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식 (194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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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식
Kim In-Sik
김인식 감독.jpg
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생년월일 1947년 5월 1일(1947-05-01) (68세)
출신지 대한민국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신장 176 cm
체중 78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우투우타
수비 위치 투수
프로 입단 연도 1986년
(해태 타이거즈 수석코치)
경력

선수 경력

코치 경력

감독 경력

국가대표팀 경력

기타 경력


김인식(金寅植, 1947년 5월 1일 ~ )은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이다.

생애[편집]

실업 야구 팀 한일은행에서 투수로 뛰던 중 어깨 부상을 당해 일찍 은퇴하고, 배문고등학교, 상문고등학교, 동국대학교 야구부 감독을 맡은 후, 1986년 해태 타이거즈 수석 코치로 프로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어 1990년쌍방울 레이더스의 창단 감독으로 프로 감독도 시작했다.

1991년 ~ 1992년 쌍방울 레이더스 감독으로 93승 155패 4무, 1995년 ~ 2003년 두산(OB)에서 579승 556패 33무, 이어 2005년 6월 한화에서 28승을 추가해 통산 700승을 기록했다.

1994년 선수단 집단 이탈 사건의 여파로 사임한 윤동균의 후임으로 1995년 OB 베어스의 사령탑을 맡아 1995년2001년 팀을 두 차례나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려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 한화 이글스의 감독을 맡았고 2010년까지 한화 이글스의 고문을 맡았다.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금메달을 따냈다.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4강 진출을 이뤘으며, 같은 해 한화 이글스한국시리즈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2006 시즌 종료 후 한화 이글스와 역대 감독 최고액인 계약금, 연봉 각 3억 5천만 원, 총액 14억 원에 3년 재계약을 했다.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이후 다시는 국가 대표팀 감독을 맡지 않겠다고 언급했으나, 2008년 하계 올림픽 금메달 이후 감독 선임에서 잡음이 크게 일었던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표팀 감독을 다시 맡아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준우승을 이끌었다. 하지만 같은 해 한화 이글스가 시즌 최하위를 기록한 후 계약이 만료되어 한대화에게 감독직을 넘기고 물러났다. 현재에 KBO의 규칙위원회,기술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이다. 2015년 프리미어 12 대회의 감독을 맡았고 국제 대회에 처음으로 우승을 이끌어 냈다.

경력[편집]

선수[편집]

지도자[편집]

국가대표팀[편집]

기록[편집]

CF[편집]

각주[편집]

  1. 진라면 CF에서는 2탄을 그의 제자인 류현진과 공동으로 촬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