현지법인 ECO 설립. 대우전자(주) 말레이시아 세탁기 공장 설립. 대우뱅크 출범.
  • 1995년 2월 대우중공업(주) 일본 현지법인 대우건기 설립.
  • 1995년 3월 체코 최대 국영상용차업체 AVIA사 인수. 대우증권(주) 홍콩현지법인 설립.
  • 1995년 4월 대우증권(주) 상해사무소 개설.
  • 1995년 5월 대한민국 기업 최초, 대북 협력사업 정부승인 획득.
  • 1995년 6월 다이너스카드사 인수.
  • 1995년 7월 동우개발(주)의 사명을 (주)대우개발로 변경.
  • 1995년 9월 베트남 하노이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우즈벡 공화국에 교환기합작공장 알로카대우 설립.
  • 1995년 10월 중국천진 팩스밀리 합작공장 설립.
  • 1995년 11월 베트남 최초 타포린 합작생산 공장 준공. 폴란드 최대 자동차기업 FSO 인수, DAEWOO-FSO 출범.
  • 1996년 3월 대우증권(주) 싱가폴사무소 개설. 루마니아 DAEWOO-RODAE 공장 준공.
  • 1996년 5월 남북경협 최초회사 민족산업총회사 남포에 설립. 앙골라 대규모 유전발견.
  • 1996년 6월 프랑스 롱위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인도뉴델리 첨단 소프트웨어 연구개발센타 설립. 페루육상 유전인수 입찰수주.
  • 1996년 7월 한진투자증권 합작 법인 서울투신운용(주) 설립. 우크라이나 대용량교환기 합작공장 드니프로-대우 설립.
  • 1996년 10월 대우증권(주) 동경지점 개점. UZ-Daewoo 자동차 공장 준공. 베트남 비담코 자동차 공장 준공.
  • 1996년 11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중국 광케이블 합작회사 우시-대우 설립. 루마니아 합작은행 설립.
  • 1997년 3월 우즈베키스탄 대우은행 (Uz-Daewoo Bank) 설립.
  • 1997년 4월 인도 종합 가전공장 설립. 군산 종합 자동차공장 준공.
  • 1997년 5월 인도 CRB증권 대우파이낸스로 상호 변경. 대우선물(주) 설립.
  • 1997년 6월 대우증권(주) 싱가포르 현지법인 설립.
  • 1997년 7월 대우리스 체코에 설립.
  • 1997년 9월 대우자동차(주) 우크라이나 합작공장 설립계약 체결.
  • 1997년 12월 한국전기초자(주) 인수.

해체

대우는 세계경영으로 철저히 현지화를 추구함으로써 1993년 당시 150여개에 불과했던 대한민국 외 국가 현지법인을 1998년 11월에는 396개로 끌어올리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대우는 1997년 다가온 경제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물로 나온 쌍용자동차(주)를 인수하여 소형차에서 대형차는 물론, 버스와 트럭, 사륜구동 SUV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차량을 생산하는 풀라인업을 완성시키고 그 밖에도 해외 현지공장 인수 및 확장을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대우는 1998년 삼성(三星)을 제치고 재계서열 2위까지 뛰어오른다.

  • 1998년 3월 30일 대우자동차(주), 쌍용자동차(주) 인수.
  • 1998년 5월 스페인 냉장고 공장 설립.
  • 1998년 6월 우크라이나 자동차 법인 AUTOZAZ-DAEWOO 공장 본격 가동.
  • 1998년 7월 미국 Fortune 선정 매출 500대 기업 중 세계 18위의 기업으로 도약.
  • 1998년 10월 대우중공업(주) 이집트공장 준공.
  • 1998년 11월 무역의 날 150억불 수출의 탑 수상.

그러나 경기침체의 장기화와 세계 시장의 위축으로 대우의 입지는 크게 흔들렸고, 개발도상국가 위주로 판매망을 확대해온 대우자동차의 부진이 거듭되었다. 경영여건이 안정되지 못한 상황에서 추진한 쌍용자동차의 인수도 큰 실익을 거두지 못하였고, 외형확대의 초점을 맞추어 경영해오다보니 당시 정부가 요구했던 구조조정에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오다보니 구조조정의 실시가 경쟁 그룹에 비해 늦은 편이었다. 정부 주도의 산업체계 개편에 따라 늦게나마 추진한 대우전자-삼성자동차 빅딜협상은 양사간 입장차이로 끝내 결렬되었으며, 1999년 여름에 접어들면서 그룹의 운명을 좌우할 대우와 GM과의 협상(대우차와의 경영권 문제)마저도 실패한 대우는 급속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자금난이 가중되던 대우는 알짜자산인 힐튼호텔 매각 등을 성사시키기도 하지만 1999년 3월에는 이미 부채 비율을 무려 400%를 훨씬 넘은 상태여서 수습이 어려운 지경이었다. 7월 대우는 초고강도 구조조정안을 발표하였으나 채권단은 이를 반려한다. 결국 대우는 1999년 8월 16일 채권단의 재무구조개선수정약정 체결과 더불어, 26일 채권단 관리하에 워크아웃을 맞이함으로써 그룹 해체의 길로 접어든다. 지난 1967년 창업 이래 32년간 대한민국에 경쟁성장의 견인차로 역할을 해오던 기업 중 하나로서, 1993년 세계경영을 선포한지 6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 1998년 11월 대우그룹 1차 구조조정안 발표.
  • 1998년 12월 대우전자(주) 및 삼성자동차(주) 빅딜 발표. (사업맞교환)
  • 1999년 4월 19일 대우 2차 구조조정안 발표. (대우 조선, 상용차, 힐튼호텔 등 매각)
  • 1999년 6월 30일 삼성자동차 워크아웃 돌입.
  • 1999년 7월 16일 대우그룹 구조조정안 발표. (자동차 전문그룹으로의 재탄생)
  • 1999년 8월 3일 제일은행 등 채권단 구조조정안 반려.
  • 1999년 8월 16일 대우 채권단, 재무구조개선수정약정 체결.
  • 1999년 8월 26일 (주)대우, 대우중공업(주), 대우자동차(주), 대우전자(주) 등 12개 회사 워크아웃 돌입.
  • 1999년 8월 30일 대우증권(주) 계열 분리, 채권단으로 이양.
  • 1999년 10월 김우중 회장, 중국 옌타이 대우자동차 부품공장 준공식 참석.
  • 1999년 11월 1일 대우 회장 및 대우그룹 사장단 퇴진.
  • 2000년 4월 15일 대규모기업집단 지정 제외.

