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현 (야구 선수)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김광현
Kim Kwang-Hyun
SK 와이번스 No.29
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생년월일 1988년 7월 22일(1988-07-22) (27세)
출신지 대한민국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신장 188 cm
체중 88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좌투좌타
프로 입단 연도 2007년
드래프트 순위 2007년 1차 지명(SK 와이번스)
획득 타이틀
계약금 5억 원
연봉 8억 5000만 원 (2016년)
경력


메달 기록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선수
야구
올림픽
2008 베이징 올림픽 중국 베이징
WBC
2009 WBC 미국 LA
아시안 게임
인천 아시안 게임 대한민국 인천
프리미어 12
프리미어 12 일본 · 대만

김광현 (金廣鉉, 1988년 7월 22일 ~ )은 대한민국의 프로 야구 선수이자, KBO 리그 SK 와이번스투수이다.

장신에서 내리꽂는 150Km의 빠른 속구, 그리고 140Km의 고속 슬라이더. 투수라면 누구나 던져보고 싶어하는 150Km를 던질 줄 아는 투수다. 또한, 과격한 투구폼에 출중한 실력까지 보유하고 있다 보니 데뷔 이래로 끊임없이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뇌경색과 안면 마비로 인해 2010 광저우 AG에 부득이하게 출전하지 못한 것을 제외하면 프로 데뷔 이래로 늘 가슴에 태극기를 달았다. 2008 베이징 올림픽, 2009 WBC, 2015 WBSC 프리미어 12가 그 예다.

프로 데뷔 이전[편집]

서울특별시 출생이지만 안산에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졸업했다. 그의 인터뷰에 의하면 그가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아버지가 야구장에 자주 데려가서 야구를 좋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안산덕성초등학교에 재학하던 그는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리틀 야구단에서 야구를 시작했다. 이어 안산중앙중학교를 거쳐 안산공업고등학교에 입학해 그의 팀을 여러 차례 우승권으로 이끌며 초고교급 선수로 인정받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고 1차 지명 선수 2명 중 1인으로 선정되어 계약금 5억 원과 연봉 2,000만 원에 연고 팀 SK 와이번스와 계약을 체결했다. 그가 바로 이 팀에서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가 되었고, 국제 대회에서도 멋진 활약을 보여줬다.

프로 데뷔 이후[편집]

SK 와이번스[편집]

2007 시즌 : 초신성의 등장[편집]

안산공고를 졸업하고 데뷔한 2007년, 그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제 2의 류현진' 이라는 칭호를 얻기까지 한다. 전반기에는 ERA 4.69로 매우 부진했으나, 올스타 브레이크 기간 동안 투구폼을 교정했다. 그리고 이후 후반기에서는 ERA 2.67로 대반격에 나서면서 프로 무대에 제법 적응한 듯한 모습을 보여 줬다.

2007 시즌 그의 최고 피칭은 단연 KS 4차전 두산 베어스의 투수 리오스와의 맞대결. KS 전적이 두산에게 1승 2패로 밀리는 도중에서 4차전 선발은 김광현이었다. 김성근 감독이 상대의 에이스에 맞서 고졸 루키인 김광현을 등판시킨 이유인 즉슨, 4일 휴식 로테이션을 지키며, 두산의 좌타자들에게는 극강인 데이터를 고려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는 자신을 믿어준 김성근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여 7 1/3 IP 1H 9K의 엄청난 호투로 팀의 승리를 견인했으며, 불리했던 전적을 동률로 이끌면서 2연패 후 4연승 우승의 디딤돌을 놓았다. 덩달아 팀은 창단 이래 첫 우승을 달성했다.

2008 시즌 : 리그 최고의 투수[편집]

ERA 2.39, 16승 4패라는 어마어마한 성적을 올린다. 최다 삼진과 최다 승리 부문에서 1위에 오르며 시즌 MVP, 투수 골든 글러브는 모두 그의 몫이었다. 특히 7월 22일, 자신에 생일에 등판한 김광현은 프로 데뷔 이후 최다 탈삼진을 기록하기도 한다.

시즌 오프 이후 김광현은 2008 베이징 올림픽에도 출전하여 에이스의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특히 일본을 두 번 상대해서 두 번 무너뜨리는 최고의 피칭을 시전한다.

