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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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실
출생 1968년 12월 24일(1968-12-24)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사망 2008년 10월 2일 (39세)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서초구
직업 배우
활동 기간 1988년 ~ 2008년
종교 개신교
자녀 아들 최환희, 딸 최준희

최진실(崔眞實, 1968년 12월 24일 ~ 2008년 10월 2일)은 대한민국배우이다.[1]

1988년 광고 모델로서 연예계에 데뷔하였고 이듬해인 1989년 MBC조선왕조 오백년 - 한중록》(1988년)에 출연하면서 배우의 길을 걷게 되었다. 20여 년 동안 밝고 명랑한 이미지로 140여 편의 광고, 20여 편의 TV 드라마, 18편의 영화 등에서 주연 배우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2] [1] [3] 출연한 여러 작품들의 성공으로 인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대중으로부터 널리 사랑을 받았으며 연기력 또한 인정받아 '청춘스타'에서 일약 '국민배우'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4] [5] [6]

2000년대 대한민국세계 경제 포럼(WEF)이 조사하는 '세계 성평등 지수(Global Gender Gap Index)'에서 하위권을 기록하는 국가로서 성 불평등 문제가 심각한 사회였는데, 최진실은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성 차별을 불식시켜나가는 데 이바지한 바 있다는 평가가 있다. 부부 나이 차이 역전, 이혼유책주의 활용, 친권포기각서 수령, 자녀의 성·본 변경, 친권자동부활금지 법안 제정 등과 관련하여 능동적인 여성상을 보여 주었고 아동 인권 수호에도 기여하였다. 이를 통해 가부장제 내파(imploding)와 젠더권력 해체(dismantling)에도 이바지하였다.[7] [8] [9] [10] [1]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32] [33] [34] [35] [36] [37] [38] [39]

활발한 활동 중 2008년 10월 2일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 대한민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에 삶의 의미에 대한 큰 물음을 던졌으며, 심리적 부검을 통한 문제 해결에 대해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켰다. 최진실의 죽음은 대한민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모순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계기가 되었다.[40] [41] [42] [43] [44] [45] [46] [47] [48] [49] [50] [30] [51] [52] [53] [54] [55] [56] [57] [58] [59]

최진실의 죽음허위사실유포행위와 관련하여 사회적 경각심을 불러일으켰고, 연예인의 사회적 위상을 바로잡는 데 영향을 주어 명예훼손행위에 대한 연예인의 소송 제기에 대해 당연한 권리 행사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도록 하였다. 이로써 허위의 사실이 음지에서 흐지부지 처리되는 것이 아니라 공론의 장에서 투명하게 처리되는 물꼬가 트였다. 이후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처럼 허위의 사실에 휘둘리는 삶에서 연예인들이 조금씩 자유로워졌다. 더 나아가 최진실의 죽음은 연예인 한 명이 700명의 생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고, 언론에 대해 파파게노 효과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다.[60] [61] [62] [41] [63] [64] [47] [65] [66] [67] [68] [69] [70] [71] [72] [73] [74] [75] [76] [77] [78] [79] [80] [81] [82] [83] [84] [85] [86] [87]

성공한 연예인, 성공한 여성으로서 대한민국 사회의 빛과 그림자 모두를 겪었지만 대한민국 사회의 모순에 눈감지 않고 배우로서 연예인과 여성의 인권 수호에 기여한 바가 있는데, 연예인과 여성 혐오가 만연한 대한민국 사회에서 연예계와 여성계를 방어함에 있어, '허위사실유포에 취약하여 고립되기 쉬운 연예인'이라는 특수한 위치, '부와 명예의 편중이 심한 연예계에서 연예인으로서 대성공한 사람'이라는 특수한 위치, '사회적 소수자인 여성이지만 주류 사회에서 최고의 자리에 있던 사람'이라는 특수한 위치로 인해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해야 하는 측면이 있었다. 이에 가족, 친구, 친지 등과의 신뢰 관계에도 균열을 가져오는 여론 조작이라는 위기 발생시에 대중과의 직접 소통을 지향하는 정면돌파를 택했다.[88] [47] [89] [65] [90] [91] [92] [93] [94] [95]

목차

생애[편집]

유년기 및 청소년기[편집]

최진실은 1968년 12월 24일 아버지 최국현과 어머니 정옥숙 사이에서 태어났고 동생이 있다. 1968년 12월 24일 새벽 2시 55분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현저동 성신병원에서 태어났고 혈액형은 B형이며 칼귀가 특징이다.[97] '진실'이라는 이름 때문에 친구들이 자주 놀려대 이름을 지어준 할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했으나 성인이 된 후에는 자신의 이름을 좋아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기독교인이었고 최진실 또한 교회를 다녔는데, 신앙심은 최진실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98] [99] [100] [101]

다섯 살 때까지 서울특별시 은평구 구파발에 살다가 운수업을 하던 아버지를 따라 경기도 고양시 삼송리로 이사를 했고 초등학교는 삼송초등학교에 다녔다. 삼송리에서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살다가 아버지가 사우디아라비아중동 근로자로 떠나면서 은평구 불광동으로 이사를 했고 초등학교도 불광초등학교로 전학했다. 서울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98]

동생은 배우 최진영이다. 배우 최재성과는 6촌 관계이다. 최재성의 아버지이자 최진실과 5촌 관계인 최상현은 연극 배우 출신의 KBS 드라마 연출가였다.[102] [100] 최국현은 KBS 탤런트 공채 시험에 합격하기도 했으나 경찰 공무원이었던 최진실의 할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혀 배우의 꿈을 접었다.[103]

손위 이복형제가 있고[103], 정옥숙은 최국현에게 자식이 있다는 사실을 결혼 후에 알았다[104]. 최국현은 1985년에 가출을 하였고, 그 때부터 최진실의 부모는 별거를 하였으며, 1998년 10월에 최진실의 부모는 이혼하였다.[105]

거울을 보며 연기하는 것을 즐겼고, 장기(長技)를 자랑할 기회가 있으면 노래를 부르는 대신에 드라마의 한 장면을 연기했으며, 배우 강수연을 동경했다.[106] [107] [103] 최진실은 동명여자중학교 출신이고 강수연은 동명여자고등학교 출신인데, 동명여자중학교와 동명여자고등학교는 한 울타리 안에 있다. 최진실이 동명여자중학교 2학년일 때, 강수연은 동명여자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강수연은 1969년부터 배우로서 활동하였다.

TV 드라마를 보고 나면 혼자서 울고 웃고 하면서 1인 5역 흉내를 내기도 하고, 초등학교 5학년 때는 가족들이 자는 동안 벽에 걸린 거울을 떼어 내려놓고 TV 드라마 흉내를 내다가 거울이 가족들 이마를 덮쳐 난리를 피운 적도 있었다.[100] [108]

최진실과 최진영은 서로에게 좋은 연기 파트너였고 둘은 KBS 탤런트 공채 시험에 합격하기도 했으나 6개월 과정의 연수비 38만 원을 마련하지 못해 그 커리어를 이어가지는 못했다. 이들은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면서 일생동안 정신적으로 깊은 교감을 나누었다.[104]

학창시절에 예체능에 소질을 보였고[109], 특히 미술에 재능을 보여 미술대학 진학을 꿈꾸기도 했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 포기했다. 수제비로 끼니를 때우는 일이 많았고, 집으로 놀러온 친구들에게 수제비를 만들어 주는 일이 많아서 친구들 사이에서 최진실은 ‘최수제비’라고 불리기도 하였다.[110] 최진실은 연예인이 된 후에도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음식을 만들어 주는 일을 즐겼다.[111] [107]

일요일마다 도화지와 크레용을 들고 친구들과 함께 동네가 내려다 보이는 곳으로 그림 그리러 가는 게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연기와 그림 모두에 흥미가 있었지만 배우가 되는 건 엄두를 내지 못했고 각종 미술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미술교사의 권유가 있어 화가의 꿈을 키웠다.[100]

중학교 때 각종 미술대회에 나가 상을 타오자 미술교사는 최진실에게 미술대학에 가라고 권유하였고, 미술교사로부터 미술에 대한 딸의 재능을 전해들은 최진실의 어머니는 어려운 경제적 상황 속에서도 최진실이 미술학원에 다닐 수 있도록 해주었는데, 고등학교 2학년까지 미술학원에 다녔다. 화가의 꿈을 키워가면서도 '경제적 상황이 어려운데 꼭 미술을 해야 하는 건가'라는 갈등을 느꼈다.[100]

다섯 살 때 아버지의 건강에 이상이 와 집안이 기울기 시작하였고,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고등학교 2학년 때 가산이 급격히 기울면서 전업주부였던 어머니는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등 본격적으로 생활 전선에 나서게 되었고 최진실도 화가의 꿈을 접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던 것은 신앙심, 맹목적인(버릇과 같은) '학교가기', 친구와 교사의 도움 덕분이었다.[100]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연예계 진출을 결심하였고, 연예계 진출 후 큰 성공을 거두었다. 국세청 통계상 1992년에 연예인 중 최고 소득자로 기록되었고, 같은 해 제29회 '저축의 날'에 '대통령 표창장'을 받았다. 연예인이 된 후 최진실은 자신이 경제적으로 궁핍한 환경에서 성장했다는 사실을 굳이 숨기지는 않았는데, 이것은 오히려 '최진실 신드롬'에 기여하였다.[112] [113] [114] [40] [115] [116] [117]

최진실은 자신이 어떤 과정을 거쳐 배우가 되었고 어떻게 연예계 생활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 하는 대중들을 위해 자신의 성장기와 생활에 대하여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고 그 때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도 숨김없이 털어놓았는데, 이에 대해 '부끄러움을 몰라서'가 아니라 '조금도 지나온 일을 미화시켜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서'라고 설명했다.[98] [100]

청년기 이후[편집]

활동 개요[편집]

  • 고등학교 졸업 후, 동생인 배우 최진영의 지원으로 광고계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 최진영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모델로 활동하고 있었다. 최진실이 연예계 진출에 대한 뜻을 나타냈을 때, 최진영은 처음에 그것에 대해 반대의 뜻을 표했으나 나중에는 최진실의 뜻을 존중하여 최진실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게 되었다.[118]
  • 1988년 - 4월에 최진영이 계약을 맺고 있던 모델 에이전시를 통해 광고 모델로서 연예계에 데뷔하였다.[119] 이후 한국화장품의 신제품 '센시티브' CF에 보조 출연자로 섭외되었다. 이 CF는 한국화장품 전속 모델이었던 배우 김희애가 메인 모델이었는데, 최진실은 촬영 과정에서 김희애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메인 모델로 격상되었다. 이 CF가 텔레비전을 통해 방송되면서 광고계에서는 최진실에 대한 관심이 크게 일었고, 이 CF의 감독이었던 박경삼의 추천으로 삼성전자 전속 모델이 되었다. 박경삼은 최진실에 대해 "나는 직업적으로 최진실을 보는 순간 그가 배우로서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다. 그것은 아마도 연출가에게만 있는 직감이 아닐까……"라고 말했다.[120] [121] 삼성전자 VCR 광고에서 최진실이 선보인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라는 대사가 크게 유행하면서 최진실은 대중으로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 대사의 목소리는 성우 권희덕이 맡았다.[122] [123] [124] 11월부터 1년간 삼성전자와 전속 모델 계약을 맺었고 전속 계약금은 2천만 원이었다. 그 계약이 만료되고 나서 다시 1년간 삼성전자와 전속 모델 재계약을 맺었고 전속 계약금은 4천만 원이었다. 이렇게 광고 모델 계약금이 2배 상승한 것은 이례적인 것이었다. 삼성전자 전속 모델이 된 후 최진실은 VCR 광고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것을 계기로 냉장고, 카메라, 진공 청소기, 전자레인지, 포터블 미디어 플레이어 등 삼성전자에서 나오는 모든 가전제품의 CF를 촬영했다. 최진실을 광고 모델로 기용한 후 삼성전자는 경쟁업체를 제치고 가전제품 판매 1위를 차지하였다.[125] [126] [127]
  • 1989년 - 2월에 MBC의 특채 배우로 발탁되어, 이미 방영 중이던 MBC 《조선왕조 오백년 - 한중록》(1988년)에 중간 합류하면서 TV 드라마에 데뷔하게 되었다. CF로 얼굴이 알려지자 방송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할 기회도 얻게 되었는데, 어느 날 MBC 《일요일 밤의 대행진》(1981년)의 <미주알 고주알> 코너에 출연하려고 출연자 대기실에서 녹화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고 이 때 《한중록》의 조연출가의 눈에 띄어 신인 배우를 찾고 있던 《한중록》의 연출가 이병훈을 만나게 되었으며 이병훈으로부터 가능성을 인정받아 연기자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128] [129] 《한중록》에 출연할 때 방송국에서 매니저 배병수를 처음 만났고 배병수의 도움으로 영화 《남부군》(1990년)을 준비하던 감독 정지영을 만나게 되었다.[130] 4월에 MBC 베스트셀러극장시진읍》에 출연하여 벙어리 역을 맡았는데, 《시진읍》은 지역감정을 소재로 한 드라마로서 최진실의 TV 드라마 첫 주연작이었다.[131] [132] 활동 영역을 광고계에서 방송계, 영화계 등으로 넓히면서 촬영 스케줄이 겹치지 않게 활동 시간표를 짜는 일이 큰 일이 되었고, 이런 상황 속에서 배병수와 계약을 맺었다.[126] [133]
  • 1991년 - 영화 《있잖아요 비밀이예요 2》는 1980년대 교복 자율화 세대를 다룬 하이틴 영화인데, 최진실과 최진영이 친구로 함께 출연하여 화제가 되었다.[142] 영화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에서 입양아 수잔 브링크 역을 맡았다. 이 영화는 실존 인물을 영화화해서 화제가 되었고, 대한민국 사회에 국외 입양 문제를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143] [144] 11월에 휴먼 다큐멘터리 MBC 《인간시대 - 최진실의 진실》에 출연하였다. 연예인이 《인간시대》에 출연한 것은 배우 안성기에 이어 두 번째였다. 최진실은 'CF를 통해 운 좋게 인기를 얻은 벼락 스타'의 이미지가 강했는데, 《인간시대》는 최진실의 실체는 무엇이고 그의 애환은 무엇인가를 응시하고자 하였고, 최진실은 처음에는 왜 자신을 《인간시대》에서 다루고자 하는지 궁금해 했으나 곧 대본도 연기 주문도 없는 《인간시대》를 매우 편하게 여겼고, 제작진에 '본 대로 느낀 대로' 자신을 말해 달라고 주문했다.[145] 12월에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최진실은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으로 '여우 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되었고 '인기 스타상'을 수상했으며, 최진영은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로 '신인 남우상'을 받아 이들은 최초의 남매 수상자가 되었다.
  • 1992년 - 1월에 MBC 《약속》에 출연하여 교사 정인 역을 맡았고, 이 드라마는 최고 41.5%의 시청률을 기록하였다. 3월에 MBC 라디오0시의 데이트》의 진행자가 되었다.[146] 6월에 MBC 《질투》에 출연하여 배우 최수종과 호흡을 맞췄고 이 드라마를 통해 청춘스타로서 입지를 다지게 되었다. 영화 《숲속의 방》에 출연하여 학생 운동과 현실 타협 사이에서 방황하며 삶의 진실을 찾아 헤매는 대학생 소양 역을 맡았다.[147] [148] 연예인으로서 처음으로 KBO 리그 한국시리즈에서 시구를 하였다.[149] 10월에 한국방송광고공사에서 실시한 '광고 모델 선호도'에 관한 여론조사에서 최진실은 52%를 기록하여 1위를 차지하였고, 13%를 기록한 유인촌은 남자 광고 모델 중 1위를 차지하였다.[150] 10월에는 저축유공자로서 노태우 대통령이 마련한 청와대 오찬에 초청을 받았다.[151] 12월에 주간 방송정보지 'TV 저널'이 제정한 제1회 '올해의 스타상'을 수상하였다.[152]
  • 1993년 - 영화 《사랑하고 싶은 여자 & 결혼하고 싶은 여자》에서 추리소설 작가 유라 역을 맡았다. 11월에 토크 쇼 KBS심야에의 초대》에 출연하였는데, 이 자리에서 가수 변진섭과 결혼을 전제로 교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밝혔다.[153] [154] 연예인의 경우 이성교제 사실을 공개하는 사회 분위기가 아니어서 이는 다소 파격적인 행보였다. 작품 출연과 관련한 계약을 할 때 이성교제 문제나 결혼 문제가 계약서에 언급될 만큼 연예계 내부도 다소 경직된 분위기였다.[155] 연말에 5년 동안 자신의 매니저로서 계약을 맺었던 배병수와 계약 해지하였다.[156]
  • 1994년 - 2월에 영화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에서 심리학자이자 여성운동가 강민주 을 맡았고, 출연료를 영화 제작비로 재투자하였는데, 배우가 출연료를 영화 제작비로 재투자한 경우는 배우 문성근에 이어 두 번째였다.[157] 2월에는 SBS와 배우로서 최고 출연료를 받기로 계약했는데, 60분짜리 100회 출연에 1회당 300만 원을 받기로 했고 이는 그 전에 MBC에서 받던 액수보다 4배 이상 높은 금액이었다. 2월에는 최진실과 최진실의 6촌 오빠 최재성이 4월에 SBS에서 방영 예정인 드라마에서 연인으로 물망에 오르기도 하였다.[158] [159] [160] 4월에 SBS 《사랑의 향기》에 출연하면서 만화가 영진 역을 맡았고 배우 이병헌과 연인으로 호흡을 맞췄다.[161] [162] [163] [164] [165] [166] 8월에 금융실명제 홍보 모델로서 금융실명제 정착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돼 김영삼 대통령이 마련한 청와대 오찬에 초청을 받았다.[167] [168] [169] 11월에 서울특별시청1394년서울수도로 정한 후 600년이 되는 해를 기념하기 위해서 400년 뒤인 2394년에 개봉하기로 하고 남산 '한옥마을'에 타임캡슐을 묻었는데, 서울 시민 최진실의 인터뷰도 이 타임캡슐에 담겼다.[170] [171] 12월에 영화 《마누라 죽이기》에 출연하여 영화제작자 차소영 역을 맡았다. 12월에는 대한민국 연예계 '전문 매니저' 1세대였던, 전(前) 매니저 배병수가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172] [173] [174] [123] 연말에 MBC 《신(新)인간시대》에서 신년 특집으로 '앞서가는 한국인 50인'이라는 제목으로 분야 별 스타를 조명하게 되었는데, 여론조사를 통해 선정한 이 '앞서가는 한국인 50인'에서 최진실은 여자 연기자 부문 1위를, 안성기는 남자 연기자 부문 1위를 차지했다.[145]
  • 1995년 - 1월에 제1회 '한국 모델 페스티벌'에서 CF 부문 대상을 수상하였다.[175] 5월에 '배병수 살해사건'의 증인으로 법정에 섰는데, 그 과정에서 이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거짓 소문에 시달렸다.[176] 6월에 KBS 《체험 삶의 현장》에 출연하였는데, 갯벌에서 조개 잡는 일을 하여 일당을 벌었다.[177] 5월에 SBS아스팔트 사나이》에서 자동차 디자이너 오화련 역을, 9월에 SBS 《째즈》에서 르포 작가 채송화 역을, 10월에 MBC 《아파트》에서 '신데렐라 콤플렉스'의 소유자 차나리 역을 맡았다.[178]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첫 회 방송을 보름쯤 앞두고 《아파트》 출연을 포기하였다가 제작진의 설득으로 다시 출연을 결정하였는데, 이 드라마는 라이벌적 포지션에 있던 배우 채시라와 공동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되었다.[179] 11월에 영화 《마누라 죽이기》로 대종상 영화제에서 '여우 주연상'을 받았다. 변진섭과 결별했다. 13년 후 변진섭은 《사랑이 올까요》라는 곡으로 MBC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2008년) OST에 참여하였는데, 이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이 곡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180] [181]
  • 1996년 - 2월에 KBS 《TV는 사랑을 싣고》에 출연하였는데, 제작진의 도움으로 어린 시절 친구였던 안원형과 만났다. 안원형과는 같은 집에 세 들어 살면서 친하게 지낸 사이였다. 최진실이 출연한 방송은 2002년 5월 12일 4백 회 특집에서 '감동적인 만남 BEST5'에 들기도 하였다.[182] [183] 3월에 신한국당 광고 모델이 되었는데, 연예인이 정당의 광고 모델이 된 것은 대한민국 정당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신한국당은 1995년 12월에 창당한 정당으로서 군사정권 이미지에서 탈피하고자 민주자유당이라는 당명을 버리고 만든 당이었다. 신한국당은 "기존 정당에 대한 딱딱한 대(對)국민 이미지를 해소하고 국민들에게 보다 친근하게 다가서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최진실 씨를 신문 광고 모델로 선정했다. 20대부터 60대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유권자에게 인기있는 최진실 씨의 모델 기용은 정당 홍보의 새로운 방식으로 신한국당 이미지 고양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제 개혁 시대에 국민들에게 친근한 모습을 보이고 과거 권위주의 시대 정치에서 탈피하기 위해 이같은 광고를 결정했다. 최진실 씨의 인기에 누가 되지 않도록 우리 당도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고 최진실은 "연예인 광고 모델로서 신한국당과 인연을 맺은 것일 뿐이며 신한국당에 입당할 생각은 없다"라고 말했다.[184] [185] 10월에 SBS 《째즈》(1995년) 등이 중화인민공화국, 중화민국, 싱가포르아시아지역 중화권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홍콩 스타 TV <중국어 채널>을 통해 방영되었고, 해당 드라마들은 현지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으며, 최진실은 이를 계기로 삼아 국외로 활동 영역을 넓히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186] [165]
  • 1997년 - 1월에 최진실은 PC 통신 이용자 3백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자신의 야망을 성취한 연예인'에 관한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였는데, 정치인 1위는 김영삼, 경제인 1위는 정주영, 스포츠인 1위는 박찬호였다.[187] 3월에 최진실을 두고 SBS와 MBC 간에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졌다.[188] 최진실은 우여곡절 끝에 MBC에 안착했다. 10월에 MBC 《그대 그리고 나》에서 사적으로는 가정을 잘 꾸려가면서 공적으로는 직업적인 성취를 이루고 싶은 여성 윤수경 역을 맡았다. 이 드라마는 최고 66.9%의 시청률을 기록하였다.[189] 12월에 MBC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았다. 영화 《편지》에서 국문학과 대학원생 정인 역을 맡았다. 이 영화는 1998년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한국영화 최다 관객상'을 받았다. 경강역은 이 영화의 촬영지로 사용되면서 명소가 되었고, 황동규의 시 《즐거운 편지》는 이 영화에 삽입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영화는 태국에서 《The Letter》(2004년)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되었다. 연예계 데뷔 이후 배우로서 영화계, 방송계, 광고계 등을 오가며 왕성한 활동을 하면서 일약 국민배우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 1998년 - 3월에 한국통신에서 최진실을 모델로 한 경제 위기 극복 캠페인용 공중전화 카드가 나왔다.[190][191] 6월에 MBC 《추억》에서 이혼싱글맘이자 광고회사 직원 서인영 역을 맡았다.[192] 8월에 한국 갤럽 여론조사에서 대한민국 건국 이래 배우 부문에서 최고 인기 연예인으로 뽑혔다.[193] 12월에 최진실은 KBS행복 채널》에 출연하였는데, 이는 일본 프로 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 소속 야구 선수 조성민이 최진실의 팬이라는 사실을 안 제작진이, 우상과 팬으로서 만남의 자리를 마련한 것이었다.[194] 12월 30일에 자신의 집 엘리베이터 안에서 괴한에 의해 납치될 뻔한 사건을 겪었다.[195] [196] [197] 최진실은 1994년 5월에도 납치될 뻔한 사건을 겪었고 연예인이 된 후 스토킹도 자주 겪었었다.[198]
  • 1999년 - 대한민국 연예인 최초로 일본 광고계에 진출하였는데, (주)전일본식품사와 1년 전속 모델 계약을 맺었다.[199] KBS 《슈퍼 TV 일요일은 즐거워》의 코너 중 하나인 《출발 드림팀》에서 최진실, 배우 김희선, 코미디언 이영자, 모델 이소라, 배우 엄정화 등이 1기 여성 드림팀을 결성하여 일반인 팀과 운동경기를 벌였다. 이 여성 드림팀은 초호화 캐스팅으로 화제가 되었고, 《출발 드림팀》은 전국에 운동 열풍을 일으켰다.[200] 영화 《마요네즈》에서 대필작가 아정 역을 맡았다. 이 영화는 제5회 케라라국제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였다. 케라라국제영화제는 뉴델리국제영화제와 함께 인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영화제이고, 한국 영화가 국제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것은 이것이 여섯 번째였다.[201] MBC 《별은 내 가슴에》(1997년)가 중화인민공화국으로 수출되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후 이 드라마는 '최초의 한류 드라마'로 평가받았다.[202] [203] 11월에 최진영은 1집 앨범 《Final Fantasy》를 발매하면서 가수로 데뷔하였는데, 최진실은 최진영의 가수 활동을 측면에서 지원하였고 최진영은 이듬해인 2000년에 SBS 가요대전에서 부문에서 수상하고 대한민국영상음반대상에서 신인가수상을 탔다.[204]
  • 2001년 - 4월에 유가공업체 남양유업으로부터 광고 모델로서 섭외되었으나 모델료와 관련하여 소비자 항의가 거센 상황을 겪으면서 광고 계약을 거절하였다. 소비자들은 남양유업에 '고액 광고 모델료를 지급하는 대신 분유 가격을 인하하라'고 요구했었다. 최진실은 "100원도 절약하며 사는 주부들 처지에선 당연히 화날 만한 사안이었다. 이 때문에 남양유업도 아주 곤란한 처지에 빠졌을 것이다. 주부들을 이해하기에 나 스스로 물러나기로 했다"라고 광고 계약 거절 이유를 설명했다. 이 일과 관련하여 인터넷에 '안티 최진실' 웹사이트가 개설되고 '안티 남양' 웹사이트도 개설되는 등 후유증을 겪었다. 이 일은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대중의 힘도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가 되었고, 이 일이 언론의 오보에서 시작되었기에 언론의 옐로 저널리즘이 지적되기도 하였다.[224] [225] [226] [227] [228] [229] [230] 8월에 아들을 출산하였다.
  • 2002년 - 1월에 최진영과 함께 토크 쇼 KBS 《서세원 쇼》에 출연하였는데, 《서세원 쇼》는 최진실의 출연에 힘입어 28.0%의 시청률을 기록하였고 이는 3주간 평균 시청률 18.6%를 크게 상회하는 수치였다.[231] 4월에 MBC 《그대를 알고부터》에 출연하면서 배우로서 활동을 재개하였다. 이 드라마에서 중국 교포 이옥화 역을 맡았는데, 연변 사투리를 구사해야 해서 친구인 코미디언 정선희의 도움을 받았다. 이옥화는 중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대한민국 무역 회사에서 근무하는 커리어 우먼으로, 중국은 대한민국보다 성평등이 더 잘 이루어지는 사회였고 그런 사회에서 성장한 이옥화는 대한민국에서 생활하면서 성 차별적 사회분위기에 반란을 일으키는 캐릭터였다. 이 드라마는 TV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여러 번 호흡을 맞췄던 배우 김혜자와 함께 출연하여 화제가 되었다. 최진실과 김혜자는 MBC 《당신의 축배》(1989년), MBC 《그대 그리고 나》(1997년), 영화 《마요네즈》(1999년) 등에서 딸과 어머니로, MBC 《장미와 콩나물》(1999년)에서 며느리와 시어머니로 함께 출연했는데, 《그대를 알고부터》에서는 남남인 관계이지만 최진실이 김혜자의 집에 기거하는 설정이었다.[232] [233] [234] 6월에 유아복업체 <아비또>의 기획홍보 이사직을 맡았고 상품 기획을 총괄하였다. <아비또>가 최진실과 공동 투자하여 내놓은 브랜드 '미아오'는 고양이 울음소리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최진실이 직접 작명한 것이었다.[235] 6월에는 인터넷상에서 가족과 관련한 허위사실이 유포되는 명예훼손 피해도 겪었다.[236] [237] [238] [239] [240] 10월에 임신 6개월이었고 《그대를 알고부터》 마지막회가 방송되었다. 11월에 8년간 여러 언론사에 '섭섭한 게 있다'는 모호한 표현이 담긴 편지만을 보내던 배병수 살해범 전용철이 교도소 내 인터뷰를 통해 기자들에게 실명을 거론하며 그 섭섭함의 실체를 이야기했고 그 실명은 익명 처리된 채 해당 내용이 기사화되었으며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전용철은 이 문제로 검찰 소환 조사를 받았는데, 달라진 사실관계는 없었다.[241] [242] [243] [244] [245] [246] [247] [248] [64] [249] [250] [251] 12월 18일 오후 2시에 조성민은 이혼하고 싶다고 하소연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는데, 이것은 비상식적인 행동이어서 많은 사람들을 의아하게 만드는 행동이었다. 대한민국 국민은 이혼이 하고 싶을 경우 '기자회견'을 여는 것이 아니라 '협의상 이혼' 절차를 밟거나 '재판상 이혼' 절차를 밟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기자회견에서 조성민은 최진실을 유책배우자라고 주장했기 때문에 이 기자회견을 연 것은 더욱 더 의아하게 만드는 행동이었다. 자신의 배우자가 유책배우자일 경우 그 배우자의 협조를 받지 않더라도 '재판상 이혼'으로 얼마든지 이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성민이 묘사한 최진실이라는 사람은 파렴치한이었다. 조성민이 이혼할 의사가 있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표현한 것에 대해, 최진실은 이혼할 의사가 없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기존 입장을 견지하였다.[252] [253] [254] [255] [256] [257] [258] [259] 한편, 대한민국 민법상 유책배우자는 이혼 청구 소송을 제기할 수 없고, 기자회견으로 자신의 배우자가 유책배우자라고 주장하는 행위는 명예훼손 행위였으며, 이혼사유의 제척기간은 그 사유를 인지한 날로부터는 6개월이고 그 사유가 발생한 날로부터는 2년이었다.[260] [261] [262] [263] [264] [265] [266] [267] [268] [269] [270]
  • 2004년 - 3월에 MBC 《장미의 전쟁》에 출연하면서 배우로서 활동을 재개하였다.[282] 이 드라마에서 산부인과 의사 오미연 역을 맡았다. 이 드라마는 한국 트렌디 드라마의 효시인 MBC 《질투》(1992년)에 주인공으로 출연하여 함께 많은 사랑을 받았던 최진실과 최수종이 12년 후 부부 연기를 펼치는 것이어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283] [284] [285] 3월에는 또 아파트 광고 모델로서 신한과 계약을 맺었다.[286] [287] [276] [288] [289] [290] [291] [292] [293] 9월에 이혼을 결정내렸고, 조성민과 합의 이혼하였다.[123] [294] [295] [296] [297] [298] 2년여 동안의 이혼 과정에서 사생활과 관련된 거짓 소문에 시달렸다.[299] [104] [107] [300] 햇수로 3년 동안 자식들의 발달 단계를 고려한 언행과 유책배우자라는 모함을 처리하는 언행을 동시에 수행하는 '투트랙 전략'을 출구 전략으로 삼았다. 즉 자식들의 존엄성수호하는 일, 여론 조작(메시지)을 제압하는 일, 자식들의 생부(메신저)의 실체를 규명하는 일, 비혼자로 복귀하는 일 등을 동시에 추구해 나갔다.[301] [302] [303] [304]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주장은 입증된 바 없다. 이 모든 과정을 대중이 직접 목격하게 함으로써 시시비비를 투명하게 규명하였다. 이를 통해 완벽한 수비에 성공했고, 자신을 붕괴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혐오(hate speech) 세력들의 여론 조작을 제압했다.[305] [64] [306] [307] [308] [309] [310] [311]
  • 2005년 - 5월에 미국 화장품업체 3LAB과 광고 모델로서 계약을 맺었고 미국에서 광고 촬영을 하였다. 3LAB은 아시아 시장의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 '한류 스타'의 원조급인 최진실과 계약을 맺었다.[312] [313] [314] [315] 8월에 KBS 《장밋빛 인생》에 출연하여 위암 말기 진단을 받은 전업주부 맹순이 역을 맡았고, 이 드라마는 최고 47%의 시청률을 기록하였다.[316] [317] [107] [318] [319] 11월에 《장미빛 인생》의 성공으로 최진실과 매니지먼트 계약을 체결하기 위한 연예 기획사들의 치열한 경쟁이 이루어졌고 이에 제시하는 계약금이 10억 원대에 이르렀다.[320] 12월에 한국갤럽에서 전국의 만 20세 이상 성인 남녀 15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05년을 빛낸 배우(TV)'에 관한 여론조사에서 최진실은 18.2%를 기록하여 1위를 차지하였고, 4.2%를 기록한 정지훈은 남자 배우 중 1위를 차지하였다.[321] [322] 연말에 KBS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여자 최우수 연기상'과 '네티즌상'을 받았다. 인터넷상에서 악성 루머와 악성 댓글에 시달렸던 최진실에게 이 '네티즌상'은 의미가 큰 것이었다.[323] [80] 한편, MBC 전속 연기자였던 최진실은 MBC 사장 최문순의 배려로 KBS 드라마에 출연할 수 있었다.[324] [325] [326] [327]
  • 2008년 - 3월에 MBC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에 출연하여 가정관리사 홍선희 역을 맡았고 배우 정준호와 호흡을 맞췄다.[350] [351] [352] '줌마렐라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 시즌2》 제작이 확정되었다.[353] [124] [354] 이 드라마에는 최진실의 친구로 실제 친구이기도 한 이영자가 출연했는데 이영자의 대사 중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를 언급하는 장면이 나오고, MBC 《질투》(1992년)의 마지막 장면이자 당시 인구에 회자되었던 카메라 360도 회전 장면을 패러디한 장면이 나오기도 하였으며, 최진실이 20대 시절에 찍었던 '가나초콜릿' 광고를 패러디한 '아나초콜릿' 광고 장면이 나오기도 하여 재미를 더하였다.[355] 3월에는 토크 쇼 OBS최진실의 진실과 구라》의 진행자로도 발탁되면서 진행자로서 회당 출연료로 그 분야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았는데, 방송인 유재석을 능가하는 대우여서 화제가 되었다.[356] [357] [358] [359] [360] 이 토크 쇼는 방송인 김구라와 함께 진행을 맡았다.[361] [362] 《최진실의 진실과 구라 시즌2》 제작이 기획되었다.[363] [364] 7월에 데뷔 이래 처음으로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최진실은 MBC 《시사매거진 2580》과 인터뷰를 가졌는데, 제작진은 데뷔 20주년을 맞는 최진실을 통해 한국 드라마의 흐름을 짚는 시간을 가졌다. 최진실은 인터뷰에서 배우로서의 삶과 비혼자로서의 삶 그리고 연예인들의 사회적 이슈에 대한 발언 등에 대해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365] [366] 11월에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명예 인기 스타상'을 받았다.[367] 12월에 MBC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여자 최우수상'과 '대상'에 노미네이트되었고 '공로상'을 받았다.[368] [369] [370] 12월에는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의 2009년 소비트렌드 예측서 《트렌드 코리아 2009》가 발간되었는데, 이 책에서 '줌마렐라 신드롬'은 2008년을 특징짓는 문화현상 중 하나로 언급되었다.[371]

국외 진출[편집]

사망[편집]

향년 39세였고 대한민국 식으로는 향년 41세였다.