한 때 세계 경영의 첨병으로 불렸던 대우의 몰락은 경제계에 큰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대우사태는 당대 큰 기업은 절대 흥한다는 '대마불사'의 신화를 깨고 차입경영을 일삼는 부실기업을 과감하게 퇴출시킨 사례로 건실한 기업풍토 조성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이 있는 반면, 대우가 밝혀지지 않은 요인(정치적 문제 또는 국제적 외압)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여론도 일부 존재하고 있어 지금도 눈길을 끈다.

구 대우그룹 계열사

현재 대우의 계열사들은 그룹 해체 후 자립 혹은 새로운 기업의 인수를 통해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그룹이 해체된 이후에도 포스코대우, 대우건설, 대우조선해양 등 몇몇 회사들은 여전히 대우의 이름을 유지하며 성공적으로 영업 중이다.

자동차 사업

대우가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자동차 사업은 1997년 신차 출시, 1998년 쌍용자동차 인수에 따른 사세 확장으로 대한민국 시장에서 호조를 거두었으나 부채 누적으로 인한 만성적인 적자로, 대우그룹 핵심 계열사들이 워크아웃에 돌입하면서 완전히 공중분해되고 말았다.

대우자동차(주)는 포드, 제너럴 모터스(GM) 등 두 양사간의 해외 매각 의사를 타진하였으나 최종적으로 협상이 모두 결렬되었으며, 대우자동차(주)는 경영 정상화 실패로 인해 2000년 11월 10일인천지방법원에 법정관리(정리절차) 개시 신청을 냈고, 노사가 극적으로 노사협의회 합의문에 합의한 후, 회사 측의 자구의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여, 법정관리 개시 결정이 내려졌다.

대우자동차는 GM 매각을 위한 구조조정 계획의 일환으로, 9992억 원의 자구계획을 마련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가 인력을 7300여 명 줄이고 재료비, 경상비, 투자비 등을 대폭 감축했으며, 부평공장 생산직 직원 1750명이 강제로 거리로 내몰리는 역대 최대 규모의 정리해고가 김대중 정부 출범 당시에 근로기준법 개정 이후, 2001년 2월초에 단행되기도 했다.

미국 GM이 2001년 6월초에 대우차 인수 의향서를 제출하여, 이듬해인 2002년 10월 28일에 GM대우(현 한국지엠)라는 외국계 기업으로 새롭게 출범했고, 대한민국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확대에 실패하여 고전을 계속하였던 GM대우는 글로벌 GM의 전략적 요충지로 키우기 위해서 2011년 1월 쉐보레 브랜드로의 흡수 통합을 선언하였으며, 2011년 한국GM(주)가 새롭게 출범하였다.

GM이 인수하지 않은 버스부문, 상용차부문, 부평공장은 대우버스(주), 대우상용차(주), 대우인천자동차(주)로 분할, 매각되었다.

대우자동차(주)의 버스부문인 대우버스(주)는 영안모자에 매각되었고, 트럭을 생산하는 상용차 부문은 인도 최대의 재벌인 타타(TATA)에 매각되어 타타대우상용차(주)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대우그룹 시절 대우자동차와의 합병을 계획하였던 쌍용자동차(주)는 대우그룹의 구조조정 당시 대우차와의 분리 매각이 결정되면서 2000년 4월 대우 계열에서 정식으로 분리되었다. 후에 쌍용자동차(주)는 2005년 중국 국영자동차회사인 상하이자동차 그룹에 인수되어, 미국발 금융 위기로 인한 판매 부진이 계속 거듭되면서 2009년 쌍용자동차(주)의 경영권을 포기하고 한국 시장에 철수하였다. 2009년 쌍용자동차(주)는 법정관리 체제에 들어갔으며, 구조조정에 따른 대규모 정리해고 사태로 노사간의 첨예한 대립까지 위태로울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다가 2010년 말 인도의 마힌드라 자동차에 인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건설, 무역

1999년 워크아웃으로 (주)대우지스틱스가 먼저 분사되었으며, 2000년 12월 모기업 (주)대우가 3개사로 재탄생한다. 청산을 위한 (주)대우 존속법인과 무역부문의 (주)대우인터내셔널, 건설부문의 (주)대우건설로 나뉜다.

(주)대우인터내셔널은 대우의 모태사업인 무역은 물론 백화점 등 사업도 하고 있다. 2010년 포스코에 인수되었고, 지금의 포스코대우로 재출범한다. 백화점 사업은 2014년 롯데쇼핑(주)에서 인수하여 롯데백화점 마산점이 되었다.

(주)대우건설은 워크아웃을 단기에 졸업했으며 2006년 12월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인수되었다. 그러나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무리한 인수합병으로 인한 후유증에 세계 금융위기까지 겪으며 극심한 자금난을 겪자, 2010년 (주)대우건설에 대한 경영권을 포기하였고, 2011년 1월에 금호아시아나 계열에서 정식으로 분리되었다. 현재 최대주주는 한국산업은행이다.

대우그룹의 또다른 건설회사였던 경남기업(주)는 성완종이 이끄는 충남지역 건설사인 대아건설(주)에 인수되었다가 2004년에 대아건설(주)을 합병하면서 국내 10위권의 대형 건설사로 성장가도를 달린다. 2009년 대한민국 건설사들의 잇따른 경영난으로 워크아웃을 재차 겪지만, 실적 개선 등에 힘입어 2011년 5월 워크아웃을 졸업하는데 성공한다. 2015년 하지만 건설업계 불황이 장기화되고 기업의 오너(Owner)인 성완종이 자원외교비리수사에 연루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2015년 4월 마침내 경남기업은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만다. 2017년 sm그룹이 인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중공업, 조선

2000년 대우중공업(주)도 대우종합기계(주), 대우조선공업(주) 그리고 대우중공업(주) 잔존법인으로 분할되었다.

주력부문이었던 중장비 및 군수물자 생산을 담당하는 대우종합기계(주)는 2005년두산 계열로 편입, 두산인프라코어(주)로 재탄생하였다.

대우중공업의 조선해양부문은 대우조선공업 주식회사로 분사되었다가 곧 대우조선해양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한다. 2000년대 조선업계의 호황으로 대우의 계열사 중 가장 먼저 워크아웃을 졸업한 회사로도 주목받았고, 조선업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을 기반으로 건설, 상조사업 등에도 진출하며 자체적으로 조선사업 중심의 기업집단을 일구었다. 2000년 출범한 이래 수년간 경쟁업체인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과 함께 선박 수주잔량으로 세계 수위권을 다투왔지만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변곡점으로 대우조선해양은 2010년대 중반에 이르러 조선업황의 악화로 존폐의 기로에 놓여있는 상태이다.

대우중공업이 3개사로 분할되기 전인 1999년 7월에는 철도차량 생산부문이 경쟁사인 현대정공(주), 한진중공업(주)와 함께 현물출자 형식으로 단일법인을 설립함으로써 국내 유일의 철차제작업체인 한국철도차량주식회사가 탄생하였다. 하지만 대우종합기계(주)가 승계받은 한국철도차량(주)의 지분은 경영정상화를 위해 2001년현대자동차그룹에 전량 매각됨으로써 주식회사 로템(現 현대로템(주))으로 재출범한다.

