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형 (야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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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Kim Tae-Hyeong
두산 베어스 No.88
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생년월일 1967년 9월 12일(1967-09-12) (50세)
출신지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신장 173 cm
체중 76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우투우타
수비 위치 포수
프로 입단 연도 1990년
드래프트 순위 1988년 2차 4순위 (OB 베어스)
첫 출장 KBO / 1990년 4월 9일
잠실LG
1타수 1안타
마지막 경기 KBO / 2001년
계약금 5억원
연봉 5억원 (2018년)
경력

선수 경력

코치 경력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올림픽 1988 서울 (시범종목)

김태형(金太亨, 1967년 9월 12일 ~ )는 전 KBO 리그 두산 베어스포수이자, 현재 두산 베어스의 감독이다.

선수 시절[편집]

OB 베어스 시절[편집]

신일고, 단국대를 거쳐 1990년 OB 베어스에 입단하면서 1980년대를 주름잡던 OB 베어스의 포수 듀오 조범현김경문을 밀어내고 주전 포수 자리를 차지했다. 1990년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수비형 포수 중 하나였고, OB 베어스의 주전으로 뛰면서 상대적으로 장타력이 좋은 박현영과 출장 시간을 이상적으로 배분했으며, 김인식 감독 취임 이후 일발 장타력을 인정받던 이도형까지 포수 진에 가세한 덕분에, OB의 포수 진 은 현재까지도 내려오는 전통의 포수 왕국의 컬러를 확립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공격력 부분에선 백업인 박현영, 이도형에 비해 열세인 덕분에 특출난 시즌 성적을 기록하지는 못했으나, 1995년 한국시리즈 우승에 크게 기여한 일등공신이었다. 이후 국가대표 출신 초대형 포수 유망주 최기문, 진갑용, 홍성흔이 연달아 입단하며, 그의 주전 포수 자리를 자연스럽게 세대교체하는 시도가 진행되었는데, 의외로 최기문을 밀어낸 진갑용이 타격, 수비 양쪽에서 부진을 거듭하며 확실한 후계자로 믿음을 주지 못했다.

두산 베어스 시절[편집]

1999년부터 신인 열세로 평가받던 홍성흔이 의외로 주전 포수를 차지하면서, 홍성흔의 백업과 수비 강화를 위한 역할로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진행되었다. 2001년 플레잉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으며, 6경기 출장을 끝으로 그대로 은퇴했다. 선수 시절 비슷한 커리어의 수비형 포수였고, 이후 현역 감독으로 경쟁 중인 대선배 조범현, 김경문보다는 현역 시절 타격을 잘했다. 한국 프로야구 선수협회 5적 네임밸류로 불렸으나 당시 구단주가 KBO 회장이면서 두산그룹 오너였던 박용오 회장이었고 선수협에 가입하면 구단 자체를 없애 버린다고 엄포를 놓자 그는 선수들의 안전을 보장받는 조건으로 구단과 선수협 가입 불가에 합의하였다. 그러나 구단이 심정수를 트레이드 시키면서 구단의 약속이 이행되지 않자 다시 선수들을 이끌고 선수협에 가입했다.

야구선수 은퇴 후[편집]

두산 베어스 코치 시절[편집]

현역 마지막 시즌부터 플레잉 코치로 뛰기 시작했고 다음 해 은퇴하면서 두산 베어스에서만 10년 동안 배터리코치로만 재직하면서 홍성흔 이후의 포수 자원인 용덕한, 양의지 등을 강인권 코치와 프로에 안착시키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두산 베어스김광수 감독대행 체제로 2011 시즌이 끝난 후 감독 후보군에 올랐지만, 당시 투수코치였던 김진욱이 신임 감독이 됨에 따라 팀을 떠나 SK 와이번스에 1군 배터리코치로 옮겼다.

