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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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원
崔東原

Choi Dong-Won
롯데 자이언츠 No.11(영구 결번)
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생년월일 1958년 5월 24일(1958-05-24)
출신지 경상남도 남해군
사망일 2011년 9월 14일 (53세)
신장 179 cm
체중 95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우투우타
수비 위치 투수
프로 입단 연도 1983년
드래프트 순위 1983년 1차 10순위 (롯데 자이언츠)
첫 출장 실업

프로

획득 타이틀

야구 월드컵

대륙간 컵

실업

프로

경력

선수 경력

코치 경력

감독 경력

메이저리그 계약 (1981년 9월 15일)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월드컵 1978년 로마 (3위)
1980년 도쿄 (2위)
1982년 서울 (1위)
대륙간컵 1977년 니카라과 (1위)
1981년 캐나다 (4위)
메달 기록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선수
남자 야구
월드컵
1982 서울 야구
1980 도쿄 야구
1978 로마 야구
대륙간컵
1977 니카라과 야구

최동원(崔東原[1], 1958년 5월 24일 ~ 2011년 9월 14일)은 대한민국 前 야구 선수이자 감독이다.

1958년 부산시[2] 에서 출생한 후 경남중학교, 경남고등학교, 연세대학교를 거쳐 1981년 실업 롯데 자이언트에 입단해서 실업 롯데 자이언트를 1981년 실업리그 전기리그 우승,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고 신인왕, 다승왕, MVP를 수상하였다.

1981년 캐나다 에드먼튼에서 열린 대륙간컵 대회에서 최우수투수상을 받고 메이저리그 토론토 블루제이스팀과 메이저리그 25인로스터에서 시작하는 조항이 포함된 5년(1981년-1985년) 메이저리그 계약을 체결하였다.(1981년 9월 15일 계약체결, 1981년 9월 28일 메이저리그 사무국 계약승인)[3][4][5][6][7][8][9][10][11][12][13][14][15]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메이저리그 진출 대신 새로 출범한 한국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에 1983년 입단하였다.

한국프로야구에 데뷔후 1983년부터 1987년까지 5년연속으로 규정이닝 2배이상 투구, 14회이상 완투, 전구단상대 완투, 2점대이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였고, 1983년부터 1988년까지 데뷔후 6년연속으로 선발등판 2/3이상 완투, 선발승 전경기 완투승을 하였으며,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는 40이닝 4선발등판 4완투, 1984년부터 1987년까지 4년 1000.2이닝 80승 60완투 2.16의 평균자책점, 1983년부터 1987년까지 5년 1209.1이닝 76완투 2.28평균자책점을 기록하는 등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이닝이팅능력과 연투능력을 나타내었다. 특히 1983년부터 1988년까지 데뷔후 6년간 무려 75.2%의 경이로운 완투율을 보였다.

1984년에는 포스트시즌포함 56경기 324.2이닝 31승 6세이브 18완투 258탈삼진(한국시리즈 5경기 40이닝 4승 4완투 35탈삼진)으로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2014년 기준) 한국시리즈 4승을 올리며 1984년 롯데 자이언츠가 창단 첫 우승을 하는 데 크게 기여하는 등 한국 프로 야구 초창기를 이끌었다.

한국프로야구 데뷔 후 5년 동안(포스트시즌포함) 연평균 41경기 250이닝 16회이상 완투(완투율 76.2%)를 하면서 평균자책점 2.27을 기록하였다. 또한 역대 단일 한국시리즈 8개부분에서 1위를 기록 중이다. (최다 이닝, 최다 승리, 최다 선발등판, 최다 선발승리, 최다 완투, 최다 완투승, 최다 완봉승, 최다 탈삼진)

한국프로야구에서 8년을 활약하고 통산 평균자책점 2위, 통산 완투 2위, 통산 완투율 1위, 단일 시즌 최다 승 2위, 단일 시즌 최다 이닝 2위, 단일 시즌 최다 이닝 4위, 단일 시즌 최다 탈삼진 1위를 기록 중이다. (특히 통산 평균자책점 상위 10명중에 규정이닝 2배이상 투구 또는 14회이상 완투를 2회 이상 기록한 투수는 2가지 모두를 데뷔후 5년연속으로 투구한 최동원이 유일하다)

최고구속 155 km/h[16][17] 의 강속구와 강한 어깨로 아마야구 시절부터 '철완 최동원', '무쇠팔 최동원' 으로 불렸다. 롯데 자이언츠삼성 라이온스 투수 생활 이후, 한화 이글스의 투수 코치 및 2군 감독, 한국야구위원회(KBO) 경기감독위원 등을 역임했으나, 2011년 9월 14일 호전되었던 대장암이 악화되면서 54세로 사망했다.[18]