대우중공업(주)의 항공사업부문도 1999년 8월삼성항공산업(주), 현대우주항공(주)과 통합하여 새로이 한국항공우주산업(주)로 출범하였지만, 대우중공업의 지분을 인계받은 두산그룹의 DIP홀딩스에서는 2016년 한국항공우주산업의 보유지분을 전부 정리하였다.

전자, 통신

한때 세계 각국의 생산기지를 설치하며 세계적인 전자기업을 표방해 오던 대우전자(주)는 1999년 워크아웃 대상기업으로 지정되었고, 2000년 4월 대우전자 중심의 기업집단을 구축하고 비수익 사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피아노 사업을 담당하는 벨로체, 컴퓨터 사업을 담당하는 대우루컴즈, 가스보일러 사업을 담당하는 대우가스보일러 등이 독립된 업체로 분리되었다. 2002년 대우전자의 TV, 백색가전 등 주력 핵심사업부문이 대부분 대우모터공업 주식회사로 인계되어 이듬해인 2003년에 (주)대우일렉트로닉스로 재출범하였다. 이후에도 2008년 대우디스플레이 등이 분리되어 대우일렉트로닉스는 사실상 백색가전 전문업체가 되었다. 2013년 동부그룹이 인수함으로써 동부대우전자 주식회사로 이름이 바뀌다가 2018년 대유그룹이 인수하여 주식회사 대우전자로 부활하였다. 2019년 주식회사 위니아대우 로 이름이 바꿔다가 2020년 주식회사 위니아전자로 이름이 바꿨다.

대우전자부품도 1999년 대우그룹 구조조정으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대상으로 지정되었다. 2000년 4월 대우그룹에서 분리되었다.2008년 회생절차개시 결정을 받았고, 2010년 2월 회생절차 종결 결정을 받았다. 그 후 현대자동차의 1차 협력그룹인 아진그룹이 인수했다.

대우통신(주)은 정상화를 위해 통신 관련사업부문을 매각하여 컴퓨터사업은 대우컴퓨터에 양도하였으며 그밖에 사업부문은 대우텔레텍, 대우글로벌 그리고 1999년 합병된 대우정밀공업 계열의 업체들은 대우정밀, 대우파워트레인, 대우프라스틱 등으로 분사되었다.

대우정밀(주)은 에스엔티(S&T그룹)에 인수되어 현재 S&T모티브로 운영 중이며 대우파워트레인(주)은 GM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컴퍼니(지금의 한국지엠주식회사)에 매각되었고, 대우프라스틱(주)는 삼라마이다스그룹(SM그룹)으로 매각된 후 대우라이프(주)로 바뀌었다가 계열사인 남선알미늄(주)에 합병되었다.

전자 계열사였던 오리온전기(주), 한국전기초자(주), 광전자(주) 등도 워크아웃을 맞아 자취를 감추거나 독자생존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금융

대우증권(주)는 1999년 대우가 해체되기 전 채권단이 인수하였으며 후에 대주주가 한국산업은행으로 변경된다. 2009년에는 한국산업은행의 민영화에 따라 새로이 출범한 KDB금융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2015년에는 미래에셋금융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2001년 8월 (주)다이너스카드클럽코리아는 현대자동차(주)에 매각되어 현대카드(주)로 변경되었다.

대우캐피탈(주)는 아주그룹에 편입되어 아주캐피탈(주)로 바뀌었다.

스포츠

대우그룹에서 운영 중이던 부산 대우 로얄즈현대산업개발에 매각, 인천 대우 제우스신세기통신에 매각되고 인천 신세기 빅스로 변경하며 현재 부산 아이파크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미디어

케이블 채널 중에서 대우시네마네트워크는 동양그룹에 매각되어 OCN(현재 CJ 산하)으로 변경되었다.

같이 보기

건설, 무역

자동차

중공업

전자

금융

기타

  • 대우엔지니어링 → 포스코엔지니어링 (1990년 계열 분리 → 2002년 포스코에 인수)
  • 신성통상 (1984년 계열 분리 → 2002년 가나안에서 인수)
  • 대창기업
  • (주)고려 → SG고려 (구 고려피혁공업주식회사 → 2003년 (주)가로수닷컴에 인수)
  • 세계물산 → SG위카스 → SG세계물산 (2002년 SK글로벌에 인수 → 2005년 (주)가로수닷컴에 인수)
  • 대우시네마네트워크 → (주)오리온시네마네트워크 (1999년 동양그룹에 인수되어 별도법인인 온미디어 설립 → 2010년 CJ에 인수 → 2013년 CJ ENM에 흡수 합병)
  • 부산 대우 로얄즈 → 부산 아이파크 (2000년 현대산업개발에 인수)
  • 인천 대우 제우스 → 인천 신세기 빅스 (1999년 신세기통신에 인수)

외부 링크

각주

  1. 서울특별시고시 제2009-428호, 2009년 10월 29일.
  2. 서울특별시고시 제2010-193호, 2010년 5월 27일.
  3. 서울특별시고시 제2014-436호, 2014년 12월 18일.
  4. 서울특별시, 편집. (2016년 12월 15일), “서울특별시고시 제2016-401호 '도시철도 역명 개정 확정 고시' (PDF), 《서울시보》 (3385), 22쪽, 2019년 8월 10일에 원본 문서 (PDF)에서 보존된 문서, 2016년 12월 16일에 확인함 
  5. 서울특별시고시 제2019-430호, 2019년 12월 26일.
  6. 대우그룹, 쌍용自인수로 재계순위‘3위’《문화일보》1997년 12월 9일 김병직 기자


