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현 (야구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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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현
Kim Kwang-Hyun
SK 와이번스 No.29
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생년월일 1988년 7월 22일(1988-07-22) (28세)
출신지 대한민국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신장 188 cm
체중 88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좌투좌타
프로 입단 연도 2007년
드래프트 순위 2007년 1차 지명 (SK 와이번스)
첫 출장 KBO / 2007년 5월 8일
문학삼성전 선발
획득 타이틀
계약금 4년 32억 원 (FA)
연봉 9억 원 (FA)
경력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올림픽 2008 베이징
WBC 2009 LA
아시안게임 2014 인천
프리미어 12 2015 일본 · 대만
메달 기록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선수
남자 야구
올림픽
2008 중국 베이징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09 미국 LA
아시안 게임
2014 대한민국 인천
프리미어 12
2015 일본 · 대만

김광현(金廣鉉, 1988년 7월 22일 ~ )은 대한민국의 프로 야구 선수이자, KBO 리그 SK 와이번스투수이다.

특유의 독특하고 와일드한 투구폼을 지닌 투수이다. 150Km/h를 상회하는 포심 패스트볼과 140Km/h를 넘나드는 빠른 슬라이더를 주로 구사한다. 125Km/h 언저리의 커브체인지업도 꾸준히 연마하는 중이다.

김광현이 데뷔한 이래로 야구 국가 대항전이 7번 개최되었으며, 김광현은 그 중 4개의 대회에 국가대표 핵심 멤버로 차출된 바 있다.

아마추어 시절[편집]

서울특별시에서 출생했으나 초등학교 1학년 때 경기도 안산시로 이사했다. 안산덕성초등학교, 안산중앙중학교, 안산공업고등학교를 차례로 졸업하였다. 5살 때부터 야구를 시작한 그는 안산공업고등학교에서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연고지 팀인 SK 와이번스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졸업을 앞둔 3학년 시절, 경동고등학교를 상대하여 19K 완투패를 거두며 자신의 가치를 다시 한 번 보여준다. 2006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에 출마하여 대만을 상대로 완봉승을 기록하는 등 자국이 대회에서 선전하는 데 큰 공헌을 하기도 하였다.

1차 드래프트에서 연고 지명 선수 2명 중 첫 번째 선수로 선정되어 계약금 5억 원과 연봉 2,000만 원에 SK 와이번스와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금 5억 원은 당시 팀 역사상 최고 계약금이었다. 이렇게 큰 기대를 구단과 팬들로부터 받고 프로에 발을 디딘다.

SK 와이번스 시절[편집]

2007 시즌[편집]

안산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데뷔한 2007 시즌, 학창 시절부터 뛰어난 실력을 뽐낸 그는 언론과 야구팬들로부터 '제 2의 류현진' 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전반기에는 ERA 4.69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으나, 올스타 브레이크 기간 동안 투구폼을 교정했다. 그리고 후반기에는 ERA 2.67로 대반격에 나서면서 프로 무대에 제법 적응한 듯한 모습을 보여 줬다.

2007 시즌 최종 성적은 77 IP ERA 3.62 52K 3승 7패.

2007 시즌 그의 최고 피칭은 단연 2007년 한국시리즈 4차전, 두산 베어스의 선발 투수 다니엘 리오스와의 맞대결. 1승 2패로 시리즈 전적이 밀리는 도중에서 4차전 경기의 선발은 만 19세의 신인인 그였다. 당시 사령탑이었던 김성근 감독이 상대의 에이스에 맞서 고졸 루키인 그를 등판시킨 이유인즉슨, 선발 투수들의 4일 휴식 로테이션을 지키며, 그가 시즌 중 두산의 좌타자들에게는 극강의 모습을 내비쳤던 것을 이용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는 자신을 믿어준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여 713 IP 1H 9K라는 호투로 팀의 승리를 견인한다. 이 승리는 시리즈 전적이 뒤진 상황에서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데 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고, 팀은 창단 이래 첫 통합 우승을 달성했다.

2008 시즌[편집]

2007 시즌 말미에 자신의 진짜 얼굴을 보인 그는, 이듬해인 2008 시즌에 리그 최고의 투수로 거듭난다.

2008 시즌 최종 성적은 162 IP ERA 2.39 150K 16승 4패. 고졸 2년차 만 20세 루키가 일궈낸 성적이다.

리그를 지배하는 에이스로 거듭나게 되었다. 특히, 6월 8일에는 롯데 자이언츠를 상대로 생애 첫 완봉승을 거두어 내기도 하였고, 7월 22일에는 KIA 타이거즈를 상대해 무려 12K를 달성하기도 하였다.