플레이 스타일[편집]

최동원은 140 km/h를 상회하는 강속구와 130~100 km/h의 다양한 속도의 가감을 줄 수 있는 커브가 대표 구종이다. 이외에도 슬라이더, 브레이킹볼, 역회전 볼을 던졌다. 사람들에게 최동원은 빠른 강속구와 커브 단조로운 구종을 가지고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과 다르다. 최동원의 구종은 빠른 강속구 커브, 슬라이더 또한 명품이였다고도 미국신문에서 전하고 있다.또한 그 당시 한국에 몇없던 투심을 던지던 투수였다.

아마추어 시절[편집]

경남고등학교 2학년 때, 경북고등학교와의 경기에서 노히트노런을 기록한 후, 바로 그 이튿날 선린상고와의 경기에서 8회까지 노히트노런을 기록하는 투구를 하여 주위를 놀라게 하였다. 3학년 때, 청룡기 고교야구 대회에서 승자 결정전에서는 김성한군산상업고등학교와의 경기에서 9이닝 동안 20개의 탈삼진을 잡고 완봉승을 거두었다. 이어 연세대학교에 입학했다. 연세대 시절, 이틀 연속으로 등판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다. 대졸 후 그는 롯데 실업야구팀에서 생활한다.

프로 선수 시절[편집]

1983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했고, 이듬해인 1984년에는 프로 야구사에 길이 남을 대기록들을 세웠다. 51경기에 출전해 14차례나 완투하며 27승(6세이브 13패)과 223 탈삼진, 평균 자책 2.40으로 한국 프로 야구 최우수 선수상와 다승왕, 탈삼진왕을 석권한 것이다.[19] 특히 이 해 한국시리즈에서 혼자 4승(1패 포함, 1차전 완봉승 3차전 완투승 5차전 완투패 6차전 구원승 7차전 완투승)을 따내 팀의 창단 첫 우승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역대 한국시리즈에서 한 선수가 4승을 모두 거둔 선수는 최동원이 유일하다.

선동열과 더불어 대한민국 프로야구 초창기 최고 투수 중의 한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선동열과의 맞대결에서는 1승 1무 1패를 기록했다. 그의 직구는 140 km/h 정도였지만 스피드건의 작동방식 차이 때문에 요즘 기준으로는 150 km/h를 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마추어 시절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측정한 바에 따르면 150 km/h를 기록했다는 기사가 게재된 바 있다.[20] 1987년 시즌까지 10승 이상을 기록하며 200이닝 이상을 던지는 쾌투로 팀의 에이스임을 과시했다.

1988년선수협 파동으로 삼성 라이온즈김시진 등을 상대로 3:4 트레이드로 이적했으며, 트레이드에 반발하여 1989년 후반에서야 돌아왔다. 1990년 시즌을 마치고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1991년에는 미국으로 지도자 연수를 다녀온 경력이 있다.

선수협의회와 은퇴[편집]

1988년, 최동원은 선수협의회를 결성하고자 했다. 해태 타이거즈 투수 김대현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보고 선수 복지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같이 운동을 하던 선수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지만 도울 수 있는 길이 없었다. 연습생 선수들의 최저 생계비나 선수들의 경조사비, 연금 같은 최소한의 복지 제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선수협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 최동원

명예욕에 따른 움직임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최동원은 “나는 1억 원의 연봉을 받는 선수였다. 그 돈이면 당시 강남에 아파트를 마련할 수 있었다. 내 욕심을 위해서라면 선수협을 결성할 필요가 없었다. 어려운 동료들을 돕고 싶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구단들의 강한 반발에 밀려 선수협 결성은 실패로 돌아갔고 그 해 11월 최동원은 투수 오명록, 포수 김성현과 함께 삼성 투수 김시진, 전용권, 내야수 오대석, 외야수 허규옥을 상대로 한 3:4 트레이드로 이적했다. 롯데가 아닌 다른 팀의 유니폼을 입는 것은 최동원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트레이드 사실보다 최동원을 힘들게 한 것은 구단이 자신의 의도를 본의와 다르게 받아들였다는 점이었다. 구단에 대한 섭섭한 마음과 함께 선수 생활에 대한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최동원은 1990년까지 삼성에서 뛰었고 1991년 시즌이 시작하기 전 마운드를 떠났다. 가족들과 의논한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그때 그의 나이 겨우 32살이었다. 아마추어 야구 시절부터 혹사 당한 게 조기 은퇴로 이어진 것이 아니냐는 견해도 있었다.