204 을지로4가(BC카드) Euljiro 4(sa)-ga
(BC Card) 乙支路4街(BC카드) 수도권 전철 5호선 0.6 2.1 205 동대문역사문화공원(DDP) Dongdaemun History & Culture Park(DDP) 東大門歷史文化公園(DDP) 수도권 전철 4호선
수도권 전철 5호선 1.0 3.1 206 신당 Sindang 新堂 서울 지하철 6호선 0.9 4.0 207 상왕십리 Sangwangsimni 上往十里 0.9 4.9 성동구 208 왕십리(성동구청) Wangsimni(Seongdong-Gu Office) 往十里(城東區廳) 수도권 전철 5호선
수도권 전철 경의·중앙선
수도권 전철 수인·분당선
경원선 0.8 5.7 209 한양대 Hanyang Univ. 漢陽大 1.0 6.7 210 뚝섬 Ttukseom 뚝섬 1.1 7.8 211 성수 Seongsu 聖水 서울 지하철 2호선 (성수지선) 0.8 8.6 212 건대입구 Konkuk Univ. 建大入口 서울 지하철 7호선 1.2 9.8 광진구 213 구의(광진구청) Guui(Gwangjin-gu Office) 九宜(廣津區廳) 1.6 11.4 214 강변(동서울터미널) Gangbyeon(Dongseoul Bus Terminal) 江邊(東서울터미널) 0.9 12.3 215 잠실나루(수협중앙회공제보험) Jamsillaru
(Suhyup Insurance) 蠶室나루 1.8 14.1 송파구 216 잠실(송파구청) Jamsil(Songpa-gu Office) 蠶室(松坡區廳) 서울 지하철 8호선 1.0 15.1 217 잠실새내 Jamsilsaenae 蠶室새내 1.2 16.3 218 종합운동장 Sports Complex 綜合運動場 서울 지하철 9호선 1.2 17.5 219 삼성(무역센터)[1] Samseong(World Trade Center Seoul) 三成(貿易센터) 1.0 18.5 강남구 220 선릉(애큐온저축은행) Seolleung
(Acuon Savings Bank) 宣陵 수도권 전철 수인·분당선 1.3 19.8 221 역삼(센터필드) Yeoksam(Center Field) 驛三(센터필드) 1.2 21.0

대우그룹
Daewoo Group
형태대기업집단(1989년~1999년)
창립1967년 3월 22일 (대우실업 주식회사)
창립자김우중(대표이사 회장)
산업 분야자동차, 전자, 조선, 건설
해체1999년 11월 1일
본사 소재지대우센터빌딩(1977년~1999년)
사업 지역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핵심 인물
김우중(대표이사 회장)
매출액분식회계로 정확히 추산불가
영업이익
-4조원(1999년 기준)
자산총액자본 약 15조 부채 89조
주요 주주김우중
모기업(주)대우
계열사대우전자, 대우건설, 대우자동차, 대우조선, 대우증권, 쌍용자동차
자본금5,000,000원(1967년 기준)

대우그룹(大宇─, Daewoo Group)은 1967년 창립한 대우실업을 모태로 1980년대부터 1990년대 말까지 존재한 대한민국의 대규모 기업집단이었다.[2] 대도섬유의 대(大)와 김우중의 우(宇)를 따서 만들었다. 섬유·무역·건설·조선·중장비·자동차·전자·통신·관광·금융 등 여러 사업부문을 두었으며, 1993년 세계경영 전략 채택 이후 강력한 외형확장으로 사세를 넓혀갔고 1998년에는 현대그룹에 이어 재계 2위에 올랐으나 외환위기 이후, 자체 구조조정 실패와 1999년 삼성과의 전자-자동차 빅딜 실패로 1999년 10월부터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그룹 해체를 맞았다.

기업연혁

과거 대우그룹의 본사였던 서울스퀘어.

대우는 1967년 소규모 사업체로 창업하였으나, 1970년대 경제성장 및 수출호조에 따른 비약적인 발전, 그리고 정부 주도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에 힘입어 단기간에 대한민국 최대기업으로서 성장을 이루게 된다. 대우는 1980년대 후반부터 대한민국 외 국가로 눈을 돌려 동유럽 및 신흥시장 개척을 추진해 왔고, 1993년 세계경영에 나서면서 사세확장을 시도하였다. 이후 외환위기 속에서도 1997년 법정관리에 들어간 쌍용자동차를 인수하였다. 98년 상반기에는 현대그룹에 이은 (자산총액기준) 재계 2위에 올랐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출범이후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자체적 구조조정 실패와 무리한 차입금이 발목을 잡았고 1998년 10월, 대우그룹이 신청한 기업어음(CP)발행이 중단되면서 그룹 위기가 찾아왔다. 1999년이 되면서 삼성그룹과의 대우전자-삼성자동차의 빅딜협상에 들어갔으나 동년 7월, 협상이 결렬되었다. 이후 김우중 회장은 자동차를 중심으로 그룹 구조조정에 뒤늦게 들어갔으나 대우그룹 채권단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1999년 10월, 그룹 해체 수순을 밟았다.

성장

1967년 대우실업 창립 이래, 부산에 공장을 설치하여 1970년대 와이셔츠 등의 봉제품 및 섬유제품의 수출호조와 더불어 경제고도성장으로 급속한 발전을 이루어 신흥 사업체로 주목받았고, 더욱이 정부가 주도하던 경제 정책에 발맞춰 금융, 전자, 중공업, 자동차 사업에도 뛰어들면서 대우 그룹을 형성하게 된다.

  • 1967년 3월 22일 모태인 대우실업(주)(대우가족) 창립. (섬유류 봉제품 생산, 수출 주도)
  • 1969년 8월 대한민국 기업 해외지사 1호 시드니에 개설.
  • 1971년 9월 (주)내쇼날의류 설립.
  • 1972년 9월 고려피혁(주) 인수.
  • 1973년 쌍미섬유공업(주) 인수. 대우증권의 전신 동양증권(주) 인수. 대우건설(주) 설립.
  • 1975년 2월 대우빌딩 착공.
  • 1975년 5월 대우실업(주), 종합무역상사 지정.
  • 1976년 2월 한국기계공업(주) 인수. 10월 해외건설업면허 취득. 대우중공업(주) 출범.
  • 1977년 대우센터 빌딩 준공. 8월 제철화학(주) 경영권 인수.
  • 1978년 7월 산업은행으로부터 새한자동차(주) 지분 인수. 대한조선공사 옥포조선소 인수 후 9월 대우조선공업(주) 설립.

도약기

대우 그룹은 (주)대우의 출범과 새한자동차 경영권 장악, 가전사업 진출을 잇달아 성사시키며 현대(現代), 삼성(三星), 럭키금성(LG)과 함께 대한민국 4대 기업군으로 성장한다. 국내 업체들과의 출혈 경쟁에서 기술력과 수익성의 한계를 느낀 대우는 세계로 눈을 돌려 냉전체제의 완화가 도래한 시점에 동유럽 및 공산권 국가에 현지법인을 설립하면서 신시장 개척을 준비하였다.