예선 일본전에서는 탈삼진 7개를 포함, 단 세 개의 피안타와 1점의 점수만을 허용하며 일본전 승리의 주역이 되었다. 이어서 준결승에서 다시 맞붙은 일본을 상대로 탈삼진 5개를 잡아내는 등, 다섯 개의 피안타와 2점 (1ER) 만을 내주는 호투를 하며 원조 일본 킬러인 구대성에 이은 '차세대 일본 킬러'로 떠올랐다.

올림픽 기간 동안 일본을 상대로 두 차례 선발 등판하는 등 세 경기에서 14 1/3 IP, 10H 12K 3R 2ER을 기록한다.

2009 시즌 : 아쉬운 한 해[편집]

WBC에 승선하여 다시 한 번 국가대표 자격을 얻지만, 예상과는 달리 컨디션 난조와 상대의 날카로운 분석에 발목이 잡혔다. 선발로 나서 네 개의 아웃카운트를 잡아내는 동안 무려 8점을 내주는 최악의 피칭을 하고 말았다. 이 최악의 피칭은 대한민국이 일본을 상대로 콜드패를 당하는 빌미가 되었다.

이후에 중간계투로 나서 일본을 다시 한 번 상대하지만 역시 처참히 무너졌다. 일본 킬러의 명성에 스스로 먹칠을 하게 된 것이다.

고작 22살의 젊은 투수가 겪었을 고통을 상상해 보았는가? 에이스로서의 자존심은 이미 구겨질 대로 구겨진 후였다. 이러다 야구를 포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김광현은 더욱 마음을 다잡고 차기 시즌을 준비한다.

역시 에이스는 에이스다. 다른 칭호가 필요한가? 많은 팬들의 우려를 말끔히 씻어내고 팀의 에이스로 돌아왔다. 당시 김광현과 쌍벽을 이루고 있던 류현진도 따라오지 못하는 성적을 낸다. 모든 부문에서 최고의 성적을 내며, 커리어 하이 달성이 유력함은 물론, 2년 연속 리그 MVP와 투수 골든 글러브도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2009 시즌의 20번째 경기에서 김현수의 직선타에 왼손 손등을 맞아 왼손 손목에 실금이 가는 부상을 당하며 시즌을 안타깝게 접게 되었다. 당시 그는 이 부상을 당하기 전까지 다승 부문 1위, 탈삼진 부문 3위, ERA 1위, 승률 부문 1위로 리그 최고의 투수였음은 물론, 생애 첫 트리플 크라운까지 바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부상 때문에 많은 기록들이 멀어져만 갔고, 규정 이닝을 채워 평균자책점과 승률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한 것에 만족해야 했다.

2010 시즌 : 커리어 하이, 그러나[편집]

2009 시즌의 손목 부상 이후 재활에 전념해 온 김광현. 그렇기에 일부 전문가들은 '김광현이 이전보다는 기량이나 구위, 제구 면에서 예전만 못하지 않겠느냐' 고 예측한다. 그러나 팬들은 김광현이 건강하게 돌아와서 다시 멋지게 활약해 주리라 믿었고, 김광현은 팬들의 기대에 응답했다.

2년만에 완봉승을 기록하며 에이스의 화려한 귀환을 알렸고,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노히트 노런을 눈앞에 두는 순간까지도 온다. 비록 마지막 이닝의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지 못하고 무너졌지만, 그 정도의 경기를 만들어냈을 정도로 그의 위력은 어마어마했다.

시즌 성적은 17승 7패, ERA 2.37, 192 2/3 IP.

팀은 KS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4연승을 따내며 스윕, 2010 KBO 리그 통합 우승, V3를 달성했고, 우승을 결정짓는 마지막 아웃카운트도 그의 손에서 만들어졌다.

그리고 시즌 오프 후 개최된 중국 광저우 AG에 류현진, 봉중근 등 내로라하는 주축 좌완들과 함께 국가대표 자격을 얻었다. 그러나 KS 이후 찾아온 질병과 이상 증세로 임태훈에게 자리를 내줬다.