평가[편집]

최진실은 1990년대를 관통하면서 광고계, 영화계, 방송계 등에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만들었다. 최진실은 밝고 명랑한 이미지 속에 슬픔과 발랄함이라는 상반되는 특성을 담고서 대중에 어필하였다.[381] [300] [382] 칼럼니스트 박진규는 '최진실은 귀여운 척이 아닌 생활 연기 속에 묻어나는 자연스러운 귀여움이 강점이었다. 물론 그 귀여움 때문에 다른 감정 연기에도 탁월했던 그의 연기가 묻히기도 했다. 하지만 그 친근한 귀여움이 패셔너블한 여성 배우, 연기 잘 하는 여성 배우가 넘쳤던 1990년대에 최진실을 가장 돋보이게 만든 무기였다'라는 평을 내놓기도 하였다.[383]

1988년에 출연한 삼성전자 광고의 성공으로 최진실은 광고 모델배우의 관계를 뒤집어 놓았다. 광고 모델은 배우가 드라마의 성공을 통해 높은 인지도를 얻은 후에 부업 거리로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최진실은 광고를 통해 배우가 드라마의 성공을 통해 얻는 인지도 못지않은 인지도를 얻게 되었고, 광고계도 배우의 당당한 무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최진실의 이런 성취는 1988년 하계 올림픽 전후로 대한민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상황이 급변한 것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었다.[384] 이후 1989년에는 여러 편의 TV 드라마에 조연 등으로 출연하여 배우로서의 삶을 단련시켜 나갔다. 최진실은 30초 짜리 드라마인 광고에도 그 시대의 정신을 담아내는 미학이 있고 기본적으로 행해지는 영상예술, 심리학을 차용한 마케팅 기술과 이미지 메이킹, 현란한 카피와 대사에 이르기까지 예술 활동의 집약이 이루어진다고 보았다.[385] [386] SBS아스팔트 사나이》(1995년)에 출연할 무렵에 <CyberTimes.TV>와의 인터뷰에서 배우로서 광고도 하나의 작품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최진실은 1990년대 한국 영화 부흥기의 시작을 함께 했던 배우였다. 《남부군》(1990년)으로 영화계에 데뷔한 최진실은 특유의 귀여움과 친근함을 무기로, 이전까지 한국 영화에 없던 배우의 매력을 선보였고, 한국 영화계의 기획 영화 붐과 맞물려 '자기 주장이 분명한 신세대적인 여성 캐릭터'의 원조급이 되었다.[387] [388] 최진실은 1990년대를 걸쳐 청룡영화상에서 '인기 스타상'을 총 8회 수상하면서 1990년대 청룡영화상 최다 '인기 스타상' 수상자가 되었고, 백상예술대상에서도 영화 부문에서 총 5회의 '인기상'을 수상하였다.

시청률 조사 회사인 닐슨 미디어 리서치1992년 1월부터 2003년 10월까지 <역대 시청률 톱 50 TV 드라마>를 선정한 결과를 바탕으로 최다 주연 배우를 조사하였는데, 최진실은 MBC약속》(1992년), MBC 《질투》(1992년), MBC 《폭풍의 계절》(1993년), MBC 《그대 그리고 나》(1997년), MBC 《별은 내 가슴에》(1997년), MBC 《장미와 콩나물》(1999년) 등 6편의 TV 드라마에서 주연으로 등장하여 최다 주연 배우로 기록되었다.[389] [390] 2011년 10월 13일, 네티즌 1300명을 대상으로 한 1990년대 최고의 TV 드라마와 배우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질투》와 최진실이 각각 1위를 차지했다. 이 조사에서 드라마 2위는 《별은 내 가슴에》였다.[391] [392] 2011년 11월 7일, 최진실은 MBC가 창사 50주년을 맞아 선정한 '지난 50년 동안 MBC를 빛낸 연예인 50인'에 뽑히기도 하였다.[393] 2014년 11월 15일, 한류 배우 1세대로서 대한민국 드라마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제3회 에이판 스타 어워즈에서 공로상을 받았다.[394]

최진실 신드롬[편집]

최진실은 광고를 통해 대중의 욕망과 환호를 이끌어내는 이미지를 구축한 뒤 TV 드라마영화를 통해 '시대적 아이콘', '트렌드 세터', '톱스타' 등으로 자리매김하였다. 한남대학교 마정미 교수는 자신의 저서 《최진실 신드롬》(1993년)에서 “최진실을 읽어나가는 것은 일단 광고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의 매력과 성공의 근원은 광고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그를 선호하고 그에게 익숙해진 원인을 찾는 출발점도 같은 곳이어야 한다”라고 분석했다.[395]

최진실은 광고를 통해 '가벼운 공처럼 톡톡 튀어 오르고 여름 날의 햇살처럼 쨍한 여자, 깜찍하고 귀엽고 편안하고 참신하며 익살스런 숙녀'라는 이미지를 구축해 단번에 대중의 시선을 붙잡았다.[395]

최진실은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적잖은 TV 드라마, 영화, 광고 등에서 '보이시한 패션'과 '중성적인 매력'을 선보였는데, 이를 통해 연예인으로서 여성성과 남성성 모두를 아우르는 포지션을 점할 수 있었다.[396]

최진실은 데뷔 초기에 다소 연기력이 부족했으나 부단한 노력을 통해 좋은 연기력을 갖춘 배우로 성장했다.[397] [398] 최진실이 탄탄한 연기력으로 소화한 TV 드라마나 영화의 캐릭터들은 진정성과 생명력을 얻어 대중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399] [400]

최진실은 연기 외적으로 데뷔 초기부터 솔직하고 털털한 성격을 보여주었는데, 최진실이라는 배우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대중매체에서 이런 모습을 선보였던 배우는 드물었기 때문에 최진실의 이런 모습은 대중에 인상적인 이미지를 심어주었고 대중이 배우를 보다 친숙하게 느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401] [402] [403] [404] [405]

최진실이 20여 년 동안 톱스타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세월에 따라 연기 변신을 자연스럽게 한 것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20대에는 '통통 튀면서 귀여운 캐릭터'로 인기를 끌었고, 30대에는 '대중이 갈망하는 새로운 이미지와 캐릭터'를 창출했으며, 40대에는 '줌마렐라 신드롬을 일으킨 캐릭터'로 대중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이런 모색을 통해 최진실은 배우로서 20대와 30대 그리고 40대의 매력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구현하였다.[406] [407] [408]

  • 연기와 관련된 언급

나는 현실타협적인 사람이다. 후배들이 밀고 올라오는 것에 저항하지 말고, 내가 빨리 다른 길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정에도 충실하고 나이와 생활에서 우러나오는 연기를 보여주는, 원미경 씨 같은 연기자가 좋다. 또 박원숙 씨처럼 개성 있는 '조연 캐릭터'도 좋다.[395]

그 때는 대학에 대한 미련이 없었지만 지금은 달라요. 그 때는 돈이 필요했죠. 정말 부잣집으로 시집가지 않는 한 어머니 고생 안 시키려면 돈 버는 지름길이 연예인이라고 판단했죠. 집안에 이쪽에서 일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처음에는 돈을 벌려고 했던 건데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게 됐죠. 그 때는 공부에 대한 갈증이나 내적인 부분을 채워야겠다는 생각을 못했어요. 정신없이 바빴죠. 이제 이렇게 엄마가 되고, 조금 있으면 40대에 접어드는데, 더 늦기 전에 공부하고 싶어요. 다른 공부가 아니라 좋아하는 연기 공부를 하고 싶어요. 《장밋빛 인생》이 저한테 많은 것을 가르쳐줬죠. 저의 밑바닥이 보이는 거예요. 감정에 몰입해 더 열심히 하고 싶어요. 연극영화과에 가서 발음부터 다시 배우고 싶죠. 그런 욕망이 있어요.[107] [409]

우리 사는 거 총알만 안 날아다닐 뿐 전쟁이에요, 전쟁. 요즘 촬영 중인 드라마도 가끔 납득이 안 되는 대본을 받으면 작가, 연출가 선생님과 치열하게 싸워요. 무례하다고 욕해도 어쩔 수 없어요. 가짜 연기 하는 건 죽기보다 더 싫거든요. 적당히 머리로 하는 연기, 시청자 속이는 연기는 차라리 안 할 거예요.[398] [410]

트렌디 드라마[편집]

대중문화 평론가인 배국남은 "최진실은 단순한 톱스타가 아니었다. 그는 한국 드라마의 물줄기를 바꿔놓은 MBC 《질투》(1992년)로 '트렌디 드라마'의 활성화를 꾀했고, MBC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2008년)로 '아줌마 트렌디 드라마'의 장을 여는 등 한국 드라마사에 족적을 남긴 스타였다"라고 말했다.[411] [395] [412]

한국 트렌디 드라마의 효시는 최진실·최수종 주연의 MBC 《질투》(1992년)였다.[413] 《질투》는 젊은이들의 사랑과 우정, 그리고 꿈을 속도감 있는 전개와 세련된 영상, 그리고 경쾌한 주제곡으로 표현했는데, 최고 56.1%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젊은이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후 트렌디 드라마는 신파극 일색의 한국 드라마에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와 경쾌한 리듬을 부여하며 한국 드라마의 주류를 바꿔놓았다. 전통적인 한국 드라마에 비해 트렌디 드라마는 가볍고 감각적이었다. 이런 트렌디 드라마의 인기로 한국 드라마계의 중심은 '중견 연기자'들에서 '청춘스타'들로 바뀌게 되었다.[158] [414] [415]

MBC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2008년)은 ‘줌마렐라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416] 여타의 드라마에서는 배우자의 정조 의무 위반, 고부 간의 갈등, 이혼, 비혼모로서의 삶, 재혼 등이 다소 칙칙하게 그려졌지만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은 이런 소재들을 똑같이 사용하되 여성의 삶을 보다 경쾌하고 유쾌하게 그렸다.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은 최고 19.5%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많은 매니아를 양산해냈다. 시청자들은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 시청자 게시판에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 시즌2》가 제작되기를 바란다는 글들을 올렸고, 이런 요청이 받아들여져서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 시즌2》 제작이 확정되었다. 최진실은 코믹한 연기와 로맨틱한 연기를 적절히 섞어가며 대중과의 소통에 성공했고 인터넷상에서 '최트루'라는 별명을 얻으며 인기를 얻었으며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 갤러리'에 직접 글을 남기기도 하였다. 최진실은 이 작품의 성공 요인으로 반전의 미학을 살린 '작가', 완성도 높은 연출력을 보여준 'PD' 그리고 작품 속 '배우'들의 호흡을 꼽았다.[417] [418] [419] [420] [421] [422] [350] [1] [423]

2008년 4월 21일,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 갤러리' 이용자들이 최진실의 미니홈피를 방문해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 갤러리에 와달라'고 부탁하고 갤러리 주소를 남기자 몇 시간 뒤 최진실은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 갤러리'를 방문하였다. 이용자들은 최진실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반색하면서도 '낚시'일 수도 있어서 최진실에게 인증 사진을 요구했고 이에 최진실은 "글 올리는 데 두 시간 걸렸어요. 동생 진영이가 도와줘서. 사진은 어떻게 올려요?" 등의 댓글을 남기다가 결국 자신의 미니홈피를 통해 인증을 대신했다.[424] [420] [425]

  • 트렌디 드라마와 관련된 언급

사실은 트렌디 드라마를 다시 찍을 수 있을 줄은 몰랐어요. 하지만 이 작품을 하면서 자신감이 생겼죠. 제가 '줌마렐라'라는 희한한 말을 만들어냈지만 전 할머니가 돼서도 로맨스를 연기하고 싶어요. 그 때는 '노(老)마렐라'라는 말이 유행하지 않을까요. 고생이 많긴 정말 많았어요. 잠도 못 자고. 하지만 정말 많은 분들이 작품이 좋다고 말씀해 주시니까 그 힘으로 버틸 수 있었어요. 처음 시작할 땐 톰과 제리 같은 느낌이었어요. 항상 동철이는 자신이 선희를 놀린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선희가 한 수 위였죠. 하지만 둘은 굉장히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생각해요. 동철이는 이벤트도 자주 열어주고 유머감각도 풍부하고 얼굴도 잘생기고 재력도 있는 멋진 신랑감이죠. 철이 좀 없긴 하지만 제가 철이 들었으니까 괜찮아요(웃음). 둘은 결혼해서도 잘 살 거예요. 마지막이란 게 실감은 잘 안 나요. 첫 스타트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마지막이네요. 눈을 감으면 홍선희의 과거가 파노라마처럼 흘러가요. 이 작품을 통해서 손해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해요. 배우에게도 스태프에게도, 모두에게 제각기 의미가 큰 작품일 거예요.[355] [426]

방송계에서의 영향력[편집]

최진실은 새로 제작한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의 성패를 처음부터 예측하는 능력이 뛰어났고, 프로그램 초기의 보완점을 조언하는 능력이 탁월했으며, 자신이 인재라고 평가한 사람은 자신과의 친소 관계를 따지지 않고 방송국 연출가들에게 적극 추천했기 때문에 고위급 연출가들도 최진실의 조언을 매우 소중히 여겼다.[427] [428]

방송인 유재석은 최진실의 추천으로 톱스타가 된 대표적인 예이다. 2000년, 최진실은 MBC의 한 고위급 연출가에게 유재석을 MBC 《목표 달성 토요일 -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의 메인 MC로 추천하였다. 당시 크게 유명하지 않았던 유재석은 최진실과는 친분이 없었다. 최진실은 유재석의 별명인 '메뚜기'는 알아도 실명은 알지 못했지만 KBS서세원 쇼》에 출연했던 유재석을 기억하고 있었고, 최진실이 그 고위급 연출가에게 "새 프로그램이 있으면 '메뚜기'를 쓰라"라고 강력하게 추천하면서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의 메인 MC로 유재석이 발탁되었다. 유재석은 《스타 서바이벌 동고동락》의 메인 MC로 활동하면서 대중으로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고 톱스타로 인정받는 전기를 마련하였다. 유재석은 그 후 한참이 지나서야 최진실이 자신을 추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427] [429] [430] [431]

당시 최진실의 추천을 받아 유재석을 기용했던 연출가는 후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최진실은 괜히 톱스타가 된 게 아니다. 드라마건 예능이건, 최진실만큼 정확한 감을 갖고 있는 사람은 만나본 적이 없다. 어떤 드라마에 들어가거나 어떤 쇼 프로에 출연할 때 최진실은 본능적으로 그 프로가 대박이 날지 쪽박을 찰지를 꼭 짚어 맞추고, 실제로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지금까지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었지만 항상 첫 회 게스트로 최진실을 써왔다. 대개 예능 프로그램은 처음엔 조금 엉성한 데가 있기 마련인데, 녹화가 끝난 뒤 최진실은 어디를 보강하고 어떤 코너를 넣어야 하는지를 누구보다 정확하게 짚어냈다. 자기와 친하다고 아무나 추천하는 사람도 아니었다.[427] [432]

배우 안재욱은 대표적인 한류 스타이다. 2009년 9월 2일, 안재욱은 MBC 《황금어장 - 무릎팍도사》에 출연하여 최진실이 같은 소속사에 있던 자신을 적극적으로 추천해서 MBC 《별은 내 가슴에》(1997년)에 출연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안재욱은 《별은 내 가슴에》에서 최진실의 상대역으로 출연하였는데, 이 드라마를 통해 톱스타로 인정받는 전기를 마련하였고, 이 드라마의 중화인민공화국 진출을 통해 중화인민공화국에서 한류 스타로서 활약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후 안재욱은 배우로서, 가수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게 되었다.[433] [434]

인간관계[편집]

동생 최진영[편집]

최진실은 자신의 자전적 에세이 《그래, 오늘 하루도 진실하게 살자》(1998년)에서 동생인 배우 최진영을 '동지'라고 표현했다.[435] [436] 최진영은 2008년 7월에 출연한 MBC황금어장 - 라디오 스타》에서 누나 최진실을 ‘스승같은 존재’라고 표현했다.

2009년, 최진영은 한양대학교 예술학부 연극학과에 입학했는데, 대학 진학에는 최진실의 권유가 있었다.[437]

2008년 11월, 최진영은 베트남 화빙성에서 봉사활동을 하였다. 6박 7일 간의 일정이었고, 기아·난민 아동들을 돕기 위한 여행이었는데, 가수 빽가와 동행했다. 당초 최진영의 봉사활동은 2008년 10월 말께로 계획됐었다. 그런데 최진실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계획이 미뤄졌다. 최진영은 최진실의 권유로 봉사활동을 떠나기로 결심했고, 최진실은 최진영에게 "너 먼저 다녀와라. 나도 드라마가 끝나면 내년에 봉사활동을 갈 예정인데 기회가 되면 함께 가자"라고 말하며 봉사활동에 대한 의지를 피력했다.[438]

2006년, 최진실·최진영 남매는 여성의식캠페인 사진전에 참여했다. 이 사진전은 출산을 중심으로 가족의 의미를 담아낸 특별한 사진전으로,‘여성’을 주제로 다양한 캠페인을 열고 있는 세정의 여성의식캠페인 오프닝 행사였다. 이 사진전에는 최진실·최진영 남매 외에도 다수의 유명인이 참여했다. 이 여성의식캠페인은 대통령직속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홀트아동복지회, 아름다운가게 등이 동참한 행사였다.[329] [439] [440] [441]

2005년, 최진실은 최진영의 권유로 KBS장밋빛 인생》에 출연하게 되었다. 최진실은 화장품업체 3LAB의 광고 모델로 발탁되어 광고 촬영 및 여행을 위해 가족들과 미국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그 때 드라마 《장밋빛 인생》 출연을 제의받았다. 당시 최진실은 세상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두려워서 드라마 출연에 대해 망설였는데, 최진영의 지지와 격려에 힘을 얻어 《장밋빛 인생》에 출연하게 되었고, 좋은 결과를 얻었다.[442] [443] [382] [444]

2008년 12월 21일, 최진영은 토크 쇼 KBS 《박중훈쇼 대한민국 일요일밤》에 출연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최진실과 나는 어려운 시기를 함께 보냈다. 어머니는 포장마차를 운영하고 나는 모델 일로 돈을 벌었다. 내가 다른 일을 하는 것보단 벌이가 괜찮아서 그 돈으로 나와 최진실의 학비를 내고 생활비도 보탰다. 이런 나에게 최진실은 늘 고마움을 가지고 있었다. 최진실은 고집이 엄청 셌는데, 그래도 내 말은 참 잘 들었다. 최진실은 진솔한 면이 있었다.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솔직한 것이 최진실의 매력이었다. 최진실 자체가 나에겐 도움이었다. 말로는 표현이 안 될 정도로 절대적인 존재였다. 배우로서 최진실은 굉장한 독종이었다. 대본을 받으면 두꺼운 공책 몇 권에 계속해서 작품에 대해 썼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계속 대본 연습을 했다. 밥 먹는 시간 빼고는 나오지 않았다. 또 본인의 목소리가 잘 들린다고 화장실에서 대본 연습을 했다. 최진실이 떠나기 며칠 전 나에게, '사람들은 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지 않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과거 이혼하는 과정에서, 세상으로부터 많은 오해를 받았고 있지도 않은 사실이 기사화되기도 하여 최진실이 매우 괴로워했다. 최진실은 인터넷 악성 댓글을 자세하게 확인하는 편이었다. 이에 많이도 힘들어했다. 최진실에게 '모든 사람들이 악플러들처럼 누나를 생각할 거라고 여기지는 말아라'라고 충고도 했다.[445] 어떤 뉴스 기사에서는 최진실의 죽음을 놓고, 최진실이란 배우는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고 인기에 연연했다고 하더라. 결국 그 기사대로라면 최진실이란 배우는 인기가 떨어지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자살했다는 것밖에 안 된다. 그것은 최진실을 너무 몰라서 하는 말이다. 유가족으로서 그런 부분이 상처가 됐다.[444]

이 토크 쇼의 진행자 박중훈은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1990년) 등에서 최진실과 호흡을 맞춘 배우이기도 했는데, 박중훈은 "진실 씨에게 '진실아, 넌 가장 행복할 때가 언제니?'라고 물은 적이 있는데, 진실 씨는 '오빠, 전 진영이가 잘 되는 거예요'라고 대답했다. 그 정도로 진실 씨는 진영 씨를 사랑했다"라는 말을 하면서 게스트 최진영에게 최진실의 마음을 전하기도 하였다.[444] [446]

최진영은 최진실 생전에도 누나를 도와 조카들의 양육에 힘을 썼고 최진실 사후에도 어머니와 함께 최진실의 두 자녀를 양육했다.[447] [448] [449] [450]

2010년 3월 29일, 최진영은 서울특별시 강남구 논현동의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진실에 대한 그리움, 연예계 활동과 관련된 부담감 등이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의견이 있었다.[451] [452] [453] [454] 같은 해 7월, 최진실과 최진영은 갑산공원에 나란히 잠들 수 있도록 조치되었고, 각자의 비석에 새겨진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구도로 배치되었다.

최진실 사단[편집]

소위 '최진실 사단'은 배우 최진실, 코미디언 이영자, 모델 홍진경, 모델 이소라, 배우 엄정화, 배우 최화정, 코미디언 정선희 등이 참여하는, 연예계의 사적인 모임이다. 이들은 연예계 동료로서 서로의 활동에 조력자가 되었다. '최진실 사단'이라는 명칭은 이들의 친분이 방송을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언론에서 붙인 것이다.[455] [456] [457] [458]

최진실은 1990년대 초반에 이영자가 진행하는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이영자와 친분을 나누게 되었다.[459] [460] 또 최진실은 한 쇼 프로그램에서 노래를 불러야 했는데, 당시 MBC 합창단원 소속이었던 엄정화가 최진실의 노래를 도와주게 되면서 이들은 친분을 쌓게 되었고, 그 인연으로 엄정화는 최진실과 계약을 맺고 있던 연예 매니저와 계약을 맺게 되고 연예인으로서 활동하는 전기(轉機)를 마련하게 되었다.[461] [462] [463]

2008년 11월 19일, 유가족·친구·지인 등이 참석한 가운데 최진실의 사십구재기독교식으로 진행되었다. 이 자리에서 이영자는 "너무 죄송하고 죄스러워서 지금까지 아무 말도 못했다. 우리들이 지켜주지 못했다. 고인의 뜻을 받들어 이 사회에서 우리를 사랑으로 따뜻하게 대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힘이 되겠다"라고 말했다.[464] [465]

이듬해인 2009년 10월 2일, 최진실의 1주기 추모식이 있었다. 추모식에는 유가족, 친구, 지인 등과 함께 최진실의 두 자녀도 참석하였다. 이 자리에서 이영자는 "1년 동안 걱정해 주시고 안타까워 해주시고 남모르게 기도해주고 기억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다. 저를 비롯한 친구들이 환희와 준희에게 엄마가 못하는 자리를 채워나가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466]

연출가 주철환과의 친분[편집]

최진실은 1990년에 대학생 퀴즈프로그램인 MBC퀴즈 아카데미》에 출연하였는데, 이를 계기로 주철환과 20여 년 동안 인연을 맺어왔다.[467] [468] 최진실은 《퀴즈 아카데미》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 처음에는 출연을 거절했었다. 왜냐하면 최종 학력이 고졸인 자신이 대학생들을 상대로 문제를 낸다는 것이 어색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철환의 설득으로 최진실은 《퀴즈 아카데미》 출연을 결정하게 되었고, 프로그램에 참가한 대학생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받았다.[364] [469] [470] [471]

동생 최진영강원도 철원에서 군 생활을 하였고 최진실은 군 복무 중인 최진영을 면회할 겸, 군인 대상 프로그램인 MBC《우정의 무대》에 출연하였는데, 총 네 번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였다. 주철환은 동생 보러 가자며 출연을 권하곤 하였다.[398] [471]

2007년 12월, OBS가 개국하였고 주철환은 그 사장이 되었다. 2008년 3월, 주철환의 권유로 최진실은 토크 쇼 OBS 《최진실의 진실과 구라》의 진행자가 되었다.[363] 이 토크 쇼는 방송인 김구라와 함께 진행을 맡았다. 주철환은 신생 방송사인 OBS를 살릴 콘텐츠를 찾다가 '최진실'이라는 카드를 생각하게 되었는데, 연예계 주류에서 최고의 자리에 있던 배우 '최진실'과 연예계 비주류에서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희극 배우 '김구라'의 조합이 좋은 그림이 될 것이라고 보았다.[472] [473] 2008년 10월 4일, 주철환은 PD저널에 조시(弔詩) 《굿바이 캔디》를 기고했다.[474] 주철환은 평소 최진실을 ‘캔디’라고 불렀다.[475] 2008년 12월, 주철환은 《주철환의 사자성어》를 발간하였고 그 책머리에서 최진실을 추모하였다.[476]

'굿바이 캔디'(祭亡妹歌)

괴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은하계에 테리우스 차고 넘쳐도
캔디는 너 하나로 괜찮았는데

온 놈이 온 말을 나불거려도
세상에 진실은 하나뿐인데

너 혼자 힘들었던 사십 년
함께 해도 모질었던 이십 년

왜 그리 황망히 가야만 하니?
왜 그리 야속히 닫아야 하니?
네가 앉은
그 자리엔
벽이 없더니
네가 누운 그 자리엔 벽이 있구나

벗들의 눈물이 강물이 되니
너 혼자 배 타고 편안히 가라

별이란 바람에 스치우는 것
너에겐 바람이 너무 찼구나

가수 MC몽과의 친분[편집]

2009년 7월, MC몽은 자신의 5집 정규 앨범에 최진실 추모곡인 《진실은 천국에서라도》를 수록하였다. 노래 첫머리에는 최진실의 사망에 대해 전 세계 언론들이 보도한 뉴스들을 삽입했다.[477] 최진실은 스노보드를 타다가 MC몽과 친해졌고 MC몽에게 자신의 노래를 만들어 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최진실은 MC몽의 모든 앨범을 구입했다.[478] [479]

MC몽은 공연과 방송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최진실의 빈소를 찾지 못했다. 2008년 10월 5일, MC몽은 자신의 미니홈피에 《내 가슴 속의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는데 이 글에서 최진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했다.[480] MC몽은 2009년 연말 콘서트에서 최진실을 추모하는 시간을 마련했다.[481]

최진실은 사망 전날, 친구 홍진경이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에 MC몽의 노래 《I love you Oh Thank you》를 신청하였다.

사진작가 강영호와의 친분[편집]

강영호는 MBC 《나쁜 여자 착한 여자》(2007년)의 포스터 촬영을 맡았다. 그 때부터 최진실은 강영호와 친분을 나누었다. 그 후에도 강영호는 MBC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2008년)의 포스터 촬영을 맡기도 했다. 최진실은 강영호의 작품을 좋아했고, 강영호와 작업한 사진들 중 하나가 최진실의 영정 사진이 되었다.[482]

멘토링[편집]

배우 이진성과의 인연[편집]

이진성MBC나쁜 여자 착한 여자》(2007년)에 출연하면서 최진실과 인연을 맺었다. 최진실은 이진성에게 선배 연기자로서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고, 자신의 소속사인 <드림엔터박스> 관계자를 소개해 주기도 했다.[483] [484] 연예계 활동을 하면서 거짓 소문들에 시달렸고 그러면서 연예계 활동에 회의를 느꼈던 이진성은 《나쁜 여자 착한 여자》를 마지막으로 미국 유학을 떠났고, 2008년 10월에 최진실의 사망 소식을 듣고는 2년여 간의 미국 여행을 마치고 2009년 5월에 귀국했다. 2009년 7월, 이진성은 최진실과의 인연을 잊을 수 없었고, 함께 일해보자는 최진실의 매니저의 제안에 '그래서 누나가 생전 나한테 이 분을 소개시켜줬구나'란 생각으로 <드림엔터박스>와 인연을 맺고 다시금 연기자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485][486]

배우 이태곤과의 인연[편집]

2002년, 이태곤은 최진실이 메인 모델인 현대해상 광고에 보험사 직원 역으로 출연하였다. 이태곤은 이 광고를 통해 브라운관에 데뷔하였다.[487] 그로부터 8년 뒤, 이태곤은 MBC 일일 드라마 《황금물고기》(2010년)에 주연 배우로 출연하는 등 연기력과 경력을 인정받는 정상급 연기자가 되었다. 2010년 10월 20일, 이태곤은 MBC 《황금어장 - 무릎팍도사》에 출연해서 최진실과 광고 촬영을 하며 있었던 일화를 소개하였는데, "당시 무릎을 꿇은 채 촬영이 몇 시간째 이어졌는데 아프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최진실이) 먼저 '무릎 안 아파요? 아플 텐데'라며 스태프들에게 '무릎이 아픈데 연기를 어떻게 하느냐?'라고 말하며 촬영을 일시 중단시켰다. 그 분은 당시 톱스타였는데 무명 모델인 나를 먼저 챙겨주셨다. 또, '이렇게 하면 더 잘 나올 텐데'라고 연기 조언까지 해주셨다"라고 말하며 최진실에 대한 고마움을 나타냈다.[488] [489] [490]

배우 정선경과의 인연[편집]

정선경은 영화 《엄마에게 애인이 생겼어요!》(1995년)에 출연하면서 최진실과 인연을 맺었다. 최진실은 정선경이 영화에서 TV 드라마로 자리를 옮길 때, 정선경의 입장이 되어 함께 고민해주고, "앞으로 오랫동안 활동하려면 꼭 드라마를 해야 한다"라고 말하며 TV 드라마 쪽으로의 진로 모색을 정선경에게 적극적으로 권하였다. 이후 정선경은 영화와 TV 드라마 양쪽 영역에서 배우로서 입지를 다져나갔다.[491]

배우 남궁민과의 인연[편집]

남궁민은 자동차 광고에 최진실과 함께 출연하면서 최진실과 인연을 맺었다. 최진실은 매니저 없이 활동하는 남궁민을 안타깝게 여겼고 이에 남궁민에게 매니저를 소개해 주었는데, 그 매니저를 통해 남궁민은 SBS 시트콤대박가족》(2002년)에 출연하는 기회를 얻어 연기자로서 데뷔하게 되고 대중에게 얼굴과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492] [493] [494]

연예계 데뷔[편집]

최진실은 MBC 특채 배우가 되기 전에 KBS 탤런트 공채 시험에 합격한 적이 있다. 하지만 최진실의 어머니 정옥숙은 딸의 연예계 진출을 반대하였고 이에 최진실은 배우에의 꿈을 접어야 했다.[495] 이후 연예계 진출에 대한 뜻을 포기할 수 없었던 최진실은 가족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하였고, 동생 최진영은 최진실의 프로필 사진 등을 광고계에 돌리며 홍보 활동을 하였고, 그러면서 최진실은 광고에 출연할 기회를 얻게 되었으며, 결국 전속 모델까지 되면서 연예계에 데뷔하게 되었다. 연예계 진출에 대한 최진실의 의지를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안 정옥숙은, 이후 최진실의 매니저 역할을 하며 최진실의 연예 활동을 지원하게 되었다.[496]

스토리텔링[편집]

최진실 본인이 연재한 스토리텔링은 다음과 같다.(1990년 6월 3일 ~ 1990년 7월 4일, 일간스포츠 연재)

  1. 추억이 어린 곳, 삼송리
  2. 어려웠던 시절
  3.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
  4. "남편 사랑은 가끔 확인해 봐야 해요"
  5. 연기 활동 시작
  6. 불에 타죽을 뻔한 작품 <시진읍>
  7. 연속 캐스팅으로 방송국 내에서 '파문'
  8. 영화 <남부군>
  9. 영화 촬영장에서 생긴 일
  10. 여행 도중 교통사고
  11. 액션 영화 <꼭지딴>에 출연
  12. '노력'이라는 단어를 되새기며

모순적 환경[편집]

최진실은 내적·외적으로 모순적 환경 속에 놓여 있었는데, 20여 년 동안 연예계 생활을 하면서 출산한 해를 제외하고는 직업활동을 쉰 적이 없을 정도로 자신의 직업에 충실하였지만 몸은 약한 편이었고, 연예인으로서 톱스타의 삶을 살았지만 연예인은 허위사실유포 행위에 취약한 직업이었다.[497] [83] 2008년 6월에는 인터넷상에서 백여 개의 명의 도용도 겪은 바 있다.[498]

2008년 10월 6일, 1993년부터 15년 동안 최진실과 인연을 맺어왔던 데일리서프라이즈 편집국장 이석원은 "최진실은 몸이 유난히 약했다. TV 드라마영화를 마친 후엔 반드시 병원에 한동안 입원해 있었다. 데뷔 후 단 한 순간도 톱스타가 아닌 삶을 산 적이 없었기에 그에 대한 모함과 억지는 늘 대중매체의 단골 메뉴였고, 그것이 애증이라는 이름으로 덧칠됐어도 숱한 위기와 고통 속에 그는 20년을 살아왔다. 자신을 향해 악성 댓글을 쓰는 사람까지도 이해하고 아끼려고 애썼다. 최진실은 강한 사람, 강한 배우였다"라고 말했다.[176] [66]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은 "인터넷 루머는 기존의 '소문'과 달리 그 양과 질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다. 루머의 내용이 직접적이고 구체적이어서 한 인간으로서 정신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다. 연예인은 '나'는 없고 '너'가 주는 평가와 이미지를 자신과 동일시하면서 산다. '존재하기 위해 가져야 할 기반'이 없는 정신건강상 취약한 직업이다. 최진실의 자살을 통해 우리 사회가 반성하고 성찰해야 할 많은 함의를 찾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300] [499] [500] [501] [83]

2008년 4월 1일, 드라마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과 토크 쇼최진실의 진실과 구라》에 출연 중이었던 최진실은 《최진실의 진실과 구라》 촬영장으로 향하던 중 갑작스럽게 현기증과 구토 증세를 보이다가 실신해 응급 처치를 받았다.[502] 2008년 7월 7일, 광고 촬영 도중 요통으로 응급실로 실려갔다. 최진실은 평소 요통에 시달려왔는데, 광고 촬영 중에 점프하는 연기 등을 하다가 요통이 발병했던 것이다.[503] 2008년 9월 8일, 친구인 코미디언 정선희의 남편인 배우 안재환의 장례식장에 친구인 김대오와 달려가는 도중에 최진실이 주저앉는 모습이 기자의 카메라에 잡혀 그 사진이 안재환의 조문객 관련 기사에 실렸고 이 사진은 포털 사이트 다음의 메인 화면에 오르기도 하였다.[504] [66] [83]

의사소통 난맥상[편집]

언론과 최진실[편집]

연예인은 보통 언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대중과 소통한다.[505] 연예 언론은 '개인적 복수의 칼'로서 역할하는 경우도 있었다. 연예인에게 언론은 양날의 칼이었다. 최진실 또한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20여 년 동안 연예계 정상의 자리에 있던 최진실은 늘 언론의 추적에 시달렸다.[506] [507] [508] [509] [510] [511] [512] 기자들 중에는 최진실에 대한 혐오(hate speech) 세력의 구성원도 상당수 있었는데, 일요신문 기자 신민섭이 대표적인 예였고 이는 최진실 사망 직후 본인이 자백한 일이다.[64] [513] [514] [515] 최진실과 관련하여 헤럴드경제 기자 서병기, 중앙일보 기자 김범석 등도 주목할만한 기사를 쓴 바 있다.[516] [517] [518] [249] [519] [520] [521] [522] [523] [524] [250] [525] [526] [527] [528] [529] [530] 더불어 여성조선 기자 백은영, 우먼센스 기자 하은정 등도 2008년 10월호 잡지를 통해 존재감을 드러냈다.[531] [532] [533] [534] [535] [536] [537] 언론인 김선주, 동아일보 수석논설위원 황호택 또한 최진실 사망 후 최진실에 대해 자기 투사를 담은 칼럼을 써서 자신들의 지적 수준을 보여주는 해석을 내놓았는데, 이 둘에 따르면 최진실은 성욕으로 인해 사리분별력을 잃은 사람이었다.[538] [539] [540] [541] [542] 이와 더불어 언론인 유재순은 2003년 1월 5일 일요신문을 통해 최진실에 대한 자신의 적개심을 표현한 것은 물론이고 최진실에 대한 검증되지 않은 내용을 담은 글을 유포하였다.[245] [543] [544] 2015년에 발간된 에서 문학평론가 최강민혐오 세력들의 정신 세계를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글을 썼는데, 멀쩡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간 대한민국 사회의 모순을 짚는 게 아니라 피해자 최진실에게서 문제의 원인을 찾고자 '버려짐의 트라우마'라는 용어를 써가며 마른 수건 쥐어짜듯 최선을 다하였다.[545] [92] [546] 이처럼 기자들의 관음증 놀이에 사건의 본질은 은폐되었고, 혐오 세력에 해당되는 언론인들은 고차방정식을 세워 풀어야 할 사안에 대해 일차방정식을 세워 풀면서 틀린 답을 대중에게 세뇌시켰다.