아마추어 시절이나 프로에서 무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시대에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이름 세 글자에 부끄럽지 않게 맡은 바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한다.
 
— 최동원

당시 선수협 법률자문을 맡았던 문재인변호사(현재 국회의원)가 사실을 나중에 트위터를 통해 알려졌다.[21][22]

은퇴 후[편집]

1991년 최동원은 민자당의 공천을 뿌리치고 민주당 간판으로 부산시 서구의 광역의원에 출마했다. '건강한 사회를 향한 새 정치의 강속구'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그러나 그는 광역의원 선거에서 낙선했다.[23]

최동원은 계속 야구와 인연을 맺고 싶어 지도자 자리를 원했지만 그를 받아 주는 구단은 없었다. 팬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싶어 텔레비전의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했지만 사람들은 그의 뜻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야구 선수가 왜 오락 프로그램에 나오느냐’는 식으로 바라봤다. 자신의 의도가 다르게 전해진 것을 안 최동원은 1999년부터 방송 출연을 접고 다시 야구 현장으로의 복귀를 노렸다. 그러다 2001년 한화 이글스 투수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선수들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고 코치 직에서 물러난 뒤 2005년 다시 한화에서 코치를 맡았다. 2007년에는 한화 이글스 2군 감독을 맡아 2년 동안 유망주들을 가르쳤다. 한화에 있는 동안 그는 류현진을 밀어주며 새로운 신인 한명을 발굴한다. 2008 시즌을 마치고 한화에서 물러난 최동원은 2009년부터 한국야구위원회(KBO) 경기감독위원으로 야구장을 찾게 됐다.[24]

사망과 추모[편집]

롯데자이언츠 최초로 영구결번되어 사직구장에 새겨진 최동원
  • 한화 이글스 2군 감독으로 활동하던 2007년 대장암 초기 진단을 받았지만, 병세가 호전돼 2009년 야구계로 복귀했다. 그러나 2010년부터 병세가 나빠져 경기도 포천 등지에서 요양해 왔다. 그 와중에 2011년 7월 22일 목동에서 열린 경남고군산상고 간의 레전드 매치에 경남고 대표로 참석했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경기에 뛰지 못하고 더그아웃을 지켰다. 결국 지병인 대장암으로 2011년 9월 14일 54세로 별세했다.그는 은퇴 후 살이 조금 불어있었지만 죽기 직전엔 사진을 보면 얼굴에 살이 없고, 배가 나왔다고 한다. 이는 배에 복수가 찬 대장암이었고, 허구연이 이 사실을 알고 최동원을 걱정했지만 최동원이 모른척 해달라고 조언했다.[25] 장효조가 타계한 지 불과 1주일 후의 일이었다.

수상 경력[편집]

프로[편집]

아마추어[편집]

  • 고등학교 2학년 전국 우수고교 초청대회 경북고등학교와 경기에서 경남고를 3관왕으로 이끌며 17이닝 노히트 노런 기록 (1975년)
  • 고등학교 3학년 경남고 첫 청룡기 우승(결승전 경남고VS군산상고 한경기 20탈삼진 및 4게임 연속등판 완투우승, 화랑대기고교야구결승전-연이틀에 걸쳐 18이닝투구 1실점) (1976년)
  • 연세대학교 시절 23연승 기록 (1981년 졸업)
  • 아마야구 실업 팀 롯데 입단 실업야구리그전에서 우승, 최우수선수상, 최우수신인상, 최다승리상 3관왕 (1981년)
    • 전기·후기리그 : 30경기 205.2이닝 17승 4패 2세 173탈삼진 2.45 평균자책점 (전기리그-16경기 13승 1패 10완투승)
    • 코리언시리즈 : 6경기 42.1이닝 2승 1패 1세 37탈삼진 (7일간, 팀 6경기 전경기 등판, 팀이닝의 77% 투구)
    • 합 계 : 36경기 248이닝 19승 5패 3세 210탈삼진 (전기리그, 코리언시리즈 우승)
  • 캐나다 대륙간컵 대회 최우수선수 - 8이닝 퍼펙트 게임 및 최우수 투수상 (1981년)

주요 대회 수상 (아마야구)[편집]