과로로 인해 몸에 무리가 온 것일까. 3년 동안 500이닝에 육박하는 양의 투구를 소화한 그의 몸은 큰 데미지를 입었다. 뇌경색과 안면 마비 증세가 같이 나타났다. 심지어 어깨에도 부상을 입게 되는 등, 온갖 심각한 부상을 모두 입게 되었다.

결국 이 부상으로 모든 것을 잃었다. 지난 해에는 기록을 잃었지만, 이번엔 그의 미래를 잃었다.

2011 시즌 : 내리막의 시작[편집]

이전 시즌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전락했다. 고작 17경기에 등판할 동안 4승 6패, 최악의 성적을 올렸다. 시즌 중에 김광현이 뇌경색과 안면 마비에 시달린 것이 드러나면서 병을 앓은 지 근 1년만에 부진의 이유가 밝혀졌다.

다행히 완치에는 성공했지만 리그에는 복귀하지 못하였다. 이 기간 동안 SK 와이번스를 KBO 리그 최고의 강팀으로 만든 김성근 감독이 경질되는 사태도 발생하는 등, 설상가상이었다.

김성근 감독은 2011 시즌과 2011 PS에 김광현을 쓸 계획이 없었음을 밝히기도 하였지만 경질되는 바람에 그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팀은 어렵게 PS 티켓을 얻을 수 있었지만 에이스 김광현이 4경기 2패를 기록하며 부진했고, 동시에 팀도 흔들리며 삼성 라이온즈에 우승을 내줬다.

그야말로 최악의 시즌, 그리고 최악의 가을 야구를 경험했다.

2012 시즌 : 하향 평준화[편집]

시즌 초에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 모습을 보이지 못했고, 6월 경에 복귀했다. 최종 성적은 8승 5패 ERA 4.30. 여전히 부상에 발이 묶여 헤어나오지 못했다. 시즌 중 포심 패스트볼의 구속은 한 번도 150Km를 넘지 못하는 등 모든 성적이 급격히 나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시즌 후반부터 점점 안정감을 되찾았고, 결국 PO 1차전에 일을 내고 말았다.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6 IP, 1BB, 5H, 그리고 무려 10개의 탈삼진. 김광현의 트레이드 마크인 슬라이더가 직구와의 시너지 효과를 이루는 등 에이스다운 최고의 피칭을 선보였다.

그리고 포스트 시즌 종료 후 있었던 2013 WBC의 엔트리에도 들었다. 사실 이렇다 할 활약도 별로 없었고 그렇다고 특별히 큰 부상이 있던 것도 아닌 평범한 시즌이었다.

2013 시즌 : 반격의 서막[편집]

2013 WBC에서 입은 부상으로 개막 엔트리에는 들지 못했다. 복귀가 다소 늦었고, 복귀 이후에도 기복은 심했다. 하지만 10승 9패, ERA 4.47로 2010 시즌 이후 3년만에 10승 고지에 등정했다.

그러나 승수만 두 자릿수일 뿐 승수 빼곤 여전히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경기에 자주 나오면서 그동안 보여지지 않았던 부상으로 인한 문제점이 발각됐다. 구속은 140Km 후반대를 회복했지만 제구가 굉장히 나빠졌고, 정신력 역시 굉장히 나빠진 것이 확인됐다. 또한, 날카로운 몸쪽 공의 비율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무엇보다 구위가 하락하면서 자주 난타를 당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하지만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자신의 무기였던 강속구를 되찾고, 컨트롤 능력이 점점 상승하기 시작한다. 타자를 압도하는 직구가 점차 위력을 발휘하고,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난타도 줄어든다.

2014 시즌 : 에이스의 귀환[편집]

와이번스 팬들이 간절히 기다린 그 순간이 현실이 되었다. 2014년 3월 29일, 그가 마운드 위에서 공을 뿌렸다.

와이번스의 영원한 에이스가 돌아왔다.

데뷔 후 처음으로 개막 선발로 나설 정도의 좋은 컨디션으로 시즌을 출발한다. 3시즌 동안의 부진했던 김광현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발전한 모습을 보였다.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4년만에 완투도 달성하게 되었다.