최진실의 어머니 정옥숙은 자신의 저서 《엄마가,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2011년)에서 "언론은 임신한 사람을, 아이 어머니를 배려하지 않았다"라고 지적하며 기자들의 윤리 의식에 의구심을 표현했다. 최진실은 이혼 과정에 있을 때 임신한 상태였는데, 기자들이 최진실의 집 앞에 진을 치고 있어서 최진실은 정기 검진을 받는 날 외에는 거의 집에 갇혀 있어야 했고, 이혼 과정을 생중계하는 듯한 선정적이고 무분별한 기사에 고통을 겪기도 하였다. 최진실은 2년여 동안의 이혼 과정에서 허위사실이나 사실 왜곡을 바로잡기 위해 반박성·해명성 인터뷰를 하거나 법적 조치를 취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사생활이 더 이상 세상에 알려지고 왜곡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였다.[547] [548] 그 법적 조치의 대상에는 언론도 포함되어 있었다. 인터뷰를 자청하여 허위사실을 유포한 자가 있었고 그 인터뷰를 진행한 기자는 그 유포 내용을 그대로 받아적어 기사화하였는데, 이는 기자가 허위사실유포 행위에 동참한 것이면서 허위사실 유포자와 기자 모두 이혼은 혼인 당사자와 국가가 해결봐야 하는 사안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행위이기도 하였다. 이런 허위사실유포 행위에 방송사도 동참했는데, 이를 통해 허위사실은 활자와 영상을 통해 널리 퍼져 나갔고, 거의 전 국민적인 인지도를 가진 최진실이 받은 타격은 상당히 컸으며, 훗날 최진실은 이 때의 상황에 대해 "국민을 '배심원'으로 앉혀놓고 2~3년간 이혼 문제로 시끄럽게 떠들었다. 그 과정에서 치부를 생생하게 보여줘 나도 아이들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라고 말하기도 하였다.[253] [299] [107] [104] [549] [254] [255] [550] [260] [551] 그 당시 언론 상황에 대해 연출가 정길화는 "IT 강국 한국의 인터넷과 난립한 연예 저널리즘은 그 모든 상황을 거의 실시간으로 중계했다"라고 표현했다.[145] 기자 주진우는 "최진실은 귀엽고 발랄한 여성의 대명사였다. 이혼 때문에 깔끔한 이미지가 손상되면서 최진실은 나락에 떨어졌다. 연예계에서 그를 찾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2004년MBC의 한 국장은 '최진실은 끝났다. 귀엽고 발랄함으로 떠오르던 최진실이 이제는 가정폭력과 이혼의 대명사가 되었는데, 최진실을 어디에다 쓰겠는가'라고 말했다"라고 말했다. 이는 가정폭력이라는 범죄 행위의 피해자에게 오히려 그 운신의 폭을 제한하는 대한민국 방송계의 인식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고, 결혼을 하면 이혼할 가능성은 늘 있는데, 합법적인 행위인 이혼을 했다는 이유로 사회활동을 제한받을 수 있다는 사회 분위기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였다. 폭력범이 유명인을 상대로 대놓고 폭력 행위를 저지른 것은 이런 사회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고 이런 사회 분위기는 오히려 가정폭력을 조장하는 면이 없지 않았는데, 최진실은 이혼 숙려 기간을 가지는 동안에 알려진 것만으로도 같은 가해자로부터 두 번의 가정폭력 행위를 당했었고, 첫 번째 폭력 행위는 임신 중에 당한 것이기 때문에 태아도 그 행위의 피해자였다.[552] [300] 이혼 과정에서 최진실은 민사상·형사상 피해자였지만, 개인의 아픈 사생활에 대해서 그리고 그 피해자에 대해서 흥미 위주 가십으로 팔아먹는 일부 언론의 '상혼' 등으로 이중으로 고통을 받아야 했다. [553] [257] [554] [64] [555] [556] [557] [558] [559] [560] [561] [562] [563] [564] [565] [327] [566] [567] [568] [569]

  • 언론과 관련된 언급

2003년 10월 23일조성민이 언론에 공개한 이혼합의서라는 것도 초안일 뿐, 그 어떤 것도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신문사에 문건을 팩스로 보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에는 더 이상 참을 이유가 없었다. 더 이상 참지 않겠다. 조성민을 상대로 모든 법적 수단을 동원해 엄격히 대응하겠다.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조성민은 이혼합의서 초안을 공개하기 전에도 마치 내가 돈 때문에 이혼문제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양 10억 원, 13억 원 등 위자료 금액을 임의대로 발설해 치명적인 상처를 줬다. 이혼문제와 관련하여 지극히 개인적인 사생활을 언론에 유포한 조성민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위기에 처한 부부의 사생활문제를 끊임없이 화제 기사로 다뤄온 모든 스포츠신문들의 보도 행태에 분노를 느낀다.[257] [570] [571] [572] [573] [574] [575] [576] [577]

있는 그대로 잘 써주세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기사를 쓰면, 이 인터뷰로 끝나는 게 아니라 연예를 다루는 일간지, 주간지들이 베끼니까요. 그래서 제가 그동안 인터뷰를 피했어요. 지금 저 말고도 이렇게 살아가는 '싱글맘' 여성들이 많으니까 그 분들이 위로를 받고 힘을 낼 수 있게 써주세요.[107] [578] [208] [579] [580] [581] [192] [582] [583] [584] [585] [586] [66] [587]

대중과 최진실[편집]

연예인과 대중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한다. 연예인은 대중에 대해 '슬퍼도 웃고 기뻐도 울 수 있는 존재'이고, 대중은 연예인에 대해 '오늘은 좋아했다가 내일은 싫어할 수 있는 존재'이다. 최진실 또한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20여 년 동안 연예계 정상의 자리에 있던 최진실은 늘 대중의 집요한 관심에 시달렸다. 그 관심의 극단적인 예가 시도때도 없이 나도는 근거 없는 소문이었다.[511] 허위사실유포 행위는 최진실과 대중 사이를 이간질하는 역할을 하였다.[588] [589] [125] [126] [497]

최진실의 진실과 구라》에서 함께 진행을 맡았던 김구라는 무명 시절 유명 연예인들을 대상으로 독설을 퍼붓는 컨셉으로 인터넷 방송에서 활동했던 전적으로 연예계에서 유명한 인물이었고 이후 본인이 유명인이 되어서는 그걸 수습하느라 진땀을 뺐던 방송인이었는데, 최진실은 이러한 김구라의 행보에 대해 대중의 입장에 서서 연예인을 비판한 것일 수 있다고 말하며 그 의미를 짚었다.[590] [362]

2008년 9월, 코미디언 정선희의 남편인 배우 안재환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 사건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 사건을 접한 최진실은 크게 슬퍼하였고 정선희의 곁을 지켰다. 대중은 언론을 통해 최진실의 이런 모습을 지켜보았다. 최진실의 어머니 정옥숙은, 없는 일도 만들어내는 것이 세상 사람들이니 정선희를 적극적으로 도우려는 최진실에게 그 행동을 자제할 것을 주문하였다. 하지만 최진실은 그 말에 개의치 않았다. 어느덧 정옥숙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안재환의 죽음에 최진실이 연루되었다는 허위사실이 인터넷상에 유포되었던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언론 또한 일이 커지는 데 일조하였는데, 인터넷상에 유포된 근거 없는 이야기들을 그대로 특종으로 실었던 것이다. 더욱이 최진실은 20여 년 동안 연예계 생활을 하면서 크고 작게 허위사실 유포를 겪었는데, 과거의 거짓 소문들까지 인터넷상에서 모두 수면 위로 떠올라 근거 없는 소문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최진실을 강타했다. 또, 사람들은 정옥숙을 두고 '소설'을 쓰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이 '소설'은 그냥 소설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옥숙은 현실 속에서 그 피해를 겪어야 했다. 정옥숙은 자신을 두고 수군거리는 사람들을 목격했던 것이다. 그 당시 상황에 대해 정옥숙은 자신의 저서 《엄마가,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2011년)에서 "얼굴을 못 들 정도로 모멸감을 느꼈다"라고 밝혔다. 최진실은 자신은 물론 가족들까지 감옥 아닌 감옥 생활을 하는 일을 겪었던 것이다. 그 당시 최진실의 동생은 연예인이었고, 최진실의 아들은 초등학생이었으며, 최진실의 딸은 유치원생이었기 때문에 최진실의 심적 부담은 상당했다. 최진실은 정옥숙에게 "나 헛살았나봐. 나는 완전히 왕따야. 누구 하나 정말 진심으로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이 없네. 그 동안 잘못 산 거야. 최진실은 돈 빌려준 적 없다고 한 마디만 해줬다면, 그 한 마디만 누가 해줬다면, 누구 한 명이라도 나를 아는 사람 그 누구라도…"라는 말을 함으로써 연예계 내부의 비정함에도 섭섭함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결국, 근거 없는 소문은 최진실을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591] [300] [64] [104] [592] [593] [594] [595] [596] [597] [598] [599] [83]

  • 대중과 관련된 언급

정말 밉고 힘들다. 쫓아가서 때려주고도 싶다. 청소년이라면 그 부모를 찾아가서 길거리에 발가벗겨 놓고 창피를 주고 싶다. 하지만 그들이 정말 날 미워만 했을까? 늘 욕만 했을까? 아닐 거야. 때론 나를 보고 즐거워도 했을 거고, 또 행복해 하기도 했을 거야. 그러다가 미워하기도 하고 욕도 했겠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를 욕하는 이들보다, 나를 모함하는 이들보다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이들이 훨씬 많은 것은 사실이잖아.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는데, 몇 명이 날 욕한다고 대수겠어?[176]

저에게는 두 아이가 있고 제 이름과도 같은 '진실'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그 진실은 제가 죽어서라도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알아줄 것이라고 믿고, 이제는 당당히 세상과 맞서 열심히 살 것입니다.[299]

MBC장미의 전쟁》(2004년)으로 활동 복귀를 앞둔 무렵

명예훼손 수사[편집]

2008년 9월 8일, 코미디언 정선희의 남편인 배우 안재환이 자신의 승용차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경찰 조사 결과에 따르면 안재환의 사인은 자살로 밝혀졌다.[600] [601] 이후 최진실은 "최진실이 안재환을 대상으로 사채업을 했다"라는 거짓 소문에 시달렸다.[602] 이에 대해 최진실은 2008년 9월 20일까지도 가볍게 넘기다가 인터넷상의 여론이 심각하게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2008년 9월 21일 입장 변화를 보였고, 이후 "연예인으로 살다보면 어느 정도의 루머를 감수하며 살아가야 하지만, 이번 사건은 안재환 씨의 유가족과 친구 정선희도 너무나 큰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그냥 넘길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강경한 입장을 표명했다.[603] [604] [605] [83]

2008년 9월 22일, 최진실은 사이버테러대응센터에 이 사건을 의뢰했다. 인터넷상에서 해당 거짓 소문이 확대되면서 각종 포털 사이트에 2008년 9월 22일 하루 동안 최진실의 '연관 검색어'로 '안재환'과 '사채'가 언급되는 것을 지켜본 최진실의 소속사는 해당 포털 사이트에 해당 게시물을 삭제해줄 것을 요청하였고, 이후 최진실의 '연관 검색어'에서 '사채'라는 용어는 빠졌다. 이에 대해 최진실의 소속사는 "비슷한 피해자가 나타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게 됐다"라고 설명했다.[604] 2008년 9월 28일, 증권사 직원 백 모 씨(여·25세)가 경찰에 출두해 피의자 진술을 하였고, 최진실은 그 날 저녁 백 모 씨로부터 선처를 요구하는 전화를 받았다. 이에 최진실은 백 모 씨가 자신의 연락처를 알아낸 점과 당당하게 선처를 요구하는 태도에서 심한 두려움과 모멸감을 느꼈다. 그 후에도 계속된 백 모 씨의 일방적인 전화에 대해 최진실은 친구인 의 김재우 기자에게 '악마의 전화'라고 표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진실은 백 모 씨가 최초 유포자를 알려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 전화를 받았다.[606] [607] [608] [609] 2008년 9월 29일, 서울 서초경찰서 사이버범죄 수사팀은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백 모 씨를 입건했다.

2008년 9월 30일, 최진실은 김재우 기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채설 유포자가 잡혔으니 이제는 사람들이 내 진실을 믿어줄 줄 알았어. 그런데 토론 게시판에서 내 이야기에 서로 찬반양론을 펼치는데, 아직도 내가 안재환을 죽음으로 몰고 간 악덕 사채업자로 그대로 묵인하는 사람들이 많더라. 나 너무 떨려. 이대로 가다간 정말 죽을 것 같아. 죽으면 내 진실을 믿어줄까. 내 이름은 ‘최진실’인데, 사람들은 나를 ‘최가식’이라고 부르네. 너무도 슬픈 일이지 않니? 환희, 준희에게는 미안하지만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어머니보단 죽어서 진실이 밝혀진 어머니가 낫지 않을까.[610] [611] [612]

경찰 조사 결과, 허위사실유포의 근원지는 증권가 사설 정보지인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기술적인 문제로 최초 유포자는 찾아내지 못했다. 미지의 인물이 대한민국 대통령경호실 경호과장 출처라면서 최진실이 악덕 사채업자라는 소설을 작성했고, 그것을 쪽지 형태로 백 모 씨 등에게 보냈으며, 백 모 씨 등은 이 쪽지를 150여 명에게 재전송했다. 경찰 조사에서 백 모 씨 등은 이 쪽지를 보낸 사람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고, 경찰이 백 모 씨 등의 컴퓨터를 조사했지만 저장된 내용이 없어서 최초 유포자는 잡지 못했다.[613] [614] [615] [616] [617] [618] [619] [620] [621] [622] [623] [624] [625] [626]

2008년 10월 8일, 국외에 서버를 두고 있는 사이트를 통해 백 모 씨의 신분이 노출되면서 백 모 씨의 싸이월드 '미니홈피'는 네티즌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다.[627] [628] 2008년 10월 13일, 백 모 씨는 증권회사를 사직했다.[629]

2009년 6월 16일, 1심 법원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백 모 씨(여·25세)와 증권사 직원 백 모 씨(남·35세)에게 징역형 10개월,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20시간을 각각 선고하였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허위사실인지 몰랐고, 비방할 목적이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사건 당시 피고인들은 충분히 이 사건 내용이 허위사실임을 인지했고, 비방 목적으로 인터넷에 글을 올린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630] 이에 징역형이 확정되면 해직 대상이 되는 백 모 씨(남·35세)는 항소를 하였다. 2009년 12월 10일, 2심 법원은 백 모 씨(남·35세)에게 벌금 4천만 원을 선고하였다.[631] [632] [633]

항소심 최완주 부장판사는 '충격적인 사실! 최진실, 안재환 사채 관련 의혹'이라는 제목의 쪽지를 인터넷 메신저로 100여 명에게 유포한 백 모 씨(남·35세)에게 벌금형에 그친 선고를 한 이유에 대해 "최진실 씨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내용을 확인 없이 재전송해 죄질이 가볍지 않다. 백 씨가 깊이 반성한다. 쪽지를 최초에 작성한 사람이 밝혀지지 않았고, 언론을 통해 확대된 점 등에서 최진실 씨에 대한 명예훼손 외에 최진실 씨의 자살에 대한 결과까지 책임을 지울 수는 없다"라고 설명했다.[632] [633]

최진실의 사망 후에도 최진실의 '미니홈피'는 열려있었다. 2010년 7월, 최진실의 딸 최준희가 최진실의 '미니홈피'에 "엄마 사랑하고 지켜봐"라는 일촌평을 남겼는데, 며칠 후 이것이 기사화되면서 하루 만에 30여 만 명이 최준희의 '미니홈피'를 방문하였고 3천여 명이 응원 메시지를 남겼다.[634] [635]

  • 허위사실유포와 관련된 언급

루머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것이 좋은지 모르겠다. 루머 당사자는 철창만 없을 뿐 감옥에 갇혀 있는 것과 같다. 근거 없는 루머는 그 사람 대에서 끝나는 게 아니다. 자식들, 그 후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루머와 악성 댓글은 신체적인 폭력만 없다는 것뿐, 마음에 엄청난 상처를 안긴다는 점에선 폭력의 수위가 결코 덜하지 않다. 사람들이 연예인을 너무 막 대하는 것 같아 슬프다.[400]

그동안 많은 부분에서 욕심을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더 비우고 더 몸을 낮추라고 하니 내가 어디까지 자존심을 버려야 할까. 행복했던 시절, 그 행복이 당연하다며 오만했던 시절이 지금은 너무도 그립다. 이 고통은 아무도 몰라. 그냥 최진실이 누렸던 모든 것을 한순간에 놓고 싶을 정도로 너무도 아파 미치겠어.[636]

사망 이틀 전인 2008년 9월 30일 친구 김재우에게 한 말

여성학과의 만남[편집]

2004년 8월 1일, 조성민은 최진실의 자택을 찾아가 최진실을 폭행하였고, 이에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현행범으로 체포되었는데, 조성민은 이 사건에 대해 쌍방 폭행이라고 주장하였다. 이후 최진실은 자신의 멍든 얼굴과 파손된 집안 내부 등을 언론에 공개하였다. 그러자 신한이 최진실을 상대로 30억 원 가량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 최진실은 2004년 3월에 아파트 광고 모델로서 신한과 계약을 맺었었다.[637] [556]

이 소송과 관련하여 신한의 소장에는 '이 아파트에 들어가면 멀쩡한 부부도 갈라서겠다'는 구절이 명시되어 있었다. 2004년 11월 24일, 최진실은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 사건에 대해 '이혼녀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 의한 여성인권 침해'라고 규정하였고 여성운동단체와 연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최진실은 이 인터뷰에서 "이번 사건으로 인해 이혼녀가 '사회적 명예가 실추된 사람', '사생활 관리를 못한 사람'이라는 '주홍글씨' 선례를 남기지 않게 최선을 다해 대응하겠다. (신한이 내게 소송을 건 이유로 미루어보아) 그렇다면 신한은 이혼녀에겐 아예 아파트 분양 자격을 주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이번 사건을 통해 '여성'으로서의 아픔을 절감했다. 여성인권 향상을 위해 애쓰는 여성운동단체들이 내 도움을 필요로 한다면 언제든 돕고 싶다"라고 말했다.[638] [639]

이 사건과 관련하여 민변 여성복지위원장 진선미 변호사는 "연예인의 CF계약은 일명 '노예계약'이라지만, 이번 사안처럼 이혼을 최대 귀책사유로 보는 것은 정말 비인간적·반인권적이다"라고 말했다. 수년간 한국여성의전화 대표를 역임했던 신혜수 유엔 여성 차별 철폐 위원회 부위원장은 "(신한의 소송은) 정말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최진실 씨가 양육권 확보를 위해 최선을 다한 점 등을 감안한다면 오히려 회사 측은 최진실 씨를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당당하게 방어한 적극적 여성 이미지로 활용할 수도 있지 않았겠느냐. 최진실 씨의 사건이 잘 매듭지어져서 대중 여성의식을 고양시키는 좋은 계기가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638] [287] [292] [639]

이 사건을 계기로 최진실은 여성·청소년 문제에 관심이 많은 법조인 강지원과 교류하게 되었고, 그 인연으로 여성학자 오한숙희와도 교류하게 되었으며, 여성학 관련 서적도 읽게 되었다. 오한숙희는 "최진실은 서점에서 내 책을 두어 권 구해 읽었노라고 했다. 최진실은 똑똑했다. 내 책의 내용과 논지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최진실은 자신이 세상을 잘 몰랐다고, 그저 자신만 열심히 살면 되는 줄 알았다고 했다"라고 말했다. 강지원은 이 사건의 무료 변론을 맡아 최진실을 지원하였고, 최진실의 사망 후에는 최진실의 자녀들을 위해 변론을 했는데, 이 법정공방은 2010년 2월 9일에 마무리되었다.[640] [556] [557]

2004년 12월 21일, '여성 문화예술인의 인권에 관한 토론회'가 '문화세상 이프토피아'와 '여성문화예술기획' 주최로 열렸다. 여성신문 박이은경 편집국장은 '여성 문화예술인의 사생활에 관한 보도 실태'라는 주제 발표에서 "1990년대 말에는 여성 연예인의 섹스 비디오 사건이, 2000년대 들어서는 여성 연예인의 가정폭력 사건이 이슈로 떠올랐다. 관련 사건이 알려지면 공인이라는 굴레 때문에 영원히 피해자로 남거나 스타에서 추락하는 극단적 결과만 남는다. 최진실 씨는 앞으로 여성운동계와 연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라고 말했다. 오한숙희는 "이혼이나 가정폭력으로 고민하는 많은 여성들에게 최진실 씨 사건이 어떻게 다뤄지는가는 매우 중요하다. 최진실 씨 피소 사건이 부당하다는 내용의 서명 운동을 펼치겠다. 최진실 씨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여성학 책을 보고 있다고 한다. 여성 연예인 대상의 인권상담소가 필요한 것 같고 이들을 위해 인터넷이나 책을 보내주는 방법으로 여성학 강의를 하겠다"라고 말했다. '여성문화예술기획' 이혜경 대표는 "최진실 씨는 이번 일로 여성 문제에 눈을 뜨게 됐다고 했고 이혼한 여성들을 위해 애쓰겠다고 했다. 광고 모델이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되었고 그 가정폭력 사건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고 해서 광고주인 기업이 폭력 피해자인 모델에게 손해배상금을 청구한 논리는 부당하다"라고 말했다. '문화세상 이프토피아' 박옥희 대표는 "가정폭력의 피해자인 여성 연예인이 그 가정폭력 사건으로 인해 30억 원 가량의 소송을 당할 수 있다는 기사만으로도 그러한 풍토를 당연시 여기는 사회 문화가 형성되지 않을까 우려된다"라고 말했다.[641] [642] [643] [644] [645]

이후 최진실은 '여성단체 후원 바자회'에 물품을 기증하는 등 자신의 위치에서 성 차별을 일소하는 일에 동참하였다.[557] [646]

자녀의 성·본 변경[편집]

개정된 민법이 "자(子)의 복리를 위하여 자(子)의 성(姓)과 본(本)을 변경할 필요가 있을 때는 부모 또는 자(子)의 청구에 의하여 법원의 허가를 받아 이를 변경할 수 있다. 다만 자(子)가 미성년자이고 법정대리인이 청구할 수 없을 경우에는 제777조의 규정에 따른 친족 또는 검사가 청구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면서 2008년 1월 1일부터 자녀의 성(姓)과 본(本) 변경이 가능해졌다. 자녀의 성을 바꿀 수 있게 된 것은 사회사적으로 엄청난 변화였다.[647] [648]

2008년 1월, 최진실은 자녀의 성본(姓本) 변경 허가 신청을 하였다. 최진실은 "두 자녀를 당당하게 키우고 싶은 생각에서 신청서를 냈다"라고 밝혔다. 2008년 5월, 법원은 최진실의 신청을 받아들여 자녀의 성본(姓本) 변경을 허가하였다. 최진실의 딸은 성본(姓本) 변경과 함께 '수민'이라는 이름에서 '준희'라는 이름으로 개명하였다.[428] [649] [650] [651] 최진실의 이 결정이 알려지자 '용기 있는 선택'이라는 의견과 '근본을 뒤흔드는 잘못'이라는 의견이 있었다.[652]

이화여자대학교 여성학과 교수 장필화는 "우리나라가 1994년에 여성차별철폐협약에 가입하면서 가족의 성(姓)을 협의해서 정할 수 있고, 자녀에게 어머니의 성(姓)을 줄 수 있다고 협약 조인을 했지만 그 당시에는 이것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버지의 성(姓)을 따라야 한다는 전통사상 때문에 저항이 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이 변화하고 있음을 법이 받아들인 것이고 이에 따라 합법성의 기준이 변한 것이다"라고 말했다.[653] [654] [652] 이런 사회 변화 속에서 혼인신고서에는 성본(姓本)의 협의 항목이 생겼는데, '자녀의 성본(姓本)을 어머니의 성본(姓本)으로 하는 협의를 하였습니까?'라는 항목을 통해 어머니도 자신의 성(姓)을 자녀에게 줄 수 있게 되었다.[655] [656]

자녀의 성본(姓本) 변경이 가능해지자 많은 이들이 자녀의 성본(姓本) 변경 허가 신청을 하였다. 2008년 2월 25일에 발표된 대법원의 '자녀 성본(姓本) 변경 허가 청구 처리 현황'에 따르면, 그 시점까지 자녀의 성본(姓本) 변경 허가 신청은 8169건이 접수되었다.[652]

대한민국에서는 어머니의 성(姓)을 쓰면 "뿌리가 없어진다"라는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이 남아있었는데, 이는 대한민국 사회가 오랫동안 견지해온 부권제에서 기인했다. 법체계가 부성주의(父姓主義) 및 성(姓) 불변 원칙을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여전히 그 잔영이 남아있었고, 이런 고정관념으로 인해 최진실은 일부 네티즌들로부터 인터넷상에서 스토킹을 당해야 했다. 2008년 9월 4일, 자녀의 성·본 변경과 관련하여 악성 댓글이 도를 넘자 최진실은 자녀들을 보호하고자 자녀들의 방송 노출을 자제하겠다는 뜻을 표했다.[657] [658] [659]

통계청에 따르면, 2008년 현재 대한민국은 사회적으로 이혼율과 재혼율이 증가하는 추세에 있었다.[660] [661] 2008년 3월 10일, 스포츠한국은 "대한민국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상승하고 사회 구조가 모계(母系)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지만, 자식이 어머니의 성(姓)을 따르는 것과 싱글맘의 존재가 여전히 뉴스가 되는 남성 중심 사회이다. 최진실의 자녀 성본(姓本) 변경은 최진실의 상징성으로 인해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어느 수준에 와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기회를 제공한다"라는 기사를 실었다.[662] [663]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최진실의 자녀 성본(姓本) 변경은 유명인으로서는 첫 사례여서 화제가 되었다.[664] [665]

최진실의 자녀 성본(姓本) 변경에 대해 대중문화 평론가 배국남은 "편견에 시달리는 싱글맘들이 어머니로서 좀 더 자신감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일조할 것으로 보인다. 변화하는 가족의 형태, 의미, 방향 등에 대해 생각할 계기를 마련해주었다"라고 논평하였다.[666]

2008년 9월 30일, 시사IN고재열 기자 주최의 《블로거와의 대화》에 첫 초대 명사로 나온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최문순은 블로거들의 다음 대화 상대자로 최진실을 추천했다.[667] 최문순은 "최진실은 자녀의 성본(姓本) 변경 이후 사회의식에 눈을 떴다. 여러 가지 힘든 일들을 겪으면서 사회문제에 눈을 떴고 눈을 뜬 것을 넘어서 자녀들에게 자신의 성(姓)을 쓰게 할 만큼 사회 진보의 선봉에 선 그를 만나봐야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최진실과 다른 또 다른 최진실을 발견할 수 있다"라고 말하면서 최진실을 블로거들이 만나볼만한 인물로 평가했다. 최진실과 최문순은 최문순이 MBC 사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인 2005년부터 친분을 나눈 사이였다. 최문순은 고재열에게 '아는 연예인, 최진실', '친한 연예인, 최진실', '좋아하는 연예인, 최진실', '블로거들이 만나야 할 연예인, 최진실', '자신이 섭외해줄 수 있는 연예인, 최진실', '《블로거와의 대화》에 자신이 블로거 자격으로 패널로 참여할 대상, 최진실' 등으로 최진실에 대해 말했고, 고재열은 《블로거와의 대화》를 안착시키기 위해 최진실을 최대한 빨리 초대하려고 계획했다.[325] [668]

사회적 발언[편집]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편집]

2008년 5월, 최진실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지켜보면서 침통한 심경을 토로했다.[11] 미국산 쇠고기 정부 고시가 있던 5월 29일에 최진실은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결국 결국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발표하는 데 대해 섭섭함을 표했다.

얼마 전 홍콩에 다녀왔는데 현지 신문 1면에 우리의 촛불문화제를 다룬 뉴스가 실려 있었다. 한국의 학생들이 쇠고기 수입을 반대해 촛불을 켰다는 보도를 보고 마음이 아팠다.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이런 일로 대한민국을 알리는 게 씁쓸했다. 난 설렁탕을 정말 좋아하고 아이들에게도 자주 먹이는데 어머니로서 참을 수가 없다. 밥을 먹을 때마다 음식을 의심하며 먹어야 한다는 게 화가 난다.[669] [670] [671]

독도 문제[편집]

2008년 7월, 최진실은 일본 정부가 교과서 지도 요령 해설서에 독도 영유권 명기 방침을 정했다는 소식에 분노를 표현했다. 7월 14일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 OBS최진실의 진실과 구라》 등에서 일본의 부당한 행위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웠다.

독도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난다. 어이가 없다. 일본이 왜 어떤 이유로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대는지 모르겠다. 우리나라가 힘이 있다면 이렇게 무시할 수 있을지 싶다. 물론 전문가들이 계시지만 국민의 한 사람이자 가정주부로서 독도 문제를 바라보는 마음이 매우 아프다. 내가 일본 출입 금지 조치를 당하더라도 할 말은 하고 싶다. 일본은 독도 영유권에 대해 차근차근히 준비를 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이 만든 세계지도에는 이미 독도가 '다케시마'로 표시돼 있다고 하더라. 사실 적극적이고 꾸준한 대처가 필요했다. 저들은 우리의 황망함을 오히려 즐길지도 모른다. 당장 흥분하기보다 앞으로 10년 뒤를 내다보고 대한민국의 힘을 키워야 한다. 독도뿐 아니라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일본과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힘을 키워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역사를 만들고 싶다.[672] [673]

공익적 활동[편집]

소년소녀가장 돕기 자선 공연[편집]

1991년 5월, 최진실은 소년소녀가장 돕기 자선 공연을 가졌고 공연 수익금 3천만 원을 소년소녀 가장들을 돕는 데 사용하였다. 최진실은 어려웠던 가정형편 때문에 고등학교 시절에 등록금 독촉을 자주 받으며 마음의 상처를 입은 경험이 있었다.[674]

기아자동차 무료 광고 출연[편집]

1997년 12월 3일, 대한민국IMF 구제금융 요청이 발생했다. 이는 대한민국이 외환위기를 겪으며 국제 통화 기금과 자금 지원 양해각서를 체결한 사건이다. 이런 경제 상황 속에서 1997년 기아자동차는 부도가 났다. 이 때 최진실은 부도가 난 기아자동차를 위해 광고에 무료로 출연했다. 최진실은 최고의 CF 모델이었고, CF 1편 출연료는 3억 원에 달하는 배우였기에 기아자동차에 큰 도움이 되었다.[675] [676]

연예인의 퍼블리시티권[편집]

2003년 6월 14일중앙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장재옥은 '문화예술의 재산적 가치'를 주제로 열린 학술세미나에서 '연예인의 퍼블리시티권'을 발제로 삼았는데, 이 발제는 대한민국 연예인의 초상영리권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었다. 연예인의 퍼블리시티권 개념을 다룬 판례는 주로 광고와 관련되어 있었는데, 2000년에 6개월의 계약 기간을 어기고 60개월 이상 최진실의 초상을 사용한 제약업체에 4000만 원의 배상을 판시한 사례가 대표적이었다. 최진실은 계약 기간보다 5년을 더 자신의 초상을 사용한 제약업체를 대상으로 5억 원의 손해배상소송을 냈지만, 법원은 제약업체에게 4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677] [678] [679] [680]

한동대학교 재정 지원[편집]

2002년 6월 12일, 최진실은 한동대학교 김영길 총장에게 5천만 원의 재정 지원 기금을 전달했다. 2002년 3월에 배우 활동을 재개하면서 "재정이 어려운 대학을 돕고 싶다"라는 의사를 밝혔는데, 한동대학교를 첫 기부 대상으로 선정했다.[681]

히말라야 등반[편집]

2005년 12월, 최진실은 9박 10일의 일정으로 히말라야 산맥에 등반했는데, 히말라야 산맥안나푸르나 산 남벽 베이스캠프(4200m)까지 올랐다. 평소에도 등을 즐겼지만 히말라야 산맥 등반을 위해 청계산을 오르며 기초 체력을 다졌다.[682] [683]

가톨릭대학교 의정부성모병원 백혈병 환자들이 만든 '루 산악회' 회원 7명, 산악인 한완용·나관주, 배우 손현주·신애 등이 동행했다. '수확의 여신'이라는 뜻을 가진 안나푸르나로의 산행 목적은 백혈병 환자들과 동행하며 그들의 건강 회복을 기원하고 재활 의지를 북돋우기 위한 것이었다. KBS 《장밋빛 인생》에서 연기 호흡을 맞춘 손현주가 최진실에게 등반을 권했고, 최진실이 이에 흔쾌히 동의하여 함께 산행에 참여하게 되었다.[682] [684] [685] [686]

최진실은 등반 일정 틈틈이 소설 《가시고기》(2000년)의 작가 조창인의 신작 소설인 《첫사랑》(2005년)을 읽었는데, 《첫사랑》은 최진실이 《가시고기》를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조창인이 최진실에게 선물한 것이었다. 《첫사랑》은 히말라야를 모티브로 삼은 작품이다. 한편, 최진실은 "드라마 《장밋빛 인생》이 인생의 의미를 일깨워줬다면 이번 히말라야 등반은 세상에 대한 눈을 뜨게 해준 여행이었다"라고 말면서 히말라야 등반에 대한 남다른 감회를 밝혔다.[684] [687] [688] [689] [690] [691]

히말라야의 별은 눈으로 보는 게 아냐. 귀로 듣는 거야.
나는 히말라야 별들의 속삭임을 들으러 갈 거야.
그리고 별들에게 묻겠어.
내 사랑이 어디쯤 가고 있는지를…….