  • 1981년 10월 옥포조선소 준공. 수출의날 15억불탑 수상. 대우실업(주) 및 대우개발(주) 합병 결의.
  • 1982년 모기업 (주)대우 출범. 수출의날 20억불탑 수상.
  • 1983년 대우자동차(주) 출범. 대우전자(주)에서 대한전선(주)의 가전부문을 흡수. 대우통신(주) 설립.
  • 1984년 경남기업(주) 경영 참여. (주)대우경제연구소 설립. 10월 대우자동차부품(주) 설립. 대한민국 최초 VTR 수출.
  • 1986년 대우증권 런던사무소 개설. 9월 경남기업(주) 계열 편입.
  • 1987년 미얀마 현지 철도차량공장 준공.
  • 1988년 (주)대우 동베를린지사 설치. 대우투자자문(주) 설립. 프랑스 롱위 전자레인지 공장 건립. 대우증권 홍콩사무소 개설.
  • 1989년 제철화학 외 3개사 매각. 대우정보시스템 설립. 대우기전공업㈜ 출범. MHB-Daewoo Bank 설립.
  • 1990년 (주)대우 모스크바지사 설치. 대우중공업(주) 유럽현지법인 설립. 멕시코 컬러TV 공장 건립.
  • 1991년 (주)대우 북경지사 설치. 대우증권(주) 유럽현지법인 설립, 취리히사무소 개설.
  • 1992년 4월 佛 컬러TV 공장 건립. 佛 컴퓨터 판매법인 설립. 대우증권 美 현지법인 설립. 대우차-GM 제휴관계 청산.

팽창기

(주)대우가 구축한 세계무역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대우자동차(주), 대우중공업(주), 대우전자(주)가 국제적으로 널리 진출하는 '세계경영'은 1993년 '세계경영 우리기술' 슬로건 선포를 시점으로 본격화되었다. 대우가 당시 내세웠던 세계경영은 선진업체가 진출하지 않은 옛 공산권 국가와 앞으로 발전가능성이 무한한 개발도상국 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것으로, 현지법인 설립과 인수합병을 통해 단기간에 정착하여 사세확장을 꾀하는 형태이다. 실제로 대우가 진출을 시도한 개발도상국가의 정부에서는 자국의 경제활성화 목적에서 대우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기에, 대우의 사업확장은 더욱 쉽게 이뤄질 수 있었다. 대한민국 시장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대우자동차(주)의 경우는 대한민국 외 국가에서 판매하는 수량이 대한민국에서 판매하는 수량을 앞지르는 현상을 가져오기도 했다. 이같은 대우의 급속한 성장은 대한민국 경제계와 대한민국 외 국가 경제에 큰 반향을 가져다 주었다.

  • 1993년 1월 대우자판 설립.
  • 1993년 2월 베트남 합작은행 출자.
  • 1993년 3월 세계경영 선포.
  • 1993년 5월 우즈벡 가전 공장 설립.
  • 1993년 7월 대우중공업(주) 미국현지법인 DEC 설립.
  • 1993년 8월 폴란드 TV 공장 설립.
  • 1993년 9월 세계최초 공기방울 세탁기 개발.
  • 1994년 2월 대우할부금융 설립.
  • 1994년 3월 인도 합작증권사 CRB-Daewoo Securities Ltd 출자.
  • 1994년 5월 대우자동차(주) 영국 워딩 자동차 기술연구소 건립.
  • 1994년 6월 대우중공업 영국현지법인 유로 대우 UK 설립.
  • 1994년 10월 대우중공업(주) 대우조선공업 흡수 합병. 중국현지법인 대우중공업연대유한공사 설립.
  • 1994년 11월 루마니아 자동차합작공장 DAEWOO-RODAE 설립. 대우중공업(주) 러시아 기술연구소 DISK 설립.
  • 1995년 1월 대우중공업(주) 독일 현지법인 ECO 설립. 대우전자(주) 말레이시아 세탁기 공장 설립. 대우뱅크 출범.
  • 1995년 2월 대우중공업(주) 일본 현지법인 대우건기 설립.
  • 1995년 3월 체코 최대 국영상용차업체 AVIA사 인수. 대우증권(주) 홍콩현지법인 설립.
  • 1995년 4월 대우증권(주) 상해사무소 개설.
  • 1995년 5월 대한민국 기업 최초, 대북 협력사업 정부승인 획득.
  • 1995년 6월 다이너스카드사 인수.
  • 1995년 7월 동우개발(주)의 사명을 (주)대우개발로 변경.
  • 1995년 9월 베트남 하노이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우즈벡 공화국에 교환기합작공장 알로카대우 설립.
  • 1995년 10월 중국천진 팩스밀리 합작공장 설립.
  • 1995년 11월 베트남 최초 타포린 합작생산 공장 준공. 폴란드 최대 자동차기업 FSO 인수, DAEWOO-FSO 출범.
  • 1996년 3월 대우증권(주) 싱가폴사무소 개설. 루마니아 DAEWOO-RODAE 공장 준공.
  • 1996년 5월 남북경협 최초회사 민족산업총회사 남포에 설립. 앙골라 대규모 유전발견.
  • 1996년 6월 프랑스 롱위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인도뉴델리 첨단 소프트웨어 연구개발센타 설립. 페루육상 유전인수 입찰수주.
  • 1996년 7월 한진투자증권 합작 법인 서울투신운용(주) 설립. 우크라이나 대용량교환기 합작공장 드니프로-대우 설립.
  • 1996년 10월 대우증권(주) 동경지점 개점. UZ-Daewoo 자동차 공장 준공. 베트남 비담코 자동차 공장 준공.
  • 1996년 11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중국 광케이블 합작회사 우시-대우 설립. 루마니아 합작은행 설립.
  • 1997년 3월 우즈베키스탄 대우은행 (Uz-Daewoo Bank) 설립.
  • 1997년 4월 인도 종합 가전공장 설립. 군산 종합 자동차공장 준공.
  • 1997년 5월 인도 CRB증권 대우파이낸스로 상호 변경. 대우선물(주) 설립.
  • 1997년 6월 대우증권(주) 싱가포르 현지법인 설립.
  • 1997년 7월 대우리스 체코에 설립.
  • 1997년 9월 대우자동차(주) 우크라이나 합작공장 설립계약 체결.
  • 1997년 12월 한국전기초자(주) 인수.

해체

대우는 세계경영으로 철저히 현지화를 추구함으로써 1993년 당시 150여개에 불과했던 대한민국 외 국가 현지법인을 1998년 11월에는 396개로 끌어올리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대우는 1997년 다가온 경제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물로 나온 쌍용자동차(주)를 인수하여 소형차에서 대형차는 물론, 버스와 트럭, 사륜구동 SUV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차량을 생산하는 풀라인업을 완성시키고 그 밖에도 해외 현지공장 인수 및 확장을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대우는 1998년 삼성(三星)을 제치고 재계서열 2위까지 뛰어오른다.

  • 1998년 3월 30일 대우자동차(주), 쌍용자동차(주) 인수.
  • 1998년 5월 스페인 냉장고 공장 설립.
  • 1998년 6월 우크라이나 자동차 법인 AUTOZAZ-DAEWOO 공장 본격 가동.
  • 1998년 7월 미국 Fortune 선정 매출 500대 기업 중 세계 18위의 기업으로 도약.
  • 1998년 10월 대우중공업(주) 이집트공장 준공.
  • 1998년 11월 무역의 날 150억불 수출의 탑 수상.