연도 대회 수상
1975 제27회 화랑대기 준우승 , 감투상
1975 제4회 전국 우수고교 초청대회 우승
1975 제10회 국회의장배 전국6도시초청 고교대회 우승 , 최우수선수상
1976 제19회 전국 4도시초청 고교대회 우승 , 최우수선수상
1976 제31회 청룡기 우승 , 최우수선수상
1977 제2회 전국대학 초청야구대회 우승 , 최우수선수상
1977 1977년 전국대학연맹전 춘계리그 우승
1977 제11회 대통령기 우승 , 최우수선수상
1977 제32회 전국대학야구선수권대회 우승 , 우수투수상
1977 제3회 니카라과 대륙간컵 대회 금메달
1978 제1회 통일대기 우승 , 최우수선수상
1978 1978년 전국대학연맹전 춘계리그 준우승 , 감투상
1978 제28회 백호기 준우승 , 감투상
1978 제12회 대통령기 우승 , 최우수선수상
1978 제25회 로마 세계야구선수권대회 동메달 , 이닝 1위 , 다승 1위 , 탈삼진 1위
1979 제2회 통일대기 우승 , 우수투수상
1979 제1회 야구대제전 우승 , 우수투수상
1980 1980년 전국대학연맹전 춘계리그 준우승
1980 제3회 통일대기 우승 , 최우수선수상
1980 제26회 도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은메달 , 탈삼진 1위
1980 제35회 전국대학야구선수권 대회 우승 , 우수투수상
1980 제2회 부산시장기 전국대학야구대회 준우승 , 우수투수상
1980 제2회 야구대제전 우승 , 우수투수상
1981 1981년 실업야구 전기리그 우승
1981 1981년 실업야구 정규리그 최우수선수상 , 최우수신인상 , 최다승리상 (3관왕)
1981 1981년 실업야구 코리언시리즈 우승
1981 제5회 캐나다 대륙간컵 대회 4강 , 이닝 1위 , 다승 1위 , 최우수투수상
1982 제27회 서울 세계야구선수권대회 금메달

기타 경력[편집]

등번호[편집]

가족[편집]

최동원은 “아버지는 한국 전쟁으로 한쪽 다리를 잃어 의족을 차고 다니셨다. 아버지는 축구 선수가 되고 싶어 하셨지만 조부의 반대로 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 나에게는 ‘네가 운동을 하고 싶다면 시켜주겠다’며 아낌없이 지원해 주셨다”고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드러냈다. 최동원은 불편한 몸으로 아들 뒷바라지를 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야구 외에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안테나를 별도로 설치해 일본 고교 야구일본 프로 야구 중계를 볼 수 있게 해 주신 것도 아버지였고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함께 캐치볼을 했던 것도 아버지였다. 그런 아버지였지만 최동원이 프로에 입단하는 과정이나 연봉 협상 과정에서 구단과 갈등을 빚을 때면 일부 언론에서는 아버지가 아들의 문제에 지나치게 간여한다며 최씨를 비난했다.

최동원은 일부 언론에 대한 섭섭한 마음을 드러냈다. 최동원은 “내가 해명을 하려고 해도 선수 한 명의 목소리는 구단에 비해 너무 작았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주위의 이야기에 흔들리지 마라”며 아들에게 힘을 실어 주곤 했다. 최동원은 아버지에게서 ‘즐겁게 열심히 사는 것이 건강하게 사는 것’이라는 가르침도 받았다. 아버지 최윤식은 2003년 세상을 떠났고 최동원은 아버지의 명예가 회복되기를 바라고 있다.

친동생 최수원은 한국야구위원회 야구 심판이다.[28]

최동원을 연기한 배우들[편집]

  • 서수원 (KBS 스페셜 무쇠팔 최동원 인생을 던지다) 2011년
  • 조승우 (퍼펙트게임 ) 2011년[27]

한국프로야구 주요 기록[편집]