 
— 조창인 , 《첫사랑》 중에서 [692]

굿네이버스 친선대사[편집]

2006년 4월, 굿네이버스 친선대사로 위촉을 받았다. 굿네이버스는 아동문제 등을 해결하는 일과 관련하여 활발한 활동을 하는 NGO인데, 굿네이버스 측에서 최진실에게 친선대사 제의를 해왔고, 두 자녀를 둔 어머니로서 평소 아이들의 일에 관심이 많았던 최진실은 이에 흔쾌히 응했다.[328] [281] [693] [694] [695] [696] 최진실은 보육원을 방문하기도 하고 가족들에게 입양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내기도 하는 등 아동 인권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104] [697] [698] [699] [700]

이듬해인 2007년 7월, 최진실은 굿네이버스와 한미은행 노동조합이 주최한 결식 아동을 위한 여름방학교실 캠프 '신나는 여름 이야기'에 참석하였다. 최진실은 약 100여 명의 결식 저소득 아동 및 자원봉사자가 참석한 이 행사에서 다양한 전통문화 체험 프로그램에 아이들과 함께 참여하였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하고, 함께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아이들의 머리를 감겨 주기도 하였다.[701]

최진실 재단[편집]

2008년 11월 19일 최진실의 사십구재를 마친 뒤, 최진실의 친구들은 '최진실 재단'을 세우기로 의견을 모았다.[702] 이들은 생전 자선사업에 관심이 많았던 최진실의 유지를 받들어 장학사업과 불우이웃을 돕는 재단을 만들기로 했다.[703] [704] 재단 운용에 필요한 자금은 이들의 사비를 모으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705]

2008년 12월 21일, 코미디언 이영자와 메이크업 아티스트 조성아 등 최진실의 친구들이 사회사업을 시작했다. 이들은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의 성로원 아기집에 1,000만 원 남짓한 돈을 전달하는 것으로 '최진실 재단'의 첫 삽을 떴다.[706]

기타[편집]

개신교와의 인연[편집]

최진실은 강남중앙침례교회를 다니며 신앙생활을 하였다. 갑산공원 안에는 강남중앙침례교회가 임대한 부지가 있고 최진실은 그곳에 잠들어 있다.[707]

광고 문구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편집]

1988년 최진실은 광고 문구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가 담긴 삼성전자 광고로 광고계의 신화적 존재가 되었다.[708] [709] [710] [711] [542] 이 문구는 여성이 말하느냐, 남성이 말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화자가 여성이라면 '여자하기'에 방점이 찍히고 남성이라면 '남자는'에 방점이 찍히게 된다. 화자의 성을 배제한 채 문구 자체로만 따져도 주체는 여성이고 객체는 남성이다. 그러므로 여성은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고 말해야 맞고 남성은 '여자는 남자하기 나름'이라고 말하는 게 맞다. 이것은 버전을 달리하여 동생은 '형은 동생하기 나름'이라고 말해야 하는 것이고 형은 '동생은 형하기 나름'이라고 말해야 하는 것이다. 남성중심적 사회문화로 인해 이 광고 문구는 여성의 인권과 관련하여 여성운동계의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712] [557] 남성중심사회는 '남자는'에 방점을 찍으며 이 광고 문구를 여성이 남성에게 아부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713] [714] [579]

여성 화자가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고 말할 때 여성이 주체이고 남성은 객체가 되는 의미로 여성의 주체성을 드러낸다.[715]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폭력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그 탓을 피해자인 여성에게서 찾는 데 이 말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어서 이 말이 부권제에 순응하는 의식을 담고 있다는 변질된 해석의 대상이 되었다. 여성폭력을 저지르는 사람들의 이런 논리는 '가해자는 피해자하기 나름' 혹은 '강자는 약자하기 나름'이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궤변이고 2차 가해행위이며 법정에서 받아들여질 리 만무한 말일 뿐이다. 즉 남성중심사회에서 남성 화자가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고 말하는 것은 대개 여성에 대한 교활한 덫이기 십상이다.[716] [717] [718]

여성폭력범들이나 그 공범들 혹은 그 심정적 동조자들이 흔히 사용하는 말을 광고 속에서 최진실이 사용하고 해당 광고가 사회적으로 크게 반향을 일으키면서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가 유행어가 되며 사회적 영향력이 커지자 최진실이 부권제를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한다는 오해를 받기도 하였다.[714] 하지만 이는 '범죄에서 가해자가 피해자 탓 하는 논리'에 휘둘린 측면이 없지 않다. 여성이 '세상은 여자하기 나름'이라고 말한다거나, 남성이 '여자는 남자하기 나름'이라고 말하는 것에 이런 식의 해석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719] [720] [721] [722] [723]

최진실은 자전 에세이 《그래, 오늘 하루도 진실하게 살자》(1998년)에서 이 사안과 관련하여 언급한 바 있다. 이 책에서 성장기에 자신 또한 어머니의 삶에서 여성 차별을 목격했고 어머니를 학대하는 친할머니에게 항의한 적도 있다고 하며 성 차별에 대해 어린 시절부터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밝혔다. 다만 광고란 자본주의의 꽃이고 그런 광고계에서 모델로서 사회적 책임을 모두 짊어지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설명하였다. 이런 맥락 속에서 영화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1994년)에 출연하게 되고 이 영화에서 젠더폭력에 정면 승부하는 연기를 하였는데 이런 배우로서의 경험을 통해 여성인권에 대한 생각도 더 깊어지게 되었다고 서술하였다.[724]

수십 명의 보도진이 몰려든 강당에서 심포지엄이 개최되고 플래카드 <여성운동의 새로운 전망> 아래에서 주인공 강민주(최진실 분)는 연구 발표를 하며 "이 땅의 모든 것을 자랑스럽게 누리고 있는 남성 여러분! 오늘날 많은 남자들이 여성해방의 당위성을 말로는 이해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천할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는 것이 남자들입니다. 여자를 가둬놔야 당신들이 자유로울 수 있으니까요"라고 말한다.

최진실은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을 촬영할 때 떨리는 목소리로 이 대사를 표현했다고 하였고 연예인으로서 늘 좋은 대접만 받아오던 입장에서 여성 차별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며 살아오다가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을 하면서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족쇄일 수 있음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고 자평하였다. 최진실은 이 영화로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 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을 받았다.

삼성전자 VCR 광고에서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라고 말한 것이나 영화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에서 "나는 나를 건설한다"라고 말한 것이나 주체는 화자 최진실이었다.

영화 《남부군》[편집]

최진실은 1989년 영화 《남부군》(1990년)에 캐스팅되었다. 최진실은 이 영화에 캐스팅되면서 이태의 실화소설 《남부군》(1988년)을 5차례 읽었다. 최진실은 이념 문제에 대해서 관심도 없었고 알지도 못했으나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동안 학교에서 배운 반공교육과는 뭔가 차이가 있다고 느꼈고 이런 측면에 대해 한번쯤 영화로 짚고 넘어가야한다고 생각했다.[725] [726]

영화 《남부군》을 완성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감독 정지영은 영화 촬영 현장에서 'UIP 직배 반대 운동' 관련 사건 혐의로 형사들에게 체포되었다. 정지영이 구속되자 충무로 영화가에서는 《남부군》 제작이 불가능하리라는 소문이 나돌기도 하였다. 기대했던 국방부의 지원도 거부되었고, 영화 제작비도 바닥이 났으며, 감독이 구속되었기 때문에 이는 자연스러운 상황이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서 최진실은 '《남부군》이 영화로 완성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좋은 책을 읽었다는 걸로 위안을 삼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하였다.[725] [726] [727]

KBS연예가 중계》 제작팀이 영화 촬영 현장에 취재를 하기 위해 내려오게 되었는데, 《연예가 중계》 제작팀이 취재하러 오는 날은 영화 촬영에 최진실이 출연하는 장면이 없어 정지영은 최진실에게 '연예가 중계'용으로 어떤 허구적 장면을 구성해 보라고 하며 다음날 아침까지 그 대본을 써오라고 요구하였다. 최진실은 밤새도록 고민해가면서 3가지 대본을 만들었고, 정지영은 그 중 하나를 선택하였다. 실제 영화에서는 안성기, 이혜영, 최민수, 최진실 등이 한 자리에 등장하는 장면은 없었는데, 최진실은 《연예가 중계》 취재를 위해 이들이 함께 있는 상황을 구성해 보았었다.[725] [726]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편집]

최진실은 2004년젠더폭력에 대항해 싸우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변호사 강지원, 여성학자 오한숙희 등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법관 김영란의 배우자이기도 한 강지원은 여성문제와 청소년문제에 관심이 많은 법조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728] [729] [730] [731] [732]

2004년 12월 26일, 최진실은 여성문화예술기획에서 기획하는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강지원과 함께 관람하였다. '버자이너 모놀로그'는 여성성기를 소재로 성폭력, 동성애, 오르가슴, 출산 등 여성이 겪는 모든 상황에 대해 거침없이 다루면서 여성의 성적 해방을 추구하는, 대표적인 여성주의 작품이다.[733]

최진실은 이러한 여성운동계와의 소통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을 하나 더 갖게 되었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하는 등 여성운동계와의 연대 경험은 최진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한편, ‘버자이너 모놀로그’ 제작사는 공연 수익금을 일본위안부 관련 활동에 사용하는 등 젠더폭력 피해자들과 마음을 나누는 일에도 참여하였다.[733] [734] [735] [736]

음악 《애인 있어요》[편집]

《애인 있어요》는 가수 이은미의 6집 앨범 《Ma Non Tanto》(2005년)에 수록된 타이틀 곡이다.[737] 이 곡은 3년 후 MBC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2008년)에 삽입되었고 이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738] [739]

《애인 있어요》는 애절한 가사와 멜로디, 이은미의 뛰어난 가창력, 최진실이 좋아하는 노래 등으로 알려지면서 큰 인기를 얻어, 2008년·2009년 연속으로 노래방 애창곡 1위에 오르며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발라드 곡으로 자리매김하였다.[740]

2008년 10월 6일, 최진실의 삼우제 때 《애인 있어요》가 울려퍼져 당시 자리한 많은 이들의 마음을 달래 주었다. 2010년 11월, 이은미는 최진실의 친구인 코미디언 이영자가 진행하는 tvN현장 토크쇼 택시》에 게스트로 출연하였는데, 그 때 《애인 있어요》가 담긴 오르골을 이영자에게 선물하기도 했다.[741]

2012년 5월, 이은미는 일본에서 <이은미 스토리>라는 제목으로 첫 팬미팅을 열었는데, 이 자리에서 "《애인 있어요》가 드라마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의 히트와 함께 크게 주목받아 가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곡이 됐다"라고 밝히기도 하였다.[742]

어록[편집]

  • 교육에 대해서[109] [743] [744]
    • "학교 생활에서 '수우미양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특이 사항에 나타난 인성이 중요한 것이지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인생을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무엇이 되든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57] [745]
  • 가난에 대해서[746]
    • "나는 가난했다. 동정 받으려고 했던 건 아니지만 수제비 이야기도 모두 사실이다. 그 괴로웠던 시절에 어머니는 일기를 썼다. 어느 날 그 일기를 몰래 읽다가 '죽고 싶어도 진실, 진영 때문에 죽을 수 없다'라고 쓴 부분이 마음에 걸려 밤새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 후 더 슬픈 일이 생겼다. 돈을 조금씩 모은 후 그 일기장은 우리집 가보처럼 되어 있었는데, 언젠가 도둑이 들어 그 일기장까지 훔쳐가 버린 것이다. 그것만은 돌려 받았으면 좋겠다. 도둑에게는 아니겠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가장 소중한 보석함이다. 그리고 가난으로 얻은 것이 있다면 오기와 끈기이다. 일을 하다 보면 솔직히 피곤이 극에 달하는 경우도 많다. 그 때도 웃을 수 있는 건 가난 때문에 기죽기 싫었던 사춘기 시절의 오기 덕분이다."
  • 여백의 미에 대해서[746]
    • "채시라 씨와 비교하자면, 채시라 씨는 대중들에게 상상할 수 있는 여백을 마련해 주었지만 난 그렇지 못했다. 사람들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것 같다.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하다."
  • 매력에 대해서[746]
    • "나는 연기자이다. 나에게 매력이 있다면 작품 속의 인물이 매력 있는 것이다. 매력 있는 인물로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 대중은 내게 부담감이 느껴지지 않는 모양이다. 나 역시 솔직한 게 좋다. 내 이름이 무언가?"
  • 관심사에 대해서[746]
    • "난 TV에서 뉴스를 가장 즐겨 본다. 신문도 꼼꼼히 보는 편이다. 요즘에는 대권주자들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다. 정치인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앞과 뒤가 너무 다른 것 같다는 것이다. 앞을 보면 점잖고 멀쩡한데 뒤를 보면 그렇지 않다는 느낌이다. 난 정치계고 연예계고 뒤에서 비방하고 다니는 건 딱 질색이다. 왜 정정당당하게 당사자 앞에서 꾸짖지 못하는가? 떠날 때가 아름다운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 차별에 대해서[746]
    •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연출가는 싫다. 신인과 스타급 연기자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 차이나는 연출가를 가끔 본다.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히려 그 반대여야 하지 않을까?"
  • 매체에 대해서[747]
    • "가능하면 영화와 TV 드라마를 다 하고 싶다. 예전부터 그렇게 해오기도 했고. 그렇다고 이번엔 영화 했으니까 다음에는 TV 드라마, 이런 건 아니다. 나는 영화만 하겠다는 마인드는 잘 이해 못하겠다. 정말 그 인물에 빠지고 좋은 연기를 보일 수 있다면 매체는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 캐릭터에 대해서[747]
    • "아줌마 캐릭터에 대해 거부감은 없다. 알다시피 나는 스무 살 때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라며 데뷔했다. 처음부터 주부로 나왔기 때문에 거기에는 거부감이 없다. 트렌디 드라마도 많이 했지만 《마누라 죽이기》, 《고스트 맘마》, 《편지》 등처럼 결혼한 여성 역할을 많이 했다. 게다가 나이도 있는데. 내 자리는 내가 알아서 찾아가야 하는 것 같다. 실제 나이보다 더 많은 캐릭터를 연기해야 한다면 또 할 거다. 남들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은 그런 마음은 없다."
    • "《장밋빛 인생》을 할 때는 정말 연기를 처음 시작할 때 마음으로 임했다. 그런데 그 때보다 더 힘들더라. 그 이유가 뭔지 생각해보니까 깨끗한 도화지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그림이 많이 그려진 것을 갈아엎고 다시 그림을 그리려고 하니까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사람들은 맹순이 모습이 최진실의 사적인 부분과 너무 흡사하지 않냐고 한다. 사실 나는 맹순이에게서 내 모습만 본 게 아니라 우리 어머니 모습도, 옆집 아줌마 모습도 봤다. 그야말로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같다. 그리고 《장밋빛 인생》에 출연하는 데 부담은 없었다. 맹순이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만약 내게 결혼, 이혼 등 그런저런 과정이 없었다면 몰랐을 거다. 나도 두 아이의 어머니이고, 아이에 대한 애정이 크고, 배우자의 외도를 겪었고, 이러니까 오히려 연기를 하고 싶더라. 만약 그런 과정을 겪어보지 않은 채 맹순이 역을 했다면 굉장히 오버했을 것 같다. 그 동안 개인적으로 가졌던 물음표를 《장밋빛 인생》을 통해서 정말 마침표를 찍었다. '아, 이거구나' 하는 깨달음 말이다."
    • "과연 내가 다시 사람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을까, 나를 보며 사람들이 웃어줄까 두려웠다. 멜로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시청자들이 드라마에서 내가 연기하는 캐릭터에 공감하지 않고 '최진실의 과거'를 떠올릴까 걱정이 됐다. 이 드라마 덕분에 앞으로는 시트콤도 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이혼은 마침표가 아니라 시작이란 의미를 문희정 작가가 정말 잘 써주고 잘 그려줬다. 아줌마도 사랑할 수 있고 사랑해야 한다는 걸 보여줬다. 홍선희는 '40대 아줌마여, 섹시하게 살자'는 외침 같았다. 때로는 엄마이기 전에 여자이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런 마음을 홍선희가 보여준 게 아닐까. 여자는 70대가 되더라도 여자이기 때문에 아름답다는 장동철의 말이 항상 생각난다."[350]
  • 영화에 대해서[747] [748] [282]
    • "어릴 적부터 추리 소설을 좋아했고, 스릴러 영화를 굉장히 좋아하고 가장 많이 본다.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도 사이코적인 면은 내재돼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연기자들은 그런 면이 일반인보다 더 많은 것 같다. 많이 억누르면서 사는 것뿐이지."
    • "김기덕 감독 작품은 찾아가면서 본다. 《》도 참 좋았다. 영화가 독특해서 좋다. 김기덕 감독의 생각과 가치관이 영화에 투영된 독특함이 좋다."
  • 일일드라마에 대해서[399] [749]
    • "멋진 연기를 위해선 일일드라마를 해야 한다. 예뻐하는 후배들에겐 일일드라마를 하라고 충고한다. 모든 상황을 이길 수 있는 것은 노력이다. 세상에 노력을 이기는 것은 어떤 것도 없다. 지금 처음 시작하는 친구들은 쉬지 말고 노력했으면 한다. 미니시리즈가 100m 달리기라면 일일드라마는 마라톤이다. 일일드라마는 선배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연기를 배울 수 있는 최고의 터전이다. 연기의 초년병이라면 경력과 내공을 쌓은 뒤 자신에게 맞는 역할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선배는 배우, 코미디언, 가수를 구분해선 안 된다."
  • 비판에 대해서
    • "이 세상 어느 누가 나쁜 소리 듣는 것을 좋아하겠나. 연기자로서의 비판뿐이라면 받아들이겠는데……. 애초에는 '댓글을 3∼4개만 보다가 그냥 닫아야지'라고 하지만 결국엔 밤을 새면서 보게 된다. 결국 정신세계가 이상해진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이상해진다. 내 앞에서 잘해주는 사람이 인터넷에 글을 올렸을 것이라는 의심도 하게 되더라. 그러니 소심해지고. 그래서 지금은 기사만 보고 댓글은 안 본다. 그런데 문제는 굉장히 많은 분들이 댓글에 신경을 쓴다는 거다. 어느 신인 배우 얘기인데, 그가 어떤 드라마에 출연했는데, 연출가가 인터넷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에 대한 욕설이 엄청 올라와서. 연출가는 결국 그 배우를 불러서 '너 그거 봤냐?'라고 물었단다. 그 배우가 '전 그런 거 신경 안 써요'라고 하니까 연출가가 '우린 신경 쓰거든'이라고 말했단다. 그래서 그 배우는 집에 돌아가서 호의적인 댓글을 직접 올렸다고 한다."[747] [750] [80]
    • "김구라 씨의 독설을 보고 나도 거기에 말려들까 두려웠다. 동료 연예인들에게 뒤통수를 맞을지도 모르니 조심하라는 말을 꼭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김구라 씨가 대중의 입장에서 연예인들에 대한 비판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비판과 독설도 내적으로 쌓인 게 많아야 가능하고, 그런 솔직한 면이 오히려 나와 잘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맞춰 사는 것이 아닌, 몰매를 맞을지라도 자기의 소신을 밝히며 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김구라 씨의 스타일이 마음에 든다. 김구라 씨와 같이 한다고 해서 끌렸다. 김구라 씨의 언변을 누를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처음에는 불협화음을 내기도 했지만 점점 호흡이 맞아간다. 사실 김구라 씨가 무서웠다. 한 울타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돌을 던지는 걸 보고 놀랐다. 하지만 막말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남을 비판하려면 내공이 있어야 한다."[751] [590] [752]
  • 로맨틱 코미디에 대해서[751]
    • "정극보다 코미디가 훨씬 힘들다는 생각도 든다. 잘못하면 '오버'라는 비판을 받게 되니까. 몸이 아닌 상황으로 적절하게 웃겨야 할 것이다. 현장에서 리허설을 많이 한다. 그러다 보면 정준호 씨가 내게 '이렇게 하는 게 더 웃길 것 같은데'라고 조언을 해주고, 나는 그 조언에 많이 따라가고 있다. 편안하게, 정말 재미있는 순정 만화 한 권 본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 꿈에 대해서
    • "김혜자 선생님이나 고두심 선생님처럼 그냥 연기 잘하는 그런 배우가 내 꿈이다."[753] [754]
    • "내가 브라운관에 나오면, '최진실 너무 지겹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시도때도 없이 눈앞에서 보이던 배우가 어느 날 안 보였을 때 그 배우가 보고 싶어지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다."[755] [756]
  • 연예인에 대해서[753]
    • "연예인으로서 인터넷이 무섭고 세상 사람들의 시선이 너무 부담스러워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 모든 인생에는 일장일단이 있다. 그 대신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배우로서 누리는 혜택들이 있다. 난 정말 이 정도까지 온 사실에 늘 감사하며 산다."

가족[편집]

작품[편집]

저서[편집]

책 이름 출시일 페이지 출판사 국제 표준 도서 번호 비고
그래, 오늘 하루도 진실하게 살자 1998년 8월 1일 274쪽 책이있는마을 ISBN 89-88086-15-5 자전 에세이

시놉시스[편집]

최진실은 '사노라면'이라는 제목의 '드라마 시놉시스'를 남겼다. 최진실의 지인은 "최진실은 소속사 측과 함께 2005년부터 '사노라면'(가제)이라는 제목의 드라마를 기획해왔다. 등장인물들의 캐릭터에 관해 묘사한 부분만 A4 10장에 달하는 완결된 형태의 시놉시스가 있다. (만일 그에게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내년쯤 이를 좀 더 발전시켜 드라마를 만들어보자고 했다. 최진실은 연기 생활을 해오면서 평소 '누구나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는 얘기를 해왔다"라고 말했고, 최진실과 같은 소속사에 몸담고 있는 배우는 "최진실 씨와 시놉시스에 대해 수차례 대화를 나눴다. 어려운 상황에서 가정을 이끌어가는 여성이 주인공이다. 시놉시스의 주인공은 강하면서도 밝은 성격의 소유자이다. 최진실 씨의 생전 모습과 비슷한 면이 많다. 시놉시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수록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놉시스를 통해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하려고 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2008년 10월 22일, 최진실과 2008년 10월 2일에 마지막 통화를 한 사람이자 최진실의 친구인 의 김재우 기자는 자신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왜 자꾸 세상은 누나(최진실)의 아픔을 상술로 이어가려는지. 시놉시스는 머리를 맞대고 노래까지 읊조리며 만든 것인데. 누나는 더 이상 작품(시놉시스)에 임할 수 없어서 (시놉시스가 유출된 사실이) 더욱 화가 난다"라는 내용의 심경을 밝혔다.[757] [758] [759]

출연작품[편집]

TV 드라마[편집]

제목 방송사 연도 역할 비고
조선왕조 오백년 - 한중록 MBC 1989년 장미 역 사극, 단역
MBC 베스트셀러극장 - 시진읍 MBC 1989년 벙어리 역 단막극, TV 드라마 첫 주연작
잠들지 않는 나무 MBC 1989년 찬주 역 조연
조선왕조 오백년 - 파문 MBC 1989년 박선아 역 사극, 조연
제5열 MBC 1989년 대권후보자의 딸 역 추리 소설의 드라마화, 추리소설 작가 김성종 원작, 조연
당신의 축배 MBC 1989년 김범경 역 조연
서울 시나위 MBC 1989년 희수 역 로드 무비 스타일의 TV 드라마, 찬조출연[760]
각시방에 사랑 열렸네 MBC 1990년 오도희 역 설 특집극, 뮤지컬 드라마
추억여행 MBC 1990년 미리 역 추석 특집극
우리들의 천국 MBC 1990년 승미 역 대학생들의 이야기, 시추에이션 드라마, 1기 출연진
두 권의 일기 MBC 1990년 해리 역 2부작, 청소년 드라마
약속 MBC 1992년 정인 역 최고 시청률 41.5%
MBC 베스트극장 - 풍경 MBC 1992년 은실 역 단막극
질투 MBC 1992년 유하경 역 최고 시청률 56.1%
MBC 베스트극장 - 칡소클럽 MBC 1992년 단막극
매혹 MBC 1992년 지훈 역
폭풍의 계절 MBC 1993년 진희 역 66부작, 최고 시청률 52.1%
사랑의 향기 SBS 1994년 영진 역 52부작
아스팔트 사나이 SBS 1995년 오화련 역 만화가 허영만 원작, 최고 시청률 32.9%
째즈 SBS 1995년 채송화 역 동성애를 다룬 최초의 TV 드라마
아파트 MBC 1995년 차나리 역 최고 시청률 34.6%
별은 내 가슴에 MBC 1997년 이연이·소피아 역 최고 시청률 49.3%
그대 그리고 나 MBC 1997년 윤수경 역 58부작, 최고 시청률 66.9%[189]
추억 MBC 1998년 인영 역 최고 시청률 38.4%
장미와 콩나물 MBC 1999년 손미나 역 51부작, 최고 시청률 44.1%
그대를 알고부터 MBC 2002년 이옥화 역 48부작
장미의 전쟁 MBC 2004년 오미연 역
장밋빛 인생 KBS 2005년 맹순이 역 최고 시청률 47%
나쁜여자 착한여자 MBC 2007년 이세영 역 140부작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 MBC 2008년 홍선희 역

영화[편집]

제목 연도 역할 비고
남부군 1990년 박민자 역 작가 이태 원작
꼭지딴 1990년 혜지 역 액션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 1990년 미영 역
있잖아요 비밀이에요 2 1991년 다혜 역 하이틴 영화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 1991년 수잔 브링크 역
숲속의 방 1992년 소양 역 소설가 강석경 원작, 소설가 공지영 각색
미스터 맘마 1992년 영주 역
사랑하고 싶은 여자 & 결혼하고 싶은 여자 1993년 유라 역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1994년 강민주 역 소설가 양귀자 원작
마누라 죽이기 1994년 장소영 역
엄마에게 애인이 생겼어요! 1995년 은재 역
누가 나를 미치게 하는가 1995년 김주영 역
고스트 맘마 1996년 차인주 역
홀리데이 인 서울 1997년 전화 교환수 역 홍콩 영화 감독 왕가위 식 연출 영화
베이비 세일 1997년 지현 역
편지 1997년 정인 역
마요네즈 1999년 아정 역 소설가 전혜성 원작·각색
단적비연수 2000년 비 역 은행나무 침대 속편

광고[편집]

교양 및 예능[편집]

제목 방송사 연도 또는 날짜 역할 비고
유쾌한 스튜디오 MBC 1990년 12월 29일 게스트 퀴즈 버라이어티 쇼
인간시대 MBC 1991년 11월 18일 주인공 휴먼 다큐멘터리
여기 젊은이 MBC 1991년 4월 25일, 11월 21일 게스트 토크 쇼
0시의 데이트 MBC 1992년 3월 9일 진행자 라디오
일요일 일요일 밤에 MBC 1992년 1월 5일, 3월 8일, 8월 9일, 1993년 5월 9일 게스트 버라이어티 쇼
스타와 만나요 SBS 1992년 9월 28일 게스트 다큐멘터리
심야에의 초대 KBS 1993년 11월 28일 게스트 토크 쇼
즐거운 세상 MBC 1993년 3월 8일 게스트 버라이어티 쇼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MBC 1993년 5월 8일 게스트 버라이어티 쇼
이야기쇼 만남 MBC 1993년 5월 19일 게스트 버라이어티 쇼
김한길과 사람들 MBC 1993년 10월 30일 게스트 토크 쇼
다시 뛰는 작은 거인들 MBC 1993년 12월 4일 게스트 MBC 창사 32주년 특집
한국인의 얼굴 MBC 1994년 4월 4일 주인공 다큐멘터리
우정의 무대 MBC 1994년 5월 15일 게스트 버라이어티 쇼
체험 삶의 현장 KBS 1995년 6월 4일 게스트 리얼리티 프로그램
TV는 사랑을 싣고 KBS 1996년 2월 9일 게스트 토크 쇼
TV 데이트 KBS 1996년 10월 22일 게스트 토크 쇼
토요일 전원 출발 KBS 1997년 3월 15일, 1998년 1월 13일 게스트 버라이어티 쇼
슈퍼선데이 KBS 1997년 5월 24일 게스트 버라이어티 쇼
김국진의 스타 다큐 MBC 1997년 10월 13일 주인공 다큐멘터리
행복 채널 KBS 1998년 12월 1일 게스트 토크 쇼
슈퍼TV 일요일은 즐거워 KBS 1999년 6월 19일 게스트 버라이어티 쇼
백지연의 백야 MBC 1999년 5월 10일 게스트 토크 쇼
서세원 쇼 KBS 2002년 1월 29일 게스트 토크 쇼
파워 인터뷰 KBS 2005년 11월 12일 게스트 토크 쇼
기분 좋은 날 MBC 2006년 7월 10일 게스트 토크 쇼
일요일 일요일 밤에 - 몰래카메라[761] MBC 2006년 12월 17일 게스트 버라이어티 쇼
지피지기 MBC 2007년 7월 5일, 7월 12일 게스트 토크 쇼
좋은 아침 SBS 2007년 5월 24일, 12월 12일, 12월 13일 게스트 토크 쇼
황금어장 - 무릎팍도사 MBC 2007년 8월 22일, 8월 29일 게스트 토크 쇼
최진실의 진실과 구라 OBS 2008년 진행자 토크 쇼
현장 토크쇼 택시 tvN 2008년 5월 29일, 6월 5일 게스트 토크 쇼
윤피디의 더 인터뷰 OBS 2008년 7월 13일 게스트 토크 쇼
시사매거진 2580 MBC 2008년 7월 13일 게스트 시사 프로그램
행복주식회사 MBC 2008년 9월 4일 찬조출연 버라이어티 쇼

기타[편집]

  • 낭송
    • 앨범 《작지만 소중한 사랑 이야기》 - <사랑 만들기>(1990년)

상훈[편집]

관련 기사[편집]

  1. 임인숙. (독점 인터뷰 1) 광고주에 30억 원대 손해배상소송 당한 배우 최진실. 여성신문. 2004년 12월 3일(805호).
    임현선. (독점 인터뷰 2) 광고주에 30억 원대 손해배상소송 당한 배우 최진실. 여성신문. 2004년 12월 3일(805호).
    박이은경. (최진실 사건 보도 이후) 최진실 지원 '드림팀' 왜 떴나. 여성신문. 2004년 12월 24일(808호).
    임현선. (포커스 인터뷰) '최진실 사건'과 '밀양지역 고교생의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무료 변론 맡은 강지원 변호사. 여성신문. 2004년 12월 24일(808호).
    김보협. '최진실에 덮어씌우기' 이상하다. 한겨레21. 2004년 12월 10일.
    이은경. ‘여성신문 20년, 여성인권 20년’. 여성신문. 2008년 10월 10일.
  2. 홍성태. 올 6월 항쟁은 '생활정치'로 기록하라. 한겨레21. 2008년 6월 13일(714호).
    차우진. 마이크 든 연예인들, 단단해지다. 한겨레21. 2008년 12월 11일(739호).
  3. 차형석. 그의 죽음은 우리 세대의 패배. 시사IN. 2008년 10월 7일(56호).
    오한숙희. 여성 연예인에게는 여성학이 필요하다. 시사IN. 2008년 10월 7일(56호).
  4. 허광준. 최진실의 죽음으로 본색 드러낸 파파라치 언론. 시사IN. 2008년 10월 14일(57호).
  5. 길다영. 유대인의 새해에 팔레스타인은 눈물. 시사IN. 2008년 10월 14일(57호).
  6. 최내현. 바보야, 문제는 포털 사이트의 익명성이야. 시사IN. 2008년 10월 14일(57호).
    범상규. 황색저널에 열광하는 심리. 네이버캐스트. 2014년 1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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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정덕현. '최고의 사랑' 받거나 '비호감' 되거나. 시사저널. 2011년 6월 8일(1129호).
  9. 김진령. 한류 실어나르는 '디지털 실크로드' 뻗어간다. 시사저널. 2011년 6월 22일(1131호).
  10. 변진경. 정운찬, 이경숙, 이상득 등의 영어 실력은?. 시사IN. 2011년 9월 30일(210호).
  11. 이정민. 커트 단발이 가장 잘 어울렸던 그 사람, 최진실. 오마이스타. 2012년 1월 17일.
  12. 배국남. 누가 손현주 몸값을 이리 만들었나. 엔터미디어. 2012년 7월 29일.
  13. 이은주. 정준호 왈, "훈남 역할, 연구 좀 해봤죠". 서울신문. 2008년 3월 31일.
    이은주. 열정이 빛나던 최진실처럼 품격있는 배우가 그립다. 서울신문. 2012년 7월 30일.
  14. 이진호. (위기의 연예계1) 스타 울리는 연예가 찌라시, 사채업자도 함께 만든다. enews24. 2012년 10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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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조성식. '배병수 살해 사건' 추적했던 '독종 기자'의 단상(斷想). 신동아. 2008년 11월 25일.
    표창원. 최진실이 유명해질수록 그의 복수심은 커졌다. 한겨레신문. 2013년 5월 31일 등록. 2013년 6월 1일 수정.
    표창원. 나는 알고 있다, 장자연 리스트의 모든 것을. 한겨레신문. 2013년 4월 12일 등록. 2013년 5월 23일 수정.