성적은 13승 9패, 3.42로 에이스의 귀환을 알렸다. 세부 스탯, 특히 FIP와 K/BB, WHIP를 보면 사실 암흑기 때보다 특별히 좋지는 않다. 그래도 내가 돌아왔다는 것과 동시에 내가 이 팀의 에이스라는 것을 알린 시즌이었다.

이후 3살 연상의 신부와 결혼했고, 동시에 MLB 포스팅을 신청하였다. 그 결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가 다소 낮은 금액인 200만 달러에 독점 협상권을 가져 왔으나 12월 12일 결국 마감 시한을 넘기며 협상이 결렬되었다.

2015 시즌 : 건강함을 증명한 한 해[편집]

커리어 하이 시즌을 기대해도 좋다는 시즌 개막 전 사전 인터뷰와는 달리 시즌 초 정상호와의 배터리 소화에서 고전한다. ERA가 5점대까지 치솟기도 했고, 컨트롤 능력과 구위가 저하되며 자주 난타를 당했다.

그러나 5월 초에 들어오며 KIA와 삼성을 상대로 호투하면서 본인의 모습을 되찾는다. 이후 약간의 기복이 있었지만 무난하게 시즌을 치르며 ERA를 3점대 초반까지 낮추기까지 한다.

그런데 김광현의 반등의 주역에는 이재원이 있었으니, 둘의 공격적 성향이 정확하게 융화된 것이 그 이유다. 반대로 정상호는 유인구 승부가 필요 이상으로 많아 김광현의 제구 난조의 원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시즌을 잘 마무리하여 14승 6패, 3.72의 성적을 거둔다. 지난해보다 ERA는 0.3점이 상승했으나, 세부 지표에서는 큰 발전이 있었다. K/BB가 2점대를 웃도는 등 제구에서는 큰 발전이 있었다.

시즌 이후 프리미어 12에 대표팀으로 참여하였고, 대한민국의 에이스로 출격했다. 예선 2경기에서는 에이스의 이름값을 하지 못했지만, 결승전에서 다시 맞붙은 미국에게는 에이스의 진면모를 드러냈다.

EXTRA : 첫 FA 전 마지막 연봉 협상[편집]

시즌 종료 이후 SK 와이번스가 제시한 8억 5000만원이라는 거금에 도장을 찍었다. SK 와이번스 비 FA 역대 최고 연봉인데, 사실 이 거금의 연봉에는 여러 가지 의문이 들 수 있다. 최근 기량이 2000년대 후반의 전성기만 못하다는 점과, 조기 강판 횟수 증가, 구위 하락, 제구 불안이 그 의문점이라 할 수 있는데, 이것을 무시하고 8억 5000만원이라는 거금에 계약한 것에는 여러 가지 해답도 있다.

먼저 그는 SK 와이번스의 최고 프랜차이즈 스타이다. 그리고 내년에 FA라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만약 김광현이 2016 시즌 종료 후 해외 진출이나 타 구단으로 이적한다면 이번에 SK가 지급하는 연봉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 점에서 봤을 때 SK는 이번 연봉 계약에서 김광현이 프로에서 뛴 9년간의 활약을 종합하여 연봉 계약을 체결할 의무 아닌 의무가 있었다. 그렇게 책정된 금액은 무려 8억 5000만원이었고, 김광현은 그 거금에 도장을 찍으며 연봉 일부를 기부할 것을 약속했다.

그리고 연봉에 담겨져 있는 의미는 두 가지가 있는데, 과거에 대한 보상, 그리고 미래 가치에 대한 기대감이 있다. 김광현의 8억 5000만원은 이 둘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9시즌동안 1210 IP, 1030K, 97W, 그리고 그렇게 상승했다는 평균자책점도 고작 3.36. 이 정도의 성적에 지금 나이는 한국 나이로 봐도 고작 29세이다. 과거 보상, 미래 가치 기대 이 둘을 모두 종합하여 나온 8억 5000만원은 결코 김광현에게 과분한 금액이 아니다.

2016 시즌 : 더 넓은 곳을 향한 도전[편집]

시즌을 시작하기 전에 스프링 캠프에서 김광현은 개인적 목표로 180이닝 이상 투구전 구단 상대 승리 달성을 목표로 삼았다. 그리고 2016 시즌을 끝으로 ML에 재도전할 것이라 공언했다.

