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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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현
Cho Kye-Hyeon
KIA 타이거즈
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
생년월일 1964년 5월 1일(1964-05-01) (54세)
출신지 대한민국 전라북도 군산
신장 179 cm
체중 87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우투우타
수비 위치 투수
프로 입단 연도 1989년
드래프트 순위 1988년 1차 1순위 (해태 타이거즈)
첫 출장 KBO / 1989년 4월 9일
광주빙그레
마지막 경기 KBO / 2001년
획득 타이틀
  • 1993·1994년 다승왕
  • 1995년 최우수 평균자책
경력

선수 경력

지도자 경력

프런트 경력


파일:조계현(야구인).png
기아타이거즈 조계현 단장

조계현 (趙啓顯, 1964년 5월 1일 ~ )은 전 KBO 리그 해태 타이거즈, 삼성 라이온즈, 두산 베어스투수였으며, 현재 KIA 타이거즈의 단장이다.

군산상업고등학교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89년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해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고, 해태에서 2번의 다승왕과, 1회의 방어율왕을 기록했다. 선발 투수로 선동열, 동기생 이강철, 이대진, 송유석, 문희수, 신동수 등과 함께 5번이나 우승을 이끌었다.

1996년 초 하와이 항명사건의 주동자로 찍혀[1] 다음 해인 1997년삼성 라이온즈로 현금 트레이드되었다. 그러나 기대 이하의 성적으로 방출당했고, 두산에서 뛰다가 두산에서 2001년 한국시리즈 우승 멤버로 활동한 후 방출되어 은퇴했다. 개인 통산 320경기에 등판해, 126승 92패 17세이브에 평균 자책 3.17을 기록했다. '변화구의 마술사' '팔색조' '싸움' 등의 별명을 얻으며 명성을 날렸다. 1994년 다승왕, 1995년 평균 자책점 1위 타이틀을 획득했다. 이후 KIA 타이거즈에서 투수코치로 활동하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삼성 라이온즈투수 코치로 활동했다. 2009 시즌 도중 재활군으로 내려갔고 재계약에 실패했다. 베이징 올림픽 국가대표팀 투수코치로 금메달을 이끌었다. 2009년 11월 2일 현역에 마지막으로 몸담았던 두산 베어스의 코치로 영입되어 활동하다가 베이징 올림픽 대표팀 타격코치로 함께한 김기태의 부름으로 2011년 10월 14일 LG 트윈스의 수석코치로 선임되었다. 2014년 4월 23일 갑작스러운 김기태 감독의 사퇴로 인해 나머지 시즌을 감독 대행이라는 직함으로 이끌다가 같은해 5월 11일 양상문 감독이 선임된 이후 2군 감독으로 이동하게 된다. LG 트윈스와 계약 만료 이후 김기태 신임 KIA 타이거즈 감독의 요청에 의해 2015 시즌부터 친정 팀 KIA 타이거즈의 수석코치로 부임한다. 2017년 시즌 후 허영택 단장이 대표이사 자리로 승진되면서 수석코치에서 단장으로 승진되었다[2].

출신 학교[편집]

경력[편집]

등번호[편집]

선수 경력[편집]