최다 승리 - 최우수 ERA - 최다 K, 즉 트리플 크라운까지 도전하지만, KIA 타이거즈 윤석민에게 ERA 타이틀을 내주며 달성에는 실패한다. 하지만 2008 KBO 리그 시즌 MVP, 투수 부문 골든 글러브는 모두 그의 몫이었다.

또한, 2008 베이징 올림픽에도 출전하여 에이스의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특히 일본을 두 번 상대해서 두 번 모두 승리 투수가 되며 사상 첫 대한민국 대표팀의 올림픽 야구 금메달 획득에 기여한다.

예선전에서 일본을 상대로 7K 포함, 3H 1ER만을 허용하며 한일전 승리의 주역이 되었다. 이어서 준결승에서 다시 맞붙은 일본을 상대로 8 IP 5K 5H 2R (1ER) 의 호투를 하며 원조 일본 킬러인 구대성에 이은 '차세대 일본 킬러' 로 떠올랐다.

올림픽 기간 동안 일본을 상대로 두 차례 선발 등판하는 등 세 경기에서 1413 IP, 10H 12K 3R 2ER을 기록한다.

2009 시즌[편집]

시즌 이전에 개최된 2009 WBC 엔트리에 승선하여 프로 데뷔 이후 두 번째 국가대표 자격을 얻었다. 지난 해 그 모습 그대로 다시 한 번 일본을 무너뜨릴 것이라는 팬들의 기대와는 달리 컨디션 난조와 일본의 날카로운 분석에 발목이 잡혔다.

선발로 나서서 113 IP, 스리런 홈런 포함 무려 8실점을 기록하며 최악의 피칭을 하고 말았다. 이 최악의 피칭은 대한민국이 일본을 상대로 콜드패를 당하는 빌미가 되었다.

이후에 중간 계투로 나서 일본을 다시 한 번 상대하지만 역시 처참히 무너지며 본인이 가지고 있었던 일본 킬러라는 별명을 무색하게 하였다.

시즌 출발도 경미한 부상으로 인해 보름 정도 늦게 시작했지만, KIA 타이거즈와의 2009 시즌 첫 경기에서 7 IP 3R (2ER) 으로 승리 투수가 되면서 지난 시즌보다 더욱 성숙해진 기량으로 리그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전반기를 트리플 크라운으로 마감한 그는 한솥밥을 먹는 송은범과 최다 승리 투수 타이틀을 놓고 경쟁하며 순항한다. 자신의 라이벌이었던 류현진도 뛰어넘었다.

하지만 후반기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8월 2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김현수의 직선타에 왼손 손등을 맞는다. 그 자리에서 바로 쓰러진 그는, 왼손 손목에 실금이 가는 불의의 부상을 당하며 결국 시즌 아웃을 당하게 된다. 결국 2009년 8월 2일 경기는 2009 시즌 마지막 경기가 되고 말았다.

당시 그는 이 부상을 당하기 전까지 탈삼진 3위, 평균자책점 1위, 다승 1위, 승률 1위로 전년도에 놓친 트리플 크라운은 물론 쿼드러플 크라운까지 노릴 수 있는 상황이었고, 정규 시즌 MVP와 골든 글러브까지 달성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후보였다. 또한, 이 부상을 당한 경기와 김성근 감독의 마운드 방문 규칙 위반 사건을 제외하면 그가 6회 이전에 마운드를 내려간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하지만 이 부상 때문에 많은 기록들이 날아가고 말았다.

결국 규정 이닝 (131 IP) 을 채우며 승률과 평균자책점 부문에서 2관왕을 달성한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2009 시즌 최종 성적은 13813 IP ERA 2.80 112K 12승 2패.

2010 시즌[편집]

2009 시즌의 손목 부상 이후 재활에 전념해 온 그를 두고, 일부 전문가들은 '그가 이전보다는 기량이나 구위, 제구 면에서 예전만 못하지 않겠느냐' 며 혹평을 뱉지만, 이를 보기 좋게 뒤집으며 시즌 초부터 압도적인 페이스로 리그를 지배한다.

기록을 수립할 뻔한 적도 있었고, 수립하기도 했다.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9회 2아웃까지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최형우에게 안타를 맞아서 기록 달성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또한, LG 트윈스를 상대로 2년 만에 완봉승을 기록한다.

본인이 가장 싫어한다는 5월과 6월 즈음에 잠시 흔들렸지만, 결국 자신의 최고 시즌이었던 2008 시즌을 넘어서며 커리어 하이를 달성했다.

2010 시즌 최종 성적은 19323 IP ERA 2.37 183K 17승 7패.