  • 통산 평균자책점 2위
  • 통산 FIP 2위
  • 통산 완투 2위
  • 통산 완투승 4위
  • 통산 완투율 1위
  • 단일 시즌 최다 승 : 2위 (1984)
  • 단일 시즌 최다 이닝 : 2위 (1984), 4위 (1986)
  • 단일 시즌 최다 탈삼진 : 1위 (1984)
  • 역대 유일 2년연속 200이닝-20승 (1984-1985)
  • 역대 유일 2년연속 200이닝-1점대 평균자책점 (1985-1986)
  • 역대 유일 2년연속 200이닝-1점대 FIP (1985-1986)
  • 역대 유일 2년연속 200이닝-0점대 WHIP (1985-1986)
  • 역대 유일 5년연속 200이닝-14완투-2점대이하 평균자책점 (1983-1987)
  • 역대 유일 5년연속 200이닝-14완투-2점대이하 FIP (1983-1987)
  • 역대 최초 통산 400탈삼진 (1985)
  • 역대 최초 통산 500탈삼진 (1985)
  • 역대 최초 통산 600탈삼진 (1986)
  • 역대 최초 통산 700탈삼진 (1986)
  • 역대 최초 통산 800탈삼진 (1987)
  • 역대 최초 통산 900탈삼진 (1987)
  • 역대 최초 통산 1000탈삼진 (1990)
  • 역대 최초 통산 100승-1000탈삼진 (1990)
  • 역대 최초 통산 70완투 (1987)
  • 역대 최초 통산 80완투 (1990)
  • 역대 최초 통산 10완봉 (1986)
  • 역대 최초 통산 15완봉 (1988)
  • 한국시리즈 최다 승 : 4승 (1984)
  • 한국시리즈 최다 이닝 : 40이닝 (1984)
  • 한국시리즈 최다 선발 등판 : 4번 (1984)
  • 한국시리즈 최다 완투 : 4완투 (1984)
  • 한국시리즈 최다 선발승 : 3선발승 (1984)
  • 한국시리즈 최다 완투승 : 3완투승 (1984)
  • 한국시리즈 최다 완봉승 : 1완봉승 (1984)
  • 한국시리즈 최다 탈삼진 : 35탈삼진 (1984)
  • 한국시리즈 선발 등판 4경기 연속 완투 (1984)
  • 한국시리즈 최초 완봉승 (1984)
  • 한국시리즈 최초 선발 전원 탈삼진 (1984)
  • 연간 최다 승 : 31승 (1984)
  • 연간 최다 탈삼진 : 258탈삼진 (1984)
  • 역대 단일 시즌 최다 탈삼진 : 223탈삼진 (1984)
  • 포스트시즌 통산 완투 1위
  • 포스트시즌 통산 완투승 2위
  • 포스트시즌 통산 완봉승 2위
  • 한국시리즈 통산 완투 1위
  • 한국시리즈 통산 완투승 1위
  • 한국시리즈 통산 완봉승 1위
  • 다승 1위 : 1984
  • 다승 2위 : 1986
  • 탈삼진 1위 : 1984, 1987
  • 탈삼진 2위 : 1985, 1986
  • 평균자책점 2위 : 1985, 1986
  • FIP 2위 : 1984, 1985, 1986, 1987
  • 최다 이닝 1위 : 1984, 1986
  • 최다 이닝 2위 : 1987
  • 완투 1위 : 1985
  • 완투 2위 : 1984, 1987
  • 완투승 1위 : 1985
  • 완투승 2위 : 1984, 1987
  • 완봉승 1위 : 1985, 1987
  • 최다 경기 2위 : 1984
  • 5년 연속 규정이닝 2배이상 투구 (1983-1987)
  • 5년 연속 14회이상 완투 (1983-1987)
  • 5년 연속 전구단상대 완투 (1983-1987)
  • 6년 연속 선발등판경기 2/3이상 완투 (1983-1988)
  • 6년 연속 선발승 전경기 완투승 (1983-1988)

통산 기록[편집]

  • 투수 기록
연도 소속 평균자책 경기 완투 완봉 세이브 이닝 타자 피안타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비고
1983 롯데 2.89 38 16 1 9 16 4 208 2/3 863 202 59 148 89 67 규정이닝 2배이상 투구
1984 2.40 51 14 1 27 13 6 284 2/3 1132 229 82 223 91 76 규정이닝 2배이상 투구
1985 1.92 42 14 4 20 9 8 225 865 170 49 161 60 48 규정이닝 2배이상 투구
1986 1.55 39 17 4 19 14 2 267 1039 204 61 208 60 46 규정이닝 2배이상 투구
1987 2.81 32 15 4 14 12 2 224 920 218 68 163 80 70 규정이닝 2배이상 투구
1988 2.05 16 3 1 7 3 3 83 1/3 349 77 25 83 24 19
1989 삼성 2.10 8 0 0 1 2 0 30 138 36 19 9 12 7
1990 5.28 22 2 0 6 5 1 92 424 113 56 24 62 54
통산 8시즌 2.46 248 81 15 103 74 26 1414 2/3 5730 1249 419 1019 478 387
빨간 글씨는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다 기록
  • 타자 기록
연도 소속 타율 경기 타수 득점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루타 타점 도루 볼넷 삼진 병살타 출루율 장타율 OPS 비고
1984 롯데 1.000 1 1 0 1 1 0 0 2 2 0 0 0 0 1.000 2.000 3.000
통산 1.000 1 1 0 1 1 0 0 2 2 0 0 0 0 1.000 2.000 3.000