그러나 경기침체의 장기화와 세계 시장의 위축으로 대우의 입지는 크게 흔들렸고, 개발도상국가 위주로 판매망을 확대해온 대우자동차의 부진이 거듭되었다. 경영여건이 안정되지 못한 상황에서 추진한 쌍용자동차의 인수도 큰 실익을 거두지 못하였고, 외형확대의 초점을 맞추어 경영해오다보니 당시 정부가 요구했던 구조조정에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오다보니 구조조정의 실시가 경쟁 그룹에 비해 늦은 편이었다. 정부 주도의 산업체계 개편에 따라 늦게나마 추진한 대우전자-삼성자동차 빅딜협상은 양사간 입장차이로 끝내 결렬되었으며, 1999년 여름에 접어들면서 그룹의 운명을 좌우할 대우와 GM과의 협상(대우차와의 경영권 문제)마저도 실패한 대우는 급속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자금난이 가중되던 대우는 알짜자산인 힐튼호텔 매각 등을 성사시키기도 하지만 1999년 3월에는 이미 부채 비율을 무려 400%를 훨씬 넘은 상태여서 수습이 어려운 지경이었다. 7월 대우는 초고강도 구조조정안을 발표하였으나 채권단은 이를 반려한다. 결국 대우는 1999년 8월 16일 채권단의 재무구조개선수정약정 체결과 더불어, 26일 채권단 관리하에 워크아웃을 맞이함으로써 그룹 해체의 길로 접어든다. 지난 1967년 창업 이래 32년간 대한민국에 경쟁성장의 견인차로 역할을 해오던 기업 중 하나로서, 1993년 세계경영을 선포한지 6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 1998년 11월 대우그룹 1차 구조조정안 발표.
  • 1998년 12월 대우전자(주) 및 삼성자동차(주) 빅딜 발표. (사업맞교환)
  • 1999년 4월 19일 대우 2차 구조조정안 발표. (대우 조선, 상용차, 힐튼호텔 등 매각)
  • 1999년 6월 30일 삼성자동차 워크아웃 돌입.
  • 1999년 7월 16일 대우그룹 구조조정안 발표. (자동차 전문그룹으로의 재탄생)
  • 1999년 8월 3일 제일은행 등 채권단 구조조정안 반려.
  • 1999년 8월 16일 대우 채권단, 재무구조개선수정약정 체결.
  • 1999년 8월 26일 (주)대우, 대우중공업(주), 대우자동차(주), 대우전자(주) 등 12개 회사 워크아웃 돌입.
  • 1999년 8월 30일 대우증권(주) 계열 분리, 채권단으로 이양.
  • 1999년 10월 김우중 회장, 중국 옌타이 대우자동차 부품공장 준공식 참석.
  • 1999년 11월 1일 대우 회장 및 대우그룹 사장단 퇴진.
  • 2000년 4월 15일 대규모기업집단 지정 제외.

한 때 세계 경영의 첨병으로 불렸던 대우의 몰락은 경제계에 큰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대우사태는 당대 큰 기업은 절대 흥한다는 '대마불사'의 신화를 깨고 차입경영을 일삼는 부실기업을 과감하게 퇴출시킨 사례로 건실한 기업풍토 조성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이 있는 반면, 대우가 밝혀지지 않은 요인(정치적 문제 또는 국제적 외압)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여론도 일부 존재하고 있어 지금도 눈길을 끈다.

구 대우그룹 계열사

현재 대우의 계열사들은 그룹 해체 후 자립 혹은 새로운 기업의 인수를 통해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그룹이 해체된 이후에도 포스코대우, 대우건설, 대우조선해양 등 몇몇 회사들은 여전히 대우의 이름을 유지하며 성공적으로 영업 중이다.

자동차 사업

대우가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자동차 사업은 1997년 신차 출시, 1998년 쌍용자동차 인수에 따른 사세 확장으로 대한민국 시장에서 호조를 거두었으나 부채 누적으로 인한 만성적인 적자로, 대우그룹 핵심 계열사들이 워크아웃에 돌입하면서 완전히 공중분해되고 말았다.

대우자동차(주)는 포드, 제너럴 모터스(GM) 등 두 양사간의 해외 매각 의사를 타진하였으나 최종적으로 협상이 모두 결렬되었으며, 대우자동차(주)는 경영 정상화 실패로 인해 2000년 11월 10일인천지방법원에 법정관리(정리절차) 개시 신청을 냈고, 노사가 극적으로 노사협의회 합의문에 합의한 후, 회사 측의 자구의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여, 법정관리 개시 결정이 내려졌다.

대우자동차는 GM 매각을 위한 구조조정 계획의 일환으로, 9992억 원의 자구계획을 마련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가 인력을 7300여 명 줄이고 재료비, 경상비, 투자비 등을 대폭 감축했으며, 부평공장 생산직 직원 1750명이 강제로 거리로 내몰리는 역대 최대 규모의 정리해고가 김대중 정부 출범 당시에 근로기준법 개정 이후, 2001년 2월초에 단행되기도 했다.

미국 GM이 2001년 6월초에 대우차 인수 의향서를 제출하여, 이듬해인 2002년 10월 28일에 GM대우(현 한국지엠)라는 외국계 기업으로 새롭게 출범했고, 대한민국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확대에 실패하여 고전을 계속하였던 GM대우는 글로벌 GM의 전략적 요충지로 키우기 위해서 2011년 1월 쉐보레 브랜드로의 흡수 통합을 선언하였으며, 2011년 한국GM(주)가 새롭게 출범하였다.

GM이 인수하지 않은 버스부문, 상용차부문, 부평공장은 대우버스(주), 대우상용차(주), 대우인천자동차(주)로 분할, 매각되었다.

대우자동차(주)의 버스부문인 대우버스(주)는 영안모자에 매각되었고, 트럭을 생산하는 상용차 부문은 인도 최대의 재벌인 타타(TATA)에 매각되어 타타대우상용차(주)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대우그룹 시절 대우자동차와의 합병을 계획하였던 쌍용자동차(주)는 대우그룹의 구조조정 당시 대우차와의 분리 매각이 결정되면서 2000년 4월 대우 계열에서 정식으로 분리되었다. 후에 쌍용자동차(주)는 2005년 중국 국영자동차회사인 상하이자동차 그룹에 인수되어, 미국발 금융 위기로 인한 판매 부진이 계속 거듭되면서 2009년 쌍용자동차(주)의 경영권을 포기하고 한국 시장에 철수하였다. 2009년 쌍용자동차(주)는 법정관리 체제에 들어갔으며, 구조조정에 따른 대규모 정리해고 사태로 노사간의 첨예한 대립까지 위태로울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다가 2010년 말 인도의 마힌드라 자동차에 인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건설, 무역

1999년 워크아웃으로 (주)대우지스틱스가 먼저 분사되었으며, 2000년 12월 모기업 (주)대우가 3개사로 재탄생한다. 청산을 위한 (주)대우 존속법인과 무역부문의 (주)대우인터내셔널, 건설부문의 (주)대우건설로 나뉜다.