관련 서적[편집]

관련 영상[편집]

  • OBS 《별은 내 가슴에》(2008년 10월 7일)
  • TvN 《최진실 추모 스페셜 》(2008년 10월 9일)
  • KBS연예가 중계》(2008년 10월 11일)
  • MBC 《MBC 스페셜-시대의 연인 최진실》(2008년 10월 17일)
  • MBC 《휴먼다큐 사랑》 - 《진실이 엄마》(2011년 5월 27일)
  • MBC Life 《히스토리 후》 - 《최진실·최수종의 질투》(2011년 5월 31일)
  • MBC 《다큐 타임》 - 《이명세 감독의 M》(2011년 7월 28일)
  • MBC Life 《히스토리 후》 - 《대한민국이 사랑한 그녀! 최진실》(2011년 9월 27일)

함께 보기[편집]

각주[편집]

  1. 윤고은. '국민요정'에서 '줌마렐라'까지 최진실의 파워. 연합뉴스. 2008년 5월 13일.
  2. 2007년 7월 12일, MBC 토크 쇼지피지기》에 출연한 방송인 이지희는 최진실의 CF 출연 총 횟수가 140여 편이라고 밝혔다.
  3. 정유미. 최진실, 웃음과 감동을 준 그녀의 영화 18편. 맥스뉴스. 2008년 10월 2일.
  4. 오계옥. 안녕, 배우 최진실. 씨네21. 2008년 10월 31일.
  5. <시대의 연인, 최진실> 내셔널 지오그래픽채널. 10 아시아. 2010년 10월 1일.
  6. 배국남. 최진실, 오늘 정말 그립군요!. 배국남닷컴. 2013년 10월 9일.
  7. 남녀평등 헌장대로만 된다면야. 연합뉴스. 2001년 7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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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이현우. 토크쇼 첫진행 최진실 “동성애 관련 주제 다뤄보고 싶다”. 뉴스엔. 2008년 3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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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8. 정춘숙. '가정폭력'도 '광고주' 위해 참으라는 대법원. 오마이뉴스. 2009년 6월 23일.
  89. 이하나. 욕설 댓글에 표현의 자유라니. 여성신문. 2013년 3월 27일.
  90. 김진숙. 왜 메갈리아가 공공의 적이 되어야 하나!. 일다. 2016년 3월 31일.
  91. 이세아. 강호순·유영철·강남역 살인사건 공통점...언론의 편협한 시각. 여성신문. 2016년 5월 25일.
  92. 서어리. "강남역 살인, '화장실법' 아니라 차별금지법 필요". 프레시안. 2016년 5월 27일.
  93. 강형철. (미디어 전망대)남성 편향적 방송계 리더십. 한겨레. 2016년 6월 7일.
  94. 남지은. 엄마가 골라준 남자한테 시집가라?…21세기에 19세기 발상하는 예능. 한겨레. 기사입력 2016년 6월 7일. 최종수정 2016년 6월 8일.
  95. 박현민. 박해진, '열애설 루머 보도' 기자 고소…"수사 5개월째". OSEN. 2016년 7월 13일.
  96. 김광호.경기 국제보트쇼ㆍ세계요트대회 개막. 연합뉴스. 2008년 6월 11일.
  97. 칼귀란 칼처럼 굴곡이 없이 삐죽한 귀를 말한다.
  98. 추억이 어린 곳, 삼송리
  99. [1]
  100. 어려웠던 시절
  101. [2]
  102. 6촌 오누이인 최재성·최진실. 동아일보. 1994년 2월 5일.
  103. 김민주. 故최진실 알려지지 않은 친아버지 최국현씨 단독 인터뷰. 레이디 경향. 2008년 11월호.
  104. 《엄마가,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정옥숙, 웅진윙스, 2011년) 참고.
  105. 김연지. 故최진실 남매 부친 "내가 애들 죽을 이름을 지어줬나 봐". 중앙일보. 2010년 4월 29일.
  106. 존 호건. 한겨레. 2003년 10월 17일.
  107. 황호택. '장밋빛 인생'으로 제2의 전성기 맞은 최진실. 신동아. 2005년 11월호(554호 P270~287).
  108. 故최진실 어머니, "연기밖에 모르던 딸, 그 모습이 너무 좋았다". OBS. 2014년 10월 1일.
  109. 김명은. 최진실 "공부 잘한다고 성공하는 것 아니다". 조이뉴스24. 2008년 3월 19일.
  110. 수제비는 양반층의 음식으로 시작되었는데, 6·25 이후 다량의 밀가루가 구호물자로 유입되면서 서민들의 중요한 주식이 되었다. 1960년대 중반에 대한민국에서는 쌀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혼·분식 장려 정책을 실시하였다.
  111. 고종석. 최진실-21세기의 제망매(祭亡妹). 한국일보. 2009년 1월 19일.
  112. 오광수. 최진실, 연예인 최고 소득 2연패. 경향신문. 1994년 10월 16일.
  113. 오광수. 저축의 날 대통령 표창 받은 崔(최)진실, 어머니 포장마차서 「근검」 배워. 경향신문. 1992년 10월 28일.
  114. "어려웠던 시절 생각하며 절약했어요" 배우 최진실·가수 태진아 저축상 받아. 한겨레신문. 1992년 10월 28일.
  115. 기선민. 최진실 충격의 죽음 … 곡절 얼룩진 짧은 일생. 중앙일보. 2008년 10월 3일.
  116. 이유나. 최·진·실…별은 내 가슴 속에 지다. 동아일보. 2008년 10월 6일.
  117. 윤석민. 최진실과 페일린. 머니투데이. 기사입력 2008년 10월 10일. 최종수정 2008년 10월 17일.
  118. 모신정. 최진영 "최진실 데뷔는 한겨울 메인 모델 뒤에서 다이빙하는 CF". 스포츠한국. 2008년 7월 24일.
  119. 스타를 만든 힘의 발견. 레이디경향. 2012년 4월 26일.
  120. 박경삼. 내 CF 속에 살아있던 신데렐라, 최진실. 인터뷰365. 2008년 11월 18일.
  121. 김우성. 최초로 공개된 최진실의 연예계 데뷔 사진. 인터뷰365. 2008년 11월 20일.
  122. 이 광고는 더빙이라는 작업을 통해 완성되었다. 이 광고 이후에도 권희덕은 여러 CF에서 최진실의 목소리를 담당했다.
  123. 김수진. 故 최진실, 데뷔부터 사망까지…온 국민 사랑받은 톱스타. 스타뉴스. 2008년 10월 2일.
  124. 김영현. 故 최진실, 20년 연예계 정상 지킨 '톱스타'. 스포츠한국. 2008년 10월 2일.
  125.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
  126. "남편 사랑은 가끔 확인해 봐야 해요"
  127. 정지영. (한경 소비자 대상-제2부)삼성전자 '블루윈' .. 초절전. 한국경제. 2002년 6월 24일.
  128. 이병훈. 스타를 찾아라 연출가 이병훈 편-최진실. MBC 가이드. 1999년 5월호.
  129. 한승주. 한국종합예술아카데미 ‘학점은행제’ 수료하면 대졸학력 인정. 국민일보. 2002년 2월 7일.
  130. 연기 활동 시작
  131. 박성수. 내용·표현 "무리", 共感(공감) 못살려. 경향신문. 1989년 4월 10일.
  132. 남달성. 신인 배우 崔眞實(최진실) 영화「南部軍(남부군)」주연. 동아일보. 1990년 3월 17일.
  133. 영화 촬영장에서 생긴 일
  134. 설날 특집 뮤지컬 드라마. MBC 가이드. 1990년 1월호.
  135. 액션 영화 <꼭지딴>에 출연
  136. 김도훈. 영화 속 여전사 캐릭터의 역사. 네이버 영화 매거진. 2011년 8월 30일.
  137. 나의 사랑 나의 신부, LA 개봉. 동아일보. 1991년 3월 29일.
  138. 故최진실 어머니, "딸이 출연했던 '나의 사랑 나의 신부', 리메이크 소식 기쁘다". OBS. 2014년 10월 1일.
  139. 노광우. ‘나의 사랑, 나의 신부’ 혹은 고전 리메이크에 대한 단상. PD저널. 2014년 10월 21일.
  140. 강서정. '택시' 조민기 아내 "故최진실, 방송계 최초 메이크업아티스트 함께한 배우". OSEN. 2015년 9월 22일.
  141. 전원. '택시' 김선진 "故최진실과 일해, 방송국 함께 들어간 최초 사례". 마이데일리. 2015년 9월 22일.
  142. 김성훈. 잘 가요, 피터팬. 씨네21. 2010년 4월 5일.
  143. 장기영. 입양. 강원일보. 2010년 5월 11일.
  144. 펀딩21과 함께하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입양인들의 이야기. 네이버 영화 매거진. 2014년 4월 10일.
  145. 정길화. 최진실, 우리 사회에 경종 울리다. PD저널. 2008년 10월 5일.
  146. M-라디오 '0시의 데이트' 3월 9일부터 최진실 진행. 동아일보. 1992년 2월 29일.
  147. 김인현. 인터뷰 '우리들의 천국'의 새스타 최진실 "연기력없는 인기는 신기루 불과". 한겨레. 1990년 12월 25일.
  148. 유하. <숲속의 방> 원작의 흡인력 못살렸다. 동아일보. 1992년 1월 25일.
  149. 정재근. '하이힐부터 하이킥까지' 미녀 스타의 시구 역사. 스포츠조선. 2011년 4월 11일.
  150. CF모델 선호도 1위 유인촌(남)-최진실(여). 경향신문. 1992년 10월 16일.
  151. 우종원. 盧泰愚(노태우)대통령이 저축의 날인 27일 낮 청와대에.... 경향신문. 1992년 10월 28일.
  152. 이경규·최진실 올해의 스타상. 경향신문. 1992년 12월 7일.
  153. '변진섭과 결혼 계획' 최진실 첫 공개 발언. 경향신문. 1993년 11월 30일.
  154. 최진실, 변진섭과 결혼계획 "있다" 밝혀. 연합뉴스. 1993년 11월 29일.
  155. 노정연. 함께 웃고 따로 우는 스타 공개 커플의 명과 암. 레이디경향. 2010년 2월호.
  156. 오광수. "이젠 내면연기 맛볼래요". 경향신문. 1994년 1월 14일.
  157. 출연료 영화 제작 투자 최진실, 1억 5천만원. 경향신문. 1993년 9월 27일.
  158. 최진실, 최고 출연료 SBS行. 연합뉴스. 1994년 2월 3일.
  159. 김순덕. 스타 몸값 SBS 스카우트전 수억원대. 동아일보. 1994년 2월 24일.
  160. 이무경. SBS 톱스타 영입 대공세. 경향신문. 1996년 6월 22일.
  161. 오광수. SBS「사랑의 향기」영진役(역) 최진실, "요즘 성숙해져 보인대요". 경향신문. 1994년 6월 23일.
  162. 주말극「사랑의 향기」 SBS 오늘 첫 방영. 경향신문. 1994년 4월 9일.
  163. 김순덕. SBS 주말극「사랑의 향기」 「간판 프로」 자리잡아. 동아일보. 1994년 5월 14일.
  164. 「스타와 이 밤을」. 동아일보. 1994년 9월 5일.
  165. 이병헌과의 '결혼설' 진상 '절친한 동료이자 동생일 뿐', 진섭 오빠와의 재결합도 낭설. 경향신문. 1996년 12월 16일.
  166. 이준환. 故 최진실, 이병헌 칭찬 과거 영상 화제. 한국일보. 2012년 9월 18일.
  167. 최병준. 연예인 공익 광고 출연붐. 경향신문. 1994년 6월 11일.
  168. 사람 사람 사람들. 동아일보. 1994년 8월 9일.
  169. 김녕만. 김영삼 대통령이 11일 청와대에서. 동아일보. 1994년 8월 12일.
  170. 박대기. 20년 전 서울의 모습, 그때 무엇을 하셨나요?. KBS. 기사입력 2014년 11월 29일. 기사수정 2014년 11월 30일.
  171. 박대기. 최진실의 타임캡슐 “저를 꼭 기억해주세요”. KBS. 2014년 12월 2일.
  172. 양상우·권태호·이종규. 배병수 씨 살해유기. 한겨레신문. 1994년 12월 24일.
  173. 김도형·권태호·김종태·황석원. 배병수 피살 사건 이모저모. 한겨레신문. 1994년 12월 25일.
  174. 최병준. 전 매니저 사고충격 딛고 영화촬영 전념. 경향신문. 1995년 1월 13일.
  175. 이근영. 제1회 한국모델 페스티벌 대상 차지한 최진실 CF부문 패션부문 박영선. 한겨레. 1995년 1월 25일.
  176. 이석원. 최진실을 모독하지 말라, 악플 탓에 죽진 않았다. 광주in. 2008년 10월 6일.
  177. 윤고은. '체험 삶의 현장' 최진실부터 김태희까지. 연합뉴스. 2009년 12월 14일.
  178. 이무경. 드라마 '신데렐라 콤플렉스' 중증. 경향신문. 1996년 2월 12일.
  179. 김갑식. 결혼 파기-윤화-출연 번복 악재 속출 최진실 시드는가. 동아일보. 1995년 10월 11일.
  180. OST는 오리지널(original) 사운드트랙(soundtrack)의 약자이다.
  181. 조재원. 90년대 양대스타, 변진섭+최진실 ‘∼스캔들’서 윈윈 관계. 세계일보. 2008년 3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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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3. 길덕."TV는 사랑을 싣고" 4백회 맞아 . 한국경제. 2002년 5월 8일.
  184. 신한국당 崔眞實 정치광고 모델선정. 연합뉴스. 1996년 3월 4일.
  185. 고명섭. 신한국 광고 최진실 씨 기용. 한겨레신문. 1996년 3월 5일.
  186. 서울방송, 스타 TV에 드라마 공급. 한겨레신문. 1996년 10월 16일.
  187. "야망을 성취한 정치인 1위는 金대통령". 연합뉴스. 1997년 1월 24일.
  188. 신연수. SBS-MBC 최진실 줄다리기 '상황 끝'. 동아일보. 1997년 3월 18일.
  189. MBC 《그대 그리고 나》 회당 시청률. MBC.
  190. 한국통신은 한국전기통신공사의 약칭이다. 2001년 12월에 한국통신은 KT로 CI를 변경하였다. 대한민국은 1997년 12월 3일IMF 구제금융 요청 사건을 겪었고, 이러한 외환 위기 속에서 1998년 7월에 '공기업 민영화 기본 방침'이 발표되었다. 2000년 12월 4일김대중 대통령은 "국제 통화 기금의 모든 차관을 상환하였고, 우리나라가 IMF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라고 공식 발표하였다. 2002년 5월에 KT의 정부 지분은 전량 매각되어 KT는 완전히 민영화되었다.
  191. "최진실 공중전화카드 나온다". 연합뉴스. 1998년 3월 25일.
  192. 싱글맘은 비혼(非婚) 상태에 있는 어머니를 뜻한다. 비혼은 미혼(未婚)이라는 어휘가 '혼인은 원래 해야 하는 것이나 그것을 아직 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경향이 커서 '혼인 상태가 아님'이라는 보다 주체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어휘이다.
  193. 건국 이후 최고 연예인 조용필-김국진-최진실 MBC-갤럽 여론조사. 동아일보. 1998년 8월 8일.
  194. 최진실-조성민 "우리 의남매 맺어요" KBS2'행복채널'서 결연식 . 동아일보. 1998년 12월 1일.
  195. 배현정. "예쁜 것도 죄가 되나요". 주간한국. 2003년 6월 25일.
  196. 유숙. 종종 터진 연예 스타 납치사건, 최진실-진영 이지현 도지원 이희진 아나운서 A. 뉴스엔. 2006년 9월 14일.
  197. 김국화. 조영구, 납치당할뻔한 최진실 덕에 연예전문리포터로 떴다. 뉴스엔. 2007년 7월 6일.
  198. 윤여수. 최진실, 98년 괴한에 납치될 뻔. 동아일보. 2010년 12월 30일.
  199. 최진실 국내 첫 일본 CF 진출. 경향신문. 1999년 2월 1일.
  200. 이언혁. '드림팀2' MC 이창명 "출연 멤버 중 故 최진실 가장 기억나". 뉴스엔. 2010년 1월 24일.
  201. 김희경. 윤인호감독 '마요네즈' 印 케라라영화제 그랑프리. 동아일보. 2000년 4월 10일.
  202. 이승록. '별은 내가슴에', 리메이크 원하는 드라마 1위. 마이데일리. 2012년 4월 25일.
  203. 문수연. 1세대 한류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 케이블 ETN서 10년 만에 방송 편성. 한국경제. 2015년 3월 20일.
  204. 이수지. '나가수2' 박완규 영원, 故최진실-최진영 남매 떠올렸다. 한국일보. 2012년 11월 25일.
  205. 홍석민. 2% 부족, 시장 90% 석권‥성공 비결은. 동아일보. 2000년 7월 11일.
  206. 최진실은 조성민의 생명의 은인이었다. 조성민은 최진실과의 결혼이 장애에 부딪치자 일본에서 자살 시도를 했었기 때문이다. 이후 조성민은 최진실과의 이혼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도 여러 가지 행위를 보여주었다.
  207. 김대오. 어떤 '최진실 담당기자'의 비애. 오마이뉴스. 2013년 7월 18일.
  208. (대찬인생 85회 영원한 국민배우 최진실 6주기 특집)최진실의 마지막 스캔들. TV조선. 2014년 9월 30일.
  209. (노트북 단상)풍운아 조성민과 짠순이 최진실. 부산일보사. 2005년 8월 17일.
  210. 유진모. 팬과 우상… 의남매… 이젠 연인으로. 주간동아. 2000년 6월 15일(285호 P10~11).
  211. 김재범. 최진실-조성민 12월 5일 결혼한다.. 동아일보. 2000년 7월 19일.
  212. ‘연상녀-연하남 커플’ 역대 최다…동갑커플과 비슷. 정책브리핑. 2014년 4월 22일.
  213. 이득수. "결혼 풍속도 '천의 얼굴'로 변하다"-연상녀 연하남 커플·재혼·만혼 급증, 주례 실종. 뉴시스. 2014년 2월 3일.
  214. 대한민국은 IMF 구제금융 요청 상황 속에서 사이버 코리아 21을 시행하였는데, 사이버 코리아 21은 4년간 민간 자본 17조 3,000억 원을 포함하여 모두 28조 원을 투입하는 정부의 정보인프라 기본 계획으로 1999년 3월에 발표되었다. 사이버 코리아 21은 정보화 구축으로 창조적 지식기반국가를 건설하고, 국가경쟁력과 국민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선진국 수준의 투자를 함으로써 2002년에는 세계 10위권의 지식정보화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이에 의거하여 2002년은 1999년보다 100배 빠른 인터넷을 구현하여 초고속정보통신망을 효과적으로 구축하고자 하였고 세계에서 컴퓨터를 가장 잘 쓰는 나라로 만들기 위해 2001년까지 인터넷 사용자를 1천만 명 이상으로 확대하고자 하였다.
  215. 대한민국에서는 김대중 정부1998년 6월에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했고, 4년 만인 2002년에 대한민국은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가 1000만 명을 넘어섰다.
  216. 김희경. 최진실-조상민 결혼…한일 연예인등 1300여 명 참석. 동아일보. 2000년 12월 5일.
  217. 톱스타 커플 조성민.최진실씨 결혼. 매일경제. 2000년 12월 6일.
  218. 김미선·최용기. 대한해협 넘나든 사랑 끝에 부부로 탄생한 커플 최진실·조성민. 여성동아. 2001년 1월 3일.
  219. 홍진석. 필라민트 "다찌마와 리 성공이유는" . 머니투데이. 2001년 2월 21일.
  220. 송태형. 스타들의 생생한 움직임 그대로 온라인에.... 한국경제. 2001년 3월 7일.
  221. 김겨울. 故 최진실, 그녀에게 보내는 마지막 지인들의 메시지. 머니투데이. 2008년 10월 17일.
  222. 봉준영. 메이크업 아티스트 조성아, 故 최진실과 추억담 털어놔. 마이데일리. 2009년 6월 26일.
  223. 진향희. '1000억원의 여인' 조성아, 5년간 2300억대 대박 비결은?. 매일경제. 2011년 7월 21일.
  224. 정경문. 최진실 8억 원 해프닝. 한국일보. 2001년 4월 17일.
  225. 신익수. 분유광고 모델료 '시끌'. 매일경제. 2001년 4월 23일.
  226. 김명희. (아줌마들의 힘) '세상 향한 질타' 온라인 게시판 점령. 한국일보. 2001년 5월 13일.
  227. 김기철. (2001 한국인 이렇게 산다) '사이버 파워' 현실 변화시킨다. 한국일보. 2001년 6월 10일.
  228. 정혜승. CF 모델료 "심하다". 문화일보. 2003년 1월 16일.
  229. 최현정. 누리꾼들, "수십 억 원 화장품 광고 모델료 너무해!". 동아일보. 2006년 8월 29일.
  230. 김진희. ‘최진실 8억 원’과 ‘김태희 50억 원설’의 차이, 엄마와 여자의 차이?. 국민일보. 2006년 9월 5일.
  231. 박수현. 최진실 출연 '서세원쇼' 5위로 껑충 . 파이낸셜뉴스. 2002년 2월 4일.
  232. 문향란. 다시 만난 김혜자 최진실. 한국일보. 2002년 4월 15일.
  233. 한승주. 만인의 연인 최진실이 돌아왔다…새 주말연속극 ‘그대를 알고부터’. 국민일보. 2002년 4월 18일.
  234. 정아연. `조선족` 호칭부터 바꾸자. 문화일보. 2003년 1월 17일.
  235. 이성희. 톱스타들 패션사업 잇달아 진출. 한국일보. 2002년 6월 6일.
  236. ‘최진실 사건’ 계기로 본 사이버 명예훼손 앞뒤. 일요신문. 2002년 6월 16일(526호).
  237. Star Vally. 일요신문. 2002년 6월 23일(제527호).
  238. 최진실 명예훼손 고소사건 2R. 일요신문. 2002년 6월 30일(제528호).
  239. 이희용. <진단>급증하는 인터넷 소문, 묘책은 없는가. 연합뉴스. 2002년 7월 10일.
  240. 정재욱. 사이버테러에 시달리는 스타들 “e-무서운 세상”. 경향신문. 2003년 8월 12일.
  241. 최성진. 배병수 살해범 전용철 옥중 인터뷰. 일요신문. 2002년 11월 24일.
  242. 전 톱스타 매니저 배병수 살해범 전용철 옥중 토로 ‘8년 전 사건의 진실’. 여성동아. 2002년 12월호.
  243. 조성민 인터뷰 “설마 뒷조사까지 할 줄이야”. 일요신문. 2002년 12월 29일.
  244. 이영미. 조성민 아버지 조주형씨 인터뷰. 일요신문. 2002년 12월 29일.
  245. 유재순. (최진실ㆍ조성민 파경위기)유재순의 특별 리포트 일본 교민 사회 소문과 진실. 일요신문. 2003년 1월 5일.
  246. ‘이경실 사건’으로 재조명 조성민 부친 조주형씨 단독인터뷰. 일요신문. 2003년 2월 23일(562호).
  247. 이영미. 조성민 아버지 조주형 인터뷰. 일요신문. 2003년 3월 16일.
  248. 인터뷰 밖 이야기 “가끔 TV밖에서 연기하는 느낌”. 일요신문. 2003년 3월 16일.
  249. 김범석. ‘10년 지근거리’ 기자가 털어놓은 최진실 비사(秘事). 신동아. 2008년 11월 25일.
  250. 김범석. 매니저 배병수 살해 전용철 “진실이 누나 죽음에 눈물 참을 수 없었다”. 중앙일보. 2009년 10월 6일.
  251. 표창원. 최진실이 유명해질수록 그의 복수심은 커졌다. 한겨레신문. 2013년 5월 31일 등록. 2013년 6월 1일 수정.
  252. 노이즈 마케팅
  253. 황선주. 조성민 유감(遺憾). 오마이뉴스. 최종업데이트 2002년 12월 27일.
  254. 이승형. 최진실·조성민 부부 파경위기. 문화일보. 2002년 12월 20일.
  255. 결별 선언한 최진실·조성민 커플 상반된 입장 쌍방 인터뷰. 여성동아. 2003년 1월 1일(469호 P676~679).
  256. 신민섭. 최진실-조성민 커플 파경 임박(일요시사 2003년 1월 7일 364호). 국립중앙도서관.
  257. 백미정. 최진실 '남편 고소'…이혼합의서 초안 공개에 분노. 굿데이. 2003년 10월 25일.
  258. 이혼의 방식에는 합의이혼과 소송이혼의 두 가지가 있다. 최진실이 조성민에게 이혼할 의사가 없다고 말한 것은 조성민이 자신을 대상으로 소송이혼절차를 밟을 길을 열어주는 행동이었다.
  259. 최진실이 이혼할 의사가 없다고 공개적으로 말한 것은 자신이 유책배우자라고 공개적으로 지칭된 상황에서 자신이 이혼소송을 당하는지 여부를 보고 자신을 비난할지 여부를 결정하라는 가이드라인을 언론인과 대중에게 제시하는 행동이었다.
  260. 재판상 이혼의 개념
  261. 재판상 이혼의 사유
  262.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
  263. 2015년 9월 현재, 대한민국 대법원은 이혼이라는 법률행위에 대해 '파탄주의'가 아니라 '유책주의'를 견지했다. 이혼유책주의는 이혼파탄주의보다 피해를 입은 쪽에게 카드 하나가 더 주어지는 제도로서 혼인자는 자신의 배우자가 유책배우자일 때에만 이혼청구권을 가질 수 있다. 자신이 유책배우자여도 자신의 배우자가 유책배우자이면 이혼청구권을 갖는 것이다. 가해자 유책배우자는 이혼을 원하는 자로 봐도 무방한데 가해자가 피해자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할 수는 없는 것이고 자신의 배우자도 유책배우자여야 이혼청구권을 갖는다. 최진실에게 이혼유책주의는 자신이 유책배우자가 아님을 입증하는 준거 역할을 했다.
  264. 김수완. 이혼 재판, '유책주의'에서 '파탄주의'로 변화하나. 뉴스1. 2015년 3월 1일.
  265. 이하나. “간통은 젠더적 현상… 위자료에도 젠더 관점을”. 여성신문. 2015년 4월 29일.
  266. 이범준. 이미 파탄난 부부관계, 잘잘못만 따질 것인가. 주간경향. 2015년 6월 3일.
  267. 홍세미. 이혼청구, 유책주의 50년 깨고 파탄주의 도입될까. 법률신문. 2015년 6월 29일.
  268. 송화선. 50년 유책주의 판결의 역사. 주간동아. 2015년 7월 13일.
  269. 양성희. '유책주의 vs 파탄주의' 반세기 논쟁 일단락. 머니투데이. 2015년 9월 15일.
  270. 이신영. 대법 "유책 배우자 이혼 허용 안돼"..7대6 판례 유지. 연합뉴스. 2015년 9월 15일.
  271. 최진실 병원 한층 전세냈다?. 일요신문. 2003년 2월 23일.
  272. 신웅진. 최진실씨 지난 1일 둘째 출산. YTN. 2003년 3월 5일.
  273. 양성희. 최진실씨 둘째 딸 출산 남편 조성민씨에겐 안알려. 문화일보. 2003년 3월 5일.
  274. 이승재. 최진실씨 ‘아빠 몰래’ 둘째 출산. 동아일보. 2003년 3월 5일.
  275. 최진실 시부모 사는 집 가처분 신청에 비밀 출산까지. 일요신문. 2003년 3월 6일.
  276. 수렁에 빠진 조성민 비상구가 없다. 일요신문. 2003년 3월 16일.
  277. 최진실 방송복귀는. 일요신문. 2003년 3월 2일.
  278. 노현. 최진실 내년 3월 연예계 복귀. 매일경제. 2003년 12월 16일.
  279. 양성희. 최진실 "내년 3월 컴백", "아직 이혼 생각 없어". 문화일보. 2003년 12월 16일.
  280. 이미연. 아픔 딛고 원숙해진 최진실, '그래도 얻은 게 많아요'. 스포츠서울. 2004년 6월 20일.
  281. 최진실, 두 아이와 함께 떠난 괌 리조트 여행(주부생활 2004년 8월호). 국립중앙도서관.
  282. 이희정. 억척스런 아줌마 역으로 컴백하는 최진실. 한국일보. 2004년 3월 3일.
  283. <인터뷰> `장미의 전쟁' 최진실, 최수종. 한겨레신문.
  284. 박효실. MTV '장미의 전쟁' OST 인기 폭발. 스포츠서울. 2004년 5월 20일.
  285. 김태근. '백만송이 장미' 시청률 1위 '유종의미'. 스포츠조선. 2004년 6월 8일.
  286. (최진실ㆍ조성민 파경위기) 언제 어떻게 시작됐나. 일요신문. 2002년 12월 29일.
  287. 파경위기 최진실 CF 중단 위약금 어떻게 되나. 일요신문. 2003년 3월 2일.
  288. 최진실-조성민 어떻게 돼가나. 일요신문. 2003년 12월 14일.
  289. (입체추적)최진실-조성민 한밤의 폭행사건 미스터리. 일요신문. 2004년 8월 15일.
  290. 최진실측 이종무변호사 인터뷰. 일요신문. 2004년 8월 15일.
  291. 조성민 부친 조주형씨 인터뷰. 일요신문. 2004년 8월 15일.
  292. 최진실 CF 어떻게 되나. 일요신문. 2004년 8월 15일.
  293. 조성민 줄소송 어떻게 돼가나. 일요신문. 2004년 8월 15일.
  294. 최진실·조성민 전격 협의 이혼. 헤럴드경제. 2004년 9월 2일.
  295. 이인표. 최진실·조성민부부 이혼. 문화일보. 2004년 9월 3일.
  296. '끝내 남남'… 조성민 '친권포기' 최진실과 합의. 국민일보. 2004년 9월 2일.
  297. 전지성. "법정서 맞대면 싫다" 이혼대리 시대. 동아일보. 2004년 10월 15일.
  298. 이혼의 방식에는 내용상 합의 이혼(협의 이혼, 조정 이혼)과 소송 이혼(재판에 의한 이혼)의 두 가지가 있다.
  299. 김재우. 《최진실이 자서전 준비하며 틈틈이 직접 쓴 '힘겨웠던 지난 6년 동안의 일기', 마지막 유언 중 '두 아이'에 관한 미공개 이야기》. . 2008년 12월호(223호 P291~301).
  300. 주진우. 전쟁 같은 삶 살다 간 ‘시대의 아이콘’. 시사IN. 2008년 10월 7일(56호).
  301. 최진실의 자녀 최환희와 최준희는 사적·공적으로 최진실의 이혼과 관련하여 주요 이해관계자들 중 한 축이었다. 2002년 대한민국 식으로 최환희는 두 살, 최준희는 태아였다. 친권자 최진실은 발달단계상 의사표현의 한계 상황에 놓여있던 최환희와 최준희가 자신의 이혼을 찬성하는 경우와 반대하는 경우 둘 다를 상정(想定)하면서 판을 정리해 나갔다.
  302. 최진실이 유책배우자인지 아닌지를 규명하는 일은 최진실의 자녀가 최진실과 애착 관계를 형성하는 일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안이었다. 즉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모함은 최진실과 대중 사이에 대한 이간책(離間策)일 뿐만 아니라 최진실과 최진실의 자녀 사이에 대한 이간책이기도 했다.
  303. 이탈리아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귀도가 총살당하러 가면서 그걸 숨어서 보고 있던 아들에게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보여주는데 이는 걱정스럽게 자신을 바라볼 아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부모는 세상이 자신을 우스꽝스럽게 볼지라도 자식의 복리를 위해 필요하다면 우스꽝스러운 몸짓도 지어보일 수 있다는 것을 영화는 담았던 것이다. 최진실도 세상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든 이혼한 부모를 둔 사람들이 폄훼되는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한계상황 속에서 자식들이 어머니인 자기로부터 충분히 존중받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행동하였다.
  304. 블러핑(bluffing)이란, 자신의 패가 상대의 것보다 약하다고 생각될 때 오히려 더 강한 베팅을 하여 상대를 기만하는 행동을 말한다. 단지 자신이 상대에 비해 약할 때뿐만 아니라, 자신이 더 강하다고 생각될 때도 마치 자신 없는 듯한 행동을 해서 상대가 방심한 상태로 승부를 걸어오도록 하는 행위 또한 블러핑이다. 더 나아가 자신의 강함을 과장해, 상대로 하여금 아예 승부를 포기하도록 해서 자신의 위험 부담을 최소화하는 행동도 블러핑이다. 즉 블러핑은 상대가 알지 못하는 정보를 이용해 진실을 숨기고, 상대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끌어 이득을 취하는 행동을 의미한다.
  305. 최진실은 위법행위의 피해자로서 헌법에서 보장하는 자유와 권리를 누렸지만 대한민국 사회(언론과 대중)는 그 자유와 권리 향유를 문제삼으로써 대한민국이 왜 유엔 개발 계획이나 세계 경제 포럼 등에서 측정하는 성평등 지수상 하위권 국가인지를 예로써 보여주었다. 대한민국 사회는 최진실이 마치 가해자인 양 최진실을 향해 공격퍼부었다. 최진실 사망 후 발간된 책 중에도 피해자인 최진실에게서 문제의 원인을 찾고자 애쓰는 사람이 나옴으로써 대한민국 사회가 피해자의 인권에 얼마나 무지한 사회인지 보여주었다.
  306. 황혜진. 故최진실 母 "딸 이혼 후 루머, 악플에 시달리다.." 눈물(휴먼다큐사랑). 뉴스엔. 2015년 6월 2일.
  307. 나랑. 스토킹의 공포, 속수무책 당하는 피해자. 일다. 2015년 7월 29일.
  308. 최현정. 이혼하는 부모가 고려해야 할 것. 일다. 2008년 11월 14일.
  309. 최현정의 마음이야기
  310. 천관율. 여자를 혐오한 남자들의 '탄생'. 시사IN. 2015년 9월 17일.
  311. 임현선. 책에서 만난 사람 - 최진실의 삶과 예술이 남긴 유산. topclass. 2015년 11월 13일.
  312. 남안우. 최진실, 5억 원 화장품 CF 계약 맺고 ‘부활 신호탄’. 마이데일리. 2005년 5월 12일.
  313. 김현록. 해외 명품 화장품 '한국 톱스타 잡아라'. 머니투데이. 2005년 5월 16일.
  314. 김민성. 최진실 출국, "영화 드라마로 곧 복귀할게요". 마이데일리. 2005년 6월 2일.
  315. 김민성. 최진실, "때론 사람들이 날 잊어주길 바랐다". 마이데일리. 2005년 6월 2일.
  316. 주부는 가정 내에서 가사 활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다른 직업에 종사하지 않고 가사에만 종사하는 주부를 가리켜 특별히 전업주부라고 칭한다.
  317. 10대 캐릭터 인기몰이 왜?. 한겨레신문. 2005년 12월 21일.
  318. 드라마 '장밋빛 인생' 대박으로 제2의 전성기 맞은 최진실(퀸 2005년 12월호). 국립중앙도서관.
  319. '장밋빛 인생' 이후 5개월, 최진실의 Nowadays(여성중앙 2006년 4월호). 국립중앙도서관.
  320. 이인경. 최진실 몸값 천정부지 '수직 상승'. 스포츠한국. 2005년 11월 9일.
  321. 강종훈. "2005년을 빛낸 탤런트는 최진실". 연합뉴스. 2006년 1월 19일.
  322. 남안우. 최진실-정지훈, 2005년 가장 빛낸 남녀 탤런트. 마이데일리. 2006년 1월 20일.
  323. 김태은. '연기대상 3관왕' 최진실 "네티즌상이 가장 기뻤다". 머니투데이. 2006년 1월 2일.
  324. 김대오. 최진실의 KBS 출연, MBC가 양해해야 할 7가지 이유. 노컷뉴스. 2005년 7월 25일.
  325. 고재열. 고 최진실씨와 최문순 의원의 아름다운 인연. 고재열의 독설닷컴. 2008년 10월 7일.
  326. 곽인숙. KBS 사장,"내가 최진실 매니저" 자청. 노컷뉴스. 2005년 8월 21일.
  327. 배국남. 최진실, 위기 관리능력도 스타급?. 마이데일리. 2005년 9월 18일.
  328. 박미애. 최진실, 아동학대 예방 굿네이버스 친선대사 나선다. 뉴스엔. 2006년 4월 24일.
  329. 김영남. '사랑을 낳는 출산' 사진전. 경향신문. 2006년 12월 7일.
  330. 강영구. 거물급 스타 ‘안방 사수작전’. 스포츠경향. 2006년 12월 7일.
  331. 김수진. 박해진 "최진실과 일일극 맞짱, 부담백배". 머니투데이. 2006년 12월 18일.
  332. 이지영. 최진실 "연속극, 시청률 안나오면 힘빠져". 조이뉴스24. 2006년 12월 19일.
  333. 최진실, 30대 후반 배우의 딜레마(여성중앙 2006년 12월호). 국립중앙도서관.
  334. 1년 만에 드라마 <나쁜 여자, 착한 여자>로 컴백한 최진실(우먼센스 2006년 12월호). 국립중앙도서관.
  335. 드라마 '나쁜여자 착한여자'의 씩씩한 아줌마 최진실(퀸 2007년 1월호). 국립중앙도서관.
  336. 김경욱. 최진실, "봉태규와 연기해보고 싶다". 머니투데이. 2006년 12월 19일.
  337. 이규창. '쿨' 이재훈, 최진실 위해 노래 부른다. 머니투데이. 2007년 1월 15일.
  338. 장관순. ‘궁’ ‘나쁜여자’… 소송 풀렸다. 경향신문. 2007년 1월 25일.
  339. 이제련. `나쁜여자 착한여자` 최진실 임신설정...자체최고 시청률 갱신. TV리포트. 2007년 3월 30일.
  340. 유순호. 최진실 "사랑?..아직 마음에 자리가 없어요". 머니투데이. 2007년 4월 19일.
  341. 남궁성우. '나쁜여자 착한여자' 파국적 내용에 연기자들도 불만. 노컷뉴스. 2007년 5월 9일.
  342. 이동현. (방송·연예가 핫라인)미시탤런트 전성시대 "결혼·이혼이 별건가요". 주간한국. 2007년 6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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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4. 길혜성. '대장금' '주몽' 등 '韓드', 드라마 '실크로드' 열다. 머니투데이. 2007년 11월 24일.
  345. 이규창. 최진실, 새해 첫날 '최고 대우' CF 재계약. 머니투데이. 2007년 1월 11일.
  346. 한준호. 최진실 CF 톱스타, 새해 벽두 업계 최고 대우. 세계일보. 2007년 1월 12일.
  347. 최진실, 캐리어에어컨 모델로 2년 연속 활동. 연합뉴스. 2007년 1월 17일.
  348. 길혜성. 공유 장혁 이준기..MBC 남자우수상 경합 '후끈'. 머니투데이. 2007년 12월 12일.
  349. 2007 MBC 연기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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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3. '줌마렐라'는 '아줌마'와 '신데렐라'의 합성어이다.
  354.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 시즌2 11월부터 방영.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 2008년 6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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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3. 원성윤. 세상의 모든 ‘진실'과 ‘구라'를 보여주마!. PD 저널. 2008년 3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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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4. 안녕하세요...트루입니다...^^. 디시인사이드. 2008년 4월 21일.
  425. 내마스갤 제작진& 배우님들 글모음. 디시인사이드. 2008년 4월 23일.
  426. 톰과 제리》는 고양이 톰과 쥐 제리를 주인공으로 한 미국의 애니메이션이다.
  427. 송원섭. "전격 공개! 유재석, 성공 뒤엔 톱스타 C양이 있었다.".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2008년 7월 11일.
  428. 이현아. 최진실 "이만하면 완전히 망가졌죠". 주간한국. 2008년 3월 28일.
  429. '국민MC' 유재석을 빛나게 해준 '라인업'. SBS. 기사입력 2008년 3월 5일. 최종수정 2008년 3월 6일.