더욱 발전한 모습을 보였지만 같은 시기에 자신의 라이벌이었던 류현진 역시 커리어 하이를 달성하였고, 전반적인 성적에서 류현진에게 밀리게 되었다. 타이틀은 최다 승리 하나에 그쳤다.

소속팀 SK 와이번스는 정규 리그에서 우승을 거두며 KS로 직행하였다. 에이스인 그는 2010 KS 1차전에 선발 등판하였으나 423 IP 3H 8K 4BB 3ER을 기록하며 조기 강판 되었다. 결국 팀은 승리했지만 다소 아쉬운 경기 내용.

그리고 SK 와이번스 2010 시즌의 마지막 경기가 된 2010 KS 4차전, 팀의 한 해를 매듭짓기 위하여 마무리로 그가 올라왔다. 제구가 심하게 요동쳤지만 결국 현재윤을 삼진으로 잡아내면서, 팀의 세 번째 우승을 확정짓는 순간 마운드에 서는 영광을 안았다.

그리고 시즌 오프 후 개최된 중국 광저우 AG에 류현진, 봉중근 등 내로라하는 주축 좌완들과 함께 국가대표에 차출되었다. 하지만, KS 이후 찾아온 이상 증세로 임태훈에게 자리를 내줬다.

3년 동안 494 IP를 소화한 그의 몸이 큰 데미지를 입었다. 뇌경색에 의한 안면 마비 증세가 같이 나타났다. 선수 생명은 물론 목숨까지 위험한 순간이었다.

그 후, 다행히도 뇌경색은 호전되면서 최악의 상황은 모면하지만, 그의 하락세도 이 때부터 시작되었다.

2011 시즌[편집]

2010 AG에 참가하지 못한 그의 병명이 구체적으로 밝혀졌고, 그는 이전 시즌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전락했다.

부진에 빠져 내리막을 달리는 그에게 김성근 감독은 채찍질을 하겠다는 의미로 벌투를 명령한다. 그리고 이는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8 IP 8R, 투구수 147개라는 비상식적인 투구로 이어졌고, 경기 직후 1군에서 말소되었다. 벌투로밖에 해석할 수 없는 이날의 경기 때문에 그는 설상가상으로 어깨 부상까지 덤으로 얻는다.

다행히 완치에는 성공했지만 정규 리그에는 복귀하지 못하였다. 이 기간 동안 사령탑인 김성근 감독이 경질되는 사태도 발생하는 등, 팀이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하지만 부상의 정도가 심각했기 때문에 팀의 에이스였던 그는 구원의 손길을 내밀 수 없는 상황이었다.

2011 시즌 최종 성적은 7413 IP ERA 4.84 62K 4승 6패.

팀은 3위에 머무르며 Semi PO부터 KS까지 진출했지만 KS서 그는 4경기 2패를 기록하며 부진했고, 동시에 팀도 흔들리며 삼성 라이온즈에 우승을 내줬다.

시즌 오프 이후 147구 벌투로 인한 어깨 부상 때문에 다시 기나긴 재활에 돌입했다.

2012 시즌[편집]

시즌 초에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 모습을 보이지 못했고, 6월 경에 복귀했다. 여전히 부상에 발이 묶여 헤어나오지 못했다. 구속은 물론 컨트롤은 매우 불안정해졌고, 체력과 구위에 문제가 생기며 자주 난타를 당한다. 모든 것이 나빠진 그는 2시즌 연속 깊은 부진에 빠진다.

2012 시즌 최종 성적은 8123 IP ERA 4.30 65K 8승 5패.

정규 리그 내내 부진한 모습이었으나 PO 1차전에 롯데 자이언츠를 상대로 선발 등판하여 6 IP 5H 1ER 10K, 2012년 최고의 피칭을 펼치며 이 날의 승리 투수가 되었다. 이후 PO 5차전에서도 선발 등판했지만 123 IP 6H 1BB 3ER로 부진하며 조기 강판당했다. 하지만 팀은 승리하면서 6년 연속 KS 진출이라는 대기록을 세운다.

계속해서 KS 4차전에서도 마찬가지로 선발 등판하여 5 IP 6H 4K 1BB 1ER 로 호투하며 승리 투수가 되었다. 하지만, 2013 WBC에는 어깨 부상이 재발하여 승선하지 못하였다. 결국 김광현은 2년 연속 100 IP, 100K, 10승의 벽을 넘지 못했다.

2013 시즌[편집]

다시 잔부상을 입으며 2013 WBC 엔트리와 개막 엔트리에는 들지 못했다. 복귀가 다소 늦었고, 복귀 이후에도 기복은 심했다.