(주)대우인터내셔널은 대우의 모태사업인 무역은 물론 백화점 등 사업도 하고 있다. 2010년 포스코에 인수되었고, 지금의 포스코대우로 재출범한다. 백화점 사업은 2014년 롯데쇼핑(주)에서 인수하여 롯데백화점 마산점이 되었다.

(주)대우건설은 워크아웃을 단기에 졸업했으며 2006년 12월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인수되었다. 그러나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무리한 인수합병으로 인한 후유증에 세계 금융위기까지 겪으며 극심한 자금난을 겪자, 2010년 (주)대우건설에 대한 경영권을 포기하였고, 2011년 1월에 금호아시아나 계열에서 정식으로 분리되었다. 현재 최대주주는 한국산업은행이다.

대우그룹의 또다른 건설회사였던 경남기업(주)는 성완종이 이끄는 충남지역 건설사인 대아건설(주)에 인수되었다가 2004년에 대아건설(주)을 합병하면서 국내 10위권의 대형 건설사로 성장가도를 달린다. 2009년 대한민국 건설사들의 잇따른 경영난으로 워크아웃을 재차 겪지만, 실적 개선 등에 힘입어 2011년 5월 워크아웃을 졸업하는데 성공한다. 2015년 하지만 건설업계 불황이 장기화되고 기업의 오너(Owner)인 성완종이 자원외교비리수사에 연루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2015년 4월 마침내 경남기업은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만다. 2017년 sm그룹이 인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중공업, 조선

2000년 대우중공업(주)도 대우종합기계(주), 대우조선공업(주) 그리고 대우중공업(주) 잔존법인으로 분할되었다.

주력부문이었던 중장비 및 군수물자 생산을 담당하는 대우종합기계(주)는 2005년두산 계열로 편입, 두산인프라코어(주)로 재탄생하였다.

대우중공업의 조선해양부문은 대우조선공업 주식회사로 분사되었다가 곧 대우조선해양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한다. 2000년대 조선업계의 호황으로 대우의 계열사 중 가장 먼저 워크아웃을 졸업한 회사로도 주목받았고, 조선업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을 기반으로 건설, 상조사업 등에도 진출하며 자체적으로 조선사업 중심의 기업집단을 일구었다. 2000년 출범한 이래 수년간 경쟁업체인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과 함께 선박 수주잔량으로 세계 수위권을 다투왔지만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변곡점으로 대우조선해양은 2010년대 중반에 이르러 조선업황의 악화로 존폐의 기로에 놓여있는 상태이다.

대우중공업이 3개사로 분할되기 전인 1999년 7월에는 철도차량 생산부문이 경쟁사인 현대정공(주), 한진중공업(주)와 함께 현물출자 형식으로 단일법인을 설립함으로써 국내 유일의 철차제작업체인 한국철도차량주식회사가 탄생하였다. 하지만 대우종합기계(주)가 승계받은 한국철도차량(주)의 지분은 경영정상화를 위해 2001년현대자동차그룹에 전량 매각됨으로써 주식회사 로템(現 현대로템(주))으로 재출범한다.

대우중공업(주)의 항공사업부문도 1999년 8월삼성항공산업(주), 현대우주항공(주)과 통합하여 새로이 한국항공우주산업(주)로 출범하였지만, 대우중공업의 지분을 인계받은 두산그룹의 DIP홀딩스에서는 2016년 한국항공우주산업의 보유지분을 전부 정리하였다.

전자, 통신

한때 세계 각국의 생산기지를 설치하며 세계적인 전자기업을 표방해 오던 대우전자(주)는 1999년 워크아웃 대상기업으로 지정되었고, 2000년 4월 대우전자 중심의 기업집단을 구축하고 비수익 사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피아노 사업을 담당하는 벨로체, 컴퓨터 사업을 담당하는 대우루컴즈, 가스보일러 사업을 담당하는 대우가스보일러 등이 독립된 업체로 분리되었다. 2002년 대우전자의 TV, 백색가전 등 주력 핵심사업부문이 대부분 대우모터공업 주식회사로 인계되어 이듬해인 2003년에 (주)대우일렉트로닉스로 재출범하였다. 이후에도 2008년 대우디스플레이 등이 분리되어 대우일렉트로닉스는 사실상 백색가전 전문업체가 되었다. 2013년 동부그룹이 인수함으로써 동부대우전자 주식회사로 이름이 바뀌다가 2018년 대유그룹이 인수하여 주식회사 대우전자로 부활하였다. 2019년 주식회사 위니아대우 로 이름이 바꿔다가 2020년 주식회사 위니아전자로 이름이 바꿨다.

대우전자부품도 1999년 대우그룹 구조조정으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대상으로 지정되었다. 2000년 4월 대우그룹에서 분리되었다.2008년 회생절차개시 결정을 받았고, 2010년 2월 회생절차 종결 결정을 받았다. 그 후 현대자동차의 1차 협력그룹인 아진그룹이 인수했다.

대우통신(주)은 정상화를 위해 통신 관련사업부문을 매각하여 컴퓨터사업은 대우컴퓨터에 양도하였으며 그밖에 사업부문은 대우텔레텍, 대우글로벌 그리고 1999년 합병된 대우정밀공업 계열의 업체들은 대우정밀, 대우파워트레인, 대우프라스틱 등으로 분사되었다.

대우정밀(주)은 에스엔티(S&T그룹)에 인수되어 현재 S&T모티브로 운영 중이며 대우파워트레인(주)은 GM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컴퍼니(지금의 한국지엠주식회사)에 매각되었고, 대우프라스틱(주)는 삼라마이다스그룹(SM그룹)으로 매각된 후 대우라이프(주)로 바뀌었다가 계열사인 남선알미늄(주)에 합병되었다.

전자 계열사였던 오리온전기(주), 한국전기초자(주), 광전자(주) 등도 워크아웃을 맞아 자취를 감추거나 독자생존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금융

대우증권(주)는 1999년 대우가 해체되기 전 채권단이 인수하였으며 후에 대주주가 한국산업은행으로 변경된다. 2009년에는 한국산업은행의 민영화에 따라 새로이 출범한 KDB금융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2015년에는 미래에셋금융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2001년 8월 (주)다이너스카드클럽코리아는 현대자동차(주)에 매각되어 현대카드(주)로 변경되었다.