  430. 김지연. 유재석, "최진실 추천 덕에 MC 됐다". 머니투데이. 2008년 8월 20일.
  431. 강명석. 유재석. 10아시아. 2010년 7월 19일.
  432. 2013년 9월 14일 KBS세대공감 토요일제190회에서 진행자 임백천은 자신이 새로 시작하는 프로그램마다 첫 손님으로 최진실이 나와주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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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5. (연예가파일)태연·백현 열애 인정...누리꾼 '시끌'(백현주, 대중문화 전문기자). YTN. 2014년 6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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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1. 김범석. ‘10년 지근거리’ 기자가 털어놓은 최진실 비사(秘事)(3). 신동아. 2008년 11월 25일.
  522. 김범석. ‘10년 지근거리’ 기자가 털어놓은 최진실 비사(秘事)(4). 신동아. 2008년 11월 25일.
  523. 김범석. ‘10년 지근거리’ 기자가 털어놓은 최진실 비사(秘事)(5). 신동아. 2008년 11월 25일.
  524. 신동아 51권 11호(2008년 11월호), 발행일 2008년 11월 1일, 소장 국립중앙도서관, 김범석 일간스포츠 연예팀 기자 kbs@joongang.co.kr, 388쪽 ~ 399쪽, 목차 '10년 전담 기자'가 털어놓은 최진실 비사:그토록 원망했던 '남편의 애인', 포장마차로 불러내 술 마시며 눈물//낙종한 기자들, 집에 초대해 식사 대접/'남편 애인'이 마담으로 있는 술집 찾아가 '행패' 부리기도/술 취하면 누군가에게 전화해 하소연하는 버릇/IMF 환란 때 자진해 '노 개런티' 광고 찍어/드라마 상대 남자역 직접 섭외할 정도로 연기에 열성/"일할 때 빼고는 늘 '불행하다'고 말해"
  525. (부고)윤창현 서울시립대교수 부친상 外. 한국경제. 기사입력 2010년 3월 26일. 최종수정 2010년 4월 1일.
  526. 2004년 12월 16일 기사에서 서병기는 피해자 최진실이 눈물을 흘린 것에 대해서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피해자는 어떤 자리에서건 눈물을 흘릴 수 있는데, "소송을 당한 최진실의 심경이 괴롭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기자회견을 겸한 브리핑장에서 시종 눈물을 흘려 주변사람들을 안타깝게 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라고 서술하며 그것을 문제삼는 비상식적 행태를 보였던 것이다. 최진실은 폭행의 피해자였는데 그 범죄 현장을 언론에 공개한 것을 문제삼아 광고주가 광고 모델 최진실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질러서 그것을 인권변호사가 무료 변론을 맡았고 자신을 돕기 위해 연대한 25명의 변호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최진실이 눈물을 흘린 것을 서병기는 아니꼬워했던 셈이었다. 서병기는 "이 사안은 광고모델과 회사와의 문제이지 결코 반여성적인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만약 그녀의 남편이었던 조성민이 CF를 찍어 이혼후 그 광고주로부터 피소당했다면 반남성적인 소송인가?"라고 서술하며 조성민이 폭력범이라는 사실을 무시한 행태도 보였는데, 상식적으로 가해자 조성민이 손해배상청구의 대상이 되는 것을 문제삼는 인권변호사는 없고 광고 모델이 위법행위의 가해자이면 피소당하는 게 당연하다는 것은 최진실도 아는 사실이었다. 대중은 피해자를 대상으로 손해배상청구를 해서 분노한 것이고 최진실의 자택에 강도가 들어 최진실이 폭행을 당했고 다양한 이유로 그 범죄 현장을 공개한 것이면 감히 광고주 <신한>이 최진실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상식에 입각해서 반여성적이라는 것인데, 진선미 민변 여성복지위원장신혜수 유엔 여성 차별 철폐 위원회 부위원장을 비롯하여 여성운동계에서도 <신한>의 행태를 비난하고 최진실의 행동을 높이 평가한 사안에 대해 서병기는 젠더폭력에 대한 개념이 없음을 드러내며 최진실과 최진실을 돕는 인권변호사들을 향해 비아냥대며 피해자 최진실을 공격하고 가해자 조성민의 공범으로 역할을 하였다. 서병기는 이 글에서 최진실의 기부 여부를 지적하며 최진실에 대한 대중의 마녀사냥을 유도하였는데, 일단 기부는 개인의 자유의 영역이기 때문에 타인이 왈가왈부할 사안이 아니었고 범죄 피해자를 대상으로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불합리함과 싸우는 최진실을 비방하기 위해 논점 일탈적으로 그 이야기를 굳이 가져와 최진실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낸 것이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에는 익명으로 기부하는 사람도 많다. 서병기는 최진실의 인격을 공격함으로써 최진실의 의미있는 행동을 폄훼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이렇게 서병기 같은 사람들이 자신을 편들어 주는 상황 속에서 최진실과의 이혼 후에도, 최진실 사망 후에도 이 폭행 사건과 관련해서 가해자 조성민은 여론 조작을 이어갔다.
  527. 2007년 11월 2일 기사를 통해 서병기는 최진실을 유책배우자라고 두고 최진실의 이혼과 관련해서 피해자 최진실을 공격했다. 가해자 조성민이 이혼이 하고 싶다고 하면서 가정법원에는 못가고 기자들을 상대로 최진실을 비방하고 다닌 것 때문에 최진실은 명예훼손을 당한 직접적 피해자였는데, 서병기는 "최진실이 이혼 당시 이미지가 나빠진 것은 이혼했기 때문이 아니다. 조성민과 이혼하는 과정에서 온갖 추잡한 것들을 생중계(?)한 탓이다"라고 서술하며 피해자 최진실을 온갖 추잡한 것들을 생중계한 가해자로 두고 최진실을 비방했다. 피해자 최진실은 가해자 조성민의 여론 조작을 해결하기 위해 기자들을 상대했을 뿐이었다. 즉 최진실은 피해자로서 자신의 권리를 행사했던 것이었기 때문에 서병기로부터 비난받을 근거가 없었다. 그런 근거가 있었다면 이는 이혼 사유를 발생시킨 것이 되는 바이고 최진실은 조성민으로부터 이혼 청구 소송을 당하는 것으로 그 진위가 검증이 될 사안이었으나 최진실은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3년 동안 조성민으로부터 이혼 청구 소송을 당한 적이 없는 것으로 최진실은 제3자로부터 비난받을 행동을 한 바가 없음이 입증되었다. 조성민은 자신의 일방 폭행 혹은 일방 과실인 사건에 대해 쌍방 폭행 혹은 쌍방 과실이라고 기자들에게 말하고 다녔고 이에 최진실은 피해자로서 그것이 조성민의 일방 폭행 혹은 일방 과실임을 확실히 하는 대응을 하였는데, 가해자 조성민을 비난하는 게 아니라 피해자 최진실을 공격한 서병기의 행태는 조성민의 그러한 여론 조작이 잘 먹였다는 증거였다. 즉 가해자 조성민은 언론을 통해 피해자 최진실을 향해 2차 공격을 함으로써 재미를 보았던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민법에서 규정하는 이혼유책주의는 피해자 최진실의 편이었고 이에 의거해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주장은 근원에서부터 성립될 수 없는 논리였다. 이러한 여론 조작은 2004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이 이혼할 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취한 것에 의거해 완전하게 제압되었고 이는 대중에게 잘 받아들여졌는데, 2005년에 출연한 작품이 큰 사랑을 받았고 같은 해 12월 방송사 시상식에서 최진실이 네티즌상을 받는 것으로 최진실과 대중 사이에 대한 조성민의 이간책이 실패했음이 단적으로 확인되었다. 이런 사실관계와는 별개로 서병기 같은 사람들은 2004년 9월로부터 3년이 지난 2007년 11월에도 조성민의 입장에 서서 조성민의 노림수대로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여론 조작의 흐름을 이어갔다. 더욱이 '온갖 추잡한 것들을 생중계'한 건 언론이었다. 즉 서병기의 논리에 따르면 조성민과 언론이 노린 것은 최진실의 이미지를 나쁘게 만드는 것이었고 최진실에 대한 서병기의 공격은 그 목적이 잘 달성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528. 2008년 11월 25일 기사를 통해 김범석은 연예인이 헌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존재인 양 글을 썼는데, 연예인 최진실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인 양 가해자의 말을 유포하였다. 김범석은 이 글에서 4년 후의 일을 "기자가 최진실을 다시 만난 건 2년 후 병원이었다"라고 하거나, 이미 2002년 10월 조성민은 일본 구단에서 퇴단하여 일본 생활을 정리한 상태였고 조성민의 가출로 2002년 12월부터 최진실은 조성민과 같이 살지도 않았으며 2004년 8월 병원에서 이루어진 최진실 인터뷰 기사 어디에도 일본 운운은 없었는데 2004년 8월에 발생한 조성민의 두 번째 폭행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던 최진실을 만났다는 김범석은 "일본에서 평탄치 못한 결혼 생활을 했다고 털어놓은 최진실은..."이라고 서술하거나 합의이혼으로 이혼했는데 "법정 공방 끝에 양육권을 갖게 된 최진실은..."이라고 하면서 허위의 사실을 글에 심어두었다. 또 김범석은 <‘최진실 사단’으로 불리는 이영자와 엄정화, 이소라, 홍진경 등에게 위로를 받으며 거의 매일 폭음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술에 취한 최진실은 전 남편의 애인으로 거론된 마담 S를 찾아가 “내 인생을 왜 이렇게 망쳐놓았냐”고 따지기도 했을 만큼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S가 일하는 유흥업소에선 영업방해를 이유로 최진실의 출입을 입구에서 막는 진풍경도 벌어졌다>라는 확인된 바 없는 이야기를 서술하기도 하였다. 더불어 김범석은 <당시 기자와 만난 S는 최진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보도하는 일부 매스컴 때문에 “엄청난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면서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언론계에도 ‘최진실 사단이 있고, 그들의 편향적인 보도 때문에 적잖게 힘들었다’는 얘기였다. “두 사람이 이혼 소송 중일 때 새벽 여섯시쯤 어김없이 최진실씨에게서 전화가 왔다”고 밝히며 “그 전화가 내겐 끔찍한 모닝콜이었다”고 했다. 최진실은 술에 취하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 버릇이 있다. 상대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받을 때까지 계속하고 배터리를 빼놓은 뒤 나중에 전원을 켜면 부재중 전화가 수십 통 와 있을 정도로 전화에 집착증세를 보였다. S의 얘기다. “최씨는 술에 취한 날이면 내게 전화를 걸어 신세한탄을 했고 저주에 가까운 원망을 수없이 반복했다. 같은 여자로서 그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위를 넘는 폭언에는 화가 치밀어 몰래 녹음해두기도 했다.” S는 최진실의 집 근처 포장마차에서 단둘이 캔맥주를 마신 적도 있다고 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건장한 남자 동생 두세 명을 데려가 최진실이 눈치 못 채도록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게 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최진실은 이혼 파동으로 드라마와 영화, 광고에서 모두 버림받아 힘들다고 털어놓은 뒤 조성민에 대한 연민, 두 아이를 키우며 겪어야 하는 고충을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S는 “내게 하는 말이 아니라 마치 자기 자신한테 하는 넋두리 같았다. 그의 말을 들어주는 게 유일한 해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당시 최진실이 S에게 화를 내고 위로를 구했던 건 어쩌면 세상에 대한 원망과 믿었던 방송, 광고 관계자들에 대한 배신감 혹은 자괴감을 투사했던 것인지 모른다>라고 서술하며 검증된 바 없는 이야기를 유포하고 그 이야기에 근거해 최진실을 자기 멋대로 해석했다. 이 서술에서 S는 조성민의 두 번째 배우자로서 심 씨라고 알려져 있었고 정조의 의무 위반과 관련하여 조성민의 공범자였는데, 가해자 심 씨는 2002년 12월에 조성민과 함께 언론을 통해 최진실을 납치 가해자로 지칭하였고 이는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뜻으로 조성민에 의해 검증될 사안이었지만 조성민은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3년 동안 최진실을 상대로 이혼 청구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자신과 심 씨가 여론 조작 행위자임을 입증하였고 이에 김범석이 서술한 심 씨의 말 또한 여론 조작임이 입증된 것이었다. 이 말에 따르면 최진실은 스토커였다는 것인데 연예인으로서 스토커로부터 고통받은 바 있던 최진실을 두고 이런 대범한 거짓말을 한 것은 심 씨라는 인물의 실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납치될 뻔한 경험도 있던 최진실이 심 씨 자신을 납치했었다고 거짓말을 한 것은 더더욱 심 씨노림수를 짐작하게 했다. 최진실 또한 비망록(2008년 12월호 잡지 《》에서 일부 소개)을 통해 심 씨의 이러한 이상한 행태에 문제의식을 가졌음을 표현하였는데, 조성민과 심 씨가 무엇을 얻기 위해 자신을 모함하며 다니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하였던 것이다. 또 심 씨가 운운 했다고 한 '이혼 소송'은 있지도 않았는데, 2002년 12월 조성민은 가정법원에 가서 이혼 소송 서류 접수 하면 되는 순간에 기자들을 불러놓고 최진실을 비방했을 뿐이고 2004년 8월까지도 이혼 소송을 못제기함으로써 자신에게 이혼청구권이 있는 것처럼 말하고 다닌 것이 허위임을 입증했을 따름이었다. 김범석의 기사에 따르면 심 씨는 있지도 않았던 이혼 소송이라는 부정확한 용어를 썼던 것이고 이는 이혼청구권이 없던 조성민의 실체를 은폐하기 위한 속임수라고 봐도 무방했다. 피해자 최진실은 가해자 조성민과 심 씨를 대상으로 문제를 제기할 권리가 있었고 그 권리를 누렸을 뿐이며 그들을 상대로 위법을 저질렀는지는 입증된 바 없었다. 최진실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신체의 자유가 있었고 그 자유를 누렸으며 특정 장소에서 위법을 저질렀는지는 입증된 바 없었다. 언론을 통한 가해자 조성민과 심 씨의 피해자 행세는 대중에게 피해자 최진실을 가해자로 인식시키기 위한 수작이었다. 하지만 이는 이런 수작이 이혼유책주의에 의해 실시간으로 검증된다는 사실을 망각한 행태였다. 김범석은 <최진실은 조성민이 제빵사업을 하면서 만나게 된 유흥업소 마담 S와 단순한 동업자 이상의 관계였다고 폭로했다. 이에 맞서 조성민은 “대꾸할 가치조차 없는 소설”이라고 반박했으며, 두 사람은 2년간 험난한 법정 공방을 벌인 끝에 남남이 됐다>이라고 서술하였는데, 2002년 12월 유흥업소 마담과 연애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말을 하며 자신이 정조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자백한 것은 조성민 본인이었고 이에 최진실은 조성민이 정조의 의무를 위반한 것이 맞다고 했던 것이다. 애초에 최진실은 광고 모델로 활동하고 있어 조성민이 정조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말하고 다니며 명예훼손 행위를 저지를 동기가 없었고, 2002년 12월 18일 가정법원에 가서 소송이혼은 못밟고 기자들을 불러놓고 최진실을 의부증 환자인 양 말하고 다닌 조성민의 비상식적 행동에 의해서도 최진실이 유책배우자가 아님이 입증되었으며, 이후 2004년까지도 조성민은 최진실을 대상으로 이혼 청구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이 여론 조작 행위자임을 입증하였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이혼유책주의는 작동하고 있었고 최진실은 이혼할 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취하며 조성민의 실체를 규명하는 동시에 조성민의 여론 조작을 제압해 나갔다. 그리고 최진실과 조성민은 법정 공방을 벌인 끝에 남남이 된 것이 아니라 피해자 최진실은 다른 위법행위 피해자들처럼 가해자 조성민의 각종 위법행위에 대해 법적인 조치를 취했던 것이고, 이혼에 대해서는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 밟으라고 하거나 합의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했고 이에 조성민은 밟으라는 소송이혼 절차는 안밟고 비상식적인 기자회견을 열거나, 최진실이 건넨 이혼합의서를 받아들여 합의이혼 절차를 밟거나 그 합의서 내용을 받아들일 마음이 없으면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면 되는데 그 이혼합의서를 기자에게 유포하며 최진실을 상대로 명예훼손을 저지르며 어영부영 지내다가, 2004년 8월 최환희와 최준희에 대해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러 왔다고 말하며 최진실의 자택 진입에 성공하여 최진실을 상대로 폭행을 저지르며 자충수를 두었고 이로써 조성민의 여론 조작이 최진실에 의해 제압되었을 따름이었다. 즉 최진실은 자신과 이혼하기를 원하고 자신을 유책배우자라고 주장하며 다니는 조성민의 행태에 대해 조성민이 그것에 대해 법적으로 입증할 기회를 주었고 자신이 유책배우자임이 법적으로 입증이 되면 대가를 치르겠다는 입장을 취했던 것인데, 조성민은 최진실을 대상으로 위법을 저질렀을 뿐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자신의 주장을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년 동안 입증하지 못하였다. 최진실은 조성민의 여론 조작을 완전히 제압하고나서 이혼을 하였던 것이다. 조성민은 2002년 12월 이혼이 하고 싶다고 하소연 하는 비상식적인 기자회견을 연 이래 하라는 이혼은 못하고 2004년 8월까지 3년에 걸쳐 최진실을 대상으로 추가적으로 위법을 저지르는 엽기성을 보여주었는데, 이는 이혼을 하겠다는 게 아니라 최진실과 더 얽히는 행태여서 최진실은 물론 대한민국 국민을 기겁하게 만드는 행동이었다. 즉 조성민의 주장대로라면 조성민은 2002년 12월에 최진실을 대상으로 소송이혼 절차를 밟아 남남이 되는 길을 가면 되었는데 그 길을 가지는 못하고 최진실을 대상으로 위법을 추가적으로 저지르며 여론 조작노이즈 마케팅에 열중했을 따름이어서 험난한 법정 공방을 벌인 끝에 남남이 되었다는 말은 어불성설이었다. 조성민의 주장대로라면 조성민은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것만 입증하면 쉽게 남남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3년 동안 조성민은 입으로는 이혼을 원한다고 했지만 실제 행동은 이혼할 생각이 없는 것처럼 처신했던 것이다. 김범석은 <당시 기자는 “폭행당한 사람은 오히려 나”라며 서울 삼성동 모 병원에 입원해 있던 조성민을 단독으로 인터뷰할 수 있었다. 그는 “최진실씨의 주장처럼 운동선수인 나한테 진짜 맞았다면 어디가 부러지거나 사망 직전 상태가 됐을 것”이라며 “내 와이셔츠를 손으로 찢고 할퀴려고 달려드는 여자를 밀쳐낸 것 뿐”이라며 억울해 했다. 그는 또 “주위의 친한 기자를 통해 교묘히 언론플레이를 하는 것”이라며 최진실의 모든 주장을 부인했다>라며 2004년 8월에 발생한 폭행 사건의 진위가 모두 규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규명이 되지 않은 것처럼 최진실의 사망 직후인 2008년 11월 25일에 가해자 조성민의 주장을 그대로 가져와 서술하였는데, 이는 자신이 가해자 조성민의 편에 선 사람임을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가정법원에 갈 시간에 끊임없이 기자를 상대하며 '언론플레이'한 장본인인 조성민이 그 피해자 최진실을 두고 '언론플레이' 운운 하며 여론 조작을 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조성민의 논리는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으로부터 폭행을 당한 사람은 최소한 사망은 해야 폭행을 당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궤변이었다. 또 김범석은 <한 경찰관은 “목에 손톱 파인 자국이 있는 걸로 봐서 고통 때문에 상당히 괴로워했던 것 같다. 재능이..."며 혀를 찼다>라고 서술하며 사자에 대한 예의 개념이 있는 사람인지 의심하게 만드는 서술도 하였다. 김범석은 이 글을 "최진실의 자살은 많은 이에게 둘러싸여 사는 것 같지만 실은 쇼윈도의 마네킹 같은 연예인의 고단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한국 연예계의 쓸쓸한 자화상이었다"라고 서술하며 마무리하는데, 여론 조작의 피해자로서 그 고통이 자식들에게 전해지는 것을 염려하여 스스로 세상을 떠난 최진실을 두고 '쇼윈도의 마네킹' 운운 하며 그 본질을 호도하였다. 요약을 하자면 연예인의 고단함과 한국 연예계의 쓸쓸한 자화상 운운 한 김범석은 이 글을 통해 최진실과 관련한 검증되지 않은 사실을 유포하며 여론 조작으로 사망한 최진실을 우롱하였고 이에 김범석 본인이 피해자 최진실을 인권도 없는 '쇼윈도의 마네킹' 정도로 여겼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즉 김범석 같은 사람들은 최진실과 관련하여 검증된 사실은 무시하고 확인된 바 없는 이야기는 선택·강조·유포하며 가해자 조성민과 심 씨는 비호하고 피해자 최진실은 비하하였다. 이를 통해 피해자 최진실은 마녀사냥의 대상이 되었고 가해자 조성민과 심 씨는 양비론의 대상이 되어 궁지에서 빠져나감은 물론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반사이익도 누렸다.
  529. 2009년 10월 6일 기사에서 김범석은 배병수 살해범 전용철이 최진실에 대해 쓴 편지를 기사화했다. 이를 통해 김범석이 최진실 생전에도 전용철과 친분을 나눈 사이임을 짐작하게 했다. 최진실 생전 전용철은 기자들과 교감을 나누며 피해자 행세를 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최진실은 세상으로부터 배병수 사망 관련 교사범인 양 공격을 당했는데, 신동아 기자 조성식2008년 11월 25일 "‘독종기자’라는 소리를 듣던 나였지만, 옥중의 전씨한테서 들은 얘기를 차마 최씨에게 물어보지 못했다. 그에게나 배씨에게나 명예스럽지 못한 불미스러운 소문인데다 전씨의 얘기도 전언(傳言)에 지나지 않았기에. 다만 최씨에게 찰거머리처럼 붙어 다니던 또 다른 소문에 대해서는 내 나름의 생각을 밝히고 싶다. 수사기관이 발표한 전씨의 살해동기는 배씨에게 당한 인격적 모욕이었다. 그러나 구치소 접견실에서 전씨가 내게 ‘고백’한 중요한 살해 동기는 여자와 관련된 것이었다. 그런데 그 여성은 항간의 소문과는 달리 최씨가 아니었다. 전씨와 ‘특별한 관계’가 있는 제3의 여성이었다. 사건 초기 불안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면서 전씨가 밝힌 ‘진실’은 그랬다"라고 서술하였다. 2002년 12월에 조성민은 이 소문을 적절히 활용하며 최진실에 대한 여론 조작을 펼쳤었다.
  530. 김범석은 전용철이 최진실과 관련하여 보낸 편지를 두 차례에 걸쳐 자신의 매체에 실었다. 최진실 사망 직후인 2008년 10월 15일과 광고주 신한가정폭력 피해자 최진실을 향한 손해배상청구소송 상고재판 직후인 2009년 10월 6일이 그 날이다. 이 두 기사는 최진영의 숨통을 죌 수 있는 일에 해당되었다. 왜냐하면 최진실은 생전에 전용철이 저지른 살인사건과 관련하여 여론조작의 피해를 당했고 그로 인해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토로했었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동생으로서 지켜봤을 최진영이 살아있는 상황에서 최진실과 전용철을 연관시키는 기사를 내놓았다는 것은 여론조작으로 사망한 최진실에 대한 최진영의 안타까움을 더하게 만들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김범석은 그런 행동을 저지른 것이었다. 이것은 인간의 탈을 쓰고는 못할 행동이라고 할 수 있고 최진실에 대한 혐오 세력에게나 쾌감을 줄 수 있을 뿐 누구에게도 유익함이 없는 행위로 최진실의 유가족만 고통 속에 빠뜨리는 행동이었다. 또 이건 미성년자들인 최진실의 아들 최환희와 최진실의 딸 최준희도 죽여보겠다는 의도가 담긴 행동이나 진배없었다. 기자로서 전용철과 관련하여 최진실이 생전에 어떤 여론조작의 피해를 입었는지 알만한 입장에서 또 다른 여론조작으로 기어이 사망한 최진실을 두고 또 전용철을 언급하는 기사를 쓴 것은 최진영을 죽여보겠다는 행위나 진배없었고 실제로 최진영은 두 번째 기사가 나온 그 다음해 3월에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2002년 12월에 과거 전용철이 저지른 살인사건과 관련하여 최진실의 숨통을 죄었던 조성민과, 김범석은 이런 식으로 서로 협력관계에 놓인 사이임을 보여주었다. 2009년 6월의 상고재판은 가해자 조성민의 폭력행위에 기인한 재판이었기에 최진영은 객관적으로 엄청난 분노의 감정 속에 있었을 상황이었다. 이는 보통의 대중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김범석은 그런 최진영의 등에 칼을 꽂는 행동을 열심히 했던 것이다. 김범석은 세상이 계속 최진실이 교사범인 양 여기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에 기여했던 것이다. 그래서 대중으로 하여금 가정폭력 피해자 최진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갖는 것을 막는 일에 기여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궁지에서 빠져나가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누구나 알 수 있는 바였다. 더구나 2009년 8월에는 최진실 유골 도난 사건도 발생했었다. 요약을 하자면 최환희와 최준희는 김범석을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일들이 자신들의 어머니 사망 직후와 삼촌의 사망 직전 발생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2008년 10월 15일 기사가 작성된 때는 사기행위 가해자 조성민이 최환희와 최준희의 재산에 대해 권리를 행사하려고 하며 사기행위 피해자 최진영을 분노케 한 상황이었다. 이 때 김범석은 사기행위 가해자 조성민에게 힘이 되는 기사를 작성했던 것이다. 물론 김범석은 최진실 생전에도 최진실의 숨통을 죄는 입장에 섰었다. 더불어 김범석은 2008년 11월호 신동아에 원정까지 가면서 최진실을 조롱하는 일에 열정을 보였다. 이 또한 최진영의 등에 칼을 꽂는 일에 해당되었다. 신동아도 타 매체 기자의 기사를 실어주고 더 나아가 표지에 제목을 크게 실어줄 만큼 김범석과 좋은 팀플레이를 보여주었다. 김범석이 신동아에 실은 기사의 표지 제목대로라면 최진실이 조성민의 바짓가랑이라도 잡은 줄 알겠으나 실정은 전혀 달랐으니 최진실은 2002년 12월부터 이미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 밟으라고 자리를 깔아 준 입장이었고 이에 조성민이 자신을 유책배우자라고 주장하고 다닌 것에 대해 법적으로 책임지겠다는 입장이었으나 최진실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진 것은 조성민이었다. 최진실은 1998년 12월에 조성민의 실체를 알았다면 이후 조성민이 아무리 '자살쇼'를 하며 자신에게 들러붙었어도 동정심을 갖지도 않았고 상종도 하지 않았을 가치관을 가졌음을 드러낸 바 있는 인물로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조성민의 위법성을 인내심을 갖고 문제삼았을 뿐이었는데 김범석은 법적인 측면은 무시한 채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았던 것이다. 최진실은 자신의 인생에서 조성민을 소거하는 절차를 차분히 밟고 있었는데 김범석은 그러고 살았던 것이다. 누구의 인생에서건 조성민 같은 인물이 알아서 떨어져나가주면 좋은 것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행동이었다. 그런 인물이 자식들의 인생에서 떨어져나가주면 좋다는 것도 당연지사였다. 즉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최진실은 자신이 유책배우자가 아님을 대중을 앞에 두고 입증해 보였다. 신동아를 통해 김범석은 술집 마담의 최진실에 대한 여론조작을 도우며 자신의 정체성이 술집 마담의 손발임을 널리 알렸다. 김범석의 이런 행태는 최진영이 우습고 정옥숙이 우습고 최환희가 우습고 최준희가 우습고 대중이 우습다는 뜻과 다르지 않았다. 또 동아일보의 황호택의 노림수와도 통하는 것이었다. 황호택처럼 김범석도 조성민을 비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행동을 보였던 것이다.
  531. 하은정. 재혼한 조성민, 작심하고 털어놓은 35년 인생 풀 인터뷰. 우먼센스. 2008년 10월호.
  532. 백은영. 조성민 단독인터뷰:야구, 결혼, 파경, 아이들, 이제 찾아온 조심스런 행복까지. 여성조선. 2008년 10월호.
  533. 2014년 9월 30일 TV조선 <대찬인생> 85회 백은영 출연
  534. 최진실 딸, 최준희 인터뷰. (TV조선)연예가X파일 23회(백은영이 최준희를 인터뷰 함). 2016년 1월 7일.
  535. 최진실, 조성민의 재혼에 얼마나 충격받았길래…. 한국일보. 2007년 9월 20일.
  536. 이현아. "연관짓지 마" 최진실, 자살 전 조성민에 메시지!. 스포츠한국. 2008년 11월 25일.
  537. 2008년 10월에 8세의 최환희와 6세의 최준희는 발달 단계또래집단을 형성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최진실을 향해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여러 위법을 저지른 조성민과 그 당시 공범으로 역할을 했던 조성민의 두 번째 배우자는 그러한 과거의 행실로 인해 기본적으로 최환희와 최준희에게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인물들이었다. 조성민 부부는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에 대한 여론 조작을 저지른 이었었다. 그런 상황에서 조성민은 2008년 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하여 최환희와 최준희에 대해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겠다고 했다. 즉 조성민은 최환희와 최준희의 권리를 언론을 통해 침해했다. 양육친이 아동의 면접교섭권을 침해하는 경우가 아니라 조성민은 비양육친이면서 아동의 면접교섭권을 침해하였고 침해하겠다고 말하고 다녔다. 조성민 부부의 부정적 실체는 최환희와 최준희가 또래집단 내에서 공격을 당할 요인이 될 수 있는 사안이었다. 최진실은 조성민 부부의 실체가 최환희와 최준희의 삶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음에 대해 염려하였다. 2008년 현재 대한민국 민법상 친족의 범위는 8촌 이내의 혈족, 4촌 이내의 인척, 배우자이다. 혈족 조성민은 과거의 행실로 인해 본인이 최환희와 최준희에게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망각한 채, 2005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인물을 그들의 인척으로 만들어줌으로써 개과천선은커녕 추가적으로 아동의 복리에 반하는 행동을 또다시 저질렀었다. 더구나 2008년 10월에 최진실은 조성민이 2004년 8월에 저지른 폭력 행위로 인해 광고주로부터 소송을 당해 상고 재판을 앞두고 있었다. 최진실 사망 후 최환희와 최준희가 그 소송의 피고가 되었고, 대법원의 파기환송과 고등법원의 원고 일부 승소 판결에 의거해서 2010년 2월에 최환희와 최준희는 광고주 <신한>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해야 했다. 이는 조성민의 폭력 행위가 없었다면 겪지 않았을 일이었다. 2008년 10월 2일, 최진실은 과거 조성민이 저지른 여론 조작의 부정적 영향 속에 여전히 있었고 추가적으로 2008년 9월에 저질러진 증권사 직원들의 여론 조작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었다. 즉 최환희와 최준희 입장에서는 2008년 10월 2일에 자신들의 어머니가 여론 조작의 피해자였다는 것이고 본인들 삶 또한 그런 여론 조작의 피해 상황에 놓여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 놓여 있는 최환희와 최준희를 향해 조성민은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겠다는 을 굳이 하고 다녔던 것이다. 조성민이 2008년 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해 그렇게 최환희와 최준희를 공격한 행동이 실제로는 누구를 겨냥한 것인지는 최진실 사망 후에 조성민이 보인 행동에서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행동에 대해 대중은 가만히 있지 않았고 법조계 또한 나서서 친권자동부활금지라는 법안이 제정되었다. 최진실은 모성애가 강한 사람이었고 조성민은 그것을 최진실의 약한 고리로 삼아 최환희와 최준희를 위기에 빠뜨리는 짓을 함으로써 최진실을 공황 상태에 빠지게끔 만들었다. 허위사실유포 또한 최진실의 약한 고리였는데 조성민은 그것 또한 잘 활용하며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에게 타격을 주곤 하였다. 2008년 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해 한 행동도 그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는데 최환희와 최준희에게 자신이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 또한 쌍방과실이라고 하며 자신의 과오를 물타기하였던 것이다. 2004년 8월 조성민은 최환희와 최준희를 보러왔다는 말로 최진실의 자택 진입에 성공했고 그후 최진실에 대한 폭행을 저질렀다. 조성민은 2008년 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해 그 사건을 언급하며 그 사건으로 인해 최환희와 최준희에 대해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말하였다. 이는 가해자가 피해자를 불편하게 여겨 피해자의 자녀에 대한 법적인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었고 채무자가 채권자를 만나는 것이 불편해서 채무 변제를 하지 않았다는 말과 비슷한 논리였다. 즉 가해자인 자기에게 불편감을 불러일으킨 피해자 최진실이 자신이 최환희와 최준희를 상대로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서 책임이 있다는 논리였다. 2008년 11월 20일 MBC 100분 토론 396회 <친권! 천륜인가 아닌가>에서 여성학자 오한숙희는 유배당한 추사 김정희가 편지를 써서 아들의 안위를 살피던 사실을 언급하며 편지를 쓰는 일도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는 한 방법임을 말한 바 있다. 즉 조성민은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채무자는 채권자를 만나는 게 불편하면 사기를 칠 것이 아니라 계좌이체를 해서 빚을 갚으면 되는 것이었다. 가해자 조성민은 교묘한 말장난으로 위기를 모면하려고 했고 '남 일 말하듯이' 하는 화법을 구사하며 아동의 권리를 침해한 행동을 희석시켰고 더 나아가 아동의 권리를 침해하겠다고 말하고 다녔던 것이다. 한편 시인 김갑수2014년 9월 30일 TV조선 <대찬인생> 85회에서 이 말장난과 비슷한 논리의 말을 발화함으로써 조성민의 말장난이 어떤 식으로 대한민국 사회에서 먹히는지를 보여주었다. 같은 자리에 기자 김대오도 있었지만, 김대오는 피해자 최환희와 최준희의 양육친 최진실의 친구라고 말하고 다니면서도 김갑수의 그 발화에 대해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해당 프로그램의 출연진 중에는 누구보다 이혼유책주의면접교섭권에 대해 잘 알고 있을 변호사 박지훈도 있었지만 그 발화에 대해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는 건 마찬가지였다. 또한 진행자 안선영도 '이혼 소송' 운운 하며 왜곡된 사실을 언급하였고 이에 대해서도 박지훈은 수정해 주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은 자신을 두고 유책배우자라고 말하고 다니는 조성민에게 이혼할 의사가 없다고 대응하며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했고, 이후 밟으라는 소송이혼 절차는 안밟고 위법을 저지르고 다니는 조성민에게 이혼합의서를 전달하며 합의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했으며, 밟으라는 합의이혼 절차는 안밟고 위법을 저지르고 다니는 조성민에게 이혼할 의사가 없다고 대응하며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했을 뿐이다. 최진실을 향해 선제 공격에 나섰던 조성민은 가정법원에 가서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면 되는데 최진실을 두고 유책배우자라고 말하고 다녔을 뿐 정작 소송이혼 절차는 밟지 못하였고, 이후 최진실로부터 전달받은 이혼합의서에 대해서는 그 내용을 준수하여 합의이혼 절차를 밟으면 되는데 이 이혼합의서를 언론에 공개하며 최진실을 비방하고 다녔을 뿐이며, 이에 대해 최진실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했을 뿐 이후에도 조성민은 소송이혼 절차는 밟지 못하고 있다가 또 최진실을 대상으로 폭력 행위를 저지르며 자충수를 두었고 이로써 조성민의 여론 조작은 최진실에게 제압되며 해당 사안이 마무리되었다. 즉 개별적인 위법행위에 대해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을 대상으로 법적 조치를 취한 바는 있으나 '이혼 소송'은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이혼 청구 소송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의 배우자가 유책배우자임을 입증해야 가능한 일이고, 더구나 이혼 청구를 했다고해서 끝이 아니라 법정에서 상대방에 의해 논파당하면 패소한다.