역대 선거 결과[편집]

선거명 직책명 대수 정당 득표율 득표수 결과 당락
1991년 시도의회의원선거 부산직할시의원(서구 제1선거구) 초대 민주당 37.8% 10,667표 2위 낙선[29]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당시 야구잡지 주간에 실린 최동원의 비밀 병기 중 한자 표기 참조 2011년 9월 21일 미디어다음에서 확인
  2. 명투수 최동원의 숨겨진 비밀 두 가지... 2008.06.16기사중 "부산 좌천동의 일신산부인과에서 최동원을 분만했다" 인용 - 인터뷰365 확인
  3. MBC스페셜 - 불멸의 투수 최동원 30분 05초-32분 23초 방송 인용 - MBC 방송 확인
  4. 1981년 최동원 토론토블루제이스간 체결된 메이저리그 계약서 인용 - MBC 방송 확인
  5. 박동희의 야구탐사 - 최동원은 왜 MLB에 가지 못했나 기사 인용, 1981년 최동원 토론토블루제이스간 체결된 메이저리그 계약서 인용 - 네이버 스포츠 확인
  6. Sports People; Korean Pitcher Sought 1981.09.17 기사 인용 - The New York Times 확인
  7. Sports People; Passmore Recuperating 1981.09.23 기사 인용 - The New York Times 확인
  8. Transactions; Baseball 1981.09.23 기사 인용 - The New York Times 확인
  9. Transactions Tuesday Baseball 1981.09.22 인용 - Daily Record 확인
  10. American Association 1981.09.22 인용 - The Bryan Times 확인
  11. Names in sports 1981.09.23 인용 - The Morning Star 확인
  12. Transactions 1981.09.23 인용 - The Vancouver Sun 확인
  13. Korean star signs with Blue Jays 1981.09.24 인용 - St. Petersburg Daily Times 확인
  14. Blue Jays Sign First Korean 1981.09.23 인용 - Sarasota Herald-Tribune 확인
  15. In The Majors 1981.09.23 인용 - The Pittsburgh Press 확인
  16. MBC스페셜 - 불멸의 투수 최동원 7분 33초-7분 40초 방송 인용 - MBC 방송 확인
  17. 1983년 3월 26일자 경향신문 인용- 경향신문 확인
  18. '불세출의 투수' 최동원 별세(종합2보) - 연합뉴스
  19. 김은진, '장효조, 최동원 불멸의 야구 천재' <<주간경향>>, 2011, 9, 27
  20. MBC ESPN. “15회 무승부 4시간56분”. MBC ESPN.  유튜브 인용 (02분 ~ )
  21. 조수경 (2012년 2월 4일). “롯데 최동원 선수협 법률자문, 문재인이 했다”. 미디어오늘. 2012년 2월 5일에 확인함. 
  22. 손대선 (2012년 2월 5일). “문재인 "최동원 프로야구선수 노조결성 생각한 선각자". 뉴시스. 2012년 2월 5일에 확인함. 
  23. 민자당 거부하고 '꼬마 민주당' 선택한 최동원《오마이뉴스》2011년 9월 16일
  24. 김남형 (2008년 10월 28일). “(원티드 인터뷰)이사람을 모르시나요 (1)최동원”. 스포츠조선. 2008년 10월 28일에 확인함. 
  25. 이연우 (2011년 9월 14일). “최동원 전 한화 2군 감독 14일 새벽 별세”. 스포츠서울. 2011년 9월 14일에 확인함. 
  26. '무쇠팔' 최동원, 부산의 '영원한 11번'이 되다, 《오마이뉴스》, 2011년 10월 6일 확인.
  27. ‘퍼펙트게임’ 조승우, 최동원 완벽변신…싱크로율 100% , 《데일리안》, 2011년 10월 20일 확인.
  28. 故최동원 동생 최수원 심판 “통증속에서 야구만 생각” - 일간스포츠
  29. 中央選擧管理委員會 (1991). 《市·道議會議員選擧總覽》. 189쪽. 

바깥 고리[편집]

이 전
장명부
제3대 한국 프로 야구 골든글러브 투수
1984년
다 음
 김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