대우캐피탈(주)는 아주그룹에 편입되어 아주캐피탈(주)로 바뀌었다.

스포츠

대우그룹에서 운영 중이던 부산 대우 로얄즈현대산업개발에 매각, 인천 대우 제우스신세기통신에 매각되고 인천 신세기 빅스로 변경하며 현재 부산 아이파크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미디어

케이블 채널 중에서 대우시네마네트워크는 동양그룹에 매각되어 OCN(현재 CJ 산하)으로 변경되었다.

같이 보기

건설, 무역

자동차

중공업

전자

금융

기타

  • 대우엔지니어링 → 포스코엔지니어링 (1990년 계열 분리 → 2002년 포스코에 인수)
  • 신성통상 (1984년 계열 분리 → 2002년 가나안에서 인수)
  • 대창기업
  • (주)고려 → SG고려 (구 고려피혁공업주식회사 → 2003년 (주)가로수닷컴에 인수)
  • 세계물산 → SG위카스 → SG세계물산 (2002년 SK글로벌에 인수 → 2005년 (주)가로수닷컴에 인수)
  • 대우시네마네트워크 → (주)오리온시네마네트워크 (1999년 동양그룹에 인수되어 별도법인인 온미디어 설립 → 2010년 CJ에 인수 → 2013년 CJ ENM에 흡수 합병)
  • 부산 대우 로얄즈 → 부산 아이파크 (2000년 현대산업개발에 인수)
  • 인천 대우 제우스 → 인천 신세기 빅스 (1999년 신세기통신에 인수)

외부 링크

각주

  1. 영동대로 환승센터가 완공되면 9호선 봉은사역과 연결 될 예정이다.
  2. 대우그룹, 쌍용自인수로 재계순위‘3위’《문화일보》1997년 12월 9일 김병직 기자

성수지선

역 번호 역명 로마자 역명 한자 역명 접속 노선 역간
거리
영업
거리
소재지
211 성수 Seongsu 聖水 서울 지하철 2호선 (본선) 0.0 0.0 서울특별시 성동구
211-1 용답 Yongdap 龍踏 2.3 2.3
211-2 신답 Sindap 新踏 1.0 3.3
211-3 용두(동대문구청) Yongdu(Dongdaemun-gu Office) 龍頭(東大門區廳) 0.9 4.2 동대문구
211-4 신설동 Sinseol-dong 新設洞 수도권 전철 1호선
서울 경전철 우이신설선
1.2 5.4

신정지선[1]

역 번호 역명 로마자 역명 한자 역명 접속 노선 역간
거리
영업
거리
소재지
234 신도림 Sindorim 新道林 수도권 전철 1호선
서울 지하철 2호선 (본선)
0.0 0.0 서울특별시 구로구
234-1 도림천 Dorimcheon 道林川 1.0 1.0
234-2 양천구청 Yangcheon-gu Office 陽川區廳 1.7 2.7 양천구
234-3 신정네거리 Sinjeongnegeori 新亭네거리 1.9 4.6
234-4 까치산 Kkachisan 까치山 수도권 전철 5호선 1.4 6.0 강서구

이용객 변동

노선 일평균 인원수 (명/일) 각주
2000년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2007년 2008년 2009년
2호선 승차 1,403,567 1,413,009 1,437,622 1,424,944 1,441,774 1,442,947 1,451,283 1,469,567 1,512,167 1,528,825 [2]
하차 1,416,658 1,423,710 1,450,264 1,443,145 1,454,650 1,460,827 1,469,856 1,485,699 1,523,518 1,543,184
승하차 2,820,225 2,836,719 2,887,886 2,868,089 2,896,424 2,903,773 2,921,141 2,955,266 3,035,686 3,072,009
노선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
2호선 승차 1,517,375 1,547,394 1,546,746 1,554,070 1,579,409 1,554,434 1,541,893 1,522,393 1,530,910 1,540,008
하차 1,540,316 1,567,239 1,560,470 1,572,506 1,596,836 1,571,347 1,561,308 1,542,570 1,553,302 1,562,804
승하차 3,057,691 3,114,633 3,107,214 3,126,576 3,176,245 3,125,781 3,103,201 3,064,963 3,084,212 3,102,812
노선 2020년
2호선 승차 1,093,425
하차 1,103,185
승하차 2,196,610

지선 연장 계획

성수지선 연장 계획

한때 신설동역에서 서쪽이나 북쪽으로 연장을 검토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연장 계획은 우이신설경전철로 대체되었으며, 2017년 9월 2일에 개통하였다.

신정지선 연장 계획

강서구에서는 신정지선서울 지하철 9호선 가양역까지 연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기술적인 문제로 화곡-가양 구간을 별도의 노선으로 건설하기로 하였다. 이후 화곡-가양 노선은 서해선(대곡-소사) 원종역홍대입구역을 잇는 가칭 원종-홍대입구선 광역철도 노선 신설 계획으로 바뀌었으며, 원종홍대선과 신정지선을 연결하기 위하여 신정지선을 5호선을 따라 까치산역에서 화곡역까지 1개역 연장하는 서울시 도시철도 계획이 수립되어 추진 중인 상태이다.

현재 박남춘 인천시장 취임 이후, 인천광역시에서는 서울 지하철 2호선 청라 연장 사업을 홍대입구~청라국제도시 구간 연장 사업으로 추진되도록 하고있고, 신정차량사업소 이전과 병행 추진하고 있다.

역 추가 설치 계획

신정교역 신설 계획

목동신시가지 14단지 입주민들의 교통편의를 위해 도림천역양천구청역 사이에 신정교역(가칭)을 신설할 계획에 있다.

각주

내용주
  1. 지금의 을지로순환선의 형태가 완성되기 이전까지는 본선이었다.
  2. 기존의 도심권, 강남권, 영등포권을 말한다.
  3. 제1호선 서울역청량리역 9.54 km (19711974년 건설)
    제2호선 영등포왕십리 35.5 km (19741985년 건설)
    제3호선 미아동 ∼ 퇴계로 경유 ∼ 불광동 21.5 km (19771979년 건설)
    제4호선 강남 포이동 ∼ 율곡로 경유 ∼ 대림동 34.5 km (1979년1985년 건설)
    제5호선 연희동종로 ∼ 천호동 ( ~ 광주대단지) 32 km (19781985년 건설)
  4. 순환선 기준.
  5. 당시 당산역 - 합정역 구간은 셔틀버스를 투입하여 승객들의 불편을 최소화하였다. 1999년 11월 22일 당산철교가 재개통되어 순환선 전체 구간으로 환원되고 각기 외선순환, 내선순환 반복 운행으로 돌아갔다.
참조주
  1. 공항철도 청라국제도시역까지 연장하는 노선도 추진되고 있다.
  2. 서울교통공사 > 알림마당 > 자료실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