2013 시즌 최종 성적은 133 IP ERA 4.47 102K 10승 9패.

승수만 두 자릿수일 뿐 여전히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경기에 자주 나오면서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부상으로 인한 문제점이 발각됐다. 구속은 140Km 후반대를 회복했지만 무엇보다도 제구력 면에서 굉장히 나빠졌다. 투수의 제구력을 상징하는 K/BB가 늘 2점을 상회하던 그는 2011 ~ 2013 시즌은 계속 K/BB가 2점을 넘지 못한다.

2014 시즌[편집]

2013 시즌을 마치고 KBO로부터 올해의 재기상을 수상한 그는 수상 소감으로 반드시 내년엔 더 잘하도록 할 것을 약속했다. 그리고 시작된 2014 시즌, 팀의 에이스로 화려하게 귀환하였다.

데뷔 후 처음으로 개막 선발로 나설 정도의 좋은 컨디션으로 시즌을 출발한다. 3년 동안 부진의 늪에 빠져 있던 과거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돌아왔다. 특히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는 4년 만에 완투승을 거두기도 했다.

2014 시즌 최종 성적은 17323 IP ERA 3.42 145K 13승 9패.

에이스의 귀환을 알렸다. 세부 스탯, 특히 FIP와 K/BB, WHIP를 보면 사실 지난 3시즌보다 특별히 좋지는 않다. 하지만 건강하게 한 시즌을 온전히 소화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시즌 중에 아시안 게임에도 참가하여 팀의 에이스로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 기여했다. 이 금메달로 인해 규정 햇수를 채우게 되었고, MLB에 도전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었다.

시즌 오프 이후 3살 연상의 신부와 결혼했고, 동시에 MLB 포스팅을 신청하였다. 그 결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가 다소 낮은 금액인 $200M에 독점 협상권을 가져 왔다. 김광현은 비교적 낮은 금액임에도 이를 수용했으나, 연봉 협상 과정에서 의견의 충돌이 일어났다. 결국 12월 12일 마감 시한을 넘기며 협상이 결렬되었다.

2015 시즌[편집]

투구폼이 대폭 수정되었다. 특히, 팔각도의 높이가 큰 폭으로 낮아졌다. 또한 뒷발을 올리는 높이도 많이 낮아졌고, 본격적으로 체인지업 연마에 돌입했다.

커리어 하이 시즌을 기대해도 좋다는 시즌 개막 전 사전 인터뷰와는 달리 시즌 초 정상호와의 배터리 소화에서 고전한다. ERA가 5점대까지 치솟기도 했고, 컨트롤 능력과 구위가 저하되며 자주 난타를 당했다.

그러나 5월 초에 들어오며 김용희 감독이 배터리 조합에 변화를 주었고, 이 때부터 그는 이재원과 배터리 호흡을 맞추기 시작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KIA 타이거즈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연이어 호투하면서 본인의 모습을 되찾는다.

그리고 6월 7일, 잠실 야구장에서 맞붙은 LG 트윈스를 상대로 단 3개의 안타와 1개의 4사구를 내주며 완봉승을 거두었다.

이후 빈 글러브 태그 논란과 팔꿈치 부상이 겹치며 다시 위기에 빠지지만, 다시 실력으로 재기하며 시즌을 마감했다.

2015 시즌 최종 성적은 17623 IP ERA 3.72 160K 14승 6패.

무난한 시즌을 보냈다. 지난해보다 평균자책점은 0.3점이 상승했으나, 세부 지표에서는 큰 발전이 있었다. K/BB가 2점대를 웃도는 등 제구력에서 큰 발전이 있었다.

시즌 오프 이후 프리미어 12에 대표팀으로 참여하였고, 대한민국의 에이스로 출격했다. 예선 2경기에서는 부진과 불운이 겹치며 에이스의 이름값을 하지 못했지만, 결승전에서 다시 맞붙은 미국에게는 5회까지 미국 대표팀을 꽁꽁 틀어막는 완벽한 피칭을 펼치며 대한민국의 우승을 이끌었다.

2016 시즌[편집]

시즌 사전 인터뷰에서 그는 개인적인 목표로 180 IP와 전 구단 상대 승리 달성을 목표로 삼았다. 그리고 2016 시즌을 끝으로 메이저리그에 재도전할 것이라는 뜻을 밝혔다.

프로 데뷔 이후 두 번째 개막전 선발 투수로 출전했으나 체인지업이 흔들리며 크게 무너지고 말았다. 하지만 4월의 마지막 경기에서 NC 다이노스를 8이닝 동안 단 2점으로 틀어막으며, KBO 리그 역대 26번째, 좌완 3번째, 좌완 20대 선수로는 최초의 100승 투수가 되었다.