  538. 김선주. 고양이야 … 여기 생선이 …. 한겨레. 2008년 10월 8일.
  539. 황호택. 최진실의 못 이룬 꿈. 동아일보. 기사입력 2008년 10월 10일. 최종수정 2008년 10월 11일.
  540. 김선주는 성폭력을 저지른 적도 없고 성매수를 한 적도 없으며 혼인 기간에 정조의 의무도 위반한 적 없는 최진실을 두고 마치 성애에 미친 여자인 양 서술하기를 서슴지 않았는데, 최진실이 마치 성욕을 마음껏 못누려 우울해 하다가 어린 자식 둘을 두고 세상을 등진 어머니인 양 억측을 내놓았다. 이는 최진실에 대한 모욕으로, 여론 조작의 피해자로서 그 고통이 자식들에게 미치는 것을 염려해 세상을 떠난 최진실의 객관적 상황과 배치되는 것이었다. 승객으로서 버스를 타고 가다가 죽을 뻔한 경험을 한 사람은 버스를 타는 것에 대해 불편감이 있기 마련인데 이런 상황에서 버스를 타지 않게 되어 우울해진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다. 중국음식점에서 짜장면을 먹다가 짜장면 그릇에서 구더기를 발견한 경험을 한 사람은 짜장면을 먹는 것에 대해 불편감이 있기 마련인데 이런 상황에서 짜장면을 먹지 않게 되어 우울해진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던 것이다.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은 상대로부터 피해를 입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에 불편감이 있기 마련인데 이런 맥락에서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을 하지 않아 급기야 이로 인해 우울해진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진실은 성애로써 맺은 인간관계 상대로부터 위법의 피해를 입었을 때 이런 젠더폭력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피해자로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는 것을 직접 겪은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에서 성애로써 남자와 인간관계를 맺는 일을 추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상식적이다. 이런 현명한 선택을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못맺어 정신병이 걸린 사람으로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근거로 삼는 김선주 같은 성애에 미친 사람들로 인해 최진실은 생전 불편함을 겪었던 것이다. 남자와 커피만 마셔도 연애한다고 떠들며 기사를 쓰는 것이 이런 부류의 기자들이었고 최진실 또한 그로 인한 불편함을 자전 에세이 등을 통해 설명한 바 있었다. 김선주는 최진실이 연애를 즐겼어도 같은 해석을 하며 최진실을 성애에 미친 여자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김선주는 그렇게 젠더폭력을 극심하게 겪었고 겪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남자를 놓지 못하고 연애를 한다고 최진실을 성애에 미친 여자로 말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김선주의 올가미에 의거해서 최진실은 어떤 경우에도 성애에 미친 여자가 될 수 있었다. 이렇게 최진실에 대해 해석하는 근거가 결국 최진실의 이기 때문에 김선주의 노림수는 최진실의 침묵인 셈이다. 하지만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의 정조 의무 위반에 대해 문제를 삼지 않고 이혼을 했어도 김선주는 그렇게 위법의 피해를 겪고도 합당한 대응을 하지 않은 것을 보면 최진실은 성애에 의거해 사리분별력을 잃은 것이라고 결론지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궤변은 여자의 거절을 자신에 대한 호감의 표시로 마음대로 해석하는 남자들의 그것과 맥이 닿아 있다. 최진실은 성애에 의거해서 남자와 엮이는 일에 흥미가 없음을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선주는 자기 멋대로 최진실이 성애에 미친 여자인 양 해석하며 글을 썼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는 것과 관련해서 불편감이 있는 사람은 택시를 타면 되고 짜장면을 먹는 것과 관련해서 불편감이 있는 사람은 냉면을 먹으면 되고 성애로써 남자와 엮이는 것과 관련해서 불편감이 있는 사람도 성욕은 있을 수 있고 그런 사람은 자위행위를 하면 된다. 남성도 자위행위를 하지만 여성도 자위행위를 한다. 남성들도 자위행위로 성욕을 해결하며 살고 여성들도 자위행위로 성욕을 해결하며 산다. 성애는 동성애, 이성애, 양성애 등으로 분류가 되고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은 당사자의 자유의 영역이다. 김선주는 이런 지적 맥락을 무시한 채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몰았다. 최진실이 남성이었다면 김선주는 이런 류의 을 쓰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명예남성 김선주는 남성의 자위는 본능이자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지지만 여성의 자위는 금기시되고 남성성매수는 흔하지만 여성의 성매수는 금기시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남성이 성욕 해결에 차질이 생겨 우울해하다가 어린 자식 두 명을 두고 스스로 세상을 떠난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즉 김선주는 애인이나 남편이 없는 여성은 불완전한 존재라는 편견을 전제로 글을 쓴 것이다. 김선주의 논리에 따르면 건강하고 정상적인 행위인 자위행위가 금기시되는 존재인 여성은 애인이나 남편이 없으면 성욕이 해결 안되는 존재로 전락하고 이에 성욕이 해결이 안되어 우울해 하다가 어린 자식 두 명을 두고 스스로 세상을 떠날 수 있는 한심한 존재로 규정되는 것이다. 결국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의 자위행위를 금기시하는 것은 여성의 삶을 이런 식으로 모욕하고 폄훼하려는 의도라고봐도 무방하다. 이는 흡연이라는 기호품 향유 행위와 관련하여 여성의 흡연에 대해서는 금기시하는 트릭을 가동하여 여성의 삶을 통제하는 메커니즘과 통하는 바이다. 성매수는 돈 몇 푼이면 성애로써 맺는 인간관계가 가능한 행태이다. 성애로써 맺는 인간관계는 일단 호의관계이다. 그런데 이를 상거래 방식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이는 결혼식 하객을 돈을 주고 고용하는 행태와도 통하는 면이 있다. 통상 결혼식 하객은 호의관계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성매수는 위법행위이다. 이렇게 위법을 저지르면서까지 남성들은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을 돈을 지불하면서 추구한다는 것이고 그러므로 성매수는 성욕의 문제라기보다 권력욕의 문제라는 뜻이 된다. 즉 성매수는 권력욕의 발현이어야 말이 된다. 강간도 권력욕의 발현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그리고 남성은 만 있어도 해결되는 성욕이, 자위가 금기시되는 존재인 여성은 연인이나 남편이 없이는 그것이 해결이 안되어 우울해지고 급기야 어린 자식 둘을 두고 스스로 세상을 떠날 수 있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고 이는 성욕과 관련하여 남성과 여성에 대해 차별적 시선을 가진 대한민국 사회를 반영하는 바였다. 전 지구적 관점에서 임신부를 폭행하는 일은 문명 국가에서는 인간 취급 받지 못하는 대표적인 행위이다. 가해자 조성민은 임신부 최진실을 폭행했고 그 폭행 사실을 본인이 직접 떠들고 다녔으며 그 폭행의 원인을 피해자 최진실의 탓이라고까지 했다. 즉 조성민이라는 인물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남자는 성애로써 여자와 인간관계를 맺을 경우 설사 그 여자가 자기 자식의 어머니여도 그 여자를 대상으로 온갖 범죄행위를 저지르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행하고 더 나아가 그걸 떠들고 다녀도 사회생활에 전혀 지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남자는 성애로써 여자와 인간관계를 맺을 경우 아무런 심리적 마지노선 없이 그 여자를 대상으로 위법을 저지를 수 있다는 의미였고 그것이 용인되는 곳이 대한민국이라는 뜻이나 진배없었다. 이런 곳에서 여성이 성애로써 남성과 인간관계를 맺는 것은 '반드시 지게 되어 있는 게임'을 하는 것과 같다. 김선주는 이 모든 맥락을 무시한 채 자기 투사에 의거해서 글을 써서 최진실을 무뇌아로 전락시켰다.
  541. 황호택은 피해자 최진실이 2005년에 가해자 조성민과 재혼할 생각이 없다고 자신에게 분명히 말했는데도 2008년 10월 10일에 자기 멋대로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과 재혼을 원했다고 칼럼에 썼다. 또 피해자 최진실이 2005년에 아동의 법률행위대리권자로서 아동 최환희와 최준희가 가해자 조성민에 대해 면접교섭권을 가진 채권자임을 확인하는 말을 한 것에 대해서도 2008년 10월 10일에 자기 멋대로 해석했다.
  542. 문정민. 신화해석은 파워게임이다. 여성신문. 2002년 5월 17일.
  543. 유재순은 이 기사에서 "애시당초 최진실은 조성민과 결혼하면 연기 생활을 줄이고 조성민이 1군에 올라 올 수 있도록 내조를 하겠다고 언론을 상대로 입에 침이 마르도록 떠들었다"라고 하면서 '떠들었다'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는 최진실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 셈이었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3년 동안 최진실이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배우자로서의 의무를 위반했다는 증거가 나온 바 없었는데도 유재순은 최진실이 마치 유책배우자인 양 이런 표현을 썼던 것이다. 최진실은 사회적, 경제적 지위에서 조성민보다 우위의 인물이었는데도 유재순은 '내조' 운운하며 평등 사상에 위배되는 행태를 보였던 것이고, 이는 기본적으로 조성민의 편에 선 자신의 포지션을 드러낸 것이었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조성민이 최진실을 상대로 끊임없이 무리수를 두고 최진실을 고리로 노이즈 마케팅을 한 것은 최진실이 조성민보다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우위임을 말해주는 반증이었다. 그리고 유재순은 마치 운동선수는 배우자로부터 반드시 수발을 받아야 하는 직업인 양 서술하였고, 최진실은 당연히 조성민의 수발을 들어야 하는데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아 불만이라는 듯 서술하였다. 유재순은 최진실이 마치 조성민의 수발이라도 들기 위해 결혼한 것처럼 최진실이 한 말을 따오며 조성민이 자신의 직업세계에서 무능한 모습을 보인 것이 최진실의 책임인 양 말하였다. 즉 최진실의 의례적인 성의 표시를 물고늘어지며 그런 행태를 보였던 것이다. 더구나 조성민이 자신의 직업세계에서 무능한 모습을 보인 것은 비혼자일 때도 보였던 바였고, 조성민은 자신의 수발을 들 사람이 필요하면 개인적으로 사람을 고용하면 될 일이었다. 요약을 하자면 유재순의 이런 비상식적인 행태는 2002년 12월 18일 오후 2시에 조성민이 기자회견을 통해 보인 행태와 대동소이했다는 것이다. 조성민은 최진실의 배우자가 되는 일을 추진하다가 그게 막히자 자살을 시도한 인물이었는데 자신의 수발을 들 사람을 얻기 위해 목숨을 건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더구나 조성민이 연예인 최진실을 굳이 자신의 수발을 들 사람으로 선택했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았다. 즉 유재순과 조성민의 행태는 여성은 남편의 수발을 들어야 한다는 비상식적 사회 분위기를 등에 엎고 최진실을 공격한 행태에 불과했다. 즉 조성민은 최진실의 수발을 들기는 커녕 최진실의 명예를 훼손하며 다녔다. 그리고 그 시간에 최진실은 2살의 아들과 태아인 딸을 양육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배우자로서의 의무를 위반한 것은 조성민이었고 유재순이 비난의 대상으로 삼아야 했던 것은 피해자 최진실이 아니라 가해자 조성민이었다. 하지만 유재순이나 조성민은 피해자 최진실을 비방하며 양비론의 프레임을 대중에게 주입시켰다. 유재순은 또 2002년 12월 18일 오후 2시에 조성민이 기자회견을 연 사건과 관련하여 '이혼 소동' 운운 하며 본질을 호도하였는데, 실체적 진실은 '이혼 소동'이 아니라 여론 조작 사건이었다. 애초에 최진실은 조성민으로부터 유책배우자라고 지칭된 상황에서 이혼할 의사가 없다고 하며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한 입장이었고, 조성민이 그런 기자회견을 열었다는 것은 합의이혼이 불발되었다는 반증이고 조성민은 가정법원에 가서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면 되는 시간에 그런 황당한 기자회견을 열었던 것이다. 즉 이혼 문제는 소송이혼이라는 답이 나온 상황이었고 조성민은 가정법원을 통해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주장을 입증하여 이혼 판결을 받으면 되었다. 이 기자회견에서 조성민은 최진실과 이혼이 하고 싶다고 했고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고 주장했는데, 최진실은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자신이 유책배우자라는 조성민의 여론 조작을 제압해 나갔다. 더불어 유재순의 여론 조작도 제압한 셈이었다. 더구나 최진실은 2002년 6월에도 여론 조작 사건을 겪은 바 있어 법적인 조치를 취한 바 있었고 2002년 12월의 여론 조작 사건은 그 내용의 심각성이 더 악질적인 것이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그 여론 조작 행위자가 자기 자식들의 생부였기 때문에 반드시 그 진위를 공개적으로 규명해야 할 상황이었다.
  544. 이 기사에서 유재순은 일본에서 최진실이 공개된 장소에서 조성민에게 문제적 행동을 했다는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로부터 들었다고 했고, 이 사건에 대한 목격자도 많다고 했으며, 이 사건의 보도에 대해 최진실이 '악랄한 음해'라고 했었다는 것에 대해서도 '틀림없는 사실' 운운 하며 최진실을 조롱하는 듯한 글을 썼다. 하지만 이 기사에서 언급한 최진실이 조성민의 머리를 쳤다는 것, 최진실이 조성민에게 욕을 했다는 것은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뜻과 진배없었고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주장은 검증된 바 없었다. 유재순의 이 기사는 조성민이 최진실을 유책배우자라고 말하고 다닌 상황에서 나온 것으로,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내용인 셈이었고 이 내용은 이혼을 하고 싶다고 하소연하며 다니던 조성민에 의해 검증될 수 있는 사안이었으나 유재순의 말에 따르면 그렇게 증인이 되어줄 사람들이 많았다는데도 조성민은 2004년까지도 최진실을 상대로 이혼 청구 소송 서류 접수조차 하지 못함으로써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유재순의 이 기사 내용은 허위임이 입증되었다. 유재순의 이러한 행동은 가해자 조성민의 편에 서서 피해자 최진실을 공격한 행동이나 마찬가지였다. 2002년 12월 18일 오후 2시에 조성민은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의 일방 폭행에 대해 쌍방 폭행이라고 주장하며 피해자 최진실에 대해 여론 조작을 했었는데, 유재순의 이 기사 내용은 이러한 조성민의 행태에 날개를 달아주는 역할을 하였다. 해당 내용들은 그 패턴도 대동소이했는데,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의 가해 행동을 유발했다는 것이었다. 최진실을 두고 여론 조작을 함에 있어 가해자 편에 선 유재순이 서술하는 사건과 가해자 조성민이 서술하는 사건의 패턴이 유사했던 것이다. 이 기자회견에서 가해자 조성민은 임신부 최진실을 폭행했었다는 사실을 자백하면서 피해자 최진실이 폭행당할 행동을 했었다고 주장했다. 이 기자회견은 이렇게 폭행당할 행동을 한 최진실과 이혼이 하고 싶다고 하소연하는 가해자 조성민의 기자회견이었는데, 유재순의 이 기사 내용도 구체적인 내용은 다르나 이야기 구조가 조성민이 묘사하는 조성민의 임신부 폭행 사건과 유사했던 것이다. 하지만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친 3년 동안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라는 주장도 입증된 바 없고 가해자 조성민이 '피해자'라는 주장도 입증된 바 없다. 이는 대한민국의 이혼유책주의가 진위를 가리는 준거가 되어주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요약하자면 유재순이 언급한 사건은 그 내용의 진위는 물론이거니와 그 사건의 존재 유무도 검증된 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최진실이 이 소문을 '악랄한 음해'라고 했다는 것은 진실임이 입증되었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은 공개적으로 이혼할 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취하였는데 이는 이 '악랄한 음모'를 처리하는 카드이기도 하였다. 또 따로 짚어야 할 것은 유재순의 이 기사 내용에 의하면 조성민이 최진실을 대상으로 폭력 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인데 어차피 조성민의 폭력성은 임신부 최진실을 폭행하고 같은 대상을 2년 후 또 폭행함으로써 입증되었기 때문에 굳이 검증되지 않은 소문을 가져와서 조성민의 폭력성을 말할 필요가 없었다는 점이다. 조성민의 폭력성은 대한민국 국민이 모두 주목하는 와중에도 드러낸 폭력성이었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유재순은 같은 기사에서 조성민의 직업이 운동선수라는 것을 강조했으면도 조성민이 최진실보다 체격과 완력이 우위인 상태에서 최진실을 상대로 이 폭력을 저질렀다는 것은 언급하지도 않았다. 요약을 하자면 유재순과 조성민의 행태는 여론 조작은 100% 날조를 통해서도 이루어지지만 실제 있었던 사실을 일부 왜곡시켜서도 가능한 행위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즉 피해자 최진실은 가해자 조성민에 대해 일방적 피해자임이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입증되었지만, 가해자 편에 서서 역할을 한 유재순과 가해자 조성민의 여론 조작에 의해 최진실이 일방적 피해자가 아닐 수도 있다는 대중 세뇌가 이루어진 셈이었다. 조성민은 이런 설계 속에서 최진실과의 이혼 후에도 그 여론 조작의 흐름을 이어갔고 최진실 사망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545. 최강민에 따르면 아동 인권, 연예인 인권, 여성 인권을 수호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최진실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리고 최진실은 그저 '버리짐의 트라우마'에 제정신이 아니었고 특정 남자에 미친 여자였을 따름이었다. 최강민의 이러한 사고체계는 최진실을 의부증 환자로 몰았던 가해자 조성민의 노림수와 맞아떨어지는 것이었다. 최강민은 가해자 조성민이 원한 바대로 잘 처신해 주었다. 최강민은 가해자와 같은 편에 서서 글을 써내려갔다. 또 최강민은 그저 성적으로 문란했던 가해자 조성민에 대해 연상의 여자에게 편안함을 느낀다는 설명을 늘어놓으며 피해자 최진실을 웃음거리로 만들어 놓기도 했다. 이에 그렇게 편안함을 추구한 가해자 조성민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소송을 제기한 피해자 최진실은 졸지에 남의 편안함을 방해한 인물이 되었다. 최강민의 이런 행태는 가해자 조성민이 첫 번째 혼인 상태에서 연하의 여자와 정조 의무 위반을 저질렀고 이후 그 여자와 재혼을 했다면 배우자 선택에 있어 자신이 분석을 해보니 가해자 조성민은 연상의 여자와 연하의 여자 모두에게 편안함을 느낀다는 결론을 도출한다는 논리였다. 왜 이런 결론을 굳이 도출하고 있는지가 최강민의 포지션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였다. 물론 최강민은 가해자 조성민과 한 편에 서있기 때문에 이때는 연하의 여자에게 편안함을 느껴 정조 의무를 위반했다고 두둔해 주었을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자식들의 등에 칼을 꽂으며 맺은 인간관계에 대해 편안함 운운 하는 최강민의 정신 세계는 어떤 트라우마가 있기에 가능한 것인지 의문을 갖게 하기도 하였다. 최진실을 다루는 글에 이런 상관없는 서술을 한 것도 지적되어야 할 지점이지만 이것이 위법을 교묘하게 물타기하는 맥락으로 역할하기 때문에 최강민의 노림수는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정조 의무 위반 가해자를 갑에 포지셔닝하는 교활한 술수였다. 연상의 이성과 혼인을 하여 정조 의무를 잘 준수했던 혼인자가 성격 차이로 그 혼인에 대해 이혼을 하며 비혼자로 복귀를 하였다가 다른 연상의 이성과 재혼을 한 경우에나 겨우 갖다댈 수 있는 이야기를 위법행위자에게 적용한 것은 최강민의 의도를 잘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조성민은 5살 연상의 첫 번째 배우자에 대해서는 폭력을 비롯해서 온갖 못된 짓을 저질렀었고 3살 연상의 두 번째 배우자는 조성민이 첫 번째 혼인 상태일 때 정조 의무 위반을 저질렀던 대상이자 첫 번째 배우자를 대상으로 여론 조작을 하고 다닐 때 공범이었는데 여기서 조성민의 배우자 선택 기준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며 조성민이 연상의 여성에게 편안함을 느낀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객관적 근거가 무엇인지 최강민의 정신 세계에 의구심을 가질 수 밖에 없고 최강민은 어떤 트라우마가 있기에 이런 사고 메커니즘이 가능할 수 있었는지 최진실을 '버려짐의 트라우마' 소유자로 규정한 최강민의 프레이밍을 그대로 본인에게 적용해 볼 수 있다. 최강민 본인은 편안함을 느끼는 상대에게 폭력을 저지르고 온갖 못된 짓을 저지른다는 뜻이자, 편안함을 느끼는 상대와 위법을 저지르고 자식들을 위기에 빠뜨리기도 한다는 뜻이기도 하였다. 최강민은 조성민이 유명인이자 배우자인 임신부를 폭행한 것과 그 임신부를 2년 후에 또 폭행한 것, 조성민이 유명인이자 임신부인 배우자를 두고 정조 의무를 위반한 것, 조성민이 유명인이자 임신부인 배우자를 모함하고 다닌 것, 조성민이 유명인이자 임신부인 배우자와 이혼하고 싶다고 떠들고 다닌 것에 대해 정신병리적 해석을 내놓아야 했지만 그렇게는 하지 않고 오히려 그런 비상식적 행태에 대해 합리적으로 대응한 피해자 최진실만 정신병리적 해석의 대상으로 삼았다. 임신부 최진실이 임신 8개월 시점에 이혼하고 싶다고 떠들고 다녔거나 정조 의무를 위반하고 다녔다면 최강민은 역시나 '버려짐의 트라우마'를 거론하며 최진실의 정신병리성을 문제삼았을 가능성이 크다. 최강민의 이런 처신은 천동설을 주장하는 사람이 정상인으로 취급되고 지동설을 주장하는 사람이 미치광이가 되었던 중세 말기의 세계사적 상황을 연상시키는 행태였다. 또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수호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사람을 두고 '버려짐의 트라우마' 운운 하는 평가를 한 최강민의 논리대로라면 노동자 인권을 수호하기 위해 애썼던 인권운동가 전태일도 '버려짐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세상을 떠난 사람이 안될 이유가 없었다. 최강민의 논리대로라면 전태일도 대학교를 찾아가 대학생 친구를 만들거나 변호사를 찾아가 함께 행동을 했으면 되었는데 세상의 외면으로 인한 '버리짐의 트라우마'를 겪다가 분신한 것이 된다. 최강민은 인권 침해 사건에 대해 '버려짐'이라는 용어를 쓰며 피해자의 능동적 문제의식을 수동적인 것으로 변질시켰다. 이는 사회적 약자를 처리하는 기득권 사회의 전형적인 행태였고 젠더폭력에서 가해자의 편을 드는 남성들의 전형적인 모습이기도 하였다. 최강민은 또한 1973년 5월 성폭행 피해자에게 성폭행 가해자와 결혼하라고 한 대구 고등법원 형사부 판사들과 유사한 정신 세계를 가졌음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최강민은 폭행 가해자와 폭행 피해자의 결혼이 해피엔딩인 양 스토리라인을 잡고 글을 전개시키며 폭행 피해자 최진실의 삶을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546. 이민영·강신. (혐오에 빠진 대한민국) "돈·권력의 시대.. 약자에 분노 표출". 서울신문. 2016년 5월 30일.
  547. 사생활 침해는 개인과 관련된 여러 가지 정보(성별, 주소, 나이, 재산정도, 학력, 취미 등)들이 다른 사람에게 노출되거나 악용되는 것을 뜻한다.
  548. 반론권은 정기간행물이나 방송 등에서 공표된 사실적 주장에 의하여 피해를 입은 자가 발행인이나 방송사업자에게 서면으로 반론보도문을 게재해 주거나 반론보도를 방송해 줄 것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549. 주진우. "조성민이 아이 포기한 날 진실이는 통곡했다". 시사IN. 2008년 11월 3일.
  550. 최진실, 조성민·스포츠지 상대 고소. YTN. 2003년 10월 27일.
  551. 최진실, 9시간 인터뷰(주부생활 2004년 1월호). 국립중앙도서관.
  552. 모성 보호헌법 제36조에서도 규정하는 개념이다.
  553. 이영미. (책과 길)21세기 미디어,권력도구서 대중의 무기로… 미디어 바이러스. 국민일보. 2003년 1월 16일.
  554. 그만 해라, 고마 해라, 그만 하랑께…. 주간한국. 2003년 12월 10일.
  555. 김종창. 온몸으로 말거는 연기자 -김종창. 씨네21. 2008년 10월 21일.
  556. 김보협. ‘최진실에 덮어씌우기’ 이상하다. 한겨레21. 2004년 12월 10일.
  557. 오한숙희. 여성 연예인에게는 여성학이 필요하다. 시사IN. 2008년 10월 7일(56호).
  558. 여성의 권리에 대한 인식 국제 비교. EAI 여론브리핑 21호. 2008년 3월 7일.
  559. 이혼여성·미망인 차별 문제 나라별 인식 차, 한국인이 가장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 EAI 여론브리핑 34호. 2008년 6월 24일.
  560. 민노씨. 송원섭, 박수나를 조롱하다:자기배반과 사이비 오리엔탈리즘. 민노씨.네. 2008년 10월 24일.
  561. 대한민국 인터넷상에서 일부 네티즌은 익명성을 방패 삼아 무책임하고 무자비한 공격성을 띠는 '마초이즘'을 드러내고, 대한민국은 대표적인 부권제 국가로서 문화예술계·재계·언론계·대중 등 도처에 '여성에 대한 보수성과 남성우월주의'가 퍼져 있어 여성 유명인도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562. 조현호. 스포츠지 비수기 '최진실'로 때우나. 미디어오늘. 2003년 1월 7일.
  563. "이경실씨 사건, 가십거리 삼지마라". 오마이뉴스. 2003년 2월 13일.
  564. 이영태. "이경실 폭행사건이 가십거리인가" - (미디어비평) 스포츠신문들의 비윤리적 보도태도. 프레시안. 2003년 2월 14일.
  565. 김선주. 모든 폭력은 똑같다. 한겨레신문. 2003년 2월 13일.
  566. 이정국. 악플러만 잘못? 지상파 연예정보가 더 문제. 한겨레. 2007년 1월 27일.
  567. 조범자. 이상호 기자, 김장훈-싸이 전말 공개 "자살 재시도 의사에…". 헤럴드경제. 2012년 10월 9일.
  568. 이하나. 지역사회 개입이 ‘가정폭력=범죄’로 인식 바꿨다. 여성신문. 2015년 9월 9일.
  569. 유성애. "강간범은 남자" 말 못하는 미디어의 속사정. 오마이뉴스. 2015년 9월 16일.
  570. 홍제성. 최진실, 조성민ㆍ스포츠지 상대 고소. 연합뉴스. 2003년 10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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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72. 위자료(위자료청구권)의 개념
  573. 최진실이 조성민에게 이혼합의서를 건넨 것은 조성민이 자신을 대상으로 합의이혼절차를 밟을 길을 열어주는 행동이었다.
  574. 최진실이 조성민에게 이혼합의서를 건넨 것은 이 이혼합의서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조성민이 자신을 대상으로 소송이혼절차를 밟을 길을 열어주는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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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78. 배선영. '대찬인생', 고(故) 최진실 사망 6주기 특집, 파란만장 인생 되돌아본다. 텐아시아. 2014년 9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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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3. 오형주. "싱글맘이 무슨 버스 운전.." 시내버스 채용 차별 논란. 한국경제. 2014년 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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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5. 엄수아. 여성 변호사들이 본 가족정책, '진짜 가족'은 배제. 여성신문. 2014년 11월 12일.
  586. 동거 비난 말라! 유연한 결합, 출산율 올린다. 프레시안. 2014년 11월 26일.
  587. 동아일보 기자 황호택은 최진실로부터 직접 이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진실 사망 직후인 2008년 10월 10일 최진실을 마치 광인(狂人)인 양 해석하는 칼럼을 썼다. 황호택은 이 칼럼에서 피해자 최진실이 자신을 향해 적개심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며 모함하고 다닌 가해자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했던 사람인 양 해석했다. 황호택은 2005년 인터뷰에서 최진실에게 재결합 운운 했었고 이에 최진실은 재결합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대답한 바 있는데도 최진실이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했다고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글을 최진실 사망 후에 썼던 것이다. 이를 통해 가해자 조성민이 피해자 최진실에게 저지른 갖은 위법이 은폐되는 효과를 낳았다. 젠더권력을 획득한 가해자 혹은그 가해자 편에 선 자들의 발언은 이런 식으로 피해자의 목소리를 빼앗았다. 더구나 가해자 편에 선 존재가 언론이라면 피해자의 목소리는 빼앗기는 것을 넘어 피해자의 뜻과 정반대의 것이 대중에게 전달될 수 있다. 더구나 황호택은 2005년 인터뷰 기사에서 이혼해서 남남인 조성민의 사진이 거실에 없다는 둥 비상식적인 언급을 하기도 했었다. 이는 황호택이 최진실이라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황호택은 최진실이 아동의 법률행위대리권자로서 아동의 입장에 서서 한 행동에 대해 마치 누군가에 대한 애정 표현인 것처럼 해석을 함으로써 '위법 문제'를 '남녀 간의 애정 문제'인 양 여기게끔 하여 대중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글을 썼던 것이다. 이렇게 '위법 문제'를 '남녀 간의 애정 문제'로 프레이밍한 것은 가해자 조성민이었는데, 조성민은 2002년 12월부터 최진실을 의부증 환자로 모는 여론 조작을 시작했었고, 2004년 8월에도 자신이 저지른 폭력 행위와 관련해서 말하고 다닐 때 쌍방폭행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더불어 피해자 최진실이 자신의 여자 문제를 거론했었다는 거짓말을 하며 여론 조작을 했으며, 2008년 10월 여성잡지를 통해서도 최환희와 최준희에 대해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위법적 행위에 대해 자신의 두 번째 배우자에게 미안한 일이어서 그 짓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며 자신의 애정 행각과 법적인 의무를 엮어서 '위법 문제'를 '남녀 간의 애정 문제'로 프레이밍을 했었다. 황호택은 이러한 조성민의 프레이밍을 충실히 따랐던 셈이었다. 배우자의 정조 의무 위반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은 모든 혼인자의 법적인 권리였고 최진실 또한 그러한 자유와 권리를 누렸던 것이고, 최진실은 이혼과 관련해서는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 밟으라는 입장을 취했었다. 조성민은 같은 행동을 이혼 후에 비혼자로서 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혼인자 상태에서 배우자 이외의 이성과 연애 행위를 했던 것이고 그 행위는 위법한 것이라서 피해자 최진실은 그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이었다. 이러한 최진실의 행동은 조성민에 대한 애정 유무와 상관없는 자신의 법적인 권리를 누린 것일 뿐이었다. 또 조성민은 최진실을 대상으로 이혼 청구 소송 절차상 법원에 서류 접수조차 하지 못함으로써 최진실이 의부증 환자라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지도 못했었다. 비양육친이 면접교섭의 의무 불이행으로 아동을 위기에 빠뜨리는 경우에는 비양육친이 정상인인 경우보다 양육친이 그 아동의 복리에 대해 더 관심을 쏟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최진실 또한 그러했다. 최진실은 이혼 후에도 최환희와 최준희가 자신의 이혼에 대해 불편감을 가질 수 있는 입장임을 고려하여 혼인 관련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며 성의를 표시하였고, 최환희와 최준희는 머지않은 미래에 자신들의 어머니에게 일어난 일을 뉴스 기사 등을 통해 복기를 하게 되어 있고 최진실 또한 언론을 상대함에 있어 그것을 염두에 두고 언행을 하였다. 황호택이 가해자 조성민을 편들어 주는 역할을 하는 칼럼을 쓴 것은 최환희와 최준희를 위기에 빠뜨리는 일이기도 한 셈이었다. 황호택이 피해자 최진실의 본심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일은 그 자체로 최환희와 최준희의 어머니에 대한 모욕인 셈이기 때문이다. 최진실은 2002년부터 자신을 대상으로 여론 조작을 하고 다니는 조성민을 향해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대응한 인물이었다. 다만 아동의 친권자로서 2살의 최환희와 태아 최준희가 자신의 이혼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일 수 있음을 상정하였기 때문에 최진실은 이혼 숙려 기간을 충분히 가지는 모양새를 취하며 그들의 입장에 성의를 표시하는 행동을 보였을 따름이었다. 이런 사실은 2005년 황호택이 최진실을 인터뷰했을 때 최진실이 황호택에게 밝힌 바였다. 