군산상고 1학년 재학 시절 선배 백인호, 동료 포수 장호익 등과 함께 팀을 대통령배 우승으로 이끌며 크게 주목받았다. 군산상고 2학년 시절 팀을 고교 야구 3관왕에 이끌며 아마추어 시절 전성기를 구가한다. 잠실야구장 개장과 함께 부산고, 경북고, 천안북일고와 함께 군산상고를 이끌고 초청받아 호투를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고교 시절 1,2학년때부터 혹사 당하면서 부상으로 인해 고교 3학년때에는 큰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채 이후 강속구 투수 대열에서는 멀어지고 만다. 하지만 오히려 이 때문에 팔색조라는 별명에 걸맞은 다양한 구종을 장착한 투수가 되는 계기가 된다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시절에는 투수 겸 강타자로 활약, 연고전에서는 홈런을 치기도 했다. 또한 국제대회에서는 강호 쿠바를 상대로 완투했지만 아쉽게 3-4로 지기도 했다. 참고로 군산상고 시절부터 단짝으로 활동한 포수 장호익은 프로 해태 타이거즈에 와서도 줄곧 조계현의 전담 포수로 활동했다(89년). 프로시절 최강 해태 타이거즈의 투수로 활약하면서 유독 LG를 상대로 좋은 피칭을 보였으며(93년 2완봉승)[3] [4]한때 LG 트윈스를 상대로 9회초 2사까지 노히트노런을 한 적도 있었다. 한때 조계현은 팀 해태 선배 선동렬과 한 해 최다 완봉승 경쟁을 벌일 정도로 뛰어났다 그리고 선동렬 외에 몇 안 되는 평균 자책점 1점대를 기록했던 투수이기도 했다 조계현의 고교 시절 부상이 없었다면 아마 선동렬의 자리가 없어졌을 지도 모르는데 1993년(17승)과[5] 1994년(18승) 최다 선발승을 기록했음에도 다른 타이틀을 차지하지 못하여 결국 2년 연속 정규시즌 MVP에서 밀려났다. 프로시절 말미에는 두산 베어스로 트레이드된 뒤 현대 유니콘스와의 코리안시리즈에 나와 호투하면서 수많은 야구팬들에게 조계현은 아직 죽지 않았다라는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통산 기록[편집]

연도 소속 팀 평균 자책 경기수 세이브 이닝 피안타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기타
1989 해태 2.84 31 7 9 4 174 153 73 97 64 55
1990 3.28 30 14 13 0 178 ⅓ 144 81 130 73 65
1991 3.25 21 9 9 0 130 ⅓ 100 54 75 50 47
1992 2.94 37 10 6 12 156 123 59 98 64 51
1993 2.15 28 17 6 1 196 ⅓ 141 58 118 54 47 최다 다승
1994 2.61 27 18 5 0 210 171 68 135 69 61 최다 다승 공동(조계현, 이상훈)
1995 1.71 19 9 6 0 126 97 43 59 28 24 최소 평균자책점
1996 2.07 27 16 7 0 191 ⅔ 145 52 116 51 44
1997 3.71 25 8 9 0 114 111 36 71 64 47
1998 삼성 5.21 29 8 11 0 150 1/3 171 76 94 99 87
1999 11.51 12 0 3 0 20 1/3 36 15 16 27 26
2000 두산 3.74 16 7 3 0 89 81 31 53 40 37
2001 5.28 18 3 5 0 87 99 38 38 53 51
통산 13시즌 3.17 320 126 92 17 1823 1/3 1,572 684 1,100 736 642 통산 다승 역대 6위

외부 링크[편집]

전임
김기태
LG 트윈스 감독대행
2014년 4월 23일 ~ 2014년 5월 11일
후임
양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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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승훈 (2017년 12월 7일). “코치→단장, KIA 단장에 '싸움닭' 조계현 파격 선임”. 오마이뉴스. 2019년 3월 16일에 확인함. 
  2. 김승훈 (2017년 12월 7일). “코치→단장, KIA 단장에 '싸움닭' 조계현 파격 선임”. 오마이뉴스. 2019년 3월 16일에 확인함. 
  3. “張(장)종훈 홈런砲(포) 재가동”. 경향신문. 1993년 7월 19일. 2019년 3월 16일에 확인함. 
  4. “LG,천적 조계현에 또'무릎'. 한겨레신문. 1993년 8월 25일. 2019년 3월 16일에 확인함. 
  5. 김승훈 (2017년 12월 7일). “코치→단장, KIA 단장에 '싸움닭' 조계현 파격 선임”. 오마이뉴스. 2019년 3월 16일에 확인함.