프로 데뷔 이후 두 번째 개막전 선발 투수로 출전하게 되었다. 시작은 좋지 않았지만, 4월의 마지막 경기에서 NC 다이노스를 상대로 개인 통산 100번째 승리 투수가 되는 등 4월 한 달 동안 4승 2패, QS 5개, 38 2/3 IP, ERA 3.03을 기록했다. 특히, 김광현이 계속적으로 연마해 온 체인지업이 빛을 발하는 한 달이 되었다.

5월 한 달 동안은 1승 2패, QS 4개, 27 IP, ERA 2.67을 기록하였다.

세계 대회 출전 기록[편집]

  • 2005년: 아시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 출전
  • 2006년: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 출전
  • 2008년: 2008 베이징 올림픽 출전
  • 2009년: 제 2회 WBC 출전
  • 2013년: 제 3회 WBC 출전
  • 2014년: 2014 인천 AG 출전
  • 2015년: 2015 WBSC 프리미어 12 출전

통산 기록[편집]

연도별 투수 성적[편집]






















































W
H
I
P
2007 시즌 S
K 와이번스
20 13 0 0 -- 3 7 0 0 .300 342 77.0 80 5 41 2 4 52 2 0 35 31 3.62 1.57
2008 시즌 27 27 1 1 -- 16 4 0 0 .800 659 162.0 127 9 63 1 2 150 3 0 50 43 2.39 1.17
2009 시즌 21 21 1 0 -- 12 2 0 0 .857 568 138.1 121 14 53 1 4 112 8 0 46 43 2.80 1.26
2010 시즌 31 30 2 1 -- 17 7 0 0 .708 797 193.2 153 13 84 1 5 183 13 0 56 51 2.37 1.22
2011 시즌 17 14 1 0 -- 4 6 0 0 .400 328 74.1 70 6 45 0 2 61 3 0 45 40 4.84 1.55
2012 시즌 16 16 0 0 -- 8 5 0 0 .615 347 81.2 85 9 36 0 2 65 2 1 44 39 4.30 1.48
2013 시즌 25 22 0 0 -- 10 9 0 0 .526 580 133.0 128 12 68 0 4 102 9 1 72 66 4.47 1.47
2014 시즌 28 28 1 0 -- 13 9 0 0 .591 749 173.2 178 10 81 1 3 145 9 1 77 66 3.42 1.49
2015 시즌 30 29 1 1 -- 14 6 0 1 .700 754 176.2 173 19 66 2 3 160 10 0 86 73 3.72 1.35
10S 215 200 7 3 -- 97 55 0 1 .638 5124 1210.1 1115 97 537 8 29 1030 59 3 511 452 3.36 1.37
  • 굵은 글씨는 시즌 최고 성적.

연도별 타격 성적[편집]















2

3
































O
P
S
2007년 SK 1 1 0 0 0 0 0 0 0 1 0 0 0 0 1 0 0 0 0 빈칸 1.000 빈칸 1.000
2009년 1 1 1 0 0 0 0 0 0 0 0 0 0 0 0 0 0 1 0 .000 .000 .000 .000
2010년 1 1 1 0 0 0 0 0 0 0 0 0 0 0 0 0 0 0 0 .000 .000 .000 .000
KBO:3년 3 3 2 0 0 0 0 0 0 1 0 0 0 0 1 0 0 1 0 .000 .333 .000 .333

수상 내역[편집]

KBO 리그[편집]

  • 리그 MVP 수상 : 2008 시즌
  • 투수 골든 글러브 수상 : 2008 시즌
  • 최다 승리 : 2008, 2010 시즌
  • 최다 탈삼진 : 2008 시즌
  • 최우수 평균자책점 : 2009 시즌
  • 최고 승률 : 2009 시즌

국제 대회[편집]

고교 야구[편집]

바깥 고리[편집]

이전
조조
레이예스
SK 와이번스
개막전 선발 투수

2014 시즌
이후
트레비스
밴와트
이전
트레비스
밴와트
SK 와이번스
개막전 선발 투수

2016 시즌
이후
-
이전
다니엘
리오스
KBO 리그
투수 부문
골든 글러브

2008 시즌
이후
아킬리노
로페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