즉 햇수로 3년 동안 이혼 숙려 기간을 가진 것은 어머니로서 최선을 다한 행동이었었다고 최진실은 밝혔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황호택은 가해자 조성민이 좋아할 만하게, 가해자 조성민에게 유리하게 여론이 흐르도록, 최진실의 정신세계에 대한 해석을 내놓으며 가해자 조성민의 편에 서는 모습을 취했다. 황호택이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을 배우자 삼고 싶어 한 사람인 양 집요하리만치 주장한 행태는 가해자 조성민에게 면죄부를 주는 효과를 유도하는 행태였는데 이는 강간 가해자가 강간 피해자와 결혼에 합의를 하게 되면 강간 혐의를 벗겨주는 요르단의 사법기관의 행태와 통하는 면이 있었다. 황호택은 증권사 직원들의 여론 조작으로 인해 사망한 최진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현하는 이 칼럼에서,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을 상대로 여론 조작을 저질렀고 그 흐름을 2008년에도 이어갔던 조성민 편에 서서 글을 쓰는 모양새를 취함으로써 죽은 피해자 최진실을 조롱했던 셈이다. 여론 조작으로 사망한 최진실을 두고 최진실이 여론 조작 행위자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했다고 굳이 해석하는 칼럼을 쓴 것은 여론 조작의 고통을 토로하며 죽어갔던 최진실의 죽음을 희화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황호택은 2005년 인터뷰에서 조성민의 여론 조작임이 검증된 내용에 대해 마치 검증되지 않은 내용인 것처럼 과거 조성민의 비방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최진실에게 물었었다. 또 황호택은 같은 칼럼에서 2004년 8월에 발생한 최진실에 대한 조성민의 일방적 폭력 행위에 대해 통상 쌍방 폭행을 의미하는 '육박전'이라는 용어를 쓰며 사건의 본질을 물타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폭력 행위를 쌍방 폭행이라고 말하고 다닌 것도 가해자 조성민이었고 이에 황호택은 가해자의 입이 되어 글을 쓴 셈이었다. 즉 2008년 10월 10일의 황호택은 특정 범죄사건을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해석을 해주고 피해자의 말도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침소봉대하여 혹은 왜곡하여 해석을 해준 셈이었다. 다른 측면에서 동아일보 논설위원 황호택의 이러한 행동은 최진실에 대한 조성민의 여론 조작이 어느 정도까지 대한민국 사회에 먹혔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기도 하였다. 더불어 젠더폭력 가해자에게 우호적인 사회 분위기도 보여주는 예였다. 이는 대한민국이 젠더폭력 피해자에게 잔인한 사회임을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황호택은 최진실의 자택을 방문하여 최진실을 인터뷰하며 젠더폭력과 관련하여 최진실이 토로하는 고통을 직접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 측에 서서 글을 썼기 때문이다. 황호택이 2005년에 최진실과 인터뷰할 수 있었던 것은 변호사 강지원을 통해서라고 황호택 본인이 밝혔으면서도 이 사안의 본질은 망각한 채 이런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인권변호사 강지원은 2004년 8월에 조성민이 최진실을 향해 저지른 폭력 행위와 관련하여 광고주가 폭행 피해자인 광고 모델 최진실을 대상으로 소송 제기를 한 사건에 대해 같은 해 12월에 최진실의 편에 서서 변호를 맡은 인물이었다. 최진실은 조성민의 폭력 행위로 인해 신체적 상처를 입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제3자로부터 소송도 당한 입장이었던 것인데,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한 사람이라고 글을 쓴 것은 황호택은 최진실을 광인(狂人)이라고 여겼다는 뜻과 다르지 않았다. 더구나 조성민은 이 폭행 사건을 쌍방 폭행이라고 말하고 다녔고 황호택 또한 그 말을 그대로 되풀이 했는데, 이는 폭행범이라고 모함당한 피해자 최진실이 자신을 폭행범이라고 말하고 다닌 가해자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했다고 한 것이기도 하기에 더욱 더 황호택이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여겼다는 뜻과 다르지 않았다. 더구나 조성민은 최진실뿐 아니라 최진실의 어머니 정옥숙, 최진실의 동생 최진영, 최진실의 자녀 최환희와 최준희도 위기에 빠뜨린 인물이기 때문에 황호택이 굳이 이러한 해석을 한 것은 더욱 더 이해불가한 것이었다. 또 최진실이 폭행범이라는 조성민의 주장은 법적으로 입증된 바가 없기 때문에 허위의 주장인 것이었고 이에 황호택이 조성민의 주장을 그대로 되풀이 한 것도 가해자 편에 선 것이나 진배없었다. 이는 황호택은 최진실 사망 후에도 조성민의 여론 조작에 인공호흡기를 대주는 행동을 한 셈이었다. 이 폭력 행위는 최진실이 일방적 피해자임이 법적으로 확인된 것이었다. 광고주는 피해자 최진실이 범죄 현장을 언론에 공개한 것을 문제삼은 것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인권변호사가 최진실을 도왔던 것이었다. 그런데 황호택은 마치 폭력 행위의 진위가 규명되지 않은 것처럼 2005년 인터뷰 당시 최진실에게 쌍방 폭행 운운 하며 이 폭행 사건에 대해 물었었고 최진실 사망 후에는 같은 맥락으로 글을 써서 죽은 최진실을 부관참시하는 것과 진배없는 행동을 하였다. 이것이 최진실에 대한 부관참시와 진배없는 행태인 이유는 최진실이 이 범죄 현장을 언론에 공개한 것이 조성민의 쌍방 폭행 운운하는 여론 조작 때문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최진실 본인이 여성중앙 2007년 6월호를 통해 폭력적인 사람은 피하는 게 좋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하면서 자신이 정상인임을 확실히 한 바 있었다. 그런데도 황호택 같은 사람은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치고 이야기를 이어가며 최진실의 인격 따위는 무시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행태를 보였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자신을 광인(狂人)으로 만들어가는 세상과 싸우느라 힘들다는 표현을 비망록에도 남긴 바 있는데, 조성민은 최진실을 의부증 환자로 모는 여론 조작을 하면서 최진실을 미치광이로 몬 주동 인물이었다. 그러했음에도 불구하고 황호택은 자신을 광인(狂人)으로 몬 남자와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하는 사람으로 최진실을 해석하는 글을 굳이 쓴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상식적인 부모 대부분은 이혼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면 '자식의 동의'라는 절차를 밟거나 자식이 결혼을 한 후에 이혼을 하거나 하면서 자식에게 소위 '정상적인 가정'을 지켜주기 위한 모양새를 취하는데, 최진실 또한 그런 맥락의 태도를 취한 것이었고 황호택은 그런 맥락을 충분히 알 만한 위치의 인물이면서도 마치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에게 애정이 있어서 이혼에 대해 부정적인 모습을 보인 것처럼 해석하며 가해자 조성민을 기분좋게 하는 글을 썼던 셈이었다. 이는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애정이 있다는 말을 대중에게 세뇌하고 있는 셈이었고 이를 통해 대중이 피해자를 비하하게 하고 가해자를 비난하는 강도를 낮추게 하는 효과를 낳았다.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는 주장은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한 것처럼 대중이 여기게끔 만들 수 있는 행태였고 이는 제3자는 해당 가해자를 비난할 근거가 없다라고 말하는 것이나 진배없었다. 젠더폭력의 피해자는 절대 다수가 여성이고 가해자는 절대 다수가 남성인 상황에서 언론인 황호택이 보인 이러한 행태는 결국 여성은 사리분별력 없는 존재로 비하하고 남성은 위법을 저질러도 비호받도록 하는 사회 분위기 조성인 셈이었다. 조성민이 최진실을 유책배우자라고 주장한 것도 조성민이 최진실을 대상으로 이혼 청구 소송을 제기하지 못한 것으로 진위가 규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005년 인터뷰 당시 황호택은 조성민이 최진실을 유책배우자라고 주장한 내용을 또 최진실에게 묻는 무례함을 보였었다. 또 최진실이 폭행범이라는 주장은 동기의 측면에서도 해당사항이 없었던 것이, 최진실은 당시 두 건의 광고 계약을 맺고 있어서 위법을 저지를 동기가 없었고 2002년부터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한 입장이어서 더욱 더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었다. 황호택이 최진실을 통해 보여준 이 모든 상황은 조성민과 조성민의 두 번째 배우자가 여론 조작을 통해 노린 바나 다름없었고 황호택은 조성민 부부가 노린 바대로 움직인 셈이었으며 조성민에 대해 최진실이 일방적인 피해자라는 검증된 사실관계를 대중이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드는 일에 일조하는 셈이었다. 이런 사회 분위기 덕분에 최진실 사망 후에도 조성민은 2004년 8월의 폭력 행위에 대해 여론 조작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팀을 이뤄 최진실을 가해자로 몰면서도 조성민 부부가 정작 경찰서나 법원은 가지 못하고 기자들만 상대했던 것은 이 모든 상황을 노리고 한 행동이었던 셈이었다. 이를 통해 피해자 최진실은 마치 가해자인 양 대한민국 사회로부터 공격을 받았었고 황호택의 행동은 그 상황을 간접적으로 말해주는 예였다. 조성민과 조성민의 두 번째 배우자는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사업파트너 사이라고 말하고 다녔고 경찰서나 법원은 가지 못하고 기자들만 상대하며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만들어가는 팀이었는데, 이러한 노이즈 마케팅은 황호택 같은 사람들 덕분에 일시적으로 성공적이었고 이에 조성민은 2008년 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해 자신의 배우자의 사업 수완과 연예계 인맥을 과시하기도 하였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조성민은 최진실과 관련한 기사 거리를 던져주며 기자들과 협력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고, 그런 상황 속에서 기자들은 조성민의 말을 사실 검증 없이 받아 써주어 최진실은 광인(狂人)이 되었으며, 조성민은 피해자로 포지셔닝하였다. 이렇게 조성민은 거물급 연예인 최진실에 대한 혐오 세력의 대표 주자가 되어 공개적으로 활동을 하였고 혐오 세력의 다른 한 축인 포털 사이트 다음의 '안티최진실카페'는 최진실 사망 직전까지도 카페 웹사이트 첫 화면에 조성민에게 폭행당해 얼굴이 멍든 최진실의 사진을 걸어두고 최진실을 조롱하며 조성민과 협력 관계를 유지했다. 이런 설계 속에서 2008년 9월 최진실이 악덕 사채업자라는 소문이 대한민국 전역으로 퍼졌고 이 무렵 조성민은 여성잡지 두 군데와 인터뷰를 하며 최진실과 관련하여 피해자 행세를 이어갔다. 이 인터뷰에서 조성민은 최환희와 최준희를 위기에 빠뜨리는 말도 하였는데 이는 최진실을 향해 또 공격을 개시한 것으로 이에 최진실은 문자메시지를 통해 조성민에게 경고를 보냈었다. 하지만 조성민은 그 경고를 무시한 채 최진실 사망 후 또 최환희와 최준희를 위기에 빠뜨리는 행동을 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심각하게 배척되었고 그 여파 속에 두 번째 이혼하였으며 자살도 하였다. 최환희와 최준희는 어머니 최진실의 사망으로 최진실의 재산을 물려받게 되었는데, 자신들의 양육자들을 상대로 사기를 친 전적이 있던 조성민이 자신들의 재산을 관리하는 일에 대해 권리를 행사하려고 하면서 이들은 위기에 처했었다. 한편 조성민은 죽기 직전에도 여전히 남 탓을 하며 피해자 행세하는 것을 잊지 않아 죽을 때까지 개과천선은 없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황호택 같은 인물들을 믿고 한 행동이라고 봐도 무방했는데, 조성민 사망 후 대중문화 전문 기자 백현주가 보여준 행동이 좋은 예였다. 또 조성민은 사망 직전 성인 남성과 관련하여 폭행 사건의 주인공이기도 하였는데, 조성민이 이 폭행 사건의 피해자이든 가해자이든 조성민에 대한 사회적 평가와 관련해서 크게 달라질 게 없었던 것이, 조성민은 2002년 12월 본인 입으로 자신이 임신부 폭행범이라고 자백했었고 그러고도 피해자 최진실을 탓하고 모함하며 잘 살았었고, 2004년에 또 최진실을 폭행하였고 그 후에도 최진실의 자녀에 대한 법적인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으며 더 나아가 2008년 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해 그 법적인 의무를 이행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당당하게 살았었기 때문이다. 한편 조성민의 사망 장소는 지인의 집이었는데, 이 사망 사건 바로 직전 그 집 주인은 자신을 방문한 조성민에게 연인 관계를 끝내자는 말을 했었고 이후 그 집 주인은 잠시 외출을 하였는데 그 틈에 그 집에서 조성민은 자살을 한 것이었다. 또 조성민은 자신의 재산을 모두 자신의 누나 조성미에게 남긴다는 유서를 남겼는데, 그 이유로 법적인 분쟁을 들었다. 굳이 그런 유서를 남기지 않았으면 민법상 그 재산은 최환희와 최준희가 물려받도록 되어 있었고 이 두 아동의 재산관리권자가 법적으로 지정되어 있는 상태여서 법적인 분쟁도 일어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법적인 분쟁 운운은 궤변일 뿐이었다. 최진실의 사망으로 최환희와 최준희가 최진실의 재산을 물려받자 조성민은 그 재산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을 담은 보도 자료를 기자들에게 돌렸었는데, 그 마음대로라면 자신의 재산을 최환희와 최준희에게 물려주고도 남아야 하나 실상은 자신의 재산이 최환희와 최준희에게 흘러가는 것을 막는 행동을 했을 뿐이었다. 또 조성민 사망 후에는 조성민의 어머니와 누나가 피해자 최진실을 가해자 조성민에게 애정을 가진 광인(狂人)으로 모는 일에 앞장서서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을 상대로 저지른 조성민의 위법행위를 희석시키며 사안의 본질을 호도하였고, 이와 더불어 조성민처럼 피해자 행세도 하였다. 최진실은 여론 조작으로 사망한 것이고 이에 최진실의 연예계 활동 기간 20년 동안 이 여론 조작에 가담한 모든 사람들이 이 사망 사건의 가해자였다. 그러므로 조성민 집안에 대한 대중의 부정적 평가에는 객관적 근거가 있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짚어야 할 것은 조성미가 조성민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에는 조성민이 정옥숙과 최진영을 대상으로 사기를 쳐서 챙긴 돈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요약을 하자면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친 기간 동안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에게 애정을 가지는 광기를 가졌든, 안 가졌든 최진실이 조성민에게 위법을 저지른 바 없고, 가해자 조성민 편에 서서 사고하는 사람들 말대로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에게 애정을 가지는 광기를 가졌다고쳐도 그것은 전문가로부터 심리치료를 받으면 되는 사안이었으며, 무엇보다 최진실은 2007년 6월 '폭력적인 사람은 피하게 좋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남겨둠으로써 이런 사람들이 나서서 자신을 모욕하는 문제를 해결했다. 이렇게 해결된 문제에 대해 황호택은 해결이 안된 문제인 양 자기 멋대로 치부한 채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모는 글을 최진실 사망 후 소위 최진실을 추모한다고 쓴 칼럼에서 서술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황호택의 행동은 2005년에 최진실이 왜 황호택에게 '있는 그대로 잘 써주세요'라고 굳이 말했었는지를 말해주는 예가 되기도 했다. 황호택은 2008년 10월 10일 칼럼에서 강지원 변호사의 말을 빌려 심리치료 운운 했으나 최진실의 언행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는 황호택 같은 인물이 최진실이 심리치료를 한다고해서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게 상식이다. 황호택은 '안티최진실카페' 등의 발호에 불편감을 가졌던 최진실이 전문가로부터 심리치료를 받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었다고 강지원이 말했다고 했는데, 상식적으로 최진실도 심리치료가 사안의 근본 해결책이 되지 못하는 대증요법에 불과함을 알았다고 보아야 하고 이에 그런 식으로 에둘러서 표현한 것이라고봐도 무방했다. 왜냐하면 '안티최진실카페'나 황호택 같은 인물의 여론 조작 행태가 최진실이 심리치료를 받는다고해서 사라질 리가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황호택의 경우는 최진실로부터 직접 말을 들었고 그게 자기 이름을 건 인터뷰 기사로 남아있는데도 최진실의 말과 다른 이야기를 유포하는 뻔뻔한 여론 조작 행태를 보인 인물이기도 하였고 이에 심리치료는 최진실이 아니라 황호택 같은 인물이 받아야 정상적인 상황이었다. 2008년 10월 10일 황호택의 칼럼에 따르면 여론 조작 피해자 최진실은 황호택에 의해 여론 조작 가해자와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한 광인(狂人)으로 규정되었고 여론 조작 행위자 황호택은 여론 조작에 분노한 피해자 최진실을 두고 치료 운운 하는 상황이었던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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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2. 한승동·김태형. 자살은 '소통'을 위한 마지막 몸짓?. 한겨레신문. 2010년 5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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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4. 유충환. 故 최진실 씨 사건, 최초 유포자 못찾아‥수사종결. MBC. 2008년 10월 7일.
  615. 안효은. '최진실 사채설' 유포자들, 모두 증권사 직원…1명 명예훼손 혐의로 입건. 마이데일리. 2008년 10월 7일.
  616. 양일혁. 故 최진실씨 괴담 수사 사실상 마무리. YTN. 2008년 10월 8일.
  617. 조진형. 찌라시 '필요악'인가 ‥ 치열한 정보전쟁이 만든 '두 얼굴의 X파일'. 한국경제. 기사입력 2008년 10월 15일. 최종수정 2008년 10월 16일.
  618. 김용국. 댓글맨 유쾌한씨가 전과자 된 까닭. 오마이뉴스. 2009년 11월 18일.
  619. 류호성. (Cover Story) 찌라시와의 전쟁… B씨→A씨, C씨→B씨, D씨→C씨… 첫 유포자는?. 한국일보. 2013년 12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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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1. (한수진의 SBS 전망대)"찌라시 만든사람, 돌린사람 둘다 처벌가능". SBS. 2016년 3월 24일.
  622. 망치부인(깜짝생방송/공덕역이 뭐?/인증방폭1번째). 망치부인의 생방송 시사 수다방. 2012년 6월 10일.
  623. 망치부인(공덕역실종사건/친박네트워크의 실체/박철봉) 방송 1편. 망치부인의 생방송 시사 수다방. 2012년 6월 11일.
  624. 망치부인(공덕역 여론조작실체/트윗봇들의 실체/인증방폭) 방송 1편. 망치부인의 생방송 시사 수다방. 2012년 6월 14일.
  625. 망치부인(공덕역 사건 여론조작증거/인증방폭증거) 방송 2편. 망치부인의 생방송 시사 수다방. 2012년 6월 14일.
  626. 삼인성호
  627. '최진실 사채설' 유포자 신상 노출…진원지는 해외. 동아일보. 2008년 10월 8일.
  628. 도병욱. '최진실 사채설' 유포자, 마녀사냥 우려. 오마이뉴스. 2008년 10월 9일.
  629. 이원홍. 고 최진실 루머 관련 백씨, 증권회사 사직. 동아일보. 2008년 10월 14일.
  630. 강지훈. '故 최진실 사채설' 유포자, 120시간 사회봉사 명령. 마이데일리. 2009년 6월 17일.
  631. 우혜영. ‘최진실 사채설’ 유포자, 항소심서 벌금 4천만 원. TV리포트. 2009년 12월 11일.
  632. '최진실 사채설' 괴담 유포자, 4천만 원 벌금형. SBS. 2009년 12월 11일.
  633. 오진영. ‘최진실 사채설’ 유포자, 4천만원 벌금형 선고. 폴리뉴스. 2009년 12월 11일.
  634. 안광석. 고 최진실 미니홈피, 30만 방문자 폭주.. 결국 서버 다운.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 2010년 7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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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36. 2008년 11월호 3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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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38. 박이은경. (독점 인터뷰) 광고주에 30억 원대 손해배상소송 당한 배우 최진실. 여성신문. 2004년 12월 3일(805호).
  639. 2002년 12월 조성민은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주장을 하며 이혼 문제를 떠벌리고 다녔다. 이에 최진실은 언어폭력의 피해자가 되었고 법적으로 조성민은 최진실의 배우자였기 때문에 이것 자체가 최진실이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된 사건이었다. 이혼 문제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도록 악의적으로 주동한 사람은 조성민이었다. 합법적 행위이지만 사회적으로 부정적 편견의 대상인 이혼에 대해 최진실은 이미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를 받으라고 말하는 입장이었고 이에 대해 조성민은 가정법원에 가서 소송이혼 절차를 밟은 것이 아니라 기자들을 상대하며 이혼하고 싶다고 하소연하며 피해자 행세를 하였던 것이다. 즉 최진실은 유책배우자도 아니었고 언론을 상대함에 있어 조성민의 여론 조작을 처리하는 행동을 했을 뿐이었다. 2년 후인 2004년 8월 최진실을 안심시키며 최진실의 자택 진입에 성공한 조성민이 최진실을 상대로 폭행을 저질렀고, 이 범죄 행위를 쌍방 폭행이라고 주장하는 조성민의 여론 조작을 바로잡기 위해 피해자 최진실이 범죄 현장을 언론에 공개한 것에 대해 광고주 <신한>은 책임을 물었다. 이혼은 합법적 행위이고 이혼 문제는 이미 2년 전에 가해자 조성민에 의해 널리 세상에 알려졌기 때문에 이혼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과 관련해서 피해자 최진실이 책임질 부분은 없었다. 최진실은 쌍방 폭행이라는 여론 조작을 처리하는 행동을 했을 뿐이었다. 이에 유엔 여성 차별 철폐 위원회 부위원장이라는 관련 분야 세계적 전문가도 <신한>의 소송 제기에 대해 시대 착오적이라고 판단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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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57. 최진실, "아이들 마음 다칠까 걱정, 노출 자제". SBS. 2008년 9월 4일.
  658. 대한민국호주제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과 2005년 3월의 법률 개정에 따라 2008년 1월 1일에 폐지되었다. 최재천은 현행 민법이 규정한 부계혈통주의가 사회적으로는 물론 생물학적으로도 모순임을 증명하여 헌법재판소의 호주제 위헌 판결을 이끌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는데, 최재천은 "세포가 사용하는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미토콘드리아DNA는 온전히 암컷으로부터 온다. 생물의 계통을 밝히는 연구에서는 철저하게 암컷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호주제의 근간으로 치부되는 부계혈통주의는 생물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주장이다"라며 정치·사회적 근거는 배제한 채 순수한 과학적 사실에만 입각해 호주제의 모순을 지적하여 '호주제의 헌법불합치' 판결을 이끌었다.
  659. 이경남. (피플 INSIDE)전노민 "故 최진실, 잊히는 게 안타까워"(동영상). enews24. 2012년 10월 18일.
  660. 윤영미. 서울 ‘나홀로’ 가구, 4인 가구 첫 추월. 한겨레. 2011년 8월 15일.
  661. 노진섭. ‘재혼 여자·초혼 남자’ 커플, 웨딩마치 늘어난다. 시사저널. 2011년 2월 9일.
  662. 안진용. 이혼·간통·싱글맘… 女스타들의 힘, 세상 바꿔!. 스포츠한국. 2008년 3월 10일.
  663. 김태은. 최진실 허수경 옥소리…新모계사회의 증후. 머니투데이. 2008년 2월 28일.
  664. 장미일. 최진실 씨 자녀 최 씨로 성변경. MBC. 2008년 5월 3l일.
  665. 싱글맘 최진실과의 1박 2일 인터뷰(퀸 2008년 7월호). 국립중앙도서관.
  666. 배국남. 허수경·최진실·신애라의 선택 의미는?. 마이데일리. 2008년 2월 23일.
  667. 한유나. '블로거와의 대화' 최문순편 리뷰 (한유나님 Ver 2.0). 독설닷컴. 2008년 10월 4일.
  668. 고재열. 최진실, 블로거들과 만났다면…. 고재열의 독설닷컴. 2008년 10월 4일.
  669. 이현아. 쇠고기 때문에… '불편한 진실'. 스포츠한국. 2008년 5월 30일.
  670. 이현아. 촛불문화제 소식에 가슴 먹먹… 거리로 나선 학생들도 안쓰럽고 의심하며 밥먹는게 화가나. 스포츠한국.
  671. 촛불방송 했던... 여비제이 스토킹 및 폭행사건. (아프리카TV)망치부인의 생방송 시사 수다방. 2012년 6월 22일.
  672. 이현아. 최진실 "독도가 일본 땅? 흥분하지 말고…". 스포츠한국. 2008년 7월 15일.
  673. '독도는 우리땅' 정광태, 일본에 입국 거부 당해. SBS. 2008년 7월 16일.
  674. 오광수. 저축의 날 대통령 표창장 받은 최진실, 어머니 포장마차서 근검 배워. 경향신문. 1992년 10월 28일.
  675. 김관명. 기아자동차, IMF, 그리고 故 최진실. 스타뉴스. 2008년 10월 8일.
  676. 한승주. 치솟는 몸값… CF 여왕 경쟁 뜨겁다. 국민일보. 2001월 7월 25일.
  677. 마태운. "연예인의 퍼블리시티권 보호돼야". 문화일보. 2003년 6월 17일.
  678. 장정화. (학회탐방)한국스포츠엔터테인먼트법학회. 법률신문. 2006년 8월 10일.
  679. 조진서. 내국기업 역차별 없애야 외국기업도 투자 활성화… 동북아 경제허브로 도약. 동아일보. 2012년 6월 21일.
  680. 배선영. 송혜교vsJ사 갈등 해결의 키워드 #퍼블리시티권 #PPL계약 #이미지회복. 스포츠조선. 2016년 5월 2일.
  681. 최진실, 한동대에 5천만 원 전달. 매일경제. 2002년 6월 13일.
  682. 남궁성우. 최진실, "청계산 오르며 몸 만들고 있어요". 노컷뉴스. 2005년 11월 25일.
  683. 산악계에서 안나푸르나 남벽은 로체(8516m) 남벽, 낭가파르바트(8125m) 루팔벽과 더불어 히말라야 산맥의 3대 난벽으로 꼽힌다.
  684. 박미애. 최진실 히말라야 여행기 "무지하면 용감하다고...". 뉴스엔. 2005년 12월 14일.
  685. 백혈병 환자와 '히말라야 등반'한 배우 최진실(퀸 2006년 1월호). 국립중앙도서관.
  686. 최진실의 히말라야 등반기(주부생활 2006년 1월호). 국립중앙도서관
  687. 김대오. 히말라야에 오르는 최진실, 그녀의 손에 들린 '첫사랑'. 노컷뉴스. 2005년 12월 1일.
  688. 김영현. 최진실, "눈 뜨면 걷고 먹고 또 걷고". 연합뉴스. 2005년 12월 15일.
  689. 김태은. 최진실, 연예인 최초 등반모임 만든다. 머니투데이. 2005년 12월 24일.
  690. 히말라야 산맥에서 가장 높은 산인 에베레스트 산티베트에서는 초모룽마(Chomo Lungma: 세계의 어머니)라고 불렸고, 네팔에서는 사가르마타(Sagarmatha: 하늘의 여신)라고 불렸다.
  691. '신 페미니스트' 현경 교수가 말하는 삶의 지침은?. 위키트리. 2014년 5월 12일.
  692. 네이버 책
  693. 최진실의 두 아이 교육법(주부생활 2006년 8월호). 국립중앙도서관.
  694. 맹순이 이후 1년 만에 돌아온 최진실 : 두 아이 키우면서 자전거로 7kg 다이어트 한 사연(주부생활 2007년 1월호). 국립중앙도서관.
  695. 톱스타 최진실의 크리스마스 하우스(여성중앙 2007년 12월호). 국립중앙도서관.
  696. 최진실, 인생 9단 풀 고백:아이·엄마·사랑에 관한 뜻밖의 반전 드라마(주부생활 2008년 3월호). 국립중앙도서관.
  697. 강기헌·장주영·이유정·정종문·장혁진. 스티브 잡스처럼 … 미·영 등 선진국선 입양·가정 위탁. 중앙일보. 2014년 4월 9일.
  698. 김광덕. (한국 시사토크) "현수처럼 고통 겪는 아동 많아… 해외 입양 결국은 사라져야". 한국일보. 2014년 3월 26일.
  699. 송옥진. "아이·엄마에게 평생 상처 해외 입양, 마지막 선택 돼야". 한국일보. 2014년 7월 18일.
  700. 2014년 현재, 아동 복지법에서 '아동'은 18세 미만의 사람을 이르는 말이고, 청소년 기본법에서 '청소년'은 9세 이상 24세 이하인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701. 김현록. 최진실, 결식 아동 돕기 캠프서 '사랑 나눔'. 스타뉴스. 2007년 7월 26일.
  702. 최진실 재단 설립 예정… 고인의 생전 뜻 살린 것!. 아이비타임즈. 2008년 11월 23일.
  703. 이희용. 최진실, 한동대에 지원금 5천만 원 전달. 연합뉴스. 2002년 6월 13일.
  704. 유숙. "故 최진실, 자녀 사랑했던 어머니. 세계 어린이 위한 일 꿈꿨는데. 이데일리. 2008년 10월 4일.
  705. 이현아. 오드리 헵번처럼! '최진실 재단' 팬 사랑 갚는다. 미주 한국일보. 2008년 11월 19일.
  706. 이현아. '최진실 재단' 드디어 기지개 펴다.한국일보. 2008년 12월 22일.
  707. 문완식. 故 최진실 영면, 갑산공원은 어떤 곳?. 스타뉴스. 2008년 10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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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0. 하종오. (출판)욕망, 광고, 소비의 문화사. 한국일보. 2001년 10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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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5. 영화 <남부군>
  726. 안정숙. '남부군' 산에서 내려오다. 한겨레. 1990년 5월 19일.
  727. 이재봉. "폭력과 섹스 판치는 할리우드 영화" 거부한 까닭?. 프레시안. 2015년 5월 22일.
  728. 젠더폭력이란 가부장제 사회문화와 남녀가 불평등한 관계에서 남성여성 사이에 발생하는 신체적·정신적·성적 폭력을 말한다. 성폭력(성희롱, 성추행, 강간), 가정폭력, 성매매 등이 대표적 예다. 피해자의 절대다수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성이다. 유엔은 젠더폭력을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고 이름 붙이고 1993년 12월 12일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여성에 대한 폭력 철폐 선언’을 채택했다.
  729. 박이은경. '한국여성인권운동사' 나왔다. 여성신문. 1999년 8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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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31. 김미량. "여성신문 18년은 한국 여성운동 18년의 산역사". 여성신문. 2006년 10월 20일.
  732. 이세아. ‘소수자의 대법관’ 김영란, 한국사회 10대 논쟁을 돌아보다. 여성신문. 2015년 12월 19일.
  733. 박이은경. (최진실 사건 보도 이후) 세상을 보는 눈 하나 더 갖게 돼 감사. 여성신문. 2004년 12월 24일(808호).
  734. 송현숙. 정대협, 국제기구 ‘V데이’와 해방 60년 캠페인. 경향신문. 2004년 12월 9일.
  735. 이언주. 공연계, '위안부 할머니'에게 따듯한 기부 행진. 머니투데이. 2011년 12월 15일.
  736. 이경아. 화제의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 '대학살의 신'. YTN. 2011년 12월 31일.
  737. 'Ma Non Tanto'는 악보에서 '그러나 너무 지나치지 아니하게'를 이르는 말이다.
  738. 오미정. 이은미 "내 노래 마니아 故 최진실, 생전에 결국 못 만났다". 노컷뉴스. 2009년 4월 30일.
  739. 애인 있어요... 이은미, 최진실... 그리고 Ma non tanto. 재경일보. 2008년 11월 29일.
  740. 남안우. 이은미의 '애인 있어요', 2009 최고 노래방 애창곡. 마이데일리. 2009년 12월 14일.
  741. 오르골(orgel)은 일정한 음악이 자동 연주되는 음악 완구이다.
  742. 이태문. 이은미, 日서 첫 팬미팅 열고 교감. 연합뉴스. 2012년 5월 23일.
  743. 2008년 7월 13일에 출연한 <윤피디의 더 인터뷰> 참고.
  744. 손효정. 故 최진실, 과거 발언 "아이들이 연기자로 행복하다면 찬성" 눈길. TV리포트. 2012년 9월 3일.
  745. 유지혜. (M+인터뷰①)‘위대한 유산’ PD “환희 섭외, 고민 많았다”. MBN. 2016년 2월 25일.
  746. 주철환. 여의도초대석5 - 주철환이 만난 사람 - 최진실. PD저널. 1997년 11월 13일.
  747. 문석. '실종'으로 6년만에 영화에 복귀하는 최진실. 씨네21. 2006년 4월 24일.
  748. 조현정. 최진실 "김기덕 감독 영화에 출연하고파…". 스포츠서울. 2006년 1월 24일.
  749. 남궁성우. 최진실, "일일드라마는 해병대 극기훈련 같은 것". 노컷뉴스. 2007년 7월 11일.
  750. 민현희. "뉴스 기사에 달리는 댓글 독자 인식에 영향". 한국대학신문. 2012년 12월 20일.
  751. 두경아. 망가질수록 인기몰이! 최진실 제8의 전성기. 레이디 경향. 2008년 4월호.
  752. 신동준. 적을 조종하라. 무경십서. 2012년 9월 28일.
  753. 윤고은. 최진실 "이 정도까지 온 사실에 늘 감사". 한국일보. 2008년 10월 8일.
  754. 김수진. 엄정화 "최진실 언니, 더 많이 성숙한 것 같다". 스타뉴스. 2005년 10월 17일.
  755. 금빛나. 유인나 생방송 눈물, 고(故)최진실 3주기 영상에 '울컥'. 인터뷰365. 2011년 9월 29일.
  756. 브라운관1897년에 첫 개발된 이후 한 세기 이상 동안 텔레비전의 대표적인 화면 표시 장치로 쓰였다. 하지만 화질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고 화면 크기가 커질수록 앞뒤로 차지하는 공간도 기하 급수적으로 불어난다. 그래서 1990년대 후반 및 2000년대 초반부터는 벽걸이로 장착할 수 있을 정도로 두께가 얇은 평판 디스플레이 방식의 텔레비전이 브라운관 방식의 텔레비전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757. 하경헌. 생전 최진실이 쓴 시놉시스 나왔다. 스투닷컴. 2008년 10월 22일.
  758. 도병욱. 자전적내용 故최진실 시놉시스 "드라마화 시기상조". 머니투데이. 2008년 10월 23일.
  759. 윤여수. '최진실이 쓴 드라마' 햇빛 못보고…. 동아일보. 기사입력 2008년 10월 24일. 기사수정 2009년 9월 23일.
  760. 해피타임 309회
  761. 남궁성우. 최진실 '몰래카메라' 세 번째 속아. 노컷뉴스. 2006년 12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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