6월 23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생애 8번째 완투, 7번째 완투승, 또한 개인 최다 탈삼진 기록을 능가하며 13K를 기록한다. 이로서 3시즌 연속 LG 트윈스를 상대로 완투를 해내는 진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바로 다음 경기에서 왼팔 굴곡근을 다치는 부상을 입게 되었다. 결국 부상 치료와 ITP, 실전 투입까지 약 한 달 반 정도의 공백이 생기게 되었다.

공백이 뜻하지 않게 길어지며 본인이 목표한 180 IP는 사실상 어렵게 되었다. 이후 8월 12일, 두산 베어스와의 퓨처스 리그 경기에 선발 투수로 출장하였고, 3 IP 1H 1BB 1ER을 기록하며 복귀 과정이 막바지에 다다랐음을 알렸다.

한 달 반 가량의 공백을 깬 그는 세 차례 중간 계투 일정을 소화하고, 8월 24일, 53일만에 선발 투수로 등판한다. 6 IP 3ER 3K 1BB를 기록하였다. 예정된 투구수인 80개에 가까운 79개의 피칭을 소화하며 성공적인 복귀를 알린다.

2016년 시즌 오프 이후 11월 29일, 계약기간 4년, 계약금 32억원 등 총액 85억원에 FA 계약을 체결하여 SK 와이번스에 잔류하였다.[1]

2017 시즌[편집]

2016년 12월 6일, 팔꿈치의 통증으로 인하여 정밀 검진을 진행하게 되었다. 결국 수술 소견을 박았고, 토미존 수술을 진행하였다. 이로써 김광현의 20대 시절 마지막 시즌은 2016 시즌이 되었다.[2]

차출된 국제 대회[편집]

  • 2005 아시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
  • 2006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
  • 2008 베이징 올림픽
  • 2009 WBC
  •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 2015 WBSC 프리미어 12

통산 성적[편집]

연도 소속 나이 승리 패전 승률 ERA 출장 선발 완투 완봉 세이브 홀드 이닝 안타 홈런 4구 고4 삼진 사구 보크 폭투 실점 자책 상대타자 WHIP
2007 SK 19 3 7 .300 3.62 20 13 0 0 0 0 77.0 80 5 41 2 52 4 0 2 35 31 342 1.57
2008 20 16 4 .800 2.39 27 27 1 1 0 0 162.0 127 9 63 1 150 2 0 3 50 43 659 1.17
2009 21 12 2 .857 2.80 21 21 1 0 0 0 138.1 121 14 53 1 112 4 0 8 46 43 568 1.26
2010 22 17 7 .708 2.37 31 30 2 1 0 0 193.2 153 13 84 2 183 5 0 13 56 51 797 1.22
2011 23 4 6 .400 4.84 17 14 1 0 0 0 74.1 70 6 45 0 61 2 0 3 45 40 328 1.55
2012 24 8 5 .615 4.30 16 16 0 0 0 0 81.2 85 9 36 0 65 2 1 2 44 39 347 1.48
2013 25 10 9 .526 4.47 25 22 0 0 0 0 133.0 128 12 68 0 102 4 1 9 72 66 580 1.47
2014 26 13 9 .591 3.42 28 28 1 0 0 0 173.2 178 10 81 1 145 3 1 9 77 66 749 1.49
2015 27 14 6 .700 3.72 30 29 1 1 0 1 176.2 173 19 66 2 160 3 0 10 86 73 754 1.35
2016 28 11 8 .579 3.88 27 21 1 0 0 1 137.0 139 17 41 2 116 6 0 3 68 59 583 1.31
KBO 통산 : 10년 108 63 .632 3.41 242 221 8 3 0 2 1347.1 1254 114 578 11 1146 35 3 62 579 511 5707 1.36
  • 시즌 기록 중 굵은 글씨는 해당 시즌 최고 기록

주요 타이틀[편집]

고교 야구 기록[편집]

  • 2004 미추홀기 전국 고교 야구 대회 : 우승 & 대회 MVP 수상
  • 2006 제일화재 프로야구 아마추어 선수 부문 MVP

KBO 리그 기록[편집]

국제 대회 기록[편집]

각주[편집]

  1. SK, FA 김광현과 85억원에 계약 체결 - 마이데일리
  2. ‘팔꿈치 부상’ 김광현 수술 선택, 2017년 시즌 아웃(종합) - OSEN

바깥 고리[편집]


이 전
다니엘 리오스
제28대 투수 부문 골든 글러브 수상자
2008년
다 음
 아킬리노 로페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