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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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기
Kim Kyeong-Ki
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
생년월일 1968년 4월 5일(1968-04-05) (50세)
출신지 인천광역시
신장 185 cm
체중 91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우투우타
수비 위치 내야수
프로 입단 연도 1990년
드래프트 순위 1990년 1차 2순위(태평양 돌핀스)
첫 출장 KBO / 1990년 4월 8일
인천삼성
마지막 경기 KBO / 2001년 10월 7일
수원현대
획득 타이틀
경력

선수 경력

코치 경력

감독 경력

해설자 경력

  • SPOTV 야구 해설위원 (2017년 ~ 현재)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올림픽 1988년 서울

김경기(金敬起, 1968년 4월 5일 ~ )는 전 KBO 리그 SK 와이번스내야수이자, 현 SPOTV의 야구 해설위원이다. 유독 인천에서 인기가 많아 '미스터 인천'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현역 시절 선수단 내에서 불리던 별명은 몸집이 크다는 이유로 '고릴라'였다.

아마추어 시절[편집]

인천에서 태어났으며, 인천석천초등학교, 상인천중학교, 인천고등학교까지 인천에서만 학창 시절을 보냈다. 특히 인천고등학교 재학 시절이었던 1985년에는 전국 대회에서 타율 0.457, 46타수 21안타의 성적을 올려 이영민 타격상을 수상했다. 1986년 인천고등학교 졸업 후 고려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했고, 서울 올림픽 야구 종목의 국가대표 선수로 선발되기도 했다.

선수 시절[편집]

태평양 돌핀스 시절[편집]

1990년 연고 팀 태평양 돌핀스에 1차 2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하여 1루수와 중심 타자(주로 4번 타자)로 활약하였다. 그의 등번호는 원래 37번이었으나, 1993년부터 그의 등번호는 00번을 달게 됨으로써 이 때부터 등번호 00번은 곧 그의 상징이 되었다. 또한, 그는 당시 홈 구장이던 숭의야구장에서 특히나 강한 모습과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 홈 팬들로부터 열화를 받아 '미스터 인천'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매년 0.270~0.290타율 사이에 20홈런을 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그는 당시 타선이 약했던 태평양 돌핀스의 중심 타선의 핵심이었다. 특히 1994년에는 윤덕규-김경기-김동기로 이어지는 클린업 트리오 주축 역할로 23홈런을 기록하여 활약한다.

현대 유니콘스 시절[편집]

1995년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한 현대 유니콘스에서도 1996년 당시 타선이 약한 가운데에서 4번 타자로 20홈런을 기록하였고, 중심타자 1루수로 선수 생활을 활약하였다. 그러나 다음 해 1997년에 6개 홈런에 36타점, 2할대의 타율을 기록하며 부진하였다. 1998년에는 3루수와 1루수 포지션을 전전하면서 박재홍-스캇 쿨바-그로 이어지는 클린업 트리오 타선의 주축 역할을 하여 18개 홈런에 2할대 타율을 기록하면서 건재함을 보여 주었고, 1998년 한국시리즈에서 현대 유니콘스 창단 3년 만의 첫 우승이자 역대 인천 연고 팀 사상 첫 한국시리즈 우승의 기쁨을 맛보았다. 1999년에는 2할대 타율에 6개 홈런을 기록했으나 시즌 중 부상을 당해 전력에서 이탈하였다. 2000년에도 그는 꾸준히 2할대 타율을 기록하며 팀의 고참으로서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시즌 중 선수단 내 선수협 문제로 외야수 전준호와의 갈등이 있었고, 전준호는 이 문제로 시즌 초반에 결장을 하였다. 인천 팬들이 그를 돌려달라고 해서 SK 와이번스로 간 것으로 알고있지만 사실 그는 자신 스스로 소속 팀 현대 유니콘스에 트레이드 요청을 하여 그 해 7월 현금 2억 5,000만원에 트레이드되었고, 새로운 인천 연고 팀 SK 와이번스로 이적했다.

SK 와이번스 시절[편집]

2000년 시즌 중, SK 와이번스에 현금 트레이드로 입단하여 이적했을 때 홈 팬들로부터 열화와 갈채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그 이후 입지가 좁아져 갔고 2001년 시즌 종료 후, 현역 은퇴를 선언하면서 2002년 문학야구장에서 은퇴식을 했다.

야구선수 은퇴 후[편집]

2002년부터 2015년까지 SK 와이번스에서 타격코치, 주루코치, 수석코치 등 코치 활동을 하다가, 2016년SK 와이번스 2군 감독으로 승격되었다. 2017년부터 SPOTV의 야구 해설위원으로 활동중이다

에피소드[편집]

그의 아버지는 인천 연고 팀 삼미 슈퍼스타즈, 청보 핀토스의 전 감독이자 '인천 야구의 대부'로 불리는 김진영이다. KBO 소속 심판으로 활동 중인 김풍기는 그의 사촌 형이다. 프로 데뷔 당시에는 배번으로 37번을 달았으나, 1993년부터 마음을 비운다는 뜻으로 등번호 '00'번을 달아 그 이후부터 00번을 고수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프로 스포츠 사상 00번을 등번호로 달았던 선수는 김경기가 처음이다. (0번은 많았으나, 0이 2번 들어간 00번은 그가 최초다.) 그는 항상 안타를 칠 때나 홈런을 칠 때 십자 성호를 긋는 세리머니를 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십자 성호 세레모니는 평소 그가 다니던 인천의 한 천주교 성당의 신부가 제안했다고 한다. 그를 비롯한 그의 가족들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며, 그의 부인이 매 경기가 열리는 날마다 새벽 기도를 하면서 그의 선전을 기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동생이 염경엽과 결혼하여 염경엽과는 매제사이다.

출신학교[편집]

선수 경력[편집]

등번호[편집]

  • 선수 시절
37 : 1990~1992
00 : 1993~2001
  • 코치 시절
73 : 2003~2004
00 : 2007~

통산 기록[편집]

연도 팀명 타율 경기 타수 득점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루타 타점 도루 도실 볼넷 사구 삼진 병살 실책
1990 태평양 0.285 120 414 50 118 29 1 10 179 68 7 5 50 6 37 17 7
1991 0.291 109 392 42 114 25 4 8 171 59 5 6 30 3 39 7 7
1992 0.254 126 465 57 118 21 2 21 206 65 1 3 39 2 62 12 7
1993 0.280 86 318 28 89 14 0 8 127 49 2 2 27 4 37 15 5
1994 0.277 124 433 68 120 19 3 23 214 70 3 2 56 7 68 9 7
1995 0.295 96 356 52 105 19 1 12 162 46 4 1 38 4 51 5 4
1996 현대 0.274 115 412 54 113 16 1 20 191 64 6 4 50 7 82 6 8
1997 0.254 91 311 36 79 21 0 6 118 51 6 4 42 7 55 15 10
1998 0.274 126 431 62 118 25 0 18 197 59 5 6 43 12 79 11 26
1999 0.277 92 264 37 73 11 1 6 104 37 1 4 35 5 60 8 6
2000 SK 0.282 49 142 19 40 5 0 4 57 21 2 2 29 4 24 4 5
2001 0.232 48 82 10 19 1 0 2 26 9 0 0 10 4 21 2 1
통산 12시즌 0.275 1182 4020 515 1106 206 13 138 1752 598 42 39 449 65 615 111 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