SK 와이번스 코치 시절[편집]

SK 와이번스 배터리 코치 시절 코치로서 능력은 유능하다고 인정받았다. SK 와이번스로 자리를 옮긴 후에 수비적으로는 아직 모자란 모습을 보였지만 포수보다 플래툰으로 많이 나왔던 이재원이 주전 포수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데는 그의 공이 컸다. 3년간 SK 와이번스의 배터리코치로 있다가 2015년, 당시 감독이었던 송일수가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자 친정팀으로 돌아와 감독을 맡았다.

두산 베어스 감독 시절[편집]

취임식 때 그는 공격적인 야구를 선보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2015년 감독 부임 첫해 페넌트레이스 성적 79승 65패, 3위로 마쳤고 포스트시즌 와일드카드에서 SK를 꺾고 올라온 넥센과의 준플레이오프에서 4차전 2-9로 크게 뒤지던 경기를 7회부터 9회까지 연속 9득점을 올리며 7점 차 대역전승, 3승 1패를 기록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다. 이어 NC와의 플레이오프에서도 벼랑 끝에 몰렸으나 4차전 더스틴 니퍼트, 5차전 장원준의 활약으로 3승 2패로 NC를 꺾고 감독 부임 첫해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였다. 한국시리즈에서 1차전 역전패를 당했으나 2차전부터 5차전을 내리 이기며 14년 만에 팀에 우승을 안겨주었다. 이 우승으로 그는 역대 4번째로 감독 부임 첫해에 우승을 이끈 주인공이 되었고, 이러한 공로로 2015 시즌 감독상을 받았다. 1995년 현역 시절, 2001년 코치 시절, 2015년 감독 시절 우승하여 한팀에서 선수, 코치, 감독으로 모두 우승하는 기록을 세웠다. 2016년 5월 11일 SK와의 경기에서 통산 100승을 달성하였다. 전반기 종료 후 후반기를 앞두고 3년 재계약을 체결하였다.

기타[편집]

OB 베어스 주장 시절에는 정말 무서운 군기반장이기도 했다. 경기 끝나고 선수들을 소집해서 엄하게 다그치는 일도 자주 있었다. 이광용의 옐로카드에 출연해서 해명하기로는 "당시 감독이던 김인식 감독이 성격이 부드러우셔서 군기반장을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고 밝혔다.

출신 학교[편집]

통산 기록[편집]

연도 팀명 타율 경기 타수 득점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루타 타점 도루 도실 볼넷 사구 삼진 병살 실책
1990 OB 0.181 87 166 13 30 3 0 1 36 7 1 3 11 2 12 3 9
1991 0.226 88 199 17 45 8 0 1 56 24 3 2 14 1 13 4 5
1992 0.244 108 246 28 60 6 2 0 70 20 2 2 23 2 19 4 11
1993 0.277 107 242 22 67 14 2 1 88 27 1 0 15 2 14 5 5
1994 0.231 81 199 19 46 9 0 1 58 18 1 2 11 1 24 3 7
1995 0.216 93 194 20 42 12 0 1 57 19 1 1 7 3 26 4 7
1996 0.272 85 254 24 69 10 0 1 82 20 2 0 2 0 13 7 4
1997 0.267 42 86 7 23 4 0 2 33 9 0 0 4 1 12 1 1
1998 0.203 69 143 8 29 5 0 0 34 7 1 1 8 4 16 2 7
1999 두산 0.200 37 80 4 16 5 0 1 24 4 0 0 5 1 9 1 2
2000 0.174 24 23 0 4 0 0 0 4 2 0 1 0 0 5 3 0
2001 0.333 6 3 1 1 0 0 0 1 0 0 0 0 0 1 0 0
통산 12시즌 0.235 827 1835 163 432 76 4 9 543 157 12 12 100 17 164 37 58

각주[편집]

  1. 인천전문대학에서 편입
전임
송일수
제10대 두산 베어스 감독
2014년 10월 21일 ~ 현재